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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령의 주인 1권 (16화)
4. 죽음과 바름 (6)
현우가 골목을 떠난 시각.
경기도 인근의 모처에서는…….
“……저 조장님?”
“무슨 일이 있나?”
조금 침침해 보이는 어두운 색의 로브를 입은 연구원의 부름에 그들을 총괄하던 조장이라 불린 자가 반문했다.
평소에야 그와 연구원들의 실력 차이 때문에 여러 질문을 받고는 했지만 오늘 그가 그들에게 맡겨둔 일은 딱히 마법 실력을 필요로 하는 일도 아니었을 뿐 아니라, 그저 성공 실패에 대해서만 보고하면 되는 일이었다.
비록 일을 진행할 요원이 부족하여 민간 업자를 속여 일을 시켜놓긴 했지만, 그들도 나름 분야의 프로인 바 딱히 어렵지도 않은 일을 실패할 리가 없는 일이었기에 그의 반문은 꽤나 당연했다.
“그게…….”
“설마… 실패한 것은 아닐 테지?”
말을 흐리는 연구원의 모습에 가장 최악의 경우를 떠올린 조장은 그의 배후이자 상사인 한 남자의 모습을 떠올리며 식은땀을 주르륵 흘렸다.
이번 일의 성공을 호언장담했던 만큼, 만약 일에 실패했다면 그에게 내려질 처벌이 무엇인지 짐작조차 하기 힘들었다.
그의 상사는 상벌에 있어 철저한 사람이었으니 말이다.
“제길! 민간에서 힘깨나 쓴다는 녀석들이 겨우 그런 일을 실패했다니! 실패 원인은?! 설마 경찰한테 붙잡혔나?”
“아니, 아닙니다, 조장님……! 그게… 사실…….”
“뭐야! 그게 아니면 뭔데! 빨리 말해봐!”
이미 실패를 떠올리고 있던 탓인지 연구원의 아니라는 말에 한결 마음이 편해지긴 했지만 여전히 불안해하는 연구원의 모습을 보면서 조장의 얼굴은 여전히 펴질 줄을 몰랐다.
“그… 자세한 건 이 보고서를 보시는 게…….”
홱!
“…….”
말이 끝나기 무섭게 연구원의 손에 들려있던 서류철을 빼앗아 든 조장의 눈이 데굴데굴 움직이며 서류의 내용을 훑어 나갔다.
그리고 이내… 조장도 연구원과 같은 표정을 짓게 되었다.
“이건… 확실히 이상하군.”
“그렇습니다. 본래 저희가 계획한 대로라면 이보다 조금 더 많거나… 혹은 예정된 수치에 정확히 맞게 나타나야 했습니다만…….”
“그래… 이건 압도적으로 많군.”
서류철에는 기존에 그들이 기획했던 예상도의 수치와는 현저한 차이를 보이는 그래프가 그려져 있었다.
“그들에게 쥐어준 아티팩트는 고작해야 1클래스 일반 마법 수준의 마나 정도가 포함되어 있었을 뿐이고, 저희가 지정해둔 자판기 역시 그 정도 수준의 마나가 있다는 걸 분명히 확인했었습니다. 만약 계획대로 저희가 보낸 아티팩트와의 상호작용으로 주변 마나가 증가했다면 이렇게 압도적인 차이가 나올 수 없습니다.”
“알고 있다. 여태껏 다른 지역에선 본 적 없던 일이니…….”
그들은 모종의 이유로 지역 이곳저곳을 돌며 각지에 설치된, 구형 마법 보안 장치가 장착된 자판기의 기능을 일부 변경하는 작업을 하고 있었다.
그리고 이 일은 사전의 철저한 시뮬레이션을 통해 수차례 검증을 해왔고 단 한 번도 실패한 적이 없는 일이었기에 꽤나 안심하고 있었다.
물론 시간적으로 수세에 몰려있던 만큼 급하게 민간인을 보낸 탓에 일말의 불안감은 있었다. 하지만 그들에게 쥐여 보낸 아티팩트는 기존에 사용되던 것보다 훨씬 개량된 것으로, 돈을 받은 민간업자들이 느닷없이 배신을 하지 않는 이상 실패할 리가 없는 일이었다.
하지만… 그 수많은 시뮬레이션과 실전 상황에서도 단연코 이런 일은 한 번도 없었다.
심지어 실패를 가정했을 때에도 이런 경우는 존재치 않았다.
게다가 그들의 상식선에선 불가능한 일이기도 했다.
“…그 구역 자판기가 업그레이드됐을 가능성은 없나?”
“전혀 없습니다. 자판기 업체 쪽을 해킹해서 언제나 예의주시하고 있지만 해당 업체는 사실상 도산 직전이기 때문에 현재 시중에 나와 있는 자판기에 대해 사후관리가 거의 되지 않는 중이고, 업그레이드를 지원할 만한 능력도 없는 걸 확인했습니다.”
“그래… 확실히 그랬지. 자판기 기종 자체가 바뀌었다면 보고되지 않았을 리 없을 테니 그것도 아닐 터…….”
“그렇습니다.”
“…….”
연구원의 대답을 끝으로 한참 말이 없던 조장은 서류를 내려다보며 인상을 찌푸리다가 이내 결심이 섰다는 듯 고개를 들었다.
“이건… 보고할 수밖에 없군…. 어쩔 수 없겠어.”
애당초 연구원들은 물론이고 조장인 그조차도 예상치 못했던 변수였다.
그러니 그들이 아무리 이 문제를 두고 머리를 싸맨다고 한들 원인은커녕 해결 방안조차 찾을 수 없을 게 뻔했다.
이런 것은 그보다 훨씬 실력이 뛰어난 확실한 상급자에게 물어보는 게 좋았다.
설령 상사에게 크게 깨지는 한이 있더라도 말이다.
‘물론 크게 깨지는 게 정신적인 부분이 아니라 육체적인 부분이 될 수도 있지만…….’
결국 그는 서류를 들고 연구실 구석에 난 작은 마법진 위에 섰다.
고작해야 사람 발 두 짝이 들어가는 게 최선일 법한 마법진에 구둣발을 조심스레 올리고 바로 옆 인공으로 제작된 마나 저장기의 스위치를 지그시 눌렀다.
꾸욱-.
“텔레포트.”
이내 그의 모습이 빛 무리에 싸여 사라졌다.
5. 그로 인해 (1)
늦은 아침.
현우는 느긋하게 잠에서 깨어났다.
마나 지배력이 고갈되다 못해 본신까지 깎아 먹었던 일이 있은 지 3일째 된 날이었지만, 어째선지 그 전보다 훨씬 활기차 보였고 그때보다 훨씬 몸이 불어난 모습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진신(眞身)을 일부 소모한 현우는 집에 돌아와 극심한 허기를 느꼈고, 3일간 말 그대로 먹고 자기만 하며 체력을 회복했기 때문이었다.
다만 회복된 건 체력뿐인 탓에, 깎여나간 생명력이 돌아온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어쨌거나 많은 식사를 한 덕분인지 그때에 비해 전체적으로 보기 좋아진 모습이었다.
물론 그전의 모습이 워낙 인간 같지 않을 만큼 처참했기에 큰 변화로 느껴진 것이었지, 사실 현우의 체중 같은 것은 크게 변한 바가 없었다.
‘으음……! 정말 푹 쉰 것 같군.’
마나 지배력을 극한으로 소모한 것은 그야 말로 수백 년 만의 일이었기에 현우는 극심한 피로감과 허기를 느꼈다. 덕분인지 그간의 귀향(?)에 대한 고민조차 잊고 먹고 자는 데 몰두해, 얼굴에 덮여져 있던 그림자가 조금 걷힌 느낌이었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현우가 돌아갈 방법에 대해 생각을 그만뒀다는 것은 아니었지만 말이다.
“마나 지배력을 극단적으로 소모한 탓인지 마나 지배력이 꽤나 상승했군.”
전화위복이라고 해야 할까? 현재 현우의 마나 수치는 3클래스를 넘어서 4클래스를 바라보는 수준에 이르렀다.
본래부터 성장 속도가 압도적으로 빠르기는 했지만 각 클래스는 이전 클래스까지의 모든 마나를 합한 것의 몇 배가 되는 마나를 필요로 하는 만큼 본래의 속도로 모았다고 해도 3일 만에 클래스 하나를 뛰어넘는 성과는 불가능했을 것이다.
‘단순히 마나 지배력을 소모한 것보다도 본신을 깎아 낸 영향이 더 큰 것 같긴 하지만…….’
생명의 위기를 자신의 생명을 깎아내 벗어난 것을 계기로 위기감을 느낀 현우의 본능이 마나를 많이 끌어모은 듯싶었다.
본래 칼롯 코즈너라면 자신의 본능을 자신의 의식이 지배하지 못했다는 데에 꽤나 불쾌해했을 테지만, 다다익선이라고 한줌의 마나도 아쉬운 지금 현우의 입장에선 그다지 불쾌할 이유가 없었다.
그리고 현우 본인은 여전히 인지하지 못하지만 이 또한 현우가 칼롯 코즈너와는 다른 사람임을 입증하는 증거이기도 했다.
“음… 오늘은… 학교에 가 볼까?”
침대에서 일어나 작은 창문으로 맑은 하늘을 올려다본 현우의 중얼거림은 놀라운 것이었다.
불과 3일 전까지만 해도 학교에 대한 트라우마로 인해 학교를 간다는 생각을 하기는커녕 빨리 이곳 세상을 벗어나고 싶다는 생각으로만 머릿속이 가득했던 현우였다.
게다가 이성적인 판단을 못하고 죽음으로 이곳을 벗어나겠다는 생각을 하던 현우였다.
그런 현우가 느닷없이 학교를 가겠다고 생각한 것은 혹여 이번에야 말로 현우가 진짜 미친 것은 아닐까 싶을 만큼 놀라운 일임에 틀림없었다.
하지만 지금의 현우는 지극히 이성적이었다.
또한 죽음으로 이 세상을 벗어나겠다는 생각 역시 버리지 않았다.
아니, 오히려 지금에 와서는 보다 확신을 갖고 있었다.
‘나 자신이 차원 이동의 산증인인 만큼 분명 영체가 차원 간의 이동이 가능하다는 것은 확실해…. 하지만 그 방법은 불확실한 만큼 나에겐 준비가 필요해.’
다만 확신을 한 만큼 조금 더 철저해질 필요가 있다는 것을 깨달았을 뿐이었다.
‘고작해야 3클래스에 간당간당한 마나로 차원 도약을 꿈꾸었던 것부터가 문제였어. 철저히 준비를 해도 모자를 판에 말이야.’
그래서 결심을 한 것이다.
마법으로 다른 사람들로부터 완전히 잊힐 수 있고, 마법을 통해 죽음을 기반으로 차원 이동의 준비가 가능해질 때까지는 한동안 평범한 생활을 하기로 말이다.
이런 생각도 현우가 남들보다 압도적으로 빠른 마나 성장을 하고 있기에 생각 가능하고 계획 가능한 이야기였지, 만약 현우가 이번 계기로 마나가 급격히 성장하지 않았다면 지금쯤 현우는 학교 갈 준비를 하는 게 아니라 다시 한 번 자신이 죽을 장소를 찾아 깊은 산골을 뒤지고 있을 것이었다.
물론 여전히 죽음으로서 차원 이동을 한다는, 남들에겐 허무맹랑한 이야기가 주된 생각이었지만 현우는 지금 누구보다도 진지했다.
현우에겐 그럴 만한 지식이 있었으니 말이다.
그의 전신은 대언령사 칼롯 코즈너, 연구하지 않고 그저 떠오르는 것을 사용하는 마법의 조종 드래곤보다도 마법적 지식만큼은 더 많은 것을 안다고 자부하는 남자였다.
그리고 그중에는 분명 차원 이동에 관한 지식도 존재했었다.
물론 현우가 알고 있는 이전 세상의 차원 이동과 관련한 지식은 대부분의 마법사들에게 외면 받아온 분야였기에 그리 많지 않았다.
또한 그들이 생각하는 다른 차원의 기준은 천계나 마계를 기반으로 했기에 연구된 부분은 현우가 필요로 하는 부분과 꽤나 다른 측면이 있었다.
하지만 그야말로 동떨어진 세계에서 이동해온 현우는 그들과 상당히 다른 측면으로 이 마법에 접근했었고, 결과를 내진 못했지만 차원 이동에 관해 꽤나 많은 지식을 쌓을 수 있었다.
그리고 비록 불완전하다곤 하나, 그런 지식을 기반으로 예측컨대 분명 죽음을 통한 차원 이동은 가능하다는 것이 현우의 결론이었다.
‘물론 그런 마법을 사용하는 데 있어서 최소의 기준이 6클래스긴 하지만…….’
6클래스.
칼롯 코즈너의 세상에서 6클래스는 천재라 불리는 ‘인간’이 오를 수 있는 최상위 클래스였으며, 지금 현우의 세상에선 ‘인간’이 이룰 수 없는 경지라 불리는 클래스였다.
하지만 현우는 자신 있었다.
지금 현우가 가는 길은 이 세상의 마법사들처럼 알아서 개척해나가야 하는 길이 아니었다.
또한 칼롯 코즈너 쪽 세상의 마법사들처럼 막연히 새로운 깨달음을 기다리며 언제 끝날지 모르는 지루한 연구를 해야 열리는 길이 아니었다.
이미 한번 밟아본 길.
현우에게 6클래스 급 마나를 다룰 수 있는 마나 지배력만 존재한다면 얼마든지 활용 가능한 경지였다.
게다가 현우가 진짜로 목표로 삼는 것은 따로 있었다.
‘7클래스……! 최소 7클래스 급 마나가 필요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