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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부마도 1권(7화)
제5장 두꺼비를 잡다(2)
“혹시 제갈가 녀석들이 이곳에 오지 않았어?”
“와, 왔었소. 의뢰를 하러…….”
주합이 황급히 대답했다. 독고유가 원하는 것은 무엇이든 대답해 주고 독고유가 빨리 그의 곁을 떠났으면 하는 모양이었다.
“무슨 의뢰?”
“과, 광동 진가에 대해서 아시오?”
주합이 침을 꿀꺽 삼키며 되묻자 독고유가 한쪽 눈썹을 치켜세웠다. 주합은 말을 멈추고 주위를 휘휘 둘러보았다. 불을 거의 끈 창기들이 황급히 멀찌감치 물러났다.
“설마 진가의 일에 네가 연관되어 있지는 않겠지?”
창기들의 인기척이 저만치 멀어지자 독고유가 재촉했다. 주합은 고개를 젓고는 재빨리 입을 열었다.
“뒤가 구린 일은 건드리지 않는 것이 철칙이우.”
“다행이로군. 혹시 그놈들이 진가를 습격한 것 같지는 않던?”
독고유는 진심으로 안심했다. 진가와는 연관이 없다. 그것만으로도 이곳에 온 모든 목적이 달성되는 기분이었다.
주합은 고개를 몇 번이고 끄덕였다.
“그들이 한 일은 아닌 듯했수. 사파의 누군가이거나, 혹은 대외 세력일 수도 있다면서…….”
“야, 술두꺼비, 네가 올해 몇이지?”
주합이 눈을 동그랗게 뜨며 바라보자, 독고유가 불쑥 물었다. 주합은 손가락으로 나이를 꼽았다.
“올해 스물하나요.”
“그럼 네가 문주가 된 지는 얼마나 됐지?”
“이, 이 년이오.”
“문주가 되기 전에는 뭘 했지?”
“싸, 싸움꾼이었소. 당연히…….”
독고유가 연신 묻자, 주합이 서서히 불길한 기운을 감지하고는 말을 더듬었다.
독고유는 거기서 질문을 멈추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주합은 뒷골목 무뢰배들 사이에서는 거의 신으로 추앙 받는 존재였다.
내공은 미비하지만 실전으로 다져진 무위와 그 특유의 무공으로 뒷세계의 패왕이 되었던 자다.
“네놈이 마셔 본 술이 얼마나 되나?”
“양으로 치면 몇 섬은 될 거요. 종류로 치면 몇 안 되는데…….”
주합이 불안한 듯 독고유의 눈치를 살폈다. 독고유는 만족스러운 듯 씩 웃었다.
“나도 술이라면 사족을 못 쓰지.”
“……?”
“나도 술 엄청 좋아한다는 말이다.”
주합이 이해하지 못한 듯 되묻자, 독고유가 씩 웃으며 주합에게로 조금씩 다가갔다.
“히익!”
독고유가 한 걸음을 내디디면 주합이 뒤로 한 걸음 물러났다. 독고유는 멈추지 않고 계속 발걸음을 옮겼다.
주합은 팔로 기면서도 그 보조에 맞추어 계속 뒤로 도망쳤다. 독고유의 얼굴이 코앞에 다가오면 무서운 일이 생길 것만 같았다.
스스슥! 턱!
등에 벽이 와 닿았다. 주합은 사색이 되어 침을 꿀꺽 삼켰다. 목울대가 아래위로 꿈틀대는 가운데 독고유의 웃는 얼굴이 천천히 다가왔다.
“나랑 강호에 있는 모든 술을 다 마셔 보고 싶지 않나?”
“네, 네에? 무, 무슨…….”
“마셔 보고 싶지?”
주합이 이해하지 못한 듯 말을 더듬었지만, 독고유에게 이미 자비란 없었다.
독고유의 웃는 얼굴이 코앞까지 다가오자, 주합은 처량할 정도로 식은땀을 흘리며 고개를 끄덕였다.
“마, 마셔 보고 싶수…….”
“그래? 잘되었군. 그렇다면 나랑 가면 되겠네.”
마침내 모기 소리 같은 목소리가 새어 나오자, 독고유가 재빨리 몸을 뒤로 빼며 고개를 끄덕였다.
“에……?”
주합의 입에서 바람 빠지는 소리가 새어 나왔다. 방금 자신이 두려움에 질려 무슨 대답을 한 것인지 아직 이해가 되지 않았다.
“나와 함께 강호의 모든 술을 마셔 보자. 어떠냐?”
“그, 그래서 어떻게 하자는……?”
주합이 망연자실하게 올려 보자, 독고유는 씩 웃으며 손을 내뻗었다.
“뭐긴 뭐겠냐. 이 형님이랑 같이 강호 유람 좀 하자는 거지. 재미있는 일이 많이 남아 있어.”
“히, 히익!”
“호오? 빨리 안 잡아?”
그제야 상황 파악이 된 주합이 두려움에 가득 찬 신음을 흘렸다. 하지만 독고유가 슬쩍 인상을 찌푸리며 말하자, 그의 몸은 의지와 상관없이 어느새 독고유의 손을 붙잡고 있었다.
“과연 뒷골목의 패왕답군. 신체 건강하고……. 아, 우선 옷부터 갈아입어야겠군. 그렇게 똥오줌 지린 옷으론 하오문 문주의 체통이 서질 않지.”
“아, 아아…….”
엮였다. 영락없이 코 꿰였다. 이 웃는 얼굴의 마귀와 함께 다녀야 한다니!
절망에 빠진 주합의 몸이 신음과 함께 허물어졌다.
하지만 독고유는 그런 절망을 맛보게 할 여유도 주지 않았다.
“어서 따라와라. 안 그러면 하오문 문주가 바지에 똥오줌 지렸다고 강호에 소문낼지도 모르니까.”
“아이참, 대인은 너무 짓궂으신 게 탈이라니까.”
진효린은 얼굴을 붉히며 연신 발걸음을 옮겼다. 아녀자의 몸으로 어찌 홍루 같은 곳에 발을 들일 수 있단 말인가.
“그런데 대인은 어떻게 하오문의 본부를 알고 계신 거지? 하오문 본부는 하오문 문도 외에는 아무도 모르는 곳에 있다고 했는데…….”
진효린은 고개를 갸웃하며 중얼거렸다.
하지만 이것은 진효린이 하오문의 성향에 대해 잘 모르고 있기 때문에 발생한 오해였다.
하오문의 본부를 찾을 수 없는 것은 하오문의 문주가 있는 곳이 곧 본부가 되기 때문이었다.
하오문의 문주가 한곳에 정착하는 것을 좋아한다면 모르되, 주합처럼 이곳저곳 떠돌아다니기 좋아하는 사내가 하오문의 문주가 된다면 본부가 자주 바뀔 수밖에 없었다.
독고유는 이전에 항주에서 주합과 만난 적이 있었기에 과거로 돌아온 지금에도 주합이 어디에 있는지 알 수 있었던 것이다.
“어쨌든 대인께서는 하오문주를 만나러 가셨으니, 나는 혹시 제갈가 분들이 아직 남아 있는지 찾아봐야겠다. 솔직히 별로 마주치고 싶지는 않지만…….”
진효린은 소항객잔(蘇抗客盞)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항주에서 가장 큰 객잔이니, 제갈세가 사람들이 항주에 있다면 그곳에 있으리라는 생각에서였다.
두근!
소항객잔으로 들어선 진효린의 발걸음이 우뚝 멈추었다. 문인들의 사이로 선명하게 푸른 도복의 사내들이 보였기 때문이다.
제갈가의 삼형제를 보는 순간, 심장이 내려앉는 것처럼 크게 뛰었다.
“가야 해. 가서 이야기를 들어 볼 거야.”
심호흡을 하며 숨을 가라앉힌 진효린은 천천히 발걸음을 옮겼다. 어깨를 치고 지나가는 사람들은 전혀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굳은 표정으로 이야기를 나누는 푸른 도복의 세 사내만이 진효린의 눈에 가득 맺혀 있었다.
“분명 다음엔……. 헉!”
“사, 사매!”
진효린이 상 앞으로 다가서자, 굳은 표정으로 이야기하던 막내 제갈명(諸葛明)이 숨을 들이켰다. 옆에 앉은 둘째 제갈호(諸葛護)의 입에서 경악한 목소리가 새어 나왔다.
“사매, 진정 효린 사매인가?”
장남 제갈강(諸葛强)이 믿을 수 없다는 표정으로 진효린을 올려다보았다.
제갈강과 눈이 마주치자, 진효린은 두근거리던 심장이 차갑게 식는 느낌을 받았다.
이상하게 머리가 차갑고 주위 상황이 확실하게 인지되었다.
“사, 사매……. 살아 있었군! 다, 다행이야!”
제갈호가 벌떡 일어서 진효린에게 다가왔다.
하지만 진효린은 분명 보았다. 그의 바르르 떨리는 다리와 제갈강을 힐끗 살피는 불안한 눈빛을.
“사매, 살아 있었다면 우리에게 가장 먼저 연락을 주었어야 할 것을 어찌 그동안 연락 한 번 주지 않았는가!”
제갈강이 버럭 화를 냈다. 진효린의 고개가 그에게로 돌아갔다.
“저를 찾지도, 우리 가문을 다시 찾지도 않으셨잖아요. 제가 모를 줄 아셨나요?”
“뭐, 뭣?”
진효린이 나지막하게 되묻자, 제갈강이 뒤로 흠칫 물러섰다.
“어째서 그토록 가깝게 지내던 우리 가문에 한 번도 발을 들이지 않을 수가 있지요? 아버님도, 어머님도, 오라버니들도 모두 돌아가셨는데 어떻게…….”
진효린의 주먹이 부들부들 떨렸다.
“사매, 그게 아니야. 우리는 진가를 습격한 적을 찾으려고…….”
제갈명이 식은땀을 흘리며 손을 뻗었다. 진효린은 그의 몸을 밀어냈다.
“결코 우리 가문을 위해서는 아니었지요. 겁이 나신 건가요? 진가에 이어 제갈가도 하루 만에 몰살당할까 봐?”
“사매, 말조심하게!”
제갈강이 발끈하여 버럭 외쳤다. 진효린의 입가에 냉막한 비웃음이 흘렀다.
“겁이 났었어요. 내 존재를 잊은, 우리 가문의 존재를 잊은 이들과 다시 만난다는 것이. 그런데 알고 보니 별것 아니었네요. 그저 다들 겁쟁이일 뿐이었어요.”
“사매, 사매!”
진효린이 휙 몸을 돌리자, 제갈호가 그녀를 잡으려는 듯 손을 뻗었다.
하지만 제갈강이 그를 저지했다. 진효린을 마주할 때와 다른 날카로운 눈빛이었다.
“살아 있었다니, 정말 놀랄 일이로군.”
“형님, 사매를 붙잡는 게 좋지 않을까요?”
“아니다. 한 명이 찾는 것보다 둘이 움직이는 것이 효과적일지도 모르지. 그보다 자객들이 따라붙었군.”
제갈명의 눈이 객잔 밖으로 나서는 진효린의 뒷모습을 불안하게 바라보았다. 하지만 제갈강의 입가에는 오히려 다행스러운 미소가 번져 나가고 있었다.
진효린의 뒤를 은밀히 따르는 두 신형의 뒷모습을 바라본 제갈강의 고개가 천천히 객잔 안으로 돌아갔다.
“겁쟁이들. 내가 그런 이들을 사형으로 따랐었다니…….”
발걸음을 옮기며 진효린의 얼굴은 이제야 붉게 달아올랐다.
저런 이들에게 잠시나마 기대를 걸었었다는 사실이 수치스러울 지경이었다.
누구의 도움도 필요 없었다. 그저 독고유와 함께 가문의 원수를 갚으리라 다짐했다.
“어머?”
홍루로 발걸음을 옮긴 진효린은 아까와 사뭇 달라진 홍루 건물을 바라보며 탄성을 터뜨렸다.
건물이 살짝 기울어 있었다.
게다가 안에서부터 시작된 듯한 작은 균열들이 건물 전체에 퍼져 있어, 행여 잘못하면 당장이라도 무너져 내릴 듯했다.
홍루의 밖으로 반쯤 속살을 드러낸 사내들이 황급히 빠져나오는 것이 보였다.
“정말 못 말린다니까…….”
그제야 상황이 인지된 진효린은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누구의 짓인지는 길게 생각해 볼 필요도 없었다.
홍루의 입구로 독고유가 천천히 걸어 나왔다. 붉은 도복의 청년이 쭈뼛쭈뼛 주위를 살피며 독고유의 뒤를 따랐다.
“대인!”
진효린이 그를 부르자, 독고유가 씩 웃으며 팔을 벌렸다.
독고유의 넓은 품을 보자, 진효린은 저도 모르게 감정이 복받쳐 그에게로 달려들었다.
“대인! 흑…….”
독고유의 품에 안긴 진효린의 목소리가 작게 떨려 왔다.
독고유는 진효린이 진짜로 안길 줄은 몰랐던 듯 당황한 표정을 짓다가, 진효린이 훌쩍이기 시작하자 한숨을 내쉬더니 미소를 지으며 그녀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저…… 형님, 이 소저는 누구요?”
독고유의 뒤에서 죽은 듯 서 있던 주합이 조심스레 물어 왔다.
“헉!”
순간, 주합의 눈에 떠올랐던 기대의 빛이 삽시에 공포의 빛으로 바뀌었다.
독고유는 여전히 미소를 짓고 있었지만, 진효린에게 보이는 미소와는 정반대의 느낌을 주었던 것이다.
그녀를 털끝 하나라도 건드렸다간 네놈의 뼈까지 갈아 마셔 주리라는 무언의 압박이 주합의 뇌리 가득 퍼져 나갔다.
“자, 소저, 인사하시오. 이 녀석은 술두꺼비, 내가 아주 각별히 아끼는 아우요.”
‘각별히’에 어조가 유달리 강하게 들어갔기에 진효린은 눈물을 닦으며 고개를 숙였다.
독고유가 이리 말하는 인물이니, 분명 그에 버금갈 대인일 터였다.
“진효린이에요. 초면에 좋지 않은 모습을 보였네요.”
“아, 아닙니다! 주, 주합이요! 하, 하하…….”
독고유의 말에 하얗게 질린 주합은 진효린이 먼저 인사하자 어찌할 바를 모르고 뒷목을 긁적였다.
“소저, 이 녀석에게는 편히 말해도 될 거요. 내 아우니 소저가 낮춰 부르지 못할 것도 없소.”
“그, 그래요. 제발 낮춰 불러 주시오, 누님. 저도 앞으로 누님이라 부를 테니…….”
주합이 황급히 덧붙였다. 진효린은 그런 그의 얼굴을 빤히 올려 보다 배시시 웃었다.
“역시 대인만큼이나 좋은 분이네요. 알았어. 그럼 앞으로 잘 부탁해, 주합 아우?”
진효린이 생긋 웃자, 독고유가 흐뭇한 듯 고개를 끄덕였다. 뭔가 입을 열려던 그는 문득 뭔가를 느꼈는지 한쪽 눈썹을 꿈틀거렸다.
“호오, 파리가 꼬였나? 아니면 다른 놈들인가?”
“네?”
독고유가 나지막하게 중얼거리자, 진효린이 재빨리 고개를 돌렸다. 주합의 침 삼키는 소리가 들려왔다. 독고유의 입가에 또다시 잔혹한 미소가 번져 나갔던 것이다.
“똥파리가 따라붙었소. 인적이 드문 곳으로 갑시다.”
“하아……. 네.”
단호히 말한 독고유가 발걸음을 돌리자, 진효린은 한숨을 내쉬며 그의 뒤를 따랐다. 주합은 눈동자를 이리저리 굴리며 멀어져 가는 둘의 뒷모습을 바라보았다.
“어이, 두꺼비! 빨리 안 따라와?”
“가, 갑니다, 형님!”
여지없이 독고유의 외침이 주합의 귓가를 때렸다. 주합은 그제야 숨을 들이켜며 황급히 둘의 뒤를 따랐다.
왠지 일이 귀찮아질 것 같다는 생각을 하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