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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화



강권은 문득 이 여자가 연예인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사주상으로는 분명 엄청 인기 있는 연예인일 것이다.
강권은 이 말을 하려다 이 사주를 내민 여자의 관상을 보았다. 그런데 턱이 각이 져 있고 광대뼈 부분이 돌출되어 있는 것이 아무리 눈을 씻고 봐도 저 관상은 기생 관상이 아니었다. 물론 예쁘지 않다는 것은 아니었지만 저런 얼굴이라면 탤런트보다는 사업가가 제격이었다.
반면 옆에서 끼어든 아가씨는 웃지도 않은데도 눈웃음을 살살치는 듯 보이는 것이 완전 기생 관상이었다.
관상감 정첨으로 있을 때 기생들 사주를 숱하게 보아 주며 공술을 얻어먹고 몸 공양까지 받으면서 터득한 관상 실력이니만큼 기생 관상을 모를 리 없었다.
“내 아무리 보아도 이 사주의 주인은 그대가 아니고 이 아가씨인 것 같은데 혹여 내가 잘못 본 것입니까?”
강권이 한참 동안 고개를 갸웃거리다가 이렇게 말하자 두 아가씨들은 서로 쳐다보면서 혀를 내두르다 이실직고 했다.
“예, 오빠 말씀이 맞아요. 경옥이 그 지지배가 하도 족집게라고 칭찬을 하기에 한 번 시험해 봤어요. 죄송합니다.”
“혹시 이 사주의 주인인 홍태희 씨가 연예인이 아닙니까? 지금 대운을 맞고 있으니 연예인이라면 대한민국을 쩌렁쩌렁 울리는 스타일 것 같군요. 그리고 사주상으로는 홍태희 씨의 인기는 앞으로도 30년은 끄떡없겠습니다.”
“어머, 어머, 어머. 이 오빠 너무 잘 맞춘다.”
사주를 보는 사람치고 사주가 좋다는데 잘 맞추지 못한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거의 없다. 아니나 다를까 강권의 말에 홍태희는 어머, 어머를 연발하며 뒤집어지고 있었다.
다른 점술가들도 대충 비슷하게 말들을 하기는 했다.
그렇지만 자신의 남성 편력에 관해 짚어 내는 사람은 단 한 사람도 없었다, 홍태희 옆에는 K1의 스타인 조용수가 버티고 있으니 어느 누구도 홍태희에게 수작을 부리지 못했다. 그리고 홍태희도 나름 조용수에게 만족하고 있으니 바람을 피우지 않은 까닭이었다. 또한 강권에게서 처음 앞으로 30년 이상 지금의 인기가 유지된다는 말은 들었다.
이런 생각을 갖고 있는 홍태희로서는 다른 사람들이 해 주지 않았던 말들을 한 강권이 인상적일 수밖에 없는 것이다.
홍태희는 혀를 내두르다 은근한 어조로 물었다.
“오빠, 저 결혼은 언제나 하겠습니까?”
강권은 홍태희의 물음에 한참 망설이다 대답을 했다.
“죄송스런 말씀입니다만 이 사주상으로 보면 태희 씨는 평생을 가야 결혼을 하기 힘들 것입니다. 그렇다고 남자가 없느냐 하면 그것은 아닙니다. 태희 씨 곁에는 항상 남자가 있지만 태희 씨가 운명적인 사람과 결혼을 하려고 하기 때문에 결혼을 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그런 사람은 아무리 눈을 씻고 찾아봐야 찾을 수 없기 때문입니다.”
이 말을 끝으로 홍태희의 사주에 대해서 더 이상 말할 필요가 없었다. 홍태희도 만족하는지 더 이상 묻지도 않았다.
홍태희의 사주를 봐주고 난 후에 김미진의 사주가 적힌 종이를 들며 말했다.
“이 사주는 재벌 사주입니다. 일찍이 사업을 벌였을 것이고 지금 승승장구하고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근래에, 아마 작년부터 중국과 마찰이 있을 것 같군요. 그렇지 않습니까?”
“어머, 오빠 그게 사주에 나와요?”
“예, 어떻게 해석하기 나름이지만 제가 보기에는 작년 찬바람이 나면서부터 중국 쪽과 엮이기 시작한 것 같군요.”
“어! 오빠가 그걸 어떻게?”
작년에 태한 그룹으로부터 태한 비밀 연구소가 해킹을 당했으니 그것을 막아 달라는 의뢰가 들어왔었던 적이 있었다. 그것이 작년 10월이었으니 찬바람이 불기 시작한 때가 맞다. 그런데 이 사실은 일급비밀이어서 아는 사람이 거의 없는데 강권이 알고 있으니 어찌 놀라지 않을 수 있겠는가?
김미진은 원래 사주란 것에 대해서 허황된 것이라고 생각하고 백안시하던 터라 그 놀라움이 더 컸다. 하지만 놀라기에는 아직 일렀다.
“가는 게 있으면 오는 것도 있는 법, 작년에 중국에 한 방을 먹였는데 지금은 도리어 식솔을 잃는 참담함을 겪고 있는 것처럼 보여 집니다. 김미진 씨의 사주로는 놀라움은 있을지언정 좌절을 겪지는 않을 가능성이 큽니다. 다만 문제가 된 식솔의 사주를 봐야 확언을 할 수 있겠습니다.”
사주상으로 미진이는 신금(辛金) 속했다. 명리학상으로 보면 신금은 보석이나 가공된 쇠에 속한다. 그런데 보석이나 가공된 쇠는 불을 두려워한다. 보석이나 이미 가공된 쇠는 불을 만나면 본질에 훼손을 입을 수 있기 때문이다.
문제는 중국이 병화(丙火)라는 데 있었다. 병화는 불도 큰불이다.
다행스럽게도 미진의 대운이 수운(水運)이어서 임시방편은 되었다. 거기에 임수(任水)에 해당하는 사주를 가진 자가 주위에서 보좌하고 있느니 놀라기는 하지만 크게 위험하지는 않을 운세였던 것이다.
김미진은 즉시 미림의 보안 담당 이사인 성병수에게 전화를 걸어 행방불명 된 장도진 연구원의 사주를 알아보게 했다.
―사주요?
성병수는 김미진이 뜬금없이 전화를 해서 실종자의 사주를 알아서 보고하라는 말에 어리둥절해서 물었다. 사주를 알면 실종자를 찾을 수 있다는 건가 하는 의구심이 든 까닭이었다.
“예, 사주요. 제가 알고 있는 분 중에 도력이 엄청 높으신 분이 계세요. 사주를 알면 그분의 생사라도 알 것 같아서 그래요.”
―허! 알겠습니다. 그 연구원의 부모에게 물어봐서 즉각 보고드리도록 하겠습니다.
두 사람이 통화를 하는 동안 강권은 웨이트리스에게 필기도구를 해서 종이 위에 뭔가 알 수 없는 그림을 그리고 있었다.
김미진은 그 그림이 왠지 모르게 자기와 관계 있는 그림인 것 같다는 생각이 들자 물었다.
“오빠, 그게 무슨 그림이지요?”
“아! 예. 미진 씨의 선산 형상을 대충 그려 보았습니다만, 제 그림 실력이 형편없어서 알아보기 힘들지요?”
“예? 우리 선산이요? 사주에 그런 것도 나와요?”
미진은 물론이려니와 태희까지 경악을 금치 못했다. 아니, 사주를 보고 어떻게 선산을 본 듯이 그릴 수 있단 말인가? 두 사람은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아 눈이 동그랗게 변해 있었다.
강권은 겸연쩍은 미소를 지으며 그림에 대해서 설명을 했다.
“아마도 미진 씨네 선산은 본래 밭이던 곳을 미진 씨가 잉태하기 직전에 선산으로 조성하지 않았는가 싶습니다.”
“어머머! 오빠, 맞아요. 정말 사주에 그런 것도 나와요?”
“꼭 사주에 나와 있다고 하기보다는 사주와 관상을 동시에 봐야 알 수가 있습니다. 제가 생각하기에는 아마 조부님 묘역을 지켜 주고 있던 당산나무 뿌리에 쥐가 집을 지은 것 같습니다. 그것은 미진 씨의 코 뿌리 부근에 나타나 있습니다. 그 부분을 관상학에서는 산근(山根)이라고 하는데 조상의 음덕과 관계있는 곳으로 봅니다. 최근 들어 산근 부근이 간질간질하고 뾰루지 같은 게 종종 돋아나곤 하지요? 그게 그것을 나타내는 징조라고 보면 됩니다.”
“오빠, 그럼 그 쥐를 잡아야 하겠네요?”
“아무래도 그래야겠지요.”
그때 성병수가 전화를 해서 장도진의 사주를 불러 주었다.
“오빠, 이게 장도진 연구원의 사주랍니다.”
강권은 미진이 내미는 종이에 적혀진 사주를 보고 깜짝 놀랐다. 장도진의 사주는 이른바 삼붕격(三朋格)인데 일간이 강하고 관살이 일간을 돕는 형식을 가졌으니 최소한 장관급의 사주였다. 말하자면 제왕의 사주를 갖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이런 사주라면 적어도 비명횡사하지는 않을 것이라는 생각도 들었다.
미진은 강권이 사주를 보고 깜짝 놀라자 다급한 생각에 장도진의 사주가 어떠냐고 물었다. 강권은 미진의 물음에 차분히 대답을 해 주었다.
“미진 씨, 이 사람의 사주는 좋습니다. 좋아도 엄청 좋아서 이런 사주로 연구원이 되었다는 게 이상할 정도입니다. 그렇다면 이 사건을 계기로 이 사람의 운명은 엄청 바뀔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지금까지 연구실에 처박혀서 연구를 하는 운세였다면 이번 위기만 넘기면 정치가가 되어 나중에 대통령도 할 수 있을 겁니다. 물론 자기가 하기 나름이겠지만 말입니다.”
“오빠, 정말이에요?”
“인간의 운명은 신이라도 어떻다고 장담할 수 없는 것입니다. 하물며 인간이 어떻게 단정을 내릴 수 있겠습니까? 사주란 것은 일종의 가능성을 예시해 주는 내비게이션 같은 것일 뿐입니다. 목표를 어떻게 정하고 그 목표에 따르겠다는 의지가 어떠냐에 따라서 미래는 완전 바뀔 수 있는 거란 말이지요. 내비게이션을 믿지 않고 갈림길에서 내비게이션과 다른 선택을 하면 도착하는 곳도 처음 생각했던 곳과는 전혀 다른 엉뚱한 곳이 될 수 있다는 것이지요.”
강권은 우리나라 최초의 메이저리거 박찬호의 예를 들었다. 박찬호 선수는 청소년 세계 야구 대회에서 이름을 날리자 당시 국내 프로구단에서 계약을 하려고 했다. 그런데 박찬호 선수의 모친이 계약하지 말도록 했고 박찬호 선수는 그 구단과 계약하지 않았다. 그 후 미국 프로 구단과 계약을 했고 누적 연봉만 1,000억을 벌었다. 그런데 과연 국내 프로야구 구단과 계약을 했다면 어떻게 되었을 것인가?
미진은 강권의 얘기를 듣고 곰곰이 생각하더니 물었다.
“오빠, 그럼 여전히 장도진 씨의 생환을 장담할 수 없다는 말이네요?”
“그렇다고 봐야겠지요. 다만 생환할 확률은 굉장히 높은 편이라는 것은 확실합니다. 또 이 사람의 사주상으로 보면 귀인의 도움도 있을 것 같으니, 적어도 놀람은 있을지언정 죽거나 하지는 않을 것 같습니다.”
미진은 강권의 말에 뭔가 생각을 하는 것 같더니 강권에게 간곡한 어조로 부탁을 했다.
“오빠, 우리가 장도진 연구원을 도와주면 안 되겠어요? 장도진 연구원의 사주에 나타난 귀인이 강권 씨일 수도 있잖아요? 오빠, 네에.”
미진의 말에 강권은 이마를 찌푸렸다. 미진이 이 일에 개입하면 할수록 미진에 대한 위험이 더 커질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물론 어차피 이 모든 사단이 미진의 결정으로 인해서 벌어진 일이니 피한다고 능사는 아닐 것이다. 또 미진이가 위험하다고 해서 뒤로 물러나 잠자코 있을 여자가 아니었다. 그리고 결자해지라는 관점에서도 미진이가 적당한 선에서 개입은 해야 할 것이다.
게다가 쓸데없는 일에 개입을 하는 것 같아서 내심 시큰둥하게 생각했었지만 강권은 실종된 연구원의 사주를 떠올리고는 생각을 바꾸었다. 제왕의 사주가 자신의 눈에 띄지 않았다면 모르되 자신의 눈에 띈 이상은 그를 도와주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강권은 나직이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좋습니다. 내 비록 힘은 없지만 한 번 나서 보겠습니다. 그렇지만 조건이 있습니다. 이 일에 나 혼자만 나서겠다는 것입니다. 다른 사람은 지켜보고 있으란 말이지요. 그렇게 해 주실 수 있겠습니까?”
“와! 당근이죠. 족집게 도사에다 무술에 능통하신 오빠가 나서시면 당연히 해결이 될 것인데 우리가 뭣하러 나서겠어요? 우리가 나선다고 도움이 될 것도 아니고, 안 그래요? 오빠.”
미진이 이렇게까지 말하자 강권은 어깨가 무거워져 한숨이 절로 나왔다. 강권이 알고 있기로 사주로는 운명을 100% 알 수 없고 게다가 그 사람의 운명에서 사주나 관상 등이 차지하는 비중은 불과 10% 미만이었다. 나머지 90%는 전적으로 자기가 하기 나름이다. 그런데 사람들의 의지가 다 고만고만하기에 사주나 관상이 전부인 것처럼 보여 지고 있는 것이다.
더 볼 필요도 없이 경옥과 세나의 압승이었다. 내기에 져서 4천만 원이란 큰돈이 나갔지만 세린만이 인상을 찌푸릴 뿐, 다른 아가씨들은 전혀 개의치 않았다. 김미진과 홍태희는 판돈 4천에 더해 1억이란 거금이 나갔지만 오히려 강권처럼 잘 맞추는 족집게 도사를 만난 것에 즐거워했다.
그런데 세린이 인상을 썼던 것도 돈이 아까워서가 아니라 사실은 앙숙인 경옥과의 내기에 졌다는 것 때문이었다. 다른 아가씨들도 자기 사주를 봐 달라고 난리가 아니었지만 강권은 크게 나쁜 것이 없으니 굳이 볼 필요도 없다는 말로 딱 잡아떼었다.
다른 능력은 쓰면 쓸수록 늘지만 예지능력만큼은 쓰면 쓸수록 기가 빠져서 몸에 좋지 못한 영향을 끼치기 때문이었다.
게다가 예지능력을 사사로이 쓰는 것은 엄청 조심해야 할 일이었다. 천기를 읽는다는 것은 몸을 정갈히 한 연후에 특별한 날을 기다려 행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정반대의 결과가 나올 수 있었다. 하늘의 그물이 성긴 것 같아도 어느 것 하나 빠져나갈 수 없다는 말이 거기에서 나오는 것이다.

* * *

“그런데 중국과는 어떻게 알력이 생긴 것입니까? 그것을 알아야 올바른 대책을 세울 수가 있을 것 같습니다. 아무리 생각해도 장도진 연구원의 행방불명이 중국과 관계 있는 것 같은 기분이 들거든요?”
“그것은 우리 회사의 일급비밀인데…….”
미진은 이렇게 말하며 머뭇거리다가 강권에게 말해 주는 것이 나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자 한숨을 쉬며 자초지종을 말했다.
“오빠도 아시다시피 작년에 명희네 회사인 태한 그룹 산하의 연구소를 어디선가 해킹을 한 적이 있었어요. 그래서 태한 그룹에서는 우리 미림에 누가 해킹을 했는지 의뢰를 했었지요. 우리 미림은 해킹한 곳을 추적하던 중에 가까스로 그들의 정체를 밝혀낼 수 있었어요. 그런데 알아보니 중국 첩보 기관인 MSS(중국 국가안전부) 부설 사이버 전략 연구소였어요. 그래서 우리 미림에서는 그곳에 역으로 해킹해서 그곳 컴퓨터에 있던 것들을 죄다 가져와 버리고 은밀하게 치우천황이라는 일종의 백 오리피스(Back Orifice)[원격 시스템 제어 기능을 하는 컴퓨터 바이러스의 일종으로 설치와 사용 방법이 매우 간단하지만 사용자는 그것이 설치되고 작동하고 있는지도 모른다.]를 심어 두었답니다. 그렇게 해서 알력이 생기게 된 것이지요.”
“그럼 그들이 그 사실을 알고 보복하고 있단 말입니까?”
“오빠, 그것은 아닐 거예요. 치우천황은 여전히 잘 가동되고 있거든요. 아마 그것보다는 우리 미림에서 그들의 공작을 차단시켰다는 것을 알고 거기에 대한 보복 차원에서 우리 회사의 연구원을 납치했을 가능성이 커요.”
미진의 말에 중국 영사부 건물에 잠입을 했을 때 만났던 자들이 생각나는 것은 어인 일인가. 강권은 자신이 갖고 있는 예지능력을 처음으로 사용해 보려는 의도로 전신에 무진신공을 유포시켰다. 땅은 본디 누르다. 강권이 무진신공을 유포시키자 강권의 몸은 은은하게 황금빛으로 빛나기 시작했다.
강권이 몸을 황금빛으로 물들이며 뭔가 골똘히 생각하고 있자 옆 테이블로 옮겨 갔던 다른 다섯 공주들이 이쪽으로 슬금슬금 옮겨 왔다. 두 사람의 사주를 다 보았다고 판단한 듯했다.
설사 그렇지 않다고 하더라도 은은하게 황금빛으로 빛나는 강권에게 엄청 호기심이 생겨서 강권의 옆으로 왔을 것이다.
그때 김미진이 사색에 잠겨 있는 강권을 꼭 끌어안았다. 그것을 본 다른 육 공주들이 분노에 찬 노성을 질렀다.
“이 지지배야, 우리 강권 씨에게서 안 떨어져?”
이렇게 말한 아가씨는 오늘 이전에는 강권과 일면식도 없던 박채연이었다. 언제 봤다고 우리 강권 씨인가? 그런데도 가관인 것은 미진이 콧방귀도 뀌지 않고 강권의 품에 안겨 눈을 지그시 감고 희열에 파르르 몸을 떨어 가면서 강권의 가슴을 더듬는다는 것이었다. 딱 사랑하는 애인을 애무하고 있는 여인의 손길이었다. 그런 미진의 모습이 보기가 눈꼴시었던지 이번에는 세린이 미진을 강권의 품에서 강제로 잡아뗐다.
자존심이 강한 미진이 가만히 있을 리 없다.
“이 지지배야, 왜 그러는데?”
“이 지지배야, 너 혼자 우리 오빠를 독차지하겠다는 거야?”
채연이 우리 강권 씨 하더니 세린 역시 우리 오빠였다. 세린은 나머지 오 공주들의 지원을 등에 업고 있다는 듯 의기양양하게 미진을 힐책했다. 그렇지만 미진은 전혀 개의치 않고 태연하게 대꾸했다.
“독차지하라면 못할 것도 없지. 근데 이 지지배야, 내가 왜 그러는지 이유를 알고나 그러는 거야?”
“그래, 그 어줍은 이유나 들어 보자. 도대체 네년이 바람난 유부녀가 샛서방 끌어안듯이 우리 오빠를 꼭 끌어안고 몸을 바르르 떠는 이유가 뭔데?”
미진은 처녀로서 차마 듣지 못할 말을 들었으면서도 배시시 웃으며 대답했다.
“세린, 이 지지배야, 너 질투하는구나? 나야, 우리 회사에 중요한 일을 맡으신 오빠의 사이즈를 알아서 보호복(保護服)을 만들어 드리려고 그런다. 총알에도 견디고 폭탄에도 끄떡없는 그런 보호복 말이야. 너는 우리 오빠, 우리 오빠 하면서도 그런 생각을 해 보기나 했어?”
세린은 미진의 말에 말문이 막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