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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흠냥, 딱히 떠오르는 일이 없다냥. 나에게는 언제나 같은 일상이었으니 말이다냥. 대부분의 마녀들은 평소에 자신들의 전문 분야를 수련한다는 것 정도일까냥?
나나가 재미있는 일이 떠오르지 않는다는 듯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 모습이 사뭇 귀여웠다. 하지만 곧 무언가가 떠오른 것인지 입을 열기 시작했다.
준혁은 그런 나나의 말에 전혀 다른 그림을 그리며 상상에 빠져들었다.
―마녀들은 손님들을 정말로 좋아한다냥. 서로 마중을 나가지 못해서 안달이다냥. 다 늙은 것들이 조금 주책이다냥.
오늘의 보초 담당인 미시와 지엔은 조용히 마을의 눈치를 살피고는 숲의 한쪽으로 자신들의 빗자루를 들고 움직였다.
“안 들켰겠지?”
“응. 다들 조용했잖아.”
사악한 존재로 낙인이 찍혔지만 그와 달리 장수의 비결을 갖고 있다고 알려진 마녀들이었고, 소문에 걸맞게 긴 삶을 사는 마녀들의 관점에서 아직은 어린 소녀 축에 속하는 두 마녀는 조심스럽게 빗자루 위에 올라탔다.
그것으로도 부족해 자신들의 모습을 숨기는 투명화 마법과 마나가 퍼지지 않게 막는 마법까지 여러 가지 다양한 마법을 펼치고는 아무런 소리도 나지 않는 빗자루를 조용히 공중으로 띄워 올렸다.
조심스럽게 마녀 마을을 벗어나는 두 마녀의 행동은 마치 어린아이들이 세상에 대한 궁금증을 알아보기 위해 집 밖으로 나가는 것 같은 행동이었다.
그러나 그녀들은 그다지 오랜 기간 비행을 할 수가 없었다.
쿠구구구구.
후웅. 후웅.
“꺄앗!”
“꺄아아아!”
돌연 바닥에서 나무가 빠르게 솟아오르더니 모습을 감춘 두 마녀를 향해 자신의 많은 가지들을 휘두르기 시작했다.
마녀들로 치면 어린 마녀들이긴 하지만 빗자루를 다루는 것에 있어서만큼은 노련한 마녀들 못지않은 두 마녀는 조금은 아슬아슬하지만 나무의 공격을 피해 더욱 높게 하늘로 날아올랐다.
하지만 마음만 날아오를 뿐, 몸은 날아오르지 못했다. 돌연 지엔의 빗자루 뒤로 하얀 거미줄이 엉켜들었고, 미시는 높은 곳에서 떨어짐에도 마법을 사용하지 않고 가만히 추락하기 시작했다.
다행히도 솟아올랐던 나무의 잔가지와 부딪치며 떨어졌기에 마나의 축복을 받은 그녀는 그다지 큰 부상을 입지 않았다.
그러나 그녀들에게 있어 문제는 날아오르지 못한 거나 떨어진 것이 아니었다. 정작 중요한 문제는 자신들을 붙잡고 떨어뜨린 이들이었다.
바닥으로 떨어진 두 마녀의 주변으로 마을을 나설 때만 해도 전혀 보이지 않던 수십 명의 마녀들이 모습을 나타낸 상태였다.
몇몇은 떨어진 그녀들을 둘러싸고 있었고, 몇몇은 나무에 앉아 있거나 빗자루에 타고 있었다. 각기 다른 외형이지만 마녀들의 얼굴에는 모두 비슷한 미소가 걸려 있었다.
“우리 예쁜 아가들이 많이 컸네?”
“깔깔깔, 네년도 저 나이 때는 다 저랬잖아. 간단하게 죽음의 늪에 목까지만 집어넣어 놓는 걸로 끝내자.”
“에이∼ 독충들이 있는 곳에 묻어 놓는 게 좋지 않을까? 애들은 강하게 키워야 한다고∼ 독충 같은 것을 먹고 자라야 독에 대한 내성이 좀 생기지.”
여기저기에서 들려오는 섬뜩한 말에 두 어린 마녀의 얼굴색이 파랗게 질려 가기 시작했다.
마녀들의 입에서 나오는 장소들은 모두 마녀들이 살고 있는 금지의 숲 곳곳을 가리키는 말이었다.
아직 어린 두 마녀에게는 접근도 못하게 되어 있는 곳이 수두룩했다.
“됐어. 아직 어린애들이니 이번만은 가볍게 한 번만 봐줘야지. 뚱보의 음식을 먹을 일이 있는 이들을 대신해 딱 백 일간만 대신 먹어 주는 걸로 하자.”
“그, 그냥 죽음의 늪에 들어갈게요.”
“전 독충들하고…….”
샤센치량이 정한 벌을 듣자 안절부절못하는 두 마녀의 행동에 마녀들이 깔깔거리며 웃기 시작했다.
“좋아, 딱 열흘로 해 줄게. 더 이상은 안 돼!”
“히잉.”
“흐윽, 죽었다.”
두 어린 마녀는 결국 눈물을 흘릴 수밖에 없었다. 결국 그 어떤 것보다도 두려운 형벌은 받은 두 마녀였다.
“자, 그럼 마녀들아, 우리 마녀들의 방식으로 숲을 방문한 이들을 맞이하러 가 보자.”
“깔깔깔, 손님이다.”
“오랜만에 오는 손님인데 화끈하게 반겨 주자.”
“선두는 나다∼”
“빗자루가 느린 마녀는 뒷정리나 해!”
모습을 숨긴 채 숨어 있던 것인지 마녀들이 동시에 빗자루를 타고 날아오르자 거의 백여 명에 달하는 마녀들의 모습이 나타났다.
대륙에서는 절대 볼 수 없는 광경이었다. 그런 그녀들이 향하는 방향은 숲의 외곽 쪽이었다.
마녀들이 말하는 이곳을 들어오는 손님.
그들은 둘 중 하나였다.
엘프 사냥꾼이거나 혹은 숲을 정벌하기 위한 군인.
그들을 맞이하기 위해 하늘로 날아 오른 마녀들의 웃음소리가 숲의 구석구석으로 퍼져 나갔다.
몬스터로 취급받기도 하지만 대부분의 이종족은 거대한 돈이 되기 마련이다.
인간들과는 다른 종족으로, 각기 특징이 뚜렷하거나 한 가지 재주가 뛰어난 이들이 있는가 하면 빼어난 외모를 갖고 있는 종족들도 많았다.
그렇기에 이종족은 인간들의 사냥감이 되고는 했다. 단순한 노예 상인들이나 돈이 궁한 용병들이 그들을 찾는데, 심지어는 이종족 사냥을 인정한 제국이나 그런 제국을 따르는 왕국들도 적지 않았다.
단순히 이종족만을 노리는 것 또한 아니었다. 다른 이들을 누르고 그 위에 서려는 이들에게 있어 대륙의 금지 구역은 아직 개발되지 않은 무궁무진한 보물들이 가득한 곳으로 보였다.
그곳을 차지할 경우 아무도 정벌하지 못한 곳을 정벌했다는 많은 명성과 함께 적지 않은 부수적인 자원이 떨어질 것이다.
그렇지만 쉽사리 금지 구역을 정벌하려는 이들은 없었다. 만약 실패를 할 경우 혼자 쓸데없는 병력을 낭비한 것과 함께 국가의 힘이 나약해질 것이 분명했다.
그럼에도 많은 부를 원하는 이들은 꼭 있기 마련이었다. 그런 이들로 인해 지금처럼 많은 이들이 대륙의 금지 구역 중 한 곳인 마녀의 숲 앞에 모여 있었다.
비장한 표정을 지은 이들이 있는가 하면 욕심에 눈이 먼 자들, 그런 자들과 달리 부와 지위가 없어 강제로 끌려온 불쌍한 이들이 메마른 대지 위에 끝없이 서 있었다.
가장 선두에 서 있는 이들은 대부분은 그다지 좋은 무구를 갖추고 있지는 않았다. 금방이라도 울 것 같은 표정의 그들은 눈앞으로 보이는 음침하고 거대한 숲을 한 번 보고는 뒤를 돌아봤다.
과연 눈앞의 숲이 자신들의 적인지 저 뒤에 있는 검을 뽑아 든 채 자신들을 바라보는 이들이 적인지 알 수 없는 상황이었다.
앞으로 가도 죽고 뒤로 가도 죽는다. 하지만 일단 조금이라도 더 살기 위해서는 앞으로 갈 수밖에 없었다.
“전군! 전진하라!”
번쩍이는 황금빛 갑옷을 입은 중년 기사가 굳건한 표정으로 검을 뽑아 들어 외치자 수를 헤아리기 어려울 만큼 많은 인간들이 전진을 시작했다.
일반 병사, 기사, 마법사, 신관, 귀족 등등. 탐욕에 눈이 먼 몇몇 이들로 인한 대군은 처음과는 다르게 조금씩 빠르게 그들과 마찬가지로 끝이 보이지 않는 숲으로 달려들기 시작했다.
그러나 그들은 숲에 채 접근도 하기 전에 멈출 수밖에 없었다. 돌연 하늘에서 쏟아지기 시작한 신들의 분노 같은 엄청난 마법 때문이었다.
콰앙!
수없이 많은 마법이 떨어져 내렸지만 병사들의 가장 중심 부분이자 고위층들이 모여 있는 부분에 떨어진 하나의 마법에 모든 충격음이 먹혀 버렸다.
마법사나 신관들이 채 대처를 하기도 전에 일어난 일이었다. 대처를 취한 이들이 없지는 않았지만, 마법의 위력이 너무나도 강대했다.
보호막이 있으나 마나 상관없다는 듯이 뚫어 버린 마법 때문에 사람들이 바글바글 모여 있던 곳이 뻥 뚫리는 일이 생겼다.
인간들이 그와 같은 거대한 마법 공격이 현실인지 꿈인지 구분을 못해 정신을 놓고 있을 때 그들이 모두 들을 수 있는 목소리가 마른 대지에 울려 퍼졌다.
“깔깔깔, 귀여운 손님들이 오셨다. 마녀들아, 그들과 같이 춤을 추어라. 같이 노래를 불러라. 오늘은 우리들의 숲을 방문한 손님을 환대하게 맞이해 주어라∼”
“깔깔깔.”
“호호호.”
“꺄르르르.”
마녀들의 웃음이 하늘을 뒤덮기가 무섭게 허공에서 수없이 많은 마법들이 쏟아져 내리기 시작했다. 자신들의 머리 위로 떨어지는 마법을 보며 인간들은 절망을 느꼈다.
배우지 못한 노예들도 알 정도로 마법은 어려운 학문이다. 하지만 지금 자신들의 머리 위에 떠 있는 마녀들은 그런 마법을 가볍게 사용하고 있다.
인간들 측에서는 감히 대응도 하지 못할 정도로 엄청난 마법들을!
뛰어난 기사들이 적지는 않지만 그들이라고 해도 별수는 없었다. 빗자루를 타고 하늘에 떠 있는 마녀들을 잡아 내는 것은 불가능했다.
귀족들을 보호하기 위해 중앙 쪽에 모여 있던 병력에 비해 턱없이 적은 마법사들은 이미 전멸하다시피 한 상태였다.
궁수들이 있다고는 하지만 하늘에 대고 활을 쏘아 봤자 못 맞추면 그것은 고스란히 땅으로 떨어질 것이다.
이미 지휘 체계가 무너진 상태였기에 그들은 속수무책으로 당할 수밖에 없었다. 설마하니 이렇게 마녀들이 마중(?)을 나올 것이라고는 전혀 생각도 못한 터였다.
간단한 손님 맞이라는 이름 아래 그동안 사용해 보고 싶던 마법을 주저없이 사용하는 마녀들로 인해 얼마 있지 않아 대륙의 판도는 크게 바뀌기 시작할 것이다.
존재하지 않던 신생 왕국들이 등장하거나, 힘이 없어 제국에게 공양을 하던 왕국들이 반기를 들고 일어나는 등등.
인간들의 욕심으로 인해 시작된 무리한 정벌은 대륙에 수없이 많은 피바람을 몰고 올 것이 분명했다. 그렇지만 대륙이 어떻게 돌아가든 상관없이 마녀의 숲은 여전할 것이다.
아침부터 실험의 실패로 인해 터지는 소동과 그들을 데리고 장난을 치며 웃고 떠드는 마녀들은 하루하루를 즐기며 살 것이다.
과연 악이라는 정의가 무엇인지 이들을 단번에 내려다볼 수 있는 이만이 알 수 있는 일이었다.
나나와는 전혀 다른 생각을 하는 준혁도 스스로 만든 세상에 빠져 자신만의 마녀를 머릿속에 그려 갔다.
“마녀들이 있는 곳으로는 외부 사람들이 잘 못 찾아오나 보네.”
―그렇다냥. 그렇기에 마녀들은 손님을 좋아한다냥. 하지만 손님들은 그다지 오래 있지 않고 바로 돌아간다냥.
“왜?”
―그건 나도 모르겠다냥.
정말로 모르겠다는 듯이 나나가 고개를 흔들었다. 준혁도 그런 나나를 보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아무튼 그렇게 돌아간다고 해도 마녀들은 조금 섭섭해할 뿐, 평소와 같다냥. 아, 손님들이 왔기에 밤에 하는 파티는 더욱 성대하게 치른다냥. 마법으로 화려하게 만든다냥∼
다시금 나나가 추억을 떠올리듯 눈을 감았다. 준혁도 그런 나나를 따라 눈을 감았다.
콰과과광!
“꺄아∼ 화났다, 화났어∼ 불꽃놀이 시작이다∼”
“에이! 좀 맞아!”
마을의 중앙에 모인 마녀들의 볼은 모두 조금씩 홍조가 드리워져 있었다. 그 홍조의 원인은 바닥을 뒹굴고 있는 수많은 빈 병들이었다.
인간들의 침공을 막아 주었다는 이름 아래 엘프와 드워프들에게 받아 온 술들이었다. 술에 취해 기분이 좋아진 마녀들은 자신들이 만들어 낸 화려한 마법을 다른 마녀들에게 쏘아댔다.
단 한 명의 마법으로 시작된 소동이지만, 곧 다른 마녀들에게 번져 나갔다. 드문드문 뚱보마녀의 음식을 먹고 죽은 듯이 누워 있는 이들을 제외하고는 말이다.
마녀들에게 있어 그것은 화려한 불꽃놀이였다.
“마녀들이 사는 곳에 꼭 한 번 가 보고 싶다.”
―배우는 게 많을 거다냥. 나중에는 내가 인생에서 손꼽는, 샨과 함께 피난민을 대피시킬 때 벌어진 제국군과의 전투를 이야기해 주겠다냥. 반할 거다냥.
나나가 알고 있는 것과는 전혀 다른 상상을 한 준혁은 자신이 스스로 사지에 뛰어들고 싶다고 말했다는 것을 전혀 모르고 있었다.
* * *
똑똑똑.
노크 소리에 지혜의 새어머니인 신미아는 여전히 좋지 않은 몸 상태임에도 침대에서 벌떡 일어났다.
“지, 지혜니?”
미아의 남편일 수도 있지만 오늘은 분명 야근이라는 말을 했다. 그 말인즉, 지금 자신을 찾아온 것은 지혜라는 소리였다.
미아는 자신도 모르게 긴장을 했다. 지혜가 싫어서 하는 긴장이 아니었다.
그녀가 자신을 싫어하도록 노력하다 보니 자신도 모르게 지혜 앞에서는 더욱 조심스러워지는 미아였다.
“……들어가도 될까요?”
아주 작은 목소리였지만 바짝 긴장하고 있던 미아는 그런 지혜의 목소리를 놓치지 않았다.
“드, 들어오렴.”
미아의 허락이 떨어지자 조심스럽게 방문이 열리며 지혜가 들어왔다. 미아는 방으로 들어오는 지혜의 얼굴을 유심히 바라보더니 조금 전 긴장하던 것과는 다르게 화들짝 놀라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울었니? 무슨 일 있는 거니? 어디 아픈 건 아니지?”
지혜의 눈이 조금 붉어진데다 눈물자국이 보였기에 미아는 어떻게 보면 호들갑을 떤다는 말을 들을 정도로 지혜의 어깨를 잡고는 흔들었다.
지혜는 한동안 미아의 그런 행동에 가만히 서 있기만 했다. 뒤늦게 미아는 자신이 너무 호들갑을 떨었다고 생각한 것인지 지혜의 어깨를 조심스럽게 놓았다.
“미, 미안하구나.”
“…….”
미아의 사과에도 지혜는 조용히 입을 다물고 있었다. 잠시 동안 두 사람의 사이로 침묵이 감돌았다.
먼저 침묵을 깬 것은 지혜였다. 막 미아가 입을 열려 할 때 지혜가 전혀 감정이 담기지 않은 목소리로 미아에게 말을 건넸다.
“왜 매번 사과만 하세요?”
“으응? 그건 내가 잘못을 해서…….”
“무슨 잘못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