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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령의 주인 1권 (13화)
4. 죽음과 바름 (3)
그리고 또 한 가지…….
‘이 녀석들… 내 몸을 뒤지려고도 하지 않았어.’
흔히 취객과 도둑이 만나면 ‘아리랑치기’라고 하는 취객을 대상으로 하는 범죄가 떠오르기 마련이었다.
특히나 이들이 자판기를 털고 있을 만큼 돈이 궁한 이들이라면 눈앞에 나타난 취객의 지갑에 관심이 가지 않을 리 없었다.
그런데 이들은 가까이 옴과 동시에 칼을 휘둘렀으니 최소한 돈이 목적은 아니란 말이었다.
‘이제 보니 저 칼… 원래 그런 용도로 쓰는 칼이군……!’
가로등조차 듬성듬성한 거리인 탓에 처음엔 칼이 반짝이는 것만 보이던 것이 조금 익숙해지니 칼끝을 빼고 테이프로 칭칭 감긴 칼의 모습이 현우의 눈에 명확하게 들어왔다.
그게 의미하는 바는 컸다.
살인 도구로써의 칼.
칼끝 일부를 제외한 나머지 날 부분에 테이프를 감아 날이 깊게 박히지 않고 빠르게 뽑을 수 있게 해서 여러 번 찌르기 위한, 사람을 죽이는 데 특화된 칼이란 의미였다.
그리고 이런 칼을 가졌다는 것은.
‘그냥 도둑들은… 확실히 아니군.’
애당초 마주친 이상 피해 갈 수 있는 상대는 아니었다는 것을 깨달은 현우는 여태 대치를 하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이제야 그들을 상대할 마음을 먹었다.
그 순간.
파하-.
“……?”
현우는 스스로도 놀랄 만큼 깊게, 그리고 편안하게 숨을 쉬었다.
조금 전까지 역겨움에 숨쉬기조차 힘들었건만 어째선지 그런 역겨움조차 사라져 있었다.
‘설마……?’
“야! 바쁘니까 빨리 해!”
“아저씨! 미안!”
문득 떠오르는 것이 있어 몸을 멈춘 현우였지만 여태 현우와 대치하고 있던 도둑들은 그런 현우를 기다려 줄 생각이 없었는지 멀리서 여전히 자판기와 씨름하고 있던 남자가 외치자, 칼을 들고 있던 사내가 곧장 움직이기 시작했다.
슉슉!
“흐헛! 헙!”
“아저씨 취권이라도 배웠어?! 꽤 빠른데?”
순식간에 현우의 배가 있던 곳 근처를 두 번이나 칼이 훑고 지나갔고, 현우는 휘청거리는 몸으로 사력을 다해 그 칼날을 피했다.
그 모습을 보며 칼을 휘두르던 남자가 비웃었지만, 현우는 이에 반응은커녕 당장에 어떻게 해야 할지도 막막한 상황이었다.
사실 지금 피하고 있는 것도 거의 기적에 가까웠으니 말이다.
‘제압하려고 한다면 할 수야 있겠지만…….’
현우가 예전처럼 마법을 펑펑 쓴다면 모를까, 지금은 마나 자체도 제약이 있을 뿐더러 사용 가능한 마법 자체도 한정적이었다. 뿐만 아니라 마법이 있는 세상에서 칼을 휘두르는 이들이 과연 저클래스의 마법에 아무런 방비도 없을까 하는 불안감도 가지고 있었다.
사실대로 말하자면 이 모든 건 기우에 불과했고, 당장에 이 둘 발밑에 1클래스의 그리스 마법만 걸어줘도 한참을 고생할 터였다. 하지만 마법이 주류이던 세계에서 살아온 현우는 검사나 레인저는 물론이고 어쌔신이며 도둑들마저도 각자 마법에 대응할 방법을 갖고 있는 것을 매번 봐왔었다.
오히려 현우에게 있어선 그들의 마법 방비 대책을 고려하는 것이 전투의 상식이라고 할 수 있었다.
‘단숨에 한 방……!’
현우의 기준으로 봤을 때 이들의 수준은 여러모로 어설펐다.
물론 그것만으로도 현대의 사람들을 나자빠지게 하는 데는 충분했고, 당장 현우도 죽을 위기에 처해있었다. 하지만 수련을 통해 강해진 사람들을 수도 없이 만나 본 칼롯 코즈너의 기준에선 그들은 충분히 약자였다.
그들의 마법적 방비가 어느 정도인지는 여전히 알 수 없지만 그들 본신의 실력이 저렇다면 다른 수준도 어느 정도 유추가 가능한 바.
현우는 혹시라도 막힐지 모르는 자잘한 마법보다는 한 방에 상황을 정리하기로 했다.
물론 실패한다면 결과는 죽음뿐일 테지만… 애당초 죽으러 나선 길 아니었던가.
만약 이런 자들 손에 죽게 된다면 현우의 능력에 비해 꽤나 억울한 죽음이 될 테지만, 최소한 느닷없이 사라져서 사람들에게 의구심을 살 일은 없을 것이라고 현우는 생각했다.
‘단 한 번에 둘을 격살할 마법이어야 해.’
그리고 또한 그 마법은 강도들에게 ‘다음’이라는 기회를 주지 않을 마법이어야 하며, 마법의 정체를 안다고 한들 그 위력을 막아낼 수 없어야만 한다.
‘그런 마법이 마침 딱 있지.’
결심이 서자, 현우의 주변으로 현우의 지배하에 있는 마나들이 형상을 이루기 시작했다.
적은 마나로 높은 효율을 내기 위한 수식에 따라 마나가 재배열되고 각 수식이 퍼즐처럼 조각조각 뭉쳐 마법을 이루기 시작했다.
이글이글-.
푸른 마나가 불꽃처럼 일렁이는 반투명한 푸른빛의 구체.
이 마법의 정체는 파이어볼이었다.
비록 아직 구체화되어 발동된 것이 아닌지라 파이어볼의 형상으로 마나가 일렁이고 있는 게 현우의 눈에 보일 뿐이었지만 그것만으로도 현우는 든든했다.
파이어볼은 3클래스 전투 마법 중 최고의 파괴력을 자랑하는 마법. 아마 그 화력이라면 이 골목을 뒤덮기에 충분하리라.
‘근데… 이제 어떡하지?’
자신 있는 마법이 당장 발동 대기 상태에 들어가니 다른 생각이 떠올랐다.
살인의 대한 망설임, 징치에 대한 자격, 생명의 존엄 따위를 고민하는 건 아니었다.
겨우 그런 고민이라면 저쪽 세상에서 수백 년 전, 강대한 마법과 어린 정신력을 가지고 있을 적에 정리된 부분이었다.
그들은 범죄자일 뿐 아니라 사람의 목숨을 노리는 이들, 그 대상으로 현우를 정했을 때 이미 현우의 가치관에 있어서 죽어 마땅한 존재였다.
문제는 이들이 죽은 후에 있었다.
이전 칼롯 코즈너의 세상에선 힘 있는 자가 정의였기에, 절대적인 힘의 대명사인 대언령사인 칼롯 코즈너가 누군가를 죽였다면 자연스레 죽은 게 나쁜 놈이었다.
하지만 이곳 세상은, 그중 대한민국이라는 나라는 달랐다.
작은 크기에 비해 많은 인구를 자랑하는 나라인 대한민국은 치안에 있어서 강국이며, 유교적 사상을 바탕으로 현대에 있어서 인권을 비롯한 생명의 존엄에 대한 많은 연구를 한 나라였다.
객관적으로 보기에 죽어 마땅한 인물이라도 그가 법에 명시하는 특정 행동이나 수위를 넘지 않는다면, 재판을 통해 사형을 인도받아 사형이 되기 전까지는 그 누구도 그의 생명을 해할 수 없었다.
그런 대한민국에서, 비록 강도라곤 하나 느닷없이 사람 두 명이 죽는다?
물론 정황상 증거라든지, 그들의 범죄행위를 입증할 방법은 꽤 많이 있을 터였다.
현우의 생명을 위협했다는 것도.
하지만… 그들이 범죄를 저질렀다고 한들, 현우에게 그들을 죽일 권리가 생기는 것은 아닐 터. 이들의 시체가 발견된다면 용의자인 현우는 당장 수갑을 차고 연행될 것이었다.
이런저런 부분으로 정상참작된다고 한들, 두 명을 죽인 살인자에게 어떤 형이든 형이 내려질 것은 뻔했다.
그리고 이것은 현우가 원하는 바와는 절대로 맞지 않는 부분이었다.
여태껏 언제나 바름을 외쳐온 현우였지만 그 바름은 언제나 현우를 기준으로 하며, 그 순간순간 현우의 입장에서 상황을 보았을 때 여러 정리 끝에 나오는 결과가 현우의 바름이었다.
만약 현우에게 지금의 상황처럼 어쩔 수 없이 다른 이들의 시각에서 바름을 벗어난 행위를 해야만 하는 순간이라면 현우는 자신이 바름을 유지할 수 있는 최선의 선택을 한다는 의미였다.
그 결과.
‘……잡음이 나는 상황을 피하기 위해서라면… 역시 증거인멸이 좋겠지.’
물론 그들이 사라짐으로 인해 어딘가에선 또 다른 잡음이 생길 터.
하지만 그것은 현우에게 들이닥치는 문제가 아니었다.
현우의 바름은 언제나 그 자신을 기준으로 한다. 때문에 지극히 이기적이다. 자신에게 직접적으로 닿을 문제가 아니라면 스스로의 방식을 선택하는 데 거침이 없었다.
‘그렇다면……!’
처음부터 고효율을 지향한 덕분에 여유롭게 남아있던 마나가 발동 대기 중이던 파이어볼에 덧씌워지기 시작했다.
마나는 현우의 의지에 따라 파이어볼 위로 새로운 수식을 채워갔다.
바로 이들을 ‘단숨에 태워 죽여’ 흔적조차 남지 않도록!
‘이번에 추가되는 수식은 중력 수식! 파이어볼에 중력 수식을 더해 강한 압력으로 마법이 가진 화력을 집중시킨다면 시체조차 완전히 소거시켜 버릴 수 있을 터!’
이 생각, 이 결심.
자신을 위해 다른 바름을 꺾어내는 이 이기적인 바름!
어린 시절 트라우마로부터 시작되어 무작정 머릿속에 주입되어져 왔던, 오직 책 속의 문장과 그저 어린아이 혼자만의 생각으로 완성되어진 바름.
책에선 예시로 들어주지 않던 현실적인 문제와 부딪쳐 가며 깎이고 뭉개져버린, 비뚤어진 김현우식의 바름.
‘완성……이다!’
누군가의 바름이 인정받기 위해선 그 이전에 자리를 차지하고 있던 다른 누군가의 바름을 꺾는 것은 필연적인 것이다.
이 세상 모든 것은 그런 충돌의 결과이고 그중 가장 강한 바름이 살아남는 것은 운명일 수밖에 없었다.
그것은 단순히 현우에게만 적용되는 것이 아닌 세상 공통의 진리였다.
하지만.
현우는 그런 것에 있어서 극단적인 부분이 있었다.
책을 통해 주입된 바름을 맹목적으로 맹신하면서도 자신의 상황이 책의 내용과 반대하거나 완전히 부합되지 않으면, 자신을 위해 그 생각을 주물러 자신만의 바름으로 만들어 냈다.
그 결과 현우의 이기적인 바름은 다른 이들이 생각하는, 인간이기에 생각하는 스스로를 위한 이기적인 바름을 훨씬 벗어난, 기준 없는 바름이었다.
그리고 이것이야 말로 ‘대한민국의 고등학생 김현우’가 가진, 그를 싫어하는 이들이 공통적으로 생각하는 가장 큰 문제점이었다.
“야! 적당히 빨리 끝내고 여기 좀 도와줘!”
“흐흐… 들었어, 아저씨? 그러게 집에는 일찍일찍이 들어가셨어야지.”
조금 떨어진 곳에서 자판기를 들쑤시던 남자가 현우와 대치해 있던 칼을 든 남자를 재촉하자 칼을 든 남자가 눈을 번쩍이며 현우에게 다가섰다.
‘단숨에……! 나에게도 두 번째는 없다!’
따-악!
조용한 밤거리에 경쾌하고 맑은, 손가락의 마찰음이 울려 퍼졌다.
소리를 들은 두 남자의 시선이 소리의 근원, 현우의 손으로 향했다.
“헤비… 파이어볼.”
“엉……? 뭐야.”
“어……?”
푸화화확!!
단발마의 비명도, 살려달라는 애원 한 마디도 없었다.
아니, 그들은 비명도, 애원도 할 수가 없었다.
마치 그들의 몸에서 뿜어져 나온 것처럼 그들을 감싼 불꽃은 입은 물론 목도, 폐도, 뇌조차도 단숨에 태워버렸기에.
“…….”
한순간 골목을 가득 메운 시뻘건 불꽃이 사라진 자리, 그곳에는 출렁이는 불꽃도, 칼을 든 남자도, 자판기를 들쑤시던 남자도.
그 어떤 것도 남아있지 않았다.
남은 것이라곤 원래의 형상을 알 수 없는, 허공에 휘날리는 잿가루와 주변을 메운 매캐한 냄새뿐이었다.
그런… 불꽃에 산소가 타들어가던 소리조차 없어진 골목의 정적을 깬 것은 이 모습을 바라보고 있던 현우였다.
“쿨럭!”
풀썩!
거친 기침과 함께 자리에 주저앉은 현우는 긴장이 풀린 모습으로 다시 골목을 바라봤다.
이 세상에 조금 전까지 현우를 위협하던 악당들은 더 이상 흔적조차 남아있지 않았다.
그들이 서있던 곳에 남은 것이라곤 조금 짙은 그을림뿐.
완벽한 살인멸구, 증거 인멸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