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준혁은 자신의 손에 있는 손바닥만 한 크기의 새를 조심스럽게 내려놓고는 팬을 꺼내 들었다. 그리고는 거대한 순백의 종이를 좁은 방 안에 깔았다.
“백이야, 저리 가 있어.”
처음으로 행하는 마법이라 방해를 받고 싶은 생각이 없는 준혁이었기에 자신에게 달려드는 백이를 밀어냈다.
―저리 가 있어라냥! 지금은 중요한 순간이다냥!
끼이잉.
준혁의 말은 알아듣지 못하지만 나나가 소리치자 백이는 기가 죽은 채 한쪽에 있는 작은 자신의 잠자리로 돌아가 앉았다.
“왜 애한테 화를 내냐?”
―냐앙! 네가 방해하지 말라고 해서 도와준 거잖냥! 그리고 신중히 그려라냥! 마녀에게 가장 필요하며 간단한 마법이긴 하지만 지금의 너한테는 위험할 수도 있다냥!
“알고 있어. 자, 다 그렸으니까 한 번 확인해 봐.”
준혁이 자신감있게 자신이 그린 마법진을 나나에게 보여 주었다.
―대충 된 거 같다냥. 그보다 룬어를 좀 예쁘게 써 보라냥.
“나름 노력해서 쓴 거야. 그럼 시작해 볼까?”
준혁은 다시금 자신이 종이에 그린 마법진을 바닥에 잘 내려놓고는 침대 위에 죽은 듯이 누워 있는 새를 마법진 위에 올려놓고 커튼을 쳤다.
―무식하게 피를 떨어뜨리지는 말아라냥.
“나도 아니까 조용히 좀 해 봐.”
나나의 반복되는 간섭에 준혁이 작게 툴툴거리고는 최대한 피를 적게 내기 위해 준비한 바늘로 손끝을 살짝 찔러 새하얀 종이 그려진 마법진 위로 떨어뜨렸다.
파앗!
준혁의 피가 마법진 위로 떨어지자 밝은 빛이 뿜어져 나왔다. 눈을 감을 정도로 밝은 빛이었지만 준혁에게는 그렇지 않았다.
빛에 영향을 받지 않는 준혁은 작게 자신이 생각했던 주문을 외우기 시작했다.
“나 견습 마녀 준혁이 청한다. 나의 영혼의 조각을 받아 그대 나와 함께하지 않겠는가?”
죽은 듯이 누워 있는 새에게 말을 거는 준혁의 태도는 이상해 보일 법도 하지만 마법을 아는 나나로서는 당연하다는 듯이 그 모습을 지켜보았다.
“그대 나와 함께하기를 원한다면, 나의 파트너가 되어 줄 수 있다면 나의 영혼의 조각을 받아들여라!”
낮지만 강하게 말하는 준혁의 목소리와 함께 마법진에서 뿜어져 나오던 빛이 조금씩 사라져 갔다. 정확하게는 사라지는 것이 아닌 작은 새에게 흡수되고 있는 것이었다.
잠깐의 시간이 지나 마법진에서 흘러나오던 모든 빛이 새에게 흡수가 되었다.
“어? 시, 실패한 건가?”
빛을 흡수하고도 아무런 미동도 없는 새를 준혁이 조금은 불안하다는 듯이 바라봤다.
바로 그때였다.
“어? 움직였다!”
―나도 눈이 있다냥.
나나가 준혁의 말에 귀찮다는 듯이 대답하였다.
퍼덕. 퍼더덕.
쓰러져 있던 작은 새가 날개를 퍼덕이더니, 몸을 일으켰다. 그리고는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이제 어떻게 해야 하지?”
준혁이 잔뜩 고조된 목소리로 나나를 바라봤다.
―애같이 굴지 말아라냥. 조금 더 가만히 지켜봐라냥.
나나의 말에 준혁이 고개를 끄덕이고는 방 안을 이리저리 겅중겅중 뛰어다니는 새를 지켜봤다. 날지 않는 것이 이상하긴 했지만 귀엽게 뛰어다니는 것도 나쁘지 않았기에 가만히 지켜보는 준혁이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으릉.
겁도 없이 백이의 앞으로 뛰어가는 새였다.
“어어, 안 돼! 가만히!”
준혁이 백이를 가리키며 말했다.
끼잉.
백이는 준혁의 말에 아쉽다는 듯이 머리를 땅에 대고는 새를 노려보았다. 나나를 통해서 생각보다 쉽게 백이를 훈련시켰기에 몇 가지 말은 바로 알아듣는 백이였다.
삐삑.
“어? 엄마가 아니라 아빠라고 해야지.”
―잘된 것 같구나냥.
백이를 말리며 준혁이 새에게 손을 뻗자 새가 삑삑거리며 안겨 들었다.
“응? 잠깐만. 내가 방금 어떻게 들었지?”
―사역마이지 않느냥. 당연한 거다냥. 아직 저 녀석이 어린 점도 있고, 사역마가 된 지 얼마 되지 않아서이다냥. 그래서 단지 느낄 뿐이다냥. 내가 하는 말처럼 들리는 것이 아니란 말이다냥. 앞으로 네 마나와 더욱 익숙해지면 대화가 잘될 거다냥.
“그렇구나. 그럼 이제 집에 돌려보내야 되나?”
―이제는 네 파트너다냥.
“그렇지만 부모가 있을 거 아니야.”
―냐냥.
나나가 준혁의 말에 고개를 돌렸다. 준혁의 초감각이 그런 나나의 행동을 단번에 꿰뚫어 봤다.
“너, 무슨 짓 했어?”
―아, 아무 짓도 안 했다냐앙.
“숨기지 말고!”
―지, 진짜다냥! 정말로 아무 짓도 안 했다냥!
“그런데 왜 돌려보내지 말라는 건데?”
―조, 조금 더 교감을 쌓는 시간을…….
“어설픈 핑계는 대지 말고. 너도 내 능력이 뭔지 알잖아.”
―냐냐냥.
나나가 급격하게 몸을 웅크렸다. 준혁이 그런 나나를 노려봤다. 결국 나나는 준혁의 시선을 이겨 내지 못하고 사실을 털어 놓을 수밖에 없었다.
“그러니까 버려진 아이였다고?”
―그렇다냥. 다른 둥지 같은 곳은 다 비워져 있었다냥. 버림받은 것이 분명하다냥. 내가 갔을 때도 날지 못해서 도망도 못 가고 퍼덕이고만 있었다냥.
“그런…….”
삐이.
―우울해하지 말라냥. 만나서 즐겁다고 생각해라냥. 제대로 통하지는 않지만, 네가 갖는 느낌만큼은 그 병아리도 느낀다냥.
“그렇구나. 그보다 새보고 병아리라니! 앞으로는 그러지 마. 하지만 니 말이 사실이라면 이제는 걱정없이 같이 살면 되겠네. 이름을 뭘로 정해 줘야 좋을까?”
삐이삐이.
왕왕.
준혁이 자신의 사역마가 된 새를 다정하게 안아 들자 백이가 준혁의 발밑을 뱅뱅 돌기 시작했다.
“읏차, 우리 백이도 이제는 언니가 된 거니까 잘 대해 줘야 한다.”
준혁이 백이를 안아 들며 새를 백이와 가깝게 해 주었다.
그러자 백이는 혀를 내밀어 새를 핥기 시작했다.
“절대로 먹는 거 아니야!”
끼잉.
묘하게도 말을 알아들은 것같이 애절한 눈으로 바라보는 백이를 보며 준혁은 살짝 웃음을 지었다.
처음에는 사역마라 하여 백이를 사역마로 삼을 생각을 하였지만, 자유롭게 마을을 돌아다닐 수 있는 동물을 선택하라 하여 새로 정한 것이었다.
비둘기로 할 생각이었지만 날이 쌀쌀해졌기에 비둘기는 찾아볼 수가 없었다. 그러다 결국 나나가 산속을 해매는 상태까지 오게 된 것이었다.
“아무튼 앞으로 잘 부탁해. 무슨 종인지는 모르겠지만, 예쁜 이름 지어 줄 테니까.”
삐이∼
귀엽게 울어대는 새를 보며 준혁은 결국 밤잠을 설칠 수밖에 없었다.
“무슨 이름이 좋을까, 나나야?”
―대충 정하고 자라냥! 시끄러워 죽겠다냥!
“쳇, 혼자 하지도 않는 고생했다고 거짓말을 해 놓고는.”
―찾아 돌아다니느냐고 힘들었다고 몇 번이나 말했다냥!
“미안.”
결국 잠이 오지 않아 밤새워 마나를 쌓은 준혁이었다.
7. 견습 마녀와 하늘에서 내려온 소녀
연인 없이는 넘기기 힘든 쌀쌀한 계절, 겨울.
하지만 준혁은 자연스럽게 일어났다.
준혁이 일어서자 마치 기다렸다는 듯이 백이도 꼬리를 흔들며 자리에서 일어섰다.
“오늘도 백이가 먼저 일어났네.”
귀엽게 꼬리를 살랑거리며 준혁에게 다가오는 백이였다. 방학 동안 밖에 나가는 일이라고는 고작해야 아침 운동이나 식료품을 살 때, 그리고 과외와 편의점 아르바이트를 할 때뿐이었다.
그랬기에 백이를 별로 외출시켜 주지 못하고 있다는 것을 깨닫고는 아침 운동을 하러 갈 때 항시 데리고 다니기 시작한 준혁이었다.
“갔다 올게. 집 잘 봐.”
―말 안 해도 알고 있다냥. 도둑이 와도 가져갈 것도 없는데냥.
“아무튼! 너도 좀 나가서 움직여라. 그러다 돼지 되면 어떻게 하려고.”
―이렇게 날씬한 돼지를 봤냥! 그보다 알았으니 어서 가거라냥.
귀찮다는 듯이 자신을 내쫓는 나나의 행동에 준혁은 백이를 데리고 집을 나섰다. 목줄 같은 것은 채우지도 않았다.
나나와 이제는 자신의 사역마가 되어 버린 ‘미’로 인해 백이와도 어느 정도 대화가 통했다. 물론 두 동물과의 대화로 인한 것이 아니라 마나가 가장 큰 역할을 했다.
“후우, 오늘도 춥네. 백이는 안 춥니?”
단순히 밖에 나온 것만으로 즐거워하는 백이는 이곳저곳을 뛰어다녔다. 그래 봤자 준혁과 멀리 떨어지지는 않았다.
가볍게 몸을 푼 준혁이 백이를 데리고 달리기 시작했다. 준혁의 하루를 알리는 시작이었다.
* * *
―귀찮겠다냥. 학교를 가는 것은 말이다냥.
“뭐, 그렇긴 하지만, 그래도 학교는 졸업해야지. 사장 형이 이제부터는 편의점 아르바이트는 안 해도 된다고 했으니까. 지난 학기보다는 편할 거야.”
―편하긴냥. 마법 공부를 해야 한다냥. 그리고 저 녀석도 날 수 있게 연습을 시켜야 한다냥.
“그렇겠네. 좁은 집 안에만 있었으니까. 그것보다 계절이 조금씩 밀려서 개학인데도 춥네. 눈도 다 안 녹았고.”
―니가 위카의 경지에만 올라도 어느 정도 계절 정도는 바꿀 수도 있을 거다냥. 위치에 오르면 완벽하게 조정할 수 있을지도 모르고냥.
“가능할까?”
―불가능하다냥. 냥냥냥, 가능할 거라고 생각하냥.
나나가 가소롭지도 않다는 듯이 웃어대자 준혁의 표정이 확 구겨졌다. 그렇지만 틀린 말이 아니었기에 아무런 말도 못했다.
마법적 지식을 습득하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 거기에 조금 어렵기는 하지만 마나를 컨트롤하는 것도 가능했다.
그러나 정작 중요한 마나가 상당히 부족했다. 그랬기에 제대로 된 연습을 할 수가 없었다. 나나가 설치해 놓은 마법진마저 없었다면 제대로 된 마법을 사용해 보지도 못했을 것이다.
그랬기에 준혁이 주로 연습을 하는 것은 마법진이었다. 본인의 마나를 사용하는 마법과는 다르게 마법진을 이용한 마법은 마나가 미약해도 충분히 사용이 가능했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자신이 다급하게 실전으로 무언가를 하지 않는다는 것 정도였다.
‘나나가 놀려대는 것이 귀찮기는 하지만.’
마나가 모이지 않는 것은 준혁으로서도 어쩔 수 없는 상황이었지만, 그로 인해 툴툴거리는 나나가 상당히 얄미운 상태였다.
다른 일들은 다 잘 풀렸기에 즐거웠던 것에 비해 유일하게 스트레스를 받는 것이 마나에 관련된 것이었다.
“쳇, 학교 갔다 올게. 백이랑 미 좀 잘 돌봐 줘.”
―싫다냥! 내가 무슨 보모도 아니고, 매일같이 저 녀석들을 돌봐야 하는 거냥!
“어쩔 수가 없잖아. 두 아이도 너를 잘 따르고…….”
―쳇이다냥. 아직도 밥 하나 못 챙겨 먹는다냥. 한심한 녀석들이다냥.
“그러니 네가 잘 좀 돌봐 줘.”
―끄응, 알았다냥. 다녀오라냥.
“금방 올 거야. 첫날이니까. 다행히도 이번에는 공강 없이 수업을 짜서 왔다 갔다 해야겠네.”
마녀가 되기 전 같았으면 수업이 끝나고 곧장 도서관에 갔겠지만, 지금은 자신을 기다려 주는 동물들이 집에 있었다. 거기에 마법 서적도 봐야 했다.
마법 서적은 준혁에게 또 다른 할 일을 만들어 주었다. 단순히 마법 서적뿐만이 아니었다.
다른 보석에 들어 있는 지식들 역시 습득하기 위해 거쳐야 할 일이 있었다. 그것은 바로 문자.
내용이 상당히 쉽게 풀어져 있다고는 하지만, 다른 차원의 문자라는 것이 문제였다. 룬어로 정렬되어 있는 마법을 거꾸로 해석할 수도 있지만, 그것은 상당히 어려운 일이었다.
그렇게 시간을 낭비하는 것보다는 글을 배워 마법을 익히는 것이 더 빠를 거라 생각했기에 최대한 열심히 글을 배웠다.
글의 체계가 다르고, 글자 수도 상당히 많아 시간이 오래 걸렸기에 스스로 마법 서적을 보기 시작한 지는 그다지 오래되지 않았다.
하지만 마법을 배우는 것이 묘한 재미를 불러왔기에 앞으로는 도서관에 갈 생각이 전혀 없었다.
마법 서적이 책으로 되어 있다면 가겠지만 그렇지도 않았고, 집에는 자신이 돌봐야 할 동물들도 많았다. 이제 도서관은 준혁에게 있어 사치의 장소일 뿐이었다.
‘가족…… 이라는 거겠지?’
―뭘 그리 음침하게 웃는 거냥. 어서 가 보거라냥.
“집 주인은 난데 왜 내가 쫓겨나야 하는 건지. 그럼 갔다 올 테니까 백이랑 미도 얌전히 나나 말 듣고 있어.”
삑.
왕.
―갔다 와라냥.
작은 집에서 동물들의 배웅을 받은 준혁이 든 것 없는 빈 가방을 메고는 집을 나섰다. 집을 나선 준혁은 금방 학교에 도착할 수 있었다.
강의실에 들어선 준혁은 전과 달리 제법 못 보던 학생들이 많다는 것을 느꼈다. 그다지 친하지 않았기에 신경을 쓰지 않았지만 말이다.
그렇지만 준혁이 못 보던 학생들은 그와 같은 학번인 동기들이었다. 군대를 일찍 갔다 왔기에 그보다 조금 늦게 간 동기들이 복학을 한 것이다.
물론 복학을 한 만큼 국가를 위해 사라진 학생들도 많이 있었지만 말이다. 그러나 정작 중요한 것은 동기라 해도 서로 친하지는 않았다.
‘첫날이라 교수님도 늦네.’
분명 와 봤자 이름이나 교과서 정도만 확인할 것이 분명했다. 고리타분한 교수라면 조금 진도를 나가겠지만 그다지 늦게 끝나지는 않을 거라 생각했다.
제법 늦게 온 교수는 결국 수업을 하고야 말았다. 학생들의 적지 않은 원성을 받아 내면서 말이다. 결국 준혁이 집으로 돌아가게 된 것은 3교시 수업이 끝나고 나서였다.
상당히 말재주가 좋은 교수였기에 간단하게 수업에 대해 알려 주는 것을 핑계로 여러 가지 말장난을 하자 몇 시간이 후딱 지나간 것이었다.
서둘러 강의실을 빠져나와 계단을 내려가던 준혁은 자신의 눈에 들어오는 상황을 보고는 더욱 바삐 걸음을 옮겼다.
그런 준혁의 표정이 잔뜩 굳어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