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으로 바로가기

위/아래로 스크롤 하세요.


8화



강권은 이렇게 내뱉고는 혈도를 짚어서 녀석의 움직임에 제약을 가했다. 165kg짜리 바벨이 녀석의 빗장뼈를 누르고 있는 모습은 위태롭기 짝이 없었다. 조그만 더 목으로 구른다면 끔찍한 사태가 발생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것을 본 녀석들의 일부는 강권을 공격하는 한편 일부는 벤치에 꼼짝 못하고 누워 있는 녀석을 구하려고 했다. 100kg가 넘을 덩치들 20여 명이 에워싸면 누구나 위압을 당할 것이다.
하지만 강권은 위압을 당하기는커녕 하품이 나오려 했다. 이미 어느 정도의 경지에 올라 있는 강권의 동체 시력에 그들의 움직임은 하품이 나올 정도로 굼떠 보였기 때문이다.
‘하! 이런 녀석들을 붙잡고 시간을 끌어 봐야 도리어 내가 창피할 노릇이로군.’
강권은 굳이 시간을 끌 필요가 없다는 판단이 들자 공격해 들어오는 녀석들의 공격을 피하며 한 녀석씩 혈도를 점해 갔다.
싸움 실력의 차이는 따지고 보면 동체 시력의 차이였다. 동체 시력이 뛰어나다는 것은 그만큼 순발력이 뛰어나다는 것이고 이게 승부를 결정짓는다.
옛날 주먹들 같지 않고 지금 어깨들은 덩치를 부풀려서 겉모습으로 상대를 위압하려 하지만 진짜 싸움꾼들은 대부분 호리호리하다. 호리호리하다는 것은 파괴력이 약할지 모르지만 순발력에 있어서는 쓸데없이 근육을 부풀리는 것보다 훨씬 낫다.
빠른 속도로 체육관을 한 바퀴 돌면서 녀석들의 눈 깜짝할 사이에 20여 명의 혈도를 짚은 강권은 차갑게 소리쳤다.
“대세를 알아야 준걸(俊傑)이란 말이 있다. 네 녀석들이 준걸이 될지 아니면 그냥 필부로 남을지 너희들의 판단에 맡기겠다.”
‘준걸이니 필부니, 저 자식 지가 무림인인 줄 아나?’
덩치들은 다들 이런 생각인지 서로를 쳐다보며 어리둥절해 있었다. 강권은 그런 녀석들에게 단도직입적으로 물었다.
“네 녀석들이 오늘 낮에 무슨 의도로, 누구의 사주를 받고 나를 습격했는지 묻겠다. 고분고분 대답을 하여 용서를 받던지 아니면 고문을 당하고 토설하던지, 그것은 전적으로 너희들의 선택 사항이다.”
강권의 말을 들은 녀석들은 비로소 강권이 누구인지 알아차리고는 안색이 변했다. 낮에 보여 주었던 강권의 몸놀림과 자기들 20여 명을 순식간에 제압한 신위는, 마치 무협지에나 나오는 고수 같았기 때문이다. 게다가 혈도를 짚어 움직이지 못하게 만드는 것은 현세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무공이 아니겠는가?
강권은 녀석들의 기파가 불안정한 것을 감지하자 자기 협박이 제대로 먹혀들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자! 네 녀석부터 말해 봐라.”
강권이 지목한 녀석은 낮에 자신을 덮쳤던 녀석들 중에서 가장 기파가 강한 녀석이었다. 굳이 비교를 하자면 다른 녀석들이 하룻강아지 정도라면 녀석은 중개 정도였다. 강권의 판단에 녀석은 최소한 발경의 경지에 이른 고수였다.
사실 발경은 그리 간단한 경지가 아니었다. 발경이 가능하면 무림에서도 비로소 이류고수의 반열에 올랐다는 평가를 받을 정도였다. 이것을 알고 있는 강권은 녀석에 대해 흥미가 동했다.
‘호, 이런 경지의 녀석이 조폭 집단의 행동 대원이나 하고 있다는 거야?’
다른 녀석들도 다 발경의 경지에 있었다면 조폭에 대한 강권의 생각이 바뀌었겠지만 유독 이 녀석만 도드라져 보였다.
아무리 생각해도 이런 녀석이 자신을 숨기고 이런 조폭 집단에 속해 있을 때는 뭔가 있어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 녀석의 배후에 틀림없이 뭔가 있을 거야, 녀석을 족치면 뭔가 나오겠지.’
그런데 녀석을 통해서 사건의 전말에 대해서 쉽게 들을 수 있을 것이라는 강권의 예상은 완전 빗나갔다. 강권에게 지목을 받은 녀석, 손정호는 잔혈이 짚이는 고통을 받으면서도 결코 입을 열려고 하지 않았던 것이다. 강권은 오기가 생겨 녀석에게 인간으로 차마 펼쳐서는 안 될 수법까지 동원하려 했다.
“좋아, 대답을 하지 않겠다면 네 녀석의 심지가 얼마나 굳은지 보겠다. 네 녀석이 분근착골(分筋搾骨)을 1분만 견뎌 내면 그 일에 대해서 더 이상 묻지도 따지지도 않겠다.”
분근착골은 내가고수라야 가능한데 강권이 보여 준 무위는 내가의 고수가 아니면 보일 수 없는 것이었다. 그렇다면 강권이 말한 분근착골의 수법이 단지 위협용이 아니란 것이었다.
녀석은 강권이 말한 분근착골이 무엇이라는 것을 아는지 안색이 대번에 바뀌었다. 그런데도 녀석은 전혀 굴복하려 들지 않았다.
“호, 자네는 스스로 뼈대가 굵다고 생각하는 모양이지?”
말은 니 팔뚝 굵다고 빈정대고 있었지만 강권은 녀석의 태도에서 뭔가 이상한 것을 감지할 수 있었다. 이런 생각은 비단 그의 추측만은 아니었다. 강권은 문득 그걸 알아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것은 호기심이라면 호기심이고 오기라면 오기였다.
녀석이 굳건히 버틸 수 있도록 마음에 자리한 실체에 대해서 가장 좋은 접근 방법은 심리전이었다. 거부할 수 없는 두려움을 안겨 준 후에 기파를 읽어 녀석의 심리 상태를 파악하면 마음에 도사리고 있는 실체에 대해 어느 정도 파악할 수 있으리라.
이런 판단이 서자 강권은 즉시 실천에 옮겼다. 먼저 말로 해서 안 들으면 진짜 분근착골의 혹형을 가할 작정이었다.
“참고로 말하는데 분근착골에서의 분근(分筋)은 근육을 찢어 버린다는 뜻이고 착골(搾骨)이라는 말은 골수를 쥐어짠다는 뜻이다.”
“…….”
강권이 친절한 설명으로 으름장을 놓자 녀석의 안색은 더욱 창백해졌다. 분근착골을 무척 두려워한다는 의미였다.
그렇지만 녀석은 도무지 입을 열려 하지 않았다.
강권은 은근 오기가 생겨 어디까지 견디나 보자는 생각이 들어 분근착골에 해당하는 녀석의 요혈들을 짚어 나갔다. 아혈(啞穴)이 짚여서인지 녀석은 어떤 소리도 지르지 못했다.
무협지에서나 나오는 분근착골이 실제로 재현되고 있는 순간이었다. 녀석의 눈이 퉁방울만해지고 얼굴에 핏줄이 불거지는 것을 바라보는 동료들의 얼굴에는 은은한 공포가 어려 있었다.
하지만 그뿐이었다. 녀석이 보이는 기파(氣波)의 변화는 거의 없었고, 다른 녀석들은 공포심뿐이었다. 다른 녀석들은 떨거지들이고 이 녀석만 뭔가 숨기고 있는 녀석이라는 의미였다. 그러니 다른 녀석들은 더 이상 거들떠볼 필요도 없었다.
‘무엇이 이 녀석으로 하여금 분근착골의 두려움을 이기게 해 준단 말인가?’
강권은 이 방법으로는 녀석의 마음속에 자리한 실체를 끄집어낼 수 없다는 판단을 내렸다.
‘결론적으로 지금 당장에 취할 수 있는 수단이나 방법은 하나도 없는 셈이로군. 그렇다면 길게 보아야 하는가?’
이제 강권은 고옥당 사장이 녀석들을 사주했다는 증거를 찾는 것보다 이 녀석의 배후가 어떤 것인가에 더 흥미가 생겼다. 이것을 달리 말하면 고옥당 사장 녀석이 도자기를 강탈하라고 시키지 않았어도 강권은 일단 녀석의 재산을 홀랑 뺏겠다는 결심을 섰다는 의미였다. 고옥당 사장 녀석이 자기 도자기가 10억이 넘어간다는 것을 빤히 알고도 천만 원만 주겠다는 걸로, 녀석은 징계 받아도 마땅한 자였다. 만약 녀석이 시킨 것이 아니라면 자기 수고비만 챙기고 돌려주면 된다는 강권의 생각이었다.
녀석의 뒤에 버티고 있는 배경을 확인하는 방법에는 여러 가지가 있었다. 그중에서 지금 강권이 가장 효과적일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조용하게 녀석의 뒤를 밟는 것이었다.
강권은 이런 생각을 갖자 조폭들의 몇몇 요혈을 짚어 당분간 큰 힘을 쓸 수 없게 만들어 놓고 혈도를 풀어 주며 말했다.
“네 녀석들의 요혈을 짚어 놓았으니 1년 동안 무리를 하면 종래 반신불수가 될 것이다. 운동도 근력 운동은 피하고 유산소운동만 해야 한다는 말이다. 자기들의 잘못을 깨닫고 1년간 근신하고 있으면 아무런 문제도 생기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내 말을 허투루 듣고 지금처럼 남을 해치는 생활을 한다면 평생 병신으로 살아갈 것이다. 내 말이 정 믿어지지 않으면 시험해 봐도 좋다. 나는 분명 너희들에게 말했으니 그 뒤에 벌어지는 일에 대해서는 전혀 책임이 없다. 각자의 삶이니 각자 알아서 살아가도록.”
강권은 이렇게 말하고 체육관을 나왔지만 그의 머릿속에는 녀석의 배후를 캐려는 생각으로 가득 차 있었다.
세운상가 주위를 배회하면서 얼마나 잠복했을까. 강권에게 분근착골의 고문을 당했던 녀석이 비틀거리며 나와서 주차장으로 가고 있었다.
‘드디어 배후 세력에게 가려 하는구나.’
강권은 녀석의 뒤를 조용히 따랐다. 녀석은 어디로 가려는지 체육관에서 나와 차에 타는 것이 아닌가.
‘아마 배후 세력에 보고하러 가는 것이겠지? 그런데 차를 타고 가면 쫓아가기가 힘이 드는데…….’
헤이스트 마법이나 경신술을 쓰더라도 아직 강권의 경지로는 차를 따라갈 수 없었다. 강권은 급한 마음에 녀석의 차 지붕에 올라탔다.
강권의 예상대로 녀석은 배후 세력으로 가고 있었다. 그런데 녀석이 가는 곳은 정말 뜻밖에도 남산에 있는 중국 대사관 영사부였다. 녀석이 차를 멈추려 하자 강권은 재빨리 그늘로 숨어들어 녀석이 하는 양을 지켜보았다.
‘어! 저 녀석이 중국 대사관으로 들어가네. 되놈들이 우리나라 조폭들과 무슨 관계가 있는 것이지?’
강권은 영사부를 대사관으로 착각하고 있었다. 그렇지만 조폭이 한밤중에 중국 대사관 건물로 들어가는 것은 완전 상식 밖의 일이었다. 그런데 어떻게 된 것이 녀석은 조금도 거리낌이 없이 영사부 안으로 들어가는 것이 아닌가. 더 이상한 것은 영사부의 무관으로 보이는 자가 녀석을 영접하는 것 같다는 것이다.
강권이 알고 있는 중국어는 오래 전 중국어여서 그들이 주고받는 말의 의미를 명확하게 파악하지는 못했다. 그렇지만 강권은 대충 녀석이 상당한 지위에 있다는 의미로 알아들었다.
‘그렇다면 저 녀석은…….’
보나마나 중국의 스파이일 것이다.
‘스파이 녀석이 무슨 목적으로 조폭에 들어간 걸까?’
강권은 아무리 생각해도 감을 잡을 수 없었다. 그렇지만 손정호가 중국인이건 매국노이건 강권은 아무런 관심도 없었다. 그의 사전에 처음부터 애국심이라는 단어는 없었기 때문이다.
‘내가 죽음을 눈앞에 두었을 때 국가가 나에게 해 준 게 무어야? 애국? 그딴 것은 개에게나 주라지.’
강권의 내심은 이랬다. 강권은 배부르고 등 따시면 그것으로 끝이었다. 명철(冥徹)로 살 때의 전생에는 승려의 신분으로 버젓이 결혼까지 했었다. 원래 천살문에는 색계가 없으니 그렇다고 하자. 그렇지만 정성기로 살 때는 남들은 예지능력으로 민족이 어떻고 겨레가 어떻고 할 때 강권은 자신의 후생을 위해서 여러 가지 준비까지 해 두었다.
그렇게 철저하게 이기적인 강권이니 녀석들 수작에 10억 원이 넘어가는 자기의 도자기가 박살 난 것을 참는다면 그것이 오히려 정상이 아닐 것이다.
‘반드시 내 도자기를 깨뜨리는데 연루된 작자들을 전부 색출해서 그 작자들에게 이자까지 쳐서 받아 낼 거야. 그 작자들이 되놈들이라도 용서하지 못해.’
강권은 내심 이런 생각을 갖고 있었다.
중국 대사관은 중국 땅이나 마찬가지란 말을 들었던 기억이 언뜻 떠올랐지만 그렇다고 녀석을 빤히 보면서 놓칠 수는 없었다.
그래서 달이 구름 속으로 들어간 틈을 타서 강권은 녀석이 들어간 영사관 담을 넘었다. 들키지만 않는다면 무슨 일이야 있겠는가 하는 생각이 들었던 것이다.
강권은 영사관의 담을 넘고는 그늘에 서서 인기척을 탐지했다. 밤이 깊어서인지 별다른 인기척은 없었다. 강권은 그늘을 의지해서 걸음을 옮기며 손정호의 흔적을 쫓아갔다. 손정호의 흔적은 지하실로 이어지고 있었다.
강권이 지하실 문을 슬며시 열고 안으로 들어서려는데 안쪽에서 입구로 나오는 기척이 느껴졌다. 녀석에게 걸리면 곤란해진다는 생각이 들자 강권은 플라이 마법을 사용해서 천정에 붙었다.
파리가 달라붙듯 천정에 달라붙어 있는 강권의 모습은 완전 닌자가 따로 없었다. 그런데 입구에 나타난 녀석은 무언가 이상한 낌새가 느껴졌는지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짜식아, 빨리 꺼져.’
빨리 사라지기를 바랐지만 녀석은 강권의 바람에 기어이 초를 치고 나섰다. 무슨 낌새를 느꼈는지 녀석은 다른 곳으로 가지 않고 계속해서 두리번거리고 있었다. 강권은 안 되겠다 싶어 녀석을 제압하려고 슬며시 지풍(指風)을 날려 녀석의 요혈을 점하려 했다.
그런데 녀석은 뜻밖에도 강권의 지풍을 피해 내는 것이 아닌가. 비록 3성의 공력을 써서 지풍을 날렸지만 그 지풍을 피한다는 것은 상대가 나름 무공을 한다는 말이었다.
강권은 상대에게 나름 흥미가 동해 본격적으로 놀아 보기로 하고 암암리에 사일런스 마법을 펼쳤다. 아무래도 이곳이 중국 대사관이란 것이 껄끄러웠기 때문이었다. 사일런스 마법을 펼쳐 두었으니 폭탄이 터져도 밖에서는 아무 소리가 나지 않을 것이다. 그러니 굳이 소리를 내지 않으려고 조심할 필요가 없었다.
“어쭈, 이것도 한 번 피해 보시지.”
강권은 버럭 소리를 지르며 이번에는 장풍을 날렸다. 무공과 마법을 동시에 펼쳐서 전력을 다했지만 5성 정도에 불과했다.
“허걱.”
곤윤명은 무언가 이상한 기분이 들어 주변을 두리번거렸을 뿐인데 느닷없이 지풍과 장풍의 공격을 받자 대경실색하지 않을 수 없었다.
‘누구야? 도대체 어디서 이런 괴물이 나타났지?’
곤윤명은 20대 초반의 나이임에도 소림사에서 무예를 익혀 발경(發勁)의 경지에 오른 고수였다. 하지만 발경을 할 수 있다는 것과 장풍을 발할 수 있는 것과는 천지차이였다.
천하 무공의 본산이라는 소림사에서도 장풍을 쓸 수 있는 고수는 한 명도 없었다. 조폭 조직인 삼합회에서 약물을 써서 그런 고수를 만들었다는 얘기는 있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유언비어로 받아들여지고 있었다. 말하자면 장풍이나 지풍은 대국이라 자부하는 중국에서도 이미 사라진 기예였다.
그런데 일개 성(省)보다도 작은 조그만 나라인 한국에서 장풍과 지풍을 자유자재로 쓰는 고수가 있다니.
‘예로부터 한국이란 나라는 이인이 많다더니…….’
곤윤명은 피하기에 급급하면서도 내심 이런 생각이 들었다. 이제 곤윤명이 기대할 것은 싸우는 소리를 듣고 동료들이 나오는 것이었다. 아무리 생각을 해도 침입자와 자기의 실력 차이는 너무나도 컸던 것이다.
하지만 강권이 사일런스 마법을 펼쳐 두었기 때문에 이곳에서 벽력이 떨어져도 밖으로는 아무 소리가 새 나가지 않는다는 것은 꿈에도 생각지 못하는 곤윤명이었다.
강권은 곤윤명이 자신의 장풍과 지풍을 연달아 피하자 오기가 발동해서 마법까지 써서 공격했다.
[홀드.]
강권의 생각은 그대로 들어맞았다. 홀드 마법이 곤윤명의 움직임을 둔화시켰고 그 순간 곤윤명의 마혈을 제압했다.
“그럼 그렇지. 네까짓 게.”
하지만 강권의 호기로운 말은 더 이상 이어지지 못했다.
갑자기 등 뒤에서 ‘피잉’ 하는 파공음과 함께 한 무더기의 수수전(袖手箭)이 강권에게 쏟아졌던 것이다. 강권이 너무 득의한 나머지 주위를 경계한다는 것을 깜빡한 것이다.
강권은 곤윤명의 완맥(腕脈)을 거머쥐려다 소스라치게 놀라며 피했다. 그렇지만 쏘아진 수수전이 바늘처럼 너무나 가늘어서 피한다고 피했지만 이미 몇 군데 맞은 것 같았다.
“으윽.”
설상가상인 것은 수수전에는 극독이 묻어 있다는 것이었다.
얼마나 지독한 독인지 수수전에 맞은 곳이 벌써 마비되는 느낌이 들었다. 그렇지만 그 정도는 약과였다. 자신에게 제압당한 녀석은 이미 몸이 푸딩처럼 흐느적거리고 있었다. 독이 너무나도 지독한 것이어서 삽시간에 녀석의 뼈와 살을 녹여 버렸던 것이다.
“앗! 화골산(化骨散)이…… 이 지독한 되놈들.”
화골산은 사람의 뼈와 살을 한 줌 물로 만들어 버린다는 전설상의 독이었다. 명철의 생을 살 때 스승인 무무상인에게서 들은 적만 있었지 실제 본 적은 없었다. 그런 전설상의 독을 사용하다니 녀석들의 실체가 과연 어떤 녀석들인지 궁금했다.
게다가 동료의 생사도 상관치 않고 그런 극악한 암기를 쏘아 낸 녀석들은 대체 어떤 종자들이란 말인가?
강권은 간담이 서늘해져서 황급히 [뉴트럴라이즈 포이즌] 마법을 썼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강권의 몸은 정상이 아니었다.
‘도망가야 한다.’
강권은 정상이 아닌 상태에서 녀석들에게 붙잡히면 골로 가는 수밖에 없다는 생각이 들자 뒤쪽을 확인하지도 않고 무조건 [파이어 볼]을 날리고는 문을 박차고 나섰다.
삐이익.
갑자기 날카로운 호각 소리가 야공을 찢으며 퍼져 갔다.
그 소리가 퍼지고 얼마 지나지 않아서 건물 안에서 중국 공관원으로 보이는 자들이 쏟아져 나와 강권을 포위하려 했다.
순순히 잡혀 줄 수는 없었다. 강권은 온힘을 다해서 영사부 담장 밖으로 몸을 날려 뒤도 돌아보지 않고 숭의여대 뒤편의 남산으로 내뺐다.
강권이 너무나 빨리 도망쳤기 때문인지, 아니면 독을 믿은 것인지 녀석들은 전혀 쫓아오는 기미가 없었다. 그렇지만 강권의 마음은 급하기만 했다. 독이 움직임에 비례해서 그만큼 빠르게 퍼져 나가고 있었기 때문이다.
“으윽.”
얼마나 뛰었을까? 강권은 머리가 어질어질해서 더 이상 버티기 힘들다는 생각이 들었다. 해독 마법을 쓰기는 했지만 녀석들이 사용한 독이 너무나 지독한 것이어서 완전하게 해독되지 못한 것이다. 더 이상은 버티기 힘들어서 강권은 나무 밑동에 기대고 앉아 숨을 헐떡였다. 다행스러운 것은 녀석들이 쫓아오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렇더라도 강권의 몸 상태는 최악이었다.
무진신공이 독에 대한 내성이 있었고 수수전에 맞은 즉시 해독 마법을 펼치지 않았더라면 이미 한 줌 물이 되었을 것이다. 또한 이미 환골탈태를 겪지 않았더라도 여기까지 오지도 못했을 것이다. 죽지 못해서 겨우 살고 있는 만큼 고통은 그만큼 심했다.
강권은 가까스로 가부좌를 틀고 앉아서 운기조식을 해서 치료를 하려다가 문득 뇌리에 스쳐 가는 것이 있었다.
‘지둔요상공(地飜傷功).’
지둔요상공은 말 그대로 땅 속에 처박혀 지기를 이용해서 몸을 추스르는 공부였다. 무진신공이 땅의 기운을 내력으로 만드는 까닭에 가능한 요상대법이었다.
강권은 지체 없이 두툼한 낙엽을 헤집고 들어가 누웠다. 차가운 땅바닥에 누우니 이가 딱딱 부딪힐 정도로 추웠다. 강권은 금방이라도 혼절할 것 같았지만 이를 악물고 죽어라고 지둔요상공의 해독(解毒) 구결을 암송했다.
지둔요상공이 법문대로 한 번 돌아가자 독이 어느 정도 해소되는 기미가 느껴졌다. 이제 죽지는 않을 것이란 생각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