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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계농부 1권 (22화)
10장―귀족 회의 (3)


‘시시때때로 옷을 갈아입지는 않아야 한다. 겉치장만 신경 쓰는 못난 귀족으로 보일 수 있어.’
스케일은 하나부터 열까지 대귀족들의 시선에 맞춰 행동하기로 했다. 하나 이것이 잘못된 생각도 아닌 것이, 그들에게 밑 보여서 좋은 일은 없기 때문이다. 막말로 대 귀족들이 단체로 스케일에 대해 반감을 가진다면 남작의 자리에서 내려앉을 수도 있는 노릇이었다. 고로, 스케일은 시녀에게 묻는다.
“지금은 옷을 갈아입어도 좋겠지?”
“예, 이곳에 있는 사람이라고 해 봐야 시녀들뿐이니 그래도 될 것입니다.”
“나도 같은 생각이었다. 카밀로이 수트를 꺼내도록.”
“카밀로이 수트를요?”
“왜? 문제 있느냐?”
“아, 아닙니다.”
카밀로이 수트는 의복으로 하나의 ‘상표’를 완성한 카밀로이 대도시의 유명 상품이었다. 고급 천으로 만들어진 이 옷은 거지에게 입혀도 귀티가 난다고 하며, 입은 그 순간 귀족이 되는 듯한 기분을 느낄 수 있다.
하나 가격이 너무 비쌌다. 몇 층짜리 건물도 저리가라 할 정도여서 웬만한 귀족들도 카밀로이 수트를 두세 벌 이상은 가지고 있지 않았고, 결국 귀티가 나는 귀족이나, 입은 순간부터 귀족이 되는 말도 이런 이유에서 나온 것이었다.
그래도 큰 행사나 모임에서 카밀로이 수트를 입는 것은 자신의 ‘부귀’를 알리는 행동이라 비싼 가격에도 불구하고 카밀로이 수트는 귀족들에게 대단한 전유물이 되어 버렸다.
‘귀족 회의에 참석하신다고 세 벌을 더 장만하셨으니.’
스케일은 원래 카밀로이 수트를 두 벌만 가지고 있었다. 큐스의 재정이 그리 넉넉한 편도 아니었고, 자금은 따로 쓸 수도 없는 형국이라서 갖고 싶었지만 살 수가 없었다. 한데, 이번 귀족 회의에 참석하게 되면서 스케일이 대단한 결심을 했다.

“재정이 조금 어려워지더라도 괜찮다. 카밀로이 수트 세 벌을 사오도록.”

다른 이유에서라면 당연히 반대가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귀족 회의에 관한 것인 데다가 또 귀족 회의에 참석한 이후의 상황이 어떻게 될지 몰랐기 때문에 수하들은 저마다 고개를 끄덕였었다.
어찌 되었든 이런 이유로 스케일은 벌써부터 카밀로이 수트를 입었다.
만약 두 벌만 가지고 있었다면 작금의 상황에서는 그저 그런 옷을 입었을 것이다.
“그럼 식사를 하러 가지.”
“예.”
옷을 갈아입고 어느 정도 자리를 훑어본 스케일은 밥을 먹으러 갔다. 실은 자리를 더 둘러보고 싶은 마음이 간절했지만 보면 볼수록 늘어나는 것이 열등감밖에 없어서 이런 결정을 내릴 수밖에 없었다.



11장―본격 (1)


스케일이 묵고 있는 곳과는 차원이 다른 곳. 왕성의 내부는 아니었지만 확실히 그 크기가 곱절의 곱절이었고 화려함의 차이도 천민과 평민에 버금갈 정도로 컸다. 결론적으로 대단한 사람이 있다는 말이 된다.
두 사람이서 뜨거운 김이 피어오르는 차를 한 잔씩 마시고 있다.
“여긴 가면 갈수록 발전하는군.”
“그러게요.”
“그리고 자네도 갈수록 젊어지고.”
“호호, 즈비라 후작님도요.”
“자네는 예뻐진다는 말을 참 좋아해?”
“어머나… 호호. 근데 자네라는 말, 그렇게 하지 말랬는데 또 하시기예요?”
“그럼, 어떻게 부를까?”
“마우전트 후작님처럼 샤라라 부르세요.”
“그 누구도 그게 후작끼리의 호칭이라고는 생각 못할 거야.”
“뭐 어때요, 편한 게 좋은 거죠.”
“그런가. 알았어, 내 이제부터 샤라라 하지.”
즈비라라 불린 인물은 분명히 나이가 지긋한 노인이었다. 하나 그의 외모만큼은 이제 막 초로에 접어든 중년인은 아닐까 생각될 정도였는데, 먼저 가장 눈에 들어오는 것은 단정하게 정리된 그의 까만 머리칼이었다. 머리 한 올 빠진 자리 없이 복슬복슬한 털이 가득 박혀 있었다. 거기에 약간의 주름만 잡혀 있는 얼굴과 머리칼과 마찬가지로 잘 정리된 까만 수염은 그의 외모에 더더욱 젊음을 나타내 준다.
“마우전트 후작님은 언제 오시려는 걸까요?”
“모르겠어. 모름지기 ‘군사’라면 빠르기가 생명이거늘…….”
“후훗, 제 말이요.”
밝게 미소 짓는 그녀는 샤라. 왕국 최대의 곡물 도시, 쿠바크를 운영하고 있는 즈비라와 반대로 그녀는 장대한 해양 도시, 옐도르를 운영하고 있다. 하나, 그 누구도 샤라가 벨스로크 왕국의 삼대 도시 중 하나인 옐도르를 운영하고 있다고는 생각하기 힘들었는데, 우선은 그 첫 번째 이유가 바로 ‘여자’라는 것이다. 대개, 아니, 거의 전부의 경우에서 영주는 ‘남자’가 맡았다.
딸, 딸, 딸, 딸, 딸… 딸이 열 명 태어나더라도 자식을 계속 낳는 이유는 한 명의 아들을 받기 위함이다. 이것만 보더라도 영주의 자리에는 무조건 아들이 앉아야 한다는 ‘개념’이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 부분에서 그리 반발도 없는 것이 공주들도 영주보다는 ‘공주’ 그 자체를 선호해서 영주의 자리에 그리 욕심을 내지만도 않는다. 하나, 샤라는 세 명의 아들을 굳건히 물리치고 유별나게 영주의 나리에 오른 여성이다.
미모, 지식, 언변. 영주에게 필요한 모둔 조건을 충족한 그녀, 샤라.
영주의 자리에 오른 지 이십 년이 흐른 시점에서, 이제 그 누구도 샤라에게 무어라 언질을 주는 이는 없었다. 모두가 인정하고, 모두가 환대하는 영주가 되었고, 그녀는 삼대 도시를 운영하는 영주로서 완전히 자리매김한다.
붉은 머리카락의 고혹한 샤라가 뒤를 돌아본다. 문소리가 난 까닭이다.
쿵!
문소리가 아니었다. 이것은 사람의 발자국 소리. 샤라의 얼굴에 미소가 잡힌다.
즈비라 역시 입꼬리를 살짝 올렸다. 그의 등장은 역시 늘 범상치 않다.
“어서 오시게나, 마우전트.”
“오, 반갑네, 즈비라.”
샤라가 볼멘소리로 말했다.
“저도 있거든요, 마우전트 후작님.”
“아아, 미안하구만.”
반짝반짝 빛나는 머리를 긁적이는 마우전트의 모습에 샤라는 웃음을 터뜨렸고, 그걸로 자신을 보지 못한 것에 대한 서운함도 날릴 수 있었다.
마우전트는 쿵쾅거리면서 육중한 몸을 의자에 실었다. 고급의자가 삐걱한다.
“의자가 이래서야 되겠는가?”
“자네를 견딜 수 있는 건 대형 의자뿐이니… 왕궁에서 대형 의자를 찾기는 힘들지.”
“후후, 맞아요.”
웬만한 의자는 마우전트의 몸을 실어 주지 못했다. 그의 몸이 워낙 튼튼한 까닭이었다.
어찌 되었든 제법 요란스런 이들의 만남이 드디어 완전하게 되었다.
삼대 도시의 영주들. 즈비라, 샤라, 그리고 마우전트. 왕 다음으로 가장 부러움을 사는 이들.
“요번에 신무기를 만들었다지?”
“어, 아주 좋은 무기지.”
“어떤 것인가?”
“일종의 검인데 그 무게가 보통의 반절이고, 날카로움은 곱절이지.”
“오오, 대단하네.”
전투나 군사 쪽에 관심이 없는 샤라는 그저 하품만 하고 있었지만, 그 분야에 어느 정도 관심을 가지고 있는 즈비라는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전번에도 신무기를 만들었다 했는데 이번에 또 만들었다고 한다. 거기에 이번에 만든 신무기는 전번보다 더 좋게 만들어진 것 같았다.
하지만 그의 속사정은 그리 좋지 못했다.
‘…….’
마우전트가 운영하고 있는 최대의 군사 도시, 포르텡. 도시의 수식어답게 포르텡은 벨스로크 왕국의 군사를 전부 관리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고로, ‘전투’에 관한 한은 그 어떤 곳도 포르텡을 따라갈 수 없다.
한데, 만날 때마다 포르텡이 발전되어 있다. 지금 신무기의 경우만 해도 그렇다. 이렇게 지속적으로 무기를 발전시켜 나가면 그것을 결국 도시의 발전으로 이어진다. 소위, 군사 도시는 어느 정도 선까지는 발전되도 그 이상은 힘들다고 하는데 포르텡은 그와 다른 경우였다. 정확한 이유는 알 수 없으나, 멈춤 없이 계속 발전하고 있다.
‘균형이 깨지면 마우전트가 공작이 될 것인데…….’
현재 벨스로크의 삼대 후작, 즉, 즈비라와 샤라 그리고 마우전트는 각개 3할씩의 위치를 가지고 있다. 이 말은 곧 삼 후작의 균형이 너무 딱 맞아서 한 명의 공작을 뽑을 수 없다는 말이었다.
하나 그 균형이 깨진다면 바로 공작을 뽑아도 상관이 없다.
‘쿠바크에 조금 더 신경을 써야겠어.’
쿠바크는 명실공히 최대 최고의 발전 도시였다. 선대조가 처음 영지를 맡았을 때 쿠바크가 단지였다고 한다. 한데 현재 쿠바크는 ‘소·중·대’를 넘어선 ‘특대’로 불리고 있으니 가히 그 발전 속도를 알 만하다.
이럼에도 즈비라가 걱정한다는 것은 그만큼 포르텡의 발전이 빠르다는 얘기가 된다.
착잡한 분위기 속에 샤라가 입술을 연다.
“이번에 새로운 귀족이 참가한다면서요?”
“귀족 회의에?”
“네. 모르셨나 봐요?”
샤라는 즈비라에게도 시선을 던져 보았지만 그 역시 모른다는 표정이었다.
샤라가 차를 한 모금 마시고는 다시 말을 이었다.
“큐스라는 소도시의 영주인데, 중요한 건 그가 남작이라는 것이에요.”
“호오, 남작?”
“네, 놀랍죠? 저도 많이 놀랐어요.”
마우전트는 남작이라는 얘기에 솔깃한 기색을 보이면서 샤라의 말에 더더욱 귀를 기울였다. 즈비라도 포르텡의 발전에 대한 생각만 하다가 남작이라는 말에 역시 관심을 보였다. 귀족 회의에 남작급의 귀족이 참가하는 경우는 드물기 때문이다.
“이름이 무어라 하던가?”
“스케일…이라 했던가요.”
“흠… 처음 들어보는 이름이로군. 그래, 어떻게 참가할 수 있었다던가?”
“최근 몇 달간 거래량이 급증했대요.”
“거래량 급증? 겨우 그것으로 귀족 회의에 참가하기는 힘들 텐데?”
샤라는 고개를 끄덕였다.
“네, 저도 그렇게 생각했어요. 그래서 좀 더 알아봤더니, 거래 하나하나가 엄청 컸다지요.”
“대체 어느 정도 길래?”
“통나무집 100채에 대량 곡물 거래에 가축 거래까지.”
“그게 소도시니까 가능한 것이겠지?”
“네, 저희가 생각하기엔 ‘소일거리’같이 느껴져도 소도시의 경우로 본다면 충분히 큰 거래니까요. 회의관리자도 그 부분을 중요시 한 것 같고, 또 스케일이라는 남작이 옛날부터 부단히 노력했던 모양이에요.”
마우전트는 이제야 차를 마시기 시작했다.
“귀족 회의에 참여하려는 노력?”
“그렇죠. 낮은 귀족들에게는 귀족 회의가 로망이니까요.”
“허, 아무튼 새로운 얼굴을 보겠구만.”
스케일 남작의 얘기는 여기에서 끝일 줄 알았다. 하지만 다음으로 이어지는 샤라의 말은 마우전트가 차를 뿜게 만들었고, 가만히 대화를 듣고 있던 즈비라를 자리에서 박차고 일어나게 만들었다.
“근데 그 거래가 모두 더트퍼리에 관한 것이래요.”

***

이동 포탈을 이용하는지라 실상 귀족 회의에 참석하는 귀족들이 전부 모이는 데는 한 시간도 소요되지 않았다.
하나, 귀족 회의는 모두가 도착하고도 약 사흘간의 텀이 존재했다.
대개 그 텀을 수도를 탐방하는 등의 휴식 시간이라 생각할 법하나 실상은 그렇지 않았다.
“아, 안녕하신지요.”
“누군지 잘 모르겠구만.”
“이번에 새로 참석하게 된 큐스 소도시의 스케일 남작이라고 합니다.”
“오, 소도시? 남작?”
“예. 평소 라후엘 자작님을 뵙고 싶었는데 참으로 기쁩니다.”
큐스 소도시의 스케일 남작. 스케일은 귀족 회의에 처음 참석하는 것임에도 ‘풍습’을 다 알고 있었다. 사흘 동안 놀고먹는 것보다 이렇듯 위 귀족들에게 자신을 알리는 것이 더 좋음을 말이다.
어찌 되었든 눈앞의 사내는 크헨 중도시의 라후엘 자작. 유명한 특산품목이 있지는 않았지만, 큰 부(富)를 이루고 있어 꽤 오래 전부터 귀족 회의에 참석한 인물이었다. 일단 결론적으로는 확실히 눈 매김을 보여야 할 사람임에 분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