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톡톡톡.
준혁은 창 뒤로 보이는 실루엣을 보고는 서둘러 창문을 열었다. 그러자 창 뒤에 힘겹게 앉아 있던 미가 준혁의 품으로 쏙 파고들었다.
삐이∼
“미야.”
준혁이 안아 주자 퍼덕이던 날개를 접고는 얌전히 안긴 미는 자신의 얼굴로 준혁의 얼굴에 비비적거렸다.
“가면 갈수록 애교만 늘어나네.”
사람이 없는 틈을 이용해 밖으로 날려 보냈지만 항시 밤만 되면 이렇게 돌아오는 미였다. 거기에 나가 있는 시간이 길면 길수록 애교만 늘어가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드는 준혁이었다.
하지만 오늘은 미의 애교를 오랫동안 받아 줄 수는 없었다. 따로 할 일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랬기에 여전히 자신의 방 한쪽에 존재하는 미의 자리에 미를 앉혀 주고는 나나를 돌아보며 말했다.
“가자.”
준혁의 말에 나나는 고개를 돌리고는 눈을 감았다.
―귀찮다냥. 혼자 갔다 와라냥.
“에?”
준혁은 자신이 무언가 잘못 들었는지 의심스럽다는 듯이 나나를 바라봤다. 시선에 제법 민감한 나나였기에 뚫어지게 바라보면 한마디 할 법했지만 이상하게도 오늘은 얌전했다.
“진짜 나 혼자 가? 무슨 일 생길지도 모르는데? 걱정도 안 돼?”
준혁이 믿기지 않는 현실을 다시 원상태로 돌리기 위해 나나의 옆에 쪼그려 앉아 평소의 모습과는 다르게 쫑알거렸다.
그러자 나나가 고개를 확 쳐들었다.
―냐냐냥! 시끄럽다냥! 한 번 가 주었으면 된다냥! 견습 마녀가 마나도 모르는 이런 세상에 무엇이 두렵다고 그러는 거다냥!
마구 앞발을 휘두르는 나나의 공격을 살짝 피하며 다시금 무언가 이상함을 느꼈다. 그러나 준혁이 갖고 있는 초감각이라는 것은 단지 느낄 수만 있을 뿐, 정확한 것은 알지 못한다.
조금 더 시간이 지나고 경험을 쌓게 된다면 단순히 느껴지는 감각을 세분화하여 좋은 감각인지 나쁜 감각인지 확실하게 느끼겠지만 아직은 불가능했다.
―귀찮으니 니 사역마랑 갔다 와라냥. 보나마나 소심한 마음에 하는 짓이니 크게 저지르지도 못할 것 아니냥.
“윽!”
어떻게 보느냐에 따라 다르긴 하지만 왠지 나나가 말을 하자 그렇게 느껴지는 준혁은 짧게 신음을 흘렸다.
“쳇, 그럼 미랑 갔다 오지 뭐. 나 갔다 올게.”
―냐앙.
준혁의 말에 나나가 잘 내지 않는 울음소리로 대답을 하였다. 준혁은 그런 나나의 행동을 잠시 지켜봤다.
순간 준혁과 눈을 마주한 나나가 지그시 준혁을 바라봤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 곧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나나야?”
준혁의 부름이 있음에도 나나가 대답을 하지 않고 방 안을 어슬렁거리기 시작했다.
“나나?”
나나의 이상함에 준혁이 나가려던 것을 멈추고 돌아서 나나에게 다가갔다.
―아직도 안 가고 뭐 하고 있는 거다냥!
“아, 미, 미안.”
갑작스럽게 들려오는 나나의 목소리에 준혁이 바로 사과를 했다. 그리고는 자신을 노려보는 나나의 시선에 쫓기듯 집을 나섰다.
“가, 가자, 미야.”
삑.
준혁의 말에 미는 여전히 열려 있는 창으로 나갔다. 미가 나가는 것을 확인한 준혁은 창을 닫고는 조심스럽게 나나의 눈치를 살피며 방을 나섰다.
백이가 아쉬운 듯한 눈으로 문 앞까지 따라왔지만 좁은 방 안이라 바로 코앞이었다. 준혁은 그런 백이의 머리를 한 번 쓰다듬고는 문을 나섰다.
준혁이 나가고 백이가 바닥에 배를 깔고 눕자 방 안에는 정적만이 맴돌았다. 조용히 눈을 감고 있는 나나로 인해 방 안에는 조금 무거운 공기마저 맴돌 정도였다.
―큰일 날 뻔했다냥. 시간이 별로 없다냥…….
끼잉.
백이 역시 무거운 분위기에 배를 깔고 앉은 상태로 조심스럽게 나나의 눈치만을 살폈다. 나나는 백이를 아주 잠시 공허한 눈동자로 바라보고는 고개를 돌렸다.
자신의 검은 몸을 동그랗게 말은 나나는 잠이 든 듯 움직이지 않았다. 하지만 곧 나나의 몸에서는 자색 빛의 기운이 뿜어져 나왔다.
희미하게 뿜어져 나오던 빛은 곧 진한 빛으로 바뀌더니 나나의 몸 전체를 집어삼켰다.
끄응.
백이는 나나의 모습에 무언가 불안감을 느낀 것인지 나나를 중심에 두고 주위를 뱅뱅 돌았다.
가까이 가고 싶지만 지금 나나의 주변에서 뿜어져 나오는 빛은 그 어떤 것의 접근도 막는 것 같은 느낌을 주었기에 함부로 다가가지도 못했다.
마나 수련을 하는 준혁 덕분에 다른 강아지들보다 조금 지능이 좋아진 백이라 하여도 강아지는 강아지였다. 직접 할 수 있는 일은 아무것도 없었다.
끼잉끼잉.
단지 자신의 주인인 준혁이 어서 빨리 저 문을 열고 돌아오기를 기다리는 것밖에는.
* * *
집을 나선 준혁은 사람들이 잘 사용하지 않는 옥상으로 걸음을 옮겼다. 제법 늦은 밤이었기에 사람이 없는 점도 있지만 이제는 마음만 먹으면 자신이 사는 건물 정도의 크기에서 움직이는 사람들을 느낄 수 있을 정도로 감각이 발달된 상태였다.
마나가 성장한 것과 동시에 마녀가 되면서 얻은 초감각이 조금씩 성장하여 생각했던 이상의 효과가 나타나기 시작한 것이다.
“그럼 슬슬 가 볼까? 챙겨 가야 할 것도 있으니. 나나가 빗자루하고 가면을 사용하게 해 줘서 다행이네.”
나름 몰래 꺼내 온다고 깨내 온 것이지만 나나 역시 가져가는 것을 알았음에도 가만히 있는 것은 허락하는 것과 다름없다고 생각한 준혁은 건물 옥상으로 향했다.
건물의 옥상 문 앞까지 여유있게 걸어 올라간 준혁은 빗자루를 살짝 앞으로 내밀고는 주문을 읊기 시작했다.
“자유로움을 추구하는 마녀에게 필요한 힘을 펼쳐라. 비행. 여행하는 마녀에게 필요한 힘을 제공하라. 왜곡. 마녀의 목소리를 잠재워라. 차단.”
빗자루에 저장되어 있는 마법은 그것에 맞는 주문이 필요했다. 주문은 빗자루에 잠겨 있는 마법을 여는 열쇠와 같은 것이다.
물론 단순히 영창만을 한다고 모두 사용이 가능한 것 역시 아니다. 그 열쇠라는 것의 진정한 모습은 영창과 함께하는 마나의 사용이었다.
조금 조정을 하면 영창만으로도 가능하긴 하겠지만, 아직 준혁의 능력으로는 빗자루를 그렇게 개조하는 것은 물론 마법 물품을 만들어 내는 것이 불가능했다.
“조금 자연의 도움이 있는 것이라면 가능하겠지만 말이야.”
탈캉.
자신이 사용한 세 가지 마법을 믿고 준혁은 가볍게 빗자루에 올라탔다. 처음과는 다르게 보드를 타는 자세를 취했지만, 전혀 불안해 보이지 않는 모습이었다.
주변 건물에는 불이 켜진 곳도 있었지만, 허공에 뜬 빗자루에 올라 탄 준혁은 그런 걱정 따위는 전혀 없었다.
거짓.
사기.
속임수.
남의 눈과 귀를 어지럽히는 것들이 많은 세상이기 때문만은 아니었다. 이제는 마법을 사용하면 그것이 제대로 됐는지 안 됐는지 자연스레 알 수 있는 준혁이었다.
그리고 지금은 상당히 잘된 상태였다. 자신의 몸 전체로 퍼진 마나의 느낌과 함께 허공에 자신과 함께 자연스럽게 떠 있는 빗자루.
“흐응.”
빗자루에 올라탄 준혁은 살짝 남성으로 내기는 부끄러운 야릇한 소리를 냈다. 빗자루와 하나가 되는 일종의 마나 연결로 인해 느껴지는 묘한 느낌 때문이었다.
빗자루를 타고 하늘을 나는 것은 단순히 떠 있는 것만으로 가능한 것이 아니었다.
자동차를 보면 방향을 정하는 핸들과 속도를 내는 엑셀, 차를 멈추는 브레이크 등 여러 가지 조절하는 장치가 필요한데, 이와 같은 것들이 없는 빗자루는 그것을 자유자재로 조절하기 위해서는 마나 연결을 통한 정신적인 조절을 해야만 했다.
몇 번 타 본 적이 없는 빗자루이지만 그래도 초감각이라는 것을 갖고 있는 준혁은 생각보다 빠르게 빗자루를 타는 것을 익힐 수 있었다.
“가자, 미.”
삐익!
다른 이들은 보지 못하더라도 준혁의 사역마인 미는 정확하게 준혁이 있는 곳을 보고, 그의 말을 듣고 있었다.
미가 자신의 날개를 활짝 펼쳤다. 펄럭이는 멋진 소리와 함께 지상에서 보면 잘 보이지도 않는 밤하늘을 향해 날아올랐다.
준혁도 그런 미의 뒤를 따라 허공으로 날아올랐다. 먼저 앞장을 서는 것은 미였다. 세찬 그룹의 건물이 있는 곳으로 가기 전에 들를 곳이 있는데, 그런 것을 말하지 않았음에도 잘 알고 먼저 앞장서 가고 있었다.
사역마와는 서로 정신적인 교감을 하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그랬기에 마녀에게 있어 사역마는 중요했고, 그 반대로 사역마에게 있어 마스터는 중요했다.
“다 왔네. 잠시만 기다려.”
삐익.
준혁과 미가 도착한 곳은 인근에 있는 한 야산이었다. 미는 하강하는 준혁과 다르게 높은 나무에 내려앉아 주변을 경계하듯 둘러보기 시작했다.
상당히 늦은 밤인데다 산책로가 아닌 곳이었기에 사람들이 올 걱정은 없지만 미는 한참 군기가 든 신임 병사 같은 모습을 취하였다.
미와는 다르게 준혁은 일찍이 자신이 심어 놓은 마법 생명체가 있는 곳의 마나를 느끼고는 그 위에 자리 잡았다.
“자, 올라오렴, 귀여운 아기들아. 너희들이 일을 해야 할 시간이다.”
준혁이 땅으로 손을 향하게 하고는 작게 말하자 주변의 땅이 들썩이기 시작했다. 그리고는 땅속에서 호박색의 빛이 떠올라 준혁의 손에 잡혀 들었다.
그러나 준혁의 손은 빛나지 않았다. 그의 손에 잡혀드는 순간 빛을 잃은 것이었다. 그렇다고 생명력을 잃은 것은 아니었다.
잠시 자신의 손에 잡힌 것을 직접 확인한 준혁은 그제야 다시 날아오르기 시작했다.
“가자. 이번에는 조금 시간이 걸리겠지만 확실하게 후회를 하게 만들어 줘야겠지. 마녀의 눈 밖에 난 것이 어떤 것인지 뼛속까지 고통스럽게 말이야.”
준혁의 입가에 생긴 미소가 조금씩 사라졌다. 그가 꺼내 든 새하얀 가면이 씌워지며 더 이상 그의 표정을 알 수 없는 상태가 됐다.
마법에 더해 가면까지 착용하여 자신의 모습을 숨긴 준혁과 미는 제법 빠르게 낮에 머릿속에 넣어 둔 위치로 향했다.
일반 길거리에서 찾는 것이 아니라 높은 허공에서 찾는 것이었고, 세찬 그룹도 자신들의 얼굴과도 같은 ‘세찬’이라는 커다란 이름을 건물의 가장 높은 곳에 걸어 놓은 상태였다.
“붉은색과 파란색. 남북을 상징한다고 했지? 꼭 분단을 저렇게 자랑할 필요는 없는데 말이야.”
세찬 그룹의 건물을 어렵지 않게 찾아 조심스럽게 하강하며 말하는 준혁은 가면을 쓰기 전과는 조금 바뀐 상태였다.
작은 변화이지만 그것은 일찍이 준혁을 알고 있는 이라 하더라도 상대방이 준혁이라는 것을 모를 법한 변화였다.
가면을 쓴 준혁의 목소리는 남성의 목소리가 아닌 조금은 뾰족한 여성의 목소리였다. 목소리 변조는 가면이 가진 힘 중 한 가지였다.
“잠겨 있으려나?”
자신의 목소리가 변했음에도 어색함을 느끼지 않는 듯 준혁은 옥상의 문 손잡이를 가볍게 돌렸다. 역시나 문은 잠겨 있었다. 그러나 준혁은 전혀 당황하지 않았다.
“밤을 수호하는 파수꾼들아, 마녀가 왔다. 너희들의 역할을 끝낼 시간이야.”
딸칵.
닫힌 자물쇠가 안쪽에서 열리는 소리가 들리자 준혁은 마치 자신의 집에 들어가는 것같이 자연스럽게 건물로 들어섰다.
‘1층으로 들어올 걸 그랬나?’
세찬 그룹의 건물 위치는 알고 있었지만 내부에 대한 것은 잘 모르고 있는 준혁으로서는 자신이 세운 계획을 위한 장소가 있는 층을 알지 못했다.
그랬기에 대부분의 건물 1층에 있는 안내도가 살짝 아쉬운 상태였지만, 금방 고개를 흔들고는 걱정을 날려 버렸다.
‘일단 사장이 쓰는 곳은 가장 위층이겠지.’
조금 시간을 들이더라도 찾아다니면 되는 일이었고, 가장 먼저 봐야 할 사장이 쓰는 곳은 위층에 있을 것이라는 생각에 내려가는 것을 포기한 준혁이 걸음을 옮겼다.
설마하니 지하 깊은 곳에 요새같이 사장실을 만든 것은 아니라 생각했다. 그리고 그런 준혁의 생각은 맞았다.
한 층을 내려가기가 무섭게 사장실이라 쓰여져 있는 곳이 눈에 들어왔다.
사장실 앞에는 당연하게도 젊고 예쁜, 지적으로 보이는 여비서가 있었다. 그러나 의외로 장소에 맞지 않게 곰같이 덩치가 거대한 이가 여비서의 정면으로 보이는 의자에 앉아 미모의 여비서를 보며 실실 웃고 있었다.
여비서는 눈앞에 있는 거한의 남성이 불안한지 연신 눈을 돌리며 자신을 바라보는 남성의 시선을 회피하고 있었는데, 준혁은 그런 장면을 보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이 늦은 시간에, 그것도 면접을 사장이 직접 볼 일은 없을 텐데…… 그렇다는 것은?’
대충 어떤 그림이 그려지기는 했지만 생각만으로는 모든 것을 판단할 수는 없었기에 준혁은 두 사람 사이를 당당하게 지나쳐 사장실 문 앞에 섰다.
감시 카메라 같은 것의 걱정은 없었다. 일찍이 투명화 마법에 대해 여러 가지 실험을 해 본 준혁이었기에 감시 카메라나 여러 가지 디지털기기에 자신의 모습이 보이지 않는다는 것 정도는 알고 있었다.
‘궁금함을 참지 못하는 마녀는 못된 마녀. 마녀는 결국 판도라의 상자를 열어 본다네.’
이미 자신이 말하는 소리도 들리지 않는다는 것을 알고 있지만, 그래도 준혁은 머릿속으로 노래하듯 마법을 시전했다.
영창이 끝남과 동시에 준혁의 눈동자로 자색 빛이 살짝 맴돌더니, 곧 진한 나무 향을 풍기는 갈색 문이 흐릿하게 변하기 시작했다.
조금씩 보이기 시작하는 사장실 안은 상당히 넓고, 비싸 보이는 가구로 가득했다. 그곳에는 두 명의 인물이 있었다.
반쯤 머리가 벗겨진 뚱뚱한 중년 남성과 나이를 짐작할 수 없는, 뒤통수만 보이는 인물이었다.
사장으로 예상되는 중년인은 연신 땀을 닦고 있는 옆모습이 보였지만 뒤통수만 보이는 이는 하필 좋지 않은 쪽에 앉아 있었기에 얼굴을 확인할 수가 없었다.
‘얼굴은 못 봐도 무슨 말을 하는지는 들어 봐야겠지.’
딱 보아도 전혀 좋은 대화를 하는 것 같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궁금한 것은 궁금한 것이었기에 재차 마법을 시전하려던 준혁은 화들짝 놀랄 수밖에 없었다.
퍽!
“응?”
조금은 둔탁한 소리와 함께 마법을 준비하려던 준혁은 몸을 살짝 옆으로 비켜섰다. 그와 함께 갑작스러운 소리에 여비서와 덩치가 문 쪽을 바라봤다.
문을 바라보던 두 사람은 볼 수 있었다. 정확하게 문 사이를 비집고 나온 짧고 날카로운 나이프의 끝부분을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