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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계농부 1권 (17화)
08장―칸 제작소 (3)
“혹, 큐스 소도시와 오로소 단지의 사이에 있는 롬숄 강을 아십니까?”
“롬숄 강? 아, 거야 물론 알지.”
리페어는 본격적으로 제작 주문이 시작되던 참에 롬숄 강에 대해 말을 꺼내는 퓨리스에게 고개를 끄덕였다.
퓨리스는 그 모습을 확인하고 이어 말했다.
“그 강물을 농업용수로 쓰고자 합니다.”
“농업용수?”
“예.”
그리 놀라운 일은 아니었다. 농업이 주된 일인 오로소 단지에서는 줄곧 롬숄 강의 물을 농업용수로 써 왔기 때문이다. 한데, 리페어의 고개가 갸웃거려졌다. 퓨리스가 사는 곳은 더트퍼리가 아닌가?
“허허허, 자네 롬숄 강의 물을 더트퍼리까지 끌어 쓸 생각인가?”
“예, 그렇습니다.”
“일단은 말하지. 현실적으로는 불가능한 일이야.”
리페어는 자신의 생각에 확신을 가졌다. 더트퍼리와 오로소 단지의 거리 차는 엄청나다. 차라리 큐스라면 모를까 더트퍼리까지 물을 잇는다는 것은 그야말로 어불성설인 셈이었다. 한데, 퓨리스의 표정이 밝다.
“어르신은 분명 어릴 적 물을 마셨을 것입니다.”
“그… 랬을 테지.”
“그게 롬숄 강의 물입니다.”
“에? 정말인가?”
“예. 고로, 더트퍼리와 롬숄 강의 사이에 수로가 뚫려 있다는 말이지요.”
“하지만 왜 지금은 흐르지 않고 있는 것이지?”
이 부분 역시 퓨리스는 막힘없이 대답할 수 있었는데, 이미 코드라스로부터 들은 내용이기 때문이다.
“코드라스 님께서 수로 입구를 막아 버렸다고 하더군요.”
“허…….”
입구를 막아 버리니 자연스레 수로는 묻히고, 그것은 더트퍼리에서 물을 볼 수 없게 만들었다.
하나 퓨리스의 얼굴은 밝기만 했다.
“아마 입구만 개봉한다면 문제가 쉽게 해결될 듯합니다.”
“오랫동안 묻혀 있었던 수로가 제 일을 할까?”
“코드라스 님께서 최초에 그 수로를 뚫을 적에 1,000년도 끄떡없게 설계하셨다더군요.”
“호오, 그것 참 다행이로군. 아, 한데 말이야.”
“예.”
리페어는 맨 처음 퓨리스가 원형 통로의 제작을 주문했던 것을 떠올렸다.
“나에게 원형 통로의 제작을 부탁하지 않았던가?”
“아아, 그것은 더트퍼리의 농지에 물을 댈 때에 쓸 생각입니다.”
“그랬군. 그럼, 일어서지.”
“예.”
이제부터 ‘이곳’에서의 마지막 제작이 시작된다. 의뢰는 롬숄 강에서 더트퍼리로 이어지는 수로를 뚫고, 그 뚫린 물을 농지에 댈 통로를 만드는 것. 은 일단 퓨리스를 놔두고 밖으로 걸어 나갔다.
“여기서 좀 기다리게. 건물상회에 건물을 올려놓고 올 테니.”
“아, 알겠습니다.”
많이 정들었다. 땀과 열정이 섞여 있다. 정겨운 냄새가 난다. 이곳이 집이요, 삶이다. 반 백 년이 넘게 함께했던 제작소. 하나 이런 제작소가 오늘로서 막을 내리려 한다. 물론 통로를 만드는 작업을 하는 동안은 제작소로 남아 있겠지만, 그것은 지금까지의 생활에 비하면 새 발의 피도 되지 못했다.
그런데 건물상회로 향하는 의 발걸음이 이상하리만치 가볍다.
‘또 다른 곳에서 꿈을 펼칠 테니 후회는 없다.’
***
큐스 소도시와 그 아래에 위치한 오로소 단지의 사이에는 기다란 강이 하나 있는데, 그 강의 이름이 바로 롬숄이다. 이 근방에서는 제일 길고 큰 강으로 많은 사람들이 찾기로 유명했다.
“어제의 꿈자리가 좋아, 오늘은 월척이 걸릴 듯하네.”
“어림없는 소리. 월척은 내 것이야.”
“하, 좋아. 어디 내기라도 해 볼 텐가?”
“좋지. 무엇을 걸 텐가?”
“나는…….”
롬숄 강은 꽤 많은 사람들로 북적거리고 있었는데, 그들 모두가 한 가지 목적을 가지고 이곳을 찾았다.
낚시! 누군가가 무엇을 낚았다.
“오오, 아이엔지!”
“아이엔지?”
아이엔지는 대개 관상용으로 쓰이지만, ‘보양’으로도 일품인 물고기다. 월척이라고 해도 하등 이상할 것이 없는 물고기.
“이것도 좀 보게! 나는 비유엔지가 걸렸어!”
“비유엔지까지!”
비유엔지는 아이엔지와 비슷한 생김새지만, 그 크기가 작았다. 하나 워낙 대중적이고 많이 좋은 탓에 많은 사람들이 좋아하는 물고기였다. 월척까지는 아니더라도 충분히 손맛을 느낄 수 있었다.
한데, 이런 분위기를 뚫고 두 인영이 나타난다.
나무 그늘에 의해 모습이 가려진 그들은 조용히 대화를 나누었다.
“흠… 거리가 상당합니다.”
“대단할 따름이야. 그 거리만큼 수로를 이었다니.”
“어찌 되었든 찾아보지요.”
“알았네.”
두 인영의 정체는 퓨리스와 리페어. 롬숄 강과 더트퍼리를 잇는 수로의 입구를 개봉하고자 이곳을 찾았다.
낚시꾼들은 이들에게 관심을 보였다.
낚시라는 게 일단 낚시대를 던져 놓으면 그리 할 일이 없기 때문이다.
“무슨 일로 온 것이지?”
“뭘 찾는다고 하더군.”
“여기서? 여기서 찾을 게 뭐가 있어?”
“모르겠어. 아무튼 재밌는 일은 아닌 것 같으니 다른 얘기나 하자고.”
하나 곧 식어 버리는 관심. 흥미가 생길 만한 일이 아닌 것 같아서 자연스레 낚시꾼들의 시선이 거두어졌다.
이 와중에도 퓨리스는 수로의 입구를 찾고자 노력하고 있었다.
“허, 이거 쉽지만은 않군요.”
“코드라스 님께서도 잘 모르시지?”
“예, 이 부근이라고는 하셨는데 정확한 위치는 역시 알기 어렵지요.”
“흐음, 그래도 계속 찾아보지.”
“예.”
코드라스는 수로를 만들 적에 작업에 직접 참여했지만 그도 수로의 입구가 어딘지는 정확히 모르고 있었다.
시간도 많이 흘렀고 또 주변 환경이 변했기 때문이다.
퓨리스는 쉴 새 없이 눈알을 굴렸다.
“한데, 강이 참 맑습니다. 눈부신 호수를 보는 것 같습니다.”
“롬숄 강이 깨끗하기로 좀 유명하긴 하지.”
“되레 농업용수로 쓰기 아깝다 느껴질 정도입니다.”
“하하!”
롬숄 강의 물은 정말 맑았다. 가장 깨끗한 물은 바로 그 자리에서 먹을 수 있는 것이라고 하는데 롬숄 강은 그 이상이었다. 얼굴을 가까이 가면 마치 거울처럼 비춰졌고, 햇빛이 비추면 심하게 반짝거렸다.
마치 세계 최고의 보석을 보는 느낌!
퓨리스는 이러한 물을 농업용수로 쓰는 쌀의 맛은 더 좋을 것이라 생각했다.
***
오로소 단지는 도시가 아닌 ‘단지’에 속하는 곳답게 주거가 많이 밀집되어 있었다. 건축소 대신 농토가 있고, 성곽 대신 풀숲이 쳐있는 그런 곳. 결론 적으로는 조용하고 평화로운 감성을 느끼게 해 주었다.
한데, 어두운 월야. 풍성한 흰수염의 노인과 평범한 남자가 이곳에 들어선다.
순간적으로 비추는 달빛. 두 사람의 정체는 리페어와 퓨리스였다.
“늦은 밤인데도 평화로운 느낌이 드는군요.”
“단지라는 곳이 원래 좀 그렇지.”
“나중에 마실을 나와도 좋을 듯합니다.”
“거, 좋지.”
두 사람이 이곳을 찾은 이유는 여태까지 수로의 입구를 찾지 못한 까닭이었다. 원래는 반나절 정도만 돌아다니면 찾을 수 있을 거라 생각했는데, 찾기는커녕 두 다리만 욱신욱신할 뿐이었다.
어찌 되었든 퓨리스는 널찍이 사방을 훑었다.
“일단 여관으로 가야겠습니다.”
“서두르는 게 좋을 것 같군. 단지다 보니 빨리 문을 닫는 여관이 많을 거야.”
“예.”
대개 여관은 아무리 늦은 밤이라도 문을 열어 놓지만 ‘단지’에 한해서는 그 얘기가 달라진다. 타 지역에서 오는 사람들이 적어서 애초부터 여관을 이용하는 사람이 적은 까닭이다. 고로 두 사람은 서둘러 발걸음을 뗀다.
휘이이잉―
서늘한 바람이 공간을 가르고 ‘여관’이라고 쓰여 진 푯말이 흔들렸을 때 퓨리스와 리페어의 발걸음이 멈춘다.
“여기로 들어가면 되겠습니다.”
“그러지.”
퓨리스는 조심스럽게 여관 문을 열었다. 큐스의 여관에 비하면 낡고 허름했지만 정감이 느껴지는 곳이었다.
이윽고 드러나는 내부의 풍경. 식탁 여러 개와 앉아 있는 사람이 보인다.
“식당 구비 여관인 것일까요?”
“그런 모양이야.”
말하기가 무섭게 배가 툭 튀어나온 털보 사내가 양손을 닦으면서 다가왔다.
“아, 무슨 일로 오셨습니까?”
“숙박을 할까 합니다.”
주인장은 퓨리스의 말에 옆에 서 있는 을 바라보았다.
“동행자분도 같이 묶으시겠습니까?”
“예.”
“마침 2인실이 하나 남아 있던 참인데 잘되었군요. 며칠 묵으시겠습니까?”
“하루 이틀 정도. 사정에 따라 달라질 수 있는데 괜찮습니까?”
“괜찮습니다. 하나 한 가지 숙지하셔야 할 것은 그날 숙박료를 내더라도 다음 날로 넘어가는 시각에 조금이라도 머물러 계신다면 숙박료를 한 번 더 내셔야 합니다. 이 부분은 좋게 생각해 주셨으면 합니다.”
손님의 입장에서는 나쁜 조건이었으나 퓨리스는 이 부분에 별로 반감을 가지지 않았다. 사실 주인장으로서도 다음 손님을 받아야 하는데, 미리 들어왔던 손님들이 자리에 남아 시간을 지체하는 것은 좋지 않기 때문이다.
퓨리스의 고개가 끄덕여지고 다시 주인장의 말이 이어졌다.
“하루 숙박비는 8천 우옴이며, 일수를 추가하시려거든 당일 밤까지는 귀뜸을 주십시오.”
“알겠습니다.”
주인장은 퓨리스에게서 돈을 건네받고서 물었다.
“저녁을 준비할까요?”
“좋지요.”
“예, 위층에 방이 마련되어 있으니 짐 정리하고 오시면 준비가 되어 있을 겁니다.”
그렇게 주인장은 음식을 만들러 가고 퓨리스와 리페어는 계단을 따라 위층으로 올라갔다. 일층의 식당과는 사뭇 다른 풍경이 펼쳐진다.
기다랗게 늘어선 복도. 좌우로 문이 하나씩 달려 있다.
드르륵.
열쇠에 쓰여 진 ‘110’이라는 번호를 쫓아 당긴 문고리였다. 낡은 문소리가 도시의 세련된 여관과는 반대되는 모습을 보였지만 여기에는 정겨움이 있었다. 세련됨에 쫓아올 수 없는 미지의 세계랄까.
“안락한데요?”
“굳이 좋은 물건이 없어도 이런 환경을 만들 수 있다는 걸 증명하는군.”
내부에 있는 것은 작은 탁자에 침대 그리고 화분 두어 개에 커튼이 달려 있는 창문이 전부였다. 한데도 내부에서 불편하다거나 하는 느낌은 하나도 받지 못했는데, 그것은 주위를 맴도는 안락함 때문이었다.
뭔가 구체적으로 설명하기는 뭐하지만 어찌 되었든 방이 매우 마음에 들었다.
저녁을 먹고 두 사람은 다시 방으로 올라왔다. 여전히 삐걱거리는 문은 귀를 간지럽게 하지만 이마저 정겹게만 느껴졌다.
“후우, 이것 참 곤란하게 되었습니다.”
“그러게 말이야.”
“이거 이러다 아예 못 찾는 건 아닐까 싶습니다.”
퓨리스의 걱정은 실상 당연했다. 아무리 물속에 잠긴 입구라 해도 어느 정도 위치를 알고 있어서 빨리 찾을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한데 입구의 입자도 찾지 못한 상황에서 해까지 저물어 버렸다.
최대한 빠르게 찾아야 하는 일은 아니더라도 여전한 고민거리임에 분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