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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야간 자율 학습.
대부분의 학생들이 하기 싫어도 억지로 남아야 하는 상황에 놓인 고등학교 생활이지만 모두가 그런 것은 아니었다.
“오늘은 뭐 할까?”
“글쎄? 요즘에는 재미있는 일이 별로 없단 말이야.”
“그렇지? 그보다 2반에 윤섭이라는 애, 꽤 괜찮지 않아?”
“너, 그런 타입이냐? 너무 우락부락하지 않아?”
“에이, 그래도 얼굴 제법 되고, 몸도 좋을 거 아니야. 킥복싱 한다는데……. 넌 어떻게 생각하냐, 벙어라?”
한참 꾸미기 좋아할 법한 나이이긴 하지만 그 누가 보더라도 노는 아이라는 것을 알아차릴 만큼 몸에 달라붙은 짧은 치마와 심할 정도로 진한 화장. 전혀 학생 같지 않은 모습의 두 여고생은 돌연 자신들의 뒤를 조심스럽게 따라오는 이를 돌아보며 말했다.
“야, 벙어리라고 하면 말을 못하잖아. 그냥 찌질이라고 해. 그보다 너, 요즘 너무 조금 갖고 오는 거 아니야? 잘해 줬더니 눈에 보이는 게 없나 보네?”
주변에 듣는 학생들이 있음에도 두 여학생은 뭐가 그렇게 좋은지 고개를 푹 숙이고 자신들의 뒤를 쫓는 여학생을 괴롭혔다.
그러나 괴롭힘당하는 여학생을 돕는 이는 아무도 없었다. 이젠 이미 일상적인 일이었고, 두 여학생을 건드려 봤자 자신들에게 득이 될 일은 없다고 판단했다.
“나 새 매니큐어 좀 사고 싶은데, 니 엄마한테 부탁해서 친구들과 쇼핑을 한다고 말해.”
짧은 몸에 통통한 몸매를 가진 여학생의 말에 그녀들의 뒤를 따르던 소녀, 지혜는 걸음을 멈추고는 몸을 작게 떨기 시작했다.
“나도나도. 나도 하나 갖고 싶은 향수 있어. 친구 좋다는 게 뭐니. 야, 너 뭐 해?”
뒤늦게 자신들을 따르는 지혜가 걸음을 멈추었다는 것을 알고는 두 여학생이 신경질적으로 그녀에게 다가섰다.
“뭐 하냐고!”
“안 들려? 이제는 귀까지 먹은 거야?”
두 여학생이 지혜의 양쪽에서 재잘거렸다. 지혜는 두 학생의 말에 점차 몸에 힘이 빠지는 것과 함께 어지러움을 느꼈다.
재잘거리는 뾰족한 목소리도 마치 늘어진 테이프 같이 들려왔다.
듣고 싶지 않은 말.
같이 있고 싶지 않은 이들.
지쳐 버린 그녀의 몸이 결국 비틀거리며 앞으로 쓰러졌다.
‘아프겠지? 아플 거야.’
점차 가까워지는 바닥을 보며 지혜는 단순히 한순간에 느껴질 바닥과의 충격이 아닌, 그 이후 자신에게 다가올 보복에 두려움을 느꼈다.
처억.
하지만 지혜가 느낀 것은 바닥의 차가운 한기가 아니었다.
잊혀지지 않는, 실로 오랜만에 느껴보는 따뜻한 온기.
“괜찮아?”
“아아…….”
지혜는 자신의 몸을 지탱해 주고 있는 이의 얼굴을 보며 자신도 모르게 편안하게 그의 품에 안겼다. 기대는 했지만 이루어지지 않을 거라 생각한 만남이 마치 꿈만 같이 이루어진 것이었다.
지혜가 힘겹게 입을 달싹이며 자신을 안아 준 이만이 들을 수 있게 말했다.

* * *

준혁은 자신의 품에 안겨 든 지혜를 보며 살짝 인상을 찡그렸다.
“뭐야?”
“얘 왜 이래?”
두 여학생은 돌연 쓰러진 지혜와 갑작스럽게 나타난 준혁을 보며 인상을 찡그렸다. 그런 두 여학생의 말투에 준혁이 두 여학생을 바라봤다.
절대 좋아 보이지 않는 두 학생.
그와 함께 전보다 더 나빠진 것 같은 지혜의 몸 상태를 보자 그간 자신이 왜 그녀에 대해 걱정을 했는지에 대해 잘못된 짐작을 해 버렸다.
‘이런 일이 될 것을 알고 있었을 텐데…….’
아무리 은지나 그녀의 친구들이 돌봐 준다 하더라도 조금이라도 틈이 생기면 저런 불량 학생들에게 오히려 더욱 즐거운 기회를 주는 것과 같았다.
이 모든 게 자신의 실책이라 생각한 준혁은 눈앞에서 여전히 호들갑을 떨고 있는 두 여학생에게 낮게 말했다.
“오늘 밤 일찍 집에 들어가는 게 좋을 거야. 그렇지 않으면 마녀가 너희들을 찾아 갈 테니까.”
“뭐?”
“……?”
두 여학생은 의미 모를 준혁의 말에 그다지 좋아 보이지 않는 상태의 얼굴을 일그러뜨렸다.
“선생님!”
“와∼ 쌤! 응?”
두 여학생이 잠시 자신들보다 한참은 더 큰 준혁을 힘겹게 올려다보고 있을 때, 마침 은지들이 나타났다.
오늘은 과외가 있는 날이었고, 인근에 살고 있는 세 소녀였기에 다 같이 나오는 그녀들을 보며 준혁이 살짝 손을 흔들어 주었다.
세 소녀는 전혀 뜻밖의 장소에 있는 준혁을 보며 활짝 웃으며 다가왔지만 그것도 잠시였다. 준혁과 대치하고 있는 두 여학생을 보자 세 소녀가 거북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그런 표정은 준혁의 품에 있는 지혜로 인해 더욱 커졌다. 애초에 관계가 없었다면 몰라도 준혁으로 인해 세 아이 역시 지혜와 인연이 생겨 버렸다.
세 아이는 적지 않은 인맥을 자랑하는데다 확실치는 않아도 그간 보아 온 것과 눈치가 있었다.
그랬기에 조금은 늦었지만 지혜를 도와주기 위해 노력을 했지만 큰 문제점이 하나 있었다.
자신들보다 수가 많은 불량 학생들이 문제가 아니었다. 정작 피해자인 지혜가 문제였다. 그녀가 은지들을 따르지 않는 것이다.
그래서인지 세 아이는 지혜를 제대로 도와주지 못했고, 다시 지금과 같은 일이 생겨난 것이다.
“너희들 원조 교제하냐? 제법 고상한 척은 다 하더니 그런 짓이나 하네?”
“흐응∼ 원래 저런 애들이 더하는 법이잖아.”
두 여학생은 조금은 긴장된 표정으로 적개심을 가득 담아 지연을 노려봤다. 그녀들에게 있어 지연은 사는 세계가 정반대인 인물이었다.
“그따위 말이나 내뱉는 너희들이 더 의심스럽지. 나 니들이 하는 짓이나 여러 가지 좋은 것들을 좀 갖고 있는데, 그렇게 나와도 될까? 그전에 내 오빠가 누군지는 알지?”
“또 오빠 타령이네. 그 오빠만 믿다가 언젠간 된통 당할걸?”
“할 수 있으면. 아, 그리고 경고차 말해 두는 건데, 더 이상 지혜를 건들지 마. 만약 한 번만 더 건드린다면 그땐 가만히 있지 않을 거야. 미희, 너 알지? 나랑 같은 중학교 나왔으니까. 내 성격이 어떤지 말이야.”
“내, 내가 겁먹을 줄 알아?”
“말을 더듬는 걸 보니 벌써 겁먹은 것 같은데 말이야.”
“흥, 두고 봐! 너 반드시 후회할 테니까!”
미희라고 불린 여학생은 자신의 주변으로 모아지는 시선을 느끼자 서둘러 자리를 피했다. 좋지 않은 생활을 하며 적지 않게 남들의 시선을 받았지만, 자신을 지켜 줄 이들이 없는 지금은 그런 시선을 받아 내기가 조금 힘든 상태였다.
“삼류 악당들도 그런 말은 하지 않겠다. 메롱이다!”
지연은 짧은 치마로 인해 제대로 뛰지도 못하는 여학생들을 보며 혀를 날름거렸다.
“가요, 선생님.”
혀를 날름거리는 지연을 뒤로한 채 하은이 언제나 보여 온 무표정한 얼굴로 준혁을 이끌었다. 준혁은 묘한 박력이 느껴지는 하은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그녀들은 보지 못했다, 끌려가면서도 무언가 확고한 의지를 다잡은 것 같은 준혁의 표정을 말이다.
준혁이 어떤 의지를 다잡은 것인지는 세 소녀도, 도망치듯 자리를 피한 두 학생도 알지 못했다.


8. 견습 마녀와 꿈


―아직 한 번도 해 보지 않은 마법과 물품들이다냥. 괜찮겠냥?
“실전을 통해 익히는 수밖에.”
―네 마음이 어떤지는 잘 모르겠다냥. 단지 단 한 번 구해 준 것인데 왜 그렇게까지 하는지 모르겠다냥.
“솔직히 나도 잘 모르겠어. 하지만 계속 신경이 쓰여서 이대로 있다가는 제대로 된 훈련을 할 수가 없어.”
―그건 옳은 말이다냥. 안 그래도 무재능인데 집중까지 못한다면 말 그대로 끝이다냥. 그러니 확실하게 처리해라냥.
“응!”
―좋은 모습이다냥. 마녀는 한 번 노린 것은 절대 포기하지 않는다냥. 너도 그런 것을 본받아야 한다냥.
나나의 말이 어떻게 보면 좋지 않은 말임을 느꼈지만 준혁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고개를 끄덕이는 준혁의 손에는 여태까지 그가 만져 보지 못한 두 가지 물품이 들려 있었다.

* * *

반복적인 학교 생활에 질린 이탈자가 된 불량 학생들은 그저 그 순간만을 즐겼다.
어른과 비슷하게 놀고 싶다는 생각에 술과 담배 등의 행동을 스스럼없이 하는 그들은 오늘도 어김없이 방탕한 생활을 즐겼다.
대부분의 불량 청소년들이라면 길가의 한구석에 숨어서 그런 짓을 하겠지만, 모두 다 그런 것은 아니었다.
아지트.
그들에게는 그런 장소가 있었다. 언제부터인지는 모르겠지만, 버려진 창고는 그들에게 있어 더없이 좋은 아지트였다.
버려져 있던 물품들을 하나둘 모아 놓은 상태였기에 불량 청소년들에게 있어 더없이 편안한 장소였다.
그랬기에 창고의 이곳저곳에는 술병이나 버려진 담배 꽁초들이 나뒹굴고 있었다.
“아, 맞다. 야, 잠깐만 집중해 봐.”
한 여학생이 서로 떠들고 있는 학생들을 불러 모았다. 조금은 귀찮다는 표정과 궁금하다는 표정들이 섞여 있었다.
그런 학생들의 공통점이라면 모두 술기운으로 인해 얼굴이 살짝 붉어져 있다는 것이었다.
“뭔데? 빨리 말해 봐.”
“지연 패거리 있잖아.”
“아, 걔들이 왜?”
상당한 인기를 얻고 있는 지연이었고, 그런 그녀와 같이 다니는 은지나 하은 역시 적지 않은 인기가 있었다.
그랬기에 창고에 모여 있는 학생 모두가 지연의 이름이 나오자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좋아하는 사람은 남학생들뿐이었다.
남학생들이 좋아해서 그런지 여학생들은 그다지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눈빛으로 말을 꺼낸 여학생을 바라봤다.
“어떻게 좀 하자. 너무 나대지 않아? 지 오빠나 자기 좋아하는 애들 믿고 너무 설치잖아.”
“하긴 틀린 말도 아니지. 푸우.”
한 남학생이 술기운으로 인해 길게 숨을 내뱉으며 동의했다.
“어떻게 할까?”
“그냥 간단하게 끌고 와서 사진이나 좀 찍자. 지네 오빠가 있다고 해도 일단 일이 터지고 나면 멋대로 움직이지도 못할걸?”
“내가 먼저 먹을 거다.”
“미친놈. 아주 여자에 미쳤어. 내가 먼저다, 새꺄.”
한 남학생이 나서자 주변에서 다른 남학생들도 서로 나서며 창고 안은 욕설이 나돌기 시작했다. 거침없이 음담패설을 내뱉는 그들이 정말로 청소년들이 맞는지 의심이 들 만한 상황이었다.
술에 취한 학생들은 평소보다 심할 정도로 이성을 잃었기에 그들의 행동은 더욱 과격했다.
하지만 그때였다.
팍! 퍼벅! 팡!
“꺄악!”
“뭐, 뭐야?”
재주껏 건전지와 백열전구를 이용해 만들어 놓은 작은 등들이 줄줄이 터지며 꺼지자 커다란 창고 안에 있던 학생들이 놀라 소리를 질렀다.
“갑자기 불이 왜 꺼져? 누구 라이터 갖고 있는 놈!”
모두가 갖고 다니는 것이긴 하지만 술을 마시면서 담배를 피우는 바람에 이곳저곳에 던져 놓은 상태였다.
이미 날도 어두워진데다 주변에 아무것도 없는 장소에 지어진 창고였기에 더욱 어둡게 느껴졌다. 학생들을 비틀거리는 몸으로 힘겹게 라이터를 찾기 시작했다.
중간중간 부딪쳐 쓰러지는 학생들의 비명 소리가 여기저기서 튀어나왔다. 시간이 지나 어느 정도 어둠에 익숙해지자 한 학생이 바닥에 떨어져 있는 라이터를 찾을 수 있었다.
“내가 찾았다, 이것들아.”
주변에 크게 소리를 친 남학생은 막 라이터를 켜기 직전, 손을 멈출 수밖에 없었다. 이미 주변은 밝아져 있는 상태였다.
전구가 켜진 것인지 주변이 은은하게 밝아져 라이터를 켤 필요가 없었다.
“에이 썅! 괜히 찾았잖아.”
힘들게 라이터를 찾은 자신의 행동이 헛고생이 됐다는 생각에 짜증나는 기분을 달래기 위해 담배를 찾기 시작했다.
“야, 나 담배 좀 줘.”
자신은 힘들게 바닥을 기며 라이터를 찾았는데 다른 애들은 모두 멍하니 서 있는 모습에 짜증 섞인 목소리로 옆에 있던 친구를 흔들었다.
천천히 흔들린 학생의 고개가 돌아섰다. 아니, 그 학생을 중심으로 밖을 바라보며 둥글게 서 있던 소년, 소녀들이 고개를 돌렸다.
그리고는 시작되었다.
공포스러운 마녀의 장난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