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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계농부 1권 (11화)
05장―쟁기 (2)
그리고 어느새 해가 중천에 떴을 무렵.
“완성되었습니다.”
“오오, 이게 쟁기라는 것인가.”
“확실히 달라.”
“굳이 쟁기질을 보지 않더라도 이 자체만으로도 놀랍구만.”
퓨리스는 슬슬 자리에서 일어났다.
“이제 소에 끼워서 한 번 움직여 보지요.”
“그러지.”
“서두르자고.”
농부들은 어서 빨리 쟁기질을 하는 모습을 보고 싶다는 듯 이가를 할 때만큼이나 빠른 걸음으로 북쪽을 향해 걷기 시작했다.
수많은 시선이 어느 한곳을 향해 쏠려 있었다. 말없이 상황만 바라보는 이들! 퓨리스가 중점에 서서 말했다.
“코뚜레가 없으므로 일단은 목에다 줄을 두릅니다.”
“오오.”
단지 쟁기를 끼워 맞추는 하나의 과정에 불과함에도 마을 사람들은 깊은 감탄사를 쏟아냈다.
퓨리스는 계속해서 일을 진행했다.
“그리고 줄과 쟁기를 이은 후.”
“호오.”
“쟁기를 뒤에 끼워 맞추면 됩니다.”
어느새 완성된 쟁기질하는 소. 소의 뒤에는 당연히 쟁기가 달려 있었고, 그것은 한 발자국이라도 움직인다면 당장에라도 땅을 갈 기세를 보였다. 마을 사람들은 재촉하는 눈빛을 불태웠다.
‘드디어 시작이구만!’
‘궁금해!’
‘놀라워요, 퓨리스 군.’
어른, 어린아이 할 것 없이 모두가 고대하는 상황! 그리고 그 순간 에이린이 유유히 퓨리스의 공간으로 들어간다.
누구도 그녀의 정체에 대해 묻지 않았다. 그녀는 소농사의 일등공신이니까.
“자, 걷자.”
음머.
바로 걷기 시작하는 소. 혹시나 해서 소의 옆구리를 두드렸던 퓨리스의 행동이 무색해질 정도였다.
소가 발을 내디딜 때마다 놀라운 일이 벌어진다.
너무나 심하게 갈라져서 도저히 땅이라고 볼 수 없었던 공간에 뭔가 생기가 돋는다. 물이 없더라도 생기는 존재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 주는 것 같다.
“놀라워!”
“곡괭이질과는 차원이 다르군!”
“범위도 엄청 넓은데다가, 곡괭이보다 더 좋게 갈려!”
어린아이들과 아주머니들은 그저 감탄사를 표했고, 농부들은 곡괭이질과 쟁기질을 비교했다. 일일이 허리를 써서 해야 하는 곡괭이질과 달리 쟁기질은 걸어가기만 하면 모든 게 알아서 돼서 너무 편한 것 같았다.
“우아, 신기하다.”
소를 부리는 에이린도 후방을 쳐다보며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다. 소는 걷자 뒤의 쟁기가 땅을 훑고 지나갔고, 그것은 곧 땅이 갈리는 원동력이 되었다. 퓨리스 또한 이 모습을 바라보면서 기쁜 미소를 지었다.
‘잘되었다!’
이제 남은 일은 서둘러 스물여덟 개의 쟁기를 만드는 것이다. 이 세계도 사계절로 이루어져 있기 때문에 하루라도 더 서둘러야 했다.
더트퍼리 마을 중심부의 공터에 사내 여럿이 모여 있었다. 그들은 하나같이 앉아서 무언가를 만들고 있었다.
“아, 그렇게?”
“예, 여기서 또 이렇게 하면…….”
“오오, 알았어. 해보겠어.”
“대단하십니다. 보고 바로 익히시다니…….”
퓨리스는 한창 놀라움을 금치 못하는 상태였다. 쟁기를 만드는 게 보기에는 제법 쉬워 보여도 정작 만들 때는 어렵게 느껴지게 마련인데, 수염을 번지르하게 기른 농부 로크는 매우 쉽게 따라왔다.
여기저기서 음성이 쏟아졌다.
“어이, 로크. 자네, 왜 이렇게 잘 만드는 거야?”
“그저 따라 만드는 것뿐인데 말이야.”
“나는 따라 만들었는데도 벌써 두 번이나 실패했다네.”
다른 농부들은 몇 번씩 고배를 마시는데 반해, 로크는 일사천리로 쟁기를 완성시켜 나가고 있었다.
실수도 없었으며, 중간에 막히는 것은 더더욱 없었다. 물론 보고 따라하는 것인데 얼마나 어렵겠느냐고 생각할 수도 있다. 하나, 로크가 지금까지 해 온 일에서 ‘제작’에 관련한 것은 하나도 없다.
‘더구나 쟁기는 생소한 물건이다. 원래 알고 있던 물건이 아니야.’
그리고 어느 순간, 로크가 무언가를 내민다.
완성된 쟁기.
“호오.”
퓨리스는 로크의 쟁기를 이리저리 살펴보면서 탄성을 내질렀다. 자세히 훑어보면 메워야 할 곳이 몇 군데 있었지만, 처음으로 만든 것이라는 걸 생각해 볼 때, 그것은 그리 큰 문제가 되지 못했다.
되레 겨우 이 정도만 실수했느냐고 생각될 정도.
“어떤가?”
조심스럽게 물어오는 로크. 퓨리스는 생각할 것도 없이 머릿속에 맴도는 것을 그대로 내뱉었다.
“너무 훌륭합니다.”
“오오, 고마우이.”
그러자 다시 한 번 몰려들어 로크의 쟁기를 바라보는 농부들! 그들 역시 쟁기를 만들고 있었지만, 자신들의 것과는 확연히 다른 완성도였다. 너 나 할 것 없이 여기저기서 탄성이 쏟아졌다.
“퓨리스의 것과 비교해 봐도 손색이 없구만.”
“대단해.”
“대체 무슨 실력이야, 이게?”
퓨리스는 곰곰이 생각했다. 그리고 어느 순간, 확신에 찬 기색으로 로크를 쳐다보았다.
“로크 님, 혹시 이런 일을 정식으로 해 보실 생각 없으십니까?”
“이런 일이라니? 그게 무슨 말이야?”
“제작일이라고나 할까요? 이르자면 제작자가 되시는 겁니다.”
“내가? 내가 제작자를 한다고?”
“예. 어떠신지요?”
이 말에 가장 관심을 보인 것은 로크가 아닌 다른 농부들이었다. 그들은 하나같이 고개를 끄덕이며 동조했다.
“오오, 그거 좋은 생각이구만.”
“이 정도 실력이라면 가능할 거야.”
“사는 것보다는 자네가 직접 만든 것을 쓰는 게 훨씬 더 좋을 거고 말이지.”
하나 로크는 당황한 눈치였다. 살아오면서 제작자가 되겠다는 생각을 가진 적도 없었으며, 또 제작에 관심을 가진 적도 없었다. 물론 오늘 쟁기를 만들면서 제작이 재밌다는 생각은 했지만, 그게 제작자의 길로 이어지리라고는 꿈에도 생각지 못했다. 고로 로크의 만면엔 아리송한 기색이 역력했다.
“괜히 해 보는 말이 아닙니다. 비록 제가 그 부분에 있어 지식을 가지고 있는 것은 아니지만, 로크 님의 실력은 정말 놀랍습니다. 일전에 제작을 배운 것도 아닌데다가 또 쟁기라는 게 얼마나 생소한 물건입니까? 한데 그것을 단 두 번만 보고 따라 만들었다는 건 로크님에게 소질이 있다고밖에 생각할 수 없습니다.”
“…….”
“한 번 해 보시는 것도 좋을 것 같습니다.”
로크의 빛나는 두 눈동자가 가만히 쟁기를 바라본다. 직접 자르고, 끼우고, 맞춰서 만든 물건. 땀이 서려 있고 순간의 열정이 담겨 있다. 완성시켰을 때의 성취감 역시 아직까지 마음속에 남아 있다.
“한 번… 해 보지.”
06장―본격 작업 (1)
태양이 뉘엿뉘엿 모습을 감춰 버릴 시점에, 쟁기 만드는 법을 가르치는 사람은 둘로 늘어나 있었다.
하나는 퓨리스 그리고 다른 하나는 로크였다. 로크의 실력은 이제 퓨리스와 버금갈 정도로 일취월장했다.
깊이 생각해 보지 않아도 그의 잠재적 능력이 뛰어남을 알 수 있다.
“허, 정말 대단하십니다.”
“대단하기는, 아직 어설픈 게 많아. 계속 익혀야지.”
“아닙니다. 하루아침에 이 정도의 실력이라면 충분히 대단한 일입니다.”
“하하, 칭찬하기는.”
로크는 겸손한 사람이었다. 칭찬을 고대로 받아들이지 않고 자신이 잘못한 것은 없는지 먼저 판단했다.
퓨리스는 생각했다.
‘대단하신 분이시다.’
그때, 코우즈가 만면에 긴가민가한 기색을 띄우고는 목청을 높였다.
“어이, 퓨리스. 여기서 어떻게 해야 하는가?”
“아, 거기선…….”
벌써 몇 번이고 곱씹어 알려 주는 것이지만 퓨리스는 지루해하지 않고 계속해서 쉽게 알려 주기 위해 노력했다.
몇 번의 행동과 말이 오가자 코우즈가 고개를 끄덕였다.
“오오, 이렇게 하면 되는군.”
“그렇지요.”
“제작이라는 건 참으로 어려운 일이구만.”
깊게 한숨을 내쉬는 코우즈. 이것은 비단 코우즈만의 일은 아니었다. 모든 농부들이 제작에 어려움을 표했다.
단순한 통나무로 ‘무언가’를 만든다. 처음에는 몇 번 깎고, 자르기만 하면 될 것 같아서 쉽게 생각했지만, 그것이 완벽한 오판이라는 것을 안 것은 오래지 않아서였다. 깎을 때마다 잘못 빗나가지는 않을까 노심초사해야 했으며, 자를 때는 길이와 모양이 어긋날까 가슴을 졸여야 했다.
“퓨리스, 이제 너의 도움 없이 만들어 보겠어.”
“하하, 그러시면 좋지요.”
“실수는 창조에 득이 된다고, 일단 한 번 완성시켜 보지.”
“좋습니다.”
어떤 이는 이렇게 물을 수 있다. 차라리 알려 주고 계속 실패하고 실수하는 것을 보느니, 퓨리스와 로크만 작업하는 게 낫지 않겠냐고. 하나, 퓨리스는 그것은 아니라고 보았다. 아직 쟁기는 스무 개를 넘게 만들어야 했고, 하나를 완성시키는데 반나절 정도가 걸린다고 생각하면 전자가 훨씬 이득이었다.
또한, 꼭 이게 아니더라도 중요한 이유가 하나 있다.
‘언젠가 또 이런 일이 오지 말라는 법이 없다. 미리 연습하는 걸로 생각하면 되는 것이다.’
사흘 뒤, 깅스턴의 집. 깅스턴은 자신이 잘못 들은 것은 아니냐는 표정으로 좌중을 향해 내뱉었다.
“본인이 촌장을?”
“예, 깅스턴 님?”
“그, 그 무슨! 젊고 창창한 자네들 사이에서 촌장이 나와야지!”
“아닙니다. 어르신만큼의 연륜과 품위를 가진 사람이 없습니다.”
퓨리스의 딱 잘라진 말에 깅스턴은 계속해서 고개를 가로저었다. 화전민촌에서는 자신이 촌장이었을지 몰라도 더트퍼리에서 촌장이 될 수는 없었다. 방금 말한 것처럼, 젊은 사내들이 많기 때문이다.
“그것은 형식적인 것뿐이네.”
“형식적인 것이 아닙니다. 촌장의 자질이 연륜과 품위인데, 깅스턴 님이 거기에 딱입니다.”
“아무리 그래도 그럴 순 없지. 이보게, 자네들도 그리 생각하지 않는가?”
좌중에 앉아 있던 농부들은 의아한 기색을 ‘강하게’ 표출했다.
“예? 저희들은 당연히 깅스턴 님이 촌장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만.”
“이미 결론 냈습니다.”
“예. 깅스턴 님의 의견을 묻고자 이렇게 모인 것이지요.”
깅스턴의 얼굴에 설마하는 기색이 진하게 올라왔고, 그는 곧 다급해진 기색으로 열변을 토했다.
“무, 무슨! 내가 어찌 촌장이 되겠는가?”
“촌장님이 딱 적정 인물이십니다.”
“예, 촌장님이 아니면 누가 촌장 직을 맡습니까?”
이젠 아예 촌장이라고 칭한다. 깅스턴은 이 막막한 상황을 어찌 헤쳐 나갈지 머릿속이 혼미해졌다.
“나는 아직 촌장이 아니야. 그리 부르지 말게들.”
“그러면, 촌장님.”
“그리 부르지 말래도!”
“그렇다면 이렇게 하심이 어떻겠습니까?”
“어찌 말인가?”
퓨리스까지 나서 자신을 촌장이라 부르는 것에 깅스턴은 더욱 안절부절못했지만 퓨리스는 아는지 모르는지 말을 이었다.
“공정하게 투표로 결정하는 것입니다.”
“아, 아니 되지. 그건 아니 돼.”
깅스턴이 거절하는 것은 당연한 것이었다. 누가 보더라도 이 자리에 있는 이들은 모두 자신이 촌장이 되는 것에 찬성하는 눈치인데, 이런 상황에서 투표를 하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하나, 퓨리스의 말은 아직 남아 있었다.
“마을 사람 모두를 대상으로 하는 투표입니다.”
“모두가 대상?”
“예.”
“흠… 좋아, 알겠네.”
하나, 둘, 셋도 아니었다. 그냥 ‘아’하는 순간에 문이 열린다. 그리고 엄청난 목소리가 공간을 울린다.
“촌장님이 촌장님이 되어야 해요!”
“저희들도 동의해요!”
“반가워요, 깅스턴 촌장님!”
첫 번째 말은 누가 들어도 깅스턴이 촌장 직을 맡으라는 말.
두 번째 말은 첫 번째 말에 동의하겠다는 말.
세 번째 말은 굳이 더 생각할 것도 없었다. 깅스턴이 이미 촌장 직을 맡은 것처럼, 환영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깅스턴의 얼굴에 말도 안 된다는 기색이 떠올랐고, 곧 그가 떠듬떠듬 내뱉었다.
“이, 이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