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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피림의 레이디 1권 5화


지방 귀족은 만나는 사람이 한정적일 수밖에 없다. 특별히 상단을 꾸리고 있거나 수도 유력 귀족과 가까운 게 아니라면, 고정된 공간 안에서 똑같은 사람만 만나게 되는 것이다.
그러나 트리톤에 이례적인 일이 일어났다. 렐로 백작의 영식 디아누가 트리톤에 방문하기로 한 것이다.
멜로디아는 이다가 기뻐할 거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소식을 들은 이다는 오히려 인상을 쓰고 부인에게 그 사람이 여길 왜 오느냐고 물었다. 그로부터 일주일이 지나 마차를 타고 디아누가 나타날 때까지, 이다는 예민해져 있었다.
“어서 오세요, 렐로 공.”
정작 디아누 렐로가 왔을 때 이다는 싫은 내색 없이 그를 맞이했다. 디아누 역시 이다의 손등에 부드럽게 입을 맞추며 제법 신사 흉내를 냈다.
“다시 뵙게 되어 기쁩니다.”
디아누를 맞이하기 위해 나와 있던 이다의 표정이 약간 굳어졌다. 멜로디아는 그걸 놓치지 않고 보았으나, 이다는 억지로 표정을 지우고 디아누에게 미소를 지어 보였다.
“저 또한 그렇습니다. 아버지는 출타 중이시니, 어머니께 안내해 드리겠습니다.”
“큰 영광입니다.”
이다가 앞서 걸어갔다. 디아누는 이다보다 약간 뒤쪽에 서서 그녀를 따라갔다. 거의 나란히 걷는다고 해도 좋을 정도로 보폭을 맞추다가, 디아누가 살짝 뒤를 돌아보았다.
그의 시선이 두 손을 모으고 뒤따라오던 멜로디아에게 닿았다. 그러나 멜로디아는 그 시선을 알아차리지 못했다. 디아누의 입가에 묘한 미소가 스치는 것도, 그녀는 몰랐다.

디아누 렐로는 그해 열일곱 살이 된 소년이었다. 그는 색감이 옅은 금발을 가졌는데, 그 탓인지 어딜 가든 눈에 띄는 편이었다. 또렷한 눈매와 검은 눈동자는 그를 영민하고 매력적인 사람으로 보이게 했다.
“한층 아름다워지셨습니다.”
함께 차를 마시다가 디아누가 말했다. 그의 맞은편에 앉았던 이다는, 의례적인 칭찬이라 생각했는지 겸양의 말을 내놓고 입을 다물어 버렸다.
이다의 시중을 들다가 멜로디아는 뭔가 이상한 분위기를 감지했다. 이다는 디아누를 무척 경계하고 있었다. 그에 반해 디아누는 싱글싱글 웃고만 있으니 둘 사이에 무슨 일이 있었던 건지 멜로디아로서는 짐작하기 어려웠다. 하지만 자기가 관여할 영역이 아니었으므로 멜로디아는 조용히 이다의 찻잔에 차를 따랐다.
“방문하신다 하여 놀랐습니다.”
“급작스러운 방문에 마음이 상하지 않으셨기를 바랄 뿐입니다.”
“마음이 상할 일이 뭐가 있겠습니까?”
이다는 완곡하게 대답하고 말을 고르기 위해 사이를 두었다. 디아누는 수도에서 태어나 수도에서 자랐다. 그런 그의 앞에서 어떻게 말해야 교양 있어 보일지 이다는 알 수 없었다. 디아누에게 호감을 갖고 있진 않지만, 화법 때문에 흠잡히고 싶지 않은 건 그것과 다른 문제였다.
“트리톤에는 어쩐 일이신지요? 특별한 볼일이 있으시다면 힘닿는 데까지 돕고 싶습니다.”
디아누가 씩 웃었다.
“용무가 있어서 온 건 아닙니다. 영애께 전해 드리고 싶은 것이 있어서 왔습니다.”
“저에게요?”
이다는 긴장 때문에 식은땀이 날 지경이었다. 데뷔 이후, 수도 귀족들 앞에만 서면 배 속이 조이고 가슴이 답답해진다. 이번에도 예외는 아니었다.
“네.”
“제가 공께 받을 것이 있었던가요?”
“하하.”
디아누가 난처한 듯 웃었다. 무심결에 물었던 이다는 제가 실수했나 싶어 입을 다물고 디아누의 눈치를 살폈다. 그러나 디아누는 아무렇지도 않은 얼굴로 웃음을 그치고 어깨를 으쓱했다.
“제게 맡겨 두신 물건은 없습니다만, 제가 드리고 싶어 드리는 것입니다.”
그러더니 디아누가 자기 옆에 서 있던 하인을 밖으로 내보냈다. 하인은 곧 손에 하얀 선물 상자를 들고 돌아왔다. 금색과 빨간색 리본으로 멋들어지게 포장된 상자였다.
“열어 보시지요. 제 작은 성의입니다.”
이다는 불안을 감추려 애쓰며 슬쩍 디아누를 보았다. 선물 준 상대 앞에서 상자를 열어도 좋은 것인지, 그래도 문제가 없는 것인지 확신이 서지 않아서였다. 디아누는 그녀의 불안을 아는지 모르는지 사람 좋은 듯 미소하며 어서 풀어 보라고 눈짓할 뿐이었다.
이다는 이렇게 행동해도, 저렇게 행동해도 비웃음을 사던 수도에서의 생활을 떠올렸다. 끔찍한 기분이 들었지만 한편으론 체념이 되기도 했다. 이다는 상자를 열었다.
날렵하고 굽이 높은 붉은 구두 한 켤레가 보였다.
이다는 상자 뚜껑을 옆에 내려놓았다. 구두를 좀 더 자세히 살폈다. 이런 쪽에 안목은 거의 없었지만, 좋은 것과 좋지 않은 것 정도는 분간할 수 있었다. 특별한 장식은 없었지만 누가 봐도 값비싸고 고급스러운 구두였다.
“아.”
이다는 뭐라고 말해야 할지 모르겠다는 얼굴로 디아누를 바라보았다.
“왜 제게 이런 물건을 주시는지요?”
여성에게 신발을 선물하는 일이 드문 건 아니었다. 장신구와 드레스, 신발 같은 것은 가장 보편적인 선물이기도 했다. 그러나 이다는 도대체 왜 디아누 렐로가 제게 이런 걸 주는지 알 수가 없었다.
“영애께서 데뷔를 위해 수도로 올라오셨을 때, 제가 실수를 한 것 같습니다.”
이다는 눈을 동그랗게 떴다. 디아누가 이런 식으로 말할 거라곤 예상조차 하지 못했다.
“제가 무례했습니다. 영애께서 돌아가시고 나서도 계속 마음에 걸렸습니다.”
이다는 그 끔찍한 날을 상기했다.
어째서인지 무대 한가운데로 인도받은 날이었다. 디아누 렐로가 중앙 무대로 올라왔고, 왈츠를 청하기에 승낙했다. 자신이 없었지만 별수 없었다. 모두의 시선이 두 사람에게 집중되었을 때 갑자기 연주가 시작되었다.
거기 모인 모든 사람이 자기 발만 보고 있는 것 같았다. 지나친 긴장 때문이었는지 이다는 그의 발을 호되게 밟았고, 모두가 그 모습을 보고 이다를 비웃었다. 왈츠는 두 남녀가 호흡을 맞추어 추는 춤이었는데도 그랬다.
뒤이어 다른 수도 귀족이 디아누와 멋지게 춤을 추며 보란 듯 이다를 향해 조소를 던졌을 때, 열다섯 살 소녀는 부끄럽게도 눈물을 글썽이며 테라스로 뛰쳐나가고 말았던 것이다.
그때 디아누는 어떤 표정을 짓고 있었더라. 잘 기억이 나지 않았다. 그러나 그 질 나쁜 장난에 디아누의 의사가 전혀 반영되지 않았을 리 없었다. 이다는 아직도, 그들의 멸시와 악의를 떠올릴 때마다 숨이 가빴다.
“제가 미숙해서 벌어진 일입니다. 신경 쓰실 필요가 없습니다.”
이다는 이 선물을 받아야 할지 말아야 할지 고민하며 그렇게 말했다. 디아누의 얼굴에 언뜻 실망감이 스치는 게 보였다.
“사죄의 뜻으로 드리는 것입니다. 치기 어린 마음에 실수한 것이라 너그럽게 이해해 주시면 그보다 큰 기쁨이 없을 겁니다.”
치기 어린 마음이라. 고작 몇 달 전에 일어난 일이다. 그사이에 대단한 변화라도 겪었단 것인지. 이다는 디아누를 믿을 수 없었지만 선물까지 거절하면 옹졸한 사람이 되는 것 같았다.
“주신 것은 감사히 받겠습니다. 저는 사과받을 일이 있다 여기지 않지만, 그래야 렐로 공의 마음이 편하시다면, 사과도 받아들이겠습니다.”
“너그러우십니다.”
디아누는 살짝 웃었다. 안심한 모양이었다. 이다는 그에게서 시선을 돌리고 차를 한 잔 마셨다. 무슨 계산이 있는지는 몰라도 썩 나쁜 기분은 아니었다. 마음도 조금 누그러지는 것 같았다.
“제가 신겨 드려도 결례가 되지 않을까요?”
“네?”
이다는 너무 놀라 되물었다. 신겨 주겠다니, 무슨 소리인가. 물론 데뷔한 신사들이 숙녀에게 구두를 신겨 주는 것은 낭만적인 기사도의 흔적 같은 것으로 여겨지기도 했다. 그러나 그것은 꽤 극진한 친애의 표현이었다. 디아누가 이다에게 해 줄 만한 일이 아니란 뜻이었다.
“내내, 그 신발이 영애께 어울릴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마음만으로도 충분합니다.”
“마땅한 제 기쁨입니다. 부디 거절치 말아 주십시오.”
디아누가 부드럽게 웃으며 그렇게 말하더니 자리에서 일어났다. 세련된 어법에 흠잡을 데 없는 움직임. 그는 곧 이다 앞에 무릎을 굽히고 앉았다. 한 손으로는 가만히 발목을 받치고 붉은 구두를 신겨 주는 디아누는 꽤 정중하고 섬세해 보였다.
멜로디아는 곁눈으로 이다의 얼굴이 달아오르는 것을 보았다. 속이야 어떤지 몰라도 외양만 봤을 땐 두 사람은 꽤 잘 어울렸다.
멜로디아는 한때 아버지가 제 발에 신을 신겨 주었던 날을 떠올렸다. 아버지와 많은 시간을 보내진 못했지만 여전히 마음속에 따뜻하게 남은 장면이었다.
“감사합니다.”
이다는 얼떨떨하게 인사를 했다. 디아누는 잘 어울린다고 말하며 바닥에 앉은 그대로 이다를 올려다보았다. 그가 신사적이고 매력적인 미소를 지어 보였다. 당혹한 이다는 시선을 내리깔았다.
그날 이다와 디아누의 만남은 묘한 분위기에서 끝을 맺었다. 이다는 갑작스러운 호감을 표하는 디아누 때문에 적잖이 당황했는지, 디아누가 나가고 나서도 한참을 의자에 앉아만 있었다.
“너 봤니?”
문득 이다가 물었다. 그녀는 빈정거리지도 소리치지도 않았다. 자리를 정리하던 멜로디아가 공손히 되물었다.
“무얼 말씀이세요?”
“저 남자가 날 보는 거.”
멜로디아는 이다가 원하는 대답을 알았다. 그래서 그녀가 원하는 대로 대답해 주었다.
“네. 아가씨께 아주 다정하시던걸요.”
“그렇지? 내 착각이 아니지?”
“네. 아가씨께 좋은 마음을 갖고 있는 것 같았어요.”
이다는 잠시 말이 없었다. 자기가 멜로디아에게 꽤나 다감하게 말했다는 자각도 없는 모양이었다. 어떻든 이다가 짜증을 내지 않으니 멜로디아로선 편한 일이었다. 멜로디아는 디아누가 트리톤에 오래 머무르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디아누는 일주일을 트리톤에서 지냈다.
그가 트리톤에 머무는 동안 멜로디아는 더없이 평화로웠다. 디아누는 자주 이다를 찾아왔고, 첫날 보였던 신사적이고 호감 어린 태도를 유지했다. 또래 귀족 남성과 오래 지내본 일 없는 열다섯 소녀의 마음은 참으로 별수 없는 것이었다. 디아누가 다녀가면 이다는 늘 기분이 좋아졌고 멜로디아에게 화를 내는 일도 현저히 줄어들었다.
그날 일만 아니었다면, 멜로디아는 디아누가 계속 이다 옆에 있길 바랐을 것이다.
“이봐.”
막 이다의 손톱 손질을 끝내고 드레스를 정돈하러 가는 길이었다. 멜로디아는 디아누의 목소리를 알아듣고 즉시 뒤로 돌아섰다.
“네, 도련님.”
조금 멀리 떨어져 있던 디아누가 가까이 다가왔다. 멜로디아는 시선을 바닥에 둔 채 그의 말을 기다렸다. 이다가 어디 있느냐고 물으리라 짐작하면서.
“이름이 뭐지?”
“멜로디아입니다.”
대답하면서도 멜로디아는 조금 의아했다. 분명 이다가 제 이름 부르는 것을 여러 번 들었을 텐데. 이다와 디아누가 만날 때마다 곁에서 시중을 든 건 멜로디아였다. 멜로디아는 그저 이 사람이 시녀의 이름에는 신경 쓰지 않았을 수도 있겠다 하고 넘어갔다.
“아, 그래. 그런 이름이었지. 트리톤 양이 몇 번 부르는 걸 들었는데, 이름이 예뻐서 눈이 가더군.”
멜로디아는 굳어졌다. 뭐라고 대답해야 할지, 아니, 이 사람이 대답을 바라고 이런 말을 하는 건지도 알 수가 없었다.
“말이 없네. 차분한 인상이긴 하지만, 원래 말이 적은가?”
멜로디아는 데뷔할 나이인 열다섯 살에 트리톤에 왔으므로 이렇게 귀족 남성과 얘기해 본 적이 드물었다. 여자아이들은 데뷔 전까지 집에서 자신을 갈고 닦는 것이 일반적이었으므로 이성과 접촉할 일이 없었던 것이다. 게다가 이 사람과 동등한 입장도 아니다. 도대체 자기에게 왜 말을 거는지도 모르니 더 반응을 정하기가 어려웠다.
“네, 조금 그렇습니다.”
어쩔 수 없이 긍정하자 디아누가 재미있다는 듯 가볍게 웃었다. 그가 한 손을 멜로디아의 어깨에 얹었다.
“몇 살이지?”
“열다섯 살입니다.”
“트리톤 양과 동갑이네.”
“네.”
짤막하게 대답하며 멜로디아는 디아누가 어깨에 얹은 손을 치우길 기다렸다. 그러나 디아누는 그 손을 움직여 멜로디아의 턱을 가볍게 움켜쥐었다. 이 급작스러운 접촉에 멜로디아의 몸이 더욱 굳어졌다.
“고갤 들어 봐. 예쁜 아가씬데, 얼굴이 잘 안 보이잖아.”
멜로디아가 단 한 번만이라도 사교 파티에 참석해 본 적이 있다면, 혹은 귀족 아가씨가 아니라 어릴 적부터 하녀로 자랐다면, 디아누의 말과 행동이 무얼 의미하는지 알았을 것이다.
그러나 사교 파티에 나간 적도 없고 몇 달 전까지 귀한 아가씨로 길러진 멜로디아는, 이런 식의 행동에 대해 전혀 몰랐다. 해서 멜로디아는 정말 눈만 깜빡거리며 어리둥절한 표정만 지을 뿐이었다.
“무언가 필요한 게 있어서 부르신 게 아닙니까?”
“뭐?”
디아누는 조금 어처구니가 없다는 듯, 그러나 유쾌하게 되물었다. 기분이 상한 것 같진 않아 멜로디아는 조심스럽게 덧붙였다.
“저는 아가씨의 드레스를 정리하러 가야 합니다.”
그러니 어서 가 봐야 한다는 뜻을 담아 말하자, 디아누는 한참 멜로디아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아무것도 모르는 양 눈을 깜빡이는 폼이 제법 귀여워 보였다.
“순진하게 구는군.”
“네?”
“아니면 앙탈인가?”
“저, 도련님.”
이쯤 되자 멜로디아는 슬슬 기분이 상하기 시작했다. 디아누가 무슨 소릴 하는지는 몰라도 앙탈이 뭔지는 알았다. 게다가 디아누는 복도 한가운데서 은근히 제 허리에 팔을 두르려 했다.
멜로디아가 반사적으로 뒤로 물러났다. 그의 손이 떨어져 나갔다. 이게 무슨 일인지는 모르겠지만 기분이 이상했다. 절대 좋은 기분은 아니었다. 멜로디아는 한 걸음 더 뒤로 물러나며 변명처럼 중얼거렸다.
“전, 정말 가 봐야 해서……. 아가씨는 방에 계세요.”
꾸벅 인사를 하고 멜로디아는 뒤돌아 걸었다. 절로 걸음이 빨라졌다. 걸음을 재촉하는 내내, 자기 얼굴을 뚫어져라 바라보던 디아누의 검은 눈이 떠올라 소름이 끼쳤다.

“너 디아누 공이랑 뭔가 얘기했어?”
침대를 정리하고 있을 때 이다가 물었다. 멜로디아는 소스라치게 놀랐다. 그러면서도 자기가 왜 놀라는지 몰랐다. 멜로디아는 겨우 평정을 가장하고 천천히 몸을 세워 이다를 돌아보았다.
“무슨 말씀이세요?”
“디아누 공이 너에 대해 묻더라. 둘이 무슨 일 있었어?”
그새 이름을 부를 정도로 가까워진 모양이었다. 멜로디아는 이다의 말에서 희미한 경계와 책망의 뉘앙스를 읽었다. 멜로디아는 필사적으로 말을 골랐다.
“아니요, 아가씨가 어디 계시느냐고 물으셔서 알려 드렸어요.”
“그게 다야?”
“네.”
언제 이렇게 태연하게 거짓말을 할 수 있게 되었더라. 멜로디아는 가슴이 두근거리는 것을 느끼며 이다를 마주 보았다. 다행히 잠들기 전이라 초 하나만 켜 둔 상태였다. 이다는 멜로디아의 얼굴에서 거짓의 기미를 잡아채지 못한 모양이었다.
“그래? 그럼 됐어.”
“네, 아가씨.”
“너 다른 마음 있는 거 아니지?”
다시 고개를 돌리고 침대를 정리하려던 멜로디아는 그 말을 이해하지 못했다. 무슨 말씀이시냐고 또 공손하게 물었더니 이다는 입술을 잘근 깨물다가 내쏘듯 아무것도 아니라고 말했다. 그러더니 반가운 말을 덧붙였다.
“내일부터 디아누 공이 오면 넌 나가 있어. 다른 앨 들여보내.”
“네.”
멜로디아로서는 사양할 것 없는 말이었다.
방으로 돌아왔을 때 아르디온이 멜로디아의 방에 들어와 있었다. 멜로디아의 침대에 누워 있던 아르디온이 안으로 들어오는 멜로디아를 보고 벌떡 일어났다.
“누나, 왔어?”
“응. 일찍 끝났네?”
“형들이 먼저 가서 쉬라고 했어.”
“고마워라.”
멜로디아가 웃으며 아르디온의 머리를 만져 주었다. 아르디온은 그 손길이 기분 좋은 듯 잠깐 눈을 감고 멜로디아의 손에 고개를 기댔다. 그리고 눈을 감은 채 중얼거리듯 말했다.
“형들은 누나를 좋아해.”
무슨 뜬금없는 얘기람? 멜로디아는 누나가 세상에서 제일 예쁘다고 생각하는 동생의 동그란 머리를 보며 어쩔 수 없다는 듯 웃었다.
“네가 귀여워서 예뻐하는 거야.”
“아니야. 나한테 누날 만나게 해 달라고도 했어. 하녀 누나들도 누나를 좋아해. 그래서 나한테도 잘해 줘.”
멜로디아는 가만히 웃었다. 이렇게 마음이 예쁜데 누가 아르디온을 싫어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