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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부마도 1권(8화)
제6장 천적을 이용하다(1)
전당강(錢塘江)은 작은 줄기들이 많이 갈라지고, 또한 깊고 굽이치는 강이었다.
독고유가 일을 벌이기에는 딱 알맞았다.
“여기라면 시체도 안 떠오를 테고……. 으, 으음…….”
음험한 웃음을 지으며 중얼거리던 독고유는 고개를 휘휘 저었다. 주합과 함께하고 있기 때문일까, 마도종주일 때의 습관이 불쑥 튀어나왔던 것이다.
“야, 두꺼비.”
“응? 예, 예?”
멀찌감치 따라오던 주합이 화들짝 놀라 독고유를 바라보았다.
독고유는 손가락을 들어 주합의 뒤편을 가리켰다.
“느껴지냐?”
주합은 인상을 찌푸리며 고개를 돌렸다.
진효린도 기운을 끌어올리며 독고유의 손가락 끝을 따라 시선을 돌렸다.
“뭐가 느껴진다는 거요?”
“……둘?”
주합이 심드렁하게 고개를 돌릴 찰나, 진효린이 긴장한 표정으로 독고유를 바라보았다.
“아까부터 계속 우리를 따라오더군. 보나마나 똥파리나 날파리겠지.”
“그, 그 이야길 왜 나한테 하는 거요?”
주합이 침을 꿀꺽 삼키며 물었다.
평상심을 유지하려 애쓰는 모양이었지만, 안타깝게도 목소리는 수습하기 힘들 정도로 떨려 오고 있었다.
“네놈 실력 좀 보자고. 파리 잡는 데는 두꺼비가 최고지 않냐. 안 그래?”
독고유가 피식 웃으며 말하자, 주합의 얼굴이 붉게 물들었다. 진효린도 풋 하고 웃음을 터뜨렸다.
“젠장, 알았소! 내가 하겠수! 칫, 나는 그냥 두꺼비가 아니라 술두꺼비라고…….”
주합이 투덜대며 몸을 돌리자, 독고유는 피식 비웃음을 흘렸다.
누가 무뢰배 아니랄까 봐, 죽어도 억지로 하는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젠장! 똥파리랑 날파리? 어디에 있다는 거야?”
주합은 뼈에 소리가 나도록 몸을 풀며 휘적휘적 걸어 나갔다. 무기도 없이 나서는 것이 여간 무모해 보이는 것이 아니었다.
“괜찮을까요?”
“뭐가 말이오?”
두 사내를 바라본 진효린이 조심스럽게 속삭였다. 독고유가 심드렁하게 되묻자 그녀는 주합을 가리켰다.
“보니 다른 이들의 기척도 제대로 느끼지 못하는 것 같던데……. 저 두 흑의인은 최소한 일류 무인쯤은 될 거라고요.”
“일류? 소저가 보기엔 저런 날파리들이 일류로 보이오?”
독고유는 비웃음을 흘리며 말을 이었다.
“저 술두꺼비 녀석이야말로 일류 싸움꾼이요. 잘 보는 게 좋을 거요. 싸움의 승패는 무공으로 갈리는 것이 아니니.”
“으음.”
말을 마친 독고유가 눈을 번뜩이며 주합의 뒷모습을 바라보자, 진효린도 고개를 끄덕이며 그에게로 시선을 돌렸다.
주합은 그런 둘의 시선을 아는지 모르는지 짜증이 가득 섞인 목소리로 투덜대고 있었다.
“어디서 저런 녀석이 나타나서……. 도대체 날 언제 봤다고 술두꺼비, 술두꺼비 하면서 부려먹는 거야?”
아무리 기억을 되짚어 보아도 독고유란 사내와 관계된 적은 없었다.
하지만 저 사내는 자신을 오래 알아 온 것처럼 말하니 의문스럽기도 하고, 짜증이 나기도 했다.
“날파리건 똥파리건 어서 나오라고! 지금 이 술두꺼비님께서 아주 화가 나셨으니까 말이야!”
언덕 중턱까지 올라선 주합이 버럭 소리쳤다.
주위의 공기가 삽시에 차갑게 가라앉나 싶더니 언덕 좌우로 빛이 번뜩였다.
챠르르륵!
날카로운 날이 수십 개나 달린 철륜(鐵輪)이 핑그르르 돌며 주합의 몸을 노리고 날아들었다.
주합이 몸을 비틀며 공중제비를 돌자, 놀랍게도 그의 신형이 날아드는 두 철륜 사이로 비껴가며 공격을 피해 냈다.
철륜의 중앙에 달린 사슬이 팽팽해지더니 주인의 손으로 되돌아갔다. 몸에 꼭 맞는 흑의에 복면을 쓴 두 인영이 언덕 위로 모습을 드러냈다.
“이상한 무기를 쓰는군. 네놈들이 똥파리냐?”
“…….”
두 인영은 차갑게 가라앉은 눈으로 주합을 내려다보았다. 주합의 표정은 여전히 여유롭기 그지없었다.
“이 술두꺼비님에게 무기를 들이댔으니 죽을 각오를 해야 할 거야. 본래 싸움이란 죽을 각오로 해야 되는 거거든.”
주합이 씩 웃으며 주먹을 들어 올리자, 두 살수의 신형이 번개처럼 그에게로 달려들었다.
검은 두 인영이 교차되며 주합에게로 날아들었다. 손에 쥐어진 철륜이 핑그르르 돌며 주합의 목을 노렸다.
“흐읍!”
주합의 상체가 뒤로 휙 젖혀졌다. 코앞으로 철륜이 스쳐 지나가자 그는 힘차게 양발을 차올렸다.
퍼퍽!
“큭!”
삽시에 뒤통수를 얻어맞은 두 인영의 입에서 낮은 신음이 터져 나왔다.
하지만 거기서 끝이 아니었다. 바람개비처럼 휘돌린 주합의 다리가 둘의 종아리로 날아들고 있었던 것이다.
“개싸움을 하는구먼, 아주.”
두 인영이 볼품없이 넘어지자, 독고유가 혀를 찼다.
실전으로 다져진 주합의 싸움 방식은 효율적이긴 하지만 여전히 조잡해 보였던 것이다.
두 인영이 쓰러지자, 주합은 허공으로 도약해 살수들의 몸 위로 치솟아 올랐다.
살수들이 눈을 부릅뜨며 황급히 좌우로 몸을 굴렸다. 방금 전까지 그들이 누워 있던 자리로 주합의 발이 떨어져 내렸다.
쿵!
둔중한 타격음과 함께 주위의 땅이 크게 흔들렸다. 깊은 내공이 담긴 것 같지도 않은데 대단한 위력이었다.
황급히 몸을 일으킨 살수들의 철륜이 또다시 날아들었다. 아까와 달리 사슬을 조종해 좌우로 흔들며 날아드는 것이 피하기가 여간 까다롭지 않을 듯했다.
“헹!”
주합은 콧방귀를 뀌며 땅바닥을 나뒹굴었다. 그의 몸 위로 두 개의 철륜이 공기를 찢어발기며 스쳐 지나갔다.
땅바닥을 나뒹굴면서 살수 하나의 코앞까지 달려든 주합의 손이 휘익 호를 그렸다.
“크앗!”
주합의 손에 쥐어진 흙이 살수의 얼굴로 튀었다. 눈에 흙이 들어간 살수가 신음을 터뜨리며 얼굴을 가렸다.
“멍청한 놈! 싸울 때 눈을 가려?”
퍼억!
주합의 주먹이 살수의 복부로 날아들었다.
살수의 몸이 새우처럼 꺾였다. 그런 살수의 뒷목으로 주합의 팔꿈치가 떨어져 내렸다.
쩌억!
수박 갈라지는 소리와 함께 살수의 몸이 풀썩 쓰러졌다.
숨을 들이쉰 주합은 등 뒤에서 느껴지는 찌릿한 살기에 재빨리 앞으로 몸을 던졌다.
푸푸푹!
그가 서 있던 자리로 철륜이 날아와 박혔다.
살수의 신형이 철륜을 기둥 삼아 주합에게로 쇄도했다. 주합의 입가에 득의양양한 미소가 번져 나갔다.
땅바닥을 한 바퀴 구른 그의 신형이 두꺼비처럼 네 발로 멈추어 섰다.
꾸륵!
주합의 양 볼과 턱이 크게 부풀더니 두꺼비 같은 울음소리가 새어 나왔다.
합마공(蛤큤功)! 살수의 눈이 경악으로 물들었지만 이미 돌이킬 수 없었다.
주합의 몸이 크게 부푸나 싶더니 살수에게로 화살처럼 쏘아져 들었던 것이다.
포탄처럼 쏘아져 나온 주합의 머리통은 철륜을 산산조각으로 부서뜨리며 살수의 가슴팍으로 날아들었다.
쩌저적!
살수의 몸을 뚫어 버릴 듯 육 장이나 날아간 주합이 핑그르르 돌며 착지하자, 가슴팍이 함몰된 살수가 눈을 까뒤집으며 풀썩 쓰러졌다.
비명도 지르지 못한 채 심장이 터져 죽은 것이다.
“크하하! 주합님이 이 정도이시다!”
주합이 득의양양한 웃음을 터뜨렸다. 진효린은 그를 빤히 바라보다 독고유에게 물었다.
“도대체 저분은 누구지요?”
“하오문의 문주요. 뒷골목의 패왕이라면 꽤나 유명할 텐데.”
독고유가 나지막하게 웃음을 터뜨리자, 그제야 진효린의 얼굴에 경악이 어렸다.
뒷골목의 패왕이 누구인가. 강호 모든 무뢰배들의 대형이자, 의협심의 대명사가 아닌가! 자연스레 하오문의 문주가 되었으나 권력에 대한 집착이 없어 항상 행방이 묘연하다 했었다.
“대, 대인은 분명 강호 초출이라 하지 않으셨나요?”
“그랬소.”
“그런데 저분을 어찌 알고 계신 거지요?”
진효린이 놀란 목소리로 묻자, 독고유는 못 들은 척 헛기침을 하며 걸음을 옮겼다.
“잘난 척은 그만 하고 어서 그놈들부터 살펴보아라. 어디의 누구인지.”
“칫! 싸움 시킬 땐 언제고 이겨도 욕하깁니까? 아, 알았으니 형님은 그쪽이나 잘 살피슈.”
투덜대던 주합은 독고유의 눈초리가 씰룩거리자, 황급히 꼬리를 내렸다.
독고유는 목이 부러진 살수의 시신을 똑바로 눕혔다.
“어떤 녀석이 보낸 거지? 그놈들인가?”
“사실 대인께 가기 전에…….”
독고유가 중얼거리자 진효린이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제갈가 사람들을 만났던 이야기를 듣고 난 독고유가 고개를 갸웃했다.
“그 녀석들이 보냈다면 너무 허술하오. 오히려 소저를 자신들의 곁에 두고 남몰래 죽이려 했을 거요.”
“그럴까요?”
진효린이 수긍의 빛을 띠며 고개를 끄덕였다. 살수를 살피던 주합이 뭔가를 발견한 듯 고개를 돌렸다.
“형님, 이놈들 월하장 녀석들인 모양인데요?”
“월하장?”
독고유가 다가오자, 주합은 살수의 품에서 작은 목패를 꺼내 들었다. ‘월하’라 쓰인 글귀가 눈에 들어왔다.
“월하장이라면 결코 이유 없이 움직이는 녀석들이 아닐 텐데…….”
독고유가 턱을 쓰다듬으며 말했다.
월하장은 구룡산(九龍山) 중턱에 자리한 큰 산장이었다. 그곳에 머무는 무인들의 대부분은 문파에서 쫓겨나거나 은거하기를 원하는 기인들이었다.
산장 주인인 문추(?錐)는 그런 이들을 모두 받아 주었고, 지금은 강호의 문파들도 쉽게 건드리지 못하는 거대 집단이 되어 있었다.
그리고 그들이 모두 마교로 귀화했을 때, 월하장은 마교 제일의 무력 단체가 되어 있었다.
“설마 오라버니가 말하고자 한 것이 월하장의 ‘하’일까요?”
진효린이 목패를 바라보며 말했다.
주합은 그녀의 얼굴을 바라보다 짜증스레 뒷목을 벅벅 긁었다.
“귀찮은 건 질색인데……. 어쩔 거요, 형님?”
독고유는 꺼림칙한 표정으로 턱을 쓰다듬었다.
그가 아는 월하장주 문추는 결코 사리사욕을 위해 살육을 벌일 인물이 아니었던 것이다.
“아무래도 확실히 해야겠군. 가 보자.”
목패를 품에 넣은 독고유는 곧장 발걸음을 옮겼다. 주합이 재빨리 그의 앞으로 달려가 물었다.
“죽일 거요? 싹 다?”
“이놈, 누가 들으면 내가 마두라도 되는 줄 알겠구나.”
“웃기네! 아, 아니, 멋지다는 말이오!”
비웃음을 짓던 주합은 황급히 정색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독고유는 씩 웃으며 말을 이었다.
“말이 통하는 상대에게는 말로, 협박이 통하는 상대에게는 협박으로, 그리고 아무것도 안 통하는 녀석들에게나 힘을 사용하는 것이야. 그것이 기본적인 협상의 방법이다.”
“그럼 어째서 나한테는 그렇게 협박을 가한 거요?”
주합이 버럭 외쳤다. 독고유는 당연하다는 듯 능청스레 그의 얼굴을 가리켰다.
“널 봐라. 네가 말이 통할 상대인지. 하오문의 문주라는 녀석이 문도들을 돌볼 생각은 않고 맨날 술이나 퍼 마시고 있으니…….”
“누군 문주가 되고 싶어 된 줄 아슈? 나 아니면 할 사람이 없다고 그 난리를 피우는데…….”
주합이 억울한 표정으로 한숨을 내쉬었다. 독고유는 비웃음을 터뜨렸다.
“그래서 내가 네놈을 갱생시키려 하는 거다. 네놈 꼴을 봐라. 홀로 주유하고 싶은데 줄줄이 부하들이 달라붙어서 부담스럽고 짜증스러웠지? 취미에도 맞지 않는 일을 매일 하니 술만 늘고.”
“허! 어찌 아셨수?”
주합이 눈을 휘둥그렇게 뜨며 되물었다.
독고유는 씩 미소를 지으며 발걸음을 빨리했다.
“그러다 보면 다 짜증나고 때려치우고 싶어서 싸움을 일으키게 될 테고, 부하들이 죽는 꼴을 본 네놈은 복수를 위해 또 싸우기 시작하겠지. 그렇게 되기 전에 내가 네놈을 끌고 나온 거다.”
“허……. 형님은 마치 미래에 일어날 일을 모두 겪고 온 사람 같소.”
주합이 질린 표정으로 뇌까리자, 독고유는 헛기침을 하며 고개를 저었다.
“여하튼 쓸데없는 소린 집어치우고 월하장으로 가 보자. 월하장주라면 분명 말이 통할 상대일 테니까.”
“설마 월하장주랑도 아는 사이요, 형님? 아, 거 말을 좀 해 보시라니까!”
독고유가 걸음을 빨리하자, 주합이 안달하며 뒤를 따랐다. 진효린만이 떨리는 발걸음을 자박자박 옮길 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