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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화
강권은 이런 의문을 가졌지만 자신의 느낌으로는 기와 마나는 설명하기 곤란할 정도로 미묘한 차이가 있었다.
명학은 3개월 정도 마법을 죽어라고 연마하는 것 같더니 5서클 마스터가 됐다면서 더 이상 마법을 연마하지 않았다.
5서클 이상을 만들 정도의 마나량을 늘리려면 마나집적진만으로는 한계가 있었기 때문이다.
명학은 마법 수련을 마치고는 정령을 소환해서 계약을 맺었다.
“정령?”
명학이 소환해서 계약한 정령은 살라만다라는 도마뱀처럼 생긴 불귀신이었다. 강권 또한 명철로 살 때 부렸던 지박령(地縛靈)과 비슷해 보였는데 지박령과는 느낌이 또 달랐다.
지박령은 그 자체가 이승에 한이 있어서 저승으로 떠나지 못한 사람의 영혼이어서 음의 성질을 가졌고 다루기가 어려웠다.
반면에 정령은 영혼과는 별개라는 인상이 강했는데 양의 성질을 띤 것 같으면서도 중성적이었고 명령에 절대 복종했다.
또한 정령이라는 것이 지박령보다는 훨씬 다양한 용도로 부릴 수 있었고, 장소에 얽매이지도 않았다. 강권의 소견으로는 정령이 지박령보다는 훨씬 매력적이 아닐 수 없었다.
이 정령이라는 것은 땅의 정령, 물의 정령, 바람의 정령, 불의 정령이 있는 것 같았다.
“전생에 명학은 불의 성질을 갖는 병오신공(丙午神功)을 익혀서 불의 정령을 소환할 수 있다면 나는 땅의 성질을 갖는 무진신공을 익혔으니 땅의 정령을 소환할 수 있겠네. 그럼 나도 정령이라는 것을 소환해서 계약을 해 볼까?”
이것은 명학이 했으니 자신도 할 수 있으리라는 생각에서 너무 앞질러 생각한 것이었는데 다행스럽게도 맞아떨어졌다.
완전 소경 문고리 잡는 식이었다. 강권은 명학이 한 대로 정령을 소환하자 노옴이라는 정령이 나타났다.
[나는 노옴이다. 그대가 나를 소환했나? 나와 계약하겠는가?]
강권은 나타난 정령을 보고 은근 실망을 했다.
볼이 잔뜩 부은 것이 마치 심술이 닥지닥지 붙어 있는 것 같은 심술영감이 나타났던 것이다. 그나마 그것뿐이면 다행인데 말하는 것부터가 짜증이 풀풀 풍겨 났다.
‘흐미, 나는 왜 명학이 저 녀석처럼 좀 쌈빡한 정령이 나타나지 않는 거지? 명학이 저 녀석이 하는 것처럼 불타는 것 같은 붉은 도마뱀을 어깨에 얹고 다니면 얼마나 폼이 나겠어?’
강권은 구시렁거렸지만 자신에게는 땅의 속성만 있으니 어쩔 수 없는 노릇이었다.
그렇다고 나타난 정령과 계약을 하지 않으면 다시는 정령과 계약을 하지 못한다는 생각이 들자 어쩔 수 없이 계약을 맺었다.
뚝배기보다 장맛이라고 그나마 위안이 되는 것은 노옴은 땅의 정령답게 땅속에 있는 것들을 기가 막히게 찾는다는 것이었다.
노옴은 도라지며 더덕, 심지어는 산삼까지도 찾아내서 캐 오기까지 했다. 더욱 좋은 점은 노옴을 소환하면서 내공을 소진하면 소진할수록 내공이 폭발적으로 증가한다는 것이었다.
게다가 무진신공의 성취에도 상당히 도움이 되는 것 같았다.
“내가 심마니였다면 죽였겠는데…….”
강권은 각종 약초와 버섯을 캐는 것으로 정령 마법을 익혀 갔다.
정령 마법을 익히게 되자 강권은 마법에 더욱 심취했다. 마법이란 것이 무공보다도 훨씬 다양한 용도로 쓸 수 있는 것이 마음에 쏙 들었다.
마법이 어느 정도 익숙해지자 강권의 생활은 훨씬 더 윤택해졌다. 마법을 쓰기 전에는 오로지 벽곡단과 생식만으로 버텨야 했지만 파이어 마법으로 약초며 짐승 등을 구워 먹을 수 있었던 것이다. 한 가지 불만은 명학과는 달리 마법의 진척이 엄청 더디다는 것이었다.
“젠장, 내가 저 녀석보다 그렇게 멍청한 건가? 명학 저 녀석은 불과 3개월 만에 5서클 마스터가 되었는데 나는 어째서 3개월 내내 죽어라고 연마를 했어도 계속 3서클에 머무르는 것이지? 게다가 나는 처음부터 세 개의 서클을 만들어서 시작했는데 말이야?”
강권은 명학이가 마나집적마법진을 사용해서 특별하게 방법을 써서 마법을 익혔다는 것은 생각지 않고 구시렁거렸다.
그러다 문득 명학이 했던 방법이 떠올랐다.
“마나집적마법진? 나도 명학이 녀석처럼 한 번 해 볼까?”
명학이가 펼친 마나집적진은 강권의 머릿속에 있었기 때문에 마나집적마법진을 만드는 것은 그다지 어려운 일은 아니었다.
물론 마나석이 없는 상태에서 만든 마나집적진이어서 큰 효과를 보지 못한 것은 당연했다.
“에이! 별로 쓸모없잖아.”
강권은 투덜대다 명학은 마나석이라는 보석 같은 돌을 사용해서 마법진을 만들었다는 게 떠올랐다.
“마나석? 돌 속에 마나가 들었다는 건가?”
이계에는 마나석 외에도 그와 비슷한 마정석, 정령석 등이 있었다. 그런데 문득 마정석이 내단 비슷한 것에 착안을 해서 이쪽 세상에서도 마나석이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노옴, 반짝이는 돌 알지? 땅속에 한 번 반짝이는 돌을 찾아올래?”
[알았다.]
노옴은 특유의 퉁명스런 말투로 대답을 하고는 땅속으로 들어갔다. 강권이 말한 반짝이는 돌이란 마나석을 가리킨 것이었지만 노옴은 보석을 말하는 것으로 알아들었다.
강권은 노옴이 마나석을 찾아올 것이라고 크게 기대는 하지 않았지만 혹시 보석을 찾아올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가졌다.
그런데 노옴은 몇 시간이 지나도 돌아오지 않았다.
“얘, 어디로 사라져 버린 것 아냐?”
정령은 마나만 계속 제공한다면 계약자의 말을 거역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고 있지만 3시간이 지나면서부터 강권은 내공이 달려서 하는 소리였다. 강권의 내공이 꾸준히 소모되는 걸로 봐서는 여전히 반짝이는 돌을 찾고 있을 것이다. 문제는 강권의 몸속에 있는 내공의 양이었다. 강권이 산삼과 소청단을 복용해서 나름 내공의 기초가 탄탄하다고는 하지만 무한정이지는 않아 이렇게 계속 소모하면 주화입마에 빠질 가능성도 있었다.
“에이! 후딱후딱 오지, 굼벵이처럼 뭘 그리 꾸물거리고 있지?”
노옴이 올 기미가 없자 강권은 별수 없이 가부좌를 틀고 앉아 무진신공을 운기조식을 계속할 수밖에 없었다.
강권이 죽기 살기로 운기조식을 만 하루를 하면서 거의 녹초가 다 되어서야 노옴이 돌아왔다.
“왜 그리 오래 걸린 거야?”
[반짝이는 돌, 깊은 곳에 있다. 노옴 쉬지 않고 깊은 곳까지 가서 반짝이는 돌들을 가져왔다. 노옴 힘들었다.]
강권은 노옴이 가져온 분홍 색깔의 돌들을 보자 정말 아름답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마나석이라고 부를 만큼 그렇게 마나가 많이 든 것 같지 않아 내심 실망을 했다.
“노옴, 수고했다. 그런데 이 돌들은 무슨 돌들이야?”
[반짝이는 돌, 인간들 좋아한다. 반짝이는 돌, 단단하다. 반짝이는 돌, 비싸다.]
강권은 노옴이 반짝이고 비싸다고 하자 그저 보석의 일종이라는 생각만 했다. 강권은 *다이아몬드[우리나라에는 다이아몬드가 나지 않은 것으로 알려져 있지만 다이아몬드가 날 개연성은 충분히 있다. 다이아몬드가 생성되기 위해서는 고온, 고압의 조건이 필요하다. 따라서 다이아몬드는 주로 대륙의 두 판이 충돌하는 곳에서 발견된다. 우리나라 근처에서 그러한 조건을 갖춘 곳은 중국 대륙의 탄루 단층대가 있고 여기에서 다이아몬드와 코어사이트 등이 발견되고 있다.
그런데 학자들은 우리나라의 임진강 단층대와 옥천 단층대를 그 탄루 단층대의 연장선상에 있는 곳으로 보고 있다.
그러므로 임진강 단층대와 옥천 단층대에서도 다이아몬드가 날 수 있는 가능성은 충분하다.
실제로 1935년 2월, 지질학자 박동길 교수가 사금과 석류석을 감정하는 도중에 0.1캐럿의 다이아몬드를 발견했다. 그리고 이 다이아몬드는 현재 서울대학교에서 소장하고 있다고 한다.]를 한 번도 본 적이 없어서 그것이 진짜 다이아몬드라는 것은 꿈에도 생각지 못했다. 게다가 우리나라에는 다이아몬드가 나지도 않으니 다이아몬드 원석이라는 것은 전혀 생각조차 할 수 없었다.
노옴이 가져온 다이아몬드들 중에는 큰 것은 어린아이 주먹만큼 큰 것도 있었고, 작은 것들도 콩알 만했다.
전부 따지면 수백억 원의 가치가 있는데도 정작 주인인 강권은 전혀 알지 못하고 있는 것이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었다.
명학이 홀연히 사라지고 난 다음부터 강권은 자신의 뇌리에 새겨진 8클래스까지의 법문들을 혼자의 힘으로 이해해야 했다.
명학이 수련하면서 곁다리로 익힐 때와 혼자의 힘으로 익히는 것과는 천지 차이였다. 아직도 마법을 무공의 일종으로 생각하고 있는 강권에게 마법이란 여전히 뜬구름 잡는 얘기였다.
결국 진도는 나가지 못하고 각 클래스마다 어떤 마법이 있다는 것을 확인하는 정도에 그칠 수밖에 없었다.
그렇지만 그것 자체도 강권의 흥미를 끌기에 충분했다.
“와아, 어떻게 백 리도 넘는 곳을 단숨에 가고 조그만 가방 속에 그 많은 물건들이 들어갈 수 있는 거지? 백 리도 넘는 곳을 단숨에 가려면 내공의 고리가 일곱 개는 되어야 하고, 많은 물건을 담을 가방을 만들려면 고리가 여덟 개는 되어야 하는구나. 쩝, 나는 이제 겨우 내공의 고리가 세 개니, 언제 저런 것들을 할 수 있을까?”
강권은 내심 탄식을 하다 문득 스승 무무상인에게 고대에는 그런 도술이 있었다고 들었던 적이 있었다는 것이 생각났다.
“축지법과 **화수분[중국 진시황 때에 있었다는 하수분(河水盆)에서 비롯한 말이라고 한다. 진시황이 만리장성을 쌓을 때 군사 십만 명을 시켜 황하수(黃河水)를 길어다 큰 구리로 만든 동이를 채우게 했다. 그런데 그 물동이가 얼마나 컸던지 한 번 채우면 아무리 써도 없어지지 않다고 한다. 황하수 물을 채운 동이라는 뜻으로 ‘하수분’이라고 하던 것이 나중에 그 안에 온갖 물건을 넣어 두면 새끼를 쳐서 끝없이 나온다는 보배의 그릇을 뜻하게 되었다.]을 만들 수 있는 것으로 보아 마법이라는 이계의 무공은 도술의 일종인 모양이지?”
강권은 3클래스까지의 마법을 쓸 수는 있지만 전반적으로 마법에 대한 기초지식이 없어서 텔레포트와 인피니트 백을 도술의 일종으로 이해했다.
“그런데 [파이어 볼]이라는 불을 만드는 무공과 [플라이]라는 날아다니는 무공은 꽤 괜찮은 무공이로군. 거기다 [큐어]라는 치료 무공은 또 어떻고. 정말 [큐어] 마법을 펼치면 상처를 치료할 수 있을까?”
강권은 의문이 있으면 몸으로 때워서라도 해결해야 직성이 풀리는 성격이다. 그래서 급기야 자해를 하여 [큐어] 마법의 효력을 확인하였다. 자해라야 주먹으로 바위나 나무를 내지르는 것이니 편공의 수련이요, 정권 단련이니 전혀 주저할 이유도 없었다.
* * *
인사동에 등산을 하고 온 것처럼 보이는 청년이 나타났다.
바로 최강권이었다. 강권은 마법이나 무공에서 더 이상의 진경이 없어 더 있어 봐야 시간 낭비라는 생각에 하산을 했다.
그가 인사동에 나타난 것은 도자기를 팔아 여유 자금을 마련하기 위한 것이었다. 정 노인에게 받은 돈이 얼마 남아 있기는 했지만 혈혈단신으로 세상에 의지할 데가 한 곳도 없으니 돈이라도 넉넉히 있어야 할 것 아니겠는가. 강권이 팔려는 도자기는 산삼주가 담겨져 있던 것으로 관요(官窯)에서 나온 도자기였다.
당근 비싸다는 말이었다. 조선 초기에는 관요에서 나오는 자기들은 궁중에만 진상되었다.
그런데 정성기는 도화서(圖畵署) 소속의 화공들을 알고 있었기 때문에 이 도자기들을 얻을 수 있었다.
예나 지금이나 인간들은 자신의 운명을 알기를 원했고, 정성기는 그걸 알려 줄 수 있으니 그들에게 도자기를 얻는 것 정도는 크게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관요에서 나온 도자기들은 대부분 억대를 호가한다. 특히 산삼주가 담겨져 있던 도자기는 정 노인이 10억을 받았던 것보다 나으면 나았지 못하지 않는 것이었다.
‘최소한 10억 이상은 받을 수 있으니 가장 큰 곳으로 가는 게 좋을 거야.’
강권은 내심 이런 생각을 하며 가장 그럴듯해 보이는 고옥당(古鈺堂)이라는 고미술상으로 들어갔다. 주인인 듯 보이는 초로의 중년인이 강권을 흘끔 보더니 사무적으로 맞이했다. 후줄근한 강권의 차림이 돈이 되지 않을 것이란 느낌을 주는 모양이었다.
“어서 오십시오. 어떻게 오셨습니까?”
“아! 예, 도자기 한 점 팔려고 왔는데요.”
고옥당의 주인인 조성후는 다시 한 번 강권의 차림새를 훑어보고는 시큰둥하게 물었다.
“그래요? 어떤 도자기인지 좀 볼 수 있을까요?”
강권은 노상 이런 대접을 받았기 때문에 별 거부감 없이 배낭에서 도자기를 꺼내 놓았다.
“청화백자용호문호군요. 그런데 너무 깨끗한 것이…….”
“별로 사용하지 않았으니 깨끗하기는 할 겁니다.”
관요에서 금방 나온 따끈따끈한 신상에 산삼주를 담가서 토굴에 묻어 두었으니 깨끗하지 않으면 오히려 그게 더 이상할 것이다.
조성후는 강권의 심드렁한 대꾸에 오히려 흥미가 동했다.
“그래요? 한 번 보죠.”
인사동에서 잔뼈가 굵은 조성후는 감정인이나 마찬가지다.
도자기를 자세히 훑어보자 조선 초기 관요에서 나온 것이라는 확신이 들었다.
‘사대부 가문의 부장품이었는가 보네. 관요에서 나온 것을 묻을 정도라면…….’
조성후의 눈에는 강권이 도굴꾼 내지는 우연히 도자기를 주은 녀석이 분명해 보였다.
전자는 불법을 저지른 자고 후자 또한 점유이탈물횡령죄를 저지른 자이니 뒤가 구릴 것은 빤한 이치다.
그렇지 않다면 인맥을 통하거나 경매를 통하는 정상적인 방법으로 도자기를 팔려고 했을 것이기 때문이다.
일반적으로 골동품은 단가가 워낙 고가이기 때문에 이런 녀석을 잘만 만나면 평생 벌 돈을 한 몫에 잡을 수 있었다.
그런 일이 드물기는 하지만 인사동에선 몇 년에 한 차례씩은 꼭 있는 일이기도 했다.
‘이거 완전 봉이로군, 어젯밤 꿈이 좋더라니. 그런데 어떻게 후려쳐야 잘 후려쳤다고 소문나지?’
조성후 어떻게 하면 이 도자기를 꿀꺽할 수 있을 것인가 잔대가리를 굴렸다. 사실 골동품 감정이란 게 짜고 치는 고스톱이나 다름이 없는 것이어서 진품도 모조품이 될 수 있고 모조품도 진품으로 둔갑을 시킬 수 있다. 하지만 그러면 감정인과 이득을 공유해야 한다. 조성후는 그게 아까웠다. 그래서 한참을 궁리하던 끝에 이렇게 말했다.
“이런 말씀 드리기 죄송한데, 이거 모조품 같군요. 자기의 형태나 색깔을 보면 분명 조선 전기 관요에서 나온 것 같아 보이지만 당시의 청화백자는 궁중에서만 사용하였거든요. 그러다 보니 생산량도 거의 없었고요. 지금 시중에 있는 청화백자는 코발트 안료가 흔해진 조선 후기 작품이 대부분이고 초기 관요에서 나온 청화백자는 거의 없습니다.”
조성후의 말은 어느 정도 타당한 면이 있었다.
청화백자의 안료인 코발트는 조선 전기에는 전량 중국을 통해서 아랍산을 수입해서 쓴 까닭에 너무 비싸서 국법으로 왕실에서만 사용할 수 있도록 했었다. 강권 역시 그런 사실을 알고 있었다.
하지만 이 도자기는 화공들과 함께 광주 도요에 가서 직접 들고 온 까닭에 때려 죽여도 모조품일 리 없다.
강권은 주인의 말에 콧방귀를 뀌고 도자기를 집어 들었다.
강권이 도자기를 다시 배낭에 집어넣으려 하자 조성후는 강권의 얼른 행동을 제지하며 값을 후하게 쳐 주겠단다.
“그래요? 얼마 줄 수 있는데요?”
“1,000만 원 어떻습니까? 어디에 가서도 이 정도의 가격을 받지는 못할 것입니다.”
강권이 정 노인이 이 같은 도자기를 10억을 받았다는 것을 몰랐다면 그 정도에도 감지덕지 했을 것이다. 그렇지만 그런 사실을 알고 있는 강권은 조성후가 뭘 하려는지 빤히 알았다.
‘이 자식, 이거 순 날강도 아냐?’
강권은 이런 욕이 금방이라도 나오려는 것을 가까스로 참고 주인의 손에서 도자기를 채트려 배낭에 다시 집어넣으며 말했다.
“없던 일로 하지요.”
“그럼 얼마를 받으려고 하십니까?”
“아니요. 팔지 않겠습니다.”
강권은 딱 잘라 거절했다.
주인을 믿지 못했기 때문에 거래를 하고 싶지 않았던 것이다.
강권이 나가는 것을 보고 조성후는 즉시 어디론가 전화했다.
“강 사장, 큰 거 한 장, 이십 대 초중반, 붉은색 배낭, 방금 나갔어.”
조성후는 급했던지 옆에서 도자기를 구경하고 있던 아가씨들을 생각지도 않고 인사동과 낙원동 일대를 장악하고 있는 쌈지파에 붉은 색 배낭을 가로채라는 의뢰를 했다.
조성후가 말하는 큰 거 한 장은 1억이라는 말이었다.
고가구를 사러 왔다 우연히 이 일을 목격한 아가씨들은 조성후가 하는 짓거리를 보고 강권에게 주의를 주려고 밖으로 나갔다. 하지만 이미 늦은 것 같았다.
어느 샌가 우락부락하게 보이는 자들이 방금 고옥당을 나간 청년 주위를 둘러싸고 있었던 것이다.
“세나야, 이 일을 어떡하면 좋니? 저분은 저치들이 자신의 도자기를 노리는 걸 전혀 모르고 있는 것 같아.”
“경옥아, 일단은 휴대폰으로 동영상을 찍어 두자. 그러고 난 다음에 그 다음 일은 상황을 봐 가면서 결정하는 게 좋겠어.”
“저치들 조폭인 것 같은데 그러다 저치들에게 걸리면?”
“그것도 그러네. 경옥아, 내가 차를 가져올 테니까 너는 동영상을 찍고 있어. 여차하면 차를 몰고 도망치면 되잖아.”
“알았어. 세나야, 빨리 와야 돼.”
세나와 경옥이라는 두 아가씨는 자신이 무슨 일을 당하는지 알지 못하는 강권에게 연민의 정을 느꼈던 것이다.
강권은 고미술상을 나온 후 도자기를 살 만한 다른 고미술상을 찾고 있었다. 그런데 자기보다 훨씬 큰 덩치들이 자기의 주위를 에워싸자 순간적으로 녀석들의 기파(氣波)를 읽었다.
적의가 엿보인다. 생판 보지도 못한 자들이 자기에게 적의가 있다면 이유는 한 가지다. 강권은 이 녀석들이 고미술상 주인의 사주를 받은 자들이 분명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호, 요 자식들 보게. 잠자는 호랑이의 코털을 뽑아도 유분수지, 감히 누구 것을 강취하려고.’
강권은 아버지가 사업에 실패했던 초등학교 5학년 이후로 숱하게 싸웠다. 매일같이 싸우는 것도 모자라 어떤 날은 하루에 세 번도 싸웠다. 중학교를 중퇴하게 된 것도 따지고 보면 싸움 때문이었다. 싸움도 할수록 는다고 만 3년 동안 1,000번을 넘게 싸워 온 강권은 싸움이라면 자신이 있었다.
거기에 무술도 익히고 이계의 무공인 마법까지 익히고 있으니 어지간한 건달들은 몇 백 명이 덤벼도 전혀 두렵지 않았다.
강권은 기감을 퍼트려 자기에게 적의를 갖고 있는 자들을 살폈다. 그들은 대부분 엄청난 덩치에 트레이닝복 차림이었다.
어느 도장에서 함께 운동을 하는 자들인 모양이었다.
그때 185cm인 강권보다 더 크고 100kg가 훨씬 더 나갈 것 같은 덩치들 세 명이 마치 보디체크를 하려는 것처럼 부딪혀 왔다.
이미 덩치들에게 공간을 장악당해 피할 곳이 없다. 강권은 피할 곳이 마땅치 않자 무진신공을 전신에 유포하며 녀석들의 공격을 기다렸다. 강권은 녀석들과 막 부딪히려는 찰라 부딪혀 오는 녀석들의 몸을 지지대삼아 가볍게 녀석들을 타고 넘었다.
두 아가씨들은 드디어 시비가 벌어졌구나 하고 안타까워했다. 그런데 아가씨들은 도저히 믿어지지 않는 광경을 보고 그녀들도 모르게 탄성을 질렀다.
“앗!”
“와!”
강권이 별로 힘들이지 않고 2m에 가깝게 떠오르며 덩치들의 뒤에 착지해 버린 것이다. 적어도 그녀들의 눈에는 그렇게 보였다.
덩치들은 강권이 갑자기 그들의 시야에서 사라지자 어리둥절해하다 강권이 그들 뒤에 있자 깜짝 놀라 서로 눈치를 보았다.
원래 그들의 속셈은 시비가 붙어 기회를 보아 강권이 메고 있는 가방을 낚아채겠다는 의도였다. 그런데 사태가 이렇게 되자 그들의 의도는 물 건너 간 것 같았다. 게다가 엎어지면 코 닿을 거리에 종로경찰서가 있으니 더 이상 시비를 하는 것도 여의치 않았다. 덩치들이 망설였지만 무슨 일이 있어도 배낭을 뺏어 오라는 명령은 그들로 하여금 포기할 수 없게 만들었다.
받으면 몇 배로 받아 내겠다는 것이 강권의 일관된 의지였다. 시비를 걸면 박살을 내 주겠다는 것이 강권의 생각인 것이다.
‘이 자식들 어디 당해 봐라.’
이런 마음으로 강권이 막 덩치들에게 손을 쓰려는데 갑자기 자신의 옆으로 외제차 한 대가 끽 소리를 내며 멈추는 게 아닌가?
“아저씨, 어서 타세요.”
조수석의 창문이 열리며 엄청 예쁜 아가씨가 소리쳤다.
‘저 아가씨를 어디서 봤지?’
예쁜 아가씨가 자기에게 말했다는 것을 느낀 강권은 순간적으로 가슴이 쿵쾅거리며 이 아가씨를 어디서 봤는가 하는 생각에 머뭇거렸다. 명철로 삶을 살 때나, 정성기의 삶을 살 때나 강권의 곁에는 여자가 있었다. 특히 정성기로 살 때는 팔도 내로라하는 기생들에게 족집게로 통했고 인기가 짱이었다. 전생의 삶은 후생에 영향을 미친다. 전생에서 나름 호색했던 강권은 현생에서도 호색했다. 그동안 외모도 따라주지 않고 가진 것도 없으니 여자가 따르지 않았고 그럴 능력도 없었지만 여자가 관심을 가져 주는 것을 마다할 강권이 아니었다.
그 짧은 순간 강권의 방심을 틈타 녀석들이 배낭을 움켜쥐었다. 엄청난 덩치에 걸맞게 녀석들의 힘은 무지막지했다. 하마터면 강권은 배낭을 맨 채로 들릴 뻔했다.
‘좋아, 한 번 들어 봐라.’
강권은 천근추 수법을 써서 들리려는 몸을 고정시켰다.
찌지직.
맞서는 두 힘에 못 이긴 배낭끈이 떨어져 나가려 하자 강권은 안 되겠다 싶은 생각이 들어 번개처럼 배낭을 벗으며 배낭끈을 잡고 있는 녀석의 정강이를 걷어찼다.
퍽.
“윽.”
녀석이 배낭끈을 놓고 비명을 지르며 주저앉았다.
그 순간 강권은 배낭을 낚아채며 공중으로 뛰어올라 순식간에 세 녀석의 턱을 걷어찼다. 녀석들은 쿵 소리를 내며 그대로 땅바닥에 나뒹굴었다. 더 볼 것도 없이 기절해 버린 것이다.
“와!”
아가씨들의 입에서 탄성이 터져 나왔다.
강권은 탄성을 지르는 아가씨들에게 여유 있게 윙크를 하며 나머지 녀석들을 처리하려 했다.
“아저씨, 그 사람들 조폭이에요. 공연히 시비를 해 봐야 이로울 게 전혀 없어요. 어서 빨리 차에 타세요.”
강권은 탤런트 뺨치게 생긴 예쁜 아가씨가 거듭 재촉을 하자 녀석들에게 본때를 보여 주겠다는 생각을 일단 접었다.
녀석들을 혼내 주는 거야 누워 떡 먹기지만, 이 동네 조폭이니 언제든 다시 와서 혼내 줄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게다가 지금 중요한 것은 녀석들을 혼내 주는 게 아니고 자기에게 호감을 표시하는 눈알이 튀어나올 만큼 아름다운 아가씨들이 먼저였다. 도자기를 팔아서 자금을 만들어야 하지 않겠냐는 생각도 강권의 뇌리에서 사라진 지 오래였다.
‘내 주제에 저런 예쁜 아가씨와 언제 알고 지내겠어.’
그렇지만 이 나쁜 녀석들을 용서할 수는 없었다. 또, 이런 때에 안성맞춤인 무공도 있었다.
바로 마킹 마법이었다. 마킹 마법은 3일 동안 강권의 마나가 녀석들의 주위에 머물러 있기 때문에 3일이라는 기간 동안에는 언제든지 녀석들을 찾을 수 있다. 이런 생각으로 강권은 마법을 사용해서 녀석들에게 마킹을 해 두고 차에 올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