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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계농부 1권 (4화)
01장―건축 의뢰 (4)


바바루의 입술이 최종적으로 닫혔을 때 같은 공간에 있던 인물들의 시선이 말도 안 될 만큼 흔들렸고, 살짝 손을 떠는 이도 있었다. 그리고 간신히 정신을 찾은 호켄이 떠듬떠듬 말문을 열었다.
“그러니까… 의뢰인은 자유 상인인데… 돈은 분명히 가지고 있다?”
“그렇습니다.”
“한데… 건축 장소가 더트퍼리다?”
“예.”
대답하는 바바루에게서는 떨림을 찾을 수 없었지만, 질문하는 호켄의 입술은 한겨울에 맨몸으로 나가기라도 한 듯 심하게 떨리고 있었다. 의뢰인이 자유 상인인데도 돈이 많은 까닭은 궁금하지도 않았다. 후미의 폭풍이 너무 거세었기 때문이다.
대관절 ‘더트퍼리’가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인가? 차라리 멀리 떨어져 있는 도시에 가서 건축을 하라면 하겠다. 하나, 더트퍼리에 가서는 죽어도 일을 못하겠다. 아니, 아예 가지도 못할 것이다.
이것은 비단 호켄의 생각만이 아니었다. 존재하는 모든 소장들은 식은땀을 한 방울씩 흘리면서 아니라는 고개를 젓고 있었다.
“저는 그리 나쁜 생각이 들지 않습니다.”
“그거야 당신은…….”
“아니요. 제가 소개를 하는 입장이라서 이런 소리를 하는 게 아닙니다.”
이미 대사를 짜놓은 바바루에게 말이 막힐 이유는 없었다. 마치 말에 기름을 발라 놓은 듯 유연하게 음성이 흘러나온다.
“여러분도 잘 아실 겁니다. 매일 아내에게 구박받고, 아이들은 먹고 싶은 걸 사달라고 조르고 하지만 돈은 없고. 이게 지금 여러분의 현실입니다.”
“…….”
구구절절 맞는 소리라 딱히 반발할 수도 없었다. 물론 꼭 그것이 아니더라도 의뢰 지역 자체가 충격적이라 그런 것도 있지만.
어찌 되었든 바바루의 입술은 계속해서 부딪히기를 반복했다.
“지금 이 의뢰는 천운입니다. 자그마치 10억 우옴입니다, 10억 우옴. 그냥 두 눈 꽉 감고 조금만 참으면 되는 겁니다. 더구나 지역만 그럴 뿐 나머지는 모두 쉽습니다. 통나무집, 그 얼마나 많이 지어 본 건축물입니까?”
“…….”
바바루의 말은 틀림이 없었다. 그의 말대로 정말 이 악물고 ‘약간’의 시간만 고생한다면, 10억 우옴이라는 돈을 수중에 넣을 수 있다. 더구나 건축물이 짓기 어려운 형식도 아니기에 언뜻 보기에는 분명히 쉽게 보였다.
하나 더트퍼리라는 지명은 소장들의 발목을 강하게 붙잡고 놓아 주지 않았다.
“이번을 기회로 삼아 소장님들의 소유에 있는 건축소를 하나로 통합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시설과 능률이 말도 안 되게 높아질 것이고, 그것은 곧 ‘돈’으로 나타날 게 자명합니다. 또한 이웃 도시에서도 의뢰를 청할 수 있습니다.”
“통합?”
“예. 어차피 이대로 있다간 모두 굶어 죽습니다.”
“…….”
“그럴 바에야 한 번 실행해 보는 게 낫지 않겠습니까?”
소장들의 전면에 망설이는 기색이 포착되자마자 바바루가 다시 치고 들어왔다.
“해 보십시오. 더트퍼리에 간다고 죽는 건 아니지 않습니까?”
“죽지는 않겠지. 하나, 거기에 있는 저주가 너무 두려워.”
“저주… 저주라… 있지요, 저주.”
유일하게 사람들의 발길이 닿지 않는 곳, 더트퍼리. 정확히는 알 수 없으나 사람의 보통적으로 살아가는 ‘인생’보다 더 긴 시간만큼 폐허로 존재했다고 한다. 그리고 더트퍼리가 그만큼 폐허로 존재한 것에는 ‘저주’의 영향이 컸다.
‘어떻게든 납득만 시킨다면 돼.’
바바루가 이번 의뢰를 성사시키기 위해 가장 많이 머리를 굴린 부분이 바로 더트퍼리의 저주에 관한 것이었다. 물론 듣는 그 순간부터 꺼림칙한 기색을 보여 납득시키는 게 매우 어렵겠으나, 누군가를 설득시키는 것은 바바루에게 있어 전문이었다. 그는 침을 바르며 언변을 펼쳤다.
“더트퍼리에 저주가 있다고는 하나 피해를 입은 사람은 없었습니다.”
“그렇다 하더라도…….”
“무엇이 두렵습니까? 저주는 겁쟁이들이 만들어낸 거짓 소문에 불과합니다. 겨우 그런 것 때문에 ‘10억 우옴’을 버리실 요량이십니까? 만약 제가 소장님들의 위치에 있었다면 당장에 이 의뢰를 받아들였을 겁니다.”
당연히 입에 발린 말이었다. 바바루는 자신이 대도시의 최고위 소장이라 할지라도 더트퍼리에서 건축 일을 하지 않을 것이었다. 그 까닭이야 간단하다. 저주가 있으니까. 그래서 거기에 가기 싫었다.
물론 바바루는 자신의 입으로 분명히 말했다. 저주는 겁쟁이들이 만든 것에 불과하다고. 하나 이쯤에서 거짓을 말할 필요가 있었다. 어차피 자신은 소개장의 위치에 있고, 죽어도 건축 일을 할 일은 없기 때문이다.
호켄의 얼굴이 살짝 동요하는 기색을 보였다. 바바루는 쾌재를 외치면서 다시 한 번 모든 소장들을 향해 목청을 높였다.
“거기에 집을 지을 사람을 생각하십시오. 한 채도 아닌 100채를 짓는 사람입니다. 과연 그 사람은 더트퍼리의 저주를 모르고 그런 일을 하는 것일까요? 아닙니다. 그 사람은 알고도 일을 시작하는 것입니다.”
그제야 의뢰인의 입장을 생각해 보는 소장들. 그러고 보면 의뢰인도 더트퍼리의 저주를 모르지 않을 수가 없었다.
‘저주받은 땅에 집 100채를 짓는다.’
‘대관절 얼마나 강심장인 것이지?’
‘우리는 겨우 집만 짓는 것이지만 의뢰인은 아주 거기서 생활할 생각이야.’
그리고 쐐기를 박는 바바루의 말이 이어진다.
“더 중요한 것은 최소 100명 이상은 더트퍼리에서 ‘계속’ 살 거라는 것입니다.”
“아!”
“소장님들은 집만 짓고 나면 더트퍼리에서 나오면 됩니다. 하나 그곳에서 살 사람들은 거기에서 계속 살아야 하지요. 그 악명 높은 더트퍼리에서 말입니다. 한데, 과연 그들이 저주를 두려워한다면 그곳에서 살려고 하겠습니까? 그들은 알고 있습니다. 더트퍼리의 저주는 ‘허풍’에 불과하다는 것을요. 자, 그럼 여쭙겠습니다. 이번 의뢰를 받으시겠습니까?”

***

큐스는 평화로운 일상을 자아내고 있었다. 물건을 팔려는 상점 장사치, 음식을 배달하는 듯 큰 쟁반들 들고 움직이는 배달부, 그리고 길가를 거니는 사람들까지. 거듭 말하온데, 이 모습은 여유와 평화의 표본이라고 해도 틀릴 게 없었다.
한데, 이러한 모습을 깨뜨리는 두 여인네의 긴밀한 대화가 일기 시작한다.
“그게 정말이야?”
잡화상이 날아다니는 파리를 잡아내면서 그렇게 묻자, 옆에 있던 그릇상이 잠시 장사를 관두고 옆에 앉았다.
“믿지 못하겠지만, 사실이야.”
확고한 그릇상의 말에도 잡화상은 여전히 믿을 수 없다는 눈치였다.
“도무지 믿을 수 없는 걸… 더트퍼리라구, 더트퍼리.”
“하지만 오늘 출발했어.”
“정말?”
“그래. 아무래도 약간은 긴밀하게 실행했던 모양이야.”
잡화상은 자신이 한 가정의 모임을 떠올리고는 그릇상에게 물었다.
“그들의 가족들은 모두 허락한 거야?”
“그렇겠지? 근데 의외로 쉽게 허락했대. 아이든 부모든.”
“왜? 더트퍼리가 죽음의 땅이라는 건 세 살배기 아이도 아는 사실이잖아?”
“이번에 얻는 수익으로 건축소를 총통합한데서 허락했나 봐.”
잡화상의 얼굴에 놀라움이 가득 차올랐다. 대체 얼마나 수익이 크기에 건축소를 통합한다는 말인가?
“수, 수익이 어느 정도길 래?”
“한 10억 우옴 쯤 되는 모양인데, 확실히는 모르겠어.”
“시, 십 억 우옴?”
말이 10억 우옴이지, 웬만한 사람은 죽었다 깨어나도 평생에 한 번도 말해 보지 못할 만큼의 액수였다. 어쨌든 10억 우옴이라면 모든 건축소가 통합한다는데 수긍할 수 있었고, 건축 공들의 가족들이 비교적 쉽게 허락한 이유를 알 수 있었다.
‘큐스의 건축 집안이 불행하다는 것은 모두가 아는 사실이지… 한데, 모두 총 통합한다면?’
지금까지 큐스의 건축 공들은 가장 불안한 삶을 살고 있었다. 의뢰가 불규칙적으로 들어오는데다가 의뢰 자체가 그리 많이 들어오는 것도 아니다. 또한 여러 곳으로 나뉘어 있어 건설 환경도 나빴다.
그런데 건축소가 총 통합한다면 이제까지의 모든 악몽이 사라진다.
환경, 기술, 능률 등등 건축소에 필요한 요소요소가 모두 완벽해진다. 물론 막상 총 통합을 한다는 게 그리 쉬운 일은 아니겠으나, 계속해서 불행한 삶을 사는 것보다는 쉬울 것이었다.
잡화상은 곰곰이 생각했다.
‘우리 아들의 직업으로는 건축 공이 딱이겠어.’
어제까지만 하더라도, 아니, 방금 전까지만 하더라도 아무리 일이 없어도 아들에게 건축에 관한한 일은 시키지 않으려 했던 잡화상이었다. 하나 이제는 다르다. 미래가 충만한 총 통합 건축소에 아들을 취직시키면 그보다 좋은 일은 없을 것 같았다. 더 고민할 것도 없이 내일부터 아들에게 건축 공부를 시키리라 다짐했다.

큐스에서는 몇 가지 주제가 계속 회자되고 있었다. 하나는 ‘더트퍼리’였고, 둘째는 ‘더트퍼리에 집을 짓는 의뢰를 수락한 건축 공’이었으며, 셋째는 앞선 두 가지 주제의 중심에 서 있는 의뢰인 ‘자유 상인’에 관한 것이었다.



02장―퓨리스 (1)


퓨리스는 낡은 나무 둥치에 대충 자리를 잡았다.
부석부석대는 나무의 잔재가 엉덩이를 어지럽히겠지만 상관없었다. 겨우 이런 걸로 옷이 더러워진다고 생각하는 것은 귀족들에 한한 것이기 때문이다.
잠시 후, 퓨리스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일어남과 동시에 나무껍질 여러 개가 우수수 떨어졌지만, 이 역시 상관치 않았다. 주위를 훑어보았다. 심하게 마른 나무가 퓨리스의 눈에 들어왔다.
“풍성하구나.”
미친 소리라고 치부할 것이다. 비쩍 마른 나무를 보고 풍성하다고 할 사람은 없기 때문이다. 하나 위치가 더트퍼리라면 얘기가 달라진다. 워낙에 공간이 황폐해서 기본적인 모습조차 가지지 못한 나무가 많기 때문이다.
“흠, 좋아.”
퓨리스는 그 나무에서 시선을 떼고 다른 곳에 시선을 모았다.
심하게 갈라진 땅과 뿌리조차 찾을 수 없이 마른 풀이 푸른 하늘과 완벽하게 대조를 이루고 있었다.
“이 정도면 살아날 가능성이 농후하다.”
분명히 시선에 들어오는 것 중에서 살아 있는 것은 없었다. 나무도, 물도, 풀도, 새도 모두가 죽어 있었다. 한데도 퓨리스의 전면에는 희망 어린 기색이 역력했다. 아니, 이곳이 반드시 되살아날 것이라 확신하는 모습이었다.
“사람의 손은 기적이지, 곧 죽을 것도 되살리니까.”
쉽게 해석할 수 없는 말을 중얼거린 퓨리스가 걷기 시작했다. 곧 커다란 구덩이가 그의 시선에 잡힌다.
보통적인 집 다섯 채를 둥그렇게 모아 놓은 정도의 크기였다.
“호수였나?”
호수가 아니라면 이 정도의 구덩이가 있을 리 없었다. 한 방울의 물도 보이지 않는 그 구덩이를 바라보면서 퓨리스가 말했다.
“이곳에도 곧 물이 가득 차게 되겠지?”

***

수십은 유연하게 넘을 만큼의 거친 사내들이 기다랗게 행렬을 만들고 있었다. 하나같이 다부진 체격을 소유한 그들은 저마다 어깨에 무언가를 들고 있었다. 통나무를 자르고 붙이고 대는 작업이 가능한 도구들이었다.
이로써 행렬의 정체가 건축 공임을 어렵지 않게 짐작할 수 있었다.
그때 행렬의 어딘가에서 푸념이 늘어진다.
“형님, 들 게 뭐 이리 많습니까?”
“임마, 집을 백 채나 짓는데 이만큼이면 적는 거다.”
“에휴, 알겠습니다.”
푸념인의 체격은 심하게 건장했다. 어깨는 보통 남자의 두 배 가까이 될 만큼 넓었고, 키도 웬만한 키다리 저리 가라 할 정도로 컸다. 한데도 불평할 정도이니 짐이 얼마나 무거운지 대략 알 만했다.
푸념인에게 형님이라 불린 호켄 건축소의 소장 호켄도 알고 있었다. 지금 들고 가는 짐은 결코 적지 않고 많고 무겁다는 것을. 하나 어쩔 수 없는 일이다. 그때 의뢰를 수락한 시점부터 이미 예견된 일이었으니.
끊임없이 움직이던 행렬이 어느 순간 멈춰 섰다. 동시에 행렬에 있는 모든 이들의 시선이 주위를 훑는다. 건축 소장 여덟을 포함한 150여 명의 장정들이 주위를 훑는다.
당장 가루가 되어도 전혀 이상하지 않을 성 틀.
녹색은 찾아볼 수도 없는 공간.
하얀 구름도 어둡게만 느껴지는 이곳.
여덟의 건축 소장을 필두로 한 150여 명의 건축 공들이 드디어 더트퍼리에 도착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