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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화
‘이치 정말 어떻게 된 사람이야? 사람으로서는 보이지 못할 도약력하며, 수백 년 전의 도자기들, 게다가 우리나라에는 나지 않는 다이아몬드 원석들까지. 그런데 이번엔 노옴이야?’
경옥은 한때 친구 세나가 쓴 판타지에 매료되어 마법과 정령에 빠져 있었던 적이 있었다. IQ180이 넘는 뛰어난 두뇌, 그리고 현대 수학 등을 이용한다면 텔레포트를 마음대로 하고 무한 배낭까지 만들 수 있는 고위 마법사가 될 수 것이란 상상도 했었다.
그게 단순히 상상으로만 받아들였는데 실제 정령을 보게 될 줄이야. 경옥은 포기했었던 판타지 세계에 대한 동경이 다시금 샘솟는 것을 느꼈다. 그리고는 몽롱한 표정으로 노옴을 뚫어져라 쳐다보았다.
그런 경옥을 보고 놀라기는 강권도 마찬가지였다.
“어? 미리내, 너 정령이 보여?”
“예.”
경옥은 건성으로 대답하고는 필이 꽂혀 노옴이 하는 것에만 온통 신경을 썼다. 그리고 한다는 말…….
“아이, 귀여워. 콱 깨물어 주고 싶을 정도로 대빵, 대빵 귀엽다.”
‘뭐어? 저 심술 영감이 콱 깨물어 주고 싶을 정도로 귀엽다고?’
강권은 자신은 아무리 봐도 노옴의 모습은 심술이 닥지닥지 붙어 있는 영감 그 이상은 아니었다. 그런데 그런 노옴을 엄청 귀엽다고 설레발치다니, 강권은 경옥이 아름다움을 느낄 수 없는 저주에 빠진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마저 들었다.
‘그건 그렇다 치자고. 그런데 정령은 소환자 외에는 볼 수 없다는 것 같았는데…… 정말 저 아이의 눈에 정령이 보이는 걸까?’
경옥의 하는 양을 자세히 보면 정말 노옴을 보는 것도 같았다.
노옴의 능력은 놀라워서 금방 사람이 드나들 정도로 구멍을 넓히고는 강권의 앞에 와서 말했다.
[다 했다. 더 시킬 일 있나?]
“더 시킬 일? 더덕이나 산삼을 캐 올래? 예전에 내가 감춰 놓으라고 했던 그것 말이야.”
[뿌리 약초. 알았다. 금방 캐 온다.]
강권은 노옴이 약초를 캐러 간 사이에 토굴에 있는 도자기들을 경옥에게 보여 주었다.
“이것들 역시 조선 초기의 관요에서 나온 것들이야. 이것들은 저번 도자기에 비하면 소품이나 마찬가지니 그렇게 값이 많이 나가지는 않을 거야.”
“정말 이 도자기들이 조선 초기 관요에서 나온 것들이라고요?”
“미리내도 도자기에 대해서 어느 정도 알고 있잖아?”
강권의 말대로 경옥이 역시 나름 도자기에 대한 안목이 있었다. 그것을 증명이라도 하듯 경옥은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도자기들을 하나하나 훑어보았다. 전문 감정사가 아니어서 잘은 모르겠지만 경옥은 개당 1억 이상 호가할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경옥을 감탄하게 만드는 것은 그 가격이 아니라 최소한 오륙백 년은 되었을 텐데 새것처럼 깨끗하다는 것이었다. 마치 가마에서 갓 꺼내 온 것처럼 너무 깨끗했던 것이다. 경옥은 이점이 도무지 이해가 가지 않았다.
“정말 조선 초기 작품들 같군요. 그런데 어쩜 이렇게 깨끗할 수 있지요?
“그것은 내가 이것들을 직접 광주 관요에 가서 가져다가 이곳에 놓았기 때문이야.”
“예에? 그게 지금 말이 된다고 생각하세요? 강권 씨가 뱀파이어라도 돼요?”
“뱀파이어? 어떻게 나보고 뱀파이어라고 할 수 있지?”
“생각해 보세요. 강권 씨가 뱀파이어가 아닌 다음에야 어떻게 수백 년 동안 살 수 있다는 것이죠?
“허! 거 참.”
경옥은 대답이 궁해 얼버무리는 강권을 의구심이 가득한 눈길로 물었다.
“설마 판타지에서 읽었던 것처럼 차원 이동을 해 왔다고 하지는 않으시겠죠?”
“판타지를 읽어? 판타지가 무슨 책인데?”
‘아니, 이이가 정말. 어떻게 지금껏 판타지도 모른단 말인가? 설령 판타지를 읽어 보지는 않았다고 하더라도 그런 책이 있다는 것 정도는 알아야 정상이 아닌가?’
경옥은 너무 황당했지만 그녀가 강권에게 판타지에 대해 설명을 하려 했지만 그럴 수 없었다. 노옴이 하나하나가 경옥의 다리만큼이나 큰 더덕을 몇 뿌리나 캐 왔기 때문이다. 아마 모르긴 몰라도 족히 수백 년은 묵었을 것임에 틀림없었다.
“어머, 강권 씨. 이것 정말 더덕이에요?”
“맞아, 다들 200∼300년은 묵었을 것 같은데.”
“200∼300년 묵은 더덕이라고요?”
“그래, 200∼300년 묵은 더덕은 어지간한 산삼보다 더 좋은 약이 된대. 딸내미와 기왕 여기 왔으니 몸보신 좀 시켜 주려고 가져오라고 했어.”
이렇게 말하고는 강권은 차에서 야영 장비를 가져와 물을 끓여서 더덕을 작게 잘라 끓는 물에 살짝 데치더니 능숙한 솜씨로 껍질을 벗겼다. 그리고는 더덕을 먹기 좋을 정도로 적당하게 자르고 두드려서 고추장에 푹푹 꽂으며 말했다.
“미리내야, 당연히 밥을 먹어야겠지?”
“밥이요?”
“삼겹살에 더덕구이를 먹는다고 해도 한국 사람은 끼니때에는 밥을 조금이라도 먹어 줘야 하잖아.”
“여기서 밥을 먹고 가자고요?”
“이런 뭘 모르는구나. 자연에서 먹는 밥은 곧 보약이야. 맛도 끝내주고. 나는 꼭 딸내미 너에게 별미를 맛보여 주고 싶었어.”
그러더니 경옥에게 불판에 삼겹살과 함께 고추장에 버무린 더덕을 구우라고 했다.
“익으면 먼저 먹고 있어, 나는 금방 밥을 지을 테니까.”
그러더니 코펠에 쌀을 씻어 넣고 물을 붓고는 마치 손에서 나는 열로 나와 밥을 만들겠다는 듯 코펠을 손으로 감싸는 것처럼 보였다. 그 모습을 보고 있자니 너무 웃겨서 경옥은 자기도 모르게 킥킥거렸다.
“쿡쿡쿡쿡, 이번에는 불의 정령을 소환해서 밥을 지으려고요?”
“나도 그러면 좋겠어, 불의 정령 고거 불타는 듯 빨갛게 보이는 도마뱀인데 정말이지 쌈빡하게 생겼더라고. 그런데 아쉽게도 나는 불의 속성과는 친하지 않아서 불의 정령은 소환할 수 없어. 대신에 [파이어 볼] 마법은 쓸 수는 있지.”
“뭐예요? 정말 자꾸 놀리실 거예요?”
경옥은 자신을 놀린다는 생각이 들어 강권을 흘겨보는데 정녕 믿어지지 않은 광경이 눈에 들어왔다.
[파이어 볼.]
강권이 파이어 볼이라고 외치자 샛노란 색의 둥그런 불꽃이 나타나더니 코펠 바닥에서 뱅글뱅글 돌아가며 이글이글 타오르고 있었다. 경옥은 눈이 동그랗게 변해서 소리쳤다.
“어! 강권 씨, 저, 정말 마법도 할 수 있는 거예요?”
“응, 미리내가 보다시피. 그런데 마법을 할 수는 있기는 하지만 이제 겨우 4서클 익스퍼트야.”
‘세상에 정령에, 마법에, 무공까지…… 게다가 한 번 본 것은 전부 기억하는 기억력, 족집게처럼 사람의 운명을 읽어 내는 것하며, 사람이라면 어떻게 저럴 수 있는 거지? 그렇다면 서, 설마…….’
“서, 설마, 드, 드래곤이세요?”
“미리내야, 드래곤이라니? 나는 어디까지나 사람이라고.”
경옥은 강권의 대답에도 불구하고 너무 놀란 나머지 경악에 빠져 있었다. 너무 놀란 나머지 경옥은 삼겹살과 더덕이 새카맣게 변하는 것도 인식하지 못했다.
그 모습을 본 강권이 더덕이 탄다고 주의를 주었다. 그런데도 경옥은 여전히 경악에서 깨어나지 못했다.
결국 강권이 큰 소리를 질러서야 경옥은 허둥지둥 삼겹살과 더덕을 꺼내 놓았다.
사랑에 빠지면 곰보 자국도 보조개로 보인다고 강권의 눈에는 그 모습이 깨물어 주고 싶을 정도로 깜찍하게 비쳐졌다. 강권은 그 모습에 한참을 바라보다 가볍게 한숨을 쉬며 말했다.
“휴, 미리내야. 내가 너에게 보여 주려던 것은 비단 이곳만은 아니었어. 내가 마법을 할 수 있고 정령을 다룰 수도 있다는 것을 보여 주고 싶었거든.”
“…….”
경옥은 강권의 말에 놀라는 표정을 지으며 뭔가 골똘히 생각하고 있었다. 강권은 그런 경옥의 모습이 너무 사랑스러워 한동안 바라보다 말을 이었다.
“믿지 못하겠지만 대략 400일 전만 해도 나는 노숙자 신세였어. 발목은 곪아서 잘라야 할 정도였지.”
“뭐라고요? 그러니까 지금 나더러 그 거짓말을 믿으라고요?”
“하하하, 못 믿으면 할 수 없고. 그렇지만 생각해 봐. 설마 내가 딸내미인 너에게 뭣하러 거짓말을 하겠어?”
강권의 말에도 불구하고 경옥은 정말 이해가 되지 않았다.
노숙자였던 사람이 어떻게 불과 1년 만에 마법을 익혀서 4서클 익스퍼트가 될 수 있단 말인가? 자기가 읽었던 판타지에서도 마법을 익히는 것은 엄청 어려운 것이어서 10년 동안 죽어라고 마법을 익혀야 겨우 3서클 마스터가 된다고 하지 않았던가? 경옥이 생각해도 그것이 어느 정도 타당성이 있는 스토리다.
그렇지 않고 개나 소나 1년 만에 4서클이 된다면 세상에는 온통 고위 마법사들로 넘쳐날 게 아니겠는가? 그런 슈퍼맨들만 사는 세상이 어떻게 제대로 유지될 수 있겠는가?
경옥은 판타지의 내용이 뇌리에 스쳐 가자 어쩌면 강권이 이계에서 온 고위 마법사가 아닐까 하는 의심이 들었다. 어쩌면 드래곤이 차원 이동을 해 온 건지도 모른다. 아니, 강권이 아니라고 하기는 했지만 드래곤이 확실한 것 같았다. 그러지 않고서는 그녀가 보았던 일련의 일들이 도저히 설명이 되지 않았다.
‘드, 드래곤이라니.’
경옥은 생각만 해도 살이 떨렸다.
그러다 문득 강권이 자기에게 엄청 호감을 갖고 있다는 것이 뇌리에 스쳐 갔다. 그러자 두려움은 이내 사라지고 그녀의 눈에는 달뜬 열망이 어렸다.
‘호호, 어쩌면 드래곤에게 마법을 배울 수도 있겠네. 판타지에서 보면 드래곤들은 어수룩한 면이 있으니 어디…….’
경옥은 야무진 꿈을 갖고 슬슬 유도심문에 들어갔다.
“혹시 그쪽 세상에 돼지 머리를 한 오크라는 몬스터가 살아요?”
“어! 미리내가 어떻게 오크를 알지?”
“호호, 다 아는 수가 있죠. 그럼 그쪽 세상에 엘프나 드워프도 있겠네요.”
“어어? 미리내는 이계에 가 보지도 않았을 텐데 어떻게 그쪽 세상을 다 알고 있지?”
강권은 자기만 알고 있으리라고 생각했던 것들을 경옥이 알고 있자 깜짝 놀랐다. 그런데 경옥은 강권의 되묻는 말에는 대답을 하지 않고 열심히 딴 생각에 빠져 있었다.
‘아싸! 정말로 판타지 세상이 있는 게 확실해. 게다가 이이는…….’
경옥은 강권이 이계에서 차원이동을 한 고위 마법사 내지는 드래곤이라는 확신을 가지게 되었다.
‘그런데 어떻게 해야 자연스럽게 마법을 배울 수 있지?’
판타지를 읽으면서 머리 좋은 자기가 마법을 익힌다면 틀림없이 9서클의 대 현자가 될 수 있으리라는 생각을 족히 백 번은 했던 경옥이었다.
마법은 백 번, 천 번을 생각해도 흥미로웠다. 조그만 가방 안에 몇 컨테이너 분량의 물건을 집어넣는다든가, 수백 Km 떨어진 곳을 단숨에 간다든가 등등 마법은 세상을 완전 바꿀 수 있는 요소가 엄청 많았다. 그뿐인가? 판타지 내용대로라는 가정 하에 마법과 과학이 결합이 된다면 그 결과는 인간의 상상력으로는 도무지 형언할 수 없을 것이다.
경옥은 한참 이런 상념에 빠져 있다 마법을 배우기에 앞서 강권이 드래곤인지 아니면 차원 이동을 한 고위 마법사인지를 아는 것이 급선무라는 판단을 내렸다.
강권이 드래곤이면 용언으로 약속을 받아야 하고 고위 마법사인 경우에는 마나에 걸고 맹세를 하게 해야 했기 때문이다.
경옥이 자기 말에는 대답도 없이 넋이 나간 듯 멍하니 있는 것을 본 강권은 그 모습이 사랑스러우면서도 걱정이 되었다.
‘도대체 지금 얘가 왜 이러는 거야?’
할아버지 도움 덕분에 경옥의 전생을 읽으면서 생각까지 읽을 수 있게 되었다. 하지만 생각을 읽는 것은 어디까지나 읽으려고 해야 가능한 일이다. 주파수가 맞아야 라디오를 들을 수 있는 것처럼 파장이 맞아야 생각을 읽을 수 있다. 강권은 경옥이 걱정이 되어 경옥의 뇌파에 파장을 맞추었다. 그 결과 강권은 경옥이 뭔 생각을 하고 있는지 알게 되었다.
‘하! 이 귀여운 것, 그런 꼼수를 부리고 있었어? 그런데 어쩌지? 나중에 마법을 가르쳐 주기는 하겠지만 지금은 때가 아닌 걸.’
강권은 잔대가리를 굴리는 경옥이 사랑스러워 꼭 끌어안고 뽀뽀라도 해 주고 싶었다. 하지만 그런 강권의 생각을 알지 못하는 경옥은 목소리를 가다듬어 가며 강권에게 물었다.
“강권 씨, 정말 드래곤이 아니세요?”
“드래곤? 나는 어디까지나 인간이라고. 미리내야, 내가 설마 그 만 년을 산다는 비만 도마뱀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아니겠지?”
“예에? 비만 도마뱀이요? 그쪽 세상에서는 드래곤을 위대한 존재라고 하지 않나요?”
“그런 말도 쓰지. 그런데 그렇게 부르지 않은 사람도 많아. 어떤 사람들은 그 비만 도마뱀을 잡아서 내단을 복용하려고도 해.”
물론 그렇게 생각하는 사람은 강권뿐일 것이다.
강권의 전혀 예상치 못한 대답에 경옥은 혼란스러워졌다.
‘드래곤 하트를 내단이라고? 그럼 그쪽 세상은 판타지와 무림이 짬뽕된 세상인가?’
판타지에서는 드래곤들은 자부심이 강해서 스스로를 위대한 존재라고 부른다는데 드래곤을 비만 도마뱀이라고 부르는 걸 보니 드래곤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다 문득 자신이 드래곤이 아니라고 하기 위한 트릭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쩜, 그럴 수도 있겠다. 그럼 어떻게 하지?’
그런 경옥을 바라보는 강권의 눈에는 사랑이 담뿍 담겨 있었다. 강권은 사랑하는 경옥이가 더 이상 머리를 굴리지 않도록 솔직하게 말하는 것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미리내야, 나는 네가 생각하는 것처럼 드래곤도 아니고, 이계에서 차원 이동을 해 온 고위 마법사도 아니야.”
“예에? 그걸 어떻게…….”
“믿어지지 않겠지만 언제부터인지 나는 네 생각을 읽을 수 있었어.”
“뭐라고요?”
경옥은 깜짝 놀라 경악성을 토했지만 강권의 눈을 보니 전혀 거짓말을 하는 것 같지 않았다. 그게 더 황당한 경옥이었다.
‘아니, 어떻게 그런 일이…….’
경옥은 너무 혼란스러워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강권은 그런 경옥의 모습을 보고 그녀의 혼란스러움을 완화시켜 주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어떻게 하냐?’
방법이야 많았다. 순간 강권의 뇌리에 스치는 것은 언젠가 보았던 진실에 대한 얘기였다.
‘그래, 진실이란 것이 단 하나만 있는 것은 아니랬지. 가슴을 울리는 진실과 머리로 이해되는 진실, 이렇게 두 개가 존재한다고 했었어. 그리고 여자들은 가슴을 울려 주는 말을 진실로 받아들인다고 했어.’
그 얘기에 따르면 가슴을 울리는 진실은 꼭 진실만은 아니라고 했다. 그러니까 진실로 믿고 싶은 거짓말도 가슴을 울리는 진실에 포함된다는 것이었다.
강권은 그게 가장 좋겠다는 생각이 들자 천연덕스럽게 말했다.
“사실 나도 믿어지지 않는 것은 마찬가지야.”
“그게 말이 된다고 생각해요?”
“그러엄.”
“…….”
“미리내야, 염화시중(拈華示衆), 심심상인(心心相印), 이심전심, 불립문자(不立文字), 교외별전(敎外別傳)이 무슨 말인지 알지?”
“도대체 무슨 말을 하려고 그래요? 다 마음에서 마음으로 전해진다는 의미를 갖고 있잖아요. 아니에요?”
“맞아, 딱 그거야. 그 말처럼 내가 너를 너무 사랑하다 보니까 저절로 너의 마음을 읽을 수 있게 됐어. 뭐, 그렇게 된 거라고.”
“예에? 이이가 정말?”
경옥은 강권의 말에 너무 어이가 없어 눈을 흘겼지만 볼을 붉히는 것이 전혀 싫은 내색은 아니었다.
전혀 말도 되지 않았지만 자기를 너무나 사랑해서 마음까지 읽을 수 있게 되었다는데 거짓말이라도 싫지는 않았다.
강권은 경옥의 반응에 자기의 생각이 맞아떨어졌다는 걸 느낄 수 있었다.
“미리내야, 죽다 살아난 이후로 문득 네가 생각이 났고 어떻게 된 건지 네 생각을 읽을 수 있었어. 나는 한참 심사숙고를 했어. 그래서 내린 결론은 전생에 이루지 못한 사랑을 이루기 위해서라는 거야. 내가 너를 그만큼 사랑했다는 것이겠지. 내가 너를 이곳에 데려온 것도 사실은 내가 너를 얼마만큼 사랑하는 가를 알려 주고 싶어서였어. 일이 그렇게 된 거야.”
“…….”
경옥은 할 말이 없었다. 전생의 딸을 너무 사랑해서 현생에 부부가 되려한다는 것이 말이 되는가?
그런데 도무지 앞뒤가 맞지 않는 이 말이 경옥에게는 가슴에 사무치도록 그럴듯하게 들렸다.
‘정말 나를 너무나 사랑해서 내 생각을 읽을 수 있다고? 그럼 내가 생각하고 있었던 것을 전부 알았겠네.’
이런 생각이 스치자 얼굴을 붉히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러다 아차 하는 생각이 들었다.
‘어쩜 지금도 내 생각을 읽고 있을 수도…….’
경옥이 얼굴을 붉히는 것을 본 강권은 그녀가 무슨 생각을 하고 있나 대충 짐작할 수 있었다.
그래서 그녀를 안심시켜 주어야겠다고 생각하고 말을 꺼냈다.
“미리내야, 나는 네가 전생에 내 딸내미였지만 현생에서는 너와 부부로 살고 싶어. 그리고 나는 부부간에 가장 중요한 것이 서로가 서로를 믿을 수 있는 신뢰 관계의 형성이라고 생각하고 있지. 네 허락 없이 너의 생각을 읽은 것은 분명 잘못된 일이고 앞으로 함부로 네 생각을 읽지 않겠다고 약속하겠어. 중요한 것은 내가 너를 엄청 소중하게 생각한다는 거야. 그리고 너를 위한 일이라면 어떤 일이라도 서슴지 않고 할 각오도 되어 있어.”
강권이 이렇게 말했지만 경옥은 너무 혼란스러워 아무런 말도 들리지 않았다. 강권은 그런 경옥의 마음을 모르지는 않았다.
‘하기야, 나라도 내 생각을 읽는 사람이 있다면 기함하겠지. 그런데 꼭 내가 그녀의 생각을 읽을 수 있다고 말을 했어야 했을까?’
경옥이 일시 혼란스러워한다고 달래 주어야겠다는 생각이 드는 것은 영원을 생각하고 있는 강권이 이해불가였다. 그런데 마음은 그게 아니었다.
‘마음이 그렇게 시키니 아무래도 그녀를 달래 주어야겠지.’
강권은 한숨을 쉬며 경옥이 지금 가장 원하고 있는 것을 떠올렸다. 경옥이 지금 정말 원하는 것은 마법을 배우는 것이었다.
‘그럼 마법을 가르쳐 준다고 하면 풀릴 수도 있겠네.’
생각은 곧바로 실천에 옮겨졌다.
“미리내야, 지금도 마법을 배울 마음이 있어?”
“예에? 아! 예. 가르쳐 줘요.”
경옥은 강권이 자신의 생각을 읽는다는 것에 쑥스럽고도 무안했다. 그런데 그동안 판타지를 읽으면서 마법을 배울 수 있다는 것에 생각이 미치자 그 무안하고 쑥스러운 마음을 이내 지울 수 있었다. 그렇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그녀가 강권을 마음에 두고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기도 했다. 교육자이면서 보수적인 그녀의 부모들은 일부종사(一夫從事)를 여자의 길이라고 믿는 전근대적인 사고방식의 소유자이기도 했던 것이다.
모닥불을 피워 놓고 마주 앉아서 두런두런 얘기하면서 보내는 밤은 정을 더욱 돈독하게 해 주었을 뿐만 아니라 서로에 대한 이해를 깊게 만들어 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