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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부마도 1권(21화)
제12장 피보다 진한 형제애(2)


“아니, 도대체 누가 이런…….”
소년의 허리는 거의 배꼽이 있는 곳까지 깊숙이 베여 있었다. 내장이 드러나게 깊이 베인 것은 아니지만 검날이 배의 근육을 찢어 놓은 모양이었다.
“꿰매야 하오. 바늘과 실을 주시오.”
진기를 흘려 출혈을 줄이던 독고유가 황급히 말하자, 진효린이 품속에서 바늘을 꺼내 들었다.
“상처를 잡으시오.”
바늘을 받아 든 독고유가 말하자, 진효린은 놀란 표정으로 그를 올려다보다가, 소년의 벌어진 상처를 움켜쥐었다.
“크흑!”
벌어진 상처를 꾹 오므리자, 누운 소년의 입에서 고통스러운 신음이 새어 나왔다.
진효린의 눈매에 눈물이 글썽글썽 맺혔다.
“은아, 조금만 참아. 조금만…….”
푸욱!
독고유가 빠른 속도로 상처를 꿰매기 시작했다. 상처 위로 꿰맨 자국이 죽 늘어서자, 독고유는 내공을 가득 끌어올려 소년의 가슴과 배를 어루만졌다.
“하아, 하아…….”
하얗게 질렸던 소년의 낯빛이 점점 정상을 찾아갔다. 출혈이 빨리 멎도록 복부 쪽으로 피를 돌리고, 강제로 소년의 전신의 혈액을 순환시킨 것이다.
“후우, 간신히 고비는 넘겼군. 이런 상처라면 움직이지도 못해야 정상일 터인데…….”
독고유는 땀이 맺힌 이마를 스윽 쓸어 넘기며 소년을 내려 보았다. 도대체 무엇이 이런 어린아이를 이토록 독하게 만든 것일까.
“아는 아이들이오?”
소년의 볼을 쓰다듬는 진효린을 바라보며 독고유가 슬쩍 입을 열었다.
“네에. 이 산속에 모여 사는 아이들이에요.”
진효린이 사색이 되어 입을 열었다.
산속에 모여 사는 아이들이라 했다. 다들 고아들인데 그녀가 보름에 한 번씩 아이들을 찾아오곤 했다고 했다.
두 소년의 이름은 전은(傳恩)과 전향(傳鄕). 고아들 중에서도 나이가 가장 많은 아이들이란다.
“그런데 이 아이들은 전혀 검을 쓸 줄 몰라요. 어떻게 이런…….”
진효린은 자신도 모르겠다는 듯 말을 흐렸다.
“이 녀석들에게 직접 들어 보아야겠군.”
독고유의 시선이 훌쩍훌쩍 울고 있는 전향에게로 향했다.
그간의 설움이 컸던 모양인지 전향은 눈물을 펑펑 쏟아 내고 있었다.
“형…… 형은 괜찮나요?”
독고유가 물끄러미 자신을 바라보자, 전향은 힘겹게 눈물을 그쳤다.
나이에 맞지 않게 감정을 다스릴 줄 아는 아이였다.
독고유의 눈에 연민의 빛이 어렸다.
“고비는 넘겼다. 푹 자고 일어나면 기운을 차릴 게다.”
“다행이에요. 사실 겁났어요. 형이 죽을까 봐…….”
전향의 목소리가 작게 떨렸다. 결국 참지 못한 전향이 고개를 숙이자, 독고유는 그의 어깨를 토닥였다.
“죄송합니다. 제가 멋대로 오해해서 그만…….”
독고유가 다가오자 전향이 꾸벅 고개를 숙였다. 독고유는 너털웃음을 터뜨렸다.
“걱정 마라. 어차피 너희들의 검으로는 나를 죽이지 못했을 테니까. 그런데…….”
독고유가 말끝을 흐리자, 전향의 눈에 순간 독기가 어렸다.
고개를 끄덕인 전향은 자신의 형을 등에 들쳐 업으며 말했다.
“우선 집으로 가요.”

전향이 안내한 곳은 아이들의 마을이라기보다는 빈민촌에 가까운 산채였다.
나무로 허름하게 지은 집들과 창고, 그리고 허술한 목책들이 아이들이 직접 만들었음을 짐작게 했다.
“얘들아, 나와서 누가 오셨는지 봐!”
“언니!”
“아가씨!”
전향이 마을 안으로 들어서며 외치자, 십여 명의 아이들이 여기저기서 우르르 튀어나왔다.
그들은 하나같이 진효린을 보고는 그녀를 부르며 달려왔다.
진효린은 부끄러운 듯 독고유를 힐끗 쳐다보고는 자신을 향해 달려드는 아이들을 꼭 껴안았다.
“으아앙!”
꼬마 여자아이들이 일제히 울음을 터뜨렸다. 독고유는 아이들이 그녀를 매우 좋아했음을 알 수 있었다.
“우리는 언니가 죽은 줄 알았어요. 그래서…… 그래서…….”
개중에 가장 나이가 많아 보이는 여자아이가 눈물을 닦으며 말했다. 진효린의 표정이 시무룩하게 변했다.
“그래, 언니는 죽지 않았으니까…….”
진효린이 아이들과 해후를 나누는 사이, 전향의 곁으로 소년들이 모여들었다.
“은 형은 괜찮아?”
“응. 아가씨와 함께 오신 분이 치료해 주셨어.”
소년들의 시선이 독고유에게로 향했다. 독고유는 어깨를 으쓱했다.
아이들이 모두 전은의 주위로 모여들자, 독고유가 넌지시 속삭였다.
“아이들이 소저를 아주 좋아하오?”
“그런 게 아니에요. 다들 납치되거나 팔려 왔던 아이들이에요. 진가에서 인신매매단을 처단했을 때 구해 내었는데, 그냥 넘어갈 수가 없어서…….”
진효린의 말에 독고유는 고개를 끄덕였다. 이렇게 많은 아이들이 한데 모여 살게 된 것이 그제야 이해가 갔다.
“응? 두꺼비 너는 왜 거기 가 있는 거냐?”
문득 주합이 보이지 않음을 깨달은 독고유의 시선이 뒤로 돌아갔다.
주합은 멀리서 상황을 관조하고 있었다.
“아, 아무것도 아니오.”
주합이 당황하여 입을 열자, 독고유의 입가에 짓궂은 미소가 번져 나갔다.
“너 설마 애들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 거냐?”
“…….”
주합은 독고유의 말을 듣지 못한 듯 딴청을 피웠다.
독고유는 피식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덩치 큰 주합이다. 아이들에게 쉽게 접근하지 못하는 것도 이해가 갔다.
“언니, 그런데 저분은 누구예요?”
여자아이들이 독고유를 가리키며 물었다. 개중에는 얼굴을 붉히는 아이도 있었다.
진효린이 빙긋 웃으며 말했다.
“대인이라고 부르렴. 저기 멀리 떨어진 멋진 아저씨는 술두꺼비.”
“와아!”
아이들은 독고유의 주위를 빙글빙글 돌며 까르르 웃다가 주합에게로 달려갔다.
아이들이 우르르 몰려오자, 화들짝 놀란 주합이 냅다 도망쳤다.
“와아! 두꺼비 아저씨가 도망친다!”
“이, 이놈들아, 따라오지 마라!”
아이들이 즐거워하며 뒤를 따르자, 주합은 마을 안을 빙글빙글 돌았다.
그 모습을 웃으며 바라본 독고유는 전향의 뒤를 따라 전향의 집으로 들어섰다.
전은을 침상에 눕힌 전향이 독고유가 따라 들어오자, 침을 꿀꺽 삼켰다.
“자, 이제 말해 보거라. 무엇에서 아이들을 지키기 위해 검을 든 것이지?”
독고유가 침상에 걸터앉으며 물었다. 전향은 이를 으득 갈며 이야기를 시작했다.
이곳에 사는 아이들은 모두 인신매매단에게 납치되거나 팔려 온 아이들.
진가의 사람들 덕분에 구출되긴 했지만, 인신매매단이 완전히 뿌리 뽑힌 것은 아니었다.
진가의 손이 닿는 동안은 그들을 건드리지 못했지만, 진가가 하룻밤 사이에 몰살당하자 다시 아이들에게 손을 뻗치기 시작했던 것이다.
“그래서 교대로 지키고 있었어요. 그런데 놈들이 무림인을 고용해서 형이…….”
전향의 눈에 독기가 서렸다. 자신이 죽더라도 동생들을 지켜 내리라는 의지가 여과 없이 전해졌다.
“그런…….”
독고유의 뒤에서 침음성이 새어 나왔다.
어느새 따라 들어온 진효린이 충격을 받은 듯 멍하니 서 있었다.
“그럼 보이지 않는 아이들은 어떻게 된 거니? 원은이나 양양 같은 아이들…….”
진효린이 느릿느릿 묻자, 전향의 눈빛이 차갑게 가라앉았다.
고개를 숙인 그는 한참 만에 힘겹게 입을 열었다.
“죽었어요.”
전향은 마을 뒤편의 묘지로 독고유와 진효린을 데려갔다. 다섯 개 정도 되는 묘비가 풀도 나지 않은 맨땅에 박혀 있었다.
“이럴 수가……. 나는 세가의 복수만을 위해서 이 아이들을…….”
진효린이 털썩 주저앉아 스스로를 자책했다.
이 아이들을 잊고 있었던 것이다. 자신이 조금이라도 신경을 돌렸다면 아이들이 이렇게 어린 나이에 죽지 않아도 되었을 터였다.
“당신 탓이 아니오. 게다가 이 아이들은 강하오.”
독고유가 그녀의 어깨를 토닥이며 말했다.
가족의 묘 앞에서 합장을 하고 있던 전향의 고개가 빙글 돌아갔다.
“기필코 지켜 낼 거예요. 무공을 익혀서라도.”
독고유의 시선이 마을 안의 아이들에게로 돌아갔다.
어느새 주합의 어깨에 올라타고 팔에 매달린 아이들의 얼굴에는 한 줌의 그늘도 보이지 않았다.
해맑은 아이들이다.
“별수 없군.”
독고유는 나지막이 중얼거렸다.
그의 시선이 전향에게로 향했다.
“꼬마야.”
“……?”
소년의 고요한 눈동자가 독고유의 눈과 마주쳤다.
독고유는 씩 웃으며 손을 뻗었다.
“지키고 싶으냐?”
“……!”
소년의 눈동자가 파르르 떨렸다.
전향의 눈에 일어난 파동은 이윽고 천천히 잠잠해졌다. 굳은 결심을 한 것과 같은 흔들림 없는 눈빛이 독고유를 올려다보았다.
“네.”
“좋아. 그렇다면 골라라.”
독고유는 만족스러운 듯 미소 지었다.
검지와 중지를 들어 올린 독고유가 태연자약하게 말을 이었다.
“첫째는 내가 나서는 것이다. 내가 그 인신매매단을 모두 쓸어버리는 거지. 둘째는 네가 하는 것이다. 형제의 원수를 네 손으로 갚는 것.”
“…….”
진효린이 놀란 듯 독고유를 바라보았다. 하지만 전향의 눈동자에는 여전히 흔들림이 없었다.
“제가 하겠어요.”
“좋아. 내가 삼 일 안에 너를 강하게 만들어 주마.”
독고유가 씩 웃었다. 즐거움과 함께 몰려온 스산함이 전향의 전신을 감쌌다.
잠시 자리를 비운 독고유는 딱딱한 목검을 만들어 마을로 돌아왔다.
독고유의 것과 마찬가지로 검은빛이 도는 것이 흑단목으로 만든 목검인 모양이었다.
“삼 일 내로 강해지려면 목숨을 걸어야 한다. 그 정도는 각오했겠지?”
독고유가 목검을 건네며 말하자, 전향은 당연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 정도는 각오한 일이에요.”
“좋다. 따라와라.”
독고유는 만족스러운 웃음을 지으며 손을 뻗었다.
전향이 그의 손을 부여잡자, 진효린이 불안한 듯 독고유를 바라보았다.
“도대체 무슨 일을 해내시려고…….”
그녀가 나지막이 중얼거렸지만 독고유는 대답하지 않았다. 대신 전향의 손을 이끌고 숲 속으로 천천히 사라져 갈 뿐이었다.

“으으…….”
전은은 배에서 느껴지는 욱신거리는 고통에 신음을 흘리며 눈을 떴다. 며칠이나 잠을 잤는지는 알 수 없었다.
“은아, 일어났구나!”
전은이 배를 부여잡으며 일어나려는 찰나, 그의 귓가로 믿을 수 없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아, 아가씨!”
“그래, 은아, 나야!”
전은이 믿을 수 없는 듯 눈을 부릅뜨자, 그의 곁으로 다가온 진효린이 그를 꼭 껴안았다.
“꿈이 아니었어!”
고통에 정신이 혼미한 가운데 그녀의 목소리가 들린다고 생각했었다. 그것이 그녀가 그리워서라고 생각했는데, 진짜 그녀가 와 있었을 줄은 몰랐다.
“죽은 줄 알았어요, 우린 아가씨가…….”
전은의 눈에 눈물이 글썽 고이자, 진효린이 손을 들어 그의 눈물을 닦아 주었다.
“이제 아무 걱정 마렴. 아무 걱정할 필요 없어.”
진효린이 다독이자, 전은은 퍼뜩 기억난 듯 눈을 부릅떴다.
“그 사내! 그 사내는 어디 있지요? 제가 정신을 잃기 전에……. 동생들은? 아이들은 다 무사한가요?”
전은의 외침에 진효린은 빙긋 웃으며 문을 열었다.
따가운 햇살이 가득 비추자, 전은은 눈을 찡그렸다.
“아!”
천천히 시야가 돌아온 그의 입에서 나지막한 탄성이 터져 나왔다.
아이들이 여전히 즐겁게 뛰놀고 있었다. 그 가운데에는 아이들을 주렁주렁 매단 주합이 서 있었다.
“이놈들, 무겁다!”
“와아! 두꺼비 아저씨, 멋져요!”
아이들을 대하는 것에 서툰 주합과 달리 아이들은 주합을 매우 잘 따랐다.
주합도 그것이 싫지는 않은 듯 더듬더듬 말하면서도 아이들의 곁을 떠나지 않고 있었다.
“다행이다. 향이는요?”
“으응, 대인과 함께…….”
전은이 비틀비틀 몸을 일으키자, 진효린이 그의 어깨를 부여잡았다.
“아앗! 오라버니!”
“형이 깨어났어!”
전은이 밖으로 나서자, 아이들이 펄쩍펄쩍 뛰며 그에게로 달려왔다.
“오라버니!”
“자자, 얘들아, 아직 오라버니가 몸이 좋지 않으니 안기진 마렴.”
아이들이 전은에게 달려들자, 진효린이 조심스럽게 전은을 뒤로 감싸며 말했다.
“아직도 아픈 거예요?”
“언제 나아요?”
아이들이 눈물을 글썽이며 묻자, 전은이 빙긋 웃었다.
“걱정하지 마. 난 다 나았으니까! 자! 배고픈데 밥 먹으러 가야겠다!”
전은이 걸음을 옮기자, 주위로 아이들이 우르르 따라붙었다.
“귀엽지?”
“으, 으음…….”
진효린이 아이들을 보며 슬쩍 묻자, 고개를 끄덕이던 주합이 황급히 고개를 돌렸다.
“후훗! 그런데 대인은 도대체 무얼 하고 계신 걸까? 오늘이 사흘째인데…….”
산속으로 들어간 독고유는 사흘 동안 한 번도 마을로 돌아오지 않았다. 전향도 마찬가지였다.
“애를 죽이지나 않으면 다행일 거요.”
주합의 머릿속에 지독한 수련으로 쓰러져 있는 전향의 모습이 그려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