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아래로 스크롤 하세요.
10화
경옥의 부모들은 그 사실을 딸들에게 함구했다. 그래서 경옥이도 언니를 결혼시키려고 이것저것 알아보러 다니다 호적등본을 보고서야 그 사실을 알 수 있었다. 그런데 이 사람이 어떻게 그 사실을 알 수가 있다는 말인가?
패닉 상태에 빠져 있는 경옥을 보면서 강권은 빙그레 미소를 지으며 말을 이었다.
“그것은 어디까지나 언니나 부모님의 업보에 관계된 일이니 더 생각해 볼 것은 없겠고…… 그렇듯 언니가 골치 깨나 아픈 인물이지만 다 제 복인 걸 어쩌겠어?”
경옥은 마치 도를 터득한 도사라도 되는 양 본 것처럼 말하자 혹시 그에게 해결 방법을 알 수 있을지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니나 다를까 강권은 경옥에게 말했다.
“언니는 이미 정상적으로 살기 힘들어, 그 사람과 결혼을 해야 해. 형부라는 자가 자기만 아는 좀생이라, 사위면서도 사위가 아니고 형부면서도 형부가 아닌 것이 골치가 아프기는 하지만…… 언니로서는 어디서 또 그런 자를 만날 수 있겠어?”
“정말로 결혼을 해도 되겠어요?”
“하하, 이미 결정된 일 아냐? 꽃 피는 춘삼월에 결혼식 올리는 것 말이야. 그리고 그 결혼은 반드시 성사시켜야만 할 것이야. 그렇지 않으면 문제가 엄청 복잡해지기 때문이지.”
“문제가 엄청 복잡해지다니요?”
“아무튼 그렇게만 알고 있어. 더 이상은 천기(天機)와 관련된 거라 말할 수 없으니까 말이야.”
경옥이 부모의 사주로 볼 때 그녀의 아버지는 얼마 후에 순직할 것이고 어머니 또한 건강이 매우 나빠질 가능성이 컸다.
그런데 사주란 것이 100% 맞아떨어지는 것이 아닌데 어떻게 좋지도 않는 말을 꺼낼 수 있겠는가? 설혹 맞는다고 하더라도 어떻게 ‘니 아버지 얼마 후에 죽고, 니 엄마는 중병에 걸려.’라고 말할 수 있겠는가?
그래서 강권은 역술가들이 애매한 때에 전매특허처럼 내뱉는 천기라는 말로 얼버무렸던 것이다. 그런 사실을 알지 못하는 경옥은 언니가 결혼을 하면 잘 살지에 대해서 물었다.
“언니 사주로 볼 때 결혼 생활은 순탄치 못하겠지만…… 솔직하게 말해 주는 게 좋겠지?”
“예, 사실대로 말씀해 주세요.”
“사실 언니 사주로 볼 때 남편을 뜻하는 정관과 샛서방을 의미하는 편관이 동시에 있어. 그 말은 *도화살(桃花煞)[사람이나 물건을 해치는 독하고 모진 기운을 살이라고 하는데 명리학에서는 음탕하고 끼가 있는 것을 가리킨다.
좋지 않은 사주를 가진 사람에게는 주색과 도박으로 인생을 탕진한다거나 배은망덕한 것으로 해석하지만 좋은 사주에는 용모가 아름답고 다정다감한 것으로 본다. 또한 현대적 해석으로는 연예인들의 사주에 반드시 있어야 할 것이라고까지 이야기한다.]이 두 개나 있는 언니가 바람을 피울 가능성이 크다고 볼 수 있다는 거야. 그렇지만 언니나 형부의 사주에 이별수가 없으니 이혼하지는 않을 거야. 또 형부 사주로 볼 때는 몇 년 안으로 수백억대에 이르는 재산을 모두 말아먹을 것이야. 그렇지만 말년에는 잘 풀린다고 볼 수 있으니 잘 산다면 잘 사는 걸 거야.”
경옥은 강권이 자기 집안에서 벌어졌던 일들을 보는 것처럼 말하자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그리고 어떻게 알려 주지도 않은 부모님과 언니, 심지어는 형부의 사주까지 꿰고 있을 수 있을까?
이렇듯 자신과 처음 만난 사람이 자신에게 이렇게 빠삭하게 알고 있다는 것은 귀신이나 도사가 아니면 불가능할 것이라는 생각이 들자 섬뜩한 느낌마저 들었다.
경옥은 강권이 자신의 생각을 읽게 되어서 그렇게 본 듯이 아는 것이라고는 꿈에도 생각지 못했다. 사실 강권마저도 자신의 할아버지가 복권(復權)이 됨으로써 그녀의 전생뿐만 아니라 지금 그녀가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가도 알게 되었다는 것은 미처 생각지 못했다.
강권은 세 사람에 관해서 전생을 읽을 수 있는 특권 중에서 이렇게 둘을 쓰게 되었고, 그녀의 마음을 사로잡을 수 있었다.
하지만 강권에게는 다소 꺼려지는 것이 있었다.
‘젠장, 엄청 마음에 들었는데 하필이면 왜 딸이냐고?’
인간은 자신이 언제든 소유할 수 있으면 그 귀중함을 모른 것처럼 강권도 딴에는 경옥의 마음을 얻었다 싶으니 딴 생각이 드는 모양이었다.
* * *
경옥은 강권과 함께 약속 장소인 청담동 카페 J에 약속 시간이 다 되어서 도착했다. 그런데 친구들인 속칭 청담동 칠 공주들이 아무도 없는 것이 아닌가.
‘이게 어떻게 된 일이지?’
경옥은 이런 일이 한 번도 없어서 내심 황당해하다 리더 격인 오명희에게 전화를 했다.
“얘, 어떻게 된 거니? 오늘 우리가 모이는 날이잖아? 그런데 왜 아직 아무도 오지 않았지?”
―어! 태희가 너에게 연락하지 않았어? 오늘 자기 녹화 스케줄 때문에 한 시간을 늦추자고 말이야.
“아니, 그러면 아직 한 시간이나 남은 거네.”
―그렇지. 그런데 그 치도 와 있는 거야?
“으응.”
―알았어, 나도 금방 갈게.
경옥과 명희가 통화를 하고 있었지만 강권은 아무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카페에 들어선 순간부터 크리스털이 주렁주렁 매달린 대형 샹들리에와 신비로운 분위기를 연출하는 그리스 여신의 모습에 압도되어 넋이 나가 있었기 때문이다.
J카페는 스위스 명품 커피머신 J사에서 직접 운영하는 카페였다. 그런 만큼 인테리어 역시 상당히 품격이 있었던 것이다.
‘와! 여기가 정말 커피 파는 카페 맞아?’
천장에 종 모양을 한 샹들리에를 보고 내심 이런 생각을 하고 있는 것이다. 대형 거울에 비친 블링블링한 샹들리에의 불빛 아래에 있는 자신의 모습은 마치 선경에 있는 신선 같아 보였다.
명희와 통화를 끝낸 경옥이 연신 주위를 둘러보고 있는 강권의 모습을 보고는 묘한 미소를 지었다. 며칠 전 일이 생각나서였다.
세나가 농담 반, 진담 반으로 강권을 가리켜 마이 달링이라고 했는데 강권이 도자기가 깨진 것을 보고 안색이 창백해져 밖으로 튀어 나가자 명희가 잔챙이라는 말을 했었다. 사내가 그깟 도자기 하나에 안색이 달라질 정도면 무슨 큰일을 하며 어디에 쓰냐는 거다. 세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아서 모르겠지만 경옥이 또한 강권에 대한 호감도가 급감했었다. 물론 그 이후 강권이 다이아몬드 원석들을 갖고 있다는 것이 밝혀졌지만 다들 돈에 연연하는 아가씨들이 아니니 크게 달라지지 않았었다.
만약 아까의 일이 아니었다면 경옥은 강권의 촌스러운 태도에 인상을 썼을지도 몰랐다. 그런데 지금 경옥의 마음에는 그런 강권의 모습이 엄청 순박한 것으로 비쳐졌다.
오늘 오후 4시부터 8시까지는 명희가 카페 전체를 임대했으니 다른 손님은 오지 않을 것이어서 좀 어리벙벙한 강권을 그대로 두고 싶었다. 여기에는 나름 강권을 독차지하려는 경옥의 꿍꿍이셈이 있었다.
‘이러면 다른 얘들이 거들떠보지 않을 거야.’
그런데 강권을 독점하려는 생각이 있었음에도 이율배반적으로 강권의 존재에 대해서 알리고도 싶었다. 내가 사랑하는 사람은 보통 이런 사람이라고 알리고 싶은 사랑에 빠진 여자가 가지는 일종의 허영인 셈이다.
‘어떻게 한다? 아! 그러면 되겠다.’
경옥은 연신 두리번거리는 강권을 홀로 남겨 두고 화장실로 갔다. 그리고는 친구들에게 죄다 전화를 걸어 강권을 가리켜 족집게 도사라고 수다를 떨었다. 그렇지만 이미 명희에게서 강권의 말을 전해 들은 다른 육 공주들은 콧방귀를 뀌었다.
―너 그렇게 안 봤는데 되게 허풍이 세다. 경옥이 너 걔를 좋아하나 보지?
이렇게 말하는 세린의 어조에는 은근 비웃는 기색이 어려 있는 것 같았다. 마치 ‘네까짓 것이 하는 게 그렇지. 그런 시골뜨기를 좋아하다니 눈이 삐어도 단단히 삐었지.’ 하는 것 같았다.
세린이 자기에게 라이벌 의식 비슷한 것이 있다는 걸 알고 있는 경옥 혼자만의 생각인지도 모른다. 국내 최연소 공학박사라는 타이들을 갖고 있는 세린의 자부심은 IQ180이 넘는 경옥이에게는 내세울 수 없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같은 말이라도 ‘아’ 다르고 ‘어’ 다르다고 듣는 경옥은 은근 뿔이 나서 반박했다.
“그게 아니야. 그분에게 사주를 보면 너무 잘 맞는다고 깜짝 놀랄 걸.”
―걔, 우리 또래라며? 나도 얘기 들었어. 그런 시골뜨기에다 나이가 어린 녀석이 사주를 잘 봐야 얼마나 잘 보겠어?
부러 약 올리려는 생각에 시골뜨기에 어린 녀석이라는 말까지 썼다. 세린의 생각대로 경옥은 여지없이 낚였다.
“뭐야? 세린, 그렇게 내 말이 믿기 어려우면 내기하도 좋아.”
발끈하며 대거리하는 경옥을 보며 세린은 경옥의 콧대를 눌러 줄 좋은 기회라는 생각이 스쳤다. 그래서 좀 세게 나갔다.
―좋아, 그렇게 자신이 있으면 우리 내기하자. 내기하면 뭘 걸어야 하잖아? 뭘 걸까? 마세라티 스파이더 정도?
세린이 타고 다니는 마세라티 스파이더하면 차 값만 1억이 넘어가는 외제 스포츠카였다. 경옥은 망설이지 않을 수 없었다.
경옥이도 신도시 붐이 일어나는 통에 충청도 산골에 땅 좀 갖고 있어서 나름 부자가 되었다. 하지만 1억이 넘어가면 좀 부담이 되는 것 또한 사실이었다. 그에 비해 부동산 재벌 집 딸이어서 강남에 자기 명의의 빌딩이 두 채나 있고 은행에 수십억이 넘는 예금이 있는 세린은 1억 정도는 껌 값 정도였다.
경옥이 망설이는 걸 보고 세린이 이죽거렸다.
―왜? 자신이 없는가 보지? 그럼 말고.
경옥은 강권이 아까 자신에게 보여 준 능력이라면 내기에 지지 않을 자신이 있어 내기를 받아들였다. 그렇지 않았더라도 이미 사랑에 빠져 있는 경옥으로서는 내기를 받아들였을 것이다.
“좋아, 그렇게 하자.”
세린은 기회는 이때다 싶었는지 다른 친구들에게 죄다 전화를 걸어서 경옥이와의 내기를 알렸다.
얼마 지나지 않아서 청담동 칠 공주들이 모두 모이자 그녀들의 수다로 카페 화장실이 뒤집어졌다. 강권이 없으면 테이블에 앉아서 수다를 떨었겠지만 정작 수다의 당사자가 있으니 화장실로 우르르 몰려가 강권의 능력에 대해서 수다를 떨고 있는 것이었다.
다른 친구들도 두 사람 사이에 내기가 걸려 있다고 하자 흥미가 동한지 자기들도 끼겠다고 난리였다. 1억이 넘는 내기를 마치 자장면 내기처럼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는 무서운 여자들이었다.
결국 모두 내기를 하기로 결정한 칠 공주들은 내기의 방식과 판돈 등 내기의 제반 사항에 관해서 논의를 했다.
경옥이와 세나만 강권이 족집게란 것에 걸고 나머지는 그 정도는 아니란 것에 걸었다. 세린은 경옥의 콧대를 눌러 줄 생각으로 다섯 명에 한 대씩 이렇게 판돈을 5억으로 하자고 했다.
경옥이 역시 발끈해서 찬성을 했지만 세나가 반대했다. 이쪽은 두 명이니 2억만 걸자고 하는 것이었다.
두 사람의 주장이 팽팽했다. 이럴 경우에는 늘 그렇듯이 리더 격인 명희가 나서서 결정한다. 명희는 친구끼리 장난삼아 하는 내기니 2억이 적당하다는 결정을 했고 나머지들도 동의하며 그렇게 하기로 합의를 봤다.
“좋아, 판돈은 그걸로 됐고. 그런데 어떻게 족집게인지 알아보지?”
“경옥이 이 지지배는 이미 봤다니까 빼고, 나머지 6사람의 사주 중에서 둘만 골라서 보여 주자. 단둘이 서로 다른 사주로 자기 사주라고 말하는 거야. 그래서 걔가 제 사주를 찾아서 말하면 족집게고 그걸 모르고 곧이곧대로 사주 풀이를 하면 족집게가 아닌 걸로 말이야.”
“그건 우리에게 너무 불리하잖아? 그걸 알 정도면 그게 신이지 인간이야?”
세나가 나서서 반대를 하자 옆에서 듣고 있던 경옥이가 나서서 세린의 말대로 하자고 했다. 세나는 어이가 없었지만 경옥이가 워낙 자신 있게 말하자 경옥이의 말에 따르기로 했다.
그렇게 내기 방식이 정해지고 두 사람을 뽑은 결과 홍태희와 김미진이 뽑혔다. 이번에는 세린이 심통이 나서 구시렁거렸다.
“에이! 우리가 불리하잖아. 사주에는 그 사람의 직업이나 성격이 다 나와 있다던데 설마 대한민국 남자라면 다 아는 홍태희 이 지지배를 모르겠어? 어느 정도만 볼 줄 알면 다 맞힐 수 있는 거잖아.”
“꼭 그렇지도 않은 것 같아. 걔, 아까 보니까 전혀 홍태희를 모르는 것 같던데.”
“설마? 대한민국 남자들치고 홍태희를 모르는 사람이 있겠어?”
“흥, 그분은 홍태희 정도는 눈에 차지도 않을 걸? 수백억이나 되는 다이아몬드 원석들도 우습게 여기더라고.”
“뭐야? 얘, 정말 우리가 알고 있는 그 얼음공주 맞아? 빠져도 단단히 빠졌네.”
경옥의 말에 나머지 육 공주들은 다들 설마 하는 표정을 짓고 있었다. 몇 년 전 실연을 당한 뒤에 남자라면 백안시하던 경옥이 이처럼 남자를 싸고 돌 줄은 전혀 생각지 못했던 것이다.
그런데 경옥은 다른 친구들의 말에는 아무런 반박도 하지 않고 자기 생각을 말했다.
“태희가 여기 있어서 하는 얘기지만 너희들은 우리들 중에서 제일 예쁜 애가 태희라고 생각해? 우리들 중에서 제일 못생겼다고 공인받는 세나 얘도 쌩얼이어서 그렇지 좀 찍어 바르면 태희보다 나으면 나았지 못생기지 않았을 걸?”
경옥의 말에 입을 삐쭉거리고 있는 홍태희를 제외하고는 다들 고개를 끄덕거렸다. 긍정한다는 의미였다.
사실 청담동 칠 공주들이 세간에 오르내리고 있는 것은 그 배경들이 거창한 때문만은 아니었다. 돈 없는 것은 용서할 수 있지만 못생긴 것은 용서할 수 없다는 말이 있는 것처럼 칠 공주들 모두가 빼어난 미모를 갖고 있어서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리고 있었던 것이다.
“좋아, 그럼 태희의 사주를 미진이가 자기 사주라고 하고 미진이 사주는 태희가 자기 사주라고 하는 거야. 어때?”
“좋아, 나는 못 먹어도 고고 씽.”
“미 투.”
칠 공주들이 화장실로 몰려가서 이런 모의를 하는지도 모르고 있는 강권은 융프라우 쇼콜라(커피의 일종)를 홀짝거리면서 고개를 갸우뚱거리고 있었다.
‘이렇게 손님이 없는데도 장사가 되나? 이 카페를 만들려고 엄청 돈을 들였을 것 같은데 말이야. 그러니 이렇게 커피 한 잔에 1만 3천 원씩이나 하지. 거기에 봉사료가 10% 추가되면…… 와! 이 커피 한 잔을 마시려면 1만 5천 원은 가져야 하네. 그렇더라도 도저히 계산이 안 나오는데?’
강권은 인력시장에서 인테리어를 하는 곳으로도 일하러 가 보았기 때문에 인테리어 비용이 장난이 아니라는 걸 알장난이 아니라이 정도 고급으로 인테리어를 하려면 최소한 는 억은 들어야 할 것이다. 거기에 청담동의 임대료는 엄청 비쌀 것이기 때문에 임대료가 아무리 적게 잡더라도 최소 천만 원 이상은 갈 것이다.
그런데 손님이 이렇게 없으면 커피 한 잔에 1만 5천 원이 아니라 15만 원을 받는다 하더라도 도저히 수지타산을 맞출 수 없을 것 같았던 것이다.
하지만 강권이 알지 못하는 것이 있었다. 한 달 중에서 손님이 제일 적은 첫 번째 화요일 오후 4시부터 8시까지 청담동 칠 공주들이 시간당 백만 원에 임대를 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걸 모르니 의아해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강권이 고개를 갸웃거리고 있는데 화장실에서 일곱 명의 여자들이 깔깔거리며 우르르 몰려나왔다.
그걸 보고 있는 강권은 내심 중얼거렸다.
‘송사리 떼도 아니고 여자들은 왜 화장실에 몰려갔다 몰려올까?’
이 점은 우리나라 여자들만의 행태라는 걸 강권은 알지 못했다.
제7장-제왕의 사주를 가진 사나이
일곱 명의 여자들이 우르르 몰려오더니 경옥이 강권의 눈앞에 두 장의 종이를 디밀고 사주를 봐 달라고 했다.
“강권 씨, 얘들 사주 좀 봐 주세요.”
‘허! 내가 돈받으러 왔지 사주를 봐 주러 왔냐? 돈을 얼른 주고 보낼 것이지 뭔 사주를 봐 달라고 그래?’
강권은 내심 황당해서 구시렁거렸지만 전생의 딸인 경옥의 첫 부탁이니 만큼 딱 잡아 거절할 수 없었다.
“큼, 사주를 보는 것은 어렵지 않은데 복채가 작으면 잘 맞지 않을 텐데 그래도 보시겠습니까?”
“잘만 맞는다면야 큰 거 한 장 드리겠어요. 대신에 맞지 않으면 국물도 없어요. 아! 커피는 배 터지도록 마시게 해 드릴게요. 호호호. 여기는 무한 리필이거든요.”
아가씨들이 생각하는 큰 거 한 장은 1억이었다. 반면에 강권이 생각하고 있는 단위는 그것 보다 10배는 작은 1,000만 원이었다.
정성기로 살 때 강권은 평양의 이름난 기생들의 사주를 봐 주고 1,000냥을 받은 적도 여러 번 있었다. 당시의 1냥을 지금 물가로 환산하면 대략 2만 원 정도니 어림하면 2,000만 원이다. 평양의 이름난 기생들이야 요새로 치면 수억을 버니 그 정도는 큰 무리가 아니었다. 그런데 이 아가씨들은 대부분 집에서 용돈을 타 쓸 것이니 좀 무리일 성도 싶었다. 강권은 나름 생각해서 천만 원 정도면 적당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 천만 원 정도면 그렇게 하겠습니다.”
“천만 원이요? 우린 1억을 말하는 건데요.”
“예에?”
강권이 황당해하는 것을 본 한 아가씨가 약간 비웃는 것 같은 표정으로 한 장의 종이를 들면서 말했다.
“예, 1억이요. 경옥이 이 지지배가 하도 족집게라고 꼭 보라고 해서 보는 건데, 그런 것도 몰라요? 그건 그렇고 이게 제 사주인데 사주가 좋은가요?”
강권은 일곱 여자들에 둘러싸여 사주가 적혀진 종이를 보며 골치가 아팠다. 정성기로 살 때 자타가 공인하던 역술의 대가이니만큼 사주를 봐 주는 거야 그다지 어렵지 않았다. 하지만 일곱 여자들에게서 풍겨오는 진한 향기에 취해 제대로 숨을 쉴 수 없었다.
강권이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인상을 찌푸리고만 있자 일곱 여자들 표정에서 희비가 엇갈렸다. 경옥과 세나의 표정은 일그러진 반면 나머지 다섯 공주들은 의기양양한 표정을 지었다.
강권은 일곱 여자들 중에 제일 낯이 익은 두 여자의 표정만 일그러지자 제대로 사주를 봐 주기로 했다.
“좋습니다. 사주를 봐 드리죠. 여기 사주가 적혀 있는 두 분만 남고 나머지 분들은 자리를 피해 주시겠습니까?”
“꼭 그래야 돼요?”
“내가 원체 촌놈이 되어나서 여러분들의 진한 향수 냄새에 숨이 턱턱 막히는 것 같아서 그렇습니다.”
강권이 이렇게까지 말하자 태희와 미진이만 남고 나머지 아가씨들은 옆 테이블로 옮겨 갔다. 옆 테이블에서 말하는 소리를 들으려고 귀를 쫑긋 세운 것은 물론이었다.
그런 것은 신경도 쓰지 않고 강권은 미진이가 준 종이를 보고는 사주를 풀기 시작했다.
사주를 볼 때는 가장 먼저 자신에 해당하는 일간(日干)을 보고 일간이 신왕(身旺)한가, 신약(身弱)한가를 따져야 한다. 이것을 따진 다음에 거기에 맞게 용신(用神)을 찾아야 한다.
용신이란 사주에 나타난 일생의 길흉화복을 판단하는 기준이니 만큼 제대로 된 용신을 찾아야 사주를 옳게 해석할 수 있다.
신왕한 사람은 백절불굴의 투지와 인내를 가진 사람이어서 어느 정도의 어려움은 능히 이길 수 있다. 반면에 신약한 사람은 전연 그렇지 못하다. 따라서 그걸 감안해서 용신을 찾아야 사주를 제대로 보는 것이라 할 수 있다.
강권이 나름 판단을 해 보니 보통 사주는 아니었다.
사람은 끼리끼리 논다고 보통이 아닌 경옥의 친구라면 보통일 리가 없는 것이 당연할지도 모른다.
“어때요?”
“음, 이 사주는 신왕 중에서도 극강(極强)의 사주니 비록 여자의 탈을 쓰고는 있지만 사내대장부보다 흉금이 넓겠습니다. 하지만 남편을 의미하는 정관은 없고, 샛서방을 의미하는 편관이 셋씩이나 암장되어 있는데다 도화살이 무려 세 개나 있으니 남자를 거느리려고 드는 것이 흠이라면 흠이겠지요. 게다가 인수가 일간을 받쳐 주니 엄청난 미인일 것이고 자연히 인기도 많아서 따르는 남자들도 엄청 많겠는 걸요.”
“어머, 족집게다. 어쩜 그렇게 잘 맞춰요? 그럼 어때요. 잘은 살겠어요?”
사주의 주인인 홍태희가 끼어들었다.
강권은 사주를 말하는 도중에 끼어들어 말하자 기분이 좀 나빴지만 경옥의 친구라니 내색은 하지 않고 말을 이었다.
“일간(日干)이 미토(未土)에다 천간(天干)에 재성(財星)이 그득하니 이른바 잡기재성격(雜氣財星格)인데 신왕 중에서도 극강이니 내가 보았을 때는 영락없는 재벌 사주입니다. 다만 남자가 조금이라도 마음에 들었다 하면 재물 아까운 줄 모르고 갖다 바치니 어떻게 감당하겠습니까? 설령 그렇다고 하더라도 전체적인 면을 보건데 준재벌은 되겠습니다.”
말은 이렇게 했지만 강권이 보기에 완전 기생 사주였다. 하지만 어떻게 당사자에게 대놓고 그렇다고 말할 수 있겠는가. 물론 세상이 바뀌어 옛날의 기생은 오늘날에는 연예인이라고 해서 스타가 되고 추앙도 받지만 듣는 사람이 어디 그런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