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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계농부 1권 (13화)
06장―본격 작업 (3)
그곳에서는 연신 대화가 끊이지 않았다.
“여기에 물길까지 튼다면 정말 금상첨화겠군.”
“어디 금상첨화뿐이야? 풀과 나무 그리고 꽃까지 자라난다면 지상 낙원이 될 것이야.”
“거기에 아름다운 미녀들까지 모여든다면 완벽한 천국이 되는 것이지!”
농부들은 마지막으로 말을 꺼낸 늙은 노총각 오드를 바라보았다. 그는 분위기에 취해 내뱉은 모양이지만, 다른 이들에게는 그저 처량하게만 느껴졌다. 홀로 지내온 지 반 백 년이 다 되 가는 오드!
“이보게, 오드.”
“응? 무슨 일인가?”
“얼른 장가가게.”
“…….”
사실 꼭 직접적으로 말할 것이 있겠냐마는 이제는 이렇게 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되었다. 강하게 밀어붙여서라도 오드의 총각 신세를 없애 주고 싶었기 때문이다. 어찌 되었든 농부들은 다시 꿈을 향한 대화를 이어 갔다.
“대략 일주일쯤 걸리려나?”
“그럴 겁니다. 더트퍼리의 땅은 방대하니까요.”
“훗.”
“왜 그러십니까?”
“언젠가 이 땅을 바라보면서 후회할 사람들이 생각나서 말이지.”
“후회할 사람들이요?”
베그마는 공허하지만 그 끝을 알 수 없을 정도로 높은 하늘을 올려보면서 계속해서 말을 이어 나갔다.
“이 땅이 지상 최대의 낙원이 되었을 때. 사람들은 당연히 후회하지 않겠어?”
“아아, 더트퍼리를 사지 않은 것을요?”
“그렇지. 뭐 이제 시작인데 무슨 지상 낙원이겠냐고 해도 꿈을 이루기로 했으니 그런 말은 필요 없겠지. 어떤 꿈이든지 제로의 퍼센트를 가진 것은 없으니까. 그러니까 나는 크게 웃을 거야. 이곳이 지상 낙원이 되었을 때.”
코우즈를 비롯한 다른 농부들이 우웩하며 베그마의 멘트에 저질스럽다는 반응을 보였지만, 그것은 겉으로의 내색일 뿐 누구 하나 빠짐없이 베그마의 생각에 동조하고 있었고 모두가 다짐하고 있었다.
그리고 퓨리스도 마찬가지였다.
‘반드시… 이룬다!’
대략 일주일이 흘렀을 때, 더트퍼리에는 말도 안 되는 변화가 일어났다. 심하게 메마르고 갈라졌던 땅이 ‘본모습’을 되찾은 것이었다. 물론 생기가 없어서 완벽한 본모습이라고는 할 수 없었지만 분명히 ‘활기’는 있었다.
특히 농부들은 환호하고 있었다.
“후후, 대단하구만!”
“아름다운 변화야!”
“하루 종일 만세를 부르고 다녀야겠어!”
입가에 지어진 미소가 없어지지가 않았다. 다물려 해도 계속해서 입이 열린다. 지울 수 없는 기쁨!
하나, 농부들은 자신의 기쁨에만 취하지 않았다. 이번 일의 일등 공신은 누가 뭐래도 소들! 녀석들이 아니었으면 아직까지도 곡괭이를 들고 있었을 것이고, 허리 또한 하루가 멀다 하고 쑤셔 왔을 것이다.
“수고했다.”
“너희들 덕이다.”
“고맙다.”
진심으로 고마워하는 사내들! 게으름만 피우던 소들도 오늘만큼은 그들의 손길을 받아 주었다.
음머어!
“오오, 대답하는구만!”
음머어어!
“크흐흐, 오늘은 너희들도 포식하거라!”
기분이 좋아진 농부들은 그 기쁨을 건초로 대신했고, 소들은 밥 때문에 반겨준 게 아니라는 걸 증명하듯 다시 한 번 농부들에게 부비적대는 행동을 보였다.
물론 이렇다 해도 에이린이 없으면 작업이 원활하게 돌아가지 않을 것이다. 하나 서로의 마음이 열렸다는 것으로도 충분히 족하다.
그리고 이 즈음하여 퓨리스는 한창 농부들에게 감사의 인사를 표하고 있었다.
“수고 많으셨습니다.”
“네가 가장 수고했으니 인사를 받아야 하는 건 우리가 아니야.”
“맞아. 고맙워, 퓨리스.”
“내 인사도 받게.”
저마다 고맙다는 인사를 건네는 농부들! 고로 반대의 입장이 되어 퓨리스가 인사를 받는 형국이다.
“어어, 제가 인사를 해야 하는데.”
“사람이 받을 줄도 알아야지!”
“그럼, 그럼!”
호통하듯 소리치는 농부들에게 퓨리스는 멋쩍게 뒷머리를 긁적였고, 그 모습이 우스꽝스러운지 농부들은 웃음을 터뜨린다.
한데 여전히 이들의 곁을 떠나지 않았던 에이린이 한마디한다.
“수고했어!”
“어? 어.”
“힘들지?”
“나야 뭐 괜찮지.”
퓨리스는 에이린의 옆구리를 살짝 찌르면서 조용히 말했다.
“아저씨들께도 인사해야지.”
“아, 맞다.”
그리고는 대뜸 허리를 숙이는 에이린.
“수고하셨습니다!”
“그래, 고맙다.”
“아주 상냥하구나, 에이린.”
농부들은 늦은 인사지만 에이린의 인사를 기쁘게 받아 주었고 에이린은 그런 그들에게 거듭 허리를 숙였다.
“고생 많으셨어요!”
“너도 만만치 않게 고생했지?”
“맞아, 계속 소를 살피고 운용해야 했으니.”
혹시나 말썽을 피우지는 않을까 게으름을 피우지는 않을까 에이린은 항시 대기해야만 했고, 그것은 오늘까지 계속 이어졌다. 고로, 농부들만큼이나 에이린도 바쁘게 뛰어다녔다는 얘기다.
한데 에이린의 표정은 씩씩하기만 했다.
“저야 뭐 따라다니기만 했는걸요. 오라버니랑 아저씨들이 더 고생하셨죠!”
“하하, 뭐 그런가.”
“아무튼 참으로 씩씩해, 에이린은.”
모두가 기분 좋은 상황! 어쨌든 이로써 소를 이용한 땅 갈기는 최종적으로 끝마쳐졌고, 농부들은 슬슬 움직일 기세를 보였다. 빨리 마을로 들어가서 시원한 물 한 잔을 들이키고 싶은 마음이다.
“자, 그럼 돌아가자고!”
“좋지!”
“가자, 소들아!”
에이린이 소까지 운용함으로써 이곳에 있는 모든 이들이 발을 내딛기 시작한다. 그리고 이들의 뒤로 보이는 가지런한 땅! 비록 앙상한 나뭇가지와 뿌리도 보이지 않는 풀과는 확실히 대비가 되었지만, 괜찮았다.
언젠가는 그것들도 이 땅만큼 활기차질 테니.
소를 이용한 땅 갈기를 최종적으로 마치고 나누는 기쁨. 이하 ‘더트퍼리의 축제’. 저번 영주 환영회만큼이나 기쁨과 웃음이 흘러넘쳤다.
저번보다 더 노릇노릇하게 구워지는 바비큐에 더 좋은 내음을 풍기는 술까지!
계속해서 무르익는 분위기 속에 퓨리스는 간단하게 음료를 들이켰다.
“흠… 좋군.”
푸른색을 띠는 이 음료는 맛과 향이 일품이라서 퓨리스가 평소에 자주 찾는 것이었다. 더구나 이게 싼 가격이라서 퓨리스는 더더욱 이 음료를 좋아했다. 한데, 붉어진 얼굴의 베그마가 퓨리스를 찾았다.
“꺼억, 퓨리스! 대단해!”
“하하, 감사합니다.”
“꺼어억, 대단해, 참 대단해!”
“하하!”
저번 축제에서 농부들의 취기는 꽤 당황스러웠지만, 두 번째로 맞이하니 그리 어렵게 느껴지지는 않았다.
물론 했던 말을 되풀이하는 것은 여전히 익숙하지 않았지만.
고로, 퓨리스는 베그마의 얘기를 계속 듣는다.
“내가 말이야 아까 소의 옆구리를 건드렸더니, 아 글쎄 정겹게 ‘음머’ 하는 게 아니겠어?”
“하하, 그랬습니까?”
“그래, 그래! 아 그리고 또…….”
그때 누군가가 목소리가 둘 사이로 파고든다.
“아저씨.”
“으응?”
“저 퓨리스 오라버니랑 할 얘기가 있어서요.”
“꺼어억, 그래? 그럼 내 비켜 줘야지.”
그야말로 도움의 손길! 퓨리스는 고개를 돌려 구원자의 얼굴을 확인했다.
하얀 얼굴의 에이린이 서 있었다.
“히야, 빼 줘서 고맙다.”
“왠지 곤란스러워하던 표정이더라.”
“그랬어?”
에이린은 고개를 끄덕이면서 퓨리스가 들고 있는 잔으로 손을 뻗쳤다.
“이건 뭐예요?”
“되게 맛있는 음료.”
“우아, 나도 마셔 볼래!”
“나를 구해 줬으니 당연히 줘야겠지? 자, 마셔.”
파랗게 흔들리는 음료를 건네받자마자 입을 대는 에이린. 곧 그녀의 입을 타고 잔이 빨려 들어간다.
이윽고 에이린은 바닥을 드러내는 잔을 손에 들고 있었다.
“다 마셔 버렸네.”
“괜찮아, 또 가져오면 되지.”
“내 입에 아직 있는데 넘겨줄까?”
“네 입에 있는 걸 어떻게 넘겨줘?”
“맞추면 되지.”
“맞추다니?”
에이린은 모르냐는 표정으로 에이린의 옆구리를 두어 번 찔렀다.
“이봐요, 아저씨. 모르는 척하지 말라구요.”
“뭐야, 뭔데?”
“정말 몰라?”
“어. 뭔데? 뭘 맞추는데?”
“으… 됐어. 아, 맞다. 근데 오라버닌 왜 술을 안 마셔?”
퓨리스는 연신 술을 들이키는 농부들을 슬쩍 바라보고서 다시 에이린을 쳐다보며 입을 열었다.
“나는 무인이잖아.”
“아아, 그렇지. 근데 딱 한 번도 먹은 적이 없어?”
“음… 딱 한 번 있기는 하다.”
“진짜? 언젠데?”
“사부님을 사부님으로 모시게 되었을 때, 축하주의 의미로 마셨지.”
“우아, 사부님을 사부님으로 모신다니, 멋진 말이다.”
“그게 멋진 말인가? 아무튼 그날 죽도록 맞았지만.”
“죽도록 맞아? 왜?”
“무인이 될 놈이 왜 술을 마시냐고.”
“무인의 세계에서는 축하의 의미로도 술을 먹으면 안 되는구나.”
퓨리스가 고개를 저으면서 답했다.
“꼭 그렇지만은 않아. 다른 사제들은 술을 먹기도 하거든.”
“오라버니 사부님이 특이했나 보다.”
“그런가? 뭐, 그래도 계속 입에 안대니까 나중에는 마시고 싶은 생각이 없어지더라.”
에이린은 뭔가 알았다는 듯이 말했다.
“뭐야, 그 말은 한 번 마셨다는 게 아니란 거잖아?”
“어, 어?”
“거짓말쟁이. 오라버니 술꾼이었지?”
“아, 아니야!”
“그러면서 한 번 마셨는데 왜 계속 입에 안 댔다고 했을까아?”
“그, 그야! 좀 마시기는 했지.”
“거봐. 그래도 그때 화전민 마을에 보여 준 무위를 생각하면 많이는 안 마셨나 보네.”
“쳇, 아까는 술꾼이라고 했으면서.”
“어머, 오라버니 삐치셨어요?”
“아주 오라버닐 가지고 노는구나.”
“그럼. 오라버닌 너무 귀여운 걸.”
퓨리스의 양 볼에 손바닥을 올리고는 이마에 입술을 붙여 버리는 에이린. 신장이 차이 나는 탓에 뒤꿈치를 들어야 했지만 그렇게 힘든 행동은 아니었다. 어쨌든 이러면서 그녀의 입술이 조그맣게 벌어진다.
“메롱, 잡아 봐라.”
“너어!”
시끄럽지만 활기찬 축제의 분위기 속에 두 남녀가 달리기 시작한다. 이들은 무엇을 쫓고 있는 것 같기도 하다.
젊은 남녀의 활기라면 활기가 될 것이고, 애틋함이라면 애틋함이 될 것이다.
술에 취한 어떤 남자가 조용히 내뱉는다.
‘뭔가 피어나려는 기미구만.’
아무리 축제의 여파가 컸다 하더라도 농부 회의는 미뤄지지 않았다. 즉, 축제 때문에 늦은 새벽에 잠들었더라도 그 날 예정되어 있는 농부 회의가 정오가 넘어 열리는 것은 아니라는 얘기다.
하나, 아주 약간 늦는 것은 애교로 봐 줘야 할 것이다.
“하하, 늦었구만.”
“하하.”
“늦잠을 잤더라지요.”
저마다 미안한 기색으로 깅스턴에게 인사했고, 깅스턴은 괜찮다는 듯 손을 내저었다. 사실 그도 간신히 회의 시간에 맞춰 들어온지라 이들과 그리 다를 바 없었기 때문이다. 어쨌든 어느 샌가 공간이 가득 찬다.
깅스턴이 기분 좋은 표정으로 첫마디를 꺼냈다.
“우리는 어제부로 쟁기질을 모두 끝냈네.”
“예, 아직도 기쁨이 가시지 않습니다.”
“심장이 두근거립니다.”
“갈린 땅을 볼 때마다 제 마음이 뻥 뚫린 느낌입니다.”
전날의 여흥은 모두 떨쳐 버린 듯 기쁘게 대답하는 농부들.
퓨리스도 이에 동조하며 입을 열었다.
“예, 참으로 기분 좋은 일입니다.”
“마을 사람들도 모두 기뻐하고 있네. 너무 놀라운 변화였던 게지.”
“좋게 되어 너무나 다행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