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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령의 주인 1권 (14화)
4. 죽음과 바름 (4)


“후욱… 후욱… 조금 무리를 했군.”
애당초 파이어볼은 현재 현우가 가진 마나 지배력에서 사용할 수 있는 최대의 마법이었다.
3클래스의 전투용 마법인 만큼 그것만으로도 골목을 초토화시키고도 남았을 터였다.
하지만 현우는 그렇게 되는 것을 원치 않았다.
흔적을 남겨서 곤란해지는 것은 현우일 뿐이었으니.
그래서 현우는 자신의 능력이 허용하는 내에서 최대의 운용력을 발휘해 지면에는 파괴의 힘이 닿지 않도록 그 위력을 미세하게 조절했다.
하지만 그것만으론 부족했다.
인간의 몸은 많은 것으로 이루어진 만큼, 불타 없어지는 데 많은 시간이 필요하고 많은 부산물이 남을 수밖에 없었다.
현우는 이 두 가지도 원치 않았다.
그래서 살아있는 인간을 단숨에 소거시키기 위한 화력을 만들기 위해 마법에 특별한 압력을 추가하는 수식을 더했다.
비록 기존의 마법을 세심하게 다듬고 수식을 하나 추가하는 단순한 변형이었지만 그것은 명백한 마법의 변형.
오랜 세월 수정되어 가장 최적화되고 가장 효율적임이 증명된 파이어볼의 마법 수식을 강제로 풀어헤쳐서 훨씬 비효율적이 되더라도 그 효과를 상황에 맞게 만들어낸 대가는 꽤 컸다.
“쿨럭! 쿨럭……! 크후으… 이만하니 다행인 건가……?”
현우는 기침이 나오는 입을 가렸던 손을 펼쳐 그곳에 잔뜩 묻어난 핏물을 보며 중얼거렸다.
조금 전 마법의 발동은 현재 현우가 사용 가능한 마나의 범위를 우습게 벗어나는 무리한 마나운용이었다.
하지만 현우는 그런 마법을 발동시켜야만 했고 발동시키고야 말았다.
그렇다면 현우의 능력을 벗어난 마나는 어디서 온 것일까.
‘수명…이 깎인 걸까? 아니면 장기 어딘가에 손상이 온 건지도 모르겠군…….’
마법이란 건 세상 만물, 대기 중에 존재하는 마나를 수식이라는 거푸집으로 찍어내 구체화시키는 것이었다.
이는 마치 말 그대로 거푸집에 쇳물을 부어 주조하는 것과 같은 원리인지라, 거푸집에 넣을 마나가 모자라다면 완성품은 나오지 않았다.
혹여 나오더라도 불완전한 미완성품이 나올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조금 전 현우의 마법은 거푸집에 들어갈 쇳물이 부족했던 상황.
현우는 이 위기를 헤쳐 나갈 방법으로 다른 곳에서 꿔옴으로써 ‘대체’하는 것을 선택했다.
하지만 세상을 구성 중인 마나는 쇳물과 달리 옆집 대장장이에게 빌려오고 나중에 갚는 게 불가능했다.
만약 한 조각을 떼어 자신의 거푸집에 넣어버렸다면 빌림과 동시에 갚아야만 떼어온 곳의 균형이 유지되어 문제가 생기지 않는다.
그래서 현우는 자신이 빌려와 공백이 생겨버린 곳에 다시 새로운 마나를 채워 넣었다.
현우가 마나 수련을 통해 지배하게 된 마나 외에, 완전히 자신에게 종속되어 있는 마나의 덩어리인, 바로 자기 자신을 말이다.
자신의 몸, 내지는 수명을 유지하는 마나 중 일부를 분해해서 공백이 생겨난 구성물에 도로 채워 넣는 이 방식은 대단히 위험한 방법인 탓에 정통 마법사들에게 있어 배척받는 마나 운용법이었다.
하지만 이 마법은 높은 리스크에 어울리는 매력적일 만큼 큰 힘을 주었기에 수많은 마법사들에 의해 연구되어 왔고, 그 명맥은 계속 이어져 사실상 대부분의 마법사들은 최후의 한 수로 세크리파이스 마법을 하나씩은 가지고 있었다.
자신을 마나로 치환하여 본래 능력 이상의 힘을 끌어내는 이 마법은 말 그대로 마법사 본인의 모든 것을 통째로 갈아 넣는 만큼 그 위력은 상상을 초월하지만, 마법을 발동하면 죽게 된다는 크나큰 단점이 있었다.
그렇기에 앞서 말한 바처럼 보통 마법사들에게 있어서 최후의 한 수라고 익히 알려져 있었다.
그리고 물론, 이는 말 그대로 평범한 마법사들의 이야기였다.
그들은 자신을 마나로 치환할 줄 알지만, 이를 되돌리거나 중간에 멈추는 법은 알지 못하고 그런 능력이 없기 때문에 죽는 것이었다.
평범한 마법사, 평범한 언령사의 타이틀을 한참이나 뛰어넘어 마법의 종주 드래곤을 상대로 마법 대결을 펼치던 칼롯 코즈너라는 인물에겐 이를 조절할 만한 능력이 있는 게 당연지사.
현우는 조금 전 그 능력으로 현재 능력을 넘어선 마법을 실현시킨 것이었다.
‘칼롯 코즈너일 때 자주 써먹은 보람이 있군…. 어찌됐든 살아남았으니.’
마나 치환의 원리과 구조를 잘 알고, 실제 사용 경험도 풍부하다곤 하지만 지금 현우의 수준은 칼롯 코즈너에 한참 못 미쳤다. 덕분에 마나로 치환된 자신을 원래대로 회수할 수도 없었고 예정보다 많은 손해를 보고야 말았다.
그래도 현우는 이쯤에서 만족하기로 했다.
어차피 지금의 몸이야 곧 죽을 목숨이라 생각하는 탓도 있고 일단 이런 곳에서 죽지만 않으면, 아직 방법은 고민하고 있지만, 목적했던 쥐도 새도 모르게 죽는 건 얼마든지 가능하리라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그치만…….’
“이건… 후유증이 꽤… 크군…….”
소모된 마나는 특정 신체 부위나 생명력을 소모하기 때문에, 신체의 일부에 극심한 고통을 느끼거나 말로 표현할 수 없는 박탈감을 느낄 것이었다. 하지만 워낙에 몸이 약해진 탓인지 현우의 몸은 전신이 고통에 몸부림치는 중이었다.
“일단은… 돌아가자.”
이런 몸 상태론 앞으로 소모한 마나가 돌아온다 하더라도 최대로 운용하지 못할 게 뻔했다.
또한 힘들답시고 이런 곳에 쓰러져 있는 것 역시 현우의 이기적인 바름에 어긋나는 부분이었다.
괜히 이런 곳에 쓰러져 있다가 누군가에게 민폐가 될지도 모르는 일이었으니 말이다.
지이이이익- 지이이이익-.
본래도 힘없는 걸음걸이긴 했지만, 처음보다도 훨씬 힘없는 걸음으로 집으로 향했다.
당차게 문을 열고 나온 참이라 이제 와 돌아가자니 뻘쭘한 게 사실이었지만, 애당초 집에서 현우의 행동에 관심을 갖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그러니 아무 일도 없으리라.
이대로 집에 들어가 조금 쉬고 고통이 잦아 들 즈음에는… 다시 나와 죽음을 향해 갈 수 있으리라.
지금까지 가장 죽음에 가까웠던 순간을 벗어나며, 살기 위해 걸음을 옮기던 현우는… 그렇게 생각했다.

* * *

강도도, 현우도 사라진 골목.
그 골목길의 자판기를 운영하던 작은 슈퍼의 문 너머에서 작은 소리가 들렸다.
털썩.
문 뒤편에서 작은 소리를 내며 주저앉은 이의 정체는 바로 그 슈퍼 주인의 딸.
작은 체구의 그녀는 문 뒤에 주저앉아 벌벌 떨면서 계산대 옆에 놓인 전화기에 천천히 손을 가져다 댔다.
하지만.
그녀는 끝끝내 그 수화기를 들지 못했다.
‘과연… 누가 이걸 믿어줄까?’
그도 그럴 것이 방금 그녀가 본 것은 너무나도 놀랍고도 신비해, 보통 사람이라면 소설이나 게임 이야기라고 생각하기에 부족함이 없었기 때문이다.
혹여 구체적인 설명과 자세한 묘사로 흥미를 당겨 누군가를 조금 전 일어난 일의 진실에 끌어당겼다 한들, 그녀에겐 이 일을 입증할 증거가 없었다.
목격자는 있지만 죽은 사람은 흔적조차 남지 않았고… 살해자에게는 두려움에 함부로 가까이 갈 수가 없었으니 말이다.
바들바들.
‘이… 이럴 줄 알았으면 고집부리지 않는 건데…….’
그녀는 이곳에 혼자 있던 게 너무나도 후회되었다.
그녀를 새벽에 이곳에 혼자 있게 만든 오빠들도, 심지어 병상에 있는 엄마, 아빠도 모두 미웠다.
‘푸화화화확!’
파르르르-.
“……무서워.”
다시 한 번 머릿속을 스쳐 지나가는 그 순간의 모습이 그녀의 몸을 파르르 떨게 만들었다.
요즘 근처에서 좀도둑이 기승을 부린다는 말에 얼마 전부터 오빠들과 번갈아가며 가게의 새벽을 지키던 그녀였다.
얼마 전 그녀의 아버지가 허리를 다쳐서 병원에 입원하셨고, 어머니는 그런 아버지를 병간호하며 홀로 이 슈퍼를 운영하다가 과로로 몸져누운 탓에 집안에 수입이 없어져 급격히 가세가 기울기 시작했다.
덕분에 대학생이던 그녀의 오빠들은 번갈아가며 슈퍼를 맡고, 생활비와 각자의 학비를 마련하기 위해 아르바이트를 시작했다.
그야말로 몸이 두 개라도 모자랄 정도로 움직이는 그녀의 오빠들을 위해 고등학생인 그녀가 직접 나섰다.
대학생에 비해 어린 데다 학교의 수업시간도 긴 그녀로선 아르바이트도, 낮에 슈퍼의 계산을 돕는 일도 할 수 없었다. 하지만 오는지 안 오는지도 모를 좀도둑을 기다리다가 만약 나타나면 재빨리 경찰에 신고하는 정도는 얼마든지 할 수 있다고 자신했다. 반대하는 오빠들을 오히려 만류하며 끝끝내 그녀의 오빠들과 번갈아 가며 슈퍼에서 새벽을 보내게 되었다.
그러길 며칠.
우려와 달리 도둑은 나타나지 않았다.
설령 도둑이 나타난 대도 언제나 문 앞 계산대에 앉아 밤을 새우는 그녀는 신고할 준비가 철저히 되어있었다.
하지만… 오늘은 그렇지 못했다.
매번 머릿속으로 구상하던 ‘도둑이 나타나면 해야 할 일’에 대한 시뮬레이션과는 동떨어진 행동을 해버렸다.
늦은 새벽, 자리에 앉아 꾸벅꾸벅 잠을 청하던 그녀는 문 밖에서 들리는 달그락 소리에 눈을 떴다.
그리고 불투명한 유리문 너머로 자판기 앞을 서성이는 그림자를 확인했다.
그래서 안심했었다.
아무리 늦은 시간이지만 자판기를 찾는 동네 사람들은 얼마든지 있을 수 있었으니 말이다.
하지만… 아무리 시간이 지나도 그 그림자는 지워지질 않았다.
뿐만 아니라 간간히 들려오는 그들의 말소리와 덜그럭거리는 자판기의 신음소리는 그녀로 하여금 그들의 정체를 확인하게 만들었다.
불투명한 유리문이었지만 싸구려 소재로 코팅이 된 이 유리문은 그녀가 시야를 확보하고도 남을 만한 구멍이 여기저기 나있었다.
그런 유리문에 얼굴을 갖다 댄 그녀는 볼 수 있었다.
건장한 남자 하나가 가게 앞에 선 자판기를 알 수 없는 막대기로 쑤시고 있는 모습을.
그리고 조금 떨어진 곳에 자판기 앞에 남자와 동료로 추정되는 남자가 칼을 들고 행인을 위협하는 모습을 말이다.
그녀는 그 모습을 보자마자 빨리 경찰에 신고해야겠다고 생각했다.
최근 좀도둑이 기승을 부리면서 경찰들도 신고 전화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었기에 좀도둑이 들 법한 곳으로 유력하던 이곳 슈퍼라면 순식간에 도착할 수 있을 터였다.
그리고… 행인에 대해서는 크게 걱정하지 않기로 했다.
그도 그럴 것이 이 근방에 유행한다는 좀도둑이 사람을 해쳤다는 소리는 들어본 적이 없었다.
그들은 좀도둑답게 이런저런 가게에 들어가 현금과 자질구레한 물품을 훔칠 뿐, 설령 목격자가 튀어나온대도 사람을 해치는 경우는 없었다.
그렇기에 그녀 역시 이 새벽 경비를 자청할 수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그런 생각도 잠시.
그녀의 눈에 칼을 든 남자가 행인을 향해 거침없이 칼을 휘두르는 것이 보였다.
그 기세가 얼마나 흉험한지, 멀리서 바라보는 그녀에게조차 칼에 살기가 가득한 게 보일 지경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