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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계농부 1권 (12화)
06장―본격 작업 (2)


“축하해요, 아버지.”
더 이상 귀를 의심할 여지가 없었다. 가장 가까이 있는 가족까지 자신이 촌장 직을 맡은 것에 축하해주고 있었다.
말도 안 되는 상황. 적어도 투표를 한다면 날이 밝았을 때, 모두가 한곳에 모여 할 줄 알았다. 그런데 이 상황은 마치 미리부터 ‘대기’한 것처럼 일어났고, 깅스턴은 결국 뒤늦게 낌새를 눈치챘다.
“설마… 미리 얘기를 다 끝내 놓고!”
“아, 축하드립니다.”
“반갑습니다, 촌장님.”
“환영합니다.”
하나, 눈치 빠른 농부들은 시치미를 뚝 떼고 깅스턴에게 축하의 음성만 주었다. 깅스턴은 결국 웃음을 터뜨리고 말았다.
“저희들은 모르는 일입니다.”
“하… 하하, 뭐, 이거 어쩔 수가 없구만.”
“오오, 촌장님도 인정하셨다.”
촌장이라는 자리는 너무나 어려운 위치이다. 항상 마을을 신경 쓰고 관리해야 한다. 또한, 위급한 일이 생기면 앞전에 어떤 일이 있어도 달려가야 하며, 아무리 어려운 일이라도 용기를 잃어서도 안 된다.
이밖에 꼭 구구절절 읊지 않더라도 촌장이 할 일은 수 없이 많다. 물론 마을의 최고의 위치에 있는데 좋은 점도 있지 않겠느냐고 생각할 수 있지만, 애초에 최고를 노리고 촌장직을 맡는 이가 그 어디에 있겠는가?
깅스턴은 두 주먹을 불끈 쥐면서 생각했다.
‘이왕 이렇게 된 것. 어디 한 번 시원하게 해 보자!’
다짐을 불태우는 깅스턴. 한데 이상하리만치 활기찬 분위기를 느낄 수 있었다. 깅스턴은 당연히 의문을 느꼈다.
‘뭐지?’
이윽고 펼쳐지는 광경. 문이 열리고 그 뒤로 보이는 맛있는 음식들! 간편하게 연주할 수 있는 악기도 있었다.
깅스턴은 무엇이냐는 표정으로 좌중을 바라보았다.
“미리 준비해 두었지요.”
“이거… 내가 촌장이 되지 않을 확률은 애초부터 제로였구만.”
깅스턴만 모르고 모두가 알았던 사실. 애초부터 마을 사람들은 깅스턴을 촌장으로 하기로 결정을 내린 상태였다. 하나 무작정 그를 촌장으로 하기엔 다소 무리가 있었으므로, 이렇듯 의사를 물은 것이었다.
물론 강제로 시킨 거라고 해도 할 말은 없지만.
여하튼 깅스턴의 집에서부터 수많은 발자국이 찍혀 나온다.
“이왕 이렇게 된 것. 마음껏 즐겨 보지!”
“예, 촌장님!”
이미 축제의 모든 것이 준비되어 있다. 모락모락 김이 피어오르는 바비큐하며, 달콤한 내음을 발하는 술하며!
또한, 바람을 타고 흘러가는 음악의 선율도 마음을 자극했다.
휠리리리―
‘어디 한 번 제대로 해 보자. 일단 촌장이 된 이상, 무조건 성공을 향해 갈 테니.’

이른 아침에 깅스턴과 퓨리스 그리고 농부들이 다시 깅스턴의 집으로 모였다. 밤늦게까지 축제를 즐기느라 아직도 여운이 가시지 않았지만, ‘계획된 일’은 그 앞전에 어떠한 일이 있더라도 지켜야 한다.
한 번 어긋나면 그 다음부터 어려운 게 계획이라는 것이니까.
“그래, 그럼 오늘부터 시작하겠다는 것인가?”
“예, 촌장님.”
“흐음, 왠지 기대가 되는구만.”
어제부로 서른 개의 쟁기는 모두 만들어져 오늘부터 본격적인 땅 갈기가 시작된다. 깅스턴이 재차 입을 열었다.
“아아, 이보게 퓨리스.”
“예.”
“수로 문제는 어떻게 하기로 했나?”
“아, 그것은…….”
농부들도 귀를 기울이는 가운데 퓨리스의 말이 이어졌다.
“예정대로 롬숄 강의 물을 개방하기로 했습니다.”
“으음, 알겠네. 그럼 오늘 회의는 이만 마쳐도 되겠어.”
“예, 수고하셨습니다, 촌장님.”
차례차례 자리에서 일어나는 농부들. 비록 지금은 누군가의 집에서 회의를 하지만, 언젠가는 정식 회의소에서 대면할 날이 올 것이다.
밖으로 나선 농부들은 저마다 길게 기지개를 폈다.
“참으로 개운한 날씨구만.”
“바람도 제법 선선해.”
“여러모로 일하기엔 딱 좋은 날씨지.”
문득 궁금한 것이 생긴 듯 베그마가 퓨리스를 쳐다보았다.
“아아, 퓨리스.”
“예.”
“에이린이 아니고서야 소를 몰 수 없는 거야?”
퓨리스는 이 부분에 대해서는 깊게 생각하지 않았다. 이미 자신이 실험삼아 소를 몰아보려 했던 적이 있었기 때문.
“저는 소 꼬리로 한 대 맞았더라지요.”
“허어… 소 꼬리로?”
“예. 상당히 아팠습니다.”
“에이린은 참으로 기이한 재주를 가졌구만.”
베그마의 의문점까지 없어진 시점부터 농부들이 서서히 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중심에 모인 100채의 집을 겉으로 갈라지고 메마른 땅이 빼곡이 차 있었다. 보통의 사람이라면 한숨부터 내쉴 수준!
하나, 더트퍼리의 농부들은 전혀 그렇지 않았다.
‘한 번 땅이 갈라질 때마다 꿈에 가까워지는 거야!’
‘황금빛 논! 어서 보고 싶다!’
‘빨리 시작해야겠군!’
퓨리스도 대지를 딛고 서서 유유히 주위를 바라보았다. 너무나 황량해서 볼 것도 없는 땅이지만, 퓨리스 역시 농부들과 마찬가지의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 어서 땅을 일구고 싶었고, 그 땅에 모를 심고 싶었다.
그러면서 한 소녀가 그의 곁으로 다가온다. 굳이 말할 것도 없이 그녀의 정체는 에이린.
“약속 지킬 거지?”
“그럼.”
“히히, 오케이.”
“그게 그렇게 좋아?”
“당연하지!”
에이린은 일을 해 주는 것으로, 아무리 바쁘더라도 자신과 하루에 1시간은 놀아 주라는 조건을 걸었다. 이게 언뜻 생각하기엔 쉬운 조건 같아도 현실적으로는 전혀 그렇지 않았다. 두 발 두 손이 모자랄 정도로 하루하루를 바삐 뛰어다니는 퓨리스다.
정기적으로 큐스로 나가 생필품을 사 와야 했으며 농사에 관한 일과 생각을 끊임없이 해야 했다. 그런 의미에서 퓨리스가 하루 1시간을 뺀다는 것은 확실히 어려운 일이라 할 수 있다.
‘에이린이 없었다면…….’
하나 퓨리스는 그 시간을 전혀 아깝다고 느끼지 못했다. 오히려 미안했다. 더 놀아 주지 못하는 게 미안할 따름이다.
‘코뚜레 없이 이렇게 일을 할 수 있게 된 건 모두 에이린의 덕이니까.’
퓨리스는 에이린의 머리를 한 번 쓰다듬어 주고 본격적으로 일을 하기 위한 준비에 앞섰다. 일단은 방목한 소를 데려와야 한다.
이 부분 역시 에이린의 영향력이 상당했다.
“나한테 맡겨.”
“고마워.”
“히히.”
연신 웃는 에이린은 총총걸음으로 북쪽 언덕으로 움직였다. 물론 퓨리스를 옆에 꼭 붙여 두고.
이 시점에서 베그마와 코우즈의 은밀한 대화가 오간다.
“어떤가?”
“호오, 정말이구만.”
“그것 보게, 내 뭐랬는가?”
“하지만 아직 두고 봐야 해. 남자의 마음은 아직 모르니.”
“그건 그렇지만, 아무튼 선남선녀일세.”
“그러게 말일세.”
두 사람은 거기서 대화를 멈추고는 벌어진 거리를 좁히기 위해 걸음을 빨리했다.
그리고 마을의 북쪽 언덕.
동화 속에서 다분히 등장하는 푸른 초원에서 풀을 뜯는 소의 모습은 아니었지만, 누가 이런 상황에서 ‘환상’을 생각하겠는가?
푸른 풀이 아니더라도, 마른 건초면 충분하고도 남는다.
“얘들아, 빨리 빨리 가자.”
음머어.
여전히 에이린의 말이라면 귀신같이 알아듣는 소들. 바로 직전까지 거드름을 피우며 건초만 뜯었던 녀석들이 발 빠르게 걷기 시작한다.
고로, 마을로 내려가는 것은 순식간!
“이제 쟁기를 끼우지요.”
“알았다.”
퓨리스와 농부들은 저마다 쟁기를 챙겨들고, 소들에게 다가갔다. 물론 여기에도 에이린의 언질이 있었다.
“가만히 있어야 해, 너희들.”
음머어.
소들의 대답에 에이린은 만족스러운 미소를 띄웠고, 어쨌든 그 덕에 쟁기를 편하게 끼울 수 있었다.
이윽고 스물아홉의 소에게 모두 쟁기가 달려졌을 때, 농부들이 물었다.
“저번에 한 대로 하면 되는 것이지?”
“예.”
“흐음, 알았어.”
무작정 할 수 없는 노릇이기에 농부들은 퓨리스에게 쟁기를 쓰는 방법을 배웠다. 고로, 어떻게 쟁기를 사용할지 고민하는 이는 없었다.
베그마는 쟁기 쪽에 다다가 섰고, 그의 앞에는 코우즈가 서 있었다.
이것이 쟁기를 다루는 방법!
‘앞선 사람이 소를 이끌면서, 뒤에서 잡아 주는 사람이 같이 따라간다!’
여기에 에이린의 언질까지 더해진다면 쟁기질의 효율성은 더더욱 좋아진다.
퓨리스 역시 이제 막 일을 시작하려던 참이었다.
그의 앞에 서 있는 인물은 로크! 제작자로서의 길을 걸어 보기로 한 그였지만, 상황이 상황인 만큼 지금은 쟁기질을 도우기로 하였다. 서둘러 땅을 갈아야 정식으로 농사를 지을 수 있기 때문이다.
“이야, 이거 정말 훌륭하구만!”
“그렇지요?”
“어어, 곡괭이와는 차원이 다른 걸!”
로크는 연신 감탄사를 내뱉었다. 시원하게 갈리는 땅들! 곡괭이로 한 걸음씩 나아가며 가는 것과는 천지의 차이였다. 또한 허리를 굽히거나 할 것도 없이 걸음만 맞춰 주면 되어서 힘도 들지 않았다.
날로 먹는다는 말이 괜히 나오는 게 아닌 것 같았다.
“우와!”
한편 퓨리스의 주변에서 졸졸 걸음을 따라 옮기던 에이린 역시 감탄사를 터뜨리는 중이었다. 말도 안 되게 갈라졌던 폐허의 땅이 조금씩 ‘본모습’을 찾아간다. 비록 생기는 없었지만, 틀은 확실히 만들어지고 있었다.
에이린은 다시 한 번 깊게 웃음을 지으면서 퓨리스에게 소리쳤다.
“대단해, 오라버니!”
퓨리스는 방긋 웃어 주고는 계속해서 작업에 몰두했다. 여전히 그가 지나갈 때마다 ‘꿈’이 조금씩 가까워지고 있었다.

더트퍼리는 바로 오른편에 있는 큐스 소도시보다 ‘땅’ 하나만 우월한 위치에 있다. 거의 두 배쯤 크고, 성벽의 외곽 쪽으로도 땅이 남아 있으니 실로 서너 배는 더 크다고 할 수 있다. 한데도 더트퍼리는 ‘폐허’ 취급을 면치 못했다.
일단 물이 없다. 그래서 땅이 메마르다. 이러면 당연히 풀과 나무도 자랄 수 없다. 결과적으로 땅만 넓었을 뿐이지 효용성은 1퍼센트도 없는 것이다. 더구나 ‘저주’라는 유명한 소문 때문에 발길조차 들이지 않으려는 자가 수두룩해서 자유 영토임에도 더트퍼리는 찾는 자들은 아무도 없었다.
간혹 저주를 무시하고 들어오려는 이가 있기도 있지만, 그들도 발전해서 볼 이득보다 발전하기까지의 손해가 엄청나다고 확신하고 물러섰다. 고로, 더트퍼리는 그야말로 속없이 겉만 번지르르한 곳이었다.
한데 퓨리스는 이런 생각을 한다.
‘일단은 이곳을 소도시만큼 발전시키는 게 목표다.’
성 한 채는 당연한 조건이고, 발전 요소가 될 수 있는 건물이 30개 이상 있어야 한다. 또한, 인구가 3,000명 이상 되어야 하며, 농토와 해양, 군사 중에서 한 가지라도 발전된 것이 있어야 한다.
이것이 소도시의 조건. 고로, 폐허 그 이하의 공간, 더트퍼리를 소도시로 만들겠다는 것은 당장 욕지거리를 먹더라도 하등 이상할 것이 없었다. 하나, 퓨리스의 입가엔 굳은 미소가 박혀 있었다.
‘발전하기까지의 손해는 상관없다. 발전한 직후 그 손해를 뛰어넘을 이득이 생기니까.’
더트퍼리를 포기했던 이들도 훗날의 이득을 생각하지 않을 리 없다. 이만큼의 땅에서 나올 이득이 결코 작을 리는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들에게는 더트퍼리가 발전할 수 있을 거라는 ‘확신’은커녕 중간에 망할 공산이 더 크다고 ‘확신’했다. 이런 이유로 더트퍼리가 100년의 공백을 지켜 왔던 것이고 여태껏 폐허로 남은 것이다.
‘옛 더트퍼리의 마지막 보물… 결코 헛되게 쓰지 않겠어.’
코드라스가 손에 쥐어 주었던 보물들… 더트퍼리의 마지막 보물로서, 이곳을 일으킬 수 있는 ‘희망’이다. 그 보물로 집을 지었고, 소를 샀다. 또한 앞으로도 써야 할 순간이 수없이 찾아온다.
“어이, 퓨리스. 안 오고 뭐하는가?”
“예, 갑니다!”
일 중간에 맞는 달콤한 휴식! 퓨리스는 잠시 더트퍼리에 대해 생각하던 것을 멈추고는 서둘러 농부들에게 다가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