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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리더 2
1화
제1장 감히 내 뒤통수를 치겠다고
이미 몇 번 벌어졌던 다른 연구원들의 실종 사건 때처럼 장도진 연구원이 아무 일이 없었다는 듯 돌아왔다. 그런데 장도진이 맡은 일이 워낙 민감한 분야이다 보니 국정원에서 장도진을 냉큼 데려가 버렸다.
그러자 기다렸다는 듯 김미진이 강권에게 이제부터 법무팀이 나설 것이니 편히 쉬고 있으라고 말했다.
법무 팀을 강조해서 말하는 미진의 말에 강권은 기분이 묘했다. 자격지심인지는 몰라도 미진의 말은 너는 중학교를 중퇴한 무식쟁이니 괜히 나대지 말라는 것처럼 들렸다.
물론 김미진이 그럴 사람이 아니라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그리고 설령 그녀가 그런 뜻으로 말했다고 해도 결과적으로 볼 때 아무런 일도 하지 않고 미림으로부터 감투만 뒤집어 쓴 꼴이 되었으니 할 말이 없었다.
‘제기랄, 사사로운 일에 벼슬아치들을 끼워 넣으면 잘되던 일도 안 된다니까.’
구차한 변명처럼 들리겠지만 장도진의 행방을 찾으려고 남산에 있는 중국 영사부에까지 들어가려다 자신의 뒤를 쫓는 경찰의 이목 때문에 강권은 망설이고 있는 중이었다.
그러던 중에 대통령을 만났고 또 다른 일단의 사람들이 뒤를 쫓으니 그들이 신경 쓰여 강권의 활동 폭은 더욱 위축이 될 수밖에 없었다.
물론 강권에겐 그들을 따돌릴 수 있는 충분한 능력이 있었다. 그렇지만 자신의 뒤를 쫓는 사람들이 경찰과 청와대에서 보낸 사람들이라는 것을 빤히 알고 있는데 굳이 그들에게 경각심을 주면서까지 그럴 필요는 없을 것 같아 그러지 않았다.
관청에 주의를 끄는 것은 백해무익한 일이라는 것을 강권은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강권의 경험(?)에 비추어 볼 때 평생 홀로 살 결심을 하지 않았다면 관청에 척을 지어서는 안 된다.
고래로 벼슬아치들은 별의별 핑계를 대서 얽어맨다. 심지어 대역 죄인이라는 오명을 씌워 구족을 멸하려 들지도 모른다.
귀에 걸면 귀걸이 코에 걸면 코걸이라고 말도 되지 않은 핑계로 백성들을 철저하게 억압하는 무리들이 벼슬아치들이라는 것을 얼마나 많이 보아 왔었던가.
관청과 처갓집은 멀수록 좋다는 말이 괜히 나온 게 아니다.
“제기랄.”
이렇게 해서 강권은 졸지에 할 일이 없어져 버렸다.
그렇다고 어디 강권이 편히 쉴 수 있는 편안한 팔자인가?
경옥은 차라리 잘됐다는 듯 강권에게 마법을 가르쳐 달라고 안달했다. 때로는 애교로 때로는 협박(?)으로.
마법을 핑계로 둘은 미림에서 마련해 준 양재동 사택에서 거의 동거하다시피 붙어 있었다.
강권은 경옥에게 지금 필요한 것은 마법이 아니라 서클을 만들 수 있게 내공을 쌓는 일임을 알고 있었다. 그래서 마법을 가르쳐 주는 대신 내공심법을 가르치려 했다.
경옥은 오행의 기운 중에 특히 물(水)의 기운이 강했다. 지자는 요수(樂水)라는 말이 있듯 경옥이 머리가 좋은 것도 아마 물의 기운이 강한 것에 영향을 받았을 것이다.
그런데 오행 상에서의 물은 성질이 차갑지만 아래로 흐르려는 특성이 있다. 이 특성으로부터 저장하려는 자윤(滋潤)의 성질이 비롯된다. 자윤(滋潤)이란 윤택하게 하고 번성하게 만드는 것이다. 이러한 성질의 극단적인 예가 바로 씨앗이다.
경옥에게는 다행스럽게 천살문에는 임자신공(壬子神功)이란 뛰어난 내공심법이 있었다.
그런데 임자신공을 익히려면 한문을 알아야 한다. 물론 강권이 세세하게 가르쳐 주기 때문에 한문의 필요성은 그리 크지 않았다.
하지만 경옥은 혼자의 힘으로 임자신공을 이해하려는 욕심 때문에 골을 싸매고 한문 공부에 열을 올리고 있었다.
사실 한문이라는 것은 신세대들에게는 쥐약이다.
경옥도 자타가 공인할 정도로 머리가 좋지만 하루아침에 한문을 마스터한다는 것이 어디 쉬운 일인가?
물론 머리가 좋으니 한문 공부의 진도가 남보다 훨씬 빨랐지만 경옥이 거기에 만족하지 못하니 쌓이는 것이 스트레스였다.
경옥은 쌓이는 스트레스를 강권에게 별별 트집을 잡으며 풀었다. 자기는 열심히 공부를 하는데 강권이 빈둥거리는 것이 눈꼴시었는지도 몰랐다.
“자기, 태어날 아이를 위해서 적어도 대학은 가야 하지 않을까?”
“대학?”
“으응, 아이가 학교에 가면 가정환경 조사서를 작성해서 내야 하잖아. 그런데 아빠 최종 학력 난에 중학교 중퇴로 적을 거야?”
“그거야, 뭐…….”
강권은 이것이 혼자 골머리를 썩지 않겠다는 경옥의 물귀신 작전이라는 것을 모르는 바는 아니었다. 불과 보름 전까지만 해도 까짓 학력이야 별개 아니라고 부르짖던 경옥이었으니까.
그렇다고 대놓고 거부하는 것도 모양새가 좋지 않았다.
‘제기랄, 아직 잉태하지도 않는 아이의 아빠 자격 때문에 졸지에 생고생을 해야 하겠네. 그깟 학력이 뭐라고? 실력이 더 중요한 게 아니겠어?’
강권은 내심 투덜거렸지만 경옥은 계속 물고 늘어졌다.
“그거야 뭐라니요? 아빠가 되려면 그만큼 당당한 아빠 자격을 갖춰야지요? 안 그래요?”
‘그래, 알았어. 그렇게 할게.’하고 넘기면 될 것을 강권은 그렇게 하지 않았다. 경옥이 뭣 때문에 이렇게 트집 아닌 트집을 잡고 있는지 빤히 아는 까닭이었다.
그래서 슬며시 어깃장을 놓았다. 물에 물 탄 듯, 술에 술탄 듯 밍밍한 사랑은 사랑이 아니다. 같은 이치로 사랑에도 포인트가 있어야 더 절절해진다는 것을 아는 까닭이었다.
“하, 이거야. 나 정도면 됐지, 뭘 더 바라? 자랑스러운 아빠 상(像)에 학력이 전부가 아니잖아?”
“그치만 자식에게 남보다 더 나은 아빠가 되면 좋잖아요.”
강권 역시 대한민국 사회에서 학력이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 모르진 않았다. 대한민국에서 버젓하게 살아가려면 돈도 있어야겠지만 무엇보다 학연과 지연, 인맥에서 남보다 떨어지지 않아야 한다. 따라서 중학교 중퇴인 학력으로는 대한민국에서 떳떳한 아버지가 되기는 사실상 불가능에 가깝다.
물론 이 떳떳하다는 것은 주관적이기 때문에 일률적인 기준으로 판단할 수는 없다. 그렇지만 최종 학력이 중학교 중퇴라면 어디에서도 제대로 인간 대접받을 수 없는 게 안타까운 현실이었다.
‘젠장, 세상이 인간을 인간성으로 보지 않고 돈이나 학력 따위를 가지고 판단의 척도로 삼으니…… 그렇다고 혼자서 살 수는 없는 노릇이니, 그런 세상과 떨어져서 살 수는 없고. 그러니 일등만 기억하는 더러운 세상이란 멘트가 먹혀들지.’
강권은 내심 이리 생각했지만 입에서 나온 말은 그게 아니었다. 어깃장을 놓은 김에 고고씽이었다.
“내가 남보다 못한 것이 무언데? 내가 머리가 나빠? 아니면 싸움을 못해? 자고로 사내들 세계에서는 주먹이 센 게 장땡이라고.”
“뭐예요? 정말 그러실 거예요?”
“하하하, 아님 말고. 그렇지만 옥아, 나는 네가 모르는 사실을 알고 있지롱. 말하자면 앞으로 학력이라는 것은 그리 중요하게 여기지 않는 날이 올 거야. 그러니까 이렇다 할 학위가 없어도 대학 교수가 될 수 있고, 대학을 나오지 않고도 당당하게 장관도 할 수 있는 그런 세상이 머잖아 온다는 거야.”
“설마요? 그렇더라도 대학을 나오지 않은 것보다 나오는 게 좋잖아요?”
“그거야 그렇겠지. 하지만 앞으로의 세상에서는 지금 사람들이 추구하고 있는 가치가 얼마나 허망한 것인가를 적나라하게 보여 줄 거야. 부와 권력을 갖고 있는 사람들에게는 더 많은 질책과 감시가 따르게 될 것이고 하찮은 일을 하더라도 자신이 하고 있는 일에 충실한 사람들에게 세상은 호평을 할 거야. 말하자면 남에게 과시하기 위해서 감투를 쓰려는 놈들은 뭣 주고 뺨 맞는다는 말처럼 기껏 고생만 하고 욕만 먹게 될 거야.”
“서, 설마요?”
경옥은 강권의 말이 이해가 되지 않았다. 그녀가 알기로는 부와 권력은 엄청 구심력이 강해서 기득권자들이 그들의 기득권을 포기하지 않는 한 기득권자들에게서 기득권이 없어지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었다. 그러니 세상이 뒤집어지는 날이 오지 않은 다음에야 어떻게 그럴 수 있겠는가?
“그 설마가 사람을 잡는다니까. 왜냐? 세상이 머잖아 뒤집어질 것이거든.”
“뭐라고요? 세, 세상이 뒤집어진다고요?”
“그렇지. 머잖아 인과응보가 확실해지고, 훨씬 빨라지게 될 것이야.”
“그게 무슨 말이에요?”
“예전에는 이승에서 잘못을 저지르더라도 그건 후생에나 반영이 되었잖아. 그런데 머잖아 새롭게 도래할 세상에서는 이승에서 자기가 지은 죄에 대해서 천벌을 받게 된다는 거지. 벼락 맞아 죽을 놈도 있을 것이고, 돈을 산더미처럼 쌓아 두고서도 거식증에 걸려 쫄쫄 굶다가 말라비틀어져서 죽는 놈도 있을 거야.”
경옥은 다른 사람도 아닌 강권의 입에서 그런 말이 나오자 긴가민가하는 와중에도 실제 그렇게 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강권은 자신의 말에 부연이라도 하려는 듯 예상하고 있는 미래에 대해서 이야기했다.
“우리나라는 앞으로 10년 이내에 통일이 될 것이고, 20년 전후로 향후 세계를 주도하는 나라가 될 거야. 그리고 30년 전후로 내가 말하는 새로운 세상이 열리게 되어 있어. 그 새로운 세상에서는 자신이 저지른 잘못들은 확실하게 벌을 받게 되지.”
“정말 그렇게 될까요?”
“확실해. 그렇게 되지 않으면 내 손에 장을 지져.”
강권이 이처럼 장담을 하는 것은 예지능력으로 보았던 미래에서 대한민국이 그렇게 바뀌는 것이 확실했기 때문이다.
10년 이내에 통일이 될 것도 확실했고, 20년 전후로 향후 세계를 주도하는 나라는 대한민국이 될 것 또한 분명했다.
강권이 이를 뒷받침하는 가장 강력한 징조로 보고 있는 것은 전 세계적으로 강력하게 불고 있는 한류 열풍이었다.
강권이 이런 판단을 내린 근거는 이랬다.
세상을 지배하는 것은 사람이다. 그런데 그 사람을 지배하는 것은 바로 기(氣)다. 기가 강한 사람은 사람을 끌어모으고 돈을 끌어 모은다. 이 기는 때론 음덕으로도 나타나는데 조상을 명당자리에 모시면 발복(發福)을 하는 것이 그 전형적인 예다.
따라서 세상을 지배하는 기의 수발(受發)이 달라진다면 세상의 이치 또한 달라질 수밖에 없는 것이다.
재벌가에 태어나서 세상 모든 것이 모두 제 것인 양 생각하는 놈들 상당수가 굶어 죽거나, 벼락 맞아 죽거나, 우울증에 시달려 스스로 목숨을 끊는다. 물론 그렇게 천벌을 받아 죽는 놈들은 부모 잘 만나 물려받은 부로 힘없고 가난한 사람들을 짓밟는 놈들이 될 것이다.
사실 경옥의 말에 어깃장을 놓고 있었지만 강권 또한 대학에 가려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
대학에 가려면 검정고시로 고등학교 졸업 자격을 얻어야 한다. 그래서 말은 굳이 대학을 가지 않아도 된다고 했지만 나름 공부를 하고 있었다.
강권이 비록 중학교를 다니다 말았지만 전생을 읽을 수 있게 되고 환골탈태까지 해서 기억력이 엄청 좋아졌다. 거기다 뛰어난 동체 시력은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엄청 빠른 속독으로 나타났다.
그 결과 검정고시 준비에 크게 어려운 것은 없었다. 오히려 월등한 학습능력 때문에 불과 공부한 지 한 달 만에 고졸 이상의 실력을 갖게 되었다.
강권의 검정고시 준비를 처음부터 함께했던 경옥은 경악을 금치 못했다.
“자기는 정말 천재인 것 같아. 사람이 어떻게 그럴 수 있어? 암기 과목이야 그런다고 쳐. 그런데 수학이나 영어를 한 달 안에 어떻게 그렇게 잘할 수 있어?”
“이깟 공부라는 게 뭐가 그리 어려워? 무조건 딸딸 외우면 되는데.”
“뭐요? 딸딸 외우면 된다고요? 그럼 자기는 영어나 수학도 딸딸 외우고 있었던 거예요?”
“으응. 그게 어때서?”
경옥은 너무 당연하다는 듯 말하는 강권의 대답에 기가 차지도 않아 빤히 쳐다보았다. 그러다 문득 강권이 빈둥거리면서 국어대사전, 영한사전 등을 뒤적이고 있던 것이 떠올랐다.
‘그럼 그게 사전을 암기하고 있었던 거야?’
내심 이렇게 생각한 경옥은 강권에게 물었다.
“그렇담 영한사전을 외우고 있었던 거예요?”
“으응, 영한사전을 다 외웠더니 영어가 되게 쉬운 것 같던데.”
“뭐라고요? 영한사전을 다 외웠다고요?”
“으응, 그 정도야 기본 아니겠어?”
경옥은 강권의 말이 기가 차지도 않았다. 예전에 영한사전을 외우면서 외운 것을 씹어 먹었다는 말이 있기는 했지만 요즘 그렇게 무식하게 공부하는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
그런데 경옥은 문득 강권이라면 정말 영한사전을 전부 외웠을 수도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다면 혹시…….’
“그럼 수학 정석도 다 외웠어요?”
“맞아. 정석을 다 외우고 문제집에 있는 해법도 다 외웠어. 그랬더니 수학도 대충은 알 것 같더라고.”
“세상에……. 그렇게 무식하게 공부하는 사람은 강권 씨가 처음일 거예요.”
경옥은 이렇게 말하면서도 강권의 말에 의구심을 갖지 않을 수 없었다.
‘도대체 얼마나 기억력이 좋기에 그 짧은 시간에 그 많은 것들을 다 외웠다는 거지?’
사실 한 달이라는 시간은 영어사전과 국어대사전을 외우기에는 너무나 짧은 시간이었다. 경옥은 아무리 생각을 해도 강권의 말이 믿기지 않아 영어사전을 들고 테스트를 해 보았다.
놀라운 것은 경옥이 물으면 강권이 몇 페이지, 몇째 줄까지 술술 말했다는 것이다. 경옥은 경악을 금치 못했다.
IQ 테스트는 어느 정도의 지식 베이스에 기억력과 순발력만 좋다면 엄청 좋은 점수를 받을 수 있는 것이다.
경옥이 비록 IQ가 180이 넘는다지만 강권처럼 기억력도 좋지 않고 빠르게 읽지 못했다. 그것을 달리 표현하면 강권이 그만큼 기억력도 좋고 순발력도 좋다는 의미였다.
‘그럼?’
경옥은 강권이 자신보다 IQ가 높을지 모른다는 생각이 들어 IQ 테스트를 해 보고 싶었다. 그래서 간단하게 구할 수 있는 IQ 테스트 문제집을 구해서 강권에게 알리지 않고 풀어 보라고 했다.
결과는 측정불가였다. 물론 인터넷에서 간단하게 구할 수 있는 IQ 테스트 문제집이어서 결과에 전적으로 신뢰할 수는 없었다. 그렇지만 40문제를 불과 2분 안에 전부 맞췄다는 것은 강권의 IQ가 최소한 자기보다 낮지는 않다고 볼 수 있었다.
“와, 세상에…….”
경옥은 강권이 보통 사람과는 다른 존재라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이렇게 뛰어날 줄은 몰라 절로 감탄사가 튀어나왔다.
그렇지만 경옥의 놀람은 아직 일렀다. 강권이 경옥의 모교인 S대 K교수가 쓴 1,300페이지가 훨씬 넘는 헌법학 원론을 불과 10분 만에 읽고 전부 암기하는 것에 입이 다물어지지가 않았다.
‘생전 보지도 못했을 법학 서적을 어떻게 그렇게 빨리 읽을 수 있지?’
경옥은 아무리 생각해도 강권의 능력이 이해가 되지 않았다.
보통 사람이라면 본 것은 전부 기억할 수 있다고 주장했었던 사람이 있었다. 그는 자기가 속독법을 창시했다고 주장하는 사람이었다.
속독의 기본은 이해다. 잘 알고 있어야 빨리 읽을 수 있다는 말이다. 그렇지만 강권은 자신이 잘 알지 못하는 분야도 엄청 빠르게 읽고 그것을 기억하기까지 하고 있었다.
‘어떻게 그것이 가능하지?’
경옥은 도무지 믿어지지 않았다.
더욱 놀라운 일은 헌법 원론을 읽은 후에 강권이 헌법에 대해서 상당한 실력이 있는 것 같다는 것이었다.
확실한 것은 경옥이 건네준 헌법 원론을 보기 전에는 강권이 법학을 한 번도 접해 보지 않았다는 것이다.
‘세상에 처음 접하는 것을 한 번 읽고 다 이해한다는 거야? 그렇다면 강권 씨는 책만 많이 보면 누구보다 박학다식한 사람이 되겠네.’
사랑하는 사람을 최고로 만드는 것은 사랑하고 있는 사람만의 특권이자 의무다.
그때부터 경옥은 대형 서점을 강권과의 데이트 장소로 삼았다. 경옥의 목표는 강권으로 하여금 최대한 많은 책을 읽게 하자는 것이었다. 서점에서 하루 종일 서 있다 보니 다리가 퉁퉁 부었지만 경옥은 자기가 사랑하는 사람이 박학다식해지는 것에 참을 수 있었다.
이것을 잘 알고 있는 강권은 그녀를 사랑하지 않을 수 없었다.
“자기, 오늘부터는 경제학에 대해서 공부하도록 해요.”
“경제학?”
“예, 경제학이오. 사회학, 법학, 정치학에 대해서 두루 섭렵을 했으니 이제 경제학에 대해 공부할 차례잖아요.”
경옥의 말처럼 강권은 종로에 있는 K문고의 책을 훑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