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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부마도 1권(13화)
제8장 두 번의 자비는 없다(2)
군신문으로 향하는 풀숲.
다섯 인영이 고개를 빼꼼 내민 채 주위를 살피고 있었다.
항주 뒷골목의 다섯 우두머리였다. 선두에 고개를 내민 대머리, 거정은 진중한 표정과 번뜩이는 눈으로 주위를 살피고 있었다.
“애들은 다 대기하고 있냐?”
“당연한 걸 묻소! 형님은 그쪽이나 잘 보고 계시우.”
뒤에 고개를 내민 군저가 버럭 외쳤다. 거정은 금방이라도 명령을 내리려는 듯 씩 웃다가 황급히 고개를 숙였다.
세 인영이 모습을 드러냈던 것이다.
“졸개들인가? ……아니!”
인영들을 살피던 거정의 눈이 접시만큼 커졌다.
사내와 여인의 뒤에서 한숨을 쉬며 따르는 이는 분명 주합이 아닌가!
“어, 어째서 큰형님이 저기에……?”
“혀, 형님께서 인질로 잡히신 것 아니오?”
“이 멍청한 놈아! 잡혀 있다면 포승줄로 묶여 있기라도 해야 할 텐데, 큰형님께서는 제 발로 알아서 걷고 있지 않냐!”
군저가 놀란 듯 말하자, 비호가 핀잔을 주었다.
거정의 입가에 침음성이 흘렀다.
“어째서 큰형님이 저런 돼먹지 않은 녀석들의 뒤를 따르고 계신다는 말인가. 흐음…….”
“아, 알았소!”
주합의 뒷모습을 바라보던 군저의 눈동자에 기광이 번뜩였다.
“큰형님께서는 군신문 녀석들을 일거에 소탕하려 하시는 거요! 그래서 지금은 저리 조용히 잡혀 계신 것이고…….”
“오오! 그러고 보니 네 녀석 말도 일리가 있구나! 그러니까 저놈들이 군신문의 졸개들이란 말이지!”
거정이 탄성을 지르며 고개를 끄덕였다.
다섯 파락호들이 멋대로 오해한 것을 아는지 모르는지, 세 인영은 군신문 본관 안으로 유유히 사라져 갔다.
“과연 큰형님이오! 단신으로 군신문과 맞서려 하시다니.”
“그래, 이번에야말로 형님을 도울 기회다.”
비호가 감동한 듯 눈물을 글썽였다. 거정도 벅차오르는 가슴을 간신히 억누르고 있었다.
파락호들 사이에서 전설이 될 것이 분명하지 않은가!
혈혈단신으로 문파 전체와 싸움을 벌인 파락호!
그야말로 뒷골목의 패왕다운 모습이었다.
콰쾅!
“드디어!”
마침내 군신문 내부에서 폭발음이 울려 퍼지자, 거정의 입에서 일갈이 터져 나왔다.
벌떡 일어선 거정은 허리춤에서 몽둥이를 꺼내 들며 외쳤다.
“쓸어버리자! 형님, 기다리시오!”
“드디어 몸 좀 풀겠구나!”
다섯 파락호가 성큼성큼 군신문을 향해 나아갔다.
그들의 뒤로 이백여 파락호들이 우후죽순처럼 솟아나 뒤를 따랐다.
군신문 문으로 들어서기도 전부터 벌써 고통에 찬 비명 소리가 들려왔다.
“크아악!”
“으아악!”
비명 소리와 함께 타격음이 귓가를 울릴수록 파락호들의 얼굴에 숨길 수 없는 기대감이 피어났다.
그들의 머릿속에 기백의 적들 사이로 흉포하게 날뛰는 큰형님의 모습이 그려졌다.
콰앙!
“형님, 아우들이 이곳에 왔습니다! 괜찮으십니까!”
거정이 손에 쥔 거부(巨斧)로 대문을 부수며 벽력같이 외쳤다.
그의 뒤로 네 우두머리들이 신장처럼 우뚝 섰다.
“크오오오!”
콰콰콰쾅!
다섯 우두머리들의 눈으로 괴성을 터트리며 신형을 내지르는 사내의 모습이 비춰졌다.
사방으로 휘몰아치는 도기의 폭풍에 가려 얼굴이 자세히 보이지는 않았지만, 홀로 비호처럼 날뛰며 군신문 문도들을 유린하고 있었다.
게다가 공격에 적중당한 문도들은 하나같이 일격에 피를 토하며 나가떨어지니 그야말로 절정의 무위라 할 수 있었다.
“역시 형님! 진정 사나이가 아닌가!”
저 사내가 분명 주합이라 확신한 거정의 두 눈에 뜨거운 눈물이 흘러내렸다.
사내들만이 느낄 수 있는 뜨거운 감정이 가슴 깊은 곳에서 치솟아 올랐다.
“뭣들 하느냐! 형님을 도와라!”
“와아아!”
거정이 거부를 치켜들며 달려 나가자, 그의 뒤로 파락호들이 함성을 내지르며 달려 나갔다.
“주합 형니이이임!”
앞서 달려 나간 거정이 주합의 이름을 부르며 공력을 끌어올렸다. 예민해진 귓속으로 잡음을 뚫고 주합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멍청한 놈아! 그곳으로 달려가면 안 돼!”
“형님! 제가 형님을 도우러 왔습니다!”
버럭 외친 거정은 여전히 난폭하게 싸우고 있는 사내를 바라보았다. 하지만 목소리가 들려온 곳은 전혀 다른 곳이었다.
“그렇다면 일단 그 발부터 멈춰라, 이 멍청한 놈아!”
“네에? 어? 형님?”
거정의 고개가 옆으로 돌아갔다. 그러자 싸움터에서 멀찌감치 떨어진 곳에 선 주합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주합은 당황한 표정으로 고래고래 소리치고 있었다.
“그곳으로 갔다간 네놈까지 죽어! 당장 애들 세워라!”
“그게 무슨 말씀이십니까? 그보다 형님이 어째서 그곳에 계신 겁니까?”
주합이 속이 터지는 듯 외쳤지만, 달려가는 거정은 발을 멈출 줄 몰랐다. 오히려 의아함을 담아 외치자, 주합은 억장이 무너지는 듯했다.
“이곳으로 왔으니 여기에 있지! 당장 멈춰 서라! 그 앞에는……!”
“이 앞에? 응? 그럼 이 앞에 있는 건 누구지?”
“이놈들은 또 뭐야?”
막 이백여 명의 군신문도를 쓰러뜨린 독고유가 거정에게로 고개를 돌렸다.
주합은 망연자실하게 눈을 가렸다.
“아앗! 네놈은 형님을 끌고 가던 졸개!”
설상가상으로 뒤를 따르던 군저의 입에서 나와선 안 될 말까지 터져 버렸으니, 폭의 기세로 내공을 끌어올린 독고유의 성질을 건드리기에 충분했다.
사람의 성정까지 바꿔 버리는 기운이다.
“호오! 날파리 녀석들의 부하들이었단 말이지? 파락호들이라 파리와 딱 어울리는군!”
콰앙!
그가 한쪽 입가가 치켜 올라가도록 웃으며 왼팔을 휘두르자, 십여 장에 달하는 거대한 폭발이 일어났다.
군신문도 무리가 폭발에 휩쓸려 사방으로 튕겨 나갔다.
“이, 이건 뭔가…….”
그제야 상황이 뭔가 잘못되었음을 인지한 거정, 하지만 상황은 이미 늦었다.
상처 입은 야수와 같은 독고유의 신형이 목도에 휘감긴 도기를 내뿜으며 달려들고 있었던 것이다.
퍼버버벅!
만신창이로 변한 군신문 장원으로 시원한 타격음만이 연이어 울려 퍼졌다.
촤악!
“으아악!”
“참아라! 머리가 멍청해 몸이 고생했으니 아파도 싸!”
새하얀 고약을 잔뜩 바른 손바닥이 피멍이 가득한 등짝에 떨어지자, 거정의 비명이 울려 퍼졌다.
하지만 그 손은 무자비하게 그의 등짝에 고약을 펴 발랐다.
죽지 않은 것이 기적이라고 할 수 있었다. 그나마 독고유가 죽이지 않으려고 작정한 싸움이었기에 망정이지 조금만 더 얻어맞았다면 골병이 들어 죽었을 터였다.
주합은 쉼 없이 자신을 쫓아다니며 귀찮게 만드는 아우들을 한숨을 내쉬며 돌아보았다.
무릎을 꿇고 병장기들을 머리 위로 들어 올린 파락호들은 주합의 시선이 스치자, 하나같이 움찔 몸을 움츠렸다.
“그러니까 이놈들은 네 부하들이라, 이거냐?”
건너편에서 그 모습을 바라보고 있던 독고유가 심드렁하게 물었다. 주합은 짜증스럽게 한 번 더 거정의 등을 내려치고는 말했다.
“그렇수. 뒷골목 생활할 때 함께하던 녀석들이우.”
“그럼 그냥 죽여 버릴 걸 그랬나?”
“뭐요? 으악!”
눈을 치켜뜨며 외치던 거정이 등에서 느껴지는 욱신거림에 인상을 찌푸렸다.
주합의 목소리가 뒤를 이었다.
“차라리 그랬으면 속 편했겠수. 그런데 그쪽은 정리가 다 끝난 거요?”
주합의 시선이 독고유의 뒤편으로 향했다.
독고유도 씩 웃으며 고개를 돌렸다.
그의 앞에는 혼절한 군신문 무인들이 산처럼 쌓여 있었다. 그 틈바구니에서 신음 소리가 새어 나왔지만 전혀 상관하지 않았다.
“다들 더 이상 무공을 쓰진 못할 거야.”
독고유가 모두에게 들리는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기혈이 으스러질 정도로만 팼거든.”
“으으…….”
군신문 무인들의 신음 소리가 더욱 커졌다.
하지만 독고유는 여전히 자비로운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그래도 너희들이 약한 덕에 살았으니 고마운 줄 알라고, 날파리들.”
“큰…… 아, 아니, 왕형님! 그럼 우리도 무공을 폐한 거요?”
누워 있던 거정이 뜨악한 표정으로 외쳤다.
독고유는 씩 웃으며 그에게로 걸음을 옮겼다.
“아니, 너희들은 괜찮을 거야. 역시 머리에 든 것 없는 놈들이 맷집은 좋더라고. 물론 좀 약한 녀석들은 처음부터 다시 무공을 익혀야겠지만.”
파락호들 사이에서 몇몇의 침음성이 들려왔다.
도대체 이 사내는 누구란 말인가.
“큰형님, 저분은 도대체 누구시기에 따르고 계신 겁니까?”
“성질 더러운 녀석이지.”
독고유가 헤실헤실 웃으며 파락호들에게로 걸음을 옮기자, 거정이 소곤거리며 물어 왔다.
주합도 역시 소곤대며 대답했다.
“저 소저는 또 누구고요?”
“마왕에게 잡힌 미녀.”
“아, 그, 그럼 형님은 저 마왕의 손에서 저 소저를 구하기 위해 함께하고 계신 거군요?”
거정이 알았다는 듯 버럭 외쳤다. 주합은 식은땀을 흘리며 딱딱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파락호에게 멋은 곧 생명, 다른 이들에게는 몰라도 아우들에게까지 체면을 구길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저, 두꺼비.”
“왜, 왜 그러시오?”
등 뒤에서 진효린의 목소리가 들려오자, 주합은 화들짝 고개를 돌렸다.
진효린은 누워 있는 거정에게 빙긋 웃어 주고는 입을 열었다.
“이제 그만 다들 일어나라고 하는 게 어때? 다들 대인 때문에 많이 다쳤으니까.”
“아, 그, 그러겠소! 네놈들, 누님 덕분에 봐주는 줄 알아라! 다들 일어서!”
주합이 버럭 외치자, 파락호들이 하나 둘 그의 눈치를 보며 몸을 일으켰다.
“과연 마음까지 아름답다…….”
그녀의 자비로움에 눈물까지 글썽이는 거정이었다.
“야, 두꺼비!”
그런 거정의 귓가로 마왕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주합은 짜증이 담긴 신음을 흘리며 외쳤다.
“왜 그러시오, 형님?”
“이놈들도 다 하오문이냐?”
“그렇수!”
“얘들이 하오문 전력의 몇 할 정도 되지?”
불길하다.
주합의 낯빛이 순간 하얗게 변했다.
“히, 힘으로는 일 할, 숫자로는 일 푼도 안 되오!”
“그래? 하오문도 쓸 만하군.”
파락호들의 사이로 씩 웃고 있는 독고유가 모습을 드러냈다. 뭔가 잔뜩 계획하고 있을 때 보이는 웃음이었다.
주합의 불안감이 더욱 가중되었다.
“술두꺼비!”
“마, 말하시오!”
독고유가 한 번 더 이름을 부르자, 주합이 식은땀을 흘리며 대답했다.
독고유는 헤실헤실 웃으며 그의 앞으로 다가왔다.
주합은 숨이 막히는 듯 입술을 질끈 깨물었다.
“부탁 좀 하자.”
‘에이, 시팔!’
불안감이 현실이 되는 순간, 결국 속으로 욕지거리를 터뜨리고 마는 주합이었다.
“조심해서 가십시오, 아가씨!”
“다들 몸조리 잘해요!”
파락호들은 독고유와 주합, 그리고 진효린의 모습이 보이지 않을 때까지 손을 흔들었다.
정확히는 주합과 진효린에게.
진효린은 채 한 시진도 되지 않아 모든 파락호들의 아가씨가 되어 있었다.
주합의 가족인 파락호들이니 진효린이 여간 살갑게 대한 것이 아니었고, 기품 있고 아름다운 진효린에게 반하지 않을 사내가 없었던 것이다.
“그 사람들은 도대체 왜 찾으려는 거요?”
파락호들의 모습이 시야에서 완전히 사라지자, 주합이 슬쩍 물어 왔다.
독고유가 찾기를 원하는 이들은 총 삼십 명, 큰 문파의 장문인부터 거지까지 다양했다.
독고유는 빙긋 웃었다.
지금까지와 다른 느낌의 씁쓸한 웃음이었기에 주합은 침을 삼킬 수밖에 없었다.
“마도(魔道)에서 구하려고.”
하지만 독고유는 여전히 가볍게 말하고는 앞서 걸어 나갔다.
“마도? 도대체 무슨 생각을 하는 거요, 당신은…….”
그의 유유자적한 뒷모습을 바라보며 주합은 저도 모르게 중얼거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