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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화
제10장 묘족 레야(2)


유저들의 소곤거리는 모습을 본 드란은 그들에게 진심으로 말하고 싶었다.
‘게임 시작 한 후부터 계속 생간만 먹어 보세요. 당신이 그 맛을 알아? 차라리 똥을 퍼먹는 게 낫지.’
덜컹―
“어? 우와, 연예인인가?”
“진짜 예쁘다!”
머릿속의 말을 되새기며 배를 두드리던 드란은 유저들의 말에 간신히 무거운 몸을 움직여서 뒤를 돌아봤다.
‘예쁘긴 예쁘네.’
유저들의 말대로 방금 들어온 유저는 여성 유저로 머리는 짧은 흑빛 머리에 허리는 완전 개미허리였다. 또 그뿐인가? 여자의 눈빛에는 새침함이 어우러져 하나의 우아하면서도 도도함이 느껴졌다.
드란은 이제 다 봤으니 고개를 돌리려고 했으나, 차마 고개를 돌리지 못했다. 왜냐하면 방금 바라 본 여성 유저가 바로 자신에게 다가온 다는 점이다.
‘뭐, 뭐지. 바라보는 내 눈빛이 마음에 안 들었었나?’
드란이 어벙거리며 이것저것 생각을 하던 중, 여성 유저가 드란에게 물어왔다.
“합석해도 되겠습니까?”
“네, 뭐 좋으실 대로.”
참고로 식당에 자리는 넘치고도 넘쳤었다. 그런데 여성 유저가 드란에게 합석을 제안한 것은 다른 이유가 있어서일 것이다.
아니나 다를까, 여성 유저는 드란을 새침하게 쳐다보다가 자그맣게 말했다.
“당신. 인간이 아니군요?”
“…….”
갑작스럽게 물어오는 말에 드란은 잠시 당황한 표정을 짓다가 이내 표정을 풀며 대답했다.
“그게 무슨 말이시죠? 전 보시다시피 인간입니다.”
“아니에요. 당신은 인간이 아니에요.”
“그걸 어떻게 증명할 수 있고, 또 그것을 어떻게 안다는 거죠?”
“호호. 왜냐하면…….”
여성 유저는 말을 끊더니 드란에게 얼굴을 가까이 대서는 살며시 귓가를 간질이듯 말했다.
“저도 인간이 아니거든요.”
“……그럼 대체 뭐죠?”
드란의 표정에는 긴장한 기색이 느껴졌다. 앞의 여성 유저도 인간이 아니다. 그렇다면?
‘분명히 랜덤 종족으로 선택해서 히든 종족이 걸렸다는 것이지.’
우선은 여성 유저의 종족을 알아봐야 했다. 둔갑의 술은 땅굴 기지의 닥토가 웬만해서는 쉽게 알아낼 수 없는 고도의 기술이라고 했다. 하지만 저 여성 유저는 그것을 가볍게 간파해 냈다. 결코 얕볼 수 없다는 소리이다.
‘만약 저 여자가 나의 종족을 여기서 밝힌다면.’
그대로 무엇이겠는가? 참고로 이곳은 인간의 마을이다. 아무리 민첩성이 높은 드란이라지만 이곳에는 자신보다도 고렙인 유저도 많고, 또 좋은 장비를 갖춰 입은 유저도 적지 않다. 즉, 걸린다면 그대로 죽음을 맞이할 수밖에 없다는 소리.
드란의 눈이 째릿하게 변함과 동시에 여성 유저의 입술만 바라보았다.
“어머, 입술은 그만 보시고. 일단 밥 좀 먹죠. 물론 당신이 내주시는 거겠죠?”
“좋으실 대로.”

*

여성 유저가 밥을 다 먹고 나자 드란은 재빠르게 계산을 한 다음 여성 유저를 이끌고 마을 밖으로 나왔다.
“자, 어서 말해 보시지. 당신의 종족과 이름을 말이야.”
“호호, 이름은 위에 떠 있잖아요. 레이시아라고 말이에요.”
“웃기지 말라고. 가명 말고 진짜를 말해 달라는 거야.”
드란은 둔갑의 술 같은 몸을 변신시키는 마법을 쓸 경우, 가명을 정할 수 있다는 것을 안다. 여성 유저도 인간이 아니라고 했으니 십중팔구는 가명일 것이 분명하다.
“역시 구미호의 일족인 건가요? 제법이시네요. 그럼 소개하죠. 저의 이름은 레야. 종족은 묘족입니다.”
“묘족?”
묘족이라면 고양이 인간을 말하는 것인 건가?
하지만 그 전에 드란은 궁금한 것이 있었다.
“대체 어떻게 제가 구미호의 일족이라는 것을 알았나요?”
“호호, 간단해요. 당신, 이곳에 오기 전에 정신체를 소환했었죠?”
“정신체?”
“네, 영계의 정신체를 소환하셨었죠? 자고로 영계의 정신체를 소환해 낼 수 있는 종족은 오직 단 하나뿐이거든요.”
묘족인 레야의 말을 듣자 하니, 드란은 어느 정도 이해가 갔다. 고양이는 보통 영혼 같은 것에 민감한 동물이라고 들었다. 어떤 고양이들은 영감을 가지고 있을 정도라고 하니 말이다.
“그러면 이제 어떻게 할 것인가요? 싸울 생각이신가요?”
말과 함께 드란은 허리춤에 찬 리자드 언월도를 만지작거렸다. 여차하면 뽑을 준비태세를 갖추는 것이다.
“오해하지 마세요. 저는 그저…….”
“그저 무엇이죠?”
“함께할 사람이 필요했어요.”
“……응?”
“함께할 사람이 필요했다고요.”
반복된 레야의 말에 드란은 대충 이해가 되었다.
“혹시 파티를 하자는 건가요?”
“맞아요! 사실 몬스터 상태인 저를 받아 주는 곳은 얼마 없어요.”
“아까처럼 인간의 모습으로 변신하면 되지 않나요?”
“아니요. 그건 당신의 종족인 구미호의 일족 같은 변신에 특화된 종족들뿐이에요. 저 같은 묘족들은 상대방의 약점을 간파하거나 빠른 속도가 특화된 종족이고 말이죠.”
드란이 고개를 갸웃했다.
“그럼, 지금 하고 있는 인간의 모습은 무엇인가요?”
“간단해요. 잠시 힘을 감추어서 귀와 꼬리, 그리고 말하기는 뭐하지만 고양이의 수염을 잠시 없앤 거예요.”
“아…….”
레야의 계속된 설명에 드란은 대충 이해가 되었다. 즉, 묘족인 레야가 인간의 모습을 했다가는 묘족의 기술을 사용할 수 없게 된다는 소리이다. 인간도 아닌 묘족인 레야가 묘족의 기술을 사용할 수 없게 된다면 어찌 되겠는가? 당연히 아무런 필요가 없는 파티원이 될 뿐이다.
반대로 드란은 둔갑의 술을 사용한 상태에서도 구미호 일족의 힘을 사용할 수 있다.
그리고 드란 역시 둔갑의 술로 변화된 모습으로 동료들을 사귀기는 뭔가 찝찝했다. 사실 드란도 진정한 동료를 얻고 싶었다. 리베토 같은 동료들은 오직 자신의 겉모습만 보고 온 이들이다.
하지만 드란이 원하는 것은 내면을 보고 와 준 동료, 그러기 위해선 동료 역시 몬스터여야 한다.
드란의 시선이 레야에게로 향했다.
“좋아요. 함께 동료가 되지요.”
“감사드려요! 이제 저도 진정한 동료가 생기는 거군요!”
레야는 기분이 좋은 듯, 여우 눈을 하며 웃었다.

*

“우와, 이게 바로 구미호를 상징하는 꼬리로군요. 그런데 아직 3개인 것으로 보아서는 삼미호네요?”
레야는 드란이 삼미호란 것에 실망한 듯한 표정을 짓자 드란이 고개를 저었다.
“삼미호도 대단한 거예요. 적어도 생간 몇 천 개는 먹어야 할걸요? 그리고 사미호가 되려면, 무려 5천 개 가까이나 되는 생간을 먹어야 하니…… 으으, 생각만 해도 구역질이 치밀어 오른다니까요.”
“저, 정말 생간을 5천 개나 먹어야 한다고요?”
불에 굽거나 하는 간이 아닌, 피가 덕지덕지 묻어 있을 생간을 5천 개나 먹어야 한다는 소리에 레야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묘족 중에서도 중위급에 속하는 레야는 흑묘였다. 듣기로는 묘족 중에서 최상위는 백묘라고 한다.
물론 레야 역시 성장을 위해서는 죽인 몬스터의 생기를 빨아야 한다고 했지만, 생기는 그저 숨만 받아 마시면 되니, 생간보다는 약과이다.
“그나저나 묘족들은 전부 그렇게 되는 건가요?”
“호호, 왜요? 반하기라도 하셨어요?”
“그, 그건 아니지만.”
레야는 인간의 모습일 때도 그랬지만, 원래 모습은 묘족으로 변화되자 더욱 아름다워졌다.
제일 먼저 눈은 고양이 눈으로 변화되었고 고양이 귀와 꼬리, 그리고 수염이 나왔다.
하지만 무엇보다도 묘족인 레야를 아름답게 하는 것은 왠지 모르게 고양이에게서만 나오는 특유의 발랄함과 매력이었다.
괜히 레야를 보고 있자니 드란의 얼굴이 빨개졌다.
“호호, 귀여우셔. 그나저나 이제 어디로 갈까요? 이름 꽤나 있는 던전이나 사냥터에는 인간이 북적거리니 우리들은 들어가기도 힘들 텐데.”
“흐음, 일단 정보부터 수집해 보죠.”
“그럴까요? 그럼 잠시만 기다려 보세요. 정보 찾기에는 자신 있거든요. 던전으로 하나 알아보고 올까요?”
“네, 그러도록 하죠.”
레야는 잠시 로그아웃을 했고, 약 10분 정도의 시간이 흐르자 빛과 함께 다시 나타났다.
“발견했어요. 이 주위에 있는 던전 중 인기 없는 던전은 고블린 부족 마을로, 보스로는 홉 고블린과 고블린 헌터들이 각각 10마리씩이고 말이에요. 딱 하나 특이점이 있다면 영웅 몬스터로 고블린 킹 돌고라는 녀석도 있지만, 녀석은 웬만해서는 잘 안 나타난다고 하더라고요.”
‘고블린 킹 돌고?’
기억난다. 리자드맨 마을에 쳐들어와서 리자드맨 히어로인 하륵을 죽음에 가까울 정도로 몰아붙인 몬스터가 바로 고블린 킹 돌고였다.
물론 드란을 리자드맨 샤먼으로 오해한 나머지 도망을 쳐 버렸지만 말이다.
하지만 지금 생각해 봐도 돌고의 상황 판단에 따른 공격과 몸 그 자체가 무기로 가득한 돌고의 위력은 엄청났다. 만약 드란을 리자드맨 샤먼으로 오해하지만 않았다면 리자드맨 마을은 지금 존재하지 않을 수도 있었다.
“그런가요? 그런데 왜 고블린 부족 마을이 인기 없는 거예요? 보통 고블린들은 약한 몬스터라서 인기 있는 던전이 아닌가요?”
“그게 녀석들의 머리가 너무도 영악하다는 점과 특이 몬스터이면서도 보스 몬스터에 가까운 힘을 보여 주는 홉 고블린과 고블린 헌터들 때문일 거예요. 자고로 잡기가 힘들다면 인기는 없는 것이 보통이죠.”
“그럼 저희한테 딱이군요!”
인간들이 던전에 많이 있다면 몬스터 상태의 유저인 드란과 레야에게 불리하다. 하지만 인기가 없는 던전이라면 다르다. 인간 유저들의 숫자가 적으니 되려 반대로 드란과 레야가 이길 수도 있다는 소리이다. 아니면 아예 없거나 말이다.
레야의 설명을 다들은 드란은 레야와 함께 고블린 부족 마을 던전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역시나 인기가 없다는 것을 보여 주기라도 하듯 고블린 부족 마을의 입구 부분에는 단 한 명의 유저도 발견할 수 없었다.
“역시 사람이 단 한 명도 없네요. 자 그럼 들어가 볼까요? 드란 님?”
“좋아요. 레야 님.”
드란은 고블린들과 전쟁을 치러 본 경험이 있다. 그렇기에 드란은 고블린들의 습성을 어느 정도 알고 있다.
녀석들은 자신보다 약한 몬스터에겐 강하고 강한 몬스터에게는 약해지는 습성을 가지고 있으며, 숫자가 많으면 오우거한테 달려들 정도로 기고만장한 성격을 가지고 있다.
아니나 다를까, 묘족인 레야와 함께 고블린 부족 마을로 들어서자 대략 6마리의 고블린들이 끼에엑거리는 듣기 싫은 고함을 내지르며 달려오는 모습이 보였다.
“지긋지긋한 녀석들.”
드란은 말과 함께 인벤토리에서 고블린의 생간 하나를 꺼내 삼킨 다음, 빠르게 으적으적 씹어 댔다.
“바람의 술! 업그레이드!”
푸화아악―!
상급에 이른 폭풍과도 같은 바람의 술에 고블린들의 생간들이 덕지덕지 붙어 나갔다. 가속도가 붙어서인지 생간의 건더기들은 총알 같은 파괴력을 가지고 있다.
“끼에에엑―!”
바람의 술과 생간 건더기들을 피하지 못한 고블린 6마리 중 가장 앞의 2마리의 몸이 기관총에라도 맞은 듯 뻥뻥 뚫린 채 그대로 눈을 뒤집었다.
그 모습에 레야가 눈을 동그랗게 치떴다.
“대단하신데요? 그럼 이번에는 제 차례인가요? 간파!”
레야가 스킬 명을 외자, 동공이 수축되더니 한순간 앞으로 뛰쳐나갔다.
“캣 블레이드!”
스앙― 스앙―
묘족인 레야 역시 드란과 마찬가지로 속공 계열의 종족! 그렇기에 레야 역시 주로 크리티컬이 많이 뜨며, 가벼운 쌍검을 사용했다.
레야의 캣 블레이드에 명중된 1마리의 고블린의 목이 떨어져 나갔다.
“레야 님도 대단하신 걸요? 그럼 마무리는 제가 하겠습니다?”
드란이 말과 함께 앞발을 모아들었다.
이번에 사용할 술은 무척이나 특별하다.
“영계의 이여! 나의 부름에 나타나라! 영계 소환의 술!”
퍼엉―!
드란의 외침에 3개의 도깨비불이 등장했다.
[우리의 주인이여. 무엇을 원하는가?]
“고블린들을 해치워!”
[죽이는 것을 원하는가? 종속을 원하는가?]
“종속?”
[우리가 몸에 들어가서 잠시 조종하는 것을 말하지.]
도깨비불의 말에 드란이 어리둥절한 표정을 짓다가 대답했다.
“그럼 한 번 종속이라는 것을 해 줘.”
[알았다.]
도깨비불 3개는 말과 함께 도망치는 3마리의 고블린들에게 돌진해 들어갔다.
“끼에엑! 살려 달라!”
도망치는 고블린들이 발광을 떨어 댔지만 도깨비불의 속도보다 빠를 수는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