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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야∼ 이 녀석 머리 좀 봐. 크큭.”
규준은 자신의 머리를 만지작거리는 친구들의 손을 치워 내며 자랑스럽게 말했다.
“너도 군대 가면 다 그렇게 된다. 그보다 언제 갈 거냐? 이제 3학년 1학기 마치고 가게?”
“몰라. 나도 걱정이다.”
“넌 반드시 특공대다. 너 같은 몸집이라면 말이야.”
가장 빨리 군대에 간 특권을 마음껏 누리고 있는 규준은 아직 군대에 가지 않은 친구들을 겁주기 시작했다.
한참 동안 있는 얘기 없는 얘기를 지어 내던 규준은 문득 자신의 눈에 들어오는 동물을 바라봤다.
“어? 저건 웬 고양이냐?”
규준이 호기심을 나타내자 주변에 있던 친구들이 고개를 돌렸다.
“아, 저 고양이? 그 누구지? 1학년 애가 데리고 다니던데. 이제는 2학년 됐겠다.”
“목줄도 없는데, 정말로 주인이 있는 거 맞아?”
“맞아. 항시 그 녀석만 따라다녀. 다른 애들은 불러도 쳐다보지도 않아. 불러도 안 오고. 이리 와, 고양아.”
마치 확인이라도 시켜 주려는 것인지 규준의 한 친구가 고양이에게 손짓을 했지만, 나나는 도도하게 고개를 돌렸다.
“새끼 고양이한테도 무시당하냐?”
갸릉!
자기를 무시하는 듯한 말에 나나가 민감하게 반응했다. 그럴 법도 했다.
준혁을 따라다니며 도도하다는 말을 들어 봤지만 좋지 못한 말은 들어 본 적이 없었다. 거기에 나나가 보기에 쓸데없이 덩치만 커 보이고 자신보다 무능력해 보이는 인물에게 한 소리를 들었으니 자존심이 강한 나나로서는 화를 낼 수밖에 없었다.
“이 미친 고양이가!”
“야야, 고양이한테 화내서 뭐 하게.”
“건방지잖아.”
냥!
규준이 말리자 잠시 멈추어 선 덩치였지만 가소롭다는 듯이 고개를 돌리는 나나의 행동에 그는 결국 참지 못하고 앞으로 나섰다.
그는 상당한 덩치를 자랑했다. 190센티가 넘는 키에 체격도 상당히 비대했다.
그래서인지 그의 앞에 있는 나나는 너무나도 왜소하게 보였다.
덩치의 접근에도 나나가 전혀 움직이지 않자 그는 천천히 손을 뻗었다.
“그만하시죠.”
그 순간, 비대한 학생의 두꺼운 팔에 비해 너무나도 왜소한 팔이 그의 손목을 꽉 움켜쥐었다.
“뭐야!”
자신의 행동을 방해한 이의 얼굴을 보기 위해 고개를 돌린 덩치의 눈이 살짝 떨렸다. 나나의 주인 준혁이 어느새 눈앞에 서 있었던 것이다.
“지금 뭐 하는 짓입니까.”
살짝 가려진 앞머리와 안경 사이로 비치는 준혁의 눈동자는 평소와는 사뭇 달랐다.
“아, 니가 그 유명한 이 고양이 주인이구만? 가축 교육 좀 잘 시키지. 가축 따위가 어디 인간에게 눈을 부라려?”
“그래서 무슨 짓을 하려고 한 것입니까?”
움찔.
위압감을 주기 위해 가까이 붙어 위에서 내려다보며 말을 했지만 전혀 기죽지 않고 오히려 당당하게 나서는 준혁의 행동에 덩치는 뒤로 한 걸음 물러섰다.
“야, 그만해. 죄송합니다. 친구 녀석이 조금 성격이 급해서요.”
다른 이들은 단순히 지켜보고 있을 뿐이지만 규준은 친구를 말리기 시작했다.
그렇지만 덩치는 참을 생각이 없었다. 다른 이들은 자신의 덩치만 보고도 기가 눌려 쉽게 접근하지 못했다.
한데 준혁은 180센티가 넘기는 해도 호리호리한 체구 때문에 그다지 커 보이지 않았다. 그런데 덩치가 보기에 별로 대단해 보이지도 않는 이가 대들자 참을 수가 없는 것이었다.
또한 상대방은 자신이 알기로는 이제 2학년이 된 이였다. 동아리 활동 같은 걸 전혀 하지 않는 준혁인지라 덩치는 지레짐작으로 선배가 아닐 거라 생각했다.
주변에 다른 사람들이라도 없으면 괜찮겠지만 분위기가 심상치 않다는 것을 느낀 학생들이 저마다 휴대폰을 꺼내 들고는 촬영을 하고 있었다.
그랬기에 지금 상황에서 뒤로 물러나는 것은 그의 자존심이 용납하지 못했다.
“비켜 봐! 이 새끼, 눈 좀 봐. 난쟁이 같은 녀석이 올려다보니 목 아프냐?”
덩치는 자신을 말리려는 규준을 밀어내며 준혁에게 시비를 걸었다.
“뭐 해?”
준혁과 덩치로 인해 심상치 않은 분위기가 조성되고 있을 때, 금녀 구역인 공과에 맞지 않는 산뜻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어, 어?! 우리 공과대 여신, 유미잖아. 야∼ 정말 반갑다.”
“규준이? 규준이 맞지? 야, 진짜 반갑다.”
긴 생머리를 찰랑이며 공과대와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 미녀가 사뿐사뿐 걸어오자 심상치 않은 분위기가 풀어지기 시작했다.
“덩치! 여전히 산만 하네. 그보다 뭐 하는 거야? 다들 뭔가 찍고 있네?”
“아, 아니, 그게…….”
공과대와는 전혀 맞지 않는 미녀의 등장에 덩치가 머뭇거렸다. 단정한 외모에 사근사근한 말투 하나하나가 모두 남학생들의 애간장을 녹이는 그녀였다.
심지어는 그녀와 미팅을 하기 위해 공과대로 미팅 제안이 들어 올 정도로 유미는 학교 내에서 자랑할 만한 미모를 갖고 있었다.
그랬기에 함부로 대할 수가 없었다. 그녀에게 조금이라도 성질을 부렸다간 선배들의 시선을 감당해 낼 수가 없을 것이다.
작년에 그녀가 어학 연수를 간다고 하자 송별회에서 몇 번이나 고백을 받았고, 결국 몇 명이나 좌절을 맛보게 만든 전설의 존재였다.
나름 연락을 주고받던 이들은 그녀가 이번 학기에 복학한다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오늘 만나게 될 것이라고는 생각도 못한 상태였다.
“야, 봐줄 테니까 그만 가 봐라.”
덩치는 유미의 등장에 얼른 준혁에게서 신경을 껐다.
“무슨 일인데?”
영문을 모르는 유미는 다시금 규준에게 묻기 시작했다. 그런 그녀로 인해 주변 분위기는 급 밝아졌다.
하지만 그런 분위기를 준혁이 다시금 싸늘하게 바꾸어 놓았다.
“죄송하지만, 사과는 받고 가야겠는데요.”
여전히 분노가 가시지 않은 듯 날이 서 있는 준혁의 목소리에 적지 않은 이들이 몸을 작게 떨었다.
“이봐요, 그만하고 가세요. 저희들도 잘못하긴 했지만, 그쪽 고양이도 잘못한 게 있어요.”
이번에는 규준도 나서고 말았다. 공과대의 여신인 유미 앞에서는 절대 좋지 못한 모습을 보이거나 듣게 하지 말라고 선배들에게 수없이 들은 상태였다.
그랬기에 자신의 친구인 덩치도 좋게 상황을 끝내려 했지만 준혁이 다시금 상황을 악화시키자 규준은 역시 화를 낼 수밖에 없었다. 그들의 눈으로 보이는 나나는 단순한 고양이로밖에 보이지 않았으니.
하지만 성품 자체가 나쁘지 않은 규준은 단지 머리를 깎았다는 것만으로도 인상이 몇 배나 험악해지는 것을 알고 있기에 그것을 무기로 인상을 찡그리며 준혁을 내쫓으려 하였다.
그런 규준을 보며 준혁은 살짝 웃으며 작게 중얼거렸다.
“못 본 사이에 겁대가리를 상실했군.”
“응?”
규준이 자신도 모르게 몸을 떨었다. 왠지 모르게 어디선가 들어 본 듯한 목소리와 분위기였다. 그리고 그 말을 듣자마자 이유 모를 두려움이 온몸을 감싸기 시작했다.
“야, 비켜 봐. 이 새끼가 보자보자 하니…… 끄악?”
쿠웅!
남자들은 돌연 나타난 유미를 휴대폰 동영상에 담기 위해 노력하느라 정작 중요한 장면을 찍지 못했다.
그랬기에 큰소리에 화들짝 놀라 휴대폰을 돌렸을 때에 그들의 휴대폰에 찍힌 것은 거품을 문 상태로 바닥에 등을 대고 있는 덩치와 그를 내려다보고 있는 준혁이 찍혀 있었다.
“어? 어어…….”
규준이 돌연 놀란 눈으로 준혁에서 삿대질을 하기 시작했다.
규준은 확실하게 볼 수 있었다. 단숨에 자신의 몸무게의 두 배는 더 될 법한 덩치를 매치는 준혁의 모습을.
그리고 그 순간 잠시 보인, 결코 잊지 못할 준혁의 옆모습을 말이다.
“앞으로 애들한테 건물 앞에서 함부로 담배 피지 말라고 전해라. 교수님들이 몇 번이나 말하다 보면 수업에 지장이 있으니까. 피지 않는 사람들에게도 피해가 가고.”
준혁이 규준을 바라보며 작게 말했다. 하지만 그것은 일종의 경고이자 명령이었다. 준혁의 말을 들은 규준은 훗날 자신도 그렇고 남들 역시 웃을 법한 행동을 취하고 말았다.
“충성!”
규준이 준혁을 보며 떨리는 목소리로 경례를 붙였다. 준혁은 그런 규준에게 다시금 경고의 말을 남겼다.
“뼈는 안 부러뜨렸으니 다음부터는 덩치 믿고 나대지 말라고 전해.”
말을 마친 준혁이 나나를 향해 손을 뻗자 나나는 가뿐하게 몸을 띄워 준혁의 품에 안겨 들었다. 그리고는 뒤도 안 돌아보고 자리를 피하는 준혁이었다.
준혁이 자리에서 떠나자 뒤늦게 규준이 친구들에게 손짓을 해 기절한 덩치를 옮기기 시작했다.
“아는 사람이야?”
준혁이 사라지자 친구들이 하나둘 규준에게 모여들며 묻기 시작했다.
“도깨비야, 도깨비. 서, 설마 같은 학교였다니…….”
규준이 상당히 떨리는 목소리로 말을 했다. 오늘 하루 술 마시면서 해야 할 말이 상당히 많아졌다는 것을 규준은 깨달았다.
* * *
뒤에서 무슨 대화가 오가고 있든 말든 준혁은 신경 쓰지 않고는 태연하게 나나를 쓰다듬으며 집으로 돌아가고 있었다.
―냐앙, 잘했다냥.
“별일이네? 칭찬도 다하고.”
―냥냥, 저런 못난 놈을 잘 처리해서 칭찬한 거다냥.
말은 그렇게 하였지만 나나는 준혁의 다른 면을 칭찬했다. 그것은 준혁이 덩치를 넘길 때 보인 마나의 컨트롤이었다.
다른 이들이 준혁이 흔히 말하는 상대방의 힘을 이용해 넘겼다고 떠들 수도 있지만, 나나가 본 모습은 달랐다.
몸을 움직인 것은 그가 한 것이 맞지만 가장 중요한 부분은 마나로 덩치를 단번에 넘겨 바닥에 메다꽂았다는 것이었다.
마나로 몸을 활성화시키기만 했다면 절대 칭찬하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준혁은 몸을 활성화시키는 것과 동시에 덩치의 몸을 마나로 조종했다.
덩치의 몸을 띄워 방향을 잡고는 다시금 마나를 이용해 몇 배는 되는 힘으로 바닥에다 내던진 것이었다.
거기에 남들이 의심하지 못할 정도로 완벽하고 자연스럽게 덩치를 자신의 힘으로 쓰러뜨린 것 같은 상황을 연출해 낸 상태였다.
―근데 그 녀석 정말로 괜찮을까냥?
“괜찮아. 그보다 오늘부터는 훈련을 할 수 있는 시간이 많이 줄어들겠네.”
―그만큼 더욱 열심히 하면 된다냥.
“하긴.”
―그보다 도깨비는 뭐다냥?
“그냥 옛날 별명.”
―별명냥?
“군대에 있을 때 장난을 좀 쳐서 그래.”
준혁은 과거 군대 시절을 떠올리며 작게 웃음을 지었다.
도깨비.
실로 오랜만에 들어보는 말이었다. 아직 이 세상에 대해 잘 모르는 나나로서는 그냥 단순히 장난을 쳤다고 생각하겠지만, 준혁이 말하는 장난은 나나가 생각하는 장난과 달랐다.
한국에 전해지는 도깨비는 두 가지 면을 보인다. 두려움을 상징하는 것과 함께 장난기가 많은 것으로. 준혁은 그 두 가지를 합쳐 놓은 도깨비로 불렸다.
“그보다 아이들 과외 시간도 조금 조정을 해야겠네. 자습 시간에 방해되지 않게.”
―냥냥, 그 자습이라는 것을 빠지고 싶어 한다고 하지 않았냥?
“그렇긴 하지만 아이들의 부모님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을 수가 있잖아.”
―나는 모르겠다냥. 그건 네가 알아서 해라냥.
“뭐, 그렇지. 오늘 조금 더 일찍 가서 대화를 나누어 봐야겠네.”
이제는 세 아이를 그룹으로 가르치기 시작한 준혁이었다. 다행히 세 사람 모두 이과를 지원했기에 함께 가르칠 수가 있었다.
아마 그렇지 않았다면 따로 가르치느라 남는 시간이 줄어들었겠지만, 다행히도 그런 일은 발생하지 않아 안도하는 준혁이었다.
아이들에게는 미안한 말이겠지만, 만약 그녀들로 인해 마법 수련 시간을 빼앗기기 되면 준혁으로도 달갑지 않을 것이었다.
준혁에게 있어 마법이라는 학문은 정말로 재미있고, 마나라는 것은 더없이 따듯한 것이었으니 말이다.
* * *
“수고했어.”
준혁이 은지의 방을 나서자 그녀의 어머니인 최신예 여사가 준혁에게 피로 회복제를 하나 건넸다.
“매번 고맙습니다.”
“호호호, 아니야. 네가 잘 가르쳐 줘서 은지나 다른 아이들 모두가 수학을 싫어하지 않게 됐는데 뭘. 과외비도 싸고 말이지. 거기에 영어도 상당히 잘 가르치는 것 같은데, 그것도 과외를 해 보지 않을래?”
“아직은 확실치가 않아서요.”
“그렇게 조금씩 무료로 알려 주면 고맙기는 하지만 우리도 미안해서.”
그녀가 말하는 우리란 은지의 친구인 지연과 하은의 부모들을 말하는 것이었다. 어려서부터 친한 세 사람이기에 부모들도 적지 않게 안면을 익힌 상태였다.
다른 부모들도 상당히 꼼꼼한 신예의 성격을 믿고 준혁에게 그룹 과외를 시켰는데, 그 뒤로 모의시험을 보면 항시 성적이 올랐다고 말하는 딸아이들을 보며 만족해하는 실정이었다.
거기에 그룹으로 시키기에 일단 개인 과외보다는 가격이 저렴했다. 그렇다고 대충 가르치는 것도 아니고, 꼼꼼하게 가르치니 그들의 만족도는 백 퍼센트를 뛰어넘고 있었다.
그렇게 조금씩 준혁의 실력을 알아 가자 과외비를 올려야 하는 것은 아닌지에 대한 말도 나오고 있는 실정이었다.
“괜찮아요. 제가 제대로 가르칠 상황이 되면 그때 말씀드릴게요. 아, 아이들은 숙제가 있다고 해서 조금 더 있다 간다고 했어요.”
“그래. 조심해서 돌아가렴. 수요일 날 보자. 기왕이면 같이 저녁 먹게 조금 일찍 와도 되고.”
“예. 신경 써 주셔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