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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부마도 1권(6화)
제5장 두꺼비를 잡다(1)
“강호에 ‘하’ 자가 들어가는 문파가 몇이나 있소?”
“글쎄요…….”
독고유가 불쑥 묻자, 진효린은 눈을 치켜뜨며 손을 꼽았다.
“하오문(下午門), 월하장(月下莊), 산하문(山下門) 정도가 가장 알려진 문파인 것 같네요. 우리 가문과 어깨를 나란히 할 정도의…….”
“월하장, 하오문……!”
두 문파의 이름을 뇌까리던 독고유는 문득 떠오른 생각에 눈을 부릅떴다.
월하장과 하오문 모두 그 휘하의 마인들이 되었던 집단이다.
어쩌면 진가를 멸족시킨 이들이 그들 중 하나일 수도 있었다.
“짚이는 곳이라도 있나요?”
진효린은 가슴이 철렁하여 되물었다.
독고유는 대답 대신 그녀를 바라보았다.
“혹여 하오문의 술두꺼비라는 자를 아시오?”
도리도리.
그녀의 고개가 좌우로 흔들렸다.
“그렇다면 월하장의 문추라는 사내는?”
그녀가 또다시 고개를 가로저었다.
독고유는 남몰래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사실 생각해 보면 당연한 것이기도 했다.
그녀는 광동 진가라 불리는 거대 무림 세가의 자녀, 하오문과 월하장 같은 협자들과 어울릴 리가 없었다.
“그렇다면 제갈세가의 소가주들과는?”
“……!”
이어진 독고유의 질문에 진효린의 눈매가 꿈틀거렸다.
이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질문이었다. 모를 리가 없지 않은가.
“그들은 지금쯤 아마 절강에 있을 거요.”
“절강에? 대인께서 그것을 어찌 아시나요?”
진효린은 어쩐지 불쾌한 기색을 보이면서도 호기심을 참을 수 없는 듯 물었다.
“이미 보았잖소? 우리를 지나쳐 갔던…….”
“아……!”
진효린은 그제야 독고유가 멈추고 지나 보냈던 인마의 정체를 깨달았다.
제갈세가의 소가주들이었단 말인가!
“그들이 향하는 관도의 끝에는 항주가 있소. 그리고 항주에 갈 이유는 한 가지밖에 없지.”
독고유는 넌지시 말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사실은 제갈가의 소가주들이 절강에 있으리라는 확신이 있었다. 항주에서 제갈가의 소가주들과 마주쳤었고, 자신이 그들을 죽였었기 때문이다.
“항주에 무엇이 있는데요?”
“사파 제일의 정보통.”
“하오……문?”
하오문은 무뢰배, 기생, 도둑 같은 강호의 잡부들이 모여 만든 문파다.
그들의 힘은 상상 이상으로 대단한 것이어서, 강호의 문파들도 겉으로는 그들을 무시하고 있지만 실제론 그들과 많은 교류를 나누고 있었다.
독고유가 알기로 하오문의 실질적인 규모는 그 어떤 무림문파보다도 컸다. 하오문의 문도는 어디에도 있고 어디에도 없다지 않은가.
“제갈가에서 하오문에 그리 급히 사절을 띄운 이유가 무엇일까요?”
“진가에서 일어난 일 때문이 아닐까 하오. 뭔가 구린 것이 있거나 겁이 나거나 둘 중 하나겠지.”
독고유의 신형은 그야말로 대포알 같았다.
진효린은 눈도 제대로 뜨지 못한 채 독고유의 등에 찰싹 달라붙어 있었다.
독고유가 이토록 빨리 달리는 이유는 간단했다. 제갈세가의 소가주들을 만나기 위해서였다.
타타탓!
내달리던 독고유의 신형은 성벽 위에 올라서서야 멈추었다.
달려온 길을 그대로 되돌아와 항주에 도착한 것이다.
“이곳에 하오문 본부가 있나요?”
“있을 수도 있고, 없을 수도 있소. 그들의 본부가 어느 한곳에 정해져 있는 것은 아니니까.”
말은 그렇게 하면서도 성벽 아래로 신형을 날리는 독고유의 눈빛은 확신에 차 있었다.
그의 눈빛을 보자, 진효린도 묘하게 마음이 안정되었다.
“어디로 가실 건가요?”
“어디긴 어디겠소.”
진효린이 묻자, 독고유는 당연하다는 듯 손을 들었다. 그가 가리킨 곳을 바라보고 진효린의 얼굴이 또다시 하얗게 질렸다.
붉은 등이 걸린 허름한 건물.
“호, 홍루에 본부가 있단 말인가요?”
“문주가 있겠지. 음? 왜 그러는 거요?”
고개를 끄덕인 독고유는 이내 걸음을 멈춘 진효린을 바라보았다. 진효린의 손이 눈에 보일 정도로 부들부들 떨리고 있었다.
“이, 이런 곳에 들어갈 순 없어요!”
“이곳에 들어가면 누가 소저를 잡아가기라도 하오?”
독고유가 한숨을 쉬며 진효린의 손을 잡아끌었지만 요지부동이었다. 그녀는 발작하듯 고개를 저었다.
“절대 못 들어가요. 홍루라니! 대, 대인 혼자 다녀오세요. 저는 제갈세가 분들이 항주에 있을 수도 있으니 찾아보겠습니다.”
독고유의 손을 황급히 뿌리친 진효린이 항주의 거리로 달려 나가자, 독고유는 한숨을 내쉬었다.
“별수 없군.”
독고유는 하는 수 없이 홀로 홍루 안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지하로 들어서자, 여인들의 교성이 사방에서 메아리쳤다. 청루와 달리 지저분하고 음침한 곳이었다.
“공자님, 놀다 가셔요!”
“가가, 싸게 해 드릴게요!”
독고유의 주위로도 창기들이 모여들었다. 젖가슴을 반쯤 내놓고 교태를 부리며 안겨 들었음에도 독고유는 전혀 부끄러운 기색이 없었다.
오히려 안면 가득 웃음 지으며 여인들을 와락 껴안았다.
“꺄아!”
창기들의 입에서 교성에 가까운 탄성이 터져 나왔다. 하지만 뒤이어진 독고유의 속삭임은 이런 열기를 단박에 식히기에 충분했다.
“나는 문주랑 긴히 대화할 것이 있는데…… 어디 있는지 아시오?”
“가가, 그게 무슨 말씀이세요? 어려운 이야기 하지 말고 저와 놀아요!”
창기들은 더욱 교태를 부리면서 말하고는 독고유에게로 안겨 왔다. 독고유도 그녀들을 더 세게 껴안았다.
그 순간, 창기들의 표정이 급변했다. 독고유의 손이 닿자, 가공할 경력이 흘러들었기 때문이다.
창기들이 밀어내도 그녀들을 껴안은 독고유는 요지부동이었다. 오히려 그녀들을 더욱 꽉 껴안으며 속삭였다.
“문주와는 오랜 친구 사이요. 이미 알고 왔으니 목숨이 아깝다면 이야기해 주는 것이 좋을 거요.”
창기들은 컥컥대는 소리를 내면서도 이를 으득 갈았다. 문주가 이곳에 와 있다는 것을 아는 이는 외부인 중에 없을 것이 분명한데, 이 사내는 누구란 말인가.
게다가 독고유의 말속에는 말하지 않는다면 단박에 자신들을 죽이고 다른 상대를 찾아보겠다는 협박의 기운이 가득 담겨 있었다.
“수, 술 창고…….”
마침내 견뎌 내지 못한 창기 하나가 신음하듯 입을 열었다. 독고유가 다시 고개를 갸웃하자, 이번에는 다른 창기들이 앞 다투어 외쳤다.
“술 창고 안에……. 제발…….”
독고유는 그제야 여인들을 놓아주었다. 숨을 몰아쉬며 창기들이 땅에 주저앉자, 그는 그녀들을 지나쳐 창고가 있는 안쪽으로 발걸음을 돌렸다.
숨을 헐떡이던 창기들은 독고유가 등을 돌리자, 서로 눈을 맞추었다. 그들의 손이 가슴 언저리를 뒤져 가느다란 대롱을 하나씩 꺼내 들었다.
푸슈슉!
여섯 개의 대롱에서 바람 빠지는 소리와 함께 대침이 쏘아져 나갔다. 하나만 스쳐도 독고유의 목숨을 앗아 갈 극독이 발라져 있음은 두말할 나위도 없는 것이었다.
후웅!
대침이 독고유의 몸에 닿기 직전, 바람 소리와 함께 독고유의 백의가 살짝 팔락였다.
쿠당탕!
“꺄악!”
대침이 땅으로 후드득 떨어져 내리기가 무섭게 창기들의 몸이 돌풍에 휘말려 홍루의 벽에 부딪쳤다.
들려오던 교성들이 일시에 뚝 끊어지나 싶더니 사방이 삽시에 어두워졌다.
“역시 그냥 보내 주진 않는군.”
독고유는 한숨을 내쉬며 목도를 뽑아 들었다. 그의 좌우로 늘어선 문들이 파도치듯 열리며 속내를 드러냈다.
옷을 걸친 듯 만 듯 보이는 창기들이 하나같이 입에 대롱을 물고 있었다.
푸슈슈슉!
사방에서 대침이 내는 반사광이 번뜩였다. 독고유는 지체하지 않고 목도를 휘둘렀다.
목도가 회오리치듯 사방팔방으로 휘둘러지자, 독고유의 발치로 수십 발의 대침이 우수수 떨어져 내렸다. 한차례 쏟아진 암기를 막아 낸 독고유의 왼손에서 새하얀 장력이 일렁였다.
“흐아아압!”
독고유가 기합성과 함께 대들보를 향해 일장을 내지르자, 새하얀 빛이 어두운 건물 안을 환히 밝혔다. 대들보에 독고유의 손바닥 자국이 커다랗게 새겨지나 싶더니 뒤이어 귀를 찢는 굉음이 터져 나왔다.
쩌저저적!
“꺅!”
천장과 바닥으로 거미줄 같은 금이 일시에 퍼져 나갔다. 독고유의 몸에서 뿜어져 나온 해일과 같은 기류에 창기들이 비명을 내지르며 나자빠졌다.
“후우……. 용케 무너지진 않았군.”
금방이라도 무너질 듯 폐허로 변해 버린 건물을 주욱 둘러본 독고유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입을 열었다.
게다가 창기들도 대부분 혼절하여 정신을 잃었으니 죽이지는 않은 셈이었다.
“술두꺼비 녀석, 녀석이야말로 내가 함께하지 않으면 큰일 날 녀석이지.”
바닥에 쑤욱 박힌 두 발을 힘겹게 빼낸 독고유는 휘적휘적 건물 안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끼이익!
독고유가 내지른 일장의 여파는 그야말로 대단해서 가장 안쪽에 있는 술 창고의 문에도 균열이 가 있었다.
독고유가 창고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서자, 술 냄새가 진하게 코를 자극했다.
“어이, 주합(酒蛤)! 있느냐?”
“히끅! 어떤 망할 녀석이 이 몸의 이름을 함부로, 히끅!”
독고유가 위풍당당하게 외치자, 술에 찌든 목소리가 어두운 창고 안에서 울려 퍼졌다.
독고유는 인상을 찌푸렸다. 그는 옆에 놓인 술병 하나를 들어 잔뜩 쌓인 술 단지를 향해 내던졌다.
쨍그랑!
“뭐, 뭐야! 이 미친놈이 이 귀한 술을……!”
술 단지가 깨지며 술이 흘러나오자 주합이 대로하여 외쳤다. 하지만 그것으로 끝이 아니었다. 어느새 독고유의 왼손에 불길이 일렁이고 있었던 것이다.
“네, 네놈……. 설마! 아, 안 돼!”
독고유의 손에 맺힌 삼매진화의 불길이 술독을 향해 쏘아져 나갔다. 그리고 그 불꽃을 쫓는 주합의 고개가 느릿느릿 술독을 향해 돌아갔다.
콰르르!
창고의 한쪽 벽 전체로 커다란 불꽃이 피어올랐다. 술독이 마구잡이로 터져 나가며 불길에 더욱 힘을 보태고 있었다.
“이, 이 미친놈이 내 술을……!”
모습을 드러낸 주합은 그 이름과 달리 대단히 선이 굵은 얼굴의 사내였다.
큰 눈과 높은 코, 그리고 근육질의 몸은 결코 독고유에 뒤지지 않았다.
하지만 이런 상황에서는 아무런 소용이 없었다.
감히 어느 누가 하오문 문주의 술을 태워 버린단 말인가!
충격과 경악으로 백지 상태가 되어 버린 주합의 앞으로 독고유가 천천히 다가섰다.
“술두꺼비, 이제 술이 좀 깨나?”
“이 미친놈아! 네놈이 술독에 불 지를 때 깼다!”
턱!
주합이 황망하게 외치자, 독고유가 그런 그의 머리를 움켜쥐었다.
“그럼 우리 대화를 조금 나눠 보도록 하지.”
“뭐? 그, 그게 무슨……. 으악! 으아악!”
독고유의 입에 잔인한 미소가 번져 나갔다. 영문도 모른 채 그에게 붙잡힌 주합의 입에서 공포의 비명이 터져 나왔다.
“술에 절어 있으니 네 녀석의 몸도 활활 잘 타겠군. 그렇지 않나?”
“이 미친놈아, 내려……. 으아악! 으악!”
혈도를 제압당한 주합의 몸이 허공을 휘휘 날았다. 그의 발목을 움켜쥔 독고유는 주합의 머리통을 불길 바로 앞까지 가져다 댔다가 다시 뒤로 휘둘렀다.
“불! 불붙었어! 으악! 미친놈아! 불붙었다고!”
“하오문의 문주가 꼴사나운 소리를 하는군.”
옷깃에 붙은 불에 주합이 자지러지는 비명을 내질렀다. 하지만 돌아온 것은 태평한 독고유의 목소리였다.
“뭐, 뭣? 네놈이 그걸 어떻게……. 으아악! 아니, 잘못, 잘못했어! 잘못했습니다!”
“아니, 네가 잘못한 건 없다. 아직까지는.”
주합의 머리가 다시 불길에 닿을 듯 가까워졌다.
주합은 공포에 질린 듯 외쳤지만, 독고유는 여전히 강 건너 불구경하는 듯한 태도였다.
“사, 살려 줘요! 형님!”
“죽이지 않을 거다, 아직까지는.”
마귀다. 이놈은 마인이다.
독고유의 모습이 마귀와 겹쳐 보이면서 결국 오줌을 지리고 만 주합이었다.
“히끅! 흐윽, 히끅!”
독고유가 주합을 놓아준 것은 한 식경이나 그를 휘두른 다음이었다. 혼이 반쯤 나간 주합은 똥오줌을 지린 것도 개의치 않은 채 눈물을 줄줄 흘리고 있었다.
정신을 차린 창기들이 벽 가득 퍼져 나간 불길에 물을 쏟아 부었지만 소용없었다.
이미 창고 한가득 들어 있던 술은 모조리 타 없어지고 말았던 것이다.
“술두꺼비, 이제 조금 진정이 되나?”
정작 이 모든 일을 해낸 장본인 독고유는 태평하기 그지없었다. 그의 가공할 무위를 경험한 창기들은 그의 곁으로도 다가오지 않았고, 하오문주 또한 거의 반쯤 정신이 나가 있으니 독고유는 거의 공포의 마왕이 되어 있다 할 수 있었다.
하지만 정작 독고유는 그에게 미안한 마음이 없었다.
평상시에도 제정신이 아니던 인물이었다. 이렇게라도 따끔하게 손을 써 두어야 자신의 곁에 둘 때에 마음이 편할 터였다.
“네, 네에, 형님……. 흑…….”
독고유가 얼굴을 불쑥 들이밀자, 주합이 화들짝 놀라 그를 바라보았다. 독고유는 작게 한숨을 쉬었다. 예전이나 지금이나 참으로 단순한 놈이다. 예전에는 하오문의 삼천여 문도들을 모조리 죽이자 이런 상태가 되었었고, 이번에는 불장난을 좀 치니 이렇게 되어 버렸다.
“너를 정말로 죽이기 위해 그랬던 것은 아니다. 알고 있지?”
“아, 알고 있수. 그럼!”
주합은 고개를 끄덕였다. 문도의 수를 합치면 십만은 족히 된다는 하오문의 문주가 보이기에는 너무 비굴한 모습이었다.
“그래. 그렇다면 이 형님이 몇 가지 질문을 하마.”
독고유는 주합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다정하게 물었다. 주합은 독고유의 손이 자신의 머리에 닿자, 화들짝 놀라며 황급히 고개를 끄덕였다.
참으로 잘생긴 얼굴인데 하얗게 질려 바들바들 떠는 것이 여간 처량해 보이는 것이 아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