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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
왕!
―늦었다냥.
언제나와 같이 문 바로 앞에서 자신을 기다리고 있는 백이와, 본래는 백이의 집이지만 이제는 나나의 보금자리가 된 곳에서 태평하게 자신을 기다리는 나나.
그 두 마리의 짐승은 괜찮았다. 하지만 방 한구석에 자리해 있는 미만큼은 달랐다.
삐.
[가만히 있어. 절대 움직이면 안 돼!]
미가 준혁이 온 것을 반갑게 맞이하기 위해 소리를 내려 했지만 준혁이 먼저 사역마와 가능한 텔레파시를 이용해 미를 멈추었다.
다행히도 무엇 때문에 그러는지는 몰라도 준혁의 말을 잘 알아들는 미였기에 바로 주둥이를 닫고는 몸을 꼿꼿하게 굳혔다.
“강아지다!”
미가 몸을 굳히기 무섭게 유미가 좁은 입구를 막고 서 있는 준혁을 살짝 밀어내고는 백이에게 손을 뻗었다.
으르릉.
자신에게 손을 뻗는 유미를 보며 백이는 경계 어린 표정으로 으르렁거리기 시작했다. 하지만 조그마한 강아지라 그런지 유미는 전혀 두렵지 않다는 듯이 손을 뻗었다.
“착하지.”
“가만히 있어.”
왕!
유미가 안으려는 것을 준혁이 대신 안아 들자 으르렁거리던 조금 전과는 다르게 얌전히 꼬리를 살랑거리는 백이를 보며 준혁이 살짝 미소를 지었다.
“고양이도 있네요?”
자신의 손에서 도망친 것 같은 백이를 뒤로한 채 개와는 상성 관계임과 동시에 색도 정반대의 색을 자랑하는 나나를 보며 다시금 호기심을 표하는 유미였다.
―뭐다냥, 이 시끄러운 계집은냥?
금방이라도 자신에게 달려들 것 같은 유미의 표정을 읽은 나나가 몸을 일으켜 가볍게 준혁의 어깨 위에 올라탔다.
한쪽 어깨에는 검은 고양이를, 품에는 새하얀 강아지를 안고는 살짝 미소를 짓고 있는 준혁의 옆모습을 유미는 잠시 멍하니 바라봤다.
그러나 그것은 잠시였다. 백이와 나나, 그리고 묘한 분위기의 준혁으로 인해 제대로 방 안을 살펴보지 못한 유미는 곧 정신을 차리고는 주위를 둘러봤다.
그다지 많은 것이 없어서 그럴 수도 있다고 생각할 수 있겠지만, 일단 그녀가 느끼기에 준혁의 방은 더없이 깨끗했다.
“저건 뭐예요?”
“지나가다 보이길래 산 거니 신경 쓰지 말고 서둘러 밥이나 먹도록 하죠.”
미에게 신경을 쓰려 하는 유미의 행동을 사전에 차단한 준혁이었다. 조금의 떨리는 목소리도 없이 완벽하게 별거 아니라는 듯이 행동한 준혁은 서둘러 상을 차렸다.
딱히 차린 것은 없었다. 익숙하게 계란후라이를 하고 김을 꺼냈다. 그리고는 아침에 만들어 놓았던 김치찌개를 살짝 데운 것을 작은 상에 올려놨다.
‘혹시 몰라서 사 놓은 게 다행이네.’
혹시 설거지를 하지 못할 경우를 대비해 여분으로 사놓은 식기 덕분에 유미 역시 식사를 할 수 있었다.
준혁은 일부러 미가 보이지 않는 방향에 유미를 앉혔다. 조금 들떴던 처음과는 다르게 지금의 유미는 평소와 같이 상당히 조용한 자세로 있었다.
거기에 더해 벌써 식사를 끝마친 백이가 준혁의 바로 옆에 앉아 작게 꼬리를 살랑이고 있었다.
미는 제대로 보지도 못한 상태인데다 눈앞에는 귀여운 백이가 있으니 뒤는 돌아보지도 못했다.
마치 자리고비 영감의 집에 매달려 있는 굴비처럼 밥 한술 뜨고 백이를 바라보는 유미의 행동에 준혁은 살짝 소리가 나게 수저를 내려놓았다.
“지각하겠습니다.”
“아, 네. 맛있네요.”
“고맙네요.”
일찍도 말해 준다고 비꼬을까도 생각했지만, 괜한 시간 낭비일 것 같다는 생각에 관둔 준혁은 어느새인가 다 먹은 자신의 식기를 치우기 시작했다.
“설거지는 제가…….”
“됐으니 가서 자리나 좀 맡아 주세요.”
“에, 예. 아, 알겠습니다.”
알겠다고 하며 무언가 아쉬운 표정으로 방 안을 둘러 본 유미가 문 앞에서 서성거리기 시작했다. 딱히 신발을 신는 것이 어려운 것이 아님에도 나가지 않고 있는 유미를 보며 준혁이 이상하다는 듯이 그녀를 바라봤다.
“뭐 하십니까?”
“그, 그게…….”
준혁의 물음에 유미가 말을 더듬으며 당황하기 시작했다. 그리고는 준혁도 어찌 못할 정도로 당황스러운 말을 꺼냈다.
“비, 비밀 번호를 치는 것도 없고, 지문 인식기도 아니라…….”
돌연 횡설수설하는 유미를 보며 준혁은 손에 묻은 물기를 닦아 내고는 살짝 비켜선 그녀를 지나쳐 문을 따 주었다.
“이것을 누르면 열리게 되어 있습니다. 여기 표시가 있잖아요.”
마치 초등학생을 가르치는 것같이 다정하게 가르치며 유미를 향해 살짝 웃어 주었다. 스스로 비웃음을 짓는다고 지은 웃음이지만 유미가 느끼는 것은 조금 달랐다.
무언가를 자상하게 알려 주는 따뜻한 미소였다. 과외를 하면서 아이들과 지내다 보니 겉으로 나타내는 모습이 많이 바뀐 것이었다.
“머, 먼저 자리를 맡으러 가 볼게요.”
고개를 푹 숙이고 서둘러 뛰어가는 유미를 보며 준혁은 생각했다.
“눈치가 없는 줄 알았는데, 나름 부끄러움도 타네.”
조금 눈치가 없기에 부끄러움 같은 것은 전혀 없을 것이라는 생각과는 다르게 조금 전 얼굴을 붉히는 그녀의 모습에 준혁은 나름 만족스럽다는 표정을 지었다.
그런 준혁을 보며 나나 역시 한 마디 해 주었다.
―네 녀석은 한술 더 뜬다냥.
준혁은 그런 나나의 말에 이해가 되지 않는다는 듯이 고개를 갸웃거렸지만, 일단 그러려니 했다.
단지 앞으로 유미로 인해 얼마나 귀찮은 일이 생길지는 전혀 몰랐다.
9. 견습 마녀와 과거
자신의 옆에 섰다 앞으로 갔다 하면서 뛰어다니는 백이를 준혁은 귀엽다는 듯이 바라봤다.
혹시 뛰어다니다 차 같은 것으로 인해 위험한 상황에 놓일 수도 있기에 목줄을 하면 좋겠지만, 그러다 보면 너무 답답할 것 같다는 생각에 목줄은 채우지 않았다.
안 그래도 좁은 집 안에서만 생활하는 백이였기에 미안한 마음에 목줄 같은 것은 하지도 않았고, 매번 주말이 되면 이렇게 백이를 데리고 산책을 나섰다.
나나가 마법 훈련을 하라고 화를 내기는 하지만, 그것 역시 스스로 생각하기에 꾸준히 하고 있는 상태였다.
‘낌새로 보아하니 조금 있으면 무언가 일을 낼 것 같은데…….’
요즘 들어 나나가 자신을 바라보는 눈빛이 무언가를 준비하고 있는 것 같았기에 살짝 불안한 준혁이었다. 하지만 자신이 걱정한다고 해서 나나가 시킬 일이 바뀌지는 않을 것이기에 지금을 즐겨야 한다고 생각했다.
스스로 좋게 생각하며 길을 가던 준혁은 멀찍이서 묘하게 자신의 시선을 잡아끄는 한 아이를 보며 저도 모르게 걸음을 멈추어 섰다.
투명한 창을 통해 그 안을 뚫어지게 바라보고 있는 작은 아이는 마치 마법에라도 걸린 듯이 가게 앞에서 발을 떼지 못하고 있었다.
준혁은 그런 아이에게 천천히 걸어갔다.
익숙한 향기.
그립지는 않지만 신경 쓰지 않고 지나갈 수 없는 과거의 향기였다.
“여기서 뭐 하니?”
자신이 다가갔음에도 멍하니 가게 안 만을 바라보는 작은 소녀에게 준혁이 조심스럽게 말을 걸었지만, 소녀는 준혁의 말을 듣지 못한 듯 손가락을 입에 대고는 서 있었다.
준혁은 멍하니 서 있는 소녀의 뒤에서 그녀가 바라보는 것을 같이 바라봤다.
“저게 먹고 싶어?”
“네!”
자신이 불렀을 때는 대답도 하지 않던 작은 아이가 먹고 싶냐는 말에 바로 대답을 했다. 그런 아이의 행동에 준혁이 살짝 미소를 지었다.
“오빠가 사 줄까?”
“우웅, 원장 선생님이 모르는 사람 따라가지 말라고 했어요.”
“그래서 먹기 싫어?”
“먹고 싶어요!”
손을 번쩍 들며 말하는 아이의 행동에 준혁이 귀엽다는 듯이 머리를 쓰다듬어 주었다.
“어? 강아지다.”
“일단 맛있는 햄버거 먹고 강아지랑 놀자. 백이야, 미안하지만 여기서 좀 기다려.”
“네에∼”
왕!
준혁은 씩씩하게 대답하는 아이의 등을 살짝 떠밀며 가게의 안으로 들어갔고, 백이는 그런 가게 안으로 들어가는 준혁을 따라 고개를 움직였다.
아이들이 좋아할 법한 햄버거를 파는 가게였다. 가게로 들어선 준혁은 주변을 신기하다는 듯이 두리번거리는 아이를 보고는 살짝 웃었다.
“뭐가 먹고 싶어?”
“우음.”
여러 가지가 있기에 고민이 많은 것인지 아이가 한참을 고민하기 시작했다. 그런 아이에게 귀찮다는 듯 살짝 인상을 찡그리는 아르바이트생의 모습에 준혁은 기분이 조금 나빠졌다.
아마 일반적인 아이라면 괜찮았을 것이다. 그러나 지금 준혁의 옆에 서 있는 작은 아이는 다른 이들과 같은 아이가 아니었다.
옷도 그렇고, 제대로 씻은 것 같지 않은 아이였기에 단번에 평범한 아이가 아니라는 것을 그 누구라도 알 수 있을 것이었다.
잘 알고 있다.
저런 시선이 얼마나 괴로운 시선인지 자신도 직접 겪어 봤기에 잘 알고 있었다. 단지 지금은 무엇을 먹을지 몰라 하기에 아이가 신경을 못 쓰고 있는 것이 다행이었다.
그러나 아이와 달리 준혁은 그런 시선을 모두 꿰뚫어 보고 있었다. 안 그래도 뛰어난 감각을 갖고 있었기에 더욱 그러했다.
“이곳은 별로 친절하지 않는 곳이네.”
준혁의 차가운 눈동자와 마주한 아르바이트생들은 오싹한 기운이 등골을 타고 흐르자 하던 일을 잠시 멈추고는 시선을 회피했다.
“저거 먹고 싶어요. 새우 들어간 거.”
“그래, 저거 세트로 두 개 주세요.”
아르바이트생에게 차가운 미소를 지으며 주문을 한 준혁은 비어 있는 자리에 자신의 휴대폰을 놓고는 아이를 데리고는 화장실로 향했다.
사람들의 시선 때문이 아니라 준혁이 느끼기에도 조금 지저분했기에 간단하게 씻길 생각이었다.
다행히도 남자 화장실에는 사람이 없었기에 미안한 감정을 갖지 않고 화장실에 들어선 준혁은 아이를 안아 들었다.
“깨끗하게 씻고 먹어야지. 안 그러면 나중에 배가 아플 수도 있어.”
“응. 우리 원장 선생님도 뭐 먹을 때면 꼭 씻고 먹으라고 했어요.”
반말과 존댓말을 섞어 말하는 아이였지만 그다지 기분이 나쁘지 않다는 듯이 준혁은 아이를 얼굴을 씻기며 살짝 흥얼거리듯 중얼거렸다.
“장난꾸러기 마녀 같은 귀여운 아가야, 너무 더럽지 않니. 마녀가 마녀가 깨끗하게 해 줄게.”
마치 노래를 부르는 것처럼 중얼거렸다. 준혁의 품에 안겨 있는 아이가 뭐라고 묻고 싶은 듯 보였지만 그럴 수는 없었다.
얼굴을 씻기고 있기에 눈도 감았고, 입도 꼭 닫고 있었다. 준혁은 다른 이들이 보기에는 상당히 대충 씻기는 것처럼 아이의 얼굴을 씻겼다.
그렇게 준혁이 아이를 씻기는 사이 틀어놓은 수도에서 나오는 물이 준혁의 마나와 섞이며 아이의 몸을 얇게 덮어 갔다.
아이의 몸에서 조금씩 변화가 일어나더니, 곧 준혁의 품에서 내려선 아이의 모습은 처음과는 전혀 다르게 바뀌어 있었다.
꼬질꼬질하던 모습은 사라졌고, 뽀얀 피부와 똘망똘망한 눈이 인상적인 귀여운 아이가 나타났다.
조금 구겨진 것은 어쩔 수 없지만, 옷 역시 마치 방금 빨아 말린 것처럼 깨끗해졌다.
“자, 이렇게 깨끗하게 하고 다니니까, 음…… 우리 예쁜 작은 천사님은 이름이 어떻게 되지?”
“유지은이요!”
“그래. 지은이도 이렇게 예쁘잖아. 자, 보렴.”
다시금 지은을 안아서 조금은 지저분한 거울에 얼굴을 볼 수 있게 해 주었다.
“평소와 똑같은데?”
“그래?”
지은의 말에 준혁은 다시금 미소를 짓고는 햄버거 가게로 들어섰다. 가게에 들어서며 조금 어이없던 것은 지은과 자신의 눈치를 살살 살피는 아르바이트생들의 모습이었다.
거기에 더해 자신의 휴대폰을 놓고 간 자리에 주문했던 햄버거 세트가 놓여 있었다.
‘생각해 보니 선금을 치러서 딱히 놓고 갈 필요는 없었겠네.’
스스로 바보 같다는 생각을 했지만 이미 잡아 놓은 분위기로 인해 그런 점을 꼬집는 이는 아무도 없었다.
그렇게 준혁과 지은 사이만 화기애애한 채 다른 곳은 조금 무거운 침묵이 감돌고 있을 때, 햄버거 가게의 문이 열렸다.
“아휴, 천천히 좀 가렴. 엄마가 다 사 준다니까.”
“진짜? 진짜지? 분명 다 사 준다고 했다?”
“대신! 다 먹으면 다시 사 주고 할 거니까. 이런 게 뭐가 맛있다고 하는지 모르겠네.”
상당히 뚱뚱한 중년 여성이 몸에 주렁주렁 보석을 달고는 진한 화장과 함께 향수 냄새를 주변으로 풍기며 가게 안으로 들어온 것이다.
그런 그녀의 옆에는 누가 보더라도 모자라 보인다고 할 법한 남자 아이가 서 있었다. 남자 아이는 가게에 들어서기가 무섭게 바로 아르바이트생이 있는 곳으로 다가가더니 먹을 것을 고르기 시작했다.
자신의 아들이 그렇게 고르고 있을 때, 중년 여인을 주변을 쓰윽 둘러봤다. 본능에서 시작되는 행동이었다.
“지저분하네. 거기에 가게 앞에는 개새끼까지 앉아있고. 쯧쯧, 레스토랑에서 먹지 저런 게 뭐가 맛있다고 그러는지…….”
그다지 많지 않던 손님들은 중년 여인의 시선을 회피하며 인상을 찡그렸다. 중년 여인의 시선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너무나도 잘 알고 있었으니 말이다.
조금 전까지 모두들 흥미진진하게 바라보던 준혁과 아르바이트생의 일이 일어나게 만든 원흉의 시선.
바로 무시였다.
자신보다 밑에 있는 이들을 하찮게 내려다보는 시선.
방금 전까지만 해도 지은에게 보내던 시선을 자신들이 직접 받게 된 것이다. 하지만 그 누구도 준혁처럼 그 시선에 대해 가타부타 말을 하지 않았다.
흔히 드라마에나 나올 법한 모습이지만, 상당히 부유한 집안일 거란 사실이 눈에 훤히 보였다. 중년 여인의 복장부터 시작해 밖에 서 있는 차는 보통 고가의 차가 아니었다.
거기에 살짝 열려 있는 창으로는 운전기사로 보이는 듯한 사람이 있었다. 조금은 굳어 있는 표정과 중년 여인과의 나이 차이를 생각해 보면 그가 남편이 아니라는 것쯤은 충분히 알 수 있는 일이었다.
상당한 부를 갖고 있는 걸로 예상되는 사람이기에 함부로 화를 낼 수가 없었다. 인터넷이 발달되어 있다고는 하지만 괜히 귀찮은 일에 휘말리고 싶지는 않은 것이다.
혹여 보복이라도 들어오면 그것 역시 문제가 될 수 있는 일이었다.
그냥 조용히, 그렇게 넘어가면 되는 일이었다. 남들 사이에 껴서 자신과는 전혀 관계없다는 듯이 넘어가면 되는 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