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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령의 주인 1권 (11화)
3. 꿈의 부정 (3)


“……중간보고를 듣고 싶군.”
“옛! 현재 작업의 전체 진행도는 50%가량이며 이 중 마법진은 80% 이상 완성되어 있습니다. 오늘 작업하는 ‘마나 집중 구성부’가 완성되면 완성도가 90%에 육박할 것으로 추정됩니다.”
“마나 집중이라… 주의해야 할 게 많을 텐데… 기존의 ‘비전문 인력’으로 가능하겠나?”
“……물론 불안감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일단 해당 구성부가 설치될 부분이 수도권인지라 일단 국정원의 위협도 있고… 다른 곳을 만들던 ‘비전문 인력’들이 경찰에 잡혀서 그것들을 처리하느라 전문 인력은 인원이 모자랍니다…….”
“이해할 수 없군. 그렇다면 더욱 전문 인력을 보내야 하는 거 아닌가?”
“물론 그렇게 하는 게 가장 좋은 방법이지만… 잡혀 들어간 녀석들을 미리미리 처치하지 않으면 차후 문제가 생길 수도 있으니…….”
뒷말을 흐리는 인영의 말에 잠시 아무 말도 없던 중후한 목소리의 주인이 느리게 입을 열었다.
“흠… 그도 그렇군. 그런데 말이야…….”
푸화확!
꽈아아악!
“크흐읍!”
그가 입을 여는 것과 동시에 시작된 마나의 파장은 단숨에 보고를 하던 인영을 휘어 감았고 이내 인영을 옥죄어오기 시작했다.
“……분명 나에게 걱정할 일이 없다고 보고했던 거 같은데?”
“크… 크허억! 죄, 죄송……!”
압력에 대항하여 간신히 숨을 참고 있던 인영의 입에서 사죄의 한마디와 함께 죽음을 예고하는 숨결이 쏟아지자 그 순간을 기점으로 하여 인영을 감싸고 있던 마나의 압력이 씻은 듯이 사라졌다.
풀썩!
“크허억! 허억! 흐어어억……!”
바닥에 꿇어 앉아 거친 숨을 몰아쉬는 인영만 없었다면, 그 누구도 이 세상에 사람을 눌러 죽일 만한 마나의 압력이 존재한다는 것을 몰랐을 것이다.
“……최근 일손이 귀하다고 하니 한번은 살려주겠다.”
“크… 크흑… 가, 감사합니다!”
“하지만… 마법사의 입에서 나오는 말은 언제나 하는 말에 책임을 질 수 있어야 한다. 그런 의미에서 너는 마법사로선 실격이군…. 나는 내 휘하에 마법사가 아닌 녀석을 두고 싶은 마음이 없으니… 앞으로 조심하는 게 좋을 거야.”
“예, 옛! 주의하겠습니다.”
“……오늘 밤 계획의 성공 보고를 기다리겠다. 나가 봐라.”
꾸벅-.
“예, 옙!”
중후한 목소리가 내린 명령에 깊게 고개 숙여 인사한 인영은 이내 어두운 그림자 속으로 후다닥 사라져버렸다.
자신이 조금 전 보고를 위해 들고 왔던 서류철조차 잊어버린 채 말이다.
그리고 잠시 뒤 아무것도 없는 걸로만 보이던 어둠 속에서 건장한 그림자가 불쑥 튀어나왔다.
그림자는 인영이 급하게 나가느라 미처 챙겨가지 못한 서류철을 들어 내용을 대충 훑어 봤다.
그곳엔 대한민국의 지도가 간략하게 그려져 있었고, 지도를 중심으로 주변엔 빼곡한 수식들이 적혀있었다.
하지만 그런 내용은 그림자의 관심을 끌지 못한 듯 이내 설렁설렁 서류가 넘어갔다.
그것도 잠시.
멈칫-.
그림자의 손이 한 장의 서류에 멈춰 섰고 어둠 속에서 새파란 빛을 띠는 안광이 서류의 내용을 훑었다.
그곳엔 오늘 날짜와 금일 작업하기로 예정된 마나 집중 구동부, 그리고 그게 설치될 위치 등이 상세히 적혀 있었다.
그 내용을 위에서부터 찬찬히 내려가던 그림자의 시선은 이내 설치 위치에서 조금 더 오래 멈춰 섰다.
“이곳은…….”
그곳에 적힌 상세 주소를 보며 무언가를 생각하는 듯 입을 다물고 있던 그림자에게서 이내 바람 빠지는 소리가 흘러나왔다.
피식-.
“그래… 내 알 바 아니지.”
툭!
명백한 조소. 그와 함께 이해할 수 없는 혼잣말을 중얼거린 그림자는 펼쳐진 서류철을 던져놓은 채 본래 그가 있던 어둠 속으로 사라졌다.

구름을 벗어난 달빛이 서류철을 길게 비췄다.



4. 죽음과 바름 (1)


지이익……턱!
지이익……턱!
힘없이 끌리는 발걸음 소리가 저녁 길거리에 울려 퍼졌다.
그저 듣는 것만으로도 사람을 지치게 만드는 소리에 지나가는 사람들이 소리의 진원지를 간간이 돌아봤지만.
이내 그 소리를 내는 주인공, 현우의 괴물 같은 몰골에 시선을 회피해버렸다.
하지만.
그런 그들의 눈초리를 아는지 모르는지, 현우는 생각에 빠져있었다.
그것도 자신의 죽음에 관한, 아주 중요한 주제를 놓고 말이다.
‘죽는다… 죽는다라…….’
집을 나설 땐 당장에라도 이곳을 벗어날 수 있는 획기적인 발견을 했다는 생각에 큰 기대와 작은 두려움에 떨고 있었지만, 당장 눈앞에 닥친 문제는 그런 생각을 잊게 했다.
‘어떻게 죽을 것인가?’
지금 현우를 괴롭히는 생각은 바로 죽는 방법에 대한 것.
인간은 지극히 약한 만큼 죽는 방법은 다양하고도 간단한 것이 많았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아무렇게나 죽을 수는 없는 노릇.
만약 현우가 차에 뛰어들어 죽는다면 그를 친 재수 없는 누군가는 평생을 고통에 시달려야 할지도 모를 일이었고, 낯선 집 담벼락에 기대어 손목이라도 긋는다면 그를 발견할 집주인은 경찰에 시달려야 할 것이었다.
설령 그가 남에게 피해를 주지 않겠다고 유서를 남기고 자살한들, 경찰들이 그의 자살 사유를 찾아 역행을 하다 보면 필연적으로 만나게 될 지금의 새엄마와 여동생, 그리고 학교의 많은 학생들에게 여러 문제가 생길 가능성이 농후했다.
물론, 이렇게 ‘김현우’라는 육체가 죽음을 떠올릴 만큼 거대한 트라우마를 남긴 그들에게 동정심이 든다든지, 혹은 그들에게 향할 벌이 부당하다고는 눈곱만큼도 생각지 않았다.
하지만 한평생 ‘바름’을 인생의 모토로 삼았던 현우의 의식과 육체였다.
비록 정신적 트라우마와 칼롯 코즈너 시절 의식의 괴리로 인해 그가 언제나 지켜오던 ‘바름’이 퇴색되고 그 의미가 바랜 상황이었지만, 그럼에도 현우는 지금 ‘바름’을 떠올리고 있었다.
남에게 피해를 주지 않겠다는 바른 생각을 말이다.
물론 스스로 목숨을 끊으려는, 절대적으로 바르지 않은 상황에서 그런 걸 지키는 게 무슨 상관이 있겠느냐만 말이다.
‘어쩌면… 그냥 흔적을 남기는 게 싫은 건지도 모르지.’
현우는 ‘어쩌면’이라고 생각했지만 실제로 그런 게 틀림없었다.
대언령사로서 마법이 가져다준 깨달음 속에서 바름의 족쇄를 벗어던진 지 오래된 칼롯 코즈너였다.
비록 작은 균열이 계기가 되어 무너져 버렸다고 한들 대언령사의 정신을 이루고 있던 거대한 잔해들은 은연중에 현우에게 영향을 끼치고 있는 게 분명했다.
만약 ‘바름’에 절대적인 영향을 받는 본래의 ‘김현우’였다면 애당초 이런 상황까지 오지 않았을 테니 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우가 자꾸 바름을 찾는 데는 스스로가 죽음을 찾는 행동으로부터 정신을 분산시키기 위해서였다.
죽음이란 극단적인 선택을 하면서 조금이라도 자신의 선택에 후회가 오는 것을 막기 위해, 이성에 잠식되어 지금 선택한 비이성적 답안을 부정하지 못하게 스스로의 의식을 분산시키고 있는 것이었다.
그 결과 지금 현우의 의식은 죽음이란 단어가 가져오는 두려움을 배제한 채 자신의 죽음으로 그 누구에게도 피해가 가지 않고 그 누구의 기억 속에도 남지 않을 방법을 떠올리고 있었다.
허울만 남은 바름에도 순응하는 척하며 말이다.
지이익… 턱!
지이익… 턱!
하지만 그 어떤 흔적도 남기지 않는다는 게 어디 쉬운 일일까?
꽤나 많은 고민을 해본 현우였지만 몇 번을 고민해도 좋은 생각은 좀처럼 떠오르지 않았다.
아니, 어쩌면 현우는 답이 없는 질문에 해답을 찾고 있는 것인지도 몰랐다.
아주 오래전 과학기술이 발달하기 전이라면 그저 살던 곳과 동떨어진 깊은 산중에 들어가 죽는 것만으로도 충분했을 것이다.
혹여나 발견되더라도 연고를 알 수 없는 시체에 크게 관심 쏟을 사람은 없을 테니 말이다.
하지만 지금은 시대가 달라졌다.
사람이 지나간 흔적만으로 사람을 찾아내고, 가느다란 체모 하나로 사람을 분별하며 전국 방방곡곡에 설치된 지치지 않는 눈은 모두의 행적을 파악하고 있었다.
단순히 과학 기술만으로도 이런 수준인데, 만약 마법 기술이 합쳐졌다면 어느 곳에 가더라도 완전히 행방불명되는 것은 불가능에 가까웠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행방불명자가 없는 것도 아닌 게 사실.’
누군가를 지키지 위한, 혹은 감시하기 위한 기술이 발전하면 그것을 벗어나기 위한 기술의 발전은 필연적일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현우는 직감적으로 이 기술이 마법과 연관이 있으리라 생각했다.
‘본래의 내 능력이 있었다면 이런 고민이 필요 없을 텐데…….’
대언령사가 지니는 마법 능력은 대륙 하나를 들었다 놨다 하기에 충분한 힘.
한 인간이 가지기엔 과도하다는 표현이 어울리는 어마어마한 힘이었다.
그런데 그런 힘을 현우는 죽음을 감추는 용도로 쓸 생각을 하고 있는 것이었다.
물론 지금 당장 그럴 힘은 없지만 말이다.
“흡……!”
현우가 작은 기합과 함께 눈을 반개하자 순간 현우의 눈앞이 푸른빛으로 가득해졌다.
그리고 잠시 뒤 현우가 다시 눈을 크게 떴을 때, 그런 현상은 사라져있었다.
‘지금 사용할 수 있는 마나양은… 1클래스…. 2클래스가 조금 못 되는 수준인가.’
굉장히 실망스러운 수치.
현우의 입가에 씁쓸한 미소가 맺혔다.
본래 대언령사이던 현우의 마법 능력은 이미 클래스로 따지기엔 단위가 모자랄 만큼 지고한 경지였다.
그런 그의 눈에 겨우 2클래스나 될까 하는 마나 지배력은 턱없이 낮게 보였다.
하지만, 현우가 한 가지 모르고 있는 사실이 있었다.
이 세상 역사엔 마법이 언제나 존재해 왔고 당연시되었지만 그 재능을 타고난 사람은 기존 칼롯 코즈너의 세상보다 턱없이 적었다.
아니, 사실상 거의 없다고 보는 게 맞았다.
거기에 그들에겐 마법을 전수해줄 ‘존재’가 없었다.
칼롯 코즈너의 세상에는 마법의 조종이라 불리는 드래곤은 물론 마법 사용을 당연시하는 엘프를 비롯한 수많은 종족들이 있었다.
그들 대다수는 폐쇄적인 성격을 띠고 있어 인간에게 무언가 전하기를 꺼렸지만 간혹 나타나는 극소수의 존재들은 인간과 교류하며 그들의 지식을 아낌없이 전파했다.
그렇게 태어날 적부터 마법을 가진 이들로부터 흘러나온 지식들은 수대에 걸쳐 쌓여 인간들에게 전승되어져 왔고 끊임없는 연구 끝에 수많은 마법 공식, 원리가 발견되고 개발되었다.
그 결과가 바로 역대 모든 마법사를 통틀어도 없을 법한 대언령사 칼롯 코즈너였다.
하지만 이 세상엔 그런 ‘존재’가 없었다.
그들에게 있어서 마법은 우연히, 자연스레 나타나는 것 외엔 사용법을 이해하는 자조차도 드물었다.
극히 소수에 불과한 그들은 각자의 마법적 견해를 이해하며 연구 결과를 토론할 만한 상대가 존재하지 않았다.
그 결과 이 세상의 마법 발전은 칼롯 코즈너의 세상에 비해 극도로 뒤처져 있었고, 그 후유증으로 마법이 공인화되고 수많은 지식들이 집대성되는 상황에 왔음에도 그 수준은 지극히 낮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