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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부마도 1권(16화)
제10장 가장 무서운 건 주독(酒毒)(1)


크르릉!
크릉!
늑대는 그 수가 모일수록 강해진다. 체계가 잡힌 야성이기에 사냥감에게는 더욱 큰 공포를 선사한다.
십여 마리만 모여도 한 산에 군림하기에 충분할진대 백여 마리가 모여 있으니 산중왕 호랑이라 할지라도 꼬리를 말고 도망갈 기세였다.
“이놈들아, 오늘은 사냥하는 날이 아니다! 내 뒤를 따라라!”
하지만 늑대들의 중심에 선 사내에게는 그것이 통용되지 않았다.
마치 애완동물을 부리듯 늑대들의 코를 쥐어박는 팔 척 장신의 사내.
머리에는 호피건(虎皮巾)을 두르고 몸에는 표범 가죽으로 만든 망토와 도복을 걸쳤다.
부리부리한 두 눈에는 호랑이라 할지라도 눈을 피할 만한 야성과 강대한 기운이 꿈틀대고 있었다.
백이십 늑대 무리를 이끄는 만산(萬山)의 무법자 철호(鐵虎).
그의 주위를 에워싸고 그의 발걸음을 따르는 늑대들은 그 어떤 짐승보다 강하고 용맹했다.
하지만 철호의 앞에서는 꼬리를 흔들며 애교까지 부리는 것이, 늑대 무리에서 철호의 위치가 어느 정도인지를 짐작하게 했다.
“자자, 사냥감은 분명 멀지 않았겠지?”
컹컹!
그가 외치자 늑대들의 울음소리가 숲 가득 퍼져 나갔다.
그의 얼굴에 만족스러운 미소가 피어났다.
“좋아! 오늘에야말로 술두꺼비 녀석의 목을 딸 테다! 녀석이 어째서 복건까지 왔는지는 모르겠지만, 산이야말로 나의 주무대니까!”
아우우!
그가 포효하자, 사방의 늑대들이 일제히 하늘을 향해 고개를 빼고 긴 울음을 토해 내었다.

“에이 씨, 누가 내 욕을 하나?”
주합은 짜증스레 귀를 벅벅 긁었다. 노란 귓밥이 그의 귀에서 우수수 떨어져 내리자, 진효린이 인상을 찌푸렸다.
“좀 씻어라. 하오문 문주란 녀석이 잘 씻지도 않고, 오줌이나 싸고…….”
“오, 오줌 싼 이야기는 왜 꺼내는 거요!”
독고유가 핀잔을 주자, 주합의 얼굴이 붉게 달아올랐다.
그를 처음 만났을 때가 떠오른 탓이다.
“그, 그냥 며칠째 산만 타고 있으니 짜증나서 그러는 거요. 도대체 누님은 이 험한 길을 어찌 온 거요?”
“그래도 이렇게 맛있는 고기를 먹을 수 있잖니.”
진효린은 앞에서 이글대는 모닥불을 바라보며 빙긋 웃었다. 모닥불의 가장자리에는 꼬챙이에 꿰인 꿩 세 마리가 나란히 익어 가고 있었다.
“참 태평하기도 하우.”
주합은 고개를 절레절레 젓고는 그대로 바닥에 드러누웠다. 산에서 맞는 밤이라 그런지 유난히 추웠다.
“늑대 무리라도 나올 것 같은 밤이군.”
독고유가 초승달을 올려다보며 말했다.
진효린이 피식 웃었다.
“복건의 산에는 늑대가 없어요. 대인도 참…….”
아우우우!
그런 그녀의 말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건너편 봉우리에서 늑대 울음소리가 들려왔다.
아우우!
아우!
하나가 아니다. 수십은 될 듯한 소리였다.
“뭐가 없다고 한 거요?”
“아, 아니 그게……. 이상하다? 분명 복건에는…….”
독고유가 비웃으며 그녀를 바라보자, 진효린이 우물쭈물 덧붙였다.
“하아…….”
진효린이 조용히 꿩고기를 입에 가져가자 독고유는 시선을 돌렸다.
쏟아질 듯 빽빽한 별이 그의 눈에 반짝였다.
별무리가 모여들어 경진천과 영무흔의 얼굴을 그렸다.
“그 정도로 강했단 말이지…….”
한숨을 쉬며 중얼거리자, 둘의 얼굴이 흩어져 본래의 별자리로 되돌아갔다.
마도종주 시절에 비하면 지금의 그는 턱없이 약했다.
내공과 신체의 문제다.
아무런 영약도 섭취하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마도의 심법이 아니니 성취도 더욱 느렸다.
기껏 이뤄 놓은 성취도 몸이 제대로 따라가지 못하니 아직 그가 원하는 강함까지는 채 오 할에도 미치지 못했다.
거기까지 생각한 독고유는 슬며시 미소를 지었다.
득의양양한 미소다.
‘그래, 오 할. 고작 오 할에 불과한데도 이 정도로 강하다. 일 할 일 할의 성장이 다른 이들과 비교할 수 없을 것이다. 이대로라면 충분히…….’
자신의 손을 내려다보던 독고유의 고개가 삽시에 돌아갔다. 아까 울음소리가 들려왔던 봉우리 쪽이다.
등골이 오싹해지는 야생의 살기.
순간이었지만 그 비슷한 것이 독고유의 피부에 와 닿았었다.
“잘못 느꼈나?”
하지만 집중을 해 보아도 더 이상 그 기운은 느껴지지 않았다.
독고유는 고개를 갸웃하며 몸을 일으켰다.
“너무 예민해졌나 보군.”
이제는 진도보다 손에 익숙한 목도가 허리춤에서 뽑혀져 올랐다.
꿩고기를 씹던 진효린이 그에게로 고개를 돌렸다.
초승달을 향해 목도를 치켜든 독고유는 가만히 눈을 감았다.
그의 몸에서 산들바람 같은 기운이 피어올랐다.
스윽!
목도가 그의 손끝에서 부드럽게 춤을 춘다. 한없이 부드러운 기운의 흐름을 따라 초식도 없이 규칙도 없이 허공을 누볐다.
“아아…….”
무아지경에 빠져든 그의 움직임에 진효린도 넋을 잃었다.
신비하다. 달빛과 하나 된 그의 춤은 마치 신선이라도 된 듯 고귀하기만 했다.
“후우우…….”
한참이나 춤을 추던 독고유의 입에서 뜨거운 숨이 새어 나왔다. 피어오르던 기운이 증발하듯 사라졌다.
“진 소저.”
그의 눈이 천천히 진효린에게로 돌아갔다.
진효린은 그의 목도에서 눈을 떼지 않은 채 대답했다.
“말씀하세요.”
“이 독고유는, 이 대인은 강하오?”
“여부가 있겠어요. 대인은 아주 강하십니다.”
“내 도는 가볍소?”
“대인의 도는…….”
독고유의 도를 바라보던 진효린의 눈이 천천히 독고유에게로 향했다.
독고유의 번뜩이는 눈이 진효린의 눈빛과 마주쳤다.
“가벼워요. 어디로든 날아갈 수 있을 것처럼…….”
“그러면 되었소.”
독고유의 얼굴에 비로소 미소가 번져 나갔다. 목도를 허리춤에 끼워 넣은 독고유는 털썩 주저앉아 운기를 하며 잠을 청했다.
“아……. 종일 왜 이렇게 꺼림칙한 거지?”
다음 날이 되어도 주합은 여전히 기분이 좋지 않은 모양이었다.
뭔가 등골이 쭈뼛하고 뼈마디가 쑤신다는 그의 말에 독고유가 슬쩍 입을 열었다.
“그거 금주 증상인가 하는 거 아니냐? 그러고 보니 네놈 벌써 보름 가까이 술을 안 먹었지?”
“그건 형님도 할 말 없수! 강호의 모든 술을 맛보여 주겠다더니 이게 뭐요!”
“…….”
주합이 짜증스레 투덜대자, 독고유는 말없이 신형을 날렸다.
일각도 되지 않아 돌아온 그의 목도에는 여지없이 죽은 뱀들이 꿰여 있었다.
“자, 이걸로 사주라도 담가 먹어라.”
“화주라도 있어야 담글 거 아뇨!”
“그거야 네가 어떻게든 해야지.”
독고유의 무책임한 말에 주합이 가슴을 두들겼다. 울화통이 터지는 모양이었다.
“갑갑해 죽겠소. 어디 민가라도 있으면 술을 얻어먹을 수 있을 텐데…….”
인상을 찌푸리며 이리저리 고개를 돌리던 주합의 눈이 순간 번뜩였다.
산 중턱의 다 쓰러져 가는 초가가 눈에 들어온 것이다.
“집이오! 술이 있을지도 모르겠구만!”
주합이 소리를 내지르며 달려가자, 진효린이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남자들은 왜 그렇게 술을 좋아하는지 이해하지 못하는 그녀였다.
“형님! 누님! 이리 와 보시오! 여기 진짜 술이 있소!”
집 안에 들어간 주합이 어린아이처럼 외쳤다.
독고유도 내색하지 않았지만 발걸음을 빨리했다. 술이라면 그도 사족을 못 쓰는 터다.
“정말이군. 이런 폐가에 술독이…….”
독고유의 눈이 커졌다. 열 평도 되지 않아 보이는 초가집의 안에는 커다란 술독이 발 디딜 틈 없이 놓여 있었던 것이다.
“꽤 오래 묵혔나 보구만! 키야! 향이 기똥차오! 어디…….”
술독을 향해 고개를 숙이던 주합의 얼굴을 독고유의 손바닥이 가로막았다.
독고유는 굳은 표정으로 먼저 고개를 숙였다.
“네놈은 어찌 이리 생각이 없냐? 이런 집에 술독을 가득 들여놓은 게 이상하지도 않냐?”
“그따위 것 알게 뭐요! 지나가다 목마른 과객이 한 잔씩 하고 가라고 해 놨을지 어찌 아오!”
이미 주합은 이성을 잃은 지 오래였다. 술두꺼비가 술을 못 마셨으니 당연한 결과였다.
독고유도 별수 없는지 주합의 얼굴을 잡고 있던 손을 놓아주었다.
“괘, 괜찮을까요?”
주합이 술독에 고개를 처박고 술을 마시기 시작하자, 진효린이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물었다.
독고유도 슬쩍 호리병을 꺼내 들었다.
“별수 없잖소. 이렇게 된 이상 마셔 버릴 수밖에. 저 녀석 말대로 목마른 과객이 한 잔씩 하라고 놔뒀을 수도 있지.”
말을 마친 독고유가 술을 가득 담은 호리병을 입에 가져가자 진효린은 체념한 듯 한숨을 내쉬었다.
“크아아! 아주 죽여주는구만! 어디 돈 많은 양반이 꼬불쳐 놓은 술인 모양이야!”
단박에 술독의 반을 비워 버린 주합이 즐거운 비명을 내질렀다. 벌써 얼굴이 붉게 달아오른 것이 취기가 오르는 모양이었다.
“음…….”
어느새 호리병 하나를 다 비운 독고유도 고개를 끄덕였다.
술맛이 기가 막히다.
“어휴! 술이 저리도 좋을까…….”
갈 길이 먼 것도 잊고 술에 빠져든 두 사내를 보는 진효린의 입에서 막연한 한숨만 새어 나왔다.
한 식경이 지났음에도 두 사내의 술잔치는 끝날 줄을 몰랐다.
이십여 개의 술독 중 다섯이 비었건만, 두 사내는 이 안의 모든 술을 먹어 치우기 전까지는 멈추지 않을 모양이었다.
“나가서 기다려야지. 이 안에 있다간 나까지 취하겠다.”
피어오르는 술 냄새에 머리가 아플 지경이었다.
진효린은 초가 밖으로 나가 자리를 잡았다.
흐르는 구름을 바라보던 진효린은 문득 가슴을 부여 쥐었다.
광동이 가까워 올수록 가슴의 두근거림이 심해지고 있었다.
“외면해서는 안 돼. 외면해서는…….”
고통과 슬픔을 외면해서는 앞으로 나아갈 수 없다. 원하는 바를 이룰 수 없다는 것을 그녀도 잘 알고 있었다.
하지만 이 가슴의 두근거림만은 그녀도 어찌할 수 없었다.
“후우, 후우…….”
잊어야 한다. 애써서라도 다른 곳으로 주의를 돌려야 한다.
진효린은 심호흡을 하며 시선을 돌렸다.
구불구불한 산의 계곡과 길이 한눈에 들어왔다.
“어?”
그러던 중 이상한 것이 눈에 띄었다.
작게 탄성을 지른 진효린은 안력을 돋웠다.
산의 한 면이 회색빛이지 않은가.
그리고 그 회색빛은 빠른 속도로 산을 오르고 있었다.
“아니? 저건……!”
그것을 자세히 바라본 진효린의 눈에 경악의 빛이 어렸다.
늑대 무리.
그 회색빛 덩어리는 백 마리는 훨씬 넘어 보이는 늑대 무리였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