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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귀찮은 방법을 선택했다냥.
“내 마나가 별로 없잖아. 그보다 말 걸지 마. 이거, 어렵단 말이야.”
처음으로 마녀의 빗자루를 탄 준혁은 바짝 긴장한 상태였다. 애초에 비행 마법이라는 것은 현재의 준혁으로서는 사용이 불가능한 것이었다.
어려운 수식을 떠나 마나 자체가 적었기에 비행 마법은 불가능했다. 하지만 빗자루에 걸려 있는 마법과 마나 덕분에 준혁은 현재 어정쩡한 자세로 빗자루에 앉아 하늘을 날고 있었다.
불량 청소년들이 정신없이 술을 마시고 있을 때를 이용해 자신이 계획한 준비를 끝마친 상태였다. 이제 시작만 하면 되었다.
―하늘에 떠 있다고 너무 떨지 마라냥. 네가 생각하는 것과는 다르게 이 빗자루는 내가 있던 곳에서도 별로 없는 아주 귀중한 거다냥. 조심해서 다뤄야 한다냥.
“그런 걱정은 안 해.”
―그럼 양심에 가책을 느끼는 것이냥?
“그것도 좀 아니고, 첫 실전이라 그런 거야. 누군가에게 마법을 사용한 적은 한 번도 없으니까.”
―평소 하던 대로만 해라냥. 오히려 너무 신경을 쓰면 마나를 컨트롤하는 데 이상이 생길 수가 있다냥.
“응. 그럼 시작할 테니까. 조용히 있어.”
나나는 준혁의 말에 불만 하나 없이 입을 다물었다. 그리고는 조용히 준혁을 감시하듯 바라봤다. 잠시 나나의 시선을 받던 준혁이 조용히 노래를 부르듯 주문을 읊었다.
“귀여운 장난꾸러기 정령아, 잠자는 악동들아, 마녀인 나와 놀자. 내가 원하는 꿈을 너희들의 장난으로 물들여라!”
준혁의 낭랑한 목소리와 함께 창고 주변의 준혁이 설치한 마법진에서 빛이 뿜어져 나오기 시작했다.
불량 청소년들에게는 실로 지옥과도 같은 밤의 시작을 알리는 신호였다.
* * *
미희는 주변의 웅성거림에 짜증난다는 듯이 눈을 떴다.
“뭐야, 정말! 시끄러워서 잠을 못 자겠네!”
뾰족한 미희의 목소리에도 주변의 웅성거림은 여전히 사라지지가 않았다. 성질이 난 미희는 매서운 눈으로 주변을 둘러봤다.
주변을 둘러보는 미희의 눈에는 들어오는 것은 여러 무리의 여학생들이었다. 한 무리가 아니었다. 두세 명씩 미희를 중심으로 어느 정도 거리를 둔 여학생들이 자신을 힐끔거리며 무언가를 열심히 떠들고 있었다.
미희는 자신이 소리를 질렀음에도 아무런 변화가 없는 여학생들에게 다가갔다. 그녀에게 세상에 두려운 것이라고는 전혀 없었다.
자신에게는 힘이 센 친구들이 많았으니까.
하지만 이상했다.
“뭐, 뭐야?”
분명 자신의 다리는 분주하게 움직이며 앞으로 나아가고 있는데 전혀 가까워지지가 않았다.
“거기 서!”
자신이 달려가고 있음에도 전혀 가까워지지 않는 학생들을 보며 멈추라고만 할 뿐, 정작 중요한 사실은 알아채지 못했다.
“헉헉헉, 아이 썅!”
불편한 치마와 좋지 않은 심폐기능 탓에 미희는 금방 멈추어 서서 숨을 몰아쉬었다.
그러면서 자신이 알고 있는 욕이란 욕은 다 뱉어 내기 시작했다. 그렇지만 여전히 다른 애들은 그녀를 힐끔거리며 뭐라 말을 주고받아 미희의 기분을 더욱 나쁘게 만들고 있었다.
이제는 달릴 기력도 없는 미희가 자신을 힐끔거리며 말을 주고받는 애들을 한동안 노려봤다. 그러자 조금씩 그녀들이 하는 말이 들리기 시작했다.
‘너도 들었어? 쟤네 부모님 자기 부모가 아니라는 거?’
‘입양이야?’
‘어머, 너 몰랐어? 말하지는 마. 괜히 내가 알려 줬다고 하면 지 혼자서는 아무것도 못하면서 애들 몰고 오니까. 그러니까 어떻게 된 거냐 하면…….’
“야! 입 다물어!”
한 학생이 자신에 대해 이야기를 하려고 하자 미희는 지친 몸을 벌떡 일으키며 다시금 학생들을 향해 달려들었다.
하지만 여전히 거리는 좁혀지지 않았다. 결국 멈춰 선 미희는 한 학생이 하는 말을 고스란히 듣게 되었다.
‘부모가 이혼을 하면서 아버지 쪽으로 간 거 같은데, 다시금 재혼하더니 이번에는 어머니 쪽으로 갔다는데? 걔한테는 말 그대로 피도 안 섞인 사람한테 간 거야. 말 그대로 눈치 보면서 사는 거지. 근데 전에 보니 부모는 다 좋은데 저년만 저러는 거더라고. 괜히 무언가 있는 척하고, 발랑 까진 것들이랑 돌아다니는 것부터 시작해서…… 애휴∼ 내가 부모라면 당장 내쳤을 거다. 피도 안 섞인 자식을 잘 먹여 주고 키워 주는데 저런 짓이나 하고 다니고. 아, 맞다. 그것도 있다. 쟤들 패거리에서도 쟤는 별로 대우도 못 받는다던데? 아마 조금만 더 나대다가는 분명 끝장날걸?’
‘정말? 나도 들어 본 것 같기는 같다. 연지가 엄청 싫어한다며? 서로 뒤에서 까기 바쁘다던데?’
‘나도 들은 적 있어. 쟤……!’
“그만! 한 번만 더 입을 놀리면 당장 찢어 버린다!!”
미희가 다시금 뾰족한 목소리로 외쳤다. 하지만 그녀의 외침에도 아이들의 입은 멈추지 않았다. 마치 그녀의 목소리는 들리지도 않는다는 듯이.
그 무리의 학생만이 아니었다. 조금씩 주변에 있는 다른 학생들의 말이 들려오자 그들 역시 하나부터 열까지 그녀의 숨겨진 과거에 관한 이야기로 대화를 나누기 시작했다.
있는 힘껏 달려도 좁혀지지 않는 그들을 쫓는 것은 애초부터 무리였다. 미희는 결국 그 자리에 무너지듯 주저앉았다. 그런 그녀의 근처로 조금씩 대화를 나누던 이들이 가까워졌다.
하지만 이미 미희에게는 일어나서 그녀들의 멈춰 세울 힘이 없었다. 어느새 자신만이 알고 있던 비밀이 하나둘 주변에서 들려왔다.
어떻게 안 것일까?
누가 알려 준 것일까?
자신과 어울리는 이들에 대한 의구심이 하나둘 생겨나기 시작했다. 전혀 없던 소문부터 시작해 자신의 부끄러운 치부가 들춰지자 미희는 결국 그 자리에서 완전히 무너져 내렸다.
귀를 막고 몸을 웅크렸다. 그렇지만 학생들의 소곤거리는 작은 말소리는 어김없이 그녀의 손을 파고들어 귓속으로 들어왔다.
“그만…… 그만! 그만! 그만! 그마아아아아안!!”
미희는 결국 소리를 지르며 벌떡 몸을 일으켰다.
덜컹.
미희가 몸을 일으키자 돌연 무언가가 쓰러졌다.
“뭐야! 김미희, 내가 수업 시간에 적당히 자라고 했지!”
“어어?”
미희는 자신을 보며 화를 내는 선생을 믿기지 않는다는 눈으로 바라봤다. 그리고는 주변 역시 둘러봤다. 그녀에게는 너무나도 답답하지만 익숙한 1학년 5반의 교실.
그리고 교실에 있는 이들은 자신이 잘 알고 있는 같은 반 애들.
“꾸, 꿈이었나?”
“수업 중간에 잠꼬대하지 말고 당장 앉아!”
너무나도 현실적인 꿈이라 자신의 이마에 흐르는 땀을 닦으며 미희는 혼자 작게 중얼거렸다.
꿈이었다고, 다행이라고, 자신의 비밀을 아는 이들이 없다고 생각하며 스스로를 안심시켰다.
그렇지만 그 순간이었다. 미희의 귀로 청천벽력 같은 소리가 들려왔다.
“계속 서 있으면 네 부모에 관한 이야기를 다 털어 놓을 거야. 아니, 그건 너무 약한가? 다들 알고 있는 거겠지?”
“예∼”
“모르는 애들은 없을걸요?”
“조금 다른 비밀을 알려 주세요!”
미희는 주변에서 들려오는 말에 벌려진 입을 다물지 못했다.
“흐음, 그러면 그거는 알려나? 미희가 조금 먼 곳에서 전학 와서 아마 모르는 애들이 많을 것 같은데, 쟤가 처음에 고백을 할 때 말이야…….”
“대놓고 차인 거요?”
“그건 옆에 있는 중학교 애들도 알아요. 그러는 선생님은 쟤가 술 먹고 남중생 덮치려 했던 사건은 아세요?”
“그건 내 아들도 아는 이야기다, 이 녀석아!”
교실 안이 금방 웃음바다가 됐다. 그런 웃음바다 속의 중심에 서 있는 미희는 한동안 아무 말도 못하고 멍하니 서 있었다.
“꾸, 꿈이야. 이것도 꿈일 게 분명해.”
“꿈이기는! 내 수업 시간에 그런 짓을 하면 재일이가 알려준 비밀을 말한다.”
미희는 재일이라는 말에 움찔거렸다. 재일이는 학교의 짱이자 자신이 속한 패거리의 중심이었다.
“아니면 규석이가 해 준 것을 말할까? 아, 여자이니 역시 미지가 말한 것을 말하는 게 좋겠지?”
조금씩 선생과 학생들의 웃음소리가 커졌다.
하하하!
호호호!
웃음소리가 서로 울리고 울려 더욱 커졌다. 미희는 다시금 자신의 귀를 막았지만 웃음소리는 여전히 사라지지가 않았다.
“꿈이야! 빨리 깨. 빨리!”
다시금 학생들과 선생에게서 들려오는 자신의 비밀 이야기에 미희는 이것은 꿈이라며, 깨길 바라는 마음으로 간절하게 외쳤다.
그러나 그것은 또 다른 시작을 알리는 하나의 주문이었다. 주변이 어둠에 휩싸이며 미희는 깊디깊은 어둠 속으로 여행을 떠났다.
자신이 당했던 일.
자신의 비밀.
자신이 싫어하는 것들.
하나의 꿈에서 깨어나 또 다른 꿈을 겪을수록 그녀는 모든 것을 잊어 갔다.
심지어 자신이 꿈을 꾸고 있다는 사실조차.
* * *
―정말로 사악하다냥.
“뭐가?”
쓰러져 있는 학생들 사이에서 일어나는 준혁을 보며 나나는 고개를 흔들었다.
―꿈속에서 또 다른 꿈을 꾸게 하다니, 정말로 사악하다냥. 나름 마녀와 어울리기는 하지만 말이다냥.
“그다지. 이 녀석들이 한 짓을 떠올리면 별로 대단한 것은 아니잖아. 그리고 다들 지들이 당한 대로 돌려받고 있잖아. 힘으로 눌렀던 놈들은 힘으로 무너지고, 애들을 따돌리던 애들은 자신들이 그 입장이 되어 볼 뿐이야.”
―거기에 서로 내분을 조장하기도 했지냥.
꿈속에서 그 꿈의 주인공을 괴롭히는 이들은 서로 같은 패거리였다. 조금은 돌아서 괴롭히더라도 뒤에는 항시 그들이 있었다.
“마법이 잘 걸린 것 같아.”
이미 몇몇 학생들의 꿈을 엿보고 온 준혁이었기에 어렵지 않게 자신이 시전한 마법이 잘 성공했다는 것을 확신했다.
그리고 창고 주변에 설치되어 있는 마법진이 별다른 문제 없이 잘 움직이는 것을 확인하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이 정도면 충분히 아침까지 가겠다냥. 그런데 과연 이걸로 쟤네들이 정신을 차릴까냥?
“그다지 특별한 친분이 있는 것도 아니야. 그냥 끼리끼리 모인다는 말을 그대로 따라 주는 것일 뿐이야. 연대감이 없는 애들이지.”
―틀린 말은 아니다냥. 내가 살던 곳에서도 저런 녀석들은 있었다냥. 한 줌의 털만큼의 능력도 없는 녀석들이 말이다냥. 그럼 끝난 것 같으니 가자냥.
“그래도 지켜봐야 하지 않을까? 누가 와서 잘못 마법진이라도 건들면…….”
―마법진은 쉽게 부서지거나 바뀌지는 않는다냥. 이곳에는 마나가 적기에 오히려 마나가 일찍이 고갈되어 멈추는 한은 있어도 일반적인 이들로서는 우연에 우연, 또 우연이 겹치지 않고서는 절대 마법진을 바꿀 수 없다냥. 그러니 걱정 말아라냥.
“그렇긴 하지만 이것도 나름 정신 계열 마법인데…….”
―그렇게 위험하다고 느끼는 마법을 어정쩡한 실력으로 펼칠 생각을 하냥!
“…….”
나나의 말에 준혁의 입은 조개라도 된 듯이 꾹 닫혀서는 열리지 않았다. 만약 자신이 마법을 사용하는 것에 있어 조금이라도 실수를 한다면 엄청난 일이 벌어질 수도 있었다.
―이 세상에는 마나가 적으니 네가 생각하는 그럴 일은 절대 없을 거다냥. 그러니 걱정 말거라냥.
자신의 생각을 읽은 것 같은 나나의 말에 준혁이 다시금 움찔거렸다.
―어서 가기나 하자냥. 졸립다냥.
“알겠어.”
스승인 나나의 말에 결국 준혁이 고개를 끄덕이고는 빗자루에 올라탔다.
“으음.”
―조심해서 몰아라냥. 너는 아직 빗자루를 잘 다루지 못하니 잘못하다가는 떨어져 죽기 십상이다냥.
“알았어. 집중하게 그만 좀 떠들어.”
―알겠다냥. 그리고 일을 끝냈으니 이제 제대로 마법 공부해라냥. 너는 멍청해서 집중이라도 하지 않으면 제대로 배우지도 못한다냥!
“쳇.”
툴툴거리는 준혁과 나나를 태운 빗자루가 천천히 허공으로 떠올랐다.
“아, 맞다. 가면 써야지. 가져와 놓고 쓰지도 않았네.”
―정말로 특이한 인간이다냥. 됐으니 그냥 가라냥! 아직 네가 다루기에는 빗자루나 가면은 너무나 과한 물건이다냥! 한동안 빗자루 탈 생각은 꿈도 꾸지 말아라냥!
나나의 일갈에 결국 준혁은 가면은 써 보지도 못한 채 집으로 돌아와야만 했다.
그렇게 준혁과 나나가 떠난 자리에는 드물게 몸을 움찔거리며 끙끙거리는 신음 소리를 내는 불량 청소년들만이 창고에 남아 있었다.
스스로 지은 죗값을 현실이 아닌 꿈에서 받는다는 것을 아는 이는 세상에 그다지 많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