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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계농부 1권 (3화)
01장―건축 의뢰 (3)
큐스의 내곽은 시끌벅적의 표본이라고 해도 문제가 없을 정도로 요란함을 자아내고 있었다. 눈을 돌릴 때마다 큼지막한 건물이 있었고, 한 발자국을 내디딜 때마다 저마다 물건을 파는 장사꾼들이 즐비했다.
그리고 이러한 큐스의 내곽 중앙에는 커다란 소개소가 하나 있다. 바바루라는 이름의 이 소개소는 수식어답게 그 크기가 대개의 건물보다 훨씬 컸다.
물론 바바루 소개소도 처음에는 매우 작은 건물에 불과했었다. 하지만 몇 가지 내막만 알고 나면, 바바루 소개소는 무조건 성장했겠구나 하고 생각할 수 있다.
차별화! 일반적으로 소개소라 함은 한계가 있어서 몇 가지만 소개해 주는 게 다반사였다. 하지만 바바루 소개소는 달랐다. 건축, 가축, 의류 등 다분야에서 여러 종류의 거래를 소개해 준다.
이리저리 찾아다닐 필요도 없이 바바루 소개소만 오면 모든 걸 소개받을 수 있게 한 것이다.
“아, 그럼 수고하게.”
“하하, 살펴 가십시오.”
바바루는 뜨거워질 정도로 양 손바닥을 비벼댔다. 하나 이 정도 고통쯤이야 앞으로의 나날을 생각하면 전혀 괴롭지 않았다.
방금 이곳에서 나간 사람은 이 근방의 상단 중 최고의 명성을 얻고 있는 라이스 상단의 대행수. 손바닥이 닳아 없어지더라도 저 사람에게만큼은 어떻게든 좋게 보여야 하는 것이 바바루의 입장이다.
1만큼 잘 보이려 애쓰면, 100만큼 천금만금이 돌아오니 누구도 망설이지 않을 것이다.
바바루의 얼굴에 점점 더 미소가 지어졌다.
“후후, 이제 기쁜 날만이 펼쳐지겠군.”
물론 소개소가 점점 더 원활하게 운영되면서 내야 할 세금의 양이 크게 늘어나기는 했다. 하지만 그것은 잠깐의 슬픔이었다. 방금처럼 거대 상단의 대행수들이 단골이 되면서 내는 세금이 아깝지 않을 정도가 되었기 때문이다.
“저…….”
그때, 솔하 한 명이 슬금슬금 바바루에게 다가왔다.
“무슨 일이냐?”
“어떤 자유 상인이 소개장님을 뵙고자 합니다.”
“자유 상인?”
“예.”
바바루는 기가 찼다. 겨우 자유 상인 ‘급’밖에 안 되는 자가 자신과 직접 대면하려고 하다니? 물론 예전이었더라면 손님이 어떤 위치에 있던 상관하지 않았겠지만, 지금은 다르다. 웬만한 상단의 행수급이 아닌 이상은 자신이 나설 필요가 없었다.
고로, 바바루는 휘이휘이 손을 내젓는다.
“알아서 처리해라.”
“저…….”
“또 무어냐?”
“이것이…….”
솔하는 바바루에게 지폐를 내밀었다.
번쩍번쩍.
지폐는 자체적으로 빛을 낼 수 없지만 바바루에게는 번쩍거리는 것처럼 보였다.
“호오, 웬 거냐?”
“그 자유 상인이 선불이랍시고 주었습니다.”
“당장 데려와라.”
“예.”
소개료가 아닌 ‘선불금’을 주었다는 것은 상대가 어떤 위치에 있던 ‘부’를 이루고 있다는 말이었다. 부자가 아니고서야 굳이 줄 필요가 없는 선불금을 내밀지는 않기 때문이다.
바바루는 싱글벙글한 기색으로 대면실로 움직였다.
대면실은 호화스러움 그 자체였다. 의자, 커튼 할 것 없이 거의 모든 것이 화려하게 장식되어 있었다.
바바루가 막 자리에 앉았을 때 누군가가 들어섰다.
흔히 볼 수 없는 까만 머리를 가진 남자였다. 하나 그의 외양에 신기하다거나 놀라움을 가지지는 않았다. 자주 본 적은 없지만 일단 봤기는 봤었기 때문이다.
“아, 오셨습니까?”
“예, 안녕하십니까.”
“반갑습니다. 여기에 앉으시지요.”
자연스럽게 남자를 앉히면서 바바루의 손이 탁자에 놓여 있는 찻잔으로 향했다. 모락모락 김이 피어오르는 차는 향기만으로도 그 맛을 짐작케 했다.
“차를 드셔 보시지요. 맛과 향이 일품입니다.”
“아, 감사합니다.”
남자는 천천히 차를 한 모금 마시면서 말했다. 바바루는 당연히 남자의 입술만 쳐다보았다. 과연 그가 어떠한 거래를 하고 싶은 것인지 궁금했고, 그로 인해 얼마의 이익을 낼 수 있는지, 자신에게는 중요한 일이기 때문이다. 고로, 바바루의 찻잔은 애초부터 탁상에 계속 놓여 있었다.
“집 100채를 지어 줄 건축 공을 소개해 주셨으면 합니다.”
“…….”
일단은 둘 중에 하나였다. 남자가 ‘미친놈’이거나, 아니면, 정말로 ‘집 100채’를 지을 생각이거나. 하나 당장은 미친놈이라는 확신이 강했다. 한 영토의 영주도 아닌 이가 무슨 집을 100채나 짓는단 말인가?
더구나 영토 소유권이 없는 저 남자의 입장에서 저만큼의 집을 지을 땅이 있을 리도 만무했다.
바바루는 은근슬쩍 의심하는 투로 물었다.
“혹, 장난치시려는 것은 아니시지요?”
“아닙니다. 정말입니다.”
“의심하는 것은 아니오나, 그만큼 집을 지으려면 돈과 땅이 많이 필요합니다. 상상하지도 못할 만큼이요.”
남자는 바바루의 말에 개의치 않고 자신이 할 말을 했다.
“일단 땅은 충분하니 괜찮고, 집은 한 채에 서너 명 정도 생활할 수 있는 통나무집을 100채 정도 지으려 합니다. 돈이 얼마나 들까요?
“100채요?”
“예.”
“일단… 기다려 보십시오.”
저러한 유형의 집을 예전에 소개해 준 적이 있어 바바루는 장부를 뒤지기 시작했다. 물론 그 사이에 가격 변동이 있을 수 있어 정확하다고는 할 수 없지만, 그것은 근소한 차이에 불과했다.
장부를 확인한 바바루의 얼굴이 찌푸려졌다. 통나무집 100채를 지을 때 들어가는 금액이 상상 이상으로 큰 까닭이다.
“10억 우옴입니다.”
“10억 우옴이요?”
“예.”
사과 한 상자가 대략 2만 우옴 정도 한다. 고로 더 말할 것도 없이 10억 우옴이라는 금액은 ‘상상’으로도 생각할 수 없는 ‘절대적’ 금액이라고 봐도 무방하다. 물론 ‘파는’ 입장에 놓여 있는 바바루에게는 금액이 높아질수록 소개료가 많이 들어올 것이니 기쁜 일임에 분명하지만 문제는 이게 아니었다.
이 남자가 그만큼의 금액을 가지고 있느냐는 것.
귀족들에게는 어느 정도 자유롭게 운용할 수 있는 금액이지만, 그 아래의 사람들에게는 수 년, 수십 년에 한 번 써 볼까 말까 하다. 바바루는 전면에 미심쩍은 기색이 역력히 떠올랐다.
“소개를 해드릴까요?”
“예.”
남자는 허풍이 아닌 듯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당당히 말했다.
바바루의 안면이 점차 설마하는 기색으로 바뀌기 시작한다.
“혹, 10억 우옴을 확인할 수 있겠습니까?”
“소개료만 지불하면 되는 것이 아니었습니까?”
“아아, 맞습니다만, 의뢰인의 돈이 충분하지 않는데도 소개해 주면 저에게도 피해가 있는지라…….”
“그렇습니까?”
다행히 남자는 아무런 의심을 하지 않는 모양이었다. 그리고는 품을 뒤적이기 시작한다. 무언가를 꺼내려는 몸짓. 하나 바바루는 이런 상황에 즉면했음에도 여전히 남자를 신용하지 못했다.
거듭 말하고 강조하는 것이지만 10억 우옴은 이만큼의 의심을 할 정도로 말도 안 되는 금액이기 때문이다.
“여기 있습니다.”
“…….”
남자의 손에 올려져 있는 것은 종이 열 장이었다. 수 없이 돈을 만져 보고 보았던 바바루는 자세히 보지 않더라도 그것이 ‘수표’임을 알았다.
반짝이지 않지만 분명히 반짝이는 것. 얇지만 분명히 두꺼운 것. 바바루는 뒤숭숭한 머릿속보다 직면한 상황을 먼저 정리하기로 했다. 물론 겉으로는 아무렇지 않다는 기색을 띠었다.
“예, 됐습니다. 일단은 이것을 작성해 주십시오.”
“무엇입니까?”
“건축에 필요한 서류들입니다.”
“알겠습니다.”
바바루는 건축 허가 신청서 등 건물을 지을 때 필요한 과정이 적혀 있는 서류 여러 장을 남자에게 주었다.
‘후.’
턱턱 막혔던 가슴을 해방시켰다. 뛰지 않았는데도 숨이 거칠고, 뜨거운 햇빛을 쐬지 않았는데도 땀이 흐른다.
하나, 그런 바바루의 얼굴에는 커다란 웃음이 지어져 있었다.
“여기 있습니다.”
꽤 시간이 흘렀을 때 남자는 바바루에게 다시 서류를 돌려주었다. 거기에는 빼곡히 글씨가 차 있었다.
바바루는 대충 서류를 훑어보았다. 자신은 소개만 하는 입장이니 굳이 서류를 살필 이유는 없지만, 혹시나 잘못 적어 있으면 바로 고칠 요량이었다. 쭉, 멈춤 없이 서류를 훑어 가던 바바루의 시선이 갑자기 멈춘다.
‘응?’
뭔가 의아한 바바루의 기색. 하나 그는 이내 웃음 짓고는 그 부분을 다시 쳐다보기 시작했다. 이 시점에서 ‘그 단어’가 보이는 것은 해가 쨍쨍한 날 번개를 맞을 확률보다 낮을 것이기 때문이다.
‘…….’
눈을 비볐다. 또 비볐다. 그래도 이상해서 십수 번 눈을 깜빡였다. 한데도 써 있는 글자는 달라지지 않았다. 하나 바바루는 믿을 수 없었다. 서류를 눈앞까지 가져왔다. 분명히 자신이 잘못 읽고 있다고 생각하면서.
건축 장소:더트퍼리
글자는 달라지지 않았다. 수십, 수백 번도 넘게 들어보았던 그곳의 이름. 절대로 잊을 수 없는 그곳이 무슨 영문인지 건축 서류에 쓰여 있었다. 바바루는 시선을 올려 남자를 쳐다보았다.
그의 얼굴에는 거짓이 없었다. 농담기도 없었다. 허풍도 없었다. 장난도 없었다. 아무것도 없는 상태의 그에게는 ‘진실’만이 보일 뿐이다. 바바루는 의심할 수 없었다. 분명히 눈앞의 남자는 거짓을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하나, 외적 상황은 그의 내면에 있는 생각을 지배해 버렸다.
“장난하십니까?”
지금까지와 똑같은 남자의 목소리가 울려 퍼진다.
“아니요.”
“더트퍼리가 어딘 줄 아십니까?”
“벨스로크 왕국의 최서단 끝 쪽에 있는 변두리 땅이라고 하면 되겠지요.”
“…….”
말문이 막혔다. 역시나 생각대로 남자는 거짓을 말하는 게 아니었다. 진심으로 더트퍼리에 집을 지을 생각이었다.
바바루는 어느새 서류의 맨 마지막에 그려진 남자의 사인을 확인했다.
“그럼, 가 보겠습니다.”
“예, 살펴 가십시오.”
남자의 모습이 시야에서 사라졌을 때, 바바루가 크게 웃음을 터뜨렸다.
그의 옆에서 시중을 들고 있던 솔하가 다가와 묻는다.
“무슨 즐거운 일이라도 있으셨습니까?”
“있었지.”
“무엇입니까?”
바바루는 두터운 돈 뭉치를 꺼내들었다. 어림잡아도 100만 우옴은 될 듯했다. 솔하는 바바루가 웃음 짓는 이유를 알겠다는 기색을 보였다.
“오오, 거물이었군요? 내찼으면 큰일 날 뻔했습니다.”
“너는 내가 이것 때문에 기뻐한다고 생각하느냐?”
“하오면?”
바바루는 다시 한 번 호탕한 웃음을 터뜨리고 말했다.
“간만에, 아니, 살아오면서 저렇게까지 재미 있는 ‘미친놈’은 처음 보았다.”
“예?”
알 수 없다는 솔하의 눈빛. 하나 바바루에게는 깊게 알려 줄 생각이 없는 듯했다. 솔하는 점점 더 의문이 들었지만 바바루는 여전히 웃음만 터뜨려댈 뿐이었다.
***
큐스 소도시의 건축은 크게 발달되지 않았다. 애당초 큐스에서 건축할 만한 장소가 많은 것도 아니었고, 이미 모든 건물이 지어져 있기 때문에 더 이상의 건물을 필요로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결과적으로 이것은 건축 공들에게 큰 영향을 끼쳤고, 고로 큐스에 존재하는 건축 공들의 삶은 궁핍하기 그지없었다. 그런데 그런 건축 공들이 제법 화려하게 치장된 공간에 앉아 있었다.
“바바루가 거짓말을 할 리는 없지.”
“맞아. 바바루는 신용으로 먹고사는 사람이니까.”
“이거 기쁘기는 한데 아직도 긴가민가하구만.”
수염이 복슬복슬하게 난 호켄이 대화에 들어왔다.
“자네들은 급히 달려오느라 듣지 못한 모양이군. 돈까지 보여 줬다 하네.”
“돈을 보여 줘?”
“그래, 틀림없는 10억 우옴이라 하였어.”
제법 화려하게 장식된 이곳은 바바루 소개소의 대면실이다. 이렇게 사람으로 꽉 차는 경우는 드물지만 큐스에 있는 건축소장들이 전부 온 터라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어찌 되었든 상황은 대략 이러했다.
집 100채를 짓는 거래가 들어와서 부득이하게 전부 부르려 합니다.
처음 그 전보를 보았을 때 소장들은 전부 믿지 못했었다. 큰 도시에서도 있을까 말까 한 큰 규모의 거래다. 내일 해가 서쪽에서 뜬다 하더라도 쉽게 믿을 수 없는 일인 것이다. 그런데 전보의 출처지가 바바루 소개소다.
근방에서 ‘신용’ 하나로 그 자리까지 올라간 사람. 그가 심심하거나 놀 요량으로 저러한 전보를 보낼 위인은 아니었다.
곧 전보의 내용은 사실이라는 것. 정말로 100채의 집을 짓는 거래가 들어온 것이었다.
또 이곳에 도착해서 의뢰인에게 ‘10억 우옴’이라는 돈이 있음도 알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