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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령의 주인 1권 (7화)
2. 집 밖에는 (2)
‘꿈이라… 내가 이런 꿈을 꾼 게 얼마나 오래전의 일인 거지?’
사실 꿈이란 것을 꿔본 게 칼롯 코즈너에겐 굉장히 오래된 일이었다.
대륙을 대표하는 언령사이자 마법사답게 가장 효율적인 생활을 중시하던 그는 꿈을 꿔 잠을 설치는 쪽보다는 깊은 숙면으로 짧은 시간 내에 피로를 푸는 쪽을 선호했기에 스스로의 몸을 그렇게 조절해 왔다.
그런 그에게 있어서 꿈을 꾼다는 것은 그것만으로도 특별한 일이었다.
‘그렇지만… 이 상황이 꿈이라기엔 확실히 너무 생생한데…….’
다시 한 번 화단에 선 나무를 쓰다듬으며 생기를 느낀 그는 잠시 눈을 감고 생각에 잠겼다.
그리고… 생각을 확실히 했다.
‘허허… 확실히 신기하긴 하지만 이 상황은 확실히 꿈일 수밖에 없겠구만.’
평범한 고등학생이 다른 세상으로 넘어가 수백 년을 사는 꿈을 꾸고 일어났다는 결론에서.
수백 년을 살아온 대언령사가 갑자기 마법이 존재하는 옛 고향 세상을 꿈꾸고 있다는 쪽으로 결론이 섰다. 그와 동시에 그의 젊은 얼굴에 노쇠함이 서리기 시작했다.
아니, 얼굴은 전혀 변한 바가 없지만 나이 든 이의 특유의 여유로움과 현기가 아우러지기 시작했다.
‘허어, 어쩌다 내가 이런 꿈을 꾸게 된 것인지 모르겠구만… 자각몽이라…….’
이미 앞서 설명했다시피 그는 꿈을 꾸는 일이 드물었다.
그것은 앞서 말한 대로 그가 의도한 바도 있고, 그가 참과 거짓을 분명하게 구분할 줄 아는 대언령사인 탓도 있었다.
꿈이란 무한한 허구의 세계.
일부 현실을 반영할지라도 그것은 완벽한 거짓의 세계였다.
오직 진실된 말을 하며 그런 말로서 질서를 만드는 언령사와는 완벽한 상극의 성질을 가진 것이었다.
‘조금 전에 마나를 제대로 느끼지 못했던 이유도 그런 탓이 있을 터.’
꿈속 세계에서 사람은 자신의 움직임이 느려지는 상황을 겪곤 한다.
싸우는 상황에서 팔이 잘 뻗어지지 않는다든지, 달리는 게 마치 물속에 있는 것처럼 느려진다든지.
그 굉장한 이질감 때문에 사람은 종종 꿈속에서 자신이 꿈속에 있음을 깨닫곤 한다.
이건 꿈속의 자신의 움직임과 실제론 움직이지 않고 있는 몸의 괴리에서 비롯되는 일이다.
아마도 칼롯 코즈너, 그가 이곳에서 처음에 마나를 제대로 감지하지 못한 것은 그와 같은 이유에서였을 것이다.
그는 그렇게 생각했다.
물론 이 상황에 대한 가정은 단순히 꿈이란 것 외에도 ‘한 가지’ 가정이 또 있었다.
다만 그 가정이 정말이라면 어차피 그에겐 감당할 방법이 없을 뿐 아니라 현실적으로 불가능에 가까운 가정이었기에 마지막 ‘한 가지’에 대해선 생각지 않기로 했다.
‘그나저나… 이제 꿈인 걸 알았으니 어쩌면 좋을꼬?’
비록 꿈속이긴 하지만 굉장히 오랜만에 찾은 ‘고향’이었다.
딱히 미련이 있던 것은 아니지만 이렇게라도 다시 보게 된 고향은 꽤나 반가웠다.
사실 이곳이 꿈임을 확신한 순간부터 느껴진 반가움이었지만… 칼롯 코즈너는 자신이 무능력한 김현우일 적의 생각을 단숨에 덮어버렸다.
지워버릴 수는 없지만 생각나지 않게 멀리 치워버리는 정도는 오랜 세월 머릿속에서 많은 공상을 하던 그에겐 전혀 어렵지 않았다.
‘일단 그곳으로 가 볼까?’
그는 몸을 돌려 본래 가려던 방향으로 걷기 시작했다.
학교에 갈 생각이었다.
오래도록 잊고 있던 그곳의 모습을, 김현우가 아닌 칼롯 코즈너로서 눈에 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때마침 그를 기다리기라도 한 것인지 현우가 타야 하는 버스가 정확히 현우 앞에 멈춰 섰다.
그리고.
츠즈즛-.
‘마나 디텍트?’
버스 문에 설치된 마나 디텍트란 게 꿈속임에도 여전히 신기하긴 했지만, 실제 칼롯 코즈너가 있는 세계에는 이보다 뛰어난 장치가 설치되어 있었다.
숨어드는 적을 감지하고 테러 등의 위협에 대응하기 위한 장치였으니 아마 버스에 이런 걸 설치한 것도 같은 이유에서였을 것이다.
물론 단순히 마법을 사용하지 못한다고 해서 테러를 못하거나 살인을 저지르지 못하는 것은 아니지만 최소한 눈에 띄는 위험인물 정도는 쉽게 걸러낼 수 있었다.
삑!
-학생입니다.
‘허허… 마법 아티팩트가 설치된 버스 주제에 돈 계산은 기존의 교통카드 방식이로구만.’
버스에 교통카드를 찍는 리더기가 있어 호기심에 찍어본 것인데 잘 작동하였다.
물론 꿈속 세계인 만큼 굳이 신경 쓸 필요야 없겠지만 김현우 시절 몸에 배인 일부 습관들은 칼롯 코즈너인 지금에도 조금 영향을 주고 있었다.
‘그나저나 내 상상력도 꽤나 빈약한 게로군… 기껏 과거의 세상과 마법을 조합해 두곤 아티팩트들과 따로 구동하는 전기장치라니…….’
만약 세계 제일의 언령사인 그가 직접 이 버스를 설계했다면 지금 차 밑에서 느껴지는 석유 연료를 바탕으로 움직이는 차 특유의 배기음이 없었을 것이다.
‘물론 조금은 바뀐 게 있지만…….’
-마나 전동기 운행 3급-
버스마다 문 근처에 붙어있기 마련인 버스기사의 신분증에 붙은 한 줄이었다.
칼롯 코즈너의 시선으로 자세히 버스를 훑어보니 자동차 자체를 움직이는 힘은 화석연료를 바탕으로 한 힘이었지만 문을 여닫거나 라이트를 켜는 등의 전기를 필요로 하는 부분은 버스기사의 마나가 바탕이 되고 있었다.
‘호오… 마나를 다룰 줄 아는 사람이 버스기사를 한다라?’
비록 미약한 수준인 데다 나이가 있어서 성장의 한계는 있겠지만 꾸준히 단련한다면 충분히 써먹을 만한 수준의 마나로 보였고, 오직 마나의 총량이 마법의 수준과도 같은 마법사 대신 몸의 단련도에 따라 마나의 필요가 정해지는 기사라면 충분히 가능성이 있어 보였다.
“…….”
‘하지만… 이런 세상에 기사는 필요 없을 테지.’
버스기사라면 의미는 다르지만 기사이기도 하지 않은가?
무엇보다 기존 김현우의 세계를 베이스로 하고 있는 이 세계는 과학 기술이 발전한 세계였다.
그들이 만들어낸 총, 혹은 고성능 폭탄에 비하면 기사들의 칼은 살상력이 어떻든 아주 비효율적인 원시의 무기였다.
“음…….”
그런 생각을 하고 있다 보니 문득 궁금한 게 떠올랐다.
‘과연 이 세계의 총은 그대로인 걸까?’
거기에 이 세상에서 마나를 활용하는 곳은 단순히 만들어진 아티팩트를 작동시키는 수준일까?
또 그 아티팩트는 어느 정도 수준까지 개발되어 있는 걸까?
마나 전동기 3급이라는 것은 그 상위 단계가 있다는 것이 아닐까?
그렇다면 그들의 실력은?
머릿속에 떠오른 하나의 질문이 순식간에 수많은 질문을 불러왔다.
이곳이 꿈속 세계임을 알고 있지만 그 꿈속을 칼롯 코즈너 자신은 과연 어떻게 구성하고 채워놓은 것일까?
그는 그게 너무나 궁금해졌다.
그는 자신의 두뇌가 만든 세상이 궁금했다.
결국 학교로 가는 것을 포기한 그는 곧장 근처의 피시방으로 향했다.
본래는 학생이 이용해선 안 되는 시간이었지만 스마트폰은커녕 핸드폰조차 없는 김현우의 몸은 꿈속임에도 달라진 게 없어서 가장 확실하게 정보를 수집할 수 있는 곳은 피시방 외엔 없었다.
딸랑-.
“어서 오…세요.”
알바생인 듯 카운터에 앉아 있던 남자가 현우의 옷차림을 보고 멈칫하는 모습을 보였지만, 이내 현우가 거침없이 비회원용 카드를 집어 들고 안쪽으로 들어가자 별말 없이 들여보내줬다.
이런 거침없는 행동도 그를 붙잡지 않는 알바생도 역시도 꿈속인 탓은 아닐까, 그의 머릿속에 의구심이 생겼다. 하지만 그 정도의 질문은 지금 머릿속을 가득 채우고 있는 다른 질문에 비하면 중요도가 한참이나 떨어졌다.
‘마법… 마법……!’
자리에 앉은 그가 가장 먼저 검색한 키워드는 마법.
검색과 동시에 떠오르는 수만 개의 글들은 현우의 눈을 어지럽게 만들었지만 용케 그중에서도 필요한 내용을 찾아낼 수 있었다.
[마법의 기원]
-……마법의 발생이 어디서부터였는지, 무엇을 기점으로 한 것인지 알려진 바는 전혀 없다. 다만 이 마법이라는 것은 특정 계층이나 혈통을 통해 재능이 나타나는 것이 아닌 만큼, 자연계의 돌연변이처럼 자연스러운 변화 속에서 우리의 삶에 녹아들었다고 생각이 된다. 또한…….
[현대 사회에서 마법사의 위치에 대하여]
-…고대 사회에서 마법사란 보통 사람과는 다른 특별한 존재로 그 힘을 가지고 부족의 주인이 되거나 부족을 보호하는 주술사로 굉장히 귀한 대접을 받아왔다.
최근 출토된 유물을 분석한 바에 따르면 부족장 마법사의 능력이 곧 부족의 힘과도 같았다고 하니, 그들은 분명 최고위층의 대접을 받았음에 틀림없으리라. 하지만 현대에 와서 그런 마법사들의 위치는 크게 달라졌다.
사실 굳이 고대를 둘러보지 않고 최근 몇 세기 전까지만 해도 마법사란 굉장히 귀하고도 중요한 전력으로 서양 중세 사회는 물론 조선 시대에도 중요한 무력원이었다.
게다가 최근 19~20세기에 접어들며 급속도로 발전한 과학 기술은 마법사의 마법에 공학을 더하여 마법공학이란 실용적 학문의 길을 개척함으로써 마법사란 존재의 가치는 단순한 무력원을 뛰어넘는 굉장히 귀중한 존재로 그 가치가 급상승하였다.
그러나 최근 21세기에 들어 극에 이른 마법 공학은 더 이상 수준 높은 마법사가 아니더라도 훌륭한 마법 공산품을 만들 수 있게 했으며, 오랜 세월에 걸친 연구를 통해 밝혀진 마법의 많은 이론적인 부분은 마법사가 아닌 일반인의 마법 연구를 가능케 함으로써 마법사의 가치를 크게 떨어뜨렸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마법사가 다루는 마법의 가치나 고위급 마법사의 가치가 형편없이 하락했다는 의미는 아니지만, 사실상 클래스의 정식 마법을 사용하는 게 아닌 마나를 다룰 수 있다는 것 외에는 일반인과 큰 차이가 없는 하위 마법사들의 경우…….
단순한 인터넷 검색이었기에 전문적인 마법적 지식을 포함한 여러 부분에서 세세함은 떨어졌지만 이것만으로도 그는 꽤나 많은 정보를 접 할 수 있었다.
‘허어… 나의 꿈속이란 건 꽤나 세세하게 잘 짜인 구조를 가지고 있구먼.’
이 세상의 역사 속에서부터 나타나는 마법의 흔적, 이를 뒷받침하는 마법적 유물들, 그리고 현대에 이르는 마법 공학의 정보들.
칼롯 코즈너의 머리라면 충분히 생각할 수 있긴 하지만 만약 이러한 것들을 하나씩 떠올려 만들고자 했다면 한도 끝도 없을 만한 수많은 마법 관련 정보들이 인터넷 속에 존재하고 있었다.
혹시나 꿈속 세계인 탓에 자신이 몽롱한 기분에 대충 어설프게 짜인 이야기를 완벽하다 믿고 있는 것은 아닐까?
그는 화면 속 내용들을 몇 번이고 정독해 나갔지만 이 ‘완벽한 자각몽’은 분명히 가능성이 있는, 혹은 확실히 검증된 정보들로 가득했다.
그렇게 어느 정도 탐구욕을 채우자 그의 머릿속으로 다시 한 번 잔잔한 의문이 떠올랐다.
이번 의문의 주제는 과연 아무리 그라고 한들 일생 동안 특별히 생각해본 적 없는 이런 꿈속 세계를 이렇게 완벽하게 구현할 수 있느냐는 것이었다.
지금까지 보아온 많은 부분을 ‘꿈이기 때문에’라는 말로 설명하고자 했지만, 인터넷에 나온 끝없는 정보들은 칼롯 코즈너의 머리가 아무리 뛰어나다 해도 모든 페이지를 빼곡하게 적어 넣는 건 불가능해 보였다.
한 방울, 잔잔한 의문이 그의 머릿속에 작게 파문을 일으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