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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부마도 1권(17화)
제10장 가장 무서운 건 주독(酒毒)(2)
컹! 컹!
우글대는 늑대들의 울음소리가 진효린이 있는 초가의 바로 아래에서 들려왔다.
늑대 무리의 속도는 엄청났다. 게다가 그 규모도 그녀의 상식을 뛰어넘는 것이었다.
‘백 마리…… 백 마리는 넘는 것 같아. 어떻게 이런 큰 늑대 무리가…….’
그것을 내려다보는 진효린의 얼굴은 하얗게 질려 있었다.
늑대가 없는 것으로 알고 있는 복건의 산에 이렇게 큰 늑대 무리가 있다니, 아무래도 이상했다.
‘대인과 두꺼비는 아직도 술독에 빠져 있어. 위험해!’
진효린의 눈이 초가 안으로 향했다. 아직도 술을 마시고 있는 두 사람이 얼핏 그녀의 눈에 비쳤다.
컹컹! 크우!
“……!”
선두에 선 늑대가 이곳저곳의 냄새를 맡더니 크게 울음을 토해 냈다.
그 순간 늑대들이 기다렸다는 듯 그녀가 있는 초가 위로 치솟아 올랐다.
크워어엉!
삽시에 삼십여 마리의 늑대가 그녀의 앞을 에워쌌다. 선두에 선 덩치 큰 늑대가 위협하듯 짖자, 진효린은 침을 꿀꺽 삼키며 기수식을 취했다.
“찾고 있었던 거야, 우리를?”
크허엉!
후미에 있던 늑대 한 마리가 광폭한 울음을 토해 내며 치솟아 올랐다. 늑대의 날카로운 이빨이 그녀의 목을 노리고 날아들었다.
투콰쾅!
순간 진효린의 신형이 핑그르르 돌더니, 그녀의 손등이 늑대의 목덜미를 휘어감아 땅으로 내리찍었다.
“도망쳤다간 오히려 죽을 거야. 대인이 나오실 때까지 어떻게든 버틸 수밖에…….”
땅에 내리찍힌 늑대가 부들부들 떨다 축 늘어지자, 진효린은 바싹 마른 입술을 혀로 날름 핥으며 조심조심 뒷걸음질을 쳤다. 그녀의 주위를 빽빽하게 에워싼 늑대들이 금방이라도 달려들듯 으르렁댔다.
‘어째서 달려들지 않는 거지? 이토록 체계적인 무리라니…….’
그럴수록 초조해지는 것은 진효린이었다.
늑대 무리의 움직임이 이상하다는 것은 느끼고 있었지만, 어째서인지는 알 방도가 없었다.
크하아앙!
크앙!
후미에 있던 늑대 다섯이 일시에 솟구쳐 올랐다. 진효린의 눈빛이 파르르 떨렸다.
다섯 마리의 공격을 막아 낼 수 있을까?
쩌저정! 콰득!
늑대 다섯 마리가 그녀의 몸에 닿으려는 순간, 그녀의 등 뒤에서 날아든 도기가 다섯 늑대들을 후려쳤다.
“대인!”
진효린의 얼굴에 화색이 돌았다.
초가 문 안에서 목도를 든 독고유가 천천히 걸어 나오고 있었다.
“뭐야, 이 똥개들은?”
“괘, 괜찮을까.”
독고유의 얼굴은 붉게 달아올라 있었다. 취기가 머리끝까지 오른 모양이다. 진효린은 침을 꿀꺽 삼키며 독고유에게로 걸음을 옮겼다.
늑대 무리는 갑작스레 나타난 독고유를 노려보며 으르렁댔다.
하지만 역시 쉽게 덤벼들지는 않았다.
‘체계적인 훈련을 받은 거야. 분명해. 하지만 도대체 누가 늑대들을 길들일 수 있는 거지?’
독고유가 앞에 서자, 진효린은 삽시에 이성을 되찾았다. 그녀는 늑대 무리를 둘러보며 눈을 빛냈다.
늑대들의 차륜전은 가공할 수준이었다. 앞의 늑대들이 위협하고 시야 밖에 있는 후미의 늑대들이 공격한다. 이대로라면 보통의 무인들의 경우 반항도 제대로 하지 못한 채 피륙이 될 터였다.
“웬 똥개들이 이렇게 많아? 복인가?”
하지만 늑대들의 위협이 통하지 않는 상대도 있었다.
독고유.
그는 취해 몽롱하게 풀린 눈으로 늑대들을 둘러보며 목도를 땅에 툭툭 두드렸다.
“대, 대인?”
그제야 독고유의 상태가 심상치 않음을 깨달은 진효린이 손을 뻗었지만, 독고유는 이미 그녀의 손이 닿지 않는 거리에 있었다.
저벅저벅 발걸음을 옮기기 시작한 것이다.
크르릉…….
독고유의 태평한 모습에 오히려 늑대들이 당황한 모양이었다.
늑대들은 독고유를 향해 털을 곤두세우면서도 그가 다가오자 슬금슬금 물러섰다.
크아앙!
파파팟!
그럼에도 독고유의 걸음이 멈추지 않자, 후미에서 십여 기의 늑대들이 삽시에 치솟아 올랐다.
사방팔방에서 독고유를 향해 달려드는 늑대들은 연수합격의 진수를 보여 주고 있었다.
투파파팍! 빠각!
캐앵!
늑대들이 독고유의 몸에 닿으려는 순간, 독고유의 손이 흐릿하게 사라졌다. 뒤이어 수십의 격타음이 울려 퍼지고 눈을 까뒤집은 늑대들이 사방으로 튕겨 나와 쓰러졌다.
“뭐야, 복날이면 순순히 두들겨 맞을 것이지 어디서 똥개가 사람한테 덤벼?”
부들부들 떠는 늑대들을 스윽 둘러본 독고유는 반쯤 풀린 눈으로 목도를 휘둘렀다.
이제 그가 범상치 않은 인물임을 깨달은 늑대들은 그의 손이 한 번 휘둘러질 때마다 움찔움찔 몸을 떨었다.
“다 죽었어! 오늘 몸보신 한번 제대로 해 보자. 앙?”
잔뜩 취한 눈으로 늑대들을 둘러보던 독고유의 입에서 못마땅함이 가득 담긴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뒤이어 독고유의 신형이 늑대 무리의 한복판으로 질풍같이 달려들었다.
빠바박!
깨갱!
캐앵!
늑대 무리에게 독고유는 그야말로 마왕이었다.
백 마리에 가까운 늑대들 사이를 마구잡이로 유린하니, 걸리는 늑대들은 여지없이 전신을 난타당해 쓰러졌다.
개방의 타구봉법과 비슷한 수준.
그야말로 전신이 말랑말랑해질 정도로 두들겨 맞은 늑대들은 여기저기에 쓰러져 신음을 흘렸다.
“그만!”
막 오십여 마리째의 늑대를 두들기려던 독고유의 신형이 우뚝 멈추었다.
그에게로 달려들던 늑대들도 거짓말처럼 움직임을 멈추었다.
진효린의 고개가 목소리가 들려온 곳으로 돌아갔다.
맹수 가죽으로 만든 옷을 입은 거구의 사내.
철호였다.
산 아래에서 달려온 철호는 아수라장으로 변한 공터를 둘러보았다.
어림잡아도 오십 마리 이상의 늑대들이 나자빠져 있었다.
철호의 얼굴이 붉게 달아올랐다.
‘저, 저 사내가 늑대들의 주인인가? 큰일 났네.’
진효린은 한숨을 내쉬며 침을 꿀꺽 삼켰다.
사내의 몸에서 은은하게 풍겨 나오는 기운도 결코 만만하지 않았던 것이다.
자칫하면 큰 싸움이 일어날 기세였다.
“으음…….”
철호의 입에서 침음성이 새어 나왔다. 그의 걸음이 성큼성큼 독고유에게로 향했다.
도를 휘두르려던 자세 그대로 멈춰 선 독고유는 그가 다가와도 전혀 움직이지 않았다.
“에라, 멍청한 놈아!”
빡!
독고유를 그대로 지나친 철호는 그 뒤편의 덩치 큰 늑대의 머리를 주먹으로 내리쳤다.
깨갱!
늑대는 그대로 풀썩 고개를 숙이며 꼬리를 말았다.
“술두꺼비를 찾으랬지, 누가 지나가는 무림 고수를 건드리라고 했냐! 아직도 본성을 못 버린 거냐!”
끄, 끄응…….
늑대는 신음을 흘리며 고개를 숙였다.
진효린의 눈이 빛났다.
‘술두꺼비를 찾고 있었던 거야? 그러면 일이 쉽게 풀릴지도 모르겠는걸.’
진효린이 안도의 한숨을 내쉬는 찰나, 삽시에 웃는 얼굴로 안면을 바꾼 철호가 독고유를 바라보았다.
“아이고, 이거 죄송하게 되었수다! 우리 똥개 녀석들이 실수를 한…….”
“이 똥개는 조금 덩치가 크네?”
번쩍!
말을 잇던 철호의 안면이 순간 꿈틀거렸다.
멈춰 서 있던 독고유의 안광이 다시 흉흉한 기세를 뿜기 시작했던 것이다.
“하아!”
그가 크게 숨을 내쉬자, 독한 술 냄새가 확 퍼져 나갔다.
그제야 철호의 얼굴에 뭔가 잘못되어 간다는 확신이 어렸다.
“이, 이보쇼, 자, 잠깐……. 히익!”
쒜에엑!
손을 내저으며 입을 여는 철호의 머리 위로 새까만 목도가 광풍을 토해 내며 휘몰아쳐 들었다.
빠각!
“푸하하하! 히끅! 호랑이 네놈이 왜 여기에 있냐?”
만취한 주합의 입에서 대소가 터져 나왔다. 그의 몽롱하게 풀린 두 눈에 온몸에 멍이 든 철호가 비쳐 있었다.
“시끄럽다, 이놈! 오늘에야말로 네놈과 승부를 보기 위해 왔……. 어이쿠!”
그의 비웃음에 발끈한 철호가 주먹을 불끈 쥐며 일어섰다.
하지만 이내 온몸에서 느껴지는 욱신거리는 고통에 몸을 숙일 수밖에 없었다.
그의 주위에 퍼져 있는 백이십 늑대들도 마찬가지였다. 다들 뼛골까지 노곤하게 두들겨 맞아 축 늘어져 있었던 것이다.
“미안하오. 내가 만취해서 그만…….”
내공으로 주독을 몰아낸 독고유가 포권을 취하며 말했다.
만취한 독고유의 눈에 철호의 모습은 온몸에 얼룩이 난 거대한 똥개로 보였었다.
“되었수. 재수 없이 만취한 고수한테 달려든 것이 잘못이지. 에이, 퉤!”
철호는 손을 내젓고는 침을 뱉었다.
오지게 재수 없는 하루였다. 주합과 승부를 보려 하면 꼭 이런 일이 생겼다.
“두꺼비, 저분하고는 무슨 사이야?”
늑대들을 조심스레 나르던 진효린이 물었다.
주합은 술을 한 잔 더 진하게 들이켜고는 말했다.
“아, 이놈 말이우? 복에 개 한 마리 잡아먹었더니 죽을상을 하고 덤벼들더만!”
“놈! 네놈이 잡아먹은 건 늑대 중에서도 유달리 강한 은랑(銀狼)이란 녀석이란 말이다! 내가 몇 날 며칠을 쫓아 잡은 녀석을 네놈이 먹었으니 눈이 돌아가지 않을 리가 있냐!”
“아, 거…… 그깟 똥개, 여기저기 널려 있으니 잡으면 되잖아? 여기도 봐라. 한 백 마리는 널려 있구만.”
주합이 팔을 휘휘 저으며 말하자, 철호의 얼굴이 또다시 붉게 달아올랐다.
“자자, 철 대협, 죄송하게 되었어요. 이분들이 워낙 통제 불능인지라…….”
“헤헷! 괜찮수!”
진효린이 연신 고개를 숙이며 사과하자, 붉게 달아올랐던 철호의 얼굴이 삽시에 몽롱하게 풀렸다.
참으로 단순한 사내다. 주합만큼이나.
“그나저나 이 산중에서 술은 어찌 구한 거요? 저 술두꺼비 녀석이 저렇게 얼큰하게 취할 정도라면 어지간히 많은 양일 텐데.”
“그러게 말이에요. 웬 폐가에 술독이 한가득 쌓여 있는 게 아니겠어요?”
“아, 그랬군. 엥?”
고개를 끄덕이던 철호의 눈이 부릅떠졌다.
그는 화들짝 놀란 눈으로 진효린을 바라보았다.
“산속 폐가에 술이 한가득 쌓여 있었다고?”
왜 그리 반응하는지 영문을 모르는 진효린은 고개를 끄덕였고, 철호의 얼굴에 망연자실한 기색이 스쳤다.
“미치겠군! 이렇게 막 나가다니…….”
“예? 먹어서는 안 되는 술인가요?”
진효린이 되묻자, 철호는 손바닥으로 자신의 이마를 탁 치며 외쳤다.
“이보쇼! 그건 녹림채주가 마실 술이라고! 녹림도들이 산에 술을 저장해 놓은 건 절대 건드려서는 안 되오! 만약 오늘 술을 확인하러 오기라도 한다면 녹림삼십육채 전부랑 싸워야 할 수도 있다고!”
“그깟 술이 그렇게 큰 의미를 가지고 있는 거요?”
독고유는 심드렁하게 되물었다. 그러면서도 호리병을 입에 가져다 대고 술을 홀짝였다.
“술과 여자는 녹림의 상징! 그건 녹림도들의 물품 중에서도 건드려서는 안 되는 역린 같은 거란 말이오!”
“헤엑!”
진효린도 그제야 상황 파악이 된 듯 경악성을 내질렀다.
하지만 독고유는 여전히 태평하기만 했다.
“그럼 들키지만 않으면 된다는 거구만. 우리가 이대로 가 버리면 누가 먹었는지 절대 모를 거 아니오?”
“그건 그렇소.”
철호는 허를 찔린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독고유는 씩 웃으며 자리에서 일어섰다.
“자, 그럼 갑시다. 녹림도라도 오기 전에.”
독고유는 술에 취한 주합을 일으켜 세웠다. 철호도 허겁지겁 늑대들을 다그쳤다.
단 한 사람만은 달랐다.
진효린만은 산 위를 올려다보며 하얗게 질려 있었다.
“왜 그러오?”
“…….”
진효린은 말없이 산 위편을 가리켰다.
그제야 독고유의 시선이 산 위로 향했다.
“이런…… 늦었구만.”
산 위를 올려 본 독고유의 얼굴에도 난감함이 서렸다.
어느새 녹림도로 보이는 백여 명의 산적들이 빈 술통을 들고 그들을 내려다보고 있었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