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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피림의 레이디 1권 6화


“그 여자랑은 별일 없었어?”
“이다 아가씨? 응, 요즘은 괜찮아.”
아르디온은 절대 이다를 아가씨라고 부르지 않았다. 직접 대면한 자리에선 어쩔 수 없지만, 멜로디아에게 말할 땐 늘 ‘그 여자’ 하는 식으로 칭하곤 했다.
“렐로에서 온 남자랑 교제한대.”
“누가 그래? 하인들이?”
“응. 그리고 하녀 누나들도.”
“글쎄.”
멜로디아는 어물쩍 말끝을 흐렸다. 디아누에 대한 얘기가 나오자, 그가 제게 말을 걸었던 일이나 이다에게 거짓말을 했던 일이 떠올라 마음이 편치 못했다.
“이만 자. 난 좀 씻고 올게.”
“응.”
아르디온은 다시 침대에 누웠다. 멜로디아는 잠시 아르디온을 보다가 욕실로 들어가 간단히 씻었다. 샤워를 마치고 뿌옇게 흐려진 거울을 보는데, 자기도 모르게 한숨이 나왔다. 피로는 쌓여 갔고 스트레스도 극에 달했다. 하지만 이다 앞에서든 아르디온 앞에서든 내색할 수 없는 건 마찬가지였다. 멜로디아는 잠시 차가운 벽에 기대 마음을 가다듬었다.
아직 1년도 지나지 않았어. 버텨야 해. 나한텐 아르가 있어.
멜로디아는 욕실 밖으로 나가 잠든 아르디온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동생이지만 그래도 바라보고 있으면 의지가 된다. 혼자가 아니라, 안심이 되었다.

디아누는 돌아갔다.
멜로디아는 디아누가 돌아간 후 이다가 또다시 짜증스러워질까 염려했지만, 디아누와 함께 지낸 일주일 동안 이다는 좀 달라져 있었다. 멜로디아뿐만이 아니라 다른 사용인들에게도 짜증 내는 일이 현저히 줄었다. 특별히 짜증을 참는다기보다는 아예 그들에게 관심이 없어진 듯했다.
그렇게 무난한 시간이 흘렀다. 디아누는 자주 이다 앞으로 편지를 보냈다. 하얀 봉투에 남색 인을 친 편지 봉투가 도착하는 날이면 이다는 무척 들뜨곤 했다.
이다는 전보다 자기를 가꾸는 데 더 공을 들였다. 얼굴이나 몸매에만 신경 쓰는 것이 아니라, 좀 더 우아하고 세련된 사람이 되려고 노력하는 것 같았다. 디아누는 직접 찾아오진 않았지만 종종 사람을 보내 이다에게 새 옷이나 신발, 목걸이 같은 것을 선물했다. 그런 선물을 받으면 이다는 온종일 기뻐했다.
그렇게 또 한 달이 지났다. 어느 날, 이다는 멜로디아에게 말했다.
“피아노를 다시 가져와야겠어.”
피아노에 얽힌 안 좋은 기억이 떠올랐지만 멜로디아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알겠다고만 대답했다. 그런 멜로디아를 보며 이다는 기분 좋은 얼굴로 덧붙였다.
“피아노 잘 치는 여자가 좋대.”
“그래요?”
“응.”
이다는 나긋나긋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꿈속에 사는 듯한 목소리였다. 이다는 정말 눈에 띄게 다감해졌다. 마음에 안 든다고 소리를 지르거나 물건을 내던지는 일도 없었다.
“그래서 내가 난 피아노 잘 못 친다고, 전에 데뷔했을 때 보지 않았냐고 했더니 오히려 그게 더 귀여워 보였대.”
그 후로도 이다는 굳이 멜로디아에게 할 필요가 없는 말을 계속 늘어놓았다. 그녀는 행복해 보였다. 너무 행복해서, 누구에게든 그 행복에 대해 말하고 싶은 모양이었다.
멜로디아는 이다를 꺼리게 되었지만, 그래도 천성적으로 좋은 청자였다.
“나한테 빨간색이 어울린다더라. 너무 진한 빨강은 말고. 그런 걸 알 정도면 날 유심히 봤나 봐. 나한테 뭐가 어울리는지 나도 잘 몰랐는데.”
“아가씨한텐 정말 빨간색이 잘 어울려요. 오늘은 이 머리 장식을 해 드릴까요?”
“응. 그것도 디아누가 나하고 어울린다고 했던 거야. 나한테 얼굴이 하얘서 이런 색이 잘 받는 거라고 했어.”
이다는 한참 동안 재잘재잘 떠들었다. 상기된 얼굴, 생기 있는 몸짓, 빛나는 눈……. 이다는 정말 열다섯 살 소녀처럼 보였다. 디아누에게 급격하게 매료된 이다는 멀리 있는 그의 편지 몇 장만으로도 더 아름답고 좋은 사람이 되어 가고 있었다.
멜로디아는 그 변화가 놀라웠다. 한편으론 이다가 참 얄팍하고 변덕스러운 사람이란 생각이 들었다. 물론 내색은 하지 않았다.
이다는 시간이 갈수록 눈에 띄게 다정해졌다. 멀리 있는 상대와 편지만으로 교류하는 것은 상당한 인내심을 필요로 할 텐데도 이다는 잘 견디고 있었다.
“수도에 가고 싶어. 디아누랑 지내고 싶은데, 다시 갈 일이 없네. 무작정 올라간다고 하기도 그렇고.”
종종 그런 말을 하긴 했지만 이다는 기다렸다. 뭔가 해결책을 내 줄 수 있는 것도 아니라 멜로디아는 그저 이다가 변덕을 부리지 않기만을 바라며 침묵했다.
“요즘 이다가 기분이 좋아 보이더구나.”
이다와 많은 시간을 함께 보내지 않는 남작 부인도 딸의 변화를 알아차렸다. 따로 호출을 받고 간 멜로디아는 어쩐지 치하의 말을 들었다.
“네 덕이야. 이다가 많이 변했어.”
“전 아무것도 하지 않았어요, 부인.”
그건 사실이었지만 부인은 그저 겸양의 말로만 생각하는 모양이었다. 멜로디아는 순간 이상한 기분이 들었다.
이다가 디아누와 친밀한 관계를 유지하고 있는 것은 이미 저택 내에서 유명한 일이다. 사용인들은 모이기만 하면 달라진 아가씨에 대해 수군거린다. 아무리 자기들끼리 하는 말이라 해도 한 달이나 지났다. 부인이 이에 대해 전혀 모를 리 없다. 그런데 부인은 마치 디아누에 대해선 전혀 모르는 듯 말하고 있었다.
“렐로 공이 다녀가신 후로 더 좋아지신 것 같아요.”
조심스럽게 운을 뗐지만 남작 부인은 어리둥절한 얼굴이었다.
“그러니? 아마 수도에서 만났던 사람이 다시 와서 자극을 받은 모양이구나. 지방에서 자란 아이에겐 그런 자극도 필요하지.”
이다는 확실히 디아누에게 자극을 받고 있었으나, 남작 부인이 말하는 의미의 자극은 아니었다. 이쯤에서 멜로디아는 부인이 두 사람의 관계에 대해 전혀 모르고 있다고 확신했다. 경솔하게 입을 놀리지 않기 위해 신중히 말을 골랐다.
“얼마 전에 수도에 한 번 다시 가 보고 싶다는 말씀을 하셨어요.”
“그래? 수도에 갔다가 상태가 더 나빠졌던 것 같은데…… 이다가 직접 말했니?”
“네, 부인.”
“이다가 정말 많이 변했구나.”
부인은 뿌듯한 얼굴로, 또 안도한 얼굴로 그렇게 말했다. 이다와 시간을 보내려 애쓰진 않아도, 이럴 때 보면 부인도 딸을 무척 사랑한다는 게 느껴졌다. 멜로디아는 조용히 고개를 숙였다.
“그래……. 사정이 어려운 것도 아니니 다시 보내는 것도 나쁘지 않지. 난 사실 이다가 데뷔 기간이 끝나자마자 돌아온다고 해서 조금 실망했단다. 다시 기운을 차렸다니 다행이구나.”
부인도 꽤 고무된 모양인지 멜로디아 앞에서 말이 많아졌다. 멜로디아는 가끔 네, 부인, 정도의 대답만 하며 말을 아꼈다.
이대로 이다가 수도로 가면 기쁠 것이다. 멜로디아는 이제 이다가 몹시 꺼려졌다. 요즘은 많이 좋아졌지만, 멜로디아는 상대의 악의를 받아 내는 데 익숙한 사람이 아니었다. 제 처지가 처지인 만큼 이다와 떨어질 수만 있다면 뭐든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이다를 데려오렴. 아니, 저녁을 함께 먹으면서 얘길 해 봐야겠다. 저녁을 식당에서 먹잔다고 전하렴.”
“네, 부인.”
멜로디아는 차분하게 대답했다. 이다는 분명 간다고 할 것이다. 부인에게 말하길 잘했다. 생애 처음으로 얕은 수를 쓴 기분이 들어 마음이 찜찜했지만 어차피 이다도 떠나길 원했으니까.
“멜로디아.”
막 밖으로 나가려는데 부인의 목소리가 들렸다. 혹여 마음이 바뀌기라도 했나 가슴이 쿵쾅거렸다.
“정말 애썼다.”
멜로디아는 대답할 말을 찾지 못했다. 온화하고 다정한 부인의 얼굴을 보다가 말없이 무릎을 굽혀 인사하고 돌아섰다.

일주일 후, 멜로디아는 이다의 짐을 점검하고 있었다. 단순히 데뷔 무대를 갖는 것과는 달랐다. 이다는 수도에 있는 아카데미에서 교육을 받기로 했다. 제국 최고의 아카데미라 할 수는 없지만 수도에 있는 것만으로도 이점이 컸다.
“가서 잘할 거야. 그래서 꼭 디아누와 어울리는 사람이 될 거야.”
이다는 들뜬 상태였다. 어찌나 들떴는지, 멜로디아에게 전혀 거리낌 없이 친근하게 굴 정도였다. 한번은 멜로디아에게 자기가 피아노 치는 걸 한번 봐 달라고 하기도 했다. 안 좋은 기억이 있는 멜로디아는 차마 거절하지도 못하고 이다가 피아노 치는 걸 들었다. 이다의 연주 수준은 전과 비슷했지만 끔찍한 수준은 아니라 멜로디아는 칭찬의 말을 해 주었다. 이다는 기뻐했다.
이다는 자기가 전에 멜로디아나 다른 사용인들에게 어떻게 굴었는지는 다 잊은 것 같았다. 놀라운 건, 그 어떤 사용인도 이다의 행동에 의문을 품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그저 아가씨가 유난을 떨지 않으니 다행이라 여겼다.
멜로디아는 거기서 그들과 자신의 근본적인 차이를 깨달았다. 이다가 달라졌으니, 사람들에게 조금이라도 미안해하거나 민망해할 것이라 생각했다. 그러나 그건 여전히 스스로를 무의식적으로 귀족에 가깝다 여기고 있는 멜로디아만의 생각이었다. 아가씨는 사과하지 않는다. 누구도 그 점을 이상하게 여기지 않는다.
예외가 하나 있다면 그건 아르디온이었다.
“그렇게 뻔뻔한 여잔 세상에 없어.”
여전히 이다를 싫어하는 아르디온이 단정 지어 말했다. 마침내 이다가 떠난 날 밤이었다. 오랜만에 여유롭게 씻고 나온 멜로디아 옆에 앉아 아르디온이 중얼거렸다.
“아깐 누나 손을 잡고 잘 있으라고 하더라. 다들 우스웠을 거야. 자기가 무슨 짓을 했는지는 다 잊은 모양이지?”
“뭐, 아가씨니까.”
멜로디아는 대수롭지 않다는 듯 대답했다.
이다가 떠나기 전에 자기 손을 덥석 잡았을 때 멜로디아는 깜짝 놀랐다. 오래 떨어져 있으리라 생각하니 마음이 완전히 부드럽게 풀린 모양이었다. 사람이 덜되고 서툴러서 그렇지, 그럴 때 보면 이다도 심성 자체가 사악한 건 아니었다. 물론 그걸 안다고 해서 이다에 대한 불편함이 사라지는 건 아니지만.
“그래도 이젠 지내기가 좀 낫겠다. 요령껏 하면서 쉬어, 누나.”
“으응.”
이다가 떠났으니 남작 부인이 다시 숙소로 돌아가라고 하면 어쩌지. 그 걱정부터 들었다. 그래도 아르가 많이 적응한 것 같으니 괜찮을까……. 입 밖으로 낼 수 없는 염려였다. 멜로디아는 아르디온의 무릎을 토닥이며 말했다.
“그래도 여기 사람들을 데려가지 않았으니 얼마나 다행이야. 렐로 공이 시중들 사람이며 급하게 필요한 물건이며 다 지원하겠다고 했다더라. 아가씨도 수도에서 교육받은 시중인이랑 지내보고 싶어 하는 것 같았고.”
“그런 여자한테 그만큼이나 투자하다니 사람 보는 눈도 없나 보지.”
“아르, 자꾸 빈정거리면 안 돼.”
환경 탓인지 아르디온의 말버릇이 나쁘게 드는 것 같았다. 전에는 말씨도 곱고 차분했는데, 요즘은 성숙해지는 한편으로는 조금 거칠어지는 것 같아 걱정이 되었다. 멜로디아는 부드럽게 동생을 타이르고 피곤한 몸을 눕혔다. 아르디온이 당연하다는 듯 옆에 누웠다. 멜로디아는 입김을 불어 훅 촛불을 껐다.
“아픈 덴 없어?”
“없어. 누나는?”
“나도.”
“손 괜찮아?”
“손?”
아르가 멜로디아의 손을 잡았다.
“하녀 누나들 손은 항상 검고 거칠어서. 누나 손은 하얗고 예쁜데.”
“손이야 어떻든 괜찮아.”
멜로디아는 웃음기 어린 목소리로 대답했다.
그러나 아르디온은 하나도 괜찮지 않았다. 소년은 피아노를 연주하며 노래하던 아름다운 누나의 모습을 떠올렸다. 하얀 피아노, 쏟아지는 햇빛, 건반 위를 즐겁게 오가던 손가락, 아르디온은 가만히 그 옆에 서 있는 걸 좋아했다. 누나는 늘 그림 같았다.
어머니는 몸이 약했다. 아버지는 너무 바빴다. 항상 누나와 함께였다. 가정 교사가 오긴 했지만 왈츠 연습도 누나와 했다. 수를 놓거나 악기를 연주하는 건 함께 배우지 않았지만 옆에 앉아 보는 건 즐거웠다. 책을 읽다가 모르는 부분이 있으면 누나에게 물어보았다. 누나도 가끔 모를 때가 있었다. 그것도 좋았다. 같이 얘기하다 보면 알 수 있었으니까.
아르디온에게 누나는 누나면서 어머니이기도 했다. 무어라 정의할 수 없는 대단한 사람이었다.
누나는 이렇게 살 사람이 아닌데.
아르디온은 바로 그 생각 때문에, 도저히 이 생활에 익숙해질 수가 없었다. 멜로디아는 어느 정도 체념하고 받아들이고 운명에 몸을 굽히는 법을 배웠지만 아르디온은 그럴 수가 없었다. 아직 왜 가문이 반역죄로 멸문당했는지도 모르는 상태였다. 왜 이렇게 살아야만 하는지.
“잘 자, 아르.”
“누나도.”
어두운 방에서 아르는 눈을 감은 누나의 옆얼굴을 보았다. 속상하고 화가 나고 아무것도 이해할 수 없지만, 열두 살 소년은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멜로디아는 다음 날 바로 다시 일을 시작했다.
이다가 오기 전에 하던 일들이었다. 부인은 하인을 관리하는 사람을 따로 두지 않아서, 멜로디아는 사람들과 의논 후 자기 자리를 찾아가야 했다. 거대한 저택도 아니고 사람이 많은 것도 아니라 관리인이 없어도 일은 크게 삐걱거리지 않고 돌아갔다.
“아가씨 가셔서 좋겠다.”
샤론이 소곤소곤 말했다. 함께 창문을 닦다가 멜로디아는 그냥 웃고 말았다. 아니라곤 못 하겠다. 대답 없는 멜로디아를 보고 샤론은 ‘진짜 힘들었구나.’라고 혼자 중얼거렸다.
저녁이 다 지나갈 무렵, 멜로디아는 부인의 부름을 받았다. 주방 청소를 돕고 있던 멜로디아는 얼른 앞치마를 벗고 차림을 단정히 하고 부인의 방으로 올라갔다. 부인은 편한 옷으로 갈아입고 머리까지 내린 상태였다. 이 정도로 편히 있는 모습을 본 건 처음이었다.
“부인, 부르셨어요?”
“그래. 이야기할 게 있어서 불렀단다.”
“말씀하세요.”
“이다가 떠났으니, 네가 나를 조금 도와주면 좋겠구나.”
정확히 뭘 도우라는 건지 몰라 멜로디아는 일단 침묵을 지켰다. 촛불 하나에 의지해서 보는 부인의 얼굴에는 짙은 피로가 드리워져 있었다.
“나 혼자 하기에는 벅찬 일들이 있지. 넌 이다와도 잘 협력해 주었어. 믿고 일을 맡길 수 있을 것 같구나.”
“제가 뭘 도와 드리면 될까요?”
멜로디아는 공손하게 물었다. 부인은 잠시 사이를 두었다가 곧 차분하게 설명해 주었다. 멜로디아는 저택 사무와 관련된 대부분의 일을 부인이 처리하고 있으며, 실은 영지와 관련된 일도 마찬가지라는 말을 듣고 경악했다.
사람이 많지 않다 해도 저택의 일을 혼자 꾸려 나가는 건 무척 힘겨운 일이다. 그런데 영지 일까지 부인이 처리하고 있었다니? 이제껏 그걸 어떻게 감당해 왔는지 모를 노릇이었다.
“다른 하녀들과도 사이가 좋다고 들었다. 네가 저택 사용인들을 관리해 주고, 장부 문제도 도와주면 한결 편하겠구나. 셈은 할 줄 알지?”
“네, 부인.”
“그래. 그럼 오늘은 늦었으니 이만 자고, 내일 아침 식사 후에 내 방으로 오렴.”
방 밖으로 나오면서도 멜로디아는 어안이 벙벙했다. 생각이 정리되지 않은 상태로 아르디온에게 자기가 들은 얘기를 전했다. 아르디온은 자기 일처럼 기뻐하며 힘든 일을 하지 않아도 되어서 다행이라고 말했다. 외출도 좀 더 자유로울 거고 자기 시간을 가질 수도 있으리라고 기대하는 모양이었다.
“일이 많이 바쁠 것 같아.”
“그래도 청소하는 것보다는 나을 거야.”
아르디온은 남작 부인이 무척 좋아졌다. 물론 이다 때문에 짜증스럽긴 했지만 부인은 계속해서 누나를 주목하고, 누나를 인정했다. 반역에 연루된 가문 출신이라는 건 무척 민감한 위치이다. 그런 사람에게 집안일을 맡기는 것은 엄청난 일이었다.
“이제 다 잘될 거야.”
아르디온은 정말로 기뻐했다. 동생이 그렇게 기뻐하니 멜로디아도 부담감이나 알 수 없는 불안감 같은 것은 잊어도 좋을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누가 생각해도 다시 오기 어려운 행운이었다. 부인의 일을 돕게 되면 바깥소식을 전해 듣기도 쉽고, 애써 덮으려고 했지만 잊을 수 없던 가문의 일도 더디게나마 알 수 있게 되지 않을까 싶었다.
과연 부인은 멜로디아를 신뢰했다. 집안 지출 내역과 관련된 장부 정리를 돕고 사용인들의 급료를 관리한 지 한 달이 지나자, 부인은 곧 영지 세입과 관련된 일도 멜로디아와 나누었다.
“부인, 저택으로 오는 편지를 정리했어요.”
“편지는 건드리지 않아도 돼. 분류하지 말고 곧장 내게 가져오렴.”
이런 식으로 멜로디아의 접근을 허용치 않는 부분도 있었지만 기본적으로 부인은 멜로디아를 좋은 협력자로 생각하고 있었다. 모두가 그걸 알았다.
멜로디아는 정신없이 바빠졌다. 더 일찍 일어나고 더 늦게 잤다. 하지만 몇 달이 지나면서 효율적으로 일하는 법을 알게 되었고, 부인에게 이것저것 묻지 않고 혼자 처리할 수 있는 일도 많아졌다. 사용인들과도 더 가까운 관계가 되었고, 급료도 올랐고, 부인의 호의로 일주일에 한 번은 아르디온과 느긋하게 외출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