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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상강호 1권 (18화)
5장 양유가 산을 내려오다 (5)
노상은 정말 열심히 움직였다.
양유가 덕화가에 있는 객잔을 하나 정해 방을 빌려 편히 쉬는 동안 노상은 어디를 그렇게 왔다 갔다 하는지 코빼기도 비치지 않았다.
인활단원들이 기다린다는 말은 쑥 들어가고 은자에 눈이 멀어서 그러고 있는 것이었다.
그러나 성과는 거의 없다시피 했다.
활동 자금이라 해봐야 은자 반 냥인데, 그 돈으로 부릴 수 있는 정보 단체는 거리를 배회하는 거지 소년들 정도밖에 없을 것이다.
철검성주를 만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며칠을 헛되이 보낸 끝에 노상이 내린 결론은 철검성 정문 앞에서 죽치고 있는 수밖에 없다는 것이었다.
그래서 노상은 그렇게 했다.
그러나 칠 주야를 지키고 서 있어도 철검성주는 나타나지 않았다.
그동안 양유는 은자를 마음껏 쓰며 못 먹었던 음식을 먹고 주도(酒道)에 입문하는 등 즐거운 일주일을 보냈다.
군유현 일은 노상이 의욕적으로 하고 있으니 전권 일임하고 자기는 그저 놀았다.
그 꼴을 내내 본 노상은 빈정이 상해서, 그리고 가망이 없다는 생각에 정문 지키는 것을 그만두었다.
“더는 못하겠습니다. 사형이 아닌 것을 밝혀 봐야 양 부자께서 돈을 다 쓰신 후일 텐데, 무슨 소용이겠습니까.”
그러면서 노상은 새로운 시각을 제기했다.
양유가 군유현의 사제인 것은 맞으나 그 군유현이 철검성의 군유현이 아닐 수도 있다는 가설이었다.
양유가 그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냐고 하니 노상은 양유의 사형 군유현이 철검성주와 동명(同名)인 것을 이용하여 양유에게 거짓말을 한 것일 수가 있다고 했다.
듣고 봐도 여전히 말이 안 되는 소리라 양유는 노상의 뒤통수를 때렸다.
“아야! 왜 때리고 그러십니까?”
“그럼 스승님이 멍청이란 말이야? 자기 제자가 철검성주인지 가짜 철검성주인지도 모를 것 같아? 그리고 사형의 딸, 군하경 걔가 철검성주 딸도 아닌데 그러고 다녔다면 정말 말도 안 되는 일이지. 암, 말도 안 되고 말고.”
이에 노상은 두 가지에 대해 놀랐는데, 하나는 사문 내력이 불분명해 하늘에서 뚝 떨어진 초고수라고 불리는 군유현에게 사부가 있다는 점이었고, 다른 하나는 양유의 입에서 군하경이라는 말이 나왔다는 것이었다.
지금까지 양유가 계속 사형, 사형 노래를 불렀으니 그 말을 사실로 받아들인다면 당연히 같은 스승을 모시고 있다는 말이 되지만, 일단 진지하게 생각한 적이 없었고 십대고수 정도쯤 되면 자기가 사부이면 사부였지 스승을 모시고 있지는 않을 것이라는 고정관념(固定觀念) 때문에 군유현과 양유의 사부라는 사람이 존재했다고 해도 이제는 현존하지 않을 것만 같았다.
그러나 그런 자가 실재한다면 대체 어떤 사람일까?
청출어람(靑出於藍)이라는 말이 있듯이, 십대고수의 스승이라고 한 오대고수나 삼대고수쯤 되라는 법은 없다.
그러나 대단한 사람일 것은 분명하다.
‘혹시 나는 아무도 모르는 철검성주의 비밀 사문에 접근한 것이 아닐까?’
그러나 곧 실소를 흘렸다.
말이 되는가 말이다.
노상은 양유에게 다른 것을 물었다.
“군하경이라면 철검성주의 외동딸, 하남제일화(河南諸一花)이며 하남제일여협(河南諸一女俠) 인난화봉(蘭花鳳) 군하경 말입죠? 그분을 아십니까?”
일련의 화려한 수식어에 대해서는 아는 바가 없으나 예전에 같이 산 적이 있다고 했다.
노상은 또 허풍 떤다고 생각하며 소리쳤다.
“바로 이겁니다! 철검성주를 볼 수 없다면 난화봉을 만나면 되죠. 철검성주보다야 얼굴 보기 쉽지 않겠습니까?”
“그것도 한 방법이군.”
노상은 다시 발발 돌아다녔다.
며칠이 흘렀는데도 아무 성과가 없어서 이번에도 포기하나 싶었는데 정주에 머문 지 십오 일째 되는 날 밤, 노상이 정보를 물어왔다.
“난화봉이 사흘 뒤, 덕화가에 뜬답니다!”
6장 주루에 모인 후기지수들 (1)
노상이 그답지 않게 어디서 그런 고급 정보를 물어왔나 했더니 다음 날, 덕화가를 걸으니 온통 난화봉 이야기뿐이었다.
양유는 생각했다.
‘고작 거리에서 풍문을 주워들어 와 놓고는 그렇게 생색을 냈단 말이지?’
아무튼 웃기는 놈이었다.
양유는 중인들이 모여 떠드는 곳에 가서 그들이 군하경 얘기를 하는 것을 들었다.
대부분 하는 말이 하남제일화는 어떻게 생겼을까, 얼굴 한 번 봤으면 좋겠다, 아니 난 손을 잡아 봤으면 좋겠다, 등등 같은 것이었다.
양유는 그들에게 물었다.
“군하경이 어디로, 그리고 정확히 언제 온다는 거요?”
중인들은 양유를 노려보았다.
“난화봉의 이름을 함부로 부르다니!”
무슨 큰 죄나 지은 것처럼 양유를 대하는 것이었다.
양유는 어이가 없어서 물었다.
“군하경을 군하경이라 하지 뭐라 한단 말이오?”
무리 중에서 가장 키가 큰 남자가 양유에게 말했다.
“난화봉, 정주난화, 철검화, 하남제일화, 하남제일여협 별호가 무려 다섯 개나 되니 그중에 하나를 고르면 된다. 감히 그 고귀한 이름을 네 입에 담지 마라!”
그 서슬 퍼런 기세에 양유는 자신도 모르게 알겠다고 했다.
그리고는 이틀 뒤에 철검화가 어디로 오는지 알려 달라고 했다.
장인(長人)은 그건 왜 묻느냐고 했다.
“나도 하남제일화의 얼굴을 잠깐이나마 보고 싶어서 그러오.”
장인은 동류의식을 느끼는지 표정이 약간 누그러졌다.
“하, 어디긴 어디겠나. 잠깐만 생각해 보면 용봉(龍鳳)들이 갈 만한 곳은 이 덕화가에서 초청루(草淸樓)밖에 없다는 것을 알 수 있지.”
초청루라면 양유도 알았다.
덕화가에서 가장 고급스러운 술집으로, 지금 가진 은자로는 술 한두 잔 마시면 더 시킬 수가 없어 쫓겨날 정도로 비싼 곳이었다.
“용봉이라는 것은 무엇이오?”
장인은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당신, 여기 사람 아니지?”
“그렇소.”
“그럼 그렇지, 철검성을 눈앞에 두고 살면서 무림 사정에 그렇게 어두울 수는 없지.”
장인은 자신의 통찰력에 자기 자신도 놀라는 듯했다.
장인은 양유에게 용봉이란 용봉회(龍鳳會)의 회원들을 일컫는 것으로, 용봉회는 정사패도 후기지수들의 친목 모임이라고 했다.
용봉들은 정기적으로 만나는데, 이번에는 난화봉이 대접할 차례가 되어 정주에서 모인다는 것이었다.
“흠, 알겠소. 그럼 초청루에서 어느 시각에 모이는지는 아시오?”
“안타깝게도 그것까지는……. 그래서 우리는 묘시초(卯時初)부터 모여서 난화봉을 기다릴 생각이오. 그리고 다른 봉황들도, 으흐흐.”
장인은 기분 나쁘게 웃었다.
양유는 새벽부터 참 할 일도 없다고 생각했으나 그런 생각을 표출하지는 않았고 알려 주어서 고맙다고 했다.
“당신도 생각 있으면 묘시에 나오시오. 나중에 구경꾼들이 몰릴 것이니 미리 자리를 잡아야 한다오.”
양유는 됐다고 하고는 이제 알아야 할 것은 알았으니 객실로 돌아갔다.
노상이 양유를 보자마자 모레, 초청루! 를 외치며 자랑스러워하는데, 어떤 반응을 보여야 할지 알 수 없었다.
그래서 한 대 쥐어박고는 자기도 다 안다고 했다.
이틀 뒤, 양유는 오시말(午時末)이나 되어서 초청루로 갔다.
노상이 빨리빨리 좀 가자는데도 꾸물거렸는데, 왠지 일찌감치 가다가는 장인들하고 같은 부류가 될 것 같아서였다.
초청루 앞은 이미 많은 인파로 북적거렸다.
노상이 아무나 붙잡고 난화봉 아직 안 왔느냐고 물어보니 군하경 및 용봉들은 이미 안에 들어갔다는 대답이 돌아왔다.
“거봐요, 더 일찍 나가야 한다 하지 않았습니까?”
“아직 안 갔으면 된 거지. 들어가자.”
그런데 누군가가 양유에게 아는 체를 했다.
그저께의 그 장인이었다.
“이렇게 늦게 오다니 영 정신 상태가 글러 먹었군그래, 우리는 이미 난화봉을 봤지. 아무튼 안됐네그래.”
“그래요? 어떻습디까?”
“어떻긴, 선녀! 이 말 말고는 뭐라 형용할 수가 없더군.”
장인과 장인 패거리들은 자신들의 뇌리에 박힌 군하경의 상을 떠올렸는지 헤벌레 하고 있었다.
양유는 이런 인간들하고 더 상대하기 싫어 적당히 인사하고 벗어났다.
그리고 노상과 입구로 걸어갔다.
“이봐! 아무리 하남제일화가 보고 싶어도 그렇지 안에 들어가려고 하다가는 무슨 일을 당할지 몰라!”
굳이 장인이 말해주지 않더라도 알 수 있었던 것이, 문을 지키고 있던 덩치 둘이 양유의 앞을 막으러 달려왔다.
“오늘 초청루는 난화봉께서 통째로 빌리셨다. 네깟 놈들은 들어올 수 없으니 썩 꺼져라.”
주루에서 고용한 주먹들인 듯했다.
무림인이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어서, 치고받고 하고 싶지는 않았고 스쳐 지나가며 왼손으로는 왼쪽 주먹의 장태혈(將台穴)을, 오른손으로는 오른쪽 주먹의 문청혈(聞廳穴)을 눌러 혼절시켰다.
“가자.”
노상은 자기 덩치만 한 남자들이 단숨에 쓰러지는 것을 보고 어리둥절하다 양유에 의해 그렇게 되었다는 것을 뒤늦게 알게 되었다.
간만에 외경심을 품으며 뒤를 쫓았다.
초청루 안은 예상했던 것보다 더 호화로웠다.
복도부터 바닥에 붉은 융단이 깔렸고 세련된 무늬가 새겨진 벽은 금가루가 섞여 반짝거렸다.
천장에는 휘황한 장식등(裝飾燈)이 나른한 빛을 발하고 있었는데, 아래에 있는 것들에 몽환적인 느낌을 뿌리고 있었다.
노상이 말했다.
“여기서 기녀 불러다 술 마시면 바랄 것이 없겠는데요.”
양유는 동의하지 않았다.
이리저리 둘러보며 복도를 걸으니 길을 막는 남자들이 또 나타났다.
그들은 외부인을 보자 당황한 듯 물었다.
“어떻게 들어왔지?”
“걸어서 들어왔다. 마침 잘됐네. 군하경은 어디에 있지?”
이 넓고 높은 주루 어디에 군하경이 있을지 찾기 난감해진 차에, 반가운 사람들이었다.
그러나 그들이 말할 리는 없었다.
“지랄 말고 꺼져라. 오늘 여기 온 분들이 어떤 분들인데. 너희를 위해 하는 말이니 괜히 서로 피곤하게 만들지 말고.”
양유는 한숨을 쉬었다.
그리고 뚜벅뚜벅 걸어가 한 놈의 얼굴을 쳤다.
이는 안 부러지게 힘을 조절했으나 위압감을 주긴 해야 하니 적당히 피떡이 될 정도로는 때렸다.
“군하경 어딨어?”
남은 세 명의 남자는 대답 없이 양유에게 덤벼들었다.
양유는 가볍게 뒤로 물러나 한 녀석의 얼굴을 갈기고 다른 녀석의 얼굴을 발로 찼다.
두 인간의 얼굴은 곧장 퉁퉁 불어 올랐다.
양유의 신위가 보통이 아닌지라 마지막 남은 얼굴 상태 멀쩡한 남자가 경악을 가득 담아 외쳤다.
“무, 무림인? 무림인이 왜 여기에……?”
바로 앞에 철검성이 있으니 철검성 소속이 아닌 무림인은 덕화가에서 설치고 다닐 수가 없었다.
그리고 초청루는 철검성에 꼬박꼬박 상납하니, 철검성 무사도 여기 와서 행패를 부리는 일은 없었다.
그래서 초청루에서는 무림인을 고용하지 않으면서 효율적인 경영을 했다.
그것을 모르는 양유는 거대 문파 근처에 살면서 왜 무림인을 처음 보는 듯이 행동하는지 이해할 수 없었으나 그런 것은 중요하지 않아서 다시 물었다.
“군하경 어딨냐고?”
아직 얼굴 안 망가진 남자는 직업윤리를 지키려는지 입을 열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