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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계농부 1권 (16화)
08장―칸 제작소 (2)
“대체 왜 손님이 오지 않았습니까? 큐스에 제작소는 이곳 하나라 했습니다.”
“간단한 이유야.”
“…….”
노인은 이것저것 물건들을 가리키면서 말을 이었다.
“대개 물건은 한 번 사면 몇 년, 몇 십 년은 쓰게 마련이지.”
“…….”
“아무리 의자나 생활물품을 만든다 하더라도 딱 한 번일 뿐이야. 말했듯이 그런 물건은 오랫동안 쓸 수 있거든. 이를테면 이곳에 있는 사람들이 모두 필요한 물건을 가졌으니, 더 이상 손님이 오지 않는다는 것이지.”
퓨리스는 노인의 설명을 듣고도 이해할 수가 없었다.
“중간에 부셔지거나 해서 수리할 수도 있지 않겠습니까?”
“그게 말이야… 내가 만든 물건은 부셔지는 일이 없거든.”
“…….”
“잘난 척이 아니라 이상하리만치 안 부셔져.”
“놀랍군요.”
“삼 년 전에 찾아온 손님이 그런 얘길 하더군. 이십 년 전에 왔던 사람이라고.”
기다란 정적. 노인은 이러한 분위기가 지속되는 것이 싫었는지 멀뚱히 앉아 있는 퓨리스를 향해 물었다.
“그래, 무엇을 만들고자 왔는가?”
“아, 기다란 통로입니다만…….”
“기다란 통로?”
“예, 원형으로 된 기다란 것이요.”
“알겠네. 내 마지막 피날래는 멋지게 장식해 봄세.”
퓨리스는 고개를 갸웃거리며 노인의 말에 의문을 느꼈다.
“마지막 피날래라니요?”
“사실 며칠 내로 문을 닫을 생각이었지. 지켜야 할 가족이 있는 것은 아니지만, 이렇게 있든 것보다는 나을 것 같아서 말이야. 뭐 변두리 위치이긴 하지만 이곳을 팔면 꽤 돈이 나올 테지.”
“저 그렇다면 어르신.”
왜 그러느냐는 노인의 눈빛에 퓨리스의 말이 이어졌다.
“혹 저희 마을에서 제작자를 해 보시지 않겠습니까?”
“…….”
“거래와 생활 걱정은 안 하셔도 됩니다. 그냥 작업만 하시면 됩니다.”
“…….”
노인은 한참 동안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그리고 돌연 호탕하게 웃는다.
“허허… 재밌는 농담이로구만.”
“농담이 아닙니다.”
“세상에 그리 좋은 조건이 어디 있나? 일을 안 해도 내가 하고 싶은 걸 할 수 있는 게.”
“어르신께서 물건을 만드는 게 저희에겐 일입니다.”
“…….”
“진담입니다. 생각해 주십시오.”
퓨리스의 표정에는 농담이 섞인 기색이 하나도 없었다. 오히려 너무나 단호해서 움츠려질 지경이다.
노인의 표정에 점차 밝은 빛이 드리운다.
“정말인가?”
“예.”
“허어… 늙어서 천운이 들어온 겐가.”
“천운은 오히려 제가 받았지요. 어르신 같은 제작자를 얻은 게 어디입니까?”
“허허… 몇 가지 궁금한 것을 물어도 되겠는가?”
“예.”
어두운 공간 속에 노인의 눈이 유유히 빛난다. 그의 표정에는 이미 퓨리스를 신용하는 기색이 역력했다.
“그 마을이 어디인가?”
“더트퍼리입니다.”
“더트퍼리?”
“예.”
리페어가 허탈하게 웃음을 터뜨린다.
“허, 허허… 그저 소문이라고만 믿으려 했거늘…….”
“…….”
“그러니까, 자네가 나를 제작자로 데려가는 곳이 더트퍼리란 말이지?”
“예, 그렇습니다.”
돌연 리페어의 표정이 바뀐다. 놀랍고 믿을 수 없다는 기색은 온데간데 사라졌고, 진중한 표정만 보였다.
“자네, 내 나이가 몇인 줄 아는가?”
“잘 모르겠습니다.”
삐죽삐죽하게 자란 흰 머리와 기다란 흰 수염. 언뜻 이것으로만 판단하면 리페어가 지극한 노인일 것이라 생각할 법했지만, 머리와 수염을 제외한 외관이 젊은 사내 못지않게 다부져서 쉽게 판단하기 어려웠다.
“올해로 백일곱이 되지.”
“예?”
퓨리스는 동그래진 눈으로 리페어를 찬찬히 쳐다보았다. 앞서 말했듯 체격이 좋아서 오히려 보통의 노인보다 젊을 수도 있겠다 생각했다. 한데, 백 년하고도 칠 년을 더 살았다고 한다. 그야말로 상식을 뛰어넘는 답변.
하나 이 다음의 말은 퓨리스를 더 당황스럽게 만들었다.
“그리고 100년 전의 더트퍼리에 놀러갔던 적이 있었지.”
“…….”
이 사실을 알고 있는 사람은 없다고 생각했다. 코드라스도 그렇게 말해서 퓨리스는 확신하고 있었다. 한데, 그 확신이 산산조각 나 버렸다. 그리고 이제야 리페어가 자신의 나이를 언급한 이유를 알 수 있었다.
그런데 먼저 공간의 정적을 가른 인물은 리페어였다.
“한 가지만 묻겠네.”
“…….”
“자네, 정체가 뭔가?”
***
리페어는 여느 날처럼 이것저것 도구를 만지고 있었다. 물론 도구 아래로는 철, 못, 등을 비롯한 여러 제작재료들이 있었고, 그의 손이 움직일 때마다 무언가가 완성되려는 기미를 보였다.
행복해 보이는 그의 모습. 하나 그것은 외관 상일뿐, 내면 상으로는 그렇지 못했다.
“후우.”
일을 하는 게 즐겁다. 일을 하고 싶다. 일을 하지 않으면 안 된다. 이런 리페어에게 며칠 후부터 제작 일을 할 수 없다는 것은 그야말로 지옥의 벌과 다를 게 없었다. 하나 어쩌랴. 손님이 없는 이유 하나로 더 이상 제작소를 운영하기 힘들다.
그의 한숨이 다시 한 번 터져 나온다.
“후.”
이런 상황에서도 그의 도구가 끈임 없이 움직이는 것을 보면 그가 얼마나 이 일에 열정과 땀, 그리고 꿈을 가지고 있는지 알 만했지만, 말했듯 당장 내일이라도 문을 닫을 위기였기에 그리 좋은 부분이 되지 못했다.
“햇빛이라도 쬐야겠구만.”
어두운 공간 속에서 오랫동안 제작을 하려니 눈이 침침한 느낌이 든다. 이럴 때는 잠깐 밖으로 나가는 것도 나쁘지 않다.
후미진 골목이었지만, 거니는 사람은 있었다.
“그 소식 들었어?”
“무슨 소식?”
“이번엔 소 서른 마리가 갔대.”
“서른 마리나?”
“어, 대체 무슨 일을 하려는 걸까.”
현재 소의 위치는 리페어도 알고 있었다. ‘쓸모’가 없어서 관심과 미움을 받는 가축. 말보다 느리며, 돼지보다 맛이 없다. 덩치만 컸지 매우 게으르다. 거기에 지독히도 말을 듣지 않아서 다루기도 힘들다.
한데, 그런 소가 서른 마리나 이동되었다는 것은 참으로 놀라운 사실이었다.
리페어의 입술이 딱 벌어진다.
‘소가 서른 마리나 움직여?’
일단은 귀를 기울여 보기로 했다. 이것저것 생각하기보다는 사내들의 대화에 집중하는 게 더 나을 것이기 때문이다.
“거기에 소가 간 곳이 더트퍼리란 말이잖아?”
“그렇지. 이거, 뭐… 듣고도 믿을 수 없는 사실이지.”
“허… 맞아, 그리고 곡물도 사 갔다지?”
“이주민이 왔다고 했었나. 여하튼 곡물도 사 갔지.”
분명히 멀쩡한 사내들이었다. 또한 허튼 소리를 내뱉을 위인들로는 보이지 않았다. 분명히 멀쩡한 이들이었다.
하나 그들의 입에서 나오는 말을 도무지 믿을 수 없다.
더 이상 거론되지 않을 거라 생각했던 그 땅, 더트퍼리. 리페어는 한 걸음에 사내들의 지척까지 다가갔다.
“그게 사실인가?”
“예?”
“방금 자네들이 한 말들.”
“예? 아, 아, 사, 사실입니다.”
리페어의 표정이 워낙 굳어 있었던 지라 사내 중 하나가 머뭇거리듯이 답했다.
“허, 거 참.”
“…….”
“그래, 주동자가 누구라 하던가?”
“그건 저희도 잘…….”
“그럼 더트퍼리에서 일어나는 일이 또 무어 있는가?”
“집을 지었더랍니다.”
“집? 몇 채나?”
“100채쯤 지은 모양입니다. 거기에 이주민이 살고 있고요.”
도무지 믿을 수가 없었다. 한 채, 두 채도 아니고 무려 백 채다. 도시권에서는 충분히 일어날 수 있는 일이지만 폐허나 다름없는 곳에서 그만큼의 건물이 지어졌다고 하니 머리가 아플 지경이다.
이후 리페어는 사내들에게 이주민에 대한 질문을 더 던졌지만 거기까지는 모르는 모양이었다.
떠나는 사내들을 뒤로하고 리페어는 고개를 흔들었다.
‘소문으로만 생각하자… 소문으로만…….’
소문으로 하자고 다짐을 했던 게 불과 이틀 전의 일. 여전히 소문이라고 믿고 싶었지만, 눈앞의 사내가 있는 이상 더 이상 그럴 순 없었다.
리페어는 짐작할 수 없는 표정으로 퓨리스를 쳐다보았다.
“말해줄 수 있겠나? 자네에 대해?”
“예.”
“거 의외구만. 이렇게 쉽게 대답할 줄은 몰랐어.”
퓨리스는 어느새 평온해진 얼굴로 이어 답했다.
“더트퍼리에 대해 알고 있는 사람에게 굳이 저를 숨길 이유가 없지요.”
“호, 그런가.”
“퓨리스라고 합니다. 어르신의 존함도 들을 수 있는지요?”
상황은 고요했지만 사실 이 상황은 매우 심각한 상황이다. 현재의 더트퍼리가 아닌, 100년 전의 더트퍼리에 대해 얘기를 나누는 것은 법적으로 금지되어 있다. 그러니까 그때의 상황을 함부로 발설했다가는 중형을 면치 못하는 것이다. 물론 그 상황을 알고 있는 이는 이제 아무도 없어서 그 법이 아직도 남아 있을지 의문이지만.
한데 리페어의 얼굴에는 심각함도, 그렇다고 여유도 없었다.
반낙관적으로 상황을 ‘즐기고’ 있었다.
“나는 리페어라고 하네.”
“반갑습니다, 어르신.”
“나 역시 반갑네.”
순간적으로 화기애애해진 분위기 속에 퓨리스가 의문을 보였다.
“저에 대해 말하기 앞서 한 가지 물어도 되겠습니까?”
“무엇인가?”
“더트퍼리로 가실 것입니까?”
단숨에 파악되는 의도. 퓨리스는 자신의 말을 들었을 때 혹시 리페어가 가지 않을 수도 있겠다 싶은 모양이었다.
리페어는 그런 걱정을 단 번에 없애주었다.
“걱정 말게. 내가 이 대화를 시작한 이상 죽을 각오는 되어 있었으니까.”
“…….”
“자네도 알고 있겠지? 100년 전의 더트퍼리에 대해 얘기하는 것은 참형이라는 것을.”
“죄송합니다.”
“아니야. 오히려 고맙네. 이대로 죽을 뻔한 노인네에게 행복을 주었으니. 자, 그럼 얘기해 주겠는가? 궁금한 게 한두 개가 아니야. 삼 일 밤낮을 새더라도 다 물어볼 테니 단단히 각오하게.”
“하… 하하, 예.”
아직도 믿지 못하겠다. 퓨리스도 리페어만큼 이 상황에 놀라움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군사를 피해 덩키 산맥으로 도망쳤던 옛 더트퍼리의 사람들도 이제는 모두 세상을 떠났다. 그 후손들만이 남아 있을 뿐이다.
한데, 그때의 더트퍼리에 있었던 사람이 아직 남아 있다. 이렇게 가까운 곳에.
***
이따금 도시 안에서 진풍경이 벌어지곤 한다. 귀족들의 행렬이나, 말 수 십 필이 한 번에 움직이는 그런 것 말이다.
하나, 그런 일도 ‘이따금’ 벌어지면 괜찮은데, ‘과’하면 지나친 관심을 불러일으킨다.
특히 큐스 소도시의 이번 경우가 그런 경우였다.
더트퍼리에 지어지는 100채의 집. 서른 마리 소 떼의 행렬. 쌀 30가마의 위엄.
이쯤 되면 당연히 영주의 귀에도 그런 소식이 들어갈 수밖에 없다.
“호오… 그런 일이 일어난다는 말이지?”
“예, 여기저기서 말이 많습니다.”
“아무튼 그 일이 더트퍼리에서 일어나는 거 아니냐?”
“예. 그렇습니다.”
“그럼, 집어치워라.”
“예?”
“대륙을 통틀어 최고로 보잘것없는 땅이다. 거기서 무얼 하든 상관할 필요가 없어.”
“하오나…….”
“됐다. 이만 나가 보아라.”
“예.”
큐스의 영주, 스케일은 진작부터 저러한 사실을 알고 있었다. 집을 100채나 짓는 대규모의 거래를 영주가 모를 리가 있겠는가? 하나, 알면서도 묵인했다. 방금 말한 것처럼 상관할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고로, 이번 일은 스케일에게 있어 ‘미친 일’이 된다.
‘훗, 저주나 받아 저승이나 가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