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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계농부 1권 (2화)
01장―건축 의뢰 (2)


그리고 이러한 벨스로크 왕국의 서쪽 변방. 서쪽에 위치한 벨스로크 왕국에서 더 서쪽에 위치한 변방 지역이라면 중심에서 아주 멀리 떨어진 곳이라고 할 수 있었다.
이곳은 여타의 왕국의 지역과는 다르게 너무나 조용했다. 가장 높은 도시도 소도시에 불과했고, 그조차도 대부분 단지로 하향되기 일보 직전의 위태로운 소도시들이었다. 한데, 이런 상황에서 불빛이 환한 영지가 하나 있었다.
큐스 소도시.
남작 스케일의 영지로서, 잘 발전되어 단지로 하향될 염려가 없었다. 물론 반대로 중도시로 될 확률도 적어서, 어찌 보면 이도저도 아닌 위치에 있다고 해도 크게 틀린 말은 아니었다.
그래도 알게 모르게 스케일은 여타의 소도소의 영주들보다는 자신의 도시에 자부심을 갖고 있어서, 은연중에 ‘잘난 마음’을 밖으로 표출한 적도 있었다.
한데, 실상 큐스 소도시는 완전히 끝에 위치한 변방이라 그곳은 망할 것이라고 생각했던 사람도 많았다. 변방 지역은 ‘그 어떤 무엇으로든’ 망하는데 필요한 요소는 다 가지고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시장이 아무리 커도 오가는 사람이 적고, 농사를 지으려 해도 땅이 비좁다. 거기에 바다와 인접해 있어 해양에 관한한 것을 발달시킬 수 있는 것도 아니며, 군사적 요충지로 하는 것 역시 불가능했다. 큐스 소도시를 중심으로 한 서쪽 주변은 모두 동맹 국가이기 때문이다.
그러면 큐스 소도시는 어찌 ‘안전한’ 소도시가 될 수 있을까? 그것은 바로 ‘상거래’에 있다. 큐스 소도시의 위쪽에는 므바이 소도시가, 오른쪽으로는 자이톤 소도시가 있다. 거기에 소도시 바로 아래의 단지에 속하는 오로소도 있다. 서쪽 하나가 없지만, 상거래를 하기에 아주 좋은 위치에 있었다.
큐스를 망할 것이라 생각했던 사람들은 큐스가 어떤 곳에 위치했는지 잘 모르고 한 소리였던 것이다.
큐스는 마치 대륙과 대륙 사이에서 수출과 수입을 하듯이 끊임없이 주변 도시와 거래하고, 거래했다.
예를 들자면 이렇다. 자이톤에서 필요한 물품이 므바이에 있다. 므바이의 물품은 당연히 자이톤으로 간다. 그리고 큐스가 이득을 챙기는 부분은 바로 여기다. 애초부터 므바이에 있던 상인이 큐스의 사람이다. 물품을 실고 자이톤으로 가는 상인 또한 큐스의 사람이다.
므바이와 자이톤의 사람들은 불만하지 않았다. 큐스의 상업은 잘 발달되어 있고, 가격도 비싸지 않아서 해도 괜찮기 때문이다. 물론 이런 이유에도 므바이나 자이톤에 상단을 차리거나 자유 상인이 된 사람도 있었다. 아마 그들의 생각은 그 도시의 거래를 모두 잡겠다는 생각으로 그런 일을 벌였을지 모른다.
하나 현실은 달랐다. 거래를 모두 잡기는커녕, 자신이 므바이에 있음에도 큐스의 상단을 불렀으며, 마찬가지로 자신이 자이톤에 있어도 역시 큐스에 있는 상단을 호출했다. ‘신임’이라는 게 무섭다고는 하지만, 실상 그게 거짓이지도 않았기 때문에 대개, 아니, 모든 사람들은 큐스의 상단을 선호했다.
이쯤에서 굳이 결론을 내리자면, 큐스는 모든 면에서 다른 소도시와 똑같지만 상업만큼은 중도시에 약간 못 미치는 그런 위치에 있었다. 혹, 중도시에도 못 미치는데 겨우 그것 가지고 그러느냐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을 수 있다. 이건 바보 같은 생각이 아니라, 원래 이런 생각을 하는 게 정상이다. 보통의 위치에서 최고가 되는 것보다, 높은 위치에서 최고가 되는 것이 ‘확실히’ 낫다고 볼 수 있기 때문이다.
하나, 중도시는 소도시와는 완전히 다른 개념이다. 인구수를 5배, 발전 건물을 10배, 연간 소득을 2배로 끌어 올려야 한다. 말은 쉽지 실제로는 정말로 힘든 일이다.
가뜩이나 점점 중심부로 떠나는 이주민들에다가, 사람들이 없어진 만큼 발전 건물도 늘어나지 않는다. 이 두 가지 이유만 하더라도 연간 소득을 2배나 올린다는 것 역시 어렵다. 고로 비록 한 가지라 하더라도 중도시에 버금간다는 것은 대단한 일이었다.
큐스 상거래와 비교되는 중도시는 근접해 있는 뒤밀이라는 곳인데, 이곳은 지극히 ‘보통’의 중도시였다. 보통이 무어 좋으냐고 할 수 있겠는데 전혀 그렇지 않다. 앞서 그랬듯 소도시도 자리도 위태위태한 곳이 있듯이 중도시도 소도시로 떨어질 수 있는 상황에 놓일 수가 있다.
이런 상황에서 보통의 중도시라면, 적어도 소도시로 떨어질 일은 없단 것 아니겠는가? 물론 긍정적으로는 대도시가 될 수 있는 중도시와 비교되는 일로도 생각할 수 있겠다.
이러한 큐스 소도시. 활발한 시장터에 대화를 나누며 걷고 있는 두 남자가 있다.
“이보게, 내가 기막힌 얘기를 들었다네.”
“무슨 얘긴데 그런가?”
드덩은 평소와 다른 첸의 모습에 약간은 당황했다.
첸은 호들갑을 떠는 법이 없었다. 아무리 놀라운 일도, 아무리 급한 일도 늘 숨을 골라 말하곤 했다. 거기에는 상대방을 배려하는 마음도 있었고, 호들갑을 떨어서 나쁘면 나빴지 좋은 일은 없음을 알기 때문이었다.
한데, 첸이 호들갑을 떤다. 아주 커다란 호들갑이다.
드덩은 궁금했다. 단 한 번도 숨 골라 말하지 않은 적이 없는 첸이 침을 튀길 정도라면 그 얼마나 놀라운 것이겠는가?
드덩은 자신도 모르게 꿀꺽 침을 삼켰다. 머릿속에서는 수많은 생각이 오갔다. 알고 있는 게 아니었으면 좋겠고, 정말로 놀라운 일이어서 허탈감이 들지 않았으면 좋겠다고도 생각했다.
이러는 와중에 첸이 드디어 뜸을 풀었다. 방금 전까지의 그의 음성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지고, 주위의 사람이 들을 수 있을 정도로 음성이 높여졌다. 너무 놀라운 일이라 자신도 모르게 음성을 높여 버리고만 것이다.
“그곳의 저주에 관해 진짜 사실이 밝혀졌다더군!”

***

큐스는 확실히 서쪽 제일 끝의 변방에 위치한 ‘소도시’가 맞다. 하지만 이보다도 더 서쪽에 있는 곳이 있다. 물론 정식 도시가 아닌 자유 영토이기 때문에 엄밀히 말해서 큐스를 제일 끝에 위치한 변방 도시라고 하는 게 맞기는 맞다. 말이 오락가락하여 뭐가 뭔지는 잘 모르겠으나, 어찌 되었든 큐스보다도 더 서쪽에 있는 자유 영토 ‘더트퍼리’에 오랜만에 햇빛 한 줄기가 들어왔다.
깜깜한 어둠 속의 한 줄기 빛은 사막에서 오아시스에 비하더라도 전혀 밀리지 않는 것임에 분명하다. 이렇단 얘기는 더트퍼리가 어둠이란 소리다.
나뭇잎을 찾을 수가 없다. 두 눈을 아무리 비벼도 보이지 않는다. 잡풀도 없다. 아예 초록색이라는 게 존재하지 않는다. 물도 없다. 흔하다고 할 수 있는 작은 웅덩이조차도 없는 것이다.
사람들은 더트퍼리를 저주 받은 곳이라 부른다. 정확히 어떤 저주가 있는지는 그 누구도 자세히 설명하지 못하지만, 저주가 있다고 굳게 믿고 있다. 그렇지 않고서야 ‘자유 영토’임에도 왜 아무도 땅을 소유하려 하지 않겠는가? 또, 항간에는 저주의 존재 유무를 떠나서 더트퍼리를 자신의 소유로 하면 크게 화를 당한다는 얘기가 있어 두 가지 면에서 건드리기에 상당히 조심스러운 부분이었다.
한데, 이러한 더트퍼리의 공간에 누군가의 발자국이 찍히기 시작한다. 메말라 버린 땅이라서인지는 몰라도 이상하리만치 발자국이 깊이 새겨졌다. 발자국은 계속해서 앞으로 나아갔다.
계속해서 나아가던 발자국이 멈췄다. 한 남자가 하늘을 바라본다. 주위를 널찍이 둘러본다. 무릎을 굽혀 흙 한 줌을 손바닥에 올려놓는다. 공간에 존재하는 모든 것에는 힘이 없었다. 보기만 해도 지친다. 한숨이 쉬어진다.
그런데 남자의 표정은 이상하리만치 밝았다.
표정은 앙상한 나뭇가지와 푸석푸석한 땅을 바라봄에도 바뀌지 않았다. 오히려 공간에 있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남자의 표정은 밝아져만 갔다.
미친놈이라고 생각할 것이다. 더트퍼리의 모습을 보고 웃는 사람이 있다니? 지나가는 사람 열을 붙잡고 얘기해 주면 밤에 잘 때 피식할 정도의 우스운 일이었다. 남자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터벅터벅.
사람이 걸을 때의 소리가 정말로 나기 시작했다. 왠지 모르게 남자의 심정을 소리로 대변하는 느낌이랄까, 남자는 왔던 길을 다시 걸어 나갔다. 이대로 가면 큐스가 나올 것이다.
“…….”
남자가 뭔가 중얼거리는 것 같았지만 마음속의 혼잣말처럼 밖으로는 울리지 않았다.
남자는 계속 걷는다. 그의 표정은 여전히 밝았다.

***

큐스의 통행 문.
통행병 한스는 간만에 찾아온 휴식 시간에 한껏 기지개를 펼쳤다. 그의 손짓이 다소 굳어 있는 것으로 보아, 오랫동안 몸을 굳힌 채로 뻣뻣하게 서 있었다는 것을 짐작할 수 있었다.
“하아, 이 얼마만의 휴식이야.”
누가 찾아올 걱정이 없었기에 벌러덩 자리에 누울 수 있는 한스는 실컷 휴식을 취했다. 근무 중 이게 무슨 행동이냐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이 휴식은 곧이어 찾아올 지옥 근무를 생각한다면 애교로 봐 줄 수 있었다.
“하필 여기에 걸리다니!”
잠을 잘 수는 없는 노릇이라 가만히 누워 있었던 한스. 그가 돌연 울분을 토해내었다. 자신이 지금 이렇게 고생하는 이유가 무엇인가? 그것은 두말할 것도 없이 ‘하필’ 큐스의 통행병으로 배치되었기 때문이다.

“한스. 다음 달부터 큐스 서쪽 통행 문에서 일한다.”
“예에?”
“불만 있나?”
“아, 아니…….”

목구멍까지 하기 싫다는 말이 치솟았지만, 상급병한테 반박을 했다가는 아예 직업을 잃을 우려가 있었다.
하나, 너무나 슬픈 상황이었다. 큐스 소도시는 밤낮을 가리지 않고 일이 생기는 곳으로 유명했고, 앉은뱅이조차 다리가 펴진다는 말이 있을 정도로 서 있는 시간이 길었다. 결론적으로, 큐스에서 통행병으로 근무하는 것은 지옥을 경험하는 것과 진배없는 일이었다.
“후.”
한스는 머리를 흔들었다. 이런 생각을 하더라도 상황은 바뀌지 않고 오히려 자신만 힘들어진다.
“…….”
말없이 눈을 감아 버리는 한스. 비록 잠은 자지 못하지만, 눈이라도 감고 있어서 조금만 더 달콤하게 휴식을 취할 생각이었다.
지금은 점심 식사 시간. 세기 힘들 정도로 많은 사람들이 왕래하는 큐스의 통행 문에 사람이 없는 것도 이런 까닭이다. 물론 한스도 밥을 먹어야겠지만 그에게는 ‘밥’이란 것은 안중에도 없었다.
차라리 교대 후 먹는 게 훨씬 낫다. 밥을 먹으면 바로 누울 수 없는 데다가 아침을 든든하게 먹어 굳이 점심을 먹을 필요도 없었다.
그때였다. 익숙한 소리가 한스의 귓전을 울렸다.
‘설마…….’
너무나 익숙했지만, 이 시간에 통행자가 온 적은 거의 없던지라 한스는 애써 현실을 외면하려 했다.
터벅터벅.
지척에서 들려오는 발소리. 한스는 더 이상 현실을 외면하지 않고 자리에서 일어나 통행자를 쳐다보았다.
까만 머리가 인상적인 평범한 남자였다.
“통행하시겠습니까?”
“예.”
“신분증을 제시해 주십시오.”
큐스는 다른 도시와 마찬가지로 신분증을 이용해 통행 방식을 운영하고 있었는데, 사실 이게 가장 편하면서도 정확하게 통행자를 가려낼 수 있는 방법이었다. 신분증에 써 있는 그 사람의 위치는 결코 거짓이 아니기 때문이다.
물론 얼굴을 익히 알고 있는 귀족은 아무런 제재 없이 문을 열어 준다.
남자가 품에서 무언가를 꺼내들었다.
“여기 있습니다.”
“아… 됐습니다. 들어가십시오.”
“예, 수고하십시오.”
한스는 남자가 내민 통행증을 보고 곧바로 문을 내주었다.
자유 상인이라는 쉽게 볼 수 없는 직업을 가진 남자라서 다소 의아한 생각도 들었지만, 지금은 그저 얼른 이 남자를 보내고 다시 눕고 싶은 마음이 간절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