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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령의 주인 1권 (17화)
5. 그로 인해 (2)
6클래스만 해도 이전 세계에서는 이름 있는 마법사들이나 왕국 규모의 나라에선 나라를 대표하는 마법사였지만, 현우가 노리는 건 그보다 한 단계 높은 7클래스의 마법이었다.
하지만 7클래스 급 마나를 모으기란 요원한 일이었다.
아무리 현우의 마나 성장 속도가 빠르다고 해도 6클래스까지의 마나를 모두 합친 것의 몇 배에 이르는 마나를 모은다는 건 아무리 빨라도 수년이 걸리는 일이었다.
그래서 현우는 6클래스를 목표로 했다.
6클래스에만 이르면 현우는 자신이 가진 바 지식을 이용해 7클래스의 마법을 사용할 예정이었다.
마나의 최대 가용 범위를 강제로 늘려주는 마나 증폭 마법진, 그리고 현우가 많은 연구를 통해 얻어낸, 효율을 극단적으로 늘린 마법 수식들은 이를 가능케 할 터였다.
하지만 6클래스의 몇 배에 달하는 마나를 과연 마법진과 수식의 보조만으로 충당할 수 있을지는 아직 현우에게 있어서도 미지수였다.
이론적으로는 가능함을 이미 머릿속 계산으로 끝내긴 했지만, 누가 뭐래도 실전과 이론은 차이를 보이기 마련이었기에 불안감이 있었다.
이전 칼롯 코즈너 시절에 실험해 봤다면 좋았을 테지만, 그때에는 그런 무리한 시도를 해볼 필요도 없었을 뿐 아니라 현우가 수식을 개량해낸 것은 8클래스 급에 이르러서 심심한 차에 만들어 놨던 것이었다.
6클래스나 7클래스 때는 알지 못하였으니 실험해 봤을 리가 없었다.
물론 그 수식과 마법진을 세상에 풀어 남들이 사용하는 것을 보며 귀찮은 실험단계를 압축할 수도 있었지만, 8클래스에 이른 이후에는 그마저도 귀찮았기에 실제로 사용해본 적이 없었던 것이다.
사실 클래스가 떨어지는 게 아닌 다음에야 필요한 게 아니었으니 그럴 만도 했지만, 막상 그런 상황이 닥치니 시간이 넉넉하던 그때가 아쉬운 현우였다.
‘하지만 6클래스가 필요한 이유는 그뿐만은 아니지. 1클래스부터 6클래스의 마법은 자연, 세상, 사물의 일부를 모방하지만 본격적으로 공간을 다루는 마법은 7클래스부터 그 개념이 존재하니 말이야.’
모두가 흔히 아는 파이어볼, 윈드 커터, 체인라이트닝과 같은 원소계 마법은 물론이고, 스톤 스킨 아머, 헤이스트와 같은 보조계열 마법 역시 자연물과 각종 사물의 형태를 모방하고 조합한 마법이었다.
심지어 흔히들 공간이동 마법으로 알고 있는 6클래스의 텔레포트조차 실상은 자연계 원소를 이용한 초광속 이동마법이었다.
물론 마법이 다양한 만큼 이런 6클래스까지의 마법 중 유일한 예외가 있었는데 바로 5클래스의 블링크 마법이었다.
블링크는 텔레포트와 같이 ‘순간이동’ 마법임에도 불구하고 7클래스에 이르러 다루게 되는 ‘시공간’의 개념을 이용한 마법이었다.
그래서 칼롯 코즈너의 세상에선 이 마법을 5클래스의 마나로 사용하는 7클래스 마법이라고도 불렀으며, 이 마법의 사용 유무가 7클래스를 이룩할 수 있느냐 없느냐를 판별하는 첫 번째 관문이기도 했다. 그리고 실제로 6클래스에 이를 때까지 블링크를 사용 못하는 마법사가 7클래스에 오른 경우는 전무했다.
어쨌거나 이렇게 블링크를 제외한 6클래스까지의 모든 마법은 이 세상 자연물, 사물을 비롯한 무언가의 복제형이었다.
하지만 7클래스는 그렇지 않았다.
이른바 탈인간(脫人間)의 경지라 불리는 7클래스.
마나에 선택받은 인류 중에서도 정말 ‘특별한 존재’만이 오를 수 있는 지고지순한 경지였다.
그들이 다루는 것은 자연물의 모방이 아니라 자연 그 자체였으며, 세상을 이루는 공간을 비집는 게 아니라 공간 자체를 복속시켜 부리는 것이었다.
즉, 하위의 마법사들이 자연물과 함께하는 백성의 입장이라면 7클래스의 마법사는 그들을 지배하고 다루는 귀족, 지배자의 입장이라는 것이다.
만약 그들이 사용하는 마법이 어떤 사물, 혹은 누군가를 닮았다면 그것은 모양이 비슷한 완전히 새로운 것이라 보는 것이 현명했다.
인간의 모습을 하고 있으나 인간이 아닌 경지에 이른 이들이 사용하는 마법이란 그런 것이었다.
그리고 현우는 이 엄청난 마법들 중 차원 이동을 위한 공간을 다루는 힘이 필요했다.
‘비록 7클래스의 공간 마법은 상위 클래스에 비해 떨어지긴 하지만 공간의 통제권을 그렇게라도 얻을 수 있다는 것을 다행으로 생각해야겠지.’
세상의 마법에는 몇 가지 규칙이 있었다.
첫째로 마법에는 마나가 필요했다.
둘째로 마법을 사용하는 자는 말에 책임을 질 수 있어야 했다.
셋째로 특수한 마법엔 세상이 정한 기준이 있다는 점이었다.
이중 차원 이동을 이루기 위해 현우가 얻고자 하는 공간의 통제권은 세 번째 규칙을 기반으로 하는 이론이었다.
공간을 다룬다는 건 기존 자연물에서 따온 마법에 비해 압도적으로 어렵고 사실상 기존 마법들과는 완전히 다른 개념이었다.
하지만 그 어려움을 극복하고 이를 자유자재로, 수족처럼 부릴 수만 있다면 그야말로 완전무결, 절대무적의 존재가 될 수 있었다.
그래서 세상에는 기준이 존재하는 것이다.
혹시라도 공간이 가지는 어떠한 규칙을 꿰뚫어보고 이를 무제한적으로 다룰 수 있는 존재가 나타나는 것을 막기 위해, 세상은 자신과 그곳에 살아가는 모든 것을 보호하기 위해 이를 다루는 데 기준을 걸어둔 것이었다.
그리고 그 첫 번째 기준이 바로 지식.
두말할 것도 없이 공간 마법에 대한 지식, 개념을 완벽히 이해하는 가였다.
두 번째 기준은 바로 마나.
7클래스 급에 이르는 대용량의 마나가 공간 마법을 활성화시키는 두 번째 조건이었다.
즉 마법사의 클래스는 단순히 그 마법사의 수준이나 총 마나양이 얼마나 되는가를 나타내는 게 아니라 그 마법사가 다룰 수 있는 세상의 규칙이 어디까지인가를 알리는 표식인 것이다.
세상은 스스로를 위협 할 수 있는 위험한 힘이 남용되는 것을 막기 위한 제약으로 이 두 가지를 든 것이다.
“두 번째 제약은 시간만이 해결할 수 있으니 결국 조금 미리 만족하는 수밖에…….”
현우는 그렇게 앞으로의 일에 대해 생각하며 방문을 나섰다.
그리고 거실에 멍하니 앉아있던 새엄마와 마주쳤다.
서로 간에 간섭을 하지 않는 만큼 아주 잠깐, 찰나지간 스쳐 지나며 마주친 그녀의 동공에서 현우는 많은 것을 읽어낼 수 있었다.
그를 볼 때마다 잘게 떨며 동공에 내려앉은 불명확한 불안.
현우란 존재에 대한 불신.
그리고… 걱정.
현우는 이를 덤덤히 지나쳤다.
그녀의 그런 눈을 보기 시작한지 이미 며칠이나 지났다.
익숙해질 만큼 익숙해진 시선은 현우에게 아무런 감흥을 주지 못했다.
물론 처음에 그녀의 눈을 똑바로 봤을 때.
현우는 꽤나 충격을 받았다.
걱정이라니…….
여태껏 수년간 아는 체도 않던 이의 눈에 보이는 걱정은 현우를 아주 조금, 아주 조금보다 조금 더 조금… 그를 흔들어 놓았다.
아마도 그때였을 것이다.
죽음에 자원하기 전 얼마간 학교에 다시 가기로 결정한 것은.
아주 조금이지만, 자신을 향해 의미 있는 눈빛을 보내준 이의 걱정을 조금이나마 덜어주고자 했던 생각에서였다.
꽤나 충동적인 결정이었지만 당시엔 그게 잘한 선택이라고 생각했다.
이미 곧 죽을 것임을 스스로 천명한 현우는 자신에게 수많은 트라우마를 안겨준 지옥 같은 학교도 사실 크게 겁이 나지 않았다.
그래서 ‘학교에 가야겠다’라는 말을 직접 입으로 언급하면서 언령사로서, 스스로 벗어 날 수 없는 약속을 했을 때까지만 해도 현우는 그렇게, 후회하지 않는다 생각했다.
하지만.
조금 더 시간이 지나고, 그와 같은 눈빛을 여러 차례 더 마주쳤을 때.
현우는 떠올렸다.
과연 저 사람이 걱정의 눈빛을 띄는 게 현우 자신을 향한 것일까.
아니면 자기 자신을 향한 것일까.
서로에 대한, 현우가 보는 사람에 대한, 그리고 세상 모두가 보는 현우에 대한 불신을 전제로 깔고 생각하기 시작했다.
잘게 흔들리던 마음을 다잡고 보자 다시 세상이 변했다.
현우는 그녀가 자신을 키우는 대가로 아버지로부터 생활비를 비롯한 돈을 받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리고 조건 또한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가령 현우가 대학으로 진학한다면, 그만큼 많은 돈을 지급받는다는 식의 계약 조건 말이다.
그런 조건에 매인 그녀가 걱정의 눈빛을 띠었다면.
그건 과연 현우를 향한 것이었을까.
수년간 살아오며 수많은 괴롭힘으로 피투성이가 된 채 집에 돌아와도.
며칠간 마음대로 학교를 가지 않아도.
그리고 매번 현우의 방에서 구타하는 소리가 들려와도…….
언제나 무표정하던 그녀가 걱정의 눈빛을 띠었다면.
그게 과연 자신을 향한 걱정이 아니라고 할 수 있었을까.
뛰어난 현우의 머리는 그간 무단결석한 횟수가 슬슬 유급 조건을 충족해 가고 있음을 단숨에 깨닫게 했다.
현우는 무릎을 탁 쳤고, 잠시 잠깐의 꿈에서 깨어날 수 있었다.
하지만 이제 와 학교에 가는 것을 무를 수는 없었다.
마법사에게 있어서 말이란 것은 힘이며 약속이었다.
수식을 술식으로 만드는 주문도, 마법의 발동을 외치는 명령어도 모두 말이었다.
약속한 말의 법칙으로 수식을 만들고 마법을 만드는 그들에게 있어서 자신의 말은 암묵적인 계약의 의미였다.
스스로가 스스로에게 건 계약을 자의로 파기하게 되면, 말로서 약속한 자가 스스로의 말을 어긴다면, 그의 말은 거짓된 말이 되어 힘을 잃는다.
이는 곧 주문력의 약화, 마법의 약화로 이어진다.
그래서 마법의 조종, 드래곤들은 그들이 본신일 때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
이는 마법을 주로 다루는 엘프 역시 마찬가지.
다만 인간 마법사만이 거짓말을 일삼을 뿐이다.
하지만 그중에서도 유달리 엘프나 드래곤처럼 말을 조심히 사용하는 인간 마법사가 있으니, 그게 바로 언령사였다.
보통의 마법사들에 비해 마법적 혜택을 가지는 대신 평생 스스로의 말을 조심하고 경계해야만 한다.
순수하게 언령으로 쌓아올린 마법을 다루는 이들의 약속은 보통 마법사가 가지는 약속의 몇 배나 되는 강한 약속이니 말이다.
그래서 현우는 반드시 학교를 가야만 했다.
사실 굳이 안 갈 생각도 없었지만…….
그래도 어쩐지 이렇게 학교를 가게 되면 억울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마치 속은 것 같아서 기분이 나빴다.
현우는 자신이 학교를 가는 것에 이유를 덧댔다.
-그녀는 나를 키우는 조건으로 생활비를 얻는다. 내가 일상에 불성실해지면 지원이 줄거나 끊어질 터 그러니 나는 ‘나를 위해’ 학교에 간다.
철저한 계약에 의해, 자신이 움직이는 것이라고 현우는 스스로를 위안했다.
자신이 학교를 가는 것에 대해 확실한 이유를 달았다.
스스로를 납득시킬 수 있는 충분한 이유를 말이다.
“…….”
세안을 마치고 나올 때 현우는 다시 한 번 그녀와 마주쳤다.
지금까지와 다를 바 없는 눈빛.
방 안에 들어간 현우가 이번엔 교복을 입고, 가방을 메고 나왔다.
그리고… 다시 한 번 눈을 마주쳤다.
“…….”
“…….”
명백히 달라진 눈빛.
잠시 서로를 지그시 바라보던 두 시선은 이내 서로를 회피했다.
무엇을 기대했던 걸까?
현우는 생각해보았지만, 답을 내릴 수는 없었다.
학교를 가기엔 늦은 시간.
현우는 느긋하게 하루를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