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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자신들과는 조금 떨어진 곳에서 일어난 일이었기에 두 사람은 아무렇지 않다는 듯이 고개만을 갸웃거렸지만 준혁은 달랐다.
‘뭐, 뭐야?’
투명한 상태로 마법으로 사장실 안을 들여다보던 준혁이 몸을 틀은 이유는 문 사이에 낀 나이프가 자신에게 날아오는 것처럼 보였기 때문이다.
무슨 일이 생긴 것인지 다시금 고개를 돌려 사장실 안을 살피던 준혁의 눈이 화등잔만 하게 커졌다.
분명 문이 자신을 가리고 있고, 투명한 상태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하지만 뒤통수만 보이던 이, 검은 정장을 입은 삼십대 초반으로 보이는 이가 자신이 있는 쪽을 날카로운 눈으로 바라보고 있었다.
준혁의 머리로 빨간불이 들어오기 시작했다.
정장을 입은 남성이 뚜벅뚜벅 문으로 다가왔다. 안 그래도 다른 신발들에 비해 큰 소리를 내는 구두 소리가 지금 준혁에게 있어서는 더없이 큰 소리로 들렸다.
덜컹.
준혁이 다시 문 쪽에서 멀어지기 무섭게 거칠게 문이 열리며 정장의 인물이 얼굴을 드러냈다.
“흑곰.”
“네, 형님. 벌써 끝나셨습니까?”
“끝나고 자시고가 아니잖아! 내가 사업 이야기할 때는 절대 엿듣지 못하게 하고, 엿듣지 말라고 말했지.”
“제가 형님 생일은 기억 못해도 그것만큼은 기억합니다.”
“그런데 엿들어?”
“그게 무슨?”
퍽!
“크윽!”
쿠훙.
사장실 문을 열고 나온 이는 뒷골목 패거리나 쓸 법한 별명으로 덩치를 부르고는 일어서려는 그의 배를 거칠게 차 버렸다.
“혀, 형님, 나 진짜로 안 들었다니까? 저기 있는 년한테 물어봐요!”
벽에 부딪치며 큰 소리가 났기에 일단 몸부터 걱정할 법하지만 흑곰이라 불린 이는 화가 난 것 같은 정장남성에게 자신의 사정을 설명하는 것이 먼저였다.
흑곰의 말에 형님으로 불린 이는 고개를 돌려 여비서를 바라봤다. 그제야 준혁은 그의 왼쪽 귀 뒤에서부터 턱까지 난 긴 흉터를 볼 수 있었다.
“어이, 아가씨. 지금 이 곰탱이 말이 사실인가?”
“예? 예, 예. 계속 저기에만 앉아 계셨습니다.”
여비서가 정장남성의 질문에 화들짝 놀라 대답했다. 정장남성은 잠시 여비서의 눈을 바라보았다.
“무, 무슨 일이라도 있으십니까?”
정장남성의 뒤로 사장으로 보이는 이가 땀을 닦으며 다가왔다. 돌연 흉기를 던져 얼마나 놀랐는지 몰랐지만, 솔직히 눈앞에 있는 이와 대화하는 것은 사장에게 있어 전혀 달갑지 않은 일이었다.
그러나 정장남성은 사장의 말을 무시하고는 다시금 한쪽을 노려봤다. 그의 시선을 따라 다른 이들 역시 시선을 돌렸다.
“세찬 사장, 혹시 이 자리가 과거에 공동묘지가 있었다거나 하지는 않았겠지?”
“무, 물론이지 않겠습니까. 도시 한가운데인데…….”
“으음.”
정장남성은 아무것도 없는 한쪽 벽을 지그시 노려보더니 피곤한 것인지 양 눈을 살짝 누르고는 고개를 흔들었다.
“혹시 모르니 굿이라도 좀 해 봐. 묘한 느낌이 있으니까.”
“아, 알겠습니다.”
“그보다 일처리는 확실하게 했으니, 받을 것은 받아야겠지.”
“자, 잠시만 기다려 주십시오.”
사장은 뒤뚱뒤뚱 뛰며 사장실로 들어갔다. 정장남성은 다시금 아무것도 없는 한쪽을 노려보고는 사장실 안으로 들어갔다.
사장실 문은 닫지 않았다. 그의 용건은 이미 다 끝난 것이었으니 받을 것만 받아 오면 된다고 생각한 것이다.
정장남성이 사장실로 들어가자 아무도 없다고 생각한 곳에 자리해 있던 준혁은 여전히 놀람으로 인해 심장이 거칠게 뛰고 있었다.
‘감인가? 그렇지만…….’
자신을 귀신으로 착각하고 들어가긴 했지만 만약 그것이 감이라면 놀라운 일이었다. 하지만 준혁은 있는지 없는지 모르는 귀신 같은 것이 아니었다.
분명 살아 있는 사람.
그렇다는 것은 정장남성이 영감을 가진 게 아니라 자신의 마나를 느꼈다고 생각할 수도 있었다.
‘아니면 시선에 예민한 것일 수도.’
조금은 진정되자 준혁은 자신의 위치를 찾아 낸 이의 얼굴을 다시금 머릿속에 각인시켰다.
자신이 특별한 일을 하지 않는 이상 평범한 준혁으로서는 아마 두 번 다시 만날 일은 없을 테지만 혹시 마주치더라도 피할 수 있으면 피하기 위해서.
얼마 있지 않아 검은 직사각형의 가방을 든 정장남성이 나오자 흑곰은 서둘러 그의 손에 들린 가방을 받아 들었다. 그리고는 여비서를 향해 저질스러운 윙크를 날리고는 엘리베이터가 있는 곳으로 향했다.
두 사람이 엘리베이터로 향하는 동안 정장의 인물은 정확하게 준혁이 있는 곳을 다시 한 번 바라봤다.
준혁도 자신이 보이지 않는 것을 알지만 이번에는 그의 시선을 회피하지 않았다. 그러나 정장남성은 다시금 눈을 매만지고는 고개를 돌렸다.
“어디 피곤하십니까?”
“모르겠다. 최근 신경이 예민해져서 귀신까지 느끼는 것 같으니. 그보다 어서 돌아가자. 그리고 다음부터는 이곳에 다른 놈을 보내야겠어. 그다지 달갑지가 않아.”
“귀찮게 하는 날파리도 없는데 걱정은……. A형이십니까?”
“뒈질래? 두 팔 부러뜨려서 바다에 던져 버린다.”
“잘못했습니다.”
과연 조금 전에 발로 걷어차고, 차인 것이 맞는지 의심이 될 정도로 두 사람은 그냥 듣기에는 섬뜩한 농담을 주고받았다.
띵.
엘리베이터가 도착하는 소리가 들리고 나서야 두 사람은 사라졌다. 두 사람이 사라지자 사장과 여비서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나는 이만 퇴근할 테니 차를 대기시켜.”
“예.”
사장이 상당히 지친 표정으로 여비서에게 말을 하고는 사장실로 들어갔다. 준혁은 그런 사장을 바라보지 않고, 여전히 아래층으로 향하는 엘리베이터를 바라봤다.
애초 사장에 관해서는 그렇게 신경 쓰지 않았다. 시간도 늦었기에 자리에 없을 수도 있다고 생각하며 왔기 때문이다.
하지만 자리에 있는 이상 귀찮은 일을 두 번 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한 준혁은 엘리베이터에서 시선을 떼고는 미에게 자신의 의지를 정했다.
[쫓아 줘.]
속으로 미에게 의지를 전한 준혁은 작게 열려 있는 사장실의 입구 앞에 마법진을 그리기 시작했다. 일반인들의 눈에 보이지 않는 독약을 뿌린 것이다.
‘슬슬 시작해야겠지. 그렇지만 쓸데없이 크기만 한 건물이군.’
퇴근을 위해 사장실을 나서는 사장이 몸을 한차례 떠는 것을 보며 준혁은 다음 층으로 내려갔다. 왠지 커 보이는 세찬 그룹의 건물이 상당히 귀찮게 느껴지는 준혁이었다.

* * *

어느새인가 친한 사이가 되어 버린 이후로 항시 같이 돌아다니게 된 은지와 세 아이는 오늘도 어김없이 같이 귀갓길에 오르고 있었다.
은지와 지혜는 바로 근처에 살고 있었고, 나머지 두 사람도 정거장만 다를 뿐, 같은 버스를 타고 학교에 다니고 있었다.
단지 같은 버스를 타는 것만 아니라 학교에서도 같이 몰려다니기 시작한 그녀들이지만 무슨 할 말이 그렇게 많은지 오늘도 어김없이 떠들기 좋아하는 은지와 지연은 연신 입을 나불댔다.
두 소녀의 대화가 재미있는 듯 옆에서 듣고 있는 하은과 지혜가 가끔 입을 가리며 키득거리기도 하였다.
“그보다 내일이 과외하는 날이네. 빨리 과외 시간이 왔으면 좋겠다.”
“너, 진짜 과외 시간 좋아한다? 설마 선생님을 좋아해서 그러는 건 아니지?”
지연의 말에 은지가 조금은 맹한 표정으로 장난 삼아 말했다. 그러나 은지의 말에 지연이 무슨 말이냐는 듯이 되물었다.
“이제 알았어? 흠, 너무 드러나지 않게 대시를 했나? 아! 니가 둔탱이라 몰랐을지도. 하은아, 너는 알고 있었지?”
“그냥 장난 인줄 알았는데?”
“에? 내가 그렇게 가볍게 보였나?”
“응.”
“어.”
“쿠쿡.”
지연이 자신의 머리를 살짝 매만지며 말하자 은지와 하은은 망설임없이 대답했고, 지혜는 옆에서 키득거리며 웃었다.
“어쭈? 좋아, 앞으로는 확실하게 나가야겠네. 두고 봐. 반드시 나한테 넘어오게 할 테니까.”
“내가 볼 때 쉽지는 않을 것 같은데?”
하은이 냉정하게 판단했다. 과외를 제외하고 사적으로 만난 적은 없지만, 일찍이 그녀가 알고 있는 준혁은 쉽게 사람을 사귀는 이가 아니라 생각했다.
그나마 자신들은 우연히 과외를 통해 알게 된 상태였다. 만약 그런 것이 없었다면 절대 친해질 이유가 없을 정도로 무언가 사람들과 벽을 두고 사는 사람 같았다.
“두고 봐. 흥! 이 여왕님께서 확실하게 차지할 테니까. 그보다 어떤 스타일을 좋아하는지 모르니 조금 답답하네. 과거 전적이라도 알면 그걸 토대로 할 텐데 말이야.”
“아마 그럴 시간은 없었을 거야…….”
지연이 쓸데없이 진지한 모드로 들어가며 말을 꺼내자 지혜가 뜻밖의 말을 했다.
“어? 니가 그런 것을 어떻게 알아?”
“그, 그게…….”
준혁이 딱히 지혜에 대해 아는 척을 한 것도 아니었기에 그녀가 먼저 준혁의 순결(?)을 증명하는 말을 하자 지연의 두 눈에서 호기심과 함께 불길이 이글거렸다.
“그, 그게…….”
“어서 말해 봐. 무슨 사이였어?”
지혜의 어깨를 딱 잡아 사전에 도주로를 막은 지연의 박력은 실로 대단했다.
지혜가 머뭇거리기 시작하자 하은이 중재에 나섰다.
“너무 몰아붙이면 놀라서 대답을 못하잖아. 천천히 물어봐.”
물론 그녀 역시도 대답을 꼭 듣겠다는 의지가 조금 실린 말이었지만 말이다.
“가, 같은 고아원에 있었어.”
“어?”
“에?”
“고, 고아원?”
세 사람이 전혀 믿기지 않다는 표정을 지었다. 지혜가 단순히 따돌림을 당하는 것만 알고 있었지, 설마하니 그와 같은 과거가 있을 것이라고는 생각도 못했다.
거기에 더해 준혁은 더욱 그러했다. 무언가 절제된 집안에서 자란 것 같은 느낌을 준 것은 물론이고, 완벽함을 추구하는 것 같은 느낌을 주었다.
“잠깐. 그런데 왜 선생님은 너를 못 알아보는 건데?”
“성하고 이름이 다 바뀌었거든. 그리고 나는 11년 전에 지금의 아버지와 돌아가신 어머니한테 입양되었어. 많이 바뀌어서 못 알아보는 것도 이상하지는 않아. 오빠는 변함이 없지만 말이야.”
지혜의 말에 꿈 많은 소녀들이 모여 있던 밝은 상황이 급격하게 무거워졌다.
“아, 이러려고 말한 건 아닌데…….”
“미안. 진짜로 몰랐어.”
지연이 서둘러 사과를 하자 지혜가 양손을 저으며 그녀를 말렸다.
“이제는 괜찮아. 그보다 오빠 성격상 누군가를 좋아하지는 않았을 거야. 어릴 적부터 상당히 꼼꼼하고 자기 관리가 철저했거든. 그다지 오랜 시간 같이 있던 것은 아니지만…….”
“진짜? 흠, 확실히 선생님이 건들거리거나 하는 모습은 상상이 안 가네. 전혀 변화가 없는 건가?”
“응. 잘 기억이 나지는 않지만 그때 그대로인 것 같은데…….”
“이거, 생각보다 어렵겠는데?”
지혜의 과거에 대한 이야기로 인해 무거웠던 분위기는 준혁에 대한 말이 나오자 곧 바뀌었다. 그 역시 고아라는 것을 알게 되었지만 그것보다는 지금과 같았을 과거의 어린 준혁을 생각하자 웃음밖에 나오지 않는 그녀들이었다.
“선생님에 대해서 말해 봐.”
“오빠? 글쎄……. 솔직히 기억에 남는 것은 그다지 없어서.”
“그래?”
“응. 그런데 고아원에도 그 서열 같은 게 있거든. 그런데 거기서도 오빠는 조금 제외였던 사람 같았어. 오빠보다 나이가 많은 사람도 오빠한테 함부로 못했어. 그래서 오빠를 따르는 애들이 많았는데 항상 혼자 있던 것만 기억해.”
“고독한 남자네. 더욱 멋있다.”
지연은 때 아닌 말로 인해 하은의 눈총을 받았지만, 얼굴에 철판을 깔았는지 그런 시선을 무시했다.
물론 등 뒤로는 식은땀이 흐르고 있었지만.
“아, 그건 기억나. ‘겁먹지 마’라고 자주 말하곤 했어. 어떤 일이든 겁먹지 말라고. 그래서인지 오빠는 고아라는 놀림을 거의 안 받았던 것 같아. 특유의 분위기랄까?”
“하긴. 전에 진짜 멋있지 않았어? 뚱보 패거리들이 귀찮게 굴었을 때.”
지연의 눈이 살짝 몽롱해지며 그때의 일을 다시금 떠올렸다.
자신이 센스있게 접근을 해 위기를 모면했던 그 당시에는 잘 몰랐지만, 지금 생각하면 그 순간만큼은 그 누구에게도 뒤처지지 않을 정도로 멋있고 매력적이었다.
“나 진짜 그때 제대로 꽂혔다니까?”
“확실히 그때는 진짜 멋있었어.”
“에? 설마 너도 반한 건 아니지? 천하의 하은이 상대라면 의지부터 다시 다지고 시작해야 하는데 말이야.”
“그럴 일은 없어. 난 아직 연애에 대한 생각이 없으니까.”
“단지 시기상조란 말이잖아. 여자의 마음은 갈대 같아서 언제 바뀔지 모르는 일이지. 견제해야겠어. 그리고 선생님을 좀 조여서 페로몬 좀 그만 뿌리고 다니라고 하고. 아, 설마 지혜, 너도…….”
“아, 아니야. 나는 그냥 치, 친오빠 같은 느낌으로밖에…….”
“그것도 위험해!”
“그렇게 지혜 몰아붙이는 건 안 좋을걸? 선생님이 지금 당장은 지혜를 몰라 봐도 만약 알게 되면 족보상 시누이가 되는 거 아닌가?”
“윽!”
하은의 말에 지연이 짧게 신음을 흘리고는 뒤늦게 지혜의 눈치를 살피기 시작했다. 그 모습이 우스웠던 세 소녀가 깔깔거리며 웃어대기 시작했다.
“아무튼! 토요일 날 선생님과 데이트할 거니까. 아무도 방해는 하지 말도록!”
“에에? 어떻게? 벌써 약속 잡았어?”
돌발스러운 지연의 선언에 한마디도 못하고 있던 은지가 호들갑스럽게 대화에 끼어들었다.
“아직 잡은 것은 아니지만 내일 과외가 끝나고 나면 반드시 잡힐 거야. 뭐, 데이트 시간이 짧긴 하겠지만.”
무언가를 노리는 듯한 눈으로 지연이 음흉하게 웃자 세 소녀는 그런 지연을 멀리했다. 저와 같은 병은 무엇을 타고 전염되는지 아직 증명되지 않았으니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