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으로 바로가기

위/아래로 스크롤 하세요.


16화



저녁 8시 같은 장소.
강권은 먼저 가서 고경탁이 오기를 기다렸다.
8시 정각에 고 경위는 40대 초반으로 보이는 중년인과 함께 들어왔다.
“어서 오십시오.”
“아! 예, 먼저 오셔서 기다리고 계시는군요. 이분은 제가 존경하고 있는 경찰대 선배이십니다. 경찰대 기수로는 2기고 경찰청 외사국장이십니다.”
경찰청 국장이라면 치안감으로 군으로 따지면 투스타인 사단장급이었다. 경찰대 2기라면 40대 후반일 텐데 그 정도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면 고시를 합격하지 않고서는 불가능할 것이다.
강권은 선배를 소개시켜 준다면서 이런 거물을 데려오는 고경탁에게 내심 경이로운 마음을 가지지 않을 수 없었다.
“아! 예, 그러시군요. 저는 미림의 총괄 담당 이사인 최강권이라고 합니다.”
“허어, 젊으신 분이 중책을 맡고 계시군요. 저는 이경복이라고 합니다. 이 친구 말을 듣자니 산업스파이에 대해서 궁금하시다고요? 산업스파이는 제가 맡고 있는 외사국에서도 골칫거리입니다. 그래서 혹시나 하고 나왔습니다.”
이경복의 말에 따르면 우리나라의 위상이 높아지자 우리나라에 2,000여 명이 넘는 산업스파이들이 활동하고 있다고 했다. 또 그중 가장 골치 아픈 자들이 중국 산업스파이들이라고 했다.
“어떻게 대책은 마련이 되어 있습니까?”
“국정원과 연계해서 대처를 하고 있습니다만…….”
이경복의 말로는 국정원에서 정보를 독점해서 경찰청 외사국에서는 죽어라고 땀만 흘리고 얻는 것은 거의 없다고 했다.
강권이 이경복의 기파를 읽으니 뭔가 감추고 있는 것 같았다. 눈이 맑고 광채가 나니 귀한 상이고 눈썹에 보일 듯 말 듯 점이 있으며, 게다가 막 쥔 손금을 갖고 있으니 외골수에다 총명할 것이다. 이런 인물이라면 마음에서 울어나지 않으면 때려죽인다고 하더라도 마음속에 있는 것을 털어놓지 않을 것이다.
나름 이경복의 인물 됨됨이에 대한 판단이 하자 강권은 스스로 털어놓게 만들어야 뭔가 얻을 게 있다는 결론을 내렸다. 이경복과 같은 노련한 인물을 움직이게 하려면 그가 가장 알고 싶어 하는 것을 제시할 필요가 있었다. 물론 이쪽의 밑천을 전부 내보이면 안 된다. 상대를 가장 잘 속일 수 있는 거짓말은 90%의 진실에 10% 정도의 거짓말을 섞는 것이다. 강권은 그런 방법을 쓰기로 하고 은근한 어조로 말했다.
“아! 그러시군요. 다른 나라의 산업스파이에 대해서는 모르겠는데 중국의 산업스파이 조직이라면 남산에 있는 중국 영사부를 조사하는 게 빠를 것입니다.”
“최 이사, 그게 무슨 말이오? 남산의 중국 영사부라니?”
“하하, 우리 회사 직원 중 한 사람이 인사동 일대의 폭력 조직인 쌈지파와 갈등이 있어 쌈지파를 조사한 적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남산에 있는 중국 영사부와 쌈지파가 무슨 관련이 있는 것 같았습니다. 게다가 중국 영사부 소속 직원들 중의 상당수가 발경의 경지에 오른 쿵후의 고수라더군요. 조금 이상하지 않습니까? 그리고…….”
강권의 말을 열심히 듣고 있던 이경복은 강권이 말끝을 흐리자 기파가 흔들리는 것이 역력했다. 무언가 심적 동요가 있음에 틀림없었다. 워낙 노련한 인물이어서 겉으로 봐서는 거의 표시가 나지 않았지만 강권과 같은 내가 고수를 속일 수는 없었다.
‘역시 뭔가 알고 있음이 분명해.’
한참 생각에 잠겨 있던 이경복은 강권의 내심을 짐작이라도 한 듯 결연한 표정으로 말했다.
“최 이사, 최근 들어 몇몇 첨단 기술을 보유하고 있는 연구소에 근무하고 있는 연구원들이 실종되었다 나타난 경우가 몇 차례 있었습니다. 실종되었던 자들이 워낙 민감한 곳에 근무해서 국정원한 곳담당을 했고 우리 외사국한 곳업무 협조를 했습니다. 그런데 실종되었다 돌아온 자들이 하나 같이 CCTV가 없는 곳에 곳있다 왔다는 것입니다. 어떤 자들은 낚시를 갔담당을 고, 어떤 자들은 등산을 하러 갔담당을했습니다. 물론 그럴 수도 있겠지요. 문제는 그들의 실종을 조사하던 우리 외사국 직원들 몇이 의문사를 당했다는 것입니다.”
“국장님께서 저에게 그런 말씀을 하시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혹시 중국 영사부 직원과 마주쳤다는 우리 회사 직원에게 사인을 알아보게 하려는 것입니까?”
“그렇습니다. 최 이사, 국과수 연구원들의 말에 의하면 그들은 무언가에 관통상을 입고 과다출혈로 죽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무엇에 관통을 당했는지 도무지 알 수 없다는 것입니다. 심지어 사입구와 사출구를 전혀 알아볼 수 없었다고 합니다. 그 점이 또 다른 의문점들을 낳고 있습니다. 게다가 외사국 직원들의 몸에서 일체 대항한 흔적이 없다는 것입니다. 우리 외사국 직원들은 무도 경관 중에서 특채를 한 사람들이기 때문에 나름 무술의 달인들입니다. 그런 무술의 달인들이 자신이 어떻게 죽는지도 모르고 죽었다는 것이 말이 된다고 생각하십니까? 그렇다고 어떠한 약물이 검출된 것도 아닙니다. 최 이사가 생각하기에도 좀 이상하지 않습니까?”
이경복의 말대로라면 이상한 점이 하나둘이 아니었다.
사입구와 사출구를 모를 정도라면 분명 총기류나 흉기에 의한 관통상이 아니다. 그렇다면 투척류 무기에 의한 관통일 것인데 암기를 던져 사람의 몸을 뚫기란 어지간한 내가 고수가 아니면 불가능하다. 또 무술 경관이라면 최소한 20년 가까이 무술을 연마한 사람들인데 그런 사람들이 죽는지도 모르고 죽었다면 지금까지 전혀 알려지지 않은 방법에 당했을 것이다.
물론 강권 자신이라면 지풍이나 마법 공격으로 그렇게 할 수 있을 것이지만 마법은 아닐 것이 분명하다.
‘그렇다면 중국 애들 중에서도 지풍을 쓸 수 있는 고수가 있다는 것인가? 설마 그런 고수들이 하수인 노릇을 한단 말인가?’
이런 강권의 속내를 알 리 없는 이경복이었지만 강권이 고개를 갸웃거리는 것을 보고 뭔가 알고 있다고 생각했다. 첨단 과학 기자재를 동원하고서도 알 수 없었던 것을 밝힐 수 있다는 생각에 나름 기대감이 샘솟았다. 순직한 무도 경관들은 자신이 직접 고른 그의 사람들이었다. 그래서 그들의 복수를 해 주지 못한다고 하더라도 사인 정도는 밝혀 주어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것이야 말로 자기를 믿고 따랐던 이들에게 할 수 있고, 해야만 하는 최소한의 도리라고 믿는 이경복이었다.
내심 이런 생각을 한 이경복은 강권에게 정중하게 부탁했다.
“최 이사, 그들은 우리나라의 국익을 위해서 산화한 애국자들입니다. 그들의 한을 달래 주기 위해서라도 그 직원을 꼭 만나게 해 주십시오.”
이경복이 애국심에 호소하였지만 강권은 애국심 따위에는 크게 관심은 없었다. 하지만 그들이 어떻게 죽었는지 알고 싶었다. 왠지 모르게 그들의 죽음이 자기의 미래에 엄청 관계가 있을 것 같다는 예감이 들었다. 그들이 죽은 지 49일이 지나지 않았다면 그들의 영혼은 아직 이승을 떠나지 않았을 것이고 접신(接神)도 가능할 것이다. 그렇다고 그런 것까지 세세히 밝힐 필요는 없었다. 나름 생각을 정리한 강권은 이경복에게 말했다.
“이 국장님, 그 친구는 자신의 존재가 외부에 알려지는 것을 극히 꺼립니다. 한 번 말은 해 보겠습니다. 그런데 그들을 아직 매장하지 않았다면 제가 먼저 그 사체들을 보면 안 되겠습니까?”
“최 이사가 사체들을 보겠다고요?”
“예, 사체들을 봐야 그 친구에게 그들이 어떻게 죽었다는 것을 말해 줄 수 있을 것이고 그래야 그 친구를 설득하기 좋지 않겠습니까?”
이경복은 딴에 일리가 있다는 생각이 들었는지 강권에게 기다려 보라는 말을 하고 어디론가 전화를 걸었다. 그러더니 다시 분당 경찰서장에게 전화를 걸어 패트롤카를 부탁하는 것이었다.
“최 이사, 굳이 사체를 보시겠다면 빨리 가 봐야 할 것 같습니다. 순직한 우리 직원들은 모두 다섯 명인데 전부 장기 기증과 시신 기증을 한 상태입니다. 그중 네 명은 이미 대학교 의대에 보내졌습니다. 그중 유일하게 남은 한 명이 내일 아침 일찍 카톨릭 의대로 갈 예정이랍니다.”
“카톨릭 의대로 가다니요?”
“시신을 기증하게 되면 보통은 대학병원에 보내져서 방부처리를 하여 일정한 기간이 경과 후에 의대 해부학 실습이나 연구용 시술을 위해 쓰여집니다. 국과수에 있어 봐야 더 이상의 자세한 사인을 밝힐 수 없으니 원래 기증 약속을 한 대학병원으로 보내지는 것이지요.”
“아! 그럼 나머지 시신들은 이미 해부학 실습에 쓰였겠네요?”
“아직 쓰이지는 않았습니다. 방부처리를 할 때 사용한 약품의 독성 등을 없애기 위해서 모처에서 보관되고 있습니다. 하지만 볼 수 없으니 이미 쓰인 것이나 마찬가지죠.”
패트롤카가 오자 이경복은 즉시 국과수로 호송할 것을 지시하고 사이렌을 울리며 빠른 속도로 달렸다. 분당 경찰서에서 국과수까지는 보통 1시간 이상 걸리는데 불과 30분 안에 국과수에 도착을 했으니 얼마나 빨리 달렸는지 이해가 갈 것이다.
그리고 국과수에 도착을 하자 즉시 시신을 검안할 수 있게 조치가 되어 있었다.



제11장-설마 이것은?


“최 이사, 어떻소?”
강권이 오한용 경위의 시신 앞에서 가타부타 말도 없이 가부좌를 틀고 앉아 있자 애가 탄 이경복은 성마르게 물었다. 그런데 강권은 들은 척도 하지 않고 아예 눈까지 감아 버리는 것이 마치 명상을 하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이에 더 답답해진 이경복은 혼자 구시렁거렸다.
“허! 이것 참, 도대체 뭐하자는 것이지?”
그런데 강권은 듣지 못했다는 듯 여전히 같은 자세를 견지했다. 강권이 이 같은 태도를 취하는 것은 시신의 상처에서 마나를 감지했기 때문이었다. 마나와 기는 같으면서도 약간 달랐다. 둘은 자연의 기운이라는 점에서는 동일했지만 기가 정제된 것이라면 마나는 정제되지 않은 기운이었다. 저런 상처는 강력한 지풍으로도 가능하지만 미약하마나 마나가 감지되었다는 점에서 마법에 의한 상처일 것이다. 그런데 강권이 느끼기에 통상적인 마법에 의한 상처와는 약간 다른 것 같았다.
‘[윈드 스피어]라는 2클래스 마법에 당한 것 같은데 왜 [윈드 스피어]에 당한 상처와는 다르게 느껴지지?’
강권은 이런 의구심이 생각나자 명학에게서 무작위로 받아들였던 이계 마법지식들을 떠올렸다. 그리고 명학에게서 무작위로 받아들였던 마법 지식들을 다시 검색하는 과정에서 아티펙트라는 것이 떠올랐다. 강권은 아티펙트를 자신의 서클보다 두 단계 아래의 마법을 가능하게 해 주는 일종의 마법 장치로 이해했다.
“그럼 아티펙트에 의한 상처야? 어떻게 그게 가능하지? 설마 명학이 이 녀석이 개입되었다는 건가?”
아무리 생각을 해도 그것 아니면 답이 없다.
한편 강권이 자기도 모르게 소리를 치자 이경복은 강권이 무슨 말을 하는지 몰라 벙 졌다. 고경탁 역시 아티펙트라는 말을 들었지만 자기가 잘못 들은 것이 아닌가 하며 반신반의 했다.
‘아티펙트라니? 무슨 판타지 세상도 아니고 그게 무슨 말이야?’
그런데 강권이 다시 명상에 잠겨 버리자 옆에 있던 이경복이나 고경탁은 벙어리 냉가슴을 앓을 수밖에 없었다.
강권은 그들이 그러든가 말든가 전혀 신경을 쓰지 않고 오한용 경위의 영혼과 접신을 시도했다.
강권의 접신 방법은 영매나 무당들의 접신과는 전혀 다른 방법이다. 영매나 무당이 영혼을 자신의 몸으로 받아들여서 접신을 시도하지만 강권은 영혼의 파장을 맞추어 공명을 해서 영체와 의사소통을 한다. 지박령을 부릴 때도 같은 방법을 사용한다.
영매나 무당은 동일한 지위에서 접신을 한다. 따라서 영혼이 아무리 뛰어난 사람이었다고 하더라도 몸을 빌린 영매나 무당 이상의 지적 능력을 발휘할 수 없다.
반면에 강권이 사용하는 방법은 영혼보다 우월한 지위에서 접신을 한다. 이승은 어디까지나 살아 있는 자들의 세계이기 때문이다. 더 바람직한 것은 영혼들이 자유로운 상태에서 그들의 의사를 밝히기 때문에 그들의 능력을 모두 발휘할 수 있게 한다.
또한 외부에서 봐서는 영매나 무당의 접신과는 다르게 강권이 접신을 하는지 하지 않은지 전혀 알 수가 없다. 강권은 오한용 경위와 접신을 시도해서 대화를 나누었다.
‘오한용 경위, 자네는 누구에게 살해당했지?’
[중국 놈들, 멸종단(滅從團) 놈들이야.]
‘멸종단이라니?’
[우리나라에 암약하는 중국 스파이 놈들은 크게 세 무리로 구분이 돼. 정보를 캐는 취지단(取知團), 그들을 도와주고 보호하는 호천단(護天團), 그들의 흔적들을 지우는 멸종단이 그것들이지.]
강권은 오한용 경위의 영혼으로부터 많은 것들을 알아냈다. 아울러 오한용 경위가 장도진 연구원의 행방을 쫓다가 살해되었다는 것까지 알아낼 수 있었다.
그리고 남산에 있는 중국 영사부가 산업 스파이들의 총본부고, 전국 10여 개 도시에 그들의 지부가 있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오한용 경위는 접신을 중지하려는 강권에게 그의 아내와 자식들의 후사를 부탁했고 강권은 흔쾌히 그러마고 했다. 강권이 이처럼 흔쾌히 대답을 한 것은 오한용 경위가 장도진 연구원의 종적을 뒤쫓다 순직했으니 미림은 당연히 일정의 책임을 져야 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한마디로 자기 돈 하나 들지 않으니 강권으로서는 거리낄 이유가 전혀 없었던 것이다.

* * *

“최 이사, 뭘 좀 알아낸 것 같던데 말을 해 주시오.”
“이 국장님, 제가 말씀드릴 수 있는 것은 그들은 고도의 무공을 익힌 자들이기 때문에 무도 경관으로서도 그들을 상대하기가 쉽지 않을 거라는 것입니다. 그렇다고 함부로 총기를 사용하면 종내는 중국과 마찰이 있을 것입니다. 제가 이런 말씀을 드리는 것은 부하 직원들을 생각하는 이 국장님의 마음은 알기 때문입니다. 저에게 생각할 시간을 좀 주십시오.”
강권은 오한용 경위와 접신을 해서 알아낸 사실들을 곧이곧대로 말할 수 없어 이렇게 얼버무릴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이경복은 작정을 한 듯 강권에게 끈질기게 채근했다. 강권은 고심을 하다 한 가지 대안을 제시했다.
“중국과 외교 분쟁을 피하면서 그들을 상대하는 방법은 있습니다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편법입니다. 한 번 들어 보시겠습니까?”
“그게 어떤 방법이오?”
“민간인으로 결사 조직을 만들어 산업스파이들과 맞서는 방법입니다. 제가 맡아서 책임지고 훈련을 시키도록 하지요. 그렇게 하면 조금은 승산이 있을 것입니다.”
“최 이사가 그럴…….”
이경복은 너 따위가 그럴 능력이 있느냐고 말하려 하다 자신의 실수를 깨닫고 얼른 입을 다물었다. 하지만 마음속으로는 여전히 승복하지 않는 눈치였다.
강권이 그걸 모를 리 없었다. 하지만 내색은 하지 않고 말했다.
“외사국에 소속된 경관들 중에서 무도 경관 출신이 10명이 있을 것입니다. 국장님께서 그들과 언제 한 번 자리를 마련해 주시는 게 어떻겠습니까?”
“뭐라고요?”
“하하, 그들을 제가 부리겠다는 말은 아닙니다. 국장님께서 염려하시는 바를 조금 덜어 드리겠다는 것 외에는 다른 이유가 전혀 없습니다.”
“알겠소. 쇠뿔도 단김에 빼랬다고 지금 당장 부하들을 불러들이겠소.”
새벽 두 시가 다 되어 가는 시간에 부하들을 소집하겠다는 이경복의 말에 강권은 어이가 없었다. 하지만 그의 외골수적인 성격을 감안한다면 그보다 더한 일도 서슴지 않았을 것이란 생각이 들자 그의 말에 따르기로 했다.

* * *

성남시 산성동에 있는 청호 체육관에 외사국에 근무하는 10명의 무도 경관이 집합한 시간은 새벽 4시였다.
청호 체육관은 이경복의 사촌 동생이 운영하는 합기도 도장으로 무도 경관들이 한 달에 한 번 꼴로 집합하는 장소이기도 했다.
청호 체육관의 관장 이경수는 어릴 때부터 공부와는 담을 쌓고 온갖 무술을 익힌 괴짜였다. 나이가 40대 초반인데 무술 단수를 합하면 30단은 훨씬 넘고 40단은 조금 모자랄 정도니 그의 나이를 감안하면 무귀(武鬼)라 불러도 전혀 과함이 없을 것이다.
“형님, 꼭두새벽부터 무슨 일이오?”
“허, 이 자식 보게, 이제 대가리 컸다고 이 형님한테 엉길 셈이냐?”
“허, 형님도 참. 내 나이도 이제 40대 중반으로 들어섭니다. 그런 것도 감안을 해 줘야 하지 않겠습니까?”
“이 자식아, 나한테 너는 언제나 코 찔찔이니까 그렇게만 알고 있어.”
“허, 알겠습니다.”
이경수는 사촌 형 이경복이 어떤 종자라는 걸 잘 알고 있었기 때문에 따지려는 생각을 접었다. 이경복은 일단 자기 사람이라고 생각하면 무슨 일이 있어도 지켜 주는데 반해서 자기 권위를 침해하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아작을 내는 인물이었다. 이경수는 그런 형이 두렵지는 않았지만 형제간의 우애를 해치기 싫어 참고 있는 것이다. 또 이경복은 이 도장을 그에게 마련해 준 것을 비롯해서 부모 이상의 역할을 해 왔으니 굳이 그런 형에게 대들 이유도 없었다.
이경수는 고경탁에게 조용하게 무슨 일인가 물었다. 고경탁은 청호 체육관에서 어렸을 적부터 운동을 해 왔기 때문에 이경수에게는 제자나 마찬가지였다.
“예, 스승님. 젊은 친구 때문에 벌어진 일입니다.”
“젊은 친구라니?”
“국장님과 함께 온 친구 말입니다.”
고경탁은 이렇게 운을 떼고는 어제 저녁부터 있었던 일을 요약해서 말했다. 이경수는 고경탁의 말에 강권을 다시 꼼꼼하게 훑어보고는 흠칫 놀랐다. 강권의 기도가 그가 가늠할 수 없을 정도였기 때문이다.
“흐음, 내 생전에 저런 인물도 보게 되는군.”
“스승님, 그게 무슨 말씀이신지요?”
“나도 무술깨나 했다고 자부하는데 저 친구에게는 명함도 못 내밀 것 같아.”
“스승님, 정말 그 정도입니까? 저도 예사롭게 보지는 않았는데 설마 스승님께서 놀라실 정도입니까?”
“고 군, 아마 나 정도가 열 명이 덤벼도 당할 수 없을 것 같아. 무협지에서나 나오는 장풍이나 지풍을 쓰는 초고수라면 어떻게 상대할 수 있을는지 몰라도 말이야.”
“설마 그 정도입니까?”
이경수가 고개를 끄덕이자 고경탁은 문득 낮에 경찰서에서 벌어졌던 일이 떠올랐다.
고경탁은 이철현 경사가 무도 경관은 아니지만 유도가 3단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이경수의 말을 대입하자 강권이 이철현 경사를 제압하는 장면을 보지는 못했지만 대충은 그림이 그려졌다.
하지만 고경탁은 자신이 알고 있는 무도 경관들의 면면을 떠올리자 설마 하는 생각이 앞섰다. 이런 고경탁의 의구심은 10명의 무도 경관이 모두 모이자 이내 말끔히 지워지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