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갑작스럽게 늦게 들어온 지은이로 인해 잠시 고아원장과 대화를 나눈 뒤, 꾸벅꾸벅 졸며 고아원으로 들어가는 지은을 배웅한 준혁의 입가에는 절로 미소가 생겼다.
살짝 질책하듯 지은이가 늦게 돌아온 것에 대해 고아원 원장에게 쓴소리를 들은 상태였다. 그렇지만 그런 질책이 그만큼 지은이를 걱정하고 있다는 것임을 말해 주기에 안도감이 든 것이었다.
나름 이유가 있어 즐거워하던 준혁은 무엇이 그렇게 기분 좋은지 옆에서 연신 해실거리는 유미를 슬쩍 바라봤다.
“왜요?”
나름 걸리지 않게 한 행동이지만 유미는 그런 준혁의 행동을 알아차리고는 지그시 바라보며 물었다.
준혁은 그런 유미에게 살짝 고개를 숙이며 말했다.
“오늘은 정말 고마웠습니다.”
“네?”
생각지도 못한 대답을 들었기 때문인지 유미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저 혼자라면 아마 저렇게까지는 못해 주었을 것입니다.”
“에, 아, 아니에요. 저야말로 재미있게 놀았는걸요.”
중간 중간 젊은 부부냐는 말을 듣는 일이 있었다. 그것도 싫지는 않았지만 묘하게 같이 있다 보니 따뜻한 느낌을 받았다.
바쁜 가족들로 인해 어느 순간부터는 꿈으로 존재했고, 그 시간이 지난 뒤로는 잊혀져 버린 작은 행복을 뜻밖의 장소에서 느끼게 된 유미였다.
본능적으로 준혁의 뒤를 쫓은 판단이 오늘 그녀를 상당히 즐겁게 만든 것이었다.
“아닙니다. 나중에 무언가 부탁을 하면 가능한 선 안에서 들어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부…… 탁이요?”
“예. 하지만 제가 들어 드릴 수 있는 한도 내의 일입니다.”
“그럼요…….”
말을 꺼내자마자 부탁을 하려는 유미의 행동에 인상을 찡그릴 법하지만 준혁으로서는 가능하면 최대한 빠르게 부탁을 들어 주는 것이 좋다고 생각했기에 그녀의 부탁이 무엇인지 궁금해 하며 그녀의 입술을 바라봤다.
“그렇게 어려운 부탁은 아니니 그냥 해 주신다고 하시면 좋겠는데…….”
“일단 말씀해 보십시오. 듣고 나서 가능한 것이라면 들어 드리겠습니다.”
“그게…….”
무언가 부끄러운 것인지 처음 당당하던 것과는 다르게 잠시 머뭇거리던 유미였다. 하지만 곧 마음을 다잡았는지 한차례 고개를 끄덕이고는 준혁의 눈을 진진한 눈으로 바라봤다.
“조금 더 사이가 가까워졌으면 해서요. 아, 오, 오해하지 마시고요. 그냥 주변에서는 저희들 사이를 오해할 정도인데 너무 딱딱하게 지내는 것 같아서요. 그냥 아는 오빠 동생 사이 정도?”
진지하던 눈은 사라지고 살살 눈치를 보기 시작하는 유미의 행동에 준혁은 살짝 고민하더니 답을 내렸다.
“오빠 동생 사이가 부부 사이가 된다는 말은 모르십니까?”
“설마 고백인가요?”
“그만 가 보겠습니다.”
“아, 죄송해요. 제가 잘못했어요!”
냉정하게 몸을 돌리는 준혁을 유미가 붙잡았다. 그런 유미를 향해 준혁이 살짝 장난스러운 미소를 지었다.
“한 번쯤은 생각해 보겠습니다. 아무튼 오늘은 정말로 고마웠습니다.”
“에?”
무언가 지금 상황이 이해가 되지 않는다는 듯이 당황스러운 표정을 지어 보이는 유미를 뒤로하고 준혁이 걸음을 옮겼다.
“자, 잠시만…….”
“오빠∼”
유미가 다시금 준혁을 붙잡으려 했지만 중간에 끼어든 여성의 목소리로 인해 그럴 수가 없었다. 그리고는 돌연 준혁에게 달라붙는 사람을 보고 유미는 놀라고 말았다.
어리다.
유미가 보기에도 그렇고, 다른 누가 보더라도 무조건적으로 준혁에게 달라붙은 여인을 보고 어리다는 말을 할 것이다.
이유는 그녀가 입고 있는 옷 때문이었다.
학생을 상징하는 교복.
최근에는 빠른 성장과 좋지 않은 모습을 보이는 학생들이 있기는 하지만 그래도 아직까지 미성년자는 어린아이라 생각하는 이들이 더 많은 세상이다.
그랬기에 학생의 상징인 교복을 깔끔하게 입고 있는 아이들을 그 누구라도 어리다고 말할 것이다. 그러나 문제는 단순히 학생 하나가 달라붙은 것이 문제가 아니었다.
준혁에게 다가온 여학생은 네 명이었고, 그중 두 명이 준혁의 양팔을 차지한 상태였다.
또한 하나같이 각자 개성이 있는 외모를 자랑했다. 좋은 방향으로.
“아, 여기서 뭐 해?”
갑작스럽게 등장한 여고생들에게 신경 쓰고 있던 유미는 잠시 멈칫거리며 말하는 준혁의 말투를 눈치채지는 못했다.
“집에 돌아가는데 오빠가 보여서요∼”
“안녕하세요, 선생님.”
“안녕하세요.”
“아, 안녕하세요.”
준혁에게 다가온 여학생들은 다름 아닌 은지 일행이었다. 지혜가 같이 끼어 있는 것이 놀라웠지만 활기차 보이는 모습을 보니 준혁은 묘한 안도감이 들었다.
조금 더듬거리며 말을 했지만 표정만으로도 자신이 벌인 일이 잘 처리됐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그런 뒤 여전히 자신에게 도움을 요청하는 듯한 눈빛을 보내며 팔짱을 풀지 않는 지연을 슬쩍 바라봤다.
주변에 사람들의 시선에 지금과 같은 지연의 행동을 미연에 차단하려던 준혁이지만 자신에게 다가오면서 입으로 도와달라고 벙긋거리는 모습을 보았기에 차마 떨쳐 낼 수가 없었다.
물론 그 장면을 본 유미에게는 엄청난 오해의 소지를 제공하였지만 그다지 걱정하지는 않았다. 애초에 모르고 있기도 했고.
일단은 없는 사람 취급을 받는 유미를 뒤로한 채 지연은 한쪽에서 자신들을 바라보고 있는 세 남학생을 상당히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눈으로 바라봤다.
그리고는 적지 않는 사람들이 있는 곳에서 폭탄 같은 발언을 내뱉었다. 감각이 뛰어난 준혁이기에 지연이 입을 열려는 순간 불안한 느낌을 받았지만 막을 방법은 없었다.
“내 남친이거든? 그러니 그만 좀 따라다니지 않을래?”
“헉!”
“…….”
유미는 지연의 말에 두 눈을 동그랗게 뜨고는 믿을 수 없다는 눈빛으로 준혁을 바라봤다. 하지만 유미와 같이 온 세 명의 여학생은 남학생들의 시선을 피해 살짝 키득거렸다.
지연의 성격을 이미 잘 알고 있기에 가능한 행동이었고, 이미 준혁과 지연이 절대 그와 같은 관계는 아니라는 것을 알고 있었기에 가능했다.
또한 지금의 상황이 난처했기에 지연이 그런 말을 내뱉은 것을 알고 있지만 유미는 달랐다.
처음에는 단순히 놀란 것 같아 보이던 눈이 조금씩 짐승(?)을 바라보는 것 같은 경멸의 눈빛으로 바뀌어 간 것이다.
그런 오해의 시선을 받고 있다는 것을 깨닫지 못한 채 준혁은 세 남학생을 바라보았다.
‘흐음, 지혜를 보면 분명 마법은 제대로 성공한 것 같은데…….’
조금은 호리호리한 체형과 함께 작은 체구인 남학생은 분명 자신의 마법으로 인해 악몽을 꾸었을 불량 학생들 중 한 명이었다.
‘정확하게는 따까리겠지. 일단은 이번 일부터 끝마치고 나서 나나한테 물어봐야겠네.’
오해의 시선을 받는 것이 싫기는 하지만, 은지 일행의 난처한 상황이 더욱 마음에 들지 않는 준혁이었기에 자신의 학생들을 귀찮게 하는 남학생들을 노려봤다.
딱히 잘생긴 것도 없이 상당히 거들먹거릴 줄 만 아는 남학생들을 보는 준혁의 시선은 곱지 않았다.
“그딴 멀대랑 만나서 뭐 하게. 나이도 많아 보이는 노땅인데 그런 놈은 버리고 나랑 놀자니까? 돈도 많다고. 자.”
뚱뚱한 남학생은 자신의 지갑을 꺼내 보이며 거만하게 행동했다. 주변에서 지금의 상황을 지켜보던 이들의 표정은 단체로 구겨졌다.
대부분이 같은 생각을 하고 있었는데, ‘어린것이……’라는 생각이었다. 부유한 집안에 태어나 개념을 저 멀리 던진 것 같은 학생의 모습의 모습은 그 누가 보더라도 전혀 좋아 보이지 않는 모습이었다.
“개념은 안드로메다에 던져 놓았나 보네.”
준혁이 작게 중얼거리자 지연이 풋, 하고 웃음을 터트렸다. 항상 진지한 모습만을 보여 준 준혁이었기에 저런 말을 꺼낼 것이라고는 생각도 못한 지연이었다.
“말했잖아. 내가 세찬 그룹을 물려받으면 지금보다 더 잘해 줄 수 있다니까?”
“너나 잘 먹고 잘사세요. 싫다는데 왜 자꾸 귀찮게 그래. 남자 친구도 있다니까. 딴 데 가서 너와 비슷하게 생긴 애나 좀 알아봐.”
주변에 있는 사람들이 지연의 말에 다들 웃음을 참아야만 했다. 딱 보아도 거들먹거리며 눈만 높은 남학생인데, 자신과 비슷한 수준을 만나라는 것은 그를 놀리는 말이었다.
“씨발 년이 얼굴 좀 된다고 튕기는 것 좀 봐라.”
“일진 없어졌다고 이곳저곳 설치고 다니는 너는? 괜히 엄한 곳에서 힘 빼지 말고 그만 좀 사라져 줄래? 나는 우리 달링이랑 데이트 좀 하게.”
도도한 모습을 보이며 준혁의 팔을 더욱 꼭 잡아당기는 지연이었지만, 준혁은 그런 지연의 팔을 자연스럽게 풀어내며 남학생들에게 다가갔다.
준혁이 다가가자 창고에서 한 번 당한 적이 있던 학생은 자신도 모르게 한 발 뒤로 물러섰다.
직접 보지는 못했지만 준혁의 마나로 인해 악몽을 꾸었기에 자신도 모르는 사이 준혁에게서 풍기는 마나에 몸이 먼저 공포에 휩싸인 것이다. 그렇지만 나머지 두 학생은 그렇지 않았다.
다가오는 준혁을 아니꼽다는 시선으로 바라보는 학생들이지만 조금씩 준혁이 가까워지자 그런 시선을 거둘 수밖에 없었다.
떨어져 있을 때는 몰랐지만 학생들은 준혁이 가까워지자 그에게서 뿜어져 나오는 기운을 감당해 낼 수가 없었다.
자신들보다 크다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눈앞에 다가온 준혁은 태산과 같았다. 도저히 움직일 수 없을 정도로 위험한 기운을 풍겼다.
살짝 비웃음을 짓던 모습조차 사라졌다.
준혁의 입꼬리가 살짝 올라가며 앞에서 조금 떨리는 눈으로 자신을 바라보는 남학생과 눈을 마주했다.
“세찬 그룹이구나.”
묘하게 달콤한 느낌이 드는 목소리.
무언가 갈증을 불러일으키는 것 같은 목소리였기에 주변에 있는 이들은 준혁이 더욱 말을 했으면 한다는 생각까지 들었다.
그러나 직접 눈앞에서 듣고 있는 남학생은 달랐다. 그 역시 비슷한 느낌을 받고는 있지만 그 안에 숨겨진 공포를 본능적으로 느꼈다.
“그곳에는 왜 그렇게 못된 아이들만 있는지 모르겠네. 그치?”
“…….”
준혁의 목소리에 주변에 있는 이들은 이제 몽롱한 표정으로 그를 바라봤다. 그의 몸에서 마나가 풍겨지며 그 마나에 사람들이 취한 것이었다.
그랬기에 지금 준혁이 무슨 말을 하는지 그들은 알지 못했다. 그러나 그런 상황은 준혁도 몰랐고, 알더라 하더라도 신경을 쓰지 않았을 것이다.
준혁이 몸을 조금 숙여 남학생의 귀에 작게 말을 했다.
“마녀가 세찬 그룹과 놀고 싶다고 전하렴.”
말을 하고 물러서는 준혁의 뒤로는 위협적인 말을 한 것도 아닌 상황임에도 남학생은 다리에 힘이 풀리며 엉덩방아를 찧었다.
주변 사람들은 그런 학생을 보며 웃을 법도 하지만 아직까지도 준혁이 자신도 모르게 뿜어낸 마나에 취에 멍하니 준혁의 모습을 쫓고 있었다.
“이만 가자.”
준혁은 멍하니 자신을 바라보고 있는 은지들을 보며 말했다. 준혁의 말에 대답이 아닌 무의식적으로 고개를 끄덕인 그녀들은 준혁을 따랐다.
뒤늦게 유미 역시 그들을 따랐고 말이다. 하지만 유미의 오해는 풀리지 않는 상태로 그들은 해어져야만 했다.
유미의 머리는 복잡하기만 했다.
* * *
―뭐 하고 있는 거다냥? 당장 말하지 않으면 가만 안 두겠다냥.
집에 돌아오자마자 얌전히 앉아 있는 준혁을 보며 나나가 동글동글한 머리 위로 물음표를 띄웠다. 딱히 수련을 하는 것도 아니었기에 묻는 것이었다.
그저 명상 수련을 하나 싶었지만, 그것 또한 아니었다. 준혁이 중간 중간 무언가 고심하는 표정을 지었기 때문이었다.
“조금 처리해야 할 것이 있어서.”
―냐앙.
나나가 상당히 의심스러운 눈으로 준혁을 바라봤다.
“아, 그 방법을 쓰면 되겠다.”
―무슨 짓을 하려고 그러냥.
“저번에 있던 일의 연장선이라고나 할까?”
―귀찮은 일만 만들어 온다냥.
“내가 만들고 싶어서 만드는 건 아니잖아.”
마치 자신을 탓하는 것 같아 보이는 나나의 말에 준혁이 발끈했다.
―여전히 수련이 부족하다냥.
다시금 발끈하려 한 준혁이지만 한 번 꾹 참고는 나나의 머리를 말없이 쓰다듬었다.
―뭐, 뭐 하는 거다냥!
준혁의 손길에 따라 머리를 흔들던 나나는 뒤늦게 위엄 없는 모습을 보였다는 생각에 발끈했지만 작은 체구로 준혁을 잡는다는 것은 상당히 힘든 일이었다.
준혁은 그런 나나를 보며 살짝 웃으면서도 묘한 느낌을 받았다. 자신이 조금씩 강해졌기에 나나가 자신을 쉽게 괴롭히지 못한다고 느꼈지만, 그러면서도 무언가 이상한 느낌이 드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묘한 느낌을 한쪽으로 접어 둔 준혁은 자신이 계획한 방법을 시행하기 위해 빗자루와 가면을 꺼냈다. 때마침 준비를 맞추었을 때 돌연 창을 두들기는 소리가 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