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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모두가 그렇지는 않았다. 정확하게는 먼저 시비가 걸려온 것이지만 말이다.
“어? 거지 년이네?”
자신이 먹을 것을 시키고는 주변을 두리번거리던 남자 아이가 돌연 준혁과 지은이 있는 곳으로 다가오더니 거만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나 거지 아니야!”
햄버거를 입과 볼에 묻히며 허겁지겁 먹고 있던 지은이 입속에 든 내용물을 튕겨 가며 버럭 소리 질렀다.
“으엑, 드러워. 너 거지 맞잖아. 엄마 아빠도 없는 거지. 더러운 거지∼ 고아 년이라네.”
“나 거, 거지 아니야.”
지은이 돌연 울먹이기 시작했다. 지은을 알고 있던 것인지 바로 놀리는 아이를 보며 준혁이 막 나서려고 할 때, 돌연 남자 아이의 어미가 나섰다.
“진성아! 그러면 못 써.”
전혀 생각지도 못하게 어미가 진성이라 불린 아이를 말리자 주변에 있는 이들도 그들을 지켜봤다.
하지만 돌아온 결과는 조금 더 좋지 못한 결과였다. 적어도 준혁에게 있어서만큼은.
“저런 애와는 상대도 하지 마. 너만 안 좋게 보이니까. 너는 저 아이와 핏줄부터 다르니 앞으로는 말도 하지 마렴. 알겠지?”
“흐음, 놀리면 재미있는데.”
“다른 애를 놀리렴. 부모도 없는 애와 놀면 전혀 좋지 못한 소리 들으니까.”
“쳇, 알겠어. 거지야, 앞으로는 나한테 말도 걸지 마. 부모도 없는 년하고는 엄마가 놀지도 말라네.”
“아, 아니야. 나 거지 아니야! 엄마도 있어! 어, 엄마가 조금만 있으면 데, 데리러 온다고 했다고. 으아앙!”
“고아원에서 사는 주제에. 그게 엄마한테 버려졌다는…….”
쿠그극. 쾅!
“흐익!”
“힉!”
돌연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는 준혁으로 인해 두 모자가 화들짝 놀랐다.
“그 어미에 그 아들이겠지? 설마하니 아비까지 해서 가족 모두가 이 모양은 아닐 테지.”
조금 전의 무거운 기운이 아니었다. 차갑고 날카로운 분위기였다. 두 모자는 준혁에게서 느껴지는 분위기에 아무 말도 못했다.
단지 두 눈을 동그랗게 뜨고는 몸을 작게 떨 뿐.
“아이야, 아이야, 못된 짓을 하는 아이야. 너와 같은 친구를 알고 있는 못된 마녀가 너에게 친구를 소개 시켜 줄게. 오늘 꿈속에서 만나 즐겁게 놀렴.”
살짝 몸을 숙여 머리를 쓰다듬으며 아이만 들을 수 있게 작게 중얼거리는 준혁이었다.
남자 아이는 마치 홀린 것처럼 초점없는 눈으로 한동안 준혁을 바라봤다. 남자 아이의 표정을 본 준혁이 시선을 돌려 울고 있는 지은을 번쩍 안아 들었다.
“그만 울렴, 지은아. 오빠가 지은이의 오빠가 되어 줄 테니까. 저런 못된 사람의 말은 귀담아들을 필요가 없어.”
“흐으윽.”
준혁의 품에서 얼굴을 묻고 힘겹게 울음을 참던 지은은 한없이 따뜻하게 들려오는 준혁의 목소리에 조금씩 울음을 참아 내기 시작했다.
‘이럴 때는 마나가 확실하게 좋긴 하네.’
쉽게 달랠 수 있는 상황 같지는 않았다. 주변에 있는 두 모자가 방해를 할 수도 있었고, 그로 인해 정신이 산만해져 쉽게 달래지 못할 수도 있었지만 준혁은 견습 마녀였다.
자신의 힘을 십분 발휘해 두 모자의 기를 죽여 놓고, 마음 상태가 불안정한 지은을 살살 달래자 생각 했던 것보다 쉽게 지은이 울음을 멈추기 시작했다.
“아이, 착하다. 착한 아이에게 좋은 선물을 해 줘야겠지? 오늘 오빠가 지은이가 해 달라는 거 다 해 줄게.”
“딸꾹. 저, 딸꾹. 정말?”
“그럼. 물론이고말고.”
“딸꾹.”
귀엽게 딸꾹거리는 지은을 안아 들고 준혁은 자연스럽게 밖으로 나서려 했다. 하지만 중년 여인은 생각보다 상당히 드셌다.
직접적으로 준혁의 마법에 걸린 게 아니라는 점과 자존심이 강한 것이 한몫하여 준혁이 잡아 놓은 무거운 기운을 이겨 냈다.
“비루먹은 녀석들이 어디서 큰소리야! 내가 누군 줄 알아? 바로 그 유명한 세찬 그룹의 사모님이야. 어디서 먹다 버려진 뼈다귀 같은 놈이 나타나서는! 부모 누구야! 당장 전화해!”
자신에게 화를 내는 중년 여인을 향해 준혁은 걸음을 멈추고는 다시금 그녀를 바라봤다.
“연결해 드리고 싶지만 저기 멀리 있는 하늘나라와는 아쉽게도 전화 통화가 안 되네요.”
“허어? 아주 애비 에미 없는 연놈들이 쌍으로 지랄을 하네.”
“있는 것들은 더하겠지요. 자신들이 얼마나 부유한 상황에서, 얼마나 행복하게 살고 있는지도 모르고 당신이나 저기 있는 새끼 돼지 같이 성장을 하니 말입니다. 지금 차고 있는 반지, 목걸이, 옷…… 어느 것 하자 당신이 직접 일을 해서 산 것이 있습니까? 집안에서 이어준 사람과 결혼해 단지 빌붙어 살고 있는 것은 아닌지 의심이 되는군요.”
“거, 건방지게! 어디서 감히 그딴 소리를 지껄여!”
팔부터 시작해 볼까지 부들부들 떨리는 중년 여인을 보며 준혁이 조롱의 미소를 지었다. 키가 상당히 작았기에 손을 휘두르고 싶어도 휘두르지 못하고 있는 것 같았다.
자신 역시 당해 본 수모였다. 그 누구도 도와주지 않았고, 힘이 없었기에 고개를 숙일 수밖에 없던 준혁이다.
하지만 지금은 달랐다. 아직 강하지는 않지만 남들과는 다른 힘을 갖고 있었기에 과거의 자신과 같은 기억을 심어 주고 싶지 않다는 생각에 준혁이 당당하게 나갔다.
“멧돼지 같은 성품인 것 같은데 키가 작아 뺨도 못 때리다니, 불쌍해서 어찌해야 할지 모르겠군요.”
“이, 이게!”
고개를 숙이지 않고 오히려 자신을 놀리는 준혁의 말에 뚱뚱한 중년 여인이 참지 못하고 힘겹게 손을 뻗으려 할 때였다.
“그만하시죠!”
돌연 준혁과 뚱뚱한 중년 여인 사이로 딱 그 중간에 들어갈 법한 이가 끼어들었다. 중년 여인은 돌연 끼어든 여인으로 인해 더욱 치솟는 짜증을, 준혁은 어이없음을 느꼈다.
전혀 생각지도 못한 이가 사건에 끼어든 것이었다.
자신보다는 작은 체구이지만 여성 치고는 상당히 큰 키라 볼 수 있는 여성이 바로 준혁의 눈앞에 있었다.
다름 아닌 유미였다.
잠시 학교에 볼일이 있어 왔다가 시간이 있어 친구 어울리던 중 지금과 같은 상황을 지켜보다 끼어들게 된 것이다.
“이년은 또 뭐야!”
제법 굽이 있는 구두를 신었음에도 조금 올려다봐야 하는 작은 체구의 중년 여인은 묘한 패배감을 느끼며 그녀와는 다르게 주변을 절로 밝게 만드는 유미를 표독스러운 눈빛으로 노려봤다.
“제가 보니 그쪽 분께서 잘못한 것 같은데, 사과하시죠?”
“하, 진짜 보자보자 하니까. 김 기사 뭐 해! 당장 이 연놈들을 어떻게 해 봐!”
가장 흔한 성씨로 불려도 될 법한 김 기사라는 말이 나오자 주변에서는 피식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그렇기 때문인지 뒤늦게 상황을 보고 들어온 김 기사는 얼굴을 살짝 붉히며 준혁에게 다가갔다.
훤칠한 키와 검은 정장을 입은 것이, 첫 인상부터 범상치 않은 포스를 풍기는 김 기사는 다시금 주변을 한 번에 얼려 버리는 일을 만들었다.
“야, 그만하고 가라.”
“풋.”
“키키킥.”
“푸웁.”
햄버거를 먹던 이들도, 음료수를 마시던 이들도 입에 있는 것을 조금씩 뿜어냈다.
그들이 그렇게 된 것은 김 기사의 목소리 때문이었다. 김 기사의 목소리는 남성으로서는 보기 힘들 정도로 앵앵거리는 목소리였다.
세상에 존재하지 않을 것 같은 목소리는 아니지만 상당히 괜찮은 그의 체구와는 너무 어울리지 않았다.
“이, 이것들이!”
너무 분노한 상태였기에 그런 김 기사의 목소리를 알고 있던 것을 잊고는 너무 무리한 것을 시켰다는 것을 뒤늦게 깨달은 중년 여인이 얼굴을 붉히며 주변을 둘러 봤지만 이제 와 하는 그녀의 그런 행동은 소용이 없었다.
중년 여인이 잡아 놓았던 분위기나 준혁이 잡아 놓았던 분위기는 모두 사라진 상태였다.
“가, 가자.”
“햄버거는?”
“나중에 사 줄 테니까. 가자고!”
이 와중에도 먹는 것부터 생각하는 아이로 인해 결국 소리를 지른 중년 여인은 붉어진 얼굴을 숙이고는 밖으로 나갔다.
그녀의 손에 아이는 거칠게 끌려 나갔고, 김기사 역시 붉어진 얼굴을 숨기지 못한 채 서둘러 두 모자를 따라 나섰다.
“괜찮아, 유미야?”
“괜찮아. 그보다 어디 다치신 곳은 없으세요?”
유미의 친구로 보이는 이가 옆으로 다가와 호들갑을 떨려고 하였지만, 유미는 그런 것을 차단하기 위해 준혁에게 달라붙었다.
준혁은 조금은 믿기지 않다는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이런 날에도 마주치네.’
처음에는 귀찮다는 생각이 먼저 들었지만 진심으로 걱정하는 표정을 지어 보이는 유미로 인해 준혁은 조금은 어이없던 표정을 지우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고맙네요. 하지만 다음부터는 함부로 나서지 마세요. 괜히 좋지 않은 일을 당할 수 있으니까요. 그만 가자, 지은아.”
“응.”
조금 훌쩍거리며 준혁의 옷에 눈물을 닦던 지은이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기분이 조금은 풀린 것 같은 지은의 대답에 준혁이 다시금 그녀를 꼭 안아 주었다.
“오늘은 오빠가 놀아 줄게. 뭐 하러 갈까?”
“으음, 근데 햄버거 다 안 먹었는데…….”
살짝 붉어진 눈으로 준혁의 등 뒤로 보이는 남아 있는 햄버거를 본 지은이 아쉽다는 표정을 지었다.
“언니가 하나 사…….”
“저기요, 이거…….”
유미가 무언가 놓치기 싫다는 표정으로 준혁을 붙잡으려 했지만, 그녀는 돌연 끼어드는 아르바이트생으로 인해 뒤로 밀렸다.
아르바이트생은 빠르게 다가와 지은에게 포장되어 있는 햄버거를 내밀었다. 중년 여인이 좋지 않은 시선으로 주변을 살필 때 그의 아들이 시켜 놓은 것이었다.
비록 돈을 받지는 못했지만, 그냥 버리기에 아깝다는 생각에 건네준 것이었다.
하지만 건네주면서도 아르바이트생은 뒤늦게 혹여 쓴 소리를 듣는 것이 아닌가 했다.
“잘 먹겠습니다.”
그러나 준혁이 무슨 말을 하기도 전에 지은이 아르바이트생이 건네주는 것을 덥석 받았다.
“고맙다고도 해야지.”
“고맙습니다.”
지은은 시선은 햄버거에 두며 동글동글한 고개를 꾸벅 숙이며 말하자 준혁 역시 아르바이트생에게 고맙다는 인사말을 전했다.
“고맙습니다.”
차가운 표정과는 다르게 살짝 미소 짓는 모습에 남자 아르바이트생의 얼굴이 붉어지고 말았다. 연예인같이 뛰어날 정도로 잘생긴 것은 아니지만, 지금 짓는 미소는 후광이 서린 듯 빛이 났다.
당사자는 전혀 모르고 있지만 말이다. 결국 오늘 일로 인해 아르바이트생은 한동안 시달릴 수밖에 없었다.
남자를 좋아하는 것이 아니냐고 말이다.

* * *

지은은 양손을 붙잡힌 상태로 연신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그녀로서는 처음 와 보는 영화관 홀이었다.
“저거 봐야겠네요. 제한 나이도 충분하고, 어린애들도 좋아할 것 같은데요. 제 친구가 동생과 봤다는데, 재미있다고도 했어요.”
애니메이션을 가리키며 말하는 유미의 말에 준혁은 지금의 상황이 조금은 이해되지가 않았다. 햄버거 가게를 나옴과 동시에 따라붙기 시작한 유미였다.
친구는 어느새 떨쳐 버리고 지은의 반대편을 차지해 이 자리까지 쫓아온 상태였다. 솔직히 지금의 영화관도 그녀가 제안을 하여 온 것이었다.
“저거 보자, 지은아.”
“응.”
어느새 아이와 친해진 유미는 다정하게 자신의 손을 잡고 있는 지은을 부르며 자신이 고른 영화를 가리켰다.
지은은 처음 와 보는 영화관이었기에 별다른 생각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이후 주변에 바글거리는 사람들에게 정신을 빼앗긴 상태였다.
“근데 왜 사람들이 언니만 보는 거야?”
주변을 한참 두리번거리던 지은은 뒤늦게 사람들의 시선이 유미에게 향해 있다는 것을 깨닫고는 전혀 모르겠다는 듯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 글쎄…….”
유미는 자신의 입으로 대답하기에는 부끄러운지 말을 얼버무렸다. 그런 유미를 보며 준혁은 살짝 장난기가 발동한 것인지 조금 전에 있던 일에 대해 말을 꺼냈다.
“아까 지은이는 왜 언니에게 사인해 달라고 했지?”
“티비에 나오는 사람인 줄 알았어요!”
유미가 따라오고 난 뒤로 한동안 경계를 하던 지은이었지만 붙임성 좋은 그녀는 결국 지은과 친해지게 됐다.
지은이 유미와 친해지자마자 바로 한 말은 사인을 해 달라는 말이었다. 지은으로서는 티비를 제외하고는 처음 보는 미녀였으니 말이다.
물론 그와 같은 상황에 직면한 유미는 상당히 당황스러워했지만 말이다. 종이와 펜을 찾는다고 돌아다니던 지은의 모습이 다시 떠올라 얼굴이 화끈거렸다.
거기에 더해 주변의 사람들이 누군가 하며 사진을 찍기까지 할 정도였다. 다시는 겪고 싶지 않은 일이었다.
“그만큼 예뻐서 보는 거야.”
“아∼”
“오빠는 가서 티켓 끊어 올게. 여기서 언니랑 기다려.”
“제 것은 제가 내도 되는데…….”
점차 뒤로 갈수록 작아지는 유미의 말은 무시하고 준혁은 티켓을 끊기 위해 움직였다. 티켓을 끊고 돌아온 준혁은 어느새 품 안 가득 먹을 것을 들고 있는 지은을 볼 수 있었다.
들뜬 표정을 보니 무엇인지 모르게 마음이 치유되는 느낌을 받았다.
‘저 아이를 위한 게 아니라 어쩌면 과거의 나를 위한 것 같군.’
지금과 같이 영화를 보는 것이 딱히 해 보고 싶었던 것은 아니지만 누군가와 함께 있고 싶었다.
진정한 보호자.
아니, 보호자만큼은 아니더라도 적어도 어려울 때 조금은 자신의 편이 되어 줄 이를 원했다. 하지만 세상은 그렇지 않았다.
자신을 숨기지 않고서는 세상에 다가가는 것은 상당히 어려운 일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도와주고 싶었다.
‘오늘만큼은 상당히 고맙네.’
유미의 옆에서 벌써부터 팝콘과 음료수를 마시며 그녀의 이야기에 푹 빠져 미소를 짓고 있는 지은을 보자 문득 유미에게 고마운 마음이 들었다.
지금 상황에 있어 조금은 무뚝뚝한 자신보다는 유미가 나았다. 거기에 여성이기에 하나라도 많은 것을 챙겨 줄 수 있을 것이었다.
“이제 곧 시작할 듯하니 이만 들어가죠.”
“네. 들어가자, 지은아.”
“응.”
상당히 기대된다는 눈으로 유미의 손을 꼭 붙잡고 앞서 가는 두 사람을 보며 준혁은 살짝 미소를 지었다.
‘부디 좋은 날이 됐으면…….’
매일은 불가능해도 이렇게 이벤트 같은 날이 있는 것도 나쁘지는 않을 것이라 생각한 준혁은 부랴부랴 두 사람을 뒤쫓아 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