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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화
“이 국장님, 여기 모이신 분들에게 한 가지 다짐받을 일이 있는데 약속해 주실 수 있겠습니까?”
“최 이사, 무슨 일인지 알아야 다짐을 주든 말든 할 것이 아니겠소? 기탄없이 말해 보시오.”
“좋습니다, 말씀드리지요. 여기에서 벌어진 일에 대해서 일체 함구해 달라는 것입니다.”
이경복은 주위를 쓰윽 훑어보는 것으로 좌중에게 자신의 의사를 밝혔다. 한동안 기다려도 아무런 대꾸가 없자 강권에게 약속을 했다.
“여기에서 아무 일도 벌어지지 않았다고 약속하겠소.”
”하하, 좋습니다. 밤도 늦었고 하니 시간을 끌 필요가 있겠습니까? 이분들에게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말고 한꺼번에 저에게 덤비라고 지시해 주십시오. 그 결과가 나오면 국장님께서는 수긍하실 수 있으실 것입니다.”
“최 이사, 그게 무슨 말이오?”
이경복은 강권이 입을 꾹 다물고 대꾸를 하지 않자 한숨을 내쉬며 무도 경관들에게 고개를 끄덕거렸다.
무도 경관들도 귀가 있으니 강권의 말을 들었고 내심 미친놈 지랄한다고 욕하고 있던 터여서 이경복의 지시에 다짜고짜 공격해 들어갔다. 그런데 결과는 전혀 예상 밖이었다. 10명의 무도 경관들이 순식간에 널브러진 것이다.
너무도 순식간에 벌어진 일이어서 이경수조차도 무도 경관들이 어떻게 당했는지 제대로 보지 못했다.
강권은 무도 경관들이 일어나기를 기다려 다시 말했다.
“여러분께서 방심을 하셨던 것 같군요. 이번에는 저를 얕잡아 보지 마시고 최선을 다해 주십시오. 몇몇 분들은 검도를 하신 것 같군요. 검도를 익히신 분들은 무기를 드셔도 좋습니다.”
검도를 익힌 고수들에게는 목검은 그 자체로 흉기나 마찬가지였다. 또한 검도를 익힌 고수들이 손에 무기를 드는 것과 들지 않는 것은 몇 곱절은 위력적이었다. 그런데 무기를 들고 덤비라니 너무 어이가 없는 일이 아닐 수 없었다. 이경복 역시 나름 운동을 한 인물이어서 그런 사실을 모를 리 없었다. 이경복은 한참 고심을 하다 부하들에게 목검을 들고 다시 덤비도록 명령을 했다.
“하지만 국장님, 그러다 자칫…….”
검도 5단에 세계 검도 선수권에서 준우승까지 한 경력이 있는 차명환 경위는 나름 강권을 생각한다고 말을 꺼내려다 본전도 찾지 못했다.
“하하, 그깟 목검을 들고 덤빈다고 결과가 달라질 것 같습니까? 안심을 하고 최선을 다해서 덤비십시오. 무기를 들고도 한 합도 견디지 못한다면 검도를 익힌 게 창피하지 않겠습니까?”
강권의 격장지계에 10명의 무도 경관은 분노로 얼굴이 시뻘겋게 달아올랐다.
‘미친 새끼, 그러다 병신이 되어도 나는 모른다.’
10명의 무도 경관은 내심 강권을 난도질하겠다는 생각을 가지고 다시 공격해 들어갔다. 그런데 결과는 이전과 전혀 달라지지 않았다. 10명이 널브러진 것은 순식간이었던 것이다.
강권은 너무나 뜻밖의 결과에 황당해하는 이경복이 제정신을 차릴 때까지 기다렸다가 자신의 생각을 밝혔다.
“우리나라에서 암약하고 있는 중국 산업스파이들은 대략 1,000명 정도입니다. 그중 100여 명은 저 무도 경관들보다 윗길에 있고 300여 명은 저분들과 비슷할 것입니다. 특히 10여 명은 저들 10명의 무도 경관이 전부 덤비면 간신히 이길 수 있겠지만 그들 중 둘만 힘을 합하면 무도 경관들이 꼼짝하지 못할 것입니다.”
“그렇게나 막강하다는 것이오?”
“그들은 이쪽에서 상상할 수 없는 암기를 쓰고 있으니 그 이상이라고 생각하시면 될 것입니다.”
“예에? 그러면 그들을 막을 수 있는 방법이 전혀 없다는 것입니까?”
이경복은 깜짝 놀라 물었다.
강권은 약간 과장되게 말한 점이 있었다. 하지만 저들이 마법 아티펙트나 화골산을 먹인 수수전을 쓴다는 것을 감안하면 전혀 과장하지 않았다고 봐도 좋다는 생각이 들어 차분하게 대답했다.
“아까도 말했지만 총기를 사용하지 않으면 그들을 상대하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고 보면 됩니다. 제가 그래서 국장님께 어떤 말도 드리기 어렵습니다.”
“최 이사, 그럼 방법이 전혀 없겠소?”
“비상한 시국에는 정상적으로는 대처가 어렵다는 것을 국장님께서도 잘 알고 계실 것입니다. 제가 말씀드릴 수 있는 것은 정상적인 방법으로 힘이 들지만 비정상적이라면 방법이 전혀 없지는 않다는 것입니다.”
“대체 그 비정상적인 방법이 무엇이오?”
강권은 이경복의 얼굴을 한참 쳐다보다 한숨을 쉬며 말했다.
“합법적인 조폭을 키우는 것입니다. 물론 그들은 오로지 중국의 산업스파이들만 상대한다는 전제로 조직된 폭력 집단입니다.”
“그렇게까지 해야 합니까?”
“제가 국장님께 말씀드린 것은 최소한의 조건입니다. 그리고 이 조폭들은 목숨을 초개와 같이 여기는 자들로 조직이 되어야 합니다. 그게 힘든 점이기도 합니다.”
이경복은 강권의 말에 무어라 말할 수도 없었다.
요즘 애들 중에 국가를 위해서 목숨을 초개와 같이 여길 수 있는 애들이 얼마나 되겠냐는 생각을 하자 엄두가 나지 않았던 것이다. 또한 이 정도의 일은 자기가 나서서 할 수 있는 것도 아니었다. 정책 결정권자의 재가가 필요한 사항이었다. 이경복은 나름 숙고를 하다 강권에게 말했다.
“사안이 사안이니만큼 내가 최 이사에게 무어라 약속을 할 수 있는 일이 아니군요. 한 번 윗선에 보고를 해 보고 가부간 말씀드리도록 하겠습니다.”
“하하, 아무래도 그래야 되겠지요.”
* * *
경옥은 시간이 지날수록 오히려 꿈이 더욱 생생하게 떠오르자 가슴이 벅차올랐다.
‘내가 제왕을 낳을 거라고?’
자칭 최강권의 할아버지라는 노인의 풍모가 완전 신선풍이어서 경옥은 더욱 믿음이 갔다.
그런데 100억이라는 거금으로 재단을 만들어서 제3세계 아이들에게 희망을 주라는 대목에서는 망설이지 않을 수 없었다. 돈이 없어서가 아니었다. 강권이 자신에게 꿈 얘기를 듣고는 100억이 든 통장을 선뜻 맡겨서 돈은 가지고 있었다.
하지만 우리나라에도 어려운 사람이 많은데 외국 아이들을 위해 그 돈을 쓴다는 게 선뜻 내키지 않은 것이다.
‘할아버지 말씀은 최대한 많은 사람들을 도와야 한다고 했었지.’
그렇게 생각한다면 그 돈을 가지고 도와줄 수 있는 사람의 수는 제3세계가 최소한 10배는 많을 것이다.
경옥은 일단 재단을 만들 결심이 서자 서울대 법대를 다닐 때 동기들 중에서 사법 고시에 합격한 사람들의 근황을 알아보았다.
그중 제일 먼저 떠오르는 인물은 권계숙이었다. 계숙은 사시 성적도 좋았고, 연수원 성적도 우수해서 판사는 몰라도 검사는 할 수 있었는데도 불구하고 참여연대 간사가 된 인물이었다.
‘계숙이 언니는 그때도 제3세계에 대해서 관심을 갖고 있었지.’
경옥이 권계숙에게 언니라고 하는 것은 권계숙이 9살에 초등학교에 들어간 데다 재수를 해서 대학에 들어왔기 때문이다. 더군다나 친언니인 미옥의 동창이기도 했다.
권계숙은 자기보다 다섯 살이나 나이가 어린 경옥을 매우 귀여워했었다. 경옥이 법대를 중퇴하고 의대에 다시 입학을 해서 소원해기는 했지만 권계숙과 연락이 완전히 끊긴 것은 아니었다.
경옥은 권계숙을 만나서 재단법인에 대해서 의논을 했다.
“경옥아, 갑자기 웬 재단법인이니?”
“으응, 우리 그이가 눈 먼 돈 100억이 생겼다고 그걸로 재단을 만들어서 제3세계 아이들을 위해서 쓰자고 하데. 그래서 언니가 생각이 나서 언니와 상의를 하려고 보자고 했어.”
“뭐? 100억으로 재단을 만들겠다고? 참, 그보다 언제 이 언니에게 알리지도 않고 결혼했냐?”
“언니, 아직 결혼을 한 것은 아냐. 하지만 이미 결혼을 한 것이나 다름이 없다고 보면 돼.”
권계숙은 경옥의 말에 어이가 없기도 하고 걱정이 되기도 했다. 경옥이 실연을 하고 몇 날 며칠을 울고불고 했던 것을 익히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100억이라는 거금을 선뜻 재단에 출연을 할 정도면 속물은 아니라는 생각이 들어 조금 안심이 되기는 했다.
“경옥아, 재단법인을 설립하는 게 뭐 어려운 일은 아닌데 굳이 내가 나설 필요가 있을까?”
“언니, 재단법인을 설립하는 것은 어려운 일은 아니지만 원래 언니도 제3세계 아이들에 대해서 관심을 갖고 있었잖아. 또 언니도 알다시피 내가 아직 졸업을 하지 않았잖아. 그래서 아무래도 그쪽에 관심이 있는 언니와 함께 일해 보고 싶었어.”
“그래 한 번 생각은 해 볼게. 그나저나 네 신랑 될 사람은 언제 보여 줄래? 그 사람을 만나 보면 확실하게 결정을 내릴 수 있을 것 같은데.”
“고마워, 조만간 그이를 보여 주도록 할게.”
경옥은 권계숙이 강권을 만나 보고 확실하게 결정을 하겠다고 했지만 그것이 승낙의 의미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 시각, 모처에서 강권은 전혀 뜻밖의 인물과 만나고 있었다. 그 뜻밖의 인물은 다름 아닌 대한민국의 대통령 이무영이었다. 이무영은 국정원장으로부터 이미 수차례 중국의 산업스파이들에 대해 보고를 받고 그들의 처리에 고심하고 있었다.
국익을 위해서는 그들을 과감히 제거해야 하지만 제도권의 힘으로는 그들을 상대하기가 사실상 불가능했다. 자칫 대응을 잘못했다가는 외교적 분쟁을 야기하게 될 것이고, 두고 보자니 엄청난 가치를 지닌 첨단 기술들이 유출되는 것을 빤히 보고 있어야 한다.
그러던 차에 국정원장으로부터 남산 영사부에서 벌어졌던 일을 보고받고 강권의 행방을 은밀하게 찾고 있던 중이었다. 그런데 경찰청장으로부터 구미가 당기는 말을 듣고 안가(安家)에서 자세한 얘기를 듣겠다는 지시를 내렸던 것이다. 물론 외부에 전혀 알려지지 않은 완전 비공식적인 만남이었다.
“강 청장, 산업스파이들만 전문적으로 상대하는 조폭을 만들자고 했습니까?”
“예, 대통령님. 얼마 전에 본청의 외사 국장이 저에게 그런 말을 하더군요. 엄청난 능력을 가진 젊은 친구가 그런 말을 했다고 합니다.”
“그 친구를 만나 볼 수 있겠습니까?”
“그렇잖아도 대통령님께서 방문하시겠다는 말씀을 하셔서 대기시켜 놓고 있었습니다.”
강희복 경찰청장은 마치 자기가 강권을 데려온 것처럼 말하고 있었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강권이 자발적으로 찾아왔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어찌 되었건 불려온 강권을 본 이무영 대통령은 자못 흥미롭다는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하하, 그대가 재미있는 제안을 했다는데 어디 한 번 들어 볼까?”
강권은 눈앞의 인물이 귀인이라고 느끼고 있었지만 그가 대통령이라고는 짐작하지 못했다. 워낙에 이무영 대통령이 매스컴에 나오는 것을 꺼려 한데다 최근 지병까지 도져서 얼굴이 전연 딴판이 된 까닭이었다.
“말씀드리는 것은 어려운 일이 아닙니다. 그렇지만 제가 제안을 말씀드리기에 앞서 어르신께 마사지를 해 드리고 싶군요. 그래야 제 제안이 어느 정도 실효성을 가질 것 같으니까요.”
“호, 그래? 자네가 보기에 내가 금방이라도 죽을 것 같은가?”
“어르신께서 당장 돌아가신다는 말씀은 아닙니다. 그렇지만 제 제안까지 신경을 쓰실 만큼 건강하시지 못한 것 같아 드리는 말씀입니다.”
“그렇다면 자네 마사지를 받으면 내가 건강을 회복할 수 있다는 건가?”
이무영 대통령이 이채를 발하며 묻자 강권은 웃으며 말했다.
“세상에는 눈에 보이는 것과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이 있습니다. 사람들은 눈에 보이는 것에 흥미를 갖지만 정작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이 세상을 지배하고 있다는 것을 알지 못합니다. 제가 어르신께 이 말씀을 드리는 까닭은 어르신의 건강이 나빠진 것이 눈에 보이지 않는 것에 영향을 받았기 때문입니다.”
“호, 그래? 그럼 그대는 내가 어떻게 아픈지 알고 있다는 건가?”
“대충은 알 것 같습니다. 어르신, 아마 어르신께서 건강이 나빠진 시기는 재작년부터 일 것입니다. 어르신의 선조께서는 야학을 벗 삼아 청수를 닦으셨을 것이고 유택을 정하신 것도 그 점을 염두에 두셨을 것입니다. 재작년에 유택 입구에 사람들을 꼬이는 무언가가 생겼을 것이고 어르신의 선조께서는 대단히 못마땅해 하고 계셔서 그렇게 된 것입니다.”
이무영 대통령은 그제야 재작년부터 선산으로 들어가는 길목에 레저타운이 조성되고 있는 것이 생각났다. 그렇다고 이미 적법한 절차를 거쳐 조성하고 있는 레저타운에 압력을 행사하고 싶은 생각은 없었다. 이무영 대통령은 문득 그런 사실을 알고 있는 강권에게 대안이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어 물었다.
“그럼 조상님들의 노여움을 풀 수 있는 방법은 없겠는가?”
“이미 풀린 것이나 마찬가지니 굳이 애쓰실 필요는 없습니다. 제가 어르신께 마사지를 해 드리겠다고 한 까닭은 어르신의 선조께서 노여움을 푸셨다는 것을 느꼈기 때문이지요. 그러니 약간의 기만 불어넣어 드린다면 쾌차하실 것입니다. 그보다 한 가지 재미있는 것을 말씀드리지요.”
“호오, 그게 무언가?”
“과거 일제가 우리나라의 지맥을 끊기 위해서 백두대간 곳곳에 쇠말뚝을 박았다는 것을 들으셨을 것입니다.”
“그런 말이 있었지.”
이무영 대통령은 강권의 말에 완전 심취되어 할아버지에게서 옛날 얘기를 듣는 아이처럼 귀를 기울이고 있었다.
“그 쇠말뚝 때문에 우리나라가 분단이 되고 엄청 고통을 당한 것도 사실입니다. 그렇지만 그걸로 천기를 막을 수는 없는 노릇이지요. 오히려 막혔던 기운이 소통이 되면서 우리나라에 유익한 기운이 엄청 활성화되고 있습니다. 막았던 둑을 트면 막혔던 물이 일시에 쏟아진다는 이치와도 같은 것이지요. 그 증거로 들 수 있는 것이 한류 열풍입니다. 또한 일제는 천기를 왜곡한 천벌을 받게 될 것입니다. 선조의 잘못을 고스란히 뒤집어 쓸 그들의 후손들이 불쌍할 따름이지요.”
“하하, 자네는 거짓말이라도 참 재미있게 말하는구먼.”
“역학으로 보면 우리나라는 무토이고, 일본은 을목입니다. 목극토(木剋土)여서 우리나라가 일본에 일방적으로 당하는 관계처럼 생각을 하시겠지만 을목은 잡목이어서 성가신 존재에 불과합니다. 더 중요한 것은 역학으로 보면 우리나라가 일본의 부모와 같은 존재라는 것입니다. 부모에 불효를 하면 종내 하늘에 내침을 당하게 되어 있습니다.”
“일본은 그렇다 치고 그러면 중국은 어떤가?”
강권은 이무영이 구미가 당긴다는 듯 묻자 빙그레 웃으며 말했다.
“중국은 병화입니다. 원래라면 중국은 우리나라에 지대한 도움을 주는 우방이지만 아쉽게도 계수인 북한이 사이에 끼여 있어 수극화(수극화)하여 별 도움이 되지 못합니다.”
“자네 말대로라면 중국은 우리에게 해를 끼치지 않아야 하는데 현실은 그렇지 않고 있잖은가?”
“하하, 단기적으로는 그렇게 보이겠지요. 하지만 몇 년 이내에 통일이 된다면 확실히 달라질 것입니다.”
“정말 그렇게 될까?”
“그야 두고 보면 알게 되겠지요. 더 재미있는 말씀은 천기에 관계되는 것이라 저 혼자 알고 있어야 되는 것이 아쉽다면 아쉬운 일입니다.”
“호, 그런가? 천기에 관계 된다면 굳이 듣겠다고는 하지 않겠네. 그런데 이상하군. 자네 말대로 중국이 우리에게 지대한 도움을 주는 우방이 된다면 굳이 중국 산업스파이들을 전문적으로 상대할 조폭들을 양성할 필요가 없지 않을까?”
강권은 이무영 대통령이 본론을 끄집어내자 자신의 생각을 털어놓았다.
“그렇게까지 말씀을 하시니 마사지는 뒤로 미루고 제 생각부터 말씀을 드려야겠습니다.”
강권은 이렇게 운을 떼고 잠시 생각을 가다듬은 다음에 차분한 어조로 말을 이어 나갔다.
“오행이란 게 서로 맞물려서 상생과 상극을 하고 있다는 것이 그 이유가 될 수 있습니다. 대국적으로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는 것입니다. 미국은 경금에 해당하고, 소련은 갑목입니다. 병화에 해당하는 중국은 목생화의 이치에 따라 소련의 도움으로 현재의 위치에 오를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화극금이어서 종내 미국은 중국을 당해 내지 못합니다. 우리나라가 중국을 어느 정도 견제하지 않는다면 미국은 더 어려워질 것입니다. 어떻게 보면 토생금이라 미국도 우리나라의 힘을 소진시키고 있지만 대국적으로 우리나라의 상극인 소련을 견제하기 위해서는 지금 현재는 중국의 힘을 조금 소진시킬 때라는 것입니다.”
“알 것도 같지만 확실히 이해가 되지는 않는군.”
이무영 대통령은 고개를 갸웃거리다가 강권의 생각을 물었다.
“어디, 자네가 생각하고 있는 중국 산업스파이에 대책을 말해 보게나.”
“어르신께서도 우리나라에 암약하고 있는 중국의 산업스파이가 1,000명이 넘는다는 것을 알고 계실 것입니다. 그런데 그들은 간단한 상대들이 아닙니다. 제도권의 힘만으로는 그들을 상대하기가 버거울 정도입니다. 그래서 제가 고심 끝에 생각해 낸 것이 고구려의 살수인 매자(魅者)입니다. 흔히 살수의 대명사처럼 말하는 닌자보다 훨씬 더 능력이 뛰어난 존재들이지요. 문제는 매자 훈련은 엄청 위험해서 열에 한둘은 죽을 수도 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제가 쉽게 결정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매자 육성이 그만한 가치가 있을까?”
“일급 매자 세 사람만 힘을 합하면 지구상에서 가지 못할 곳이 없습니다. 설사 그곳이 백악관이라고 하더라도 말입니다.”
이무영 대통령은 강권의 말하는 의도를 대충은 알게 되었다.
“자네 말을 듣자니 007이 생각나는구먼. 자네 혹시 그걸 염두에 두고 말하는 것은 아니겠지?”
“하하, 왜 아니겠습니까? 만약을 대비해서 그 정도 비상 무기를 갖추는 것도 우리나라의 미래를 위해서 필요하지 않겠습니까?”
“딴엔 그렇겠네. 그럼 인원을 차출해 주면 자네가 책임지고 훈련을 시키겠는가?”
“그러면 좋겠지만 제가 따로 할 일이 있어 그렇게 할 수 없습니다. 저는 훈련 교안과 훈련 조교만 훈련시키겠습니다.”
이무영 대통령은 이해가 가지 않는다는 듯 고개를 갸웃거리다가 물었다.
“훈련 조교를 훈련시키는 것과 자네가 직접 매자를 훈련시키는 게 뭐가 다른가?”
“매자의 훈련 과정은 침투, 수색, 매복, 추종, 암살 등 총 10여 개로 세분할 수 있습니다. 한 사람이 이 모든 과정을 어느 정도 쓸 만하게 익히려면 최소한 6개월에서 1년이란 시일이 소요됩니다. 그런데 하나의 과정만 숙달시키는 것은 보름에서 통상 한 달 정도면 가능합니다. 그러니까 제가 전 과정에 관여하는 것은 길게 1년이 걸리지만 훈련 조교만 양성한다면 보름에서 한 달 정도만 신경 쓰면 된다는 얘기지요.”
“알겠네, 한 번 생각해 보기로 하겠네.”
이무영 대통령은 매자 양성에 나름 흥미를 가졌지만 이것은 엄밀히 말하면 제도권 밖의 일이어서 쉽사리 결정을 내릴 수가 없었다. 그런데 강권의 마사지를 받고 고질병이 씻은 듯이 낫자 최대한 협조를 해 주기로 했다.
<더 리더 2권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