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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계농부 1권 (21화)
10장―귀족 회의 (2)
“안녕하십니까, 스케일 남작님.”
“아, 반갑네들.”
일체하여 허리를 숙이는 서신병들의 태도는 매우 바랐다. 별 다른 행동을 하지 않았음에도 그들이 매우 예의범절에 밝다는 느낌을 받았다.
선두에 서서 입을 열었던 서신병이 말을 이었다.
“서신은 잘 읽어 보셨습니까?”
“보다시피 두 번 반복해서 읽었지.”
“하하, 그러셨지요. 어떻게 바로 결정을 내리시겠습니까? 아, 물론, 아직 시한이 많이 남았음으로 며칠 간격을 두고 답을 주셔도 괜찮습니다.”
세상사, 튕기는 것은 불변이라 하나 스케일에게는 그런 마음이 없었다. 얼마나 소망했고, 얼마나 간절히 원했던 일이던가? 입술을 열지 않을 생각이란 추호도 없었다. 지금 당장 즉각 입술을 열 것이다.
“참석할 생각이네.”
“감사합니다. 그럼, 닷새 후 다시 찾아뵙겠습니다.”
“조금 있다 가지 않고?”
“하하, 아닙니다. 국왕께 한시라도 빨리 소식을 알려드려야지요.”
“그렇구만.”
서신병들은 떠나려는 움직임을 보였다. 그런데 그 순간 스케일의 머릿속을 스쳐 지나가는 생각이 있었다.
처음이다. 귀족 회의에 참석하려고 갖은 수는 써 보았지만, 정작 귀족 회의에 대해서는 자세히 알지 못한다. 귀족 회의에 어떻게 참석할지는 생각했어도 막상 참석했을 때의 상황은 생각하지 않은 것이다.
스케일은 약간은 떠듬거리면서 중앙의 서신병을 쳐다보았다.
“시녀를 열 명 정도 동행하려 하는데 어찌 생각하는가?”
“그 정도면 좋을 듯싶습니다.”
“알겠네.”
스케일은 서신병의 대답에 고개를 끄덕이면서도 한편으로는 다른 생각을 하고 있었다. 혹시 백작급의 귀족보다 시녀를 많이 데리고 가는 거라면 문제가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안전하게 가기 위해 스케일은 다시 한 번 질문을 던졌다.
“보통 몇 정도의 시녀를 데리고 오지?”
“대개 열댓 명을 데리고 옵니다. 이런 말씀을 드려도 될지는 모르겠지만, 너무 많이 데려오는 것은 상위의 귀족에게 오히려 눈초리를 받는다고도 합니다. 때문에 백작 아래의 분들은 모두가 스물을 넘지 않는 시녀와 동행합니다.”
“그렇구만.”
스케일은 전혀 기분이 나쁘지 않았다. 오히려 시원하게 답변해 준 서신병에게 고마웠다. 귀족 회의에 참가하는 주된 목적이 무엇인가? 바로 상위 귀족의 눈에 띄기 위함이다. 보다 도시를 발전시키고, 도시의 단계를 높이는 방법으로는 이만한 게 없다. 대형 도시의 영주는 투자의 가치가 있다고 생각하면 바로 엄청나 지원해 주기 때문이다.
상위 귀족들은 사람보다 도시의 미래를 본다. 하지만 이것은 빈도가 높을 뿐이지 미운털이 박혀 버리면 투자는커녕 오히려 피해만 입을 수 있었다. 때문에 백작 이하의 여러 귀족들이 시녀를 많이 대동하지 않았다.
스케일은 개인적으로 궁금했던 하나만 더 확인하기 위해 마지막으로 서신병을 쳐다보았다.
“삼 후작님들은 어느 정도인가?”
“대동하는 시녀 말입니까?”
“그래.”
서신병은 여전히 굳건한 표정으로 예의를 갖춰 대답했다.
“대략 오백 정도 대동하십니다.”
“오백……?”
“예. 그게 원래는 다들 백 정도만 동행하셨습니다. 한데, 마우전트 후작님께서 근래 비약적인 발전을 한 포르텡을 표현할 길은 시녀의 수를 늘리는 것이라며 저저번 회의부터 시녀를 대폭 늘려서 참석하셨는데, 즈비라 후작님과 샤라 후작님도 질 수 없으셨는지 똑같이 시녀를 대동하셨습니다.”
“하하, 그렇구만.”
웃는 게 웃는 게 아니었다. 사실 스케일의 내성에 존재하는 시녀는 오십이 될까말까였다. 한데, 그 열 배인 오백의 시녀를 대동한다는 삼 후작에 대해 스케일은 사뭇 놀랍다는 생각을 했다.
“그럼, 가 보게나.”
“예, 곧 다시 찾아뵙겠습니다.”
서신병들은 포탈을 이용해 빠르게 존재를 감췄고, 스케일은 한껏 미소를 띠고 일주일 후의 귀족 회의에 대해 생각하기 시작했다.
***
벨스로크 왕국의 수도, 휄븐. 이곳은 수도임에도 면적이 작다. 물론 여타의 도시보다는 확실히 크지만 벨스로크를 대표하는 삼 후작의 영지보다는 분명히 작았다. 하지만 누구도 휄븐을 무시하지 않는다. ‘수도’이기 때문이다. 크기는 작지만 초호화스럽고, 인구 수도 적지만 시끌시끌하다는 표현이 어울린다.
휄븐에 들어서면 그 누구를 막론하고 나타나는 행동이 있다. 저절로 입이 벌어진다. 지금까지의 그 어떤 순간보다 두 눈이 부릅떠진다. 믿을 수 없는 기색으로 주위를 훑는다. 이것은 휄븐은 몇 번 경험했던 사람이라도 피해갈 수 없었다.
너무나 반짝거리고, 너무나 웅장하다. 아마 휄븐인과 삼 후작을 제외하고는 아직 휄븐에 익숙해진 사람은 없을 것이다.
“한 번 들어가 보고 싶군.”
“그러게 말이야.”
“뭐, 헛된 꿈은 꾸지 않는 게 좋지.”
휄븐의 거리를 거닐던 ‘평범한’ 사내 둘이 나누는 대화. 한 가지 짚고 넘어갈 것은 휄븐에서의 평범한 사람은 삼 후작의 도시를 제외한 곳에서 상인 이상의 대우를 받을 수 있다는 것을 명심해야 한다.
어찌 되었든 사내 둘은 ‘자국 최고의 건물’을 쳐다보며 대화를 나누던 중이었다.
왕성! 말 그대로 왕이 살고 있는 곳으로 자국 최고의 시설과 최고의 환경이 존재하는 곳. 들어가는 것 자체가 꿈, 그 이상이었으며 귀족이라 하더라도 정확한 사안이 없는 이상은 쉽게 들어갈 수 없다.
두 사내에게는 그저 쳐다볼 수밖에 없는 그림의 떡에 불과한 곳. 두 사내가 왕성을 뒤로하고 간 지 얼마 되지 않아, 저 깊은 어느 곳에서 빛무리가 일었다.
알 수 없는 소리가 나고 수십의 사람이 나타난다.
“도착했습니다.”
“오오.”
작위를 이어받을 적에 와 본 적이 있던지라 처음 그때의 기억만큼 놀랍지는 않을 거라 생각했다. 하나 그것은 그릇된 생각이었다. 불과 십수 년을 사이에 두고 왕궁은 말도 안 되게 변해 있었다.
정원의 돌조차 금으로 보일 정도! 보이는 모는 게 화려하게만 느껴졌다. 연신 감탄을 금치 못하는, 그러니까 왕성으로의 포탈을 탄 남자 스케일은 큼지막하게 입을 벌렸다.
‘큐스는 새 발의 피의 축에도 끼지 못하겠군.’
함께 따라온 시녀들도 저마다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노, 놀라워…….”
“마, 말도 안 돼…….”
“이, 이럴 수가…….”
시선을 옮길 때마다 큐스와는 차원이 다른 광경이 펼쳐졌다. 거니는 사람 하나하나가 모두 자신들의 영주만큼 화려했다. 오히려 스케일의 외양이 더 부족하게 느껴지는 것 같기도 했다.
다방면에서 입을 다물지 못하는 스케일의 무리로 안내원이 붙었다.
“오셨습니까, 스케일 남작님.”
“아아, 그렇네.”
왕궁의 말도 안 되는 광경에 입만 벌리고 있었던 스케일은 갑자기 들려오는 안내원의 말에 떠듬거리며 대답했다.
안내원은 두 손을 펼치면서 본격적으로 자신의 일을 시작했다.
“가시지요, 일단은 자리를 마련해드리겠습니다.”
“알겠네.”
스케일도 어느 정도 정신을 차린 상태라 이번에는 머뭇거림 없이 안내원을 따를 수 있었다. 하나 시녀들은 그렇지 못한 모양이었다. 자신의 영주가 갈 채비를 하는데도 한 발자국도 움직일 기미가 없었다.
“뭣들 하느냐?”
“아아, 죄, 죄송합니다!”
스케일의 짧은 호통에 그제야 정신을 차린 시녀들. 이로서 스케일은 왕궁에 도착한 지 꽤 시간이 흐른 시점에서 드디어 발자국을 뗀다.
한데, 행렬하는 그들의 움직임은 둔하기 그지없었는데, 거기에는 그럴만한 이유가 있다.
‘정원이 이만큼이라니…….’
거짓말 조금 보태면 왕궁의 정원이 큐스의 성 전체에 버금갈 정도였다. 정말 커다랬고 커다란 만큼 화려했다.
저 멀리 풀을 뜯고 있는 하얀 양이 있는 것 같기도 했다.
‘큐스도 꼭 이렇게 만들어 보겠다.’
소도시라 하면 ‘웬만한’ 귀족들에게는 코웃음거리에 불과하다. 사실 중도시나 대도시의 영주가 되면 소도시 5개를 준다 하더라도 자신의 도시와 바꾸지 않기 때문이다. 그만큼 ‘급’이 높아지는 것은 대단한 것이었다.
물론 오로소 단지처럼 소도시의 아래에 있는 지역도 있다.
‘나보다 낮은 것은 생각할 필요가 없다.’
하나 높아지는 것만 생각하는 스케일에게 단지는 ‘따위’에 불과했다. 앞만 보고 달려가는 것만큼 좋은 것도 없기 때문이다.
“스케일 남작님?”
“아아.”
자기도 모르게 걸음을 멈춰 버렸던 스케일. 스케일은 안내원에게 미안한 기색을 보이며 다시 걸음을 이어 갔다.
‘이거 체면이 말이 아니구만.’
귀족으로서 귀족이 사는 곳에서 감탄을 금치 못했다? 그것은 결국 ‘창피’로 이어진다. 귀족이 귀족을 부러워하면 자신이 낮다는 것을 증명하는 것밖에 되지 못하기 때문이다. 하나 스케일은 자신을 합리화 시켰다.
‘왕궁이다, 왕궁. 이곳에서 이렇게 하더라도 아주 체면이 망가지는 것은 아닐 거야.’
그러나 또 즈비라나 샤라 같은 대귀족들은 이곳에서도 당당하게 다닐 것을 생각하니 얼굴이 붉어진다.
결국 스케일은 또다시 다짐한다.
‘이곳에서도 기가 죽지 않게끔 성공하자!’
거듭 다짐한 스케일을 선두로 계속해서 행렬을 이어 나가는 무리. 어느 순간 안내원의 걸음이 멈춰진다.
“이곳입니다. 불편한 점이 있으시면 바로 부르시고, 이만 편히 쉬십시오.”
“…….”
스케일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지만, 입도 다물지 못했다. 이곳에서 ‘편히 쉬는 곳’이라는 개념의 정의가 궁금했다.
언뜻 보아도 자신의 성에서 가장 좋은 방보다 더 좋은 것 같았다.
‘허어.’
갈수록 열등감만 피어올랐다. 도무지 왕궁의 끝은 어디인지 알 수가 없었다. 쉴 곳이 이 정도라면 왕이 지내는 곳은 대체 얼마나 좋다는 것인가? 스케일은 ‘왕’의 운명을 타고나는 이는 정말로 축복받은 사람이라 생각했다.
‘후, 일단은 들어가자.’
침을 질질 흘리면서 이곳에 남는 것도 결국엔 밑 보이는 것밖에 안 되기 때문에 스케일은 안내원에게 고맙다는 기색을 보이면서 안으로 들어갔다. 시녀들도 이번만큼은 한눈 팔지 않고 따라갔다.
“어서 오십시오, 스케일 남작님.”
들어가자마자 스케일을 반겨 주는 왕궁의 시녀들. 저마다 출중한 미모를 가지고 있었으며 겉보기뿐이지만 품위가 넘쳐 흘렀다. 왕국에서는 비록 시녀들이라 할지라도 귀족과 대면할 만한 ‘조건’을 모두 충족하고 있는 것이었다.
스케일은 웃으며 답했다.
“반갑다.”
“식사가 준비되어 있습니다. 바로 드시겠습니까, 아니면 자리를 살피고 드시겠습니까?”
“일단 자리를 살피겠다.”
“알겠습니다.”
시녀들은 뒷걸음으로 물러났고 스케일은 문득 뒤를 돌아보았다.
오랫동안 자신을 따른 시녀들이 눈에 들어온다.
“…….”
확실히 비교가 된다. 미모에서부터 행동까지. 물론 미모는 그렇다 치더라도 스케일의 시녀들도 행동은 발랐다. 하지만 왕국의 시녀들의 행동이 너무나 강해서 일종의 대비가 된 모양이었다.
스케일의 시녀들은 고개를 숙이고 있었다. 그녀들도 차이를 느꼈기 때문이다.
‘아름다워.’
‘저런 미모라니…….’
‘마치 귀족의 영애를 보는 것 같아.’
사실 스케일의 시녀들은 여태까지 별 다른 기 죽음이 없었다.
왕궁이 아무리 말도 안 되게 화려하더라도 자신들은 태초부터 귀족이 아니어서 크게 상관이 없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나와 같은 자들과 비교가 되니 확실히 마음이 불편했다. 내가 더 부족하고, 모자라게 느껴지는 열등감이 생긴 것이다.
‘괜찮아. 며칠만 있을 곳이니까.’
결국 합리화를 시켜 버리는 그녀들. 계속 마음고생을 해 봤자 손해 보는 사람은 자신들이라는 것을 안 까닭이다.
어찌 되었든 상황은 이렇게 마무리되고 스케일은 짐을 내려놓는다.
짐이라고 해 봐야 풍성한 옷가지가 전부였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