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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세찬 빌딩의 곳곳을 돌아다니며 어렵지 않게 간단한 마법을 설치한 준혁은 마지막 작업을 위해 밖으로 나왔다.
건물 밖으로 나온 준혁은 적지 않게 돌아다니는 이들이 있음에도 그들과는 동떨어진 공간에 서 있던 준혁은 앞일을 생각하고는 살짝 웃었다.
“어쩌면 뉴스에 나올지도 모르는 일이겠네.”
자신이 저질러 놓고 나온 일이 제법 크게 터지기 시작하면 일반 티비에서는 아니더라도 인터넷 뉴스에는 나올 법했다.
“자, 그럼 사장의 집도 알게 됐으니까 확실하게 끝마무리를 하고 가 볼까.”
준혁이 더욱더 어두워진 것 같은 하늘을 바라보며 날아올랐다. 미는 그런 준혁보다 높은 곳에서 그를 기다리고 있었다.
“잠시만 기다려. 마지막 작업을 해야 하니까.”
말을 한 준혁 건물을 향해 손을 뻗었다. 그리고는 마법을 발동시키기 시작했다.
“12시가 땡, 하고 울리니 신데렐라는 사라지고 못된 마녀가 찾아왔다네. 마녀와 춤을 출래? 마녀는 못된 마녀라 너희들에게 저주를 걸 텐데. 아쉽겠구나. 신데렐라가 아닌 저주와 함께 춤을 춰야겠구나.”
준혁의 말과 함께 어두운 밤하늘이 움직이는 것 같은 일이 일어났다. 빛보다는 어둠과 함께하는 마나였다.
음의 힘이 강한 밤이 되니 준혁의 마나와 동조해 큰 힘이 움직이기 시작한 것이다.
눈에 띄지 않던 작은 변화는 곧 큰 변화로 나타났다. 드물게 하늘을 본 이들은 구름의 움직임이 심상치가 않았기에 혹시 비가 오는 것은 아닌지 걱정까지 할 정도였다.
“12시가 지나면 재미있는 곳이 되겠네.”
준혁이 다시금 건물을 향해 웃음을 지어 주고는 미의 뒤를 따라 다시금 하늘로 날았다.
사장의 집은 세찬 그룹 건물이 있는 곳에서 얼마 떨어지지 않은, 땅값만 해도 상당한 곳에 위치해 있었다.
“비싼 곳에 사네. 얼마나 더 이곳에서 살지는 모르겠지만 말이야.”
대충 집의 위치를 확인한 준혁은 딱히 내려가거나 하지 않았다. 그저 자신이 챙겨 온 것들을 허공에서 뿌리기 시작했다.
빛을 잃은 그것들은 어두운 밤에 녹아들어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넓은 집에 어울리는 정원에 떨어졌다.
땅에 닿기 무섭게 그것들은 땅속으로 파고들었다. 생명체라고 하기에는 적당하지 않은 모습을 하고 있는 씨앗들이 알아서 땅속으로 파고든 것이다.
“자, 주인으로서 명한다. 마음껏 놀고, 마음껏 즐겨라. 너희들이 만족하고, 내가 만족할 때까지. 저들에게 공포를 심어 주어라.”
준혁의 말에 순간 집의 곳곳에서 노란빛이 반짝였다. 찰나였기에 그것을 눈치챈 이는 없었다. 본다 하더라도 지속적으로 빛나는 것은 아니었기에 걱정 역시 들지 않았다.
“지켜보고 싶지만 내일 할 일도 있으니까.”
삐익삐삐.
“에? 그래도 되겠어?”
삑.
자신이 남아 있겠다고 말하는 미로 인해 준혁은 때 아닌 감동을 느꼈다. 그런 기분에 준혁은 하늘을 날고 있는 미를 꼭 끌어안았다.
미는 불편할 법함에도 준혁의 품이 싫지 않은 것인지 한동안 안겨 있었다. 그러나 언제까지 허공에서 부둥켜안고 있을 수는 없는 상황이었다.
결국 준혁이 미를 놓아 주자 미는 잠시 준혁의 주변을 날더니 한쪽 전깃줄에 조심스럽게 내려앉았다.
가로등도 있기는 하지만 그곳에 있으면 너무 눈에 띄기에 최대한 빛이 적은 쪽에 내려앉은 미였다. 미가 눈에 잘 띄지 않는 곳에 있는 것을 확인한 준혁은 빗자루의 방향을 돌려 집으로 돌아갔다.
준혁이 사라지고 얼마 뒤, 준혁이 준비한 장난이 시작됐다.

* * *

어느 회사든지 규정 시간이 정해져 있기는 하지만 세상은 그 시간에 맞추어 일하는 것만을 원하지는 않았다.
그랬기에 자신의 업무를 끝내기 위해 야근을 하는 이들은 꼭 있었다. 그것은 세찬 그룹 역시 마찬가지였다.
그랬기에 세찬 그룹 건물은 거대한 검은 도화지에 드문드문 작게 낙서라도 한 것 같이 불이 켜져 있었다.
“으음, 드디어 다 끝났네.”
“벌써? 좋겠다. 나 좀 도와주고 가.”
“아, 예. 그전에 잠시 마실 것 좀 뽑아 오겠습니다.”
회사에서는 조금 힘들더라도 친하게 지내는 것이 서로 좋다는 것을 알고 있기에 남자는 다른 이의 부탁을 외면하지 않았다.
“에휴, 피곤하네. 내일은 또 칼같이 출근해야 하는데…….”
잔돈을 짤랑이며 음료수를 뽑으러 가던 그는 자신들의 부서가 아닌 다른 부서에도 불이 들어와 있는 것을 보고는 살짝 고개를 내밀어 안쪽을 살폈다.
예전부터 관심이 있던 부서였다. 물론 업무 쪽이 아닌 마음이 가는 여성 직원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랬기에 혹시나 싶은 마음에 안을 살펴보는 사원이었다.
‘이, 있다!’
상당히 지친 모습이지만 그에게는 그런 모습조차 더없이 아름답게 보이는 여사원을 보자 그는 서둘러 자판기로 향했다.
누군가 있을 때는 말을 걸기가 어렵다. 하지만 부서는 달라도 같이 야근을 한 처지이고, 아무도 없다는 점이 그에게 용기를 불어넣었다.
하지만 자판기 앞에서 잠시 고민에 빠져야만 했다. 항시 종류가 적어 보이던 음료수가 오늘은 더없이 많게 느껴졌다.
“무엇을 골라야 하려나.”
결국 결정을 내릴 수 없던 그는 여러 가지 다양한 음료수를 하나씩 뽑아 들고 나서야 자리를 뜰 수 있었다.
똑똑.
사원은 가볍게 열려 있는 문을 두드렸다. 그러자 유일하게 야근을 하던 여사원이 자신의 자리에서 살짝 고개를 돌렸다.
“아, 피, 피곤해 보이시기에 음료수 좀 뽑아 왔습니다!”
“고, 고맙습니다.”
처음 보는 사람이기에 여사원은 일단 경계를 했다. 같은 회사에 다니는지 자신의 이름이 적인 신분증을 목에 걸고 있기는 하지만 지금은 사람이 없는 밤이었다.
“많이 피곤하시죠?”
“아, 아니에요. 거의 다 끝나서…….”
“예. 무슨 음료수가 좋을지 몰라서.”
나름 친근하게 미소를 지으며 접근한 사원은 여사원에게 자신이 품에 안고 있는 음료수를 보여 주었다.
“풋.”
여사원은 자신도 모르게 살짝 웃고 말았다. 여성으로서의 본능이 눈앞의 남성이 자신에게 관심이 있다고 알려 주고 있었다.
그리고 그런 것을 표현하는 방법이 귀여웠기에 방금 전까지의 경계는 많이 수그러든 상태였다. 오히려 순진한 모습에 호감까지 생긴 상태였다.
자신의 선배가 기다린다는 것도 잊은 채 자신과 대화를 해 주는 여사원으로 인해 남자는 잠시 즐거운 시간을 즐길 수 있었다. 그러나 그 시간은 아주, 아주 잠시였다.
조금씩 문 앞에서 흘러 들어오는 것 같은 하얀 연기가 남자 사원의 뒤에서 하나의 형태를 갖추기 시작할 때까지만 말이다.
“아아아…….”
돌연 열심히 재잘거리던 여사원이 남자에게 손가락질을 하며 제대로 말도 못하고 어버버거리기 시작했다. 남자는 그런 여사원의 행동에 머리 위로 의문 표시를 띄웠다.
“두, 뒤뒤뒤!”
“예? 뒤에 무슨?”
남자 사원이 무슨 뜻이냐는 듯이 고개를 돌렸다. 그리고는 볼 수 있었다.
새하얀 무언가를 말이다. 그리고 그것을 보기가 무섭게 두 사람이 할 수 있는 행동은 하나밖에 없었다.
“끄아아악!”
“꺄아아아!”
목청껏 소리를 지르는 것이었다.
단지 남성 사원에게 지금 당장은 아니지만 훗날 회상할 때 기억에 남을 법한 포옹을 상당히 일찍 하게 됐다는 일이 일어나긴 했지만.
그러나 그와 같은 일은 두 사원만이 겪고 있는 것은 아니었다. 세찬 빌딩의 곳곳에서 각양각색의 비명이 들리기 시작했다.
귀신의 집이 아닌, 귀신의 건물이라는 말을 듣게 되기까지 얼마 남지 않은 시간이었다.

같은 시각.
세찬 빌딩이 아닌 전혀 다른 곳에서 그와 비슷한 일이 벌어지고 있었다.
득득득.
고급스런 집이기에 낮보다 오히려 밤손님이 더 두렵지 않을 정도로 철저한 보안이 되어있는 곳에 묘한 소리가 들려왔다.
득득득.
전혀 걱정 없이 자던 집 안 사람들을 거북하게 만드는 소리는 한 번으로 그치지 않았다.
득득득.
무언의 시위일까?
나름 달콤한 수면에 취에 일어나기 귀찮아 움직이지 않고 있던 이들은 결국 연이은 거북한 소리에 하나둘 힘겹게 눈을 떴다.
“무슨 소리야? 짜증나게!”
사업 차라고 해도 어쩔 수 없이 만나게 된 뒤쪽 세계 인물로 인해 가볍게 술 한 잔을 하고는 깊은 잠에 빠지려 했던 세찬 사장은 짜증을 내며 몸을 일으켰다.
그는 자신의 옆에서 코까지 골며 자고 있는 자신의 부인을 한 번 보더니 인상을 찡그렸다. 자신은 힘겹게 일하고 들어왔는데 부인이라는 사람은 잠만 이렇게 퍼질러 자고 있었으니 말이다.
그때였다.
쾅쾅쾅!
“아, 아빠! 아빠아!”
돌연 문밖에서 들리는 자신의 자식들의 소리에 그는 황급히 일어나 문을 열었다.
아들의 다급한 목소리에 정신이 팔린 그는 보지 못했다, 거대한 창의 뒤로 노랗게 반짝이는 것들을.
그러나 창에 있는 것을 못 보았어도 그는 결국 볼 수밖에 없었다.
“무슨 일이? 흐아악!”
“아빠아, 으아아앙.”
닫혀 있던 문을 열기가 무섭게 그는 물밀듯이 밀려들어오는 거대한 호박 군단을 맞이해야만 했다. 그리고 그런 호박 군단의 머리 위에서 마치 제물이라도 된 것같이 올려져 있는 자신의 큰 아들이 보였다.
“이, 이게 무슨!”
마치 꿈만 같은 현실. 그 믿을 수 없는 현실에 그는 소리만 지를 뿐이었다. 거기에 여전히 눈가리개를 하고 잠들어 있는 자신의 부인 때문을 보며 그는 더욱 분노했다.
마치 움직이는 편안한 침대에서 자고 있는 것같이 호박 위에서 코를 골며 자는 모습에 공포보다는 무능력하고, 무신경한 부인의 모습에 분노할 뿐이었다.
안에 무엇이 들어가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노란빛을 내는 호박은 단순한 호박이 아니었다. 꿈이 아니라는 것을 알지만 꿈이라는 말이 절로 나올 법한 호박이었다.
거대한 호박에서 빛이 나는 것도 그렇지만, 호박의 아래로는 줄기인지 무엇인지 모를 것이 사람의 형태를 유지하여 팔과 다리로 나누어져 있었다.
손바닥 같은 것은 없지만 마치 뾰족하고 끝부분이 날카로운 것이 하나하나가 흉기 같아 보였다. 그렇지만 그런 것 하나하나에 신경 쓸 시간은 없었다.
“아, 아빠아아! 으앙, 저리 가! 내려놓으라고!”
“사, 사람 살려!”
아들이 위험한 상황이지만 별다른 능력이 없는 사장으로서는 단순히 다른 이들에게 들리지 않는 구원의 요청만을 할 뿐이었다.
그러나 사장은 몰랐다. 쓸데없이 집이 큰 것과 주변 소리를 차단하기 위해 개발된 창으로 인해 그들의 목소리를 이웃에게까지 들리지 않다는 것을 말이다.
넓다는 것이 이번에는 전혀 그들에게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것을 말이다.
공포스러운 밤.
그것은 세찬 그룹 가족들에게 있어 길고도 긴 시간이었다. 물론 정신없이 잠들어 있던 사장의 부인은 다른 이들보다는 늦게야 공포를 느꼈고, 가족들이 있는 곳으로 도망을 쳐오지 못한 둘째 아들은 준혁의 건 마법으로 인해 홀로 꿈속에서 상당한 공포를 맛보고 있었지만 말이다.

* * *

평소에도 딱히 많은 대화를 하지는 않았지만 오늘은 주변 이들이 보기에도 한눈에 알 수 있을 정도로 조금은 이상한 분위기를 풍기는 준혁과 유미였다.
정확하게 보면 준혁은 평소와 같았다. 단지 무엇을 생각하는지 정자세로 눈을 감고 있는 것이 평소와는 다른 모습이라면 모습이었다.
하지만 박수도 양손이 만나야 소리가 나는 법이다. 준혁은 평소와 같지만 유미는 평소와는 많이 달랐다. 평소와 같이 준혁의 옆자리에 앉았지만 지금은 그를 감시하는 것 같은 눈초리를 하고 있었다.
신경이 예민한 준혁으로서는 그런 그녀의 시선을 알아차릴 법도 하지만 무엇을 생각하는지 조금 있으면 수업이 시작되는 상황임에도 눈을 감고 있었다.
묘한 분위기를 풍기는 두 사람이기에 다른 이들은 함부로 접근을 못했다. 그렇지만 모두 그러는 것은 아니었다.
“하이, 선배님∼”
무거운 분위기를 풍기는 준혁과는 전혀 반대되는 분위기의 학생 하나가 가장 앞줄에 앉은 유미의 앞에 얼굴을 들이 밀었다.
살짝 파마와 염색을 한 머리가 곱상한 외모와 상당히 잘 어울리는 학생은 살짝 놀라는 유미를 향해 생글생글 미소를 지었다.
“아, 안녕. 그런데 무슨 일이야, 지헌아?”
자신에게 인사를 거는 학생에 대해 알고 있던 것인지 유미는 어색하게 웃으며 그의 인사를 받아주었다.
“에에, 또 어렵게 대하신다. 그냥 편하게 대하시라니까요.”
말투 자체는 편하게 말하고 있지만 듣는 느낌이 전혀 그렇지 않았기에 지헌이라 불린 학생은 남자답지 않게 살짝 볼을 부풀리는 귀여운 행동을 보였다.
“으, 으응.”
지헌의 말에 유미가 다시금 어색하게 대답했다.
“또, 또 그러시네.”
지헌이 다시금 그녀의 실수를 지적했지만 유미는 여전히 어색한 미소만을 지을 뿐이었다. 솔직히 지금 눈앞에 있는 지헌이라는 학생이 달갑지는 않았다.
준혁과 같이 다닌 것이 오래되지는 않았지만, 그의 영향을 받아서인지 무언가 너무 어린아이처럼 가벼워 보이는 모습이 왠지 철이 없어 보였다.
거기에 어제 겪은 일로 인해 지금은 머리가 상당히 복잡한 상태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