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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화
이요상 감정위원의 말이 끝나자 지금까지 도자기의 그림을 보며 잠자코 있던 김상문 감정위원이 자신의 견해를 말했다. 김상문은 서화의 전문가답게 도자기에 그려진 서화를 본 소견을 말했다.
“이 선생께서 이 도자기는 관요에서 나온 것이라는 말씀을 하셨는데 저는 이 도자기가 뛰어난 점을 도자기에 그려진 그림에서 찾고 싶습니다. 무엇보다도 이 도자기의 그림에 공우(公祐)와 학포(學圃)라는 낙관이 있다는 것이 이 도자기의 가치를 높여 주고 있습니다. 공우는 당대 최고 화가로 쳐주던 이상좌 선생의 자요, 학포는 선생의 호이니 그것으로 미루어 짐작컨대 이상좌 선생께서 그린 것이 확실할 것입니다.”
“와! 그래요? 그럼 선생님들께서 감정서를 작성해 주실 수 있겠습니까?”
“그거야 전혀 어렵지 않지요. 그런데 이 상태로 그냥 감정하는 것보다는 깨진 것을 보수해서 감정하는 것이 훨씬 가치가 더할 것입니다. 보수하나마나 똑같은 물건이 아니겠느냐고 하실지 모르겠지만 잘 보수한 것과 그렇지 않는 것의 차이는 감정가가 최소한 10여 배 이상은 날 것입니다.”
“그래요? 그렇다면 이 선생님께서 직접 보수해 주실 수 있겠습니까?”
“예, 그렇게 하겠습니다.”
사실 도자기의 감정은 요지경 속이었다. 원래 도자기라는 것이 숫자가 한정되어 있다 보니 기계에서 찍어져 나오는 공산품처럼 일률적으로 가격이 매겨질 수 없다. 그러니 갖고 있는 사람의 지위나 신청인의 지위에 따라서 감정가는 천차만별로 나타난다. 그리고 감정료로 얼마를 찔러 주느냐에 따라서 감정가 또한 달라진다. 그렇게 볼 때 태한 그룹의 후계자인 오명희라는 이름이 감정가에 상당한 영향을 미쳤다고 볼 수 있었다. 물론 이 도자기가 그만한 가치가 충분히 있다는 것 또한 사실이었다.
하지만 최강권이 감정을 신청했다면 가격은 절대로 10억을 넘어갈 수 없을 것이다. 또한 주둥이가 깨지기까지 했으니 완전 똥값으로 가격을 매겨질 것이다. 그렇게 해서 헐값에 사들여서 보수를 한 다음에는 엄청난 가격으로 팔려 나간다.
사실 강권의 도자기가 비록 깨지기는 했지만 단면이 깨끗했기 때문에 잘 보수만 한다면 그렇게 큰 흠이 되지 않았다. 또한 골동품이란 것이 희소성에 의해서 가격이 결정이 된다. 그런데 도자기의 그림이 조선시대 내로라하는 화공인 이상좌의 작품이고 보니 주둥이가 깨진 흠은 흠이 되지 않을 수도 있는 것이다. 이렇게 해서 결정된 감정가는 6억 원이었다.
오명희는 세나와 경옥이에게 자기가 사겠다는 뜻을 밝히고 나중에 주인을 찾으면 6억 원을 지불하겠다고 했다.
이렇게 파장 분위기가 물씬 풍길 무렵 곁다리로 쫓아온 감정인이 엄청 대형사고(?)를 터트렸다.
“아니 명희 아가씨, 어떻게 된 게 이런 진품들을 두고서 저렇게 깨진 도자기나 감정하고 계십니까?”
“예? 전 선생님 지금 하신 말씀은 무슨 말씀이세요?”
“이것들 말입니다. 이것들…….”
세 아가씨들은 전성호 감정인이 손에 쥐고 흔드는 핑크색 돌을 보고 영문을 모르겠다는 듯 고개를 갸웃거렸다.
핑크색의 보석에는 몰거나이트, 장미석 등이 있지만 감정인이 들고 있는 것이 그런 종류의 보석이라고 하더라도 완전한 형태의 도자기보다는 훨씬 가치가 떨어졌다. 그리고 그 정도의 보석이어도 전문 보석 감정인인 전성호가 입에 거품을 물 정도로 저렇게 흥분하지 않을 것이었기 때문이다.
전성호는 오명희 등이 여전히 자신이 들고 있는 보석을 알아보지 못하자 답답해서 큰 소리로 말했다.
“아니 정말 이게 다이아몬드 원석들이란 것을 모르십니까? 그것도 최고로 양질의 다이아몬드 원석들입니다.”
“예? 그게 정말이에요?”
“하! 거 참, 생각해 보십시오. 전문 보석 감정인인 제가 이렇게 귀중한 보석을 두고 헛소리를 하겠습니까?”
“그럼 정말로 다이아몬드 원석들이란 말이죠?”
“이것들이 다이아몬드 원석들이 아니라면 내 손에 장을 지지겠습니다. 그나저나 이 다이아몬드 원석들을 어디에서 나셨습니까?”
핑크색 원석만 다이아몬드라도 엄청난데 다른 것들도 다이아몬드 원석이란다. 그것도 최고 양질로 자그마치 열 개였다.
세 아가씨들은 너무 놀라 할 말을 잃어버렸다.
‘그 사람이 어떻게 다이아몬드 원석들을 갖고 있지? 혹시 밀수꾼?’
사람을 무시해서가 아니라 최강권은 아무리 잘 봐 줘도 시골뜨기 이상은 아니었다. 그런 사람이 다이아몬드 원석들을 갖고 있다니 의문을 갖지 않을 수 없었던 것이다.
상식적으로 따져 봐도 우리나라에는 다이아몬드가 나지 않으니 분명 외국에서 몰래 가져왔을 것이다.
그런데 설령 외국에서 가져왔더라도 좁쌀만큼 작은 것들도 아니고 어린아이 주먹만큼 큰 것을 포함해서 무려 열 개의 원석들을 세관을 속이고 들여오는 것은 엄청 힘들었다.
‘설마…….’
세나는 강권이 설마 밀수꾼은 아닐 거라고 생각하고 전성호에게 물었다.
“저, 선생님, 혹시 우리나라에서도 다이아몬드가 산출되나요?”
“아가씨 그건 단정을 지어서 말할 수 없습니다. 다이아몬드가 발견된 적은 있지만 0.1 캐럿짜리 작은 것 하나 발견된 정도니 딱히 다이아몬드가 산출된다고 할 수는 없지요. 그런데 중국의 다이아몬드 산지와 유사한 지형이 우리나라에도 있으니 다이아몬드가 산출되지 않는다고 말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럼 이 다이아몬드 원석들이 우리나라에서 난 것일 수도 있겠네요?”
“그렇습니다. 만약 이것들이 우리나라에서 산출되었다면 엄청난 파장을 불러일으킬 수 있을 것입니다.”
보석, 특히 다이아몬드가 여자들에게 주는 유혹은 엄청나다.
비록 세 아가씨들도 나름 산다하는 집안에서 자라 다이아몬드 반지 하나 정도는 있다고는 하지만 이렇게 큰 다이아몬드 원석을 본 적은 한 번도 없었다. 아니 세 아가씨들뿐만 아니라 전문 보석 감정인인 전성호도 이렇게 크고 투명하며, 아름다운 색깔을 가진 다이아몬드 원석을 본 적이 없었다. 그러니 다이아몬드 원석들을 보는 눈에 달뜬 열망이 가득한 것은 당연했다.
한참의 시간이 지나 어느 정도 흥분이 가셔지자 전성호가 명희에게 은근한 어조로 물었다.
“명희 아가씨, 이런 부탁을 드려도 좋을지 모르겠지만 세공비를 전혀 받지 않을 테니 이 원석들을 다듬을 수 있는 영광을 저에게 주시지 않겠습니까?”
전성호는 보석 감정인에 앞서 보석 세공인이었다. 그런데 그가 아무리 유명한 보석 세공인이라고 해도 족히 100억대가 넘어가는 다이아몬드 원석을 세공할 기회는 없을 것이다. 사실 이런 엄청난 다이아몬드 원석들을 만져 본다는 자체가 평생의 자랑거리일 텐데 거기에 더해 가공까지 한다면 얼마나 자랑스럽겠는가?
세 아가씨들은 전성호가 간절한 눈빛을 보았다.
하지만 그녀들은 다이아몬드 원석들의 주인이 아니었기 때문에 그의 소망을 들어줄 수 없는 노릇이었다. 보다 못한 명희가 나서서 전성호에게 말했다.
“이거 어쩌죠? 여기에 다이아몬드 원석들의 주인이 없어서 선생님의 부탁을 들어드릴 수 없거든요.”
“예? 이 다이아몬드 원석들의 주인이 명희 아가씨가 아닙니까? 그럼 도대체 누가 이 다이아몬드 원석들의 주인입니까?”
“이것들의 주인은 지금 이곳에 없습니다. 실은 이 도자기의 주인이 바로 이 다이아몬드 원석들의 주인입니다. 우리를 믿고서 맡겨 놓은 것이지요. 그런데 어떻게 믿음을 저버리고 우리 멋대로 처리할 수는 없지 않겠습니까?”
말인즉, 틀린 것이 없다. 일반적으로 **사무관리[사무관리(事務管理)는 법률상 또는 계약상 아무런 의무가 없는 관리자가 타인을 위하여 사무를 처리함으로써 관리자와 본인 사이에 생기는 법정 채권 관계로서, 법률요건의 하나이다.
본인(여기서는 다이아몬드 원석의 주인인 최강권)에게 불리하거나 본인의 의사에 반(反)하는 것이 명백하지 않아야 한다.]라는 것이 인정이 된다. 그렇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물건의 주인인 최강권의 의사에 반하지 않아야 한다. 그런데 원석이란 것이 한 번 세공을 하게 되면 원형을 원상회복시킬 수 없다. 문제는 보석이란 것이 어떻게 세공을 했느냐에 따라서 가치가 엄청 달라진다는데 있었다. 사무관리가 될 수 없다는 말이었다. 전성호가 원석을 가공하게 하는 것은 원석의 주인인 최강권의 의사에 반할 수 있다는 것이다. 전성호도 그 정도는 알고 있기 때문에 풀죽은 음성으로 말했다.
“아! 그랬군요. 그럼 혹시 이 원석의 주인을 만나시거든 원석을 제가 무상으로 세공해 주겠다고 하더라고 꼭 말씀해 주십시오.”
“호호호, 그거야 뭐 어려운 일이 아니죠. 그런데 여쭤 볼 말이 있는데 가르침을 주실래요?”
“명희 아가씨 말씀이신데 여부가 있겠습니까? 제가 아는 한도 내에서 어떤 것이라도 말씀해 드리겠습니다.”
“고마워요. 다름이 아니라 이 원석들의 가격이 얼마나 될까요?”
“큼큼, 쉽지 않은 질문이군요. 제가 이런 정도의 원석을 본적이 없어서 가격을 매기기가 무척 조심스럽습니다. 제 소견으로는 이 원석들은 색상이나 투명도를 따져 볼때 최상위 등급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따라서 이 큰 원석이 최소한 1,000만 달러, 나머지 원석들을 합쳐서 역시 1,000만 달러 이상 이렇게 최소 2,000만 달러 이상이 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어머, 정말로 그 정도나 나가요?”
“예, 아마 경매에 붙이면 제가 책정한 가격보다 2∼3배도 더 받을 수 있을 것입니다.”
1달러를 1,079.50원이니 1,000만 달러면 107억 9천 5백만 원이다. 이 정도의 돈이면 오명희가 아무리 재벌 2세라고 해도 가볍게 볼 수 없는 거액이었다. 그런데 그게 하한선이라고 했다. 따라서 이 원석들은 최소 215억 원이 넘고 경매에 붙이면 이 가격의 2∼3배는 받을 수 있다고 하니 천문학적인 거액이었다. 그러니 오명희도 흥분하지 않을 수 없었던 것이다.
제5장-몇 배로 갚아 주마
“이런 개 같은 경우가…….”
너무 허탈해지니까 아무런 생각도 나지 않는다.
156억짜리 로또가 눈앞에서 사라지더니 이번에는 10억이 넘어갈 게 분명한 도자기가 그대로 깨져 버린 것이다.
“다 그 새끼들 때문이야.”
강권은 맹수가 으르렁거리듯 중얼거리며 밖으로 나와 무작정 버스를 탔다. 마킹한 녀석들을 추적하기 위해서다.
세금을 제하고도 100억이 넘는 로또를 도둑맞고 10억이 넘어가는 말짱한 도자기가 깨지는 것을 연달아 겪고 있는 강권의 속은 속이 아니었다.
그것 말고도 자기의 추정 재산이 무려 200억이 넘는다는 것을 알지 못하고 있는 강권은 자기의 재산들이 빤히 보고 있는 가운데 연달아 사라져 버리는 것이 전혀 이해가 되지 않았다.
지금 현재의 운세에는 자기에게 횡재수가 없기는 해도 자기가 묻어 놓은 도자기를 자기가 팠던 것이니 그건 횡재수와는 아무 상관도 없었다. 오죽했으면 버스 안에서 자기에게 정말로 재물 복이 있나 없나 손가락으로 간지를 따져 가며 곰곰이 살펴보았다. 그런데 전혀 그렇지 않았다. 오히려 재물 복이 차고 넘쳤다.
‘삼재가 든 것도 아니고 지금은 충(沖), 파(破), 형(刑)이 있는 것도 아닌데 왜 거듭해서 이런 일이 일어나는 거지?’
강권은 자기가 천기를 거슬러서 부정을 탄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지만 아무리 생각을 해도 그건 아닌 것 같았다.
‘그렇다면 원인 제공을 한 녀석에게 따져야겠지.’
강권은 한 번은 참았지만 두 번은 참을 수 없었다.
원인 제공을 한 녀석들에게 본때를 보여 주자는 생각이 가슴속에서 샘이 솟듯 뭉클뭉클 올라오고 있었다.
‘녀석들이 나를 습격한 것이 고옥당 사장 녀석이 시켜서 한 일이라면 가만 두지 않겠어. 고옥당을 깡그리 털어서라도 그들로 인해서 잃어버린 것들을 벌충하고 말겠다.’
생각은 이렇게 했지만 강권은 내심 고옥당 사장이 시킨 일이라고 단정을 내리고 있었다. 심지어 고옥당을 털 생각까지 하고 있었다.
‘인비저빌리티 이계 무공을 쓸 수 있으면 좋은데. 인비저빌리티 무공은 내공의 고리가 4개는 되어야 펼칠 수 있는 무공이니 아직 펼칠 수 없고. 어쩐다?’
도둑질하는 것은 나쁜 일이지만 고옥당의 사장이 자신의 것을 뺏으려 했으니 그의 재물을 훔치는 것은 정당하다고 생각했다. 눈에는 눈이고, 이에는 이다. 이게 강권의 처세법이었다.
지금 자기에게 횡재수가 없었지만 재물을 훔치는 것은 어찌 됐건 자신의 손발을 놀려서 버는 재물이니 그것은 없어지지 않을 것이란 생각도 들었다.
그렇지만 강권은 천생이 재물을 노리는 도둑은 아니니 고옥당 사장이 자신을 습격하라고 한 증거를 확보하는 것이 우선이었다. 너무 막연하지만 나름 대책은 서 있었다.
강권은 자신이 마킹해 둔 녀석들은 분명 인사동 일대를 구역으로 하는 조폭들일 것이라는 확신을 갖고 있었다.
‘그 녀석들을 족치면 뭔가 나오겠지. 설사 그렇더라도 모범 시민인 내가 백주 대낮에 조폭들과 싸움질 하고 있을 수야 없지.’
사실 조폭들과 싸우는 것이 두렵지는 않았다. 그렇지만 이처럼 이른 시간에 조폭들과 싸움이 붙으면 경찰들이 올 것이다.
그것이 싫었다. 최강권 정도의 능력이면 경찰을 전혀 두려워하지 않아도 될 것인데 이상하게 공권력에는 알레르기 반응을 보이고 있었다. 어린 시절의 트라우마가 법이나 공권력에 관계되는 것에는 과민한 반응을 보이게 만들고 있었던 것이다.
강권은 고민 끝에 인사동으로 바로 가지 않고 어두워질 때까지 시간을 끌기로 했다.
이런 생각이 들자 동대문에서 버스를 내렸다.
시간을 빨리 보내겠다는 생각을 해서 그런지 일대를 돌아다니면서 윈도쇼핑을 하며 시간을 죽였지만 아직도 이른 시간이었다.
신당동까지 가서 그 유명하다는 신당동 떡볶이도 먹었지만 그런데도 여전히 이른 감이 있었다.
“에효, 시간 때우는 것도 보통 일이 아니로군.”
그때 강권의 눈에 들어온 것은 삼색으로 뱅글뱅글 돌아가는 이발소 표지(標識)였다. 이발소 표지를 보자 오명희네 저택의 화장실에서 보았던 자신의 덥수룩한 수염이 떠올랐다.
‘그 녀석들과 한판 벌이자면 최대한 눈에 띄지 말아야겠지?’
눈에 띄지 않는 방법은 평범한 사람이 되는 것이다.
강권은 이발소로 들어가서 면도를 하려 했다. 그런데 강권히 전혀 알지 못한 것이 있었다. 이발소 표지가 뱅글뱅글 돌아가는 대부분의 이발소는 아가씨들을 면도사로 둔 퇴폐 업소라는 것이 그것이다.
이발소에 들어가자 아줌마 같은 아가씨는 칸막이가 되어 있는 밀실로 안내했다. 밀실이라고 해 봐야 달랑 간이침대가 하나 놓일 공간이었다. 딱 자기가 살았던 고시원 정도의 크기였다.
아가씨는 안내를 하고는 침대 시트를 걷으면서 누우라더니 옷을 벗으란다.
“아저씨, 겉옷을 벗고 이 가운으로 갈아입으세요.”
“예에?”
“아저씨, 왜 이래? 당연히 편안 옷으로 갈아입어야지.”
“아! 예.”
강권이 옷을 벗어 아가씨에게 건네주자 아가씨는 고개를 갸웃거리더니 강권의 팬티까지 벗기려 했다.
“허걱, 뭐, 하는 겁니까? 면도하는데 왜 팬티를 벗기려 듭니까?”
“정말 면도만 하겠다는 겁니까? 그래도 값은 같으니 그렇게 하든가 맘대로 하세요. 나는 분명 말했습니다.”
“아, 알았습니다.”
아가씨는 강권의 대답에 입맛을 다시더니 면도를 해 주었다.
“어머! 면도를 하고 나니 엄청 미남이시네요.”
아닌 게 아니라 노숙 생활 1년, 수련 생활 1년 이렇게 2년을 기른 덥수룩한 수염을 밀자 꽃미남이 따로 없었다.
500년 묵은 산삼으로 담근 산삼주를 먹고 환골탈태한 뒤 강권의 모습은 엄청 청수해졌던 것이다. 강권은 안마를 해 준다는 것을 사양하고 룸에서 해가 질 때까지 운기조식으로 시간을 때웠다.
어둑어둑해지자 나가려고 계산을 하려다 눈알이 튀어나올 뻔했다. 면도만 했을 뿐인데 무려 12만 원이란다.
오뉴월 땡볕에 죽어라고 일해 봐야 손에 쥐는 돈이 6만 원도 안 되는데 그보다 배도 더 많다니 눈알이 튀어나오려 했다.
“예에? 어, 얼마요?”
아가씨는 놀라는 강권을 보며 퉁명스럽게 말했다.
“아저씨, 그것도 모르고 들어온 거예요? 안마를 하건 하지 않건 일단 들어와서 면도를 하면 12만 원이에요. 내가 분명 말했잖아요. 그러게 안마를 하지 그랬어요? 아저씨 같은 꽃미남이면 잘해 주었을 건데.”
‘잘해 주다니 뭘?’
강권은 아가씨의 말에 문득 생각나는 것이 있어 얼굴을 붉혔다. 자신이 들어올 때는 손님이 없었는데 칸막이가 처진 룸 몇 곳에서는 절로 낯이 붉어지는 이상한 소리가 들렸던 거다.
한참을 망설이고 있는데 아가씨가 강권의 태도를 보고 어수룩하다고 판단을 내렸는지 빨리 돈을 주지 않으면 경찰에 신고하겠다고 으름장을 놓았다. 적반하장도 유분수였지만 그 말은 강권의 트라우마를 건드리다 못해 후벼 파는 소리였다.
강권은 더 이상 있어 봐야 뾰족한 수가 없을 것 같아 속이 쓰렸지만 피 같은 거금 12만 원을 주고 이발소를 나왔다.
이발소를 나와서 모퉁이 하나를 돌자 지구대가 보였다.
지구대에서 불과 100여 m도 떨어지지 않은 곳에 성매매까지 하는 퇴폐 이발소가 있다는 것은 뻔할 뻔자다. 경찰을 끼고 장사를 하지 않고는 그럴 수 없다.
‘이런 개새끼들, 바로 옆에 있는 곳도 단속을 하지 않다니.’
강권은 속으로 개새끼, 소 새끼를 찾으며 인사동으로 향했다.
신고가 들어오거나 단속 기간이 아니면 버젓이 허가를 받고 영업을 하는 업소에 경찰이 함부로 단속하지 못한다는 것은 강권은 알지 못하는 것이다.
날씨가 갑자기 추워져서인지 거리에는 사람들의 발길이 뜸했다.
차가운 바람이 품속으로 파고들자 강권은 문득 작년 이맘때의 일이 떠올랐다.
1년 전 이 무렵에 강권은 죽으려고 철길에 누웠었다. 당시에는 힘이 없어서 울화통을 삭였지만 지금은 자신의 힘으로 울화통을 충분히 풀 수 있다. 이런 생각하고 있자니 더 열불이 났다.
‘이 자식들 감히 누구의 것을…….’
강권이 내심 이를 갈며 세운상가 근처를 지나는데 어떤 빌딩에서 익숙한 기운이 느껴졌다.
마법으로 마킹해 놓은 자신의 마나였다.
‘어? 이 자식들의 아지트가 이곳에 있나? 인사동과 세운상가는 상당히 떨어져 있는데 어떻게 그렇게 빨리 올 수 있었던 거지?’
자신이 고옥당을 나가자마자 녀석들이 시비를 붙으려고 했으니 고옥당과 한참 떨어져 있는 이곳에서 녀석들의 종적이 있다면 이치에 맞지 않았다.
‘어? 그러면 이 녀석들이 나를 덮친 것은 고옥당의 사장 녀석과는 관계없는 일인가?’
강권은 이런 의구심을 가지고 자신의 마나를 쫓아갔다. 마나의 흔적은 인근 상가 빌딩 4층으로 이어지고 있었다. 마나가 느껴지는 곳은 뜻밖에도 격투기 체육관이었다. 안으로 들어가자 자신에게 보디체크를 가했던 녀석이 벤치프레스를 하고 있는 것이 눈에 들어왔다.
15kg짜리가 2개, 10kg짜리가 3개, 5kg짜리가 3개씩 양쪽에 각각 끼어져 있는 역기를 녀석은 가볍게 들어 올리고 있었다.
봉 무게가 보통 15kg임을 감안하면 녀석이 가볍게 들어 올리고 있는 무게는 자그마치 165kg이다.
그런 엄청난 무게를 쉽게 들어 올리고 있다는 것은 녀석이 단순한 물살은 아니라는 얘기였다. 아니, 저 정도의 무게를 가볍게 들어 올릴 정도라면 녀석은 상당히 오랫동안 운동을 했다는 증거였다.
‘그래도 결과는 달라지지 않을 거다.’
강권은 내심 녀석의 운명을 결정지으며 체육관을 둘러보자 건장한 녀석들 20여 명이 운동을 하고 있었다. 서로 시시덕거리는 것을 보니 대부분 같은 패거리일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좋아, 한 녀석도 가만두지 않겠다.’
이렇게 결심을 굳힌 강권은 녀석들이 체육관 밖으로 나가지 못하게 문을 잠갔다. 그러고는 벤치프레스를 하고 있는 녀석에게 다가가 발로 바벨의 정중앙을 지그시 눌렀다.
바벨이 딱 녀석의 쇄골에 걸렸다.
조그만 더 위였다면 165kg의 역기가 목을 졸랐으리라는 생각이 들었는지 녀석은 소스라치게 놀라며 고함을 질러 댔다.
“으윽! 누, 누구냐?”
“네 녀석에게 빚을 받을 게 있는 사람.”
강권의 차가운 목소리로 대답을 했다. 그제야 체육관 안에 있던 자들이 강권의 존재를 인식했는지 서로 눈치를 보더니 서서히 포위해 왔다. 강권은 녀석들이 그러든지 말든지 전혀 신경 쓰지 않고 발로 바벨을 누르며 녀석에게 물었다.
“이름?”
“으윽.”
“이름?”
“크으윽.”
“대답을 하고 싶지 않으면 하지 않아도 돼. 하지만 그만한 각오는 해야 할 거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