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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피림의 레이디 1권 3화


“아가씨한테는 좀 더 빠른 곡이 어울리지 않을까요?”
멜로디아가 무구하게 물었다. 수도 아가씨들이 즐겨 하던 악평을 기다리다가, 이다는 고개를 들었다. 멜로디아는 피아노 건반을 내려다보며 뭔가에 골몰해 있었다.
“박자가 점점 더 빨라지더라고요. 아가씨께는 좀 더 활기찬 곡이 어울릴 것 같아요.”
“성격 급하단 얘기가 하고 싶은 거야?”
어린 시절 잠시 이다를 가르쳤던 가정 교사가 입이 닳도록 한 소리였다. 수도에서 들은 말이기도 했다. 자연 말투가 뾰족하게 나갔다. 이다가 갑자기 날카로운 태도를 취하자 멜로디아는 조금 당황했다.
“그런 뜻이 아니에요. 즐겁게 연주하고 싶으신 것 같단 얘기였어요. 그런데 방금 친 곡은 잔잔한 편이니까…….”
“듣기 싫어.”
이다는 신경질적으로 말하고 벌떡 일어났다. 쾅, 건반 덮개를 세게 닫았다. 갑작스러운 큰 소리에 깜짝 놀라 멜로디아가 움찔하는 게 보였다. 눈치를 보고 있었다.
이겼다는 쾌감을 뒤따른 건 참기 어려운 불편함이었다. 어머니는 왜 저런 애를 말동무랍시고 붙여 줬을까. 나가 있으라고 말하고 싶은데, 그건 또 지는 기분이었다.
“자수를 놓을 거야. 준비해서 가져와.”
“네, 아가씨.”
말을 돌리자 멜로디아도 얼른 대답했다. 그녀도 이 불편한 분위기를 견디기가 쉽지 않은 모양이었다. 멜로디아가 자수틀과 바늘을 갖춰 이다에게 갖다 주었다.
이다는 수를 놓는 일에 집중하고 싶었지만 잘 되지 않았다. 스스로의 성격이 급하다는 건 이다도 잘 알았다. 그래서 이렇게 가만히 앉아서 하는 일은 영 성미에 맞질 않았다. 악기도, 춤도, 그림도…… 마음이 앞서 망치곤 했다.
이다가 수를 놓는 동안 멜로디아는 이다의 옷을 정리했다. 룸이 따로 있긴 하지만 방에 걸어 놓는 옷들도 있었다. 색색의 겉옷을 하나하나 살피며 장식이 떨어지거나 얼룩이 묻지 않았는지 확인했다.
“간식이라도 가져올까요?”
그 물음을 건네는 데는 상당한 용기가 필요했다. 이다는 어째서인지 피아노 연주 이후 계속 기분이 나빠 보였고, 이다의 연주가 그리 나쁘지 않다고 생각했던 멜로디아로서는 그 까닭을 알 수가 없었던 것이다.
“됐어.”
이다는 냉랭하게 대답하고 입을 다물어 버렸다. 그러면서 이다는 익숙한 감정을 감지했다. 누군가를 향한 매서운 적의. 더 잘하는 사람들, 더 뛰어난 사람들, 남을 비웃기 좋아하던 그 사람들을 향하던 맹렬한 감정.
결국 저녁 식사 전까지의 오후가 내내 그런 분위기에서 가 버리고 말았다. 멜로디아는 저녁 시중이 필요 없으니 가 보라는 지시를 받고 일찍 방으로 돌아왔다.
“누나, 피곤해 보여.”
아르디온이 그렇게 물은 건 사실 당연한 일이었다.
몇 시간 내내 남의 눈치를 살피는 것은 상상 이상의 정신력을 필요로 했다. 멜로디아는 전에 한 번도 이런 일을 겪어 보지 않아 더욱 피로했다. 지하 창고 정리를 마치고 멜로디아의 방으로 온 아르디온은 누나의 안색이 너무 나쁘자 걱정이 되었다.
“더 편한 일일 거라고 생각했는데…… 왜 그렇게 표정이 안 좋아?”
“아가씨 기분이 별로였어. 컨디션이 안 좋으셨나 봐.”
그 말을 들은 아르디온은 살짝 인상을 썼다. 열두 살이면서 어른 같은 표정을 짓네, 멜로디아는 그렇게 생각했다.
멜로디아는 침대 모서리에 나란히 걸터앉은 동생을 좀 더 자세히 살폈다. 일이 고된지 피부가 까칠해진 게 눈에 들어왔다. 이다 옆에서 남자 하인이 할 일은 많지 않으니, 아르디온은 하던 일을 계속 해야 했다. 당연한 일이지만 그래도 아르디온이 힘든 것 같아 마음이 쓰였다.
“곧 나아질 거야. 아직 돌아온 지 얼마 안 됐으니 그럴 수도 있고…… 어떻게 항상 기분 좋기만 하겠어?”
“나랑 일하는 사람들은 이다 아가씨를 싫어해.”
아르디온은 꽤 단호하게 말했다. 멜로디아는 옆에 앉은 동생을 보았다. 아무래도 사람들에게 이런저런 말을 들어서 멜로디아가 더 걱정이 되는 모양이었다.
“하인들은 아가씨를 만날 일도 드물잖아.”
“그렇긴 하지만.”
“아마 아가씨를 싫어하는 게 아니라 어려워하는 걸 거야. 우리 저택 하녀들도 그랬잖아.”
“우린 그 사람들이랑 친했잖아.”
아르디온은 동의 못 하겠다는 듯 말했다. 사용인들과 친했던 건 사실이라 그렇게 말하니 멜로디아도 할 말이 없었다. 하지만 멜로디아는 동생이 다른 사람에게, 특히 저택 아가씨에게 안 좋은 감정을 품는 것을 바라지 않았다.
“친했지만 친구처럼 편하게 대하진 못했을 거야.”
“맞아, 친구는 아니었어.”
아르디온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더니 멜로디아가 예상치 못한 말을 해 왔다.
“그래도…… 누나는…… 보고 싶지 않아?”
멜로디아는 말문이 막혔다.
누가 보고 싶은지. 하나하나 이름을 다 부를 수도 없는, 수많은 사람들. 멜로디아는 아르디온이 그 무수한 사람들을 말하지 못한 것을 이해할 수 있었다.
멜로디아는 아르디온의 손등 위에 자기 손을 겹쳤다.
“보고 싶어.”
간절히.
“오늘 내 방에서 잘래?”
“응.”
멜로디아는 불을 껐다. 새 침대는 여전히 낯설고 불편했다. 그래도 시간은 계속 가고 있었다.

*

결국 피아노는 화근이 되었다.
일은 남작 부인이 이다에게 피아노를 쳐 보라고 하면서 시작되었다. 이다는 거부하지 못하고 연주를 했다. 그 연주를 주의 깊게 들은 남작 부인은 멜로디아에게도 연주를 권했다. 얼마 전 이다의 반응을 떠올린 멜로디아는, 보여 드릴 만한 실력이 안 된다며 사양했지만 결국 피아노 앞에 앉게 되었다.
“잘 치는구나. 어릴 때부터 배웠니?”
“네, 부인.”
“이다가 어릴 때는 가정 교사를 구하기가 더 어려웠지. 내가 가르치긴 했지만 확실히 어려운 점이 많았을 거야.”
“아가씨의 연주도 훌륭하신 걸요.”
진심으로 한 말이었는데 이다가 노골적으로 비웃는 소리를 냈다.
“빈말도 잘해.”
멜로디아는 당혹을 감추지 못한 얼굴로 이다를 보았다. 남작 부인도 같은 심정인 모양이었다. 남작 부인이 무어라 나무라기 전에 멜로디아가 말했다.
“빈말이 아니에요. 아가씨 연주는 힘 있고…… 명랑한 느낌이 있다고 생각해요.”
“멜로디아, 네가 이다에게 피아노를 가르쳐 주렴.”
맥락 없는 말에 멜로디아는 놀라서 남작 부인에게로 시선을 돌렸다. 그러나 부인은 멜로디아를 보고 있지 않았다. 그녀는 이다만을 뚫어져라 보고 있었다. 멜로디아는 부인의 얼굴에서 희미한 분노와 수치심을 읽었다.
“이다, 너보다 더 잘하는 사람을 보면 배우겠다는 생각을 해야지. 무례한 태도구나. 칭찬에 그런 식으로 대꾸하다니.”
이다는 얼굴을 새빨갛게 붉히고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제 구두만 내려다보며 고집스레 버텼다. 그 태도에 남작 부인은 더욱 화가 난 것 같았다.
“나는 수도에 가서 네가 더 많은 것을 느끼고, 더 겸손해져서 돌아올 줄 알았다. 여기선 네가 최고 같겠지만 밖에 나가면 그렇지 않다는 걸 알고 더 노력할 거라고 생각했어.”
“어머니.”
이다는 발끈해서 고개를 쳐들었다. 그러나 어머니의 엄격한 얼굴을 보고 용기를 잃었다. 이다는 벌떡 일어나더니 억지로 예의를 차려 인사하고 밖으로 나가 버렸다.
“하아……. 수도에 다녀오더니 더 나빠졌구나.”
남작 부인은 한 손으로 이마를 짚으며 눈을 감았다. 멜로디아는 일단 부인을 위로해야 할 것 같아 그 곁에 무릎을 꿇고 다정하게 그녀의 무릎에 손을 얹었다.
“부인, 걱정하지 마세요. 사교계에 정식으로 데뷔하면 다 놀란다고 들었어요. 아가씨도 조금 놀라신 것뿐이에요. 얼마나 부지런하시고 모든 일에 열심이신데요.”
“그러길 바란다만, 이다는 데뷔 전부터 비슷했어. 내가 이다에게…….”
남작 부인은 우뚝 말을 멈추었다. 실수했다는 얼굴이었다.
멜로디아는 더 캐묻지 않았다. 시녀에게 시시콜콜한 과거사며 가족사를 털어놓는 건 누구나 경계하는 일이다. 멜로디아는 트리톤 남작이 계속 부재중이라는 것이나, 부인이 늘 예민하고 점차 말라 가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으나 깊이 파고들려 애쓰지 않았다.
선을 잘 지켜야 한다. 더는 예전의 멜로디아 네레이드가 아니니까.
“이만 가 보렴. 네가 이다를 많이 도와주면 좋겠구나.”
“너무 염려 마세요, 부인.”
남작 부인을 두고 나와 멜로디아는 또 바쁘게 이다에게 갔다. 이다의 방으로 갔을 때, 막 하인들이 피아노를 들어내고 있었다. 멜로디아는 괜히 가슴이 철렁했다. 남작 부인이 말을 나쁘게 하긴 했지만, 이렇게 행동해서 좋을 게 없을 텐데.
“아가씨…….”
조심스레 불렀지만 이다는 대답도 없었다. 멜로디아는 다가가서 괜히 이다의 드레스 자락을 만져 주었다. 침대에 걸터앉아 있던 이다가 벌떡 일어나 멜로디아의 손길을 피했다. 이럴 땐 뭘 어떻게 해야 하는지 알 수 없어서 멜로디아는 쩔쩔매기만 했다.
“넌 사교계에 나가 본 적도 없잖아.”
피아노가 있던 자리를 노려보며 이다가 내뱉었다.
뜬금없는 소리라서 멜로디아는 대꾸하지 못했다. 하지만 이다는 무엇이 그렇게 속상한지 눈물까지 글썽였다. 멜로디아는 괜히 다가갔다가 일을 악화시킬까 봐 가만히 이다의 말을 듣고만 있었다.
“난…… 난, 어머니는…….”
이다가 헐떡였다. 울음이 차올라 말이 제대로 나오지 않는 모양이었다.
“매번, 나도 가서…… 거기서 얼마나, 나도 이렇게…….”
“아가씨.”
“내가 원한 게 아니야.”
간신히 그 말만 제대로 뱉은 이다가, 홱 고개를 돌려 멜로디아를 노려보았다. 멜로디아가 난생처음 겪는 타인의 이유 없는 적의였다. 멜로디아는 순간적으로 얼어붙었다.
“넌, 너도 똑같아. 너도 날 비웃고 있잖아!”
멜로디아는 비웃은 적이 없었다. 도대체 왜 이런 오해를 받게 된 건지 알 수가 없었다. 그래서 간신히 한마디만 내놓았다.
“그렇지 않아요.”
“나가.”
“제가 아가씨를 불편하게 했다면…….”
“나가라고!”
이다가 뼈마디가 도드라질 정도로 두 주먹을 꽉 쥐며 있는 힘껏 소리를 질렀다. 새된 목소리가 쨍하고 방을 울렸다. 허리까지 굽혀 가며 비명처럼 외친 후 이다는 가쁜 숨을 몰아쉬며 돌아서 버렸다.
멜로디아는 하릴없이 방 밖으로 나오고 말았다. 흥분으로 떨리던 이다의 어깨와 가는 뒷목이 떠올라 마음이 답답해졌다.

그날 이후 멜로디아는 이다 앞에서 피아노에 대한 얘기를 일절 꺼내지 않았다. 그리고 남작 부인도 그렇게 해 주길 간절히 바랐다.
“멜로디아, 그림은 얼마나 그리니? 춤은?”
남작 부인이 그렇게 묻고 이다에게 그림을 가르쳐 주는 게 어떻겠냐고 했을 때, 멜로디아는 막연히 일이 아주 틀어질 것임을 느꼈다. 과연 이다는 전처럼 그 자리를 박차고 나가 버렸으며 그날 오후에는 캔버스와 물감을 모두 치워 버리라고 지시하기에 이르렀다. 멜로디아는 이다의 방 안으로 들어가지도 못하고 쫓겨났다.
일이 그런 식으로 진행되자, 저택에도 소문이 안 돌 수가 없었다. 어디서 무슨 말을 듣고 왔는지, 어느 밤에는 아르디온이 잔뜩 불만 어린 얼굴로 찾아오기도 했다.
“그 사람 진짜 이상해. 항상 말썽만 일으킨다고.”
누나를 끔찍이 아끼는 아르디온은 이다의 모든 것이 다 못마땅했다. 멜로디아는 괜히 신경 쓸 것 없다고 동생을 다독였지만 막막한 건 어쩔 수 없었다. 이런 식의 악의를 받아 본 적이 없어서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지 감도 오지 않았다.
이다는 계속 예민한 상태였다. 그녀는 멜로디아를 노골적으로 무시했으며, 별것도 아닌 일을 가지고 핀잔을 주기 일쑤였다. 다른 하녀들과 함께 이다의 시중을 들 때는 평소보다 그 정도가 더했다.
“머리를 이따위로 만져 놓으면 어떡해?”
“옷을 새로 가져와. 소매가 구겨졌잖아.”
“입욕제 이거 쓰지 말랬지!”
이다의 트집은 대체로 이런 종류였다. 머리를 만진 게 누구든, 옷을 가져온 게 누구든, 입욕제를 푼 게 누구든…… 이다는 조금도 신경 쓰지 않았다. 서넛의 하녀들과 있어도 이다의 짜증을 받아 내는 건 언제나 멜로디아의 몫이었다.
원래부터 이다를 그리 좋아하지 않았던 하녀들은, 멜로디아 같은 애에게 저렇게 대하는 것도 보통 성질로 할 일은 아니라며 수군거렸다.
그렇게 몇 달이 지났다. 멜로디아는 수척해져 갔고 이다의 괴롭힘은 더욱 노골적으로 변했다.
“너 괜찮아?”
어느 날에는 동료 샤론이 그렇게 물었다.
“괜찮아.”
대답은 곧장 나왔지만, 샤론은 멜로디아가 조금씩 변하는 것을 느끼고 있었다. 멜로디아는 여전히 다른 사용인들에게 친절했다. 하지만 멜로디아는 점차 인내심을 잃어 가고 있었다.
“너 이다 아가씨랑 있다가 성격 다 버리겠다.”
그 말을 듣고 멜로디아는 눈을 동그랗게 떴다. 그러더니 곧 멜로디아 특유의 온화한 미소를 지어 보였다.
“걱정해 줘서 고마워.”
“차라리 부인께 말씀드려 보는 건 어때?”
“아니야.”
멜로디아는 남작 부인에게 이 상황을 들키는 것에 대한 두려움을 갖고 있었다. 특별한 이유가 있어서는 아니다. 그저 느낌이 그랬다. 분명 이다가 일방적으로 자기를 괴롭히는 상황이지만, 부인이 알아도 달라지는 건 없으리라는 기묘한 확신이 있었다.

*

계절은 금세 바뀌었다. 화창한 봄, 벌써 5월이었다.
“차를 이렇게 타 오면 어쩌자는 거야?”
봄을 맞아 정원에서 티타임을 가지려던 참이었다. 어쩐 일로 남작 부인보다 한참 앞서 도착한 이다는, 다른 사용인들이 보는 앞에서 멜로디아에게 면박을 주었다. 멜로디아는 평소처럼 순순히 고개를 숙였다.
“죄송합니다. 다시 준비해 드리겠습니다.”
그 차를 우린 건 다른 사람이라는 얘기는 하지 않았다. 그 차는 원래 식혀 마시는 차라는 말도 그만두었다.
“아예 다른 찻잎을 가져와. 내가 직접 할 테니까.”
“네, 아가씨.”
멜로디아는 재게 걸음을 옮겨 주방으로 갔다. 거리가 꽤 있어 숨이 가빴다. 하지만 이다의 심술은 거기서 끝나지 않았다. 새로 가져온 찻잎 다섯 종류가 전부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퇴짜를 놓더니, 다른 걸 가져오라고 하며 아예 찻잎 종류까지 불러 주었다. 모여 있던 모든 사용인들이 기막힌 표정을 감추려 애썼고 멜로디아는 또 군말 없이 주방까지 뛰었다. 그렇게 새 찻잎을 가져왔더니 이번엔 티 세트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아예 다른 걸 가져오라는 게 아닌가.
일이 그쯤 되자, 멜로디아로서도 화가 나지 않을 수 없었다.
멜로디아는 근 몇 달 동안, 이다를 이해하기 위해 최선을 다했다. 어머니와의 관계도 원만치 않은 것 같고 이유는 모르지만 자기를 싫어하는 것 같으니, 이 정도는 감수하자 생각했다. 하지만 무수히 인내했음에도 이다는 변하지 않았다. 멜로디아는 한 번도 느낀 적 없던 자기 인내의 한계를 느꼈다.
“아가씨, 죄송하지만 이 티 세트는 남작 부인께서 특별히 준비하라고 지시하신 것들입니다.”
멜로디아가 그렇게 말한 순간 분위기가 확 경직되었다. 말의 내용 때문이 아니었다. 멜로디아의 표정과 어조 때문이었다.
멜로디아는 누구에게나 대체적으로 친절하고 상냥했다. 사랑받으며 자란 사람이라는 걸 모두가 짐작할 수 있을 정도로. 이다는 물론, 그 자리에 모인 하녀들도 멜로디아가 그토록 차갑게 말하는 것을 본 적이 없었다.
“정 마음에 들지 않으신다면 남작 부인께 먼저 말씀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아까까지만 해도 고분고분하던 멜로디아가 고개를 똑바로 들고 자기를 바라보자, 이다는 말을 잃고 말았다. 허리를 곧게 펴고 선 멜로디아는 완전히 다른 사람 같았다. 어딘지 모르게 힐난하는 눈빛. 네가 잘못했다고 비난하는 눈빛. 남작 부인 같기도 했고 수도에서 봤던 아가씨들 같기도 했다.
이다는 견디지 못했다.
“감히 어디서 말대꾸지?”
이다는 싸늘하게 내뱉었다. 지방에 있다곤 해도 그녀 역시 귀족이었다. 하녀들은 시선을 바닥에 고정하고 분위기를 살피느라 바빴다. 전혀 주눅 들지 않은 건 멜로디아뿐이었다.
“사실을 말씀드렸을 뿐입니다.”
“어머니가 널 마음에 들어 하시니 눈에 보이는 게 없는 모양이구나.”
“아가씨의 안목이 남작 부인께 한참 못 미치는 것은 보입니다.”
그 순간, 이다가 제 앞에 놓인 찻잔을 집어 던졌다.
붉은 무늬가 들어간 찻잔은 멜로디아의 발치에서 부서졌다. 돌로 된 발판에 부딪쳐 산산조각이 났다. 멜로디아는 햇빛을 받아 반짝이는 파편을 내려다보다가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 실수했다는 낭패감과 차라리 여기서 다 끝내 버리자는 충동이 교차했다. 멜로디아가 막 입을 열던 때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