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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똑똑똑.
“지혜야, 괜찮니? 잠시 문 좀 열어 보렴.”
“…….”
지혜는 자신을 부르는 목소리에도 이불 속에서 나오지 않았다. 오히려 더욱 이불을 끌어안았다.
왜 자신을 힘겹게 하는 것일까?
저 목소리를 들을 때마다 짜증이 났다. 지혜의 머릿속에는 온통 그와 같은 생각밖에 없었다.
비난. 비판. 부정적인 생각.
사람이 사람을 싫어하는 데는 많은 것이 필요치 않다. 커다란 사건으로 인해 사이가 틀어질 수도 있지만, 그런 것보다는 대부분의 이들이 별다른 이유 없이 서로를 싫어하게 된다.
아주 작고 사소한 이유.
그러나 그것은 주변에서 볼 때의 관점이다. 그 상황에 놓인 당사자가 아니고서는 절대로 알 수가 없는 일이다.
아무리 넓은 세상이라 하더라도, 단지 비슷할 뿐이지 완벽하게 같을 수는 없었다.
지혜도 마찬가지였다. 남들이 보기에는 이해가 되지 않는 일이었다. 그녀는 항시 지혜를 언제나 사근사근하게 대했고, 조금이라도 더 돌봐 주기 위해 신경을 써 주는 인물이었다.
심각한 참견 또한 아니었다. 위로를 해 주려는 것이고, 감싸 주려고 하는 것이었다. 연장자로서 길을 알려 주려는 행동을 하는 여인이지만 지혜는 그런 새어머니를 거부했다.
“……엄마.”
지혜의 눈에 살짝 눈물이 고였다. 미치도록 그리운 이를 작게 소리 내어 부르는 지혜였다.
항시 따뜻한 미소를 지어 주던 자신의 어머니를…….
“으음.”
이불을 몸에 둘둘 말고 있던 지혜는 돌연 문밖에서 들려오는 소리에 자신도 모르게 어머니에 대한 생각을 멈추었다.
“지, 지혜야, 미, 미안한데…… 오, 오늘은 혼자 저녁을 차려 머, 먹으렴. 아줌마가 몸이 좋지 않아서……. 미안하구나.”
새어머니의 말에 지혜는 살짝 몸을 떨었다. 돌연 며칠 전에 있던 일이 떠올랐다. 하지만 지혜는 빠르게 고개를 흔들었다.
‘내 잘못이 아니야. 그날도 쓸데없이 참견한 저 여자의 잘못이야!’
생각은 그렇게 하였지만 지혜의 몸은 조금씩 떨리고 있었다. 자신의 잘못이 아니라고는 하지만 스스로 느끼는 죄책감으로 인해 어김없이 그녀의 머릿속으로는 그때의 일이 다시 떠오르기 시작했다.
그날도 어김없이 그녀에게는 평소처럼 지옥 같은 날이었다. 학교에서는 미희들에게 이리저리 끌려 다녔고, 수업이 끝난 다음에도 마찬가지였다.
조금 다른 점이 있었다면 평소 가던 곳이 아닌 곳으로 향했다는 것이 문제였다.
그리고 일은 그곳에서 터졌다.
사람이 제법 적어진 곳이었고, 학교와는 상당히 떨어져 있는 곳이었기에 불량 학생들은 어김없이 지혜를 괴롭혔다.
보이지 않게 한다고 하였지만 그런 그들의 행동은 교탁에 서 있는 선생을 상대로 학생들이 딴짓을 하는 것과 같이 빤히 다 보이는 행동들이었다.
그런데 그와 같은 모습을 보이지 말아야 할 사람에게 보이고 만 것이다. 그 사람은 항시 바쁜 아버지와는 다르게 결혼 후 집안일만 신경 쓰는 새어머니였다.
그 후로는 너무나도 당연한 일이 일어났다. 그녀는 지혜가 괴롭힘당하는 것을 보고는 앞으로 나섰지만 지혜를 구하지는 못했다.
오히려 가볍게 떠밀려 쓰러진 그녀는 주변 사람들이 이상해할 정도로 고통스러워했다. 고통스러워하는 그녀는 도움을 요청하지도, 지혜를 부르지도 않았다.
바보 같았다.
멍청하고 꼴도 보기 싫었다.
결국 지혜는 그런 그녀를 두고 미희들을 반쯤 끌다시피 그 자리를 피했다.
‘먼저 나선 게 잘못이야. 그냥 모른 척했으면 됐잖아! 그리고 나도 어쩔 수 없었어. 끌려간 거고, 설마하니 그렇게 될 거라고는 그 누구도 생각을 못했을 거라고!’
스스로도 변명이라는 것을 잘 알기에 지혜는 현실의 상황에 두려움을 느꼈다.
어릴 적에 버림을 받은 지혜로서는 사람들의 정에 한없이 굶주린 상태였다. 부모라는 것이 생김으로 인해 그런 욕심은 더욱 커졌다.
처음에는 그런 욕심 따위 없었다. 자신의 자리를 빼앗을 사람이 태어나지 못했기에 지혜는 자연스럽게 그들의 가족이 될 수 있었다.
아이를 갖지 못하는 부부였기에 지혜는 자연스럽게 딸이 될 수 있었다. 처음에는 조금 두려웠지만 곧 자신을 신경 쓰며 따뜻하게 대해 주는 그들에게 녹아 들어갔다.
마치 그들의 사이에서 태어났다고 느낄 정도로 진짜 가족이 되었다. 그러나 그런 행복은 짧은 순간에 불과했다.
세상일이라는 것이 다 그렇듯 비극은 한순간에 찾아왔다.
한 가정의 따뜻한 아내이자 어머니인 여인이 저녁 늦게 운동을 하고 돌아오던 중 뺑소니 사고로 병원에 가 보지도 못하고 그 자리에서 숨을 거두었다.
눈물도 나오지 않는 상황이었다. 언제나 따뜻한 미소로 두 사람을 반기던 미소는 그날을 기준으로 갑작스럽게 사라졌다.
다행히 가정이 파탄이 나거나 하지는 않았다. 지혜의 아버지는 삐뚤어지지는 않았다. 그의 부인만이 지혜를 아낀 것은 아니었다.
그 역시 지혜를 아꼈다. 부부였기에 지혜의 아버지 역시 자식을 갖고 싶었다. 그랬기에 그 역시 둘도 없이 소중한 지혜를 위해서 힘든 상황에도 묵묵히 일을 했다.
두 사람의 노력으로 인해 다행히도 가정은 조금씩 회복이 되어 갔다. 하지만 여전히 그녀의 빈자리는 크기만 했다.
결국 지혜의 아버지가 생각한 방법은 재혼이었다. 자신이 바쁜 일로 인해 제대로 지혜를 챙겨 주지 못했기에 적어도 그녀가 제대로 성장을 하길 바라는 마음으로 그는 힘겹게 재혼을 선택했다.
지혜를 위해서라고 하지만 그것은 작은 핑계일 수도 있었다. 그 역시 자신이 사랑하던 여인을 잃고 힘든 상황에 놓여 있었기에 기대고 싶다는 생각이 있었으니.
그러던 중 힘든 그에게 다가온 사람이 현재 지혜의 새어머니였다. 그에게 있어 그녀는 가뭄에 내리는 단비와 같았다.
전 부인 못지않게 따뜻한 심성을 갖고 있는 그녀였기에 지혜와도 잘 지낼 것이라 생각한 것이었다. 그러나 그것은 엄청난 착각이었다.
재혼이라는 말이 나오기가 무섭게 함께 살게 된 그녀는 지혜와는 좀처럼 가까워지지를 못했다.
그녀는 열심히 노력을 하였지만 지혜가 일방적으로 새어머니를 거부하였기에 일어난 일이었다. 지혜는 그녀에게 차갑게 대했지만 미안한 감정 따위는 없었다.
오히려 예전 어머니의 기억을 지우려 한다는 생각에 좋지 않게만 생각을 하였을 뿐. 그러나 얼마 전 일어난 일로 인해 지혜는 두려움을 느낄 수밖에 없었다.
단순히 새어머니가 쓰러진 것으로 일이 끝났다면 괜찮았겠지만, 최근 지혜를 더욱 불안하게 만든 한 존재 때문에 지혜는 새어머니를 마주 할 수가 없었다.
“흐윽.”
자신의 비참한 처지를 떠올리던 지혜는 결국 흘러나오는 눈물을 참지 못했다. 지독한 두려움과 함께 다시금 느껴지는 버림이라는 단어가 그녀의 머릿속을 맴돌았다.
그리고 떠오르는 살인자라는 단어.
자신의 자리를 빼앗을 새어머니의 몸속에 있던 작디작은 생명이 사라졌다는 것에 대한 두려움이 그녀의 몸을 다시금 떨게 만들었다.
한동안 몸을 웅크리고 있던 지혜는 갑작스럽게 자신의 손에 걸리는 종이를 눈앞으로 가져왔다. 왜 그랬는지는 모르겠지만, 너무나도 자연스럽게 벌어진 일이었다.
밖에서 들어오자마자 침대 속에 숨은 그녀였기에 몸을 움직이자 교복 속에서 종이가 빠져나온 것 같았다.
구겨진 종이를 지혜는 조심스럽게 펼쳐 보았다. 그리고 그곳에는 상당히 보기 좋은 글씨체로 두려움에 떨고 있는 그녀의 마음을 단번에 진정시키는 단어가 쓰여져 있었다.
겁먹지 마세요.
“……오빠.”
갈라진 목소리로 지혜는 힘겹게 중얼거렸다.
과거에 들어 본 뒤 그 누구에도, 심지어는 자신이 이와 같은 상황에 놓였음에도 한 번도 들어 보지 못한 말.
지혜는 두 눈을 꼭 감았다. 그리고는 속으로 구겨진 종이에 적힌 글을 따라 중얼거렸다. 그녀가 알지 못하는 사이 종이에서는 작은 빛이 살며시 흘러나와 그녀의 몸을 감싸 안았다.
힘들어 하는 그녀를 위로해 주듯 한없이 따뜻해 보이는 빛이었다. 빛이 사라지자 한동안 침대 속에 숨어 있던 지혜는 조심스럽게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녀의 눈빛은 달라져 있었다.
자신의 처지에 대한 두려움이 아닌, 확고한 의지를 가진 눈으로 이 세상에서 그 어떤 보석보다 아름답게 빛나고 있었다.
지혜가 자신의 운명을 대면하고 있을 때, 준혁은 모든 일을 끝마치고는 집으로 돌아와 자리에 누운 상태였다.
작게 콩콩거리는 심장이 쉽사리 진정되지 않았기에 오늘의 마법 수련은 뒤로 제낀 상태였다. 나나 역시 그런 준혁의 상태를 알고 있었기에 수련을 하지 않는 것에 대해서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단지 다른 걸로 준혁의 심기를 살살 긁을 뿐이었다.
―참으로 소심하다냥.
“이 세상은 법이 은근히 심각해. 걸리지 않으면 괜찮지만, 걸리면 골치 아파진다고.”
―그럼 앞으로는 조금 더 조심해서 행동해라냥.
아직 나나가 완벽하게 세상에 적응했다고는 생각하지 않는 준혁이었다. 과학의 발달을 통한 기계의 발달로 대부분의 휴대전화에 달려 있는 사진 기능은 실로 위험한 기능이었다.
―너무 소심하다냥. 됐다냥. 빨리 잠이나 자라냥.
“잠이 오지 않아.”
―애 같다냥. 할 수 없다냥. 그렇다면 간단하게 마녀 마을에 대한 이야기를 해 주겠다냥.
“옛날이야기?”
―옛날이야기는 아니다냥. 아마 시간대가 같다면 오늘도 일어났을 일이다냥.
“응응. 빨리 들려줘.”
준혁은 나이에 맞지 않게 나나의 말에 귀를 기울였다. 그것은 자신의 잠자리를 나나에게 빼앗겨 매일같이 준혁의 품에서 잠이 드는 백이 역시 마찬가지였다.
―냐앙∼ 우선 마녀들이 사는 마을은 내가 있던 대륙에서 금지로 지정된 장소다냥. 아주 음침한 곳이다냥. 물론 마녀들이 사는 곳은 조금 다르다냥. 그런 숲과는 전혀 다르게 아주 밝고 좋은 곳이었다냥. 마녀의 마을은 아침은 상당히 빠르게 시작된다냥. 너도나도 잠들어 있는 마녀들을 깨우기 위해 희생하는 마녀들이 있다냥. 자신들이 피곤한 상황에서도 그들은 매일같이 다른 마녀들을 깨운다냥. 그리고 일어나는 마녀들은 그런 마녀들에게 아침 인사를 해 준다냥.
나나는 조용히 눈을 감고 무언가를 회상하여 떠올리는 표정을 취했다. 고양이지였지만 그 표정을 지켜보는 준혁은 단번에 나나가 마녀의 마을을 그리워하고 있다는 것이 눈에 보일 정도였다.
쾅!
콰광!
콰과과광!
덜컥.
“야이 미친년들아! 내가 밤새 가며 마법 연구하지 말랬지!”
“젠리는 벌써 기절했다!”
“마녀 협회장! 저년들 자기 전에는 항시 다크 엔트에 묶어 놓자고 누누이 말했잖아!”
넓은 대륙에 있는 마녀들 중 몇몇을 제외한 대부분의 마녀들이 살고 있는 마을은 오늘도 어김없이 밤을 지새워가며 마법 실험을 한 마녀들의 실수로 인한 폭발이 하루의 시작을 알렸다.
그리고 언제나와 같이 폭발에 맞추어 나무로 된 창문을 연 마녀들이 거친 욕설을 내뱉었다. 하지만 욕을 먹는 마녀들의 대부분은 지친 체력과 폭발로 인해 정신을 놓은 상태였다.
그랬기에 폭발 소리에 놀라 일어난 마녀들만이 항시 피해를 입으며 상당히 이른 아침을 시작했다.
―아침에는 다들 서로 순번을 돌아가며 청소를 한다냥. 청소를 하는 마녀들은 일찍 아침을 열어 준 마녀들의 집 주변을 유독 깨끗하게 청소를 해 준다냥. 그리고 청소를 하지 않는 마녀들 중 요리를 좋아하는 몇몇 마녀들은 청소를 하는 마녀들의 식사까지 준비를 한다냥. 그녀들은 서로 다른 마녀들의 음식을 만들어 주기 위해서 가끔 다투는 일도 생길 정도다냥.
“잘 봐. 내가 오늘도 완벽하게 넣어 볼 테니까.”
팍!
한 마녀가 폭발로 인해 무너진 마녀의 집의 창문을 마법으로 가볍게 열고는 집 밖으로 튕겨져 나온 마녀를 마법으로 들어 올렸다.
그리고는 혀로 입을 가볍게 축이고는 자신이 열어 놓은 창과 기절해 있는 상태로 떠 있는 마녀를 번갈아 보기 시작했다.
“오늘도 제대로 못 넣는다에 내가 갖고 있는 엘프주를 건다.”
“좋아! 두고 봐라. 오늘 밤은 엘프주 파티다!”
주변에 나온 다른 몇몇 마녀들 역시 그와 비슷한 상황을 연출하고 있었다. 서로 폭발이 일어난 마녀들의 집 앞에 삼삼오오 모여 무너진 잔해들을 치우고는 한 명씩 마녀가 앞으로 나와 창을 열고는 기절해 있는 마녀들을 띄워 올렸다.
심지어는 집 안에 쓰러져 있는 마녀들을 끌어내는 일까지 생겼다. 그러나 이미 기절해 있는 그녀들은 자신들의 상황을 전혀 모르고 있었다.
그렇게 허공에 띄워진 마녀들은 곧 하나의 물건이 된 듯 빠르게 열려 있는 작은 창으로 날아가기 시작했다.
쿵!
“어우야∼ 저건 좀 아프겠다.”
“괜찮아, 괜찮아. 쟤 머리는 아마단티움보다 단단해서 별다른 문제 없어. 에이씨, 그보다 오늘은 내가 술을 대야 하잖아.”
“너는 양호한 거다. 저쪽에서는 옷 벗고 춤추기로 내기하고 있어.”
무너진 집 앞에 서 있는 마녀들은 곧 환호를 지르는 마녀들과 울상을 짓는 마녀들로 나뉘기 시작했다.
한참을 웃고 떠들던 마녀들이지만 그녀들은 곧 자신들 뒤에서 흘러나오는 냄새를 맡자 모두들 하나같이 표정을 굳혔다.
“오늘 실패한 지지배들은 누구냐? 내가 오늘은 특별히 손에 들어 온 수면 버섯을 가득 넣어서 만든 요리를 시식할 기회를 주마.”
과연 평범한 요리가 맞는지 의심이 될 정도의 독특한 색을 내는 음식을 한가득 안아 든 뚱뚱한 마녀가 활짝 웃으며 나타났다.
마녀 마을이 쩌렁쩌렁 울릴 정도로 크게 소리친 마녀의 목소리에 놀란 몇몇의 마녀들이 서둘러 빗자루를 타고 날아오르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것은 소용없는 행동이었다. 뚱뚱한 마녀는 마녀 마을에서도 알아주는 실력자였다.
“꺄악!”
“놔! 놓으라고! 난 아직 죽고 싶지 않아!”
“평생 잠들고 말 거야!”
거기에 날아오르는 마녀들을 붙잡는 것은 뚱뚱한 마녀뿐만이 아니었다. 주변에 있던 마녀들도 도주하는 마녀들을 가만두지 않았다.
결국 마녀들에게 붙잡힌 내기의 패배자들은 정체불명의 음식을 먹고 짧게는 삼 일, 길게는 열흘 이상을 누워 있어야만 했다.
“주변에 있는 너저분한 마녀들은 다 치운 보답으로 남은 음식들을 좀 주고 싶은데…….”
작게 중얼거리는 뚱뚱한 마녀였지만, 그녀의 목소리는 왠지 모르게 마녀 마을에 전부 들리는 것 같았다. 이미 그녀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주변에 있던 마녀들은 모두 모습을 감춘 상태였지만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