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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화
경옥이 읽어야 할 책을 대충 지정을 해 주면 강권은 책을 사는 척 책을 뒤적이면서 매장에 서서 암기하는 방식이었다.
책장만 넘기면 그 내용을 고스란히 기억을 하니 그걸 보고 있는 경옥은 강권이 혹시 판타지에 나오는 드래곤이 아닐까 하는 의구심마저 들었다. 그렇지만 강권이 자신은 드래곤이 절대 아니라고 했으니 믿을 수밖에.
‘그렇지만 인간의 몸으로 어떻게 저게 가능하지?’
경옥은 문득 강권이 영화 페노미논의 존 트래볼타처럼 머릿속에 종양이 자라고 있어서 그런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뇌리를 스쳤다. 그렇지 않고서야 도무지 강권의 능력에 대해서 설명할 방법이 없지 않은가.
‘정말 그런 게 아냐? 그렇다면 당장 MRI라도 찍어 봐야 되는 것 아닐까?’
의심암귀라고 강권이 정말 페노미논의 존 트래볼타처럼 하루아침에 자신의 곁을 떠날 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 강권을 그만큼 사랑하고 있다는 반증이기도 했다. 경옥은 그런 방정맞은 생각을 하면서 강권을 보자 괜히 슬퍼져서 눈물이 핑 돌았다.
그런 경옥을 보고 강권은 강권대로 자신 때문에 전문의의 길을 포기한 경옥이 안쓰러웠다.
“옥아, 자기는 의사 국가고시에 합격도 했는데 나 때문에 인턴, 레지던트 과정을 포기할 거야? 정말 후회하지 않겠어? 그동안 해 왔던 공부가 아깝잖아.”
강권은 경옥이 왜 인턴 과정을 포기하면서 자신과 시간을 함께 보내고 있음을 잘 알고 있었다. 자신을 내조하겠다고 스스로의 길을 포기하고 있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던 것이다.
강권이 엄청 진지하게 말하자 경옥은 강권이 사랑이 느껴지는 것 같아 가슴이 뭉클해졌다. 그러자 방금 전까지 가졌던 방정맞은 생각을 씻어 버리기라도 하겠다는 듯 호들갑스럽게 말했다.
“호호, 공부한 게 어디 가나요? 의사 자격증도 땄고요. 그러니 전문의는 되지 못하더라도 저는 버젓한 의사라고요. 그리고 의학 공부를 포기한 건 절대 아니에요. 오히려 저는 한의대에 편입해서 양의학과 한의학을 동시에 공부하려고요.”
“뭐? 그럼 자기는 계속 대학만 다닐 거야?”
“돈이 없어 대학을 다닐 수 없는 사람들에겐 미안한데 양의학과 한의학을 동시에 공부하는 게 의술에 대해서 더 잘 알 수 있는 방법이라고 생각해요. 임자신공을 익히면서 느낀 건데 한의학이 인체의 신비에 더 근접한 게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었고요.”
“아! 그래서 그쪽에 가 있었던 거야?”
“예, 자기가 책을 읽는 동안에 저도 나름 공부하려고요. 그런데 자기한테 한 가지 물어봐도 돼요?”
“우리 아가씨, 뭘? 물어보고 싶은 것이 있다면 서슴지 말고 물어―보시―와요.”
순간 경옥은 자신이 너무 심각한 어조로 말했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그렇지 않고서야 강권이 이처럼 어설프게 자신을 웃기려 하지 않았을 것이기 때문이다.
경옥은 가슴이 뭉클해서 애정이 듬뿍 담긴 시선으로 강권의 얼굴을 한참 뚫어지게 바라보다 정색을 하며 입을 열었다.
“자기, 자기는 그렇게 코미디언을 흉내 내거나 그러지 마요. 자기 분위기와는 너무 어울리지 않아 확 깨니까요.”
“옥, 내가 그리 어설펐어?”
“예, 자기는 귀공자 타입이어서 품위를 지키는 게 더 어울려요.”
‘내가 귀공자 타입?’
강권은 경옥의 말에 격세지감을 느꼈다. 귀공자라는 말은 불과 1년여 전만 해도 땅꼬마였던 강권에게는 어울리지 않은 말이었다. 그런데 185cm가 넘고 환골탈태를 거친 지금은 귀공자라는 말이 딱 어울렸다.
칭찬은 고래도 춤추게 한다는 말이 있다. 그 말은 강권에게도 적용이 되는 말이었다. 경옥에게 귀공자 타입이라는 말을 듣는 순간 강권은 괜히 가슴이 벅차올랐다.
‘이렇게 가슴이 벅차오르는 건 내가 경옥이를 정말로 사랑하고 있기 때문일까?’
전생을 돌이켜보아도 사랑은 항상 마음을 설레게 한다. 사랑에는 형언할 수 없는 묘한 구석이 있어서 나이와 처지를 잊게 만든다. 말하자면 항상 감정을 싱그럽게 만드는 것이 사랑이었다.
사랑의 감정이 수많은 전생을 기억해 내고 천하를 우습게 여길 수 있는 경륜을 가진 강권을 파릇파릇한 청춘으로 되돌려 놓고 있었던 것이다.
강권은 눈을 지그시 감고서 가슴에 와 닿는 사랑을 음미했다. 이런 강권의 감정을 알지 못하는 경옥은 자신의 방정맞은 생각이 맞아 들어가지 않나 하는 불길함을 느껴 급히 물었다.
“자기 혹시 아픈 곳이 있어요? 아프지 않다고 하더라도 갑자기 어지럽다거나 구역질이 나거나 그러지는 않아요?”
“아니. 갑자기 왜 그런 질문을 하지?”
“그냥요. 그냥 페노미논이라는 영화가 문득 생각이 나서요.”
“페노미논?”
페노미논은 강권도 케이블 TV에서 본 적이 있는 존 트래볼타가 주연으로 나오는 영화였다.
그 영화에서 주인공은 벼락을 맞고 하루아침에 평범한 사람에서 자연과 교감을 하고 전혀 배우지 않은 외국어를 단 20분 만에 습득을 하는 등 엄청난 능력을 가진 사람이 된다.
그런데 결말은 주인공이 뇌종양이 생겨 죽는다는 것이었다.
‘그러니까 경옥이는 지금 내가 뇌종양 때문에 이런 능력을 가진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는 거야?’
이런 생각이 들자 강권은 갑자기 웃음이 나왔다.
“하하하, 그러니까 내가 뇌종양이라는 거야?”
“칫, 누가 그렇다는 거예요?”
“그렇지 않음 왜 갑자기 어지럽지 않느냐, 구역질이 나지 않느냐? 그렇게 묻는 건데?”
경옥은 강권의 물음에 대답을 하지 못하고 얼굴만 붉어졌다.
강권은 그런 경옥이 너무나 사랑스러웠다.
“하하, 조금도 걱정하지 마. 나는 뇌종양 때문에 그런 게 아니고 환골탈태를 해서 그런 거니까.”
“환골탈태요? 자기 정말 환골탈태를 했다는 거예요?”
“하하, 그렇다니까.”
강권의 대답에 경옥의 얼굴이 밝아졌다.
남녀가 붙어있다 보면 더 멀어질 수도 더 가까워질 수도 있는데, 경옥은 강권과 자신은 후자라는 확신이 들었다. 그리고 강권은 강권이 자신의 운명이라는 생각까지 들었다.
그런데 호사다마라고 이 두 청춘들의 어설픈(?) 사랑놀음은 그리 오래가지 못했다. 훼방꾼이 나타나 사랑놀음을 방해했기 때문이다.
“최 이사님, 여기 계셨군요. 한참 찾았습니다.”
훼방꾼은 뜻밖에도 고경탁 경위였다. 강권은 뇌리에 스쳐 가는 것이 있었지만 시치미를 떼고 물었다.
“고경탁 경위님, 어쩐 일로 저를 찾으셨습니까?”
고경탁 경위는 조심스럽게 주위를 둘러보며 나직하게 말했다.
“청장님께서 조용히 뵙자고 하십니다.”
“청장님께서요?”
강권의 물음에 고 경탁 경위는 아무 대답도 하지 않고 한 장의 메모를 건네주고는 꾸벅 인사를 하고 사라졌다.
고경탁 경위가 이상한 행동을 보이며 사라지자 강권은 자신이 제안했던 산업스파이를 전담하는 조폭 조직을 만드는 것에 뭔가 문제가 생겼다는 것을 직감했다.
‘대통령이 뭔가 수작을 부린다는 건가? 파워 게임을 하는 것도 아니고 이게 도대체 뭐하는 짓거리들인가?’
그렇지 않고서야 경찰청장이 이렇게 은밀하게 강권을 보자고 할 이유가 없었다. 대통령과 경찰청장의 파워 게임이란 말이 전혀 말도 되지 않는 것 같지만 이무영 대통령의 임기가 1년도 채 남지 않은 상황에서는 꼭 그렇지만은 않았다.
이무영이 대통령에 오르고 임기의 반도 채우지 못하고 지병이 생겨 레임덕 현상이 다른 대통령보다 훨씬 심화되어 있는 상태였기 때문이다.
강권은 고경탁이 건네준 쪽지를 보자 쪽지에는 남한산성 내에 있는 닭죽집이 적혀 있었다. 경찰 쪽의 인사들과의 만남이 계속 음식점과 관련이 있다는 것은 흥미로운 대목이었다.
‘관살(官殺)은 나를 극하는 것인데 관살의 대표적 존재인 경찰의 수뇌부들과 만나는 곳이 계속 음식점이라니…….’
강권이 흥미롭게 생각하는 것은 먹을거리는 명리학(命理學)에서 관살을 제어하는 식신(食神)이라는 것이다. 이치적으로 따지면 나를 해칠 수 있는 관살을 억제하는 곳과 관련이 있는 곳에서 그들을 만난다는 것은 나에게 해롭지 않다는 것과 같다.
강권은 드라이브도 할 겸해서 경옥과 남한산성에 닭죽을 먹으러 가는 것도 나쁘지 않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옥아! 우리 남한산성으로 닭죽을 먹으러 갈까?”
“닭죽이요?”
“남한산성 닭죽 유명하잖아? 잘하는 곳을 알고 있거든.”
“그래요. 저도 닭죽 좋아하거든요.”
강권이 자신의 애마인 황금색 모데라토를 몰고 닭죽집에 도착한 것은 저녁을 먹기에는 조금 이른 시간이었다.
강권이 도착하자 서빙을 보는 아가씨가 방으로 안내를 했다.
방에는 강희복 경찰청장과 이경복 외사국장이 먼저 와서 기다리고 있었다. 그들은 근무시간임에도 사복 차림이었다. 누군가의 이목을 피하겠다는 의도일 것이다.
“어서 오시오. 최 이사, 약혼녀분이 아주 미인이시군요.”
“경찰청장님께서 먼저 와서 기다리고 계실 줄은 몰랐습니다.”
“하하, 아쉬운 사람이 우물을 파야 하는 법이지요. 내가 최 이사에게 부탁할 것이 있으니 먼저 와서 기다리는 것은 당연한 일이지요.”
“청장님께 부탁하실 것을 먼저 여쭤 봐도 되겠습니까?”
“하하, 그야…….”
강희복 경찰청장은 노경옥 쪽을 흘끔 보며 말을 흐렸다. 노경옥이가 들으면 곤란하다는 의미리라.
그걸 모르는 것은 아니었지만 강권은 경옥을 이 자리에서 나가게 하고 싶지는 않았다. 강희복 경찰청장이 경옥이 듣지 않은 곳에서 말하고 싶다는 것은 그만큼 곤란한 말을 한다는 것이었고, 강권은 괜히 곤란한 일에 휘말리고 싶지 않았던 것이다.
그래서 강권은 단호하게 말했다.
“청장님, 이 사람과 저는 이미 운명의 공동체입니다. 이 사람이 들을 수 없는 말이라면 저도 듣고 싶지 않습니다.”
강희복 경찰청장은 강권의 단호한 태도에 잠시 망설이다 품속에서 만년필을 꺼내는 것이었다. 그런데 경찰청장이 만년필을 꺼내자 이경복 외사국장은 기다렸다는 듯 문을 열고 밖으로 나갔다.
이경복 외사국장이 밖으로 나간 이유는 이내 밝혀졌다.
강희복 경찰청장이 꺼낸 것은 뜻밖에도 만년필 모양의 녹음기였고 그 내용을 누가 들으면 곤란했던 것이다.
강희복 경찰청장이 녹음기를 틀자 귀에 익은 음성이 들렸다.
―윤 실장, 그러니까 경찰보다는 군 쪽을 택하자고?
―예, 그렇습니다. 대통령님. 아무래도 그 젊은 친구의 말대로 깡패들로 그런 조직을 만든다면 서원명 차기 대선주자의 성향을 보건데 인권 문제를 들먹이며 물고 늘어질 게 뻔합니다. 그러니 강희복 경찰청장보다는 조호명 특전사령관을 택하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조 사령관이 대통령님께 더 충성스럽기 때문입니다. 게다가 조 사령관은 대통령님의 고향 후배 아닙니까?
―흐음…….
이무영 대통령은 윤 실장이라는 사람의 말에 침음을 터트리며 한참 동안 숙고한 후에 말을 이었다.
―그렇게 하도록.
―예, 대통령님.
강권은 그럴 수 있는 게 아니냐는 표정으로 강희복 경찰청장을 바라보았다. 강희복 경찰청장은 강권의 표정을 주의 깊게 보더니 나지막하게 상황을 설명하는 것이었다.
“최 이사, 녹음기에서 말하는 윤 실장은 대통령 비서실의 윤기영 국정상황실장이라네. 녹음기의 내용상으로 보면 크게 문제가 없을 것으로 보이네만, 여기에는 커다란 음모가 내포되어 있다네. 자, 이 문건을 보게나.”
강희복 경찰청장이 내민 문건에는 인권을 절대적으로 여겼던 민주투사 시절의 이무영 대통령으로서는 전혀 상상할 수 없는 내용들이 적혀 있었다.
강권이 제안한 산업스파이들을 상대하기 위해서 조폭으로 만들어질 조직을 이무영 대통령의 사 조직화한다는 게 골자였다.
강권은 문건을 보는 둥 마는 둥 하고는 눈살을 찌푸리면서 문건을 경옥에게 넘겼다.
그것을 본 강희복 경찰청장의 인상이 구겨졌다.
‘중학교 중퇴에 일자무식이라더니 그런가 보군. 아무래도 내가 저런 무식한 친구와 함께 일을 하려고 했다는 것은 실수를 하고 있는 게 아닐까?’
강희복이 이런 생각을 하고 있는 것에는 다 그만한 이유가 있었다. 왜냐하면 그가 강권에게 건넨 문건은 B5 사이즈, 20여 장에 깨알만큼 작은 글씨가 빽빽이 들어차 있으니 다 보려면 아무리 빨리 보더라도 10여 분은 걸려야 정상이었다.
그런데 강권이 장수만 헤아리고 경옥에게 문건을 넘겨주었으니 어떻게 그걸 읽었다고 볼 수 있겠는가?
강희복 경찰청장을 더 암울하게 하는 것은 경옥 역시 대충 훑어보면서 장수만 넘기고 있는 것 같다는 것이었다.
‘국정원 놈들의 눈을 속이고 어렵게 낸 자린데 상황이 이러니…… 휴우.’
강희복 경찰청장은 오늘 회동은 득보다 실이 많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자 고개를 절레절레 젓고는 이 경복을 들어오게 했다. 닭죽만 먹고 가겠다는 의지를 나름 표출한 것이다.
제2장 뒤통수에는 뒤통수로
“경찰청장님, 단도직입적으로 묻겠어요. 이 문건을 작성한 사람들이 도대체 어디 소속인가요?”
이렇게 묻는 경옥의 어조는 차갑기 그지없었다.
문건의 내용 중에는 강권과 자신의 신상에 대한 사찰도 있었고, 그게 아니더라도 민주주의에서는 도저히 용인되지 못할 내용이 다수 섞여 있었기 때문이다.
“큼큼, 그야 청와대에서 지시를 받아 국정원 사람들이 작성한 게 아니겠소?”
“그래요? 그러면 청장님께서는 이걸 어떻게 손에 넣을 수 있었지요?”
강희복 경찰청장은 거듭되는 경옥의 추궁의 성질을 띤 질문에 얼굴이 구겨졌다. 어디 경찰청장이라는 자리가 그리 호락호락한 자리인가? 그런데 어찌 경찰청장인 자기에게 딸 같은 어린애가 추궁을 한단 말인가? 강희복 경찰청장은 끓어오르는 분노를 가까스로 참으며 대답을 했다.
“청와대 비서실에 있는 야당 성향의 직원이 문건을 유출시켜서 손에 넣을 수 있었소.”
경옥은 경찰청장의 대답이 그럴듯하다는 생각이 들었는지 더 이상 묻지 않고 강권의 얼굴을 쳐다보았다. 경옥의 눈에는 분노가 섞여 있었다.
물론 그녀의 분노는 강권에 대한 것은 아니었고 믿음을 저버린 이무영 대통령에 대한 것이었다.
경옥이 법대에 다닐 때 인권 변호사인 이무영이 서울대 특강을 왔었고, 경옥은 이무영의 사상과 인품에 매료되었다. 그래서 경옥은 지난번 대선에서 이무영 후원회를 결성해서 조직적으로 후원까지 했었다.
이무영이 초반 열세를 뒤집고 막판 뒤집기로 대통령에 당선될 수 있었던 것도 따지고 보면 이 후원회의 역할이 엄청 컸다.
그런데 문건에는 그런 이무영과는 너무나 상반되는 내용이 담겨 있었다. 문건에서는 국가의 미래를 위해서 국가를 좀먹는 깡패들을 조금 희생시켜서라도 국익을 해치는 산업스파이들을 일소하자고 되어 있었다.
이것은 깡패도 국민이고, 따라서 그 인권은 존중되어야 한다는 4년 전 대선주자 이무영이라면 도저히 생각할 수 없는 일이었고, 생각해서도 안 되는 일이었다.
인권은 절대적인 것이다. 따라서 자발적인 동의 없이는 아무리 국익을 위한다고 해도 국민의 인권을 해쳐서는 안 된다.
그런데 이무영의 인권 관념은 개인의 인권이 조금 희생이 되더라도 국가 전체를 위한 희생이라면 그 조금의 희생은 감수해야 한다는 쪽으로 바뀌어 있었다. 그것이 야인(野人) 이무영과 대통령 이무영의 차이였고 그 점이 한때 법학을 공부했던 경옥으로 하여금 분노를 하게 만들었던 것이다.
경옥의 권유 아닌 권유로 법학과 사회학을 두루 섭렵한 이후에 강권은 봉건적이던 사고방식이 상당히 깨어 있는 상태였다. 그래서 강권은 경옥의 분노가 어떤 것이라는 것을 잘 알고 있었고 그 또한 나름 공감하고 있었다.
시쳇말로 대통령의 사람들은 민주주의와는 거리가 먼 사람들이었다. 하지만 강권이 그들에게 분노하는 것은 또 다른 이유가 있었다. 그것은 군주제니 민주주의니 하는 정치제도와는 전혀 상관없는 면에서였다.
‘내가 만든 조직을 대통령의 퇴임 선물로 준비한다고? 감히 천하의 최강권이의 밥그릇에 수저를 얹겠다는 것이지? 미쳤어? 내가 내 밥을 빼앗기고도 아무소리도 못하는 병신 쪼다야? 그리고 말이 나왔으니 말이지 대통령이 무슨 임금이라도 되나? 저도 나도 다 같은 대한민국 국민일 뿐이라고.’
약간 봉건적인 사고방식을 갖는 강권의 생각에도 그들의 행각이 가관이라고 여길 정도로 도무지 말도 되지 않았다.
강권을 이용해서 전국 조폭들을 하나로 통일시켜 그 조직을 이 무영 대통령에 바치겠다는 야무진 생각을 갖고 있었던 것이다.
‘젠장, 민주주의 수호에 앞장서야 할 자들이 전제주의자들과 똑같은 생각을 갖고 있다니 권력이 그렇게도 좋나?’
이렇듯 그들의 생각은 위험하기 짝이 없었다.
강권이 예정하고 있는 조직은 개개인이 열 명의 무도 경관을 상대할 수 있는 100여 명으로 이루어진 조직이었다. 거기에 전국의 조폭들이 하부 조직으로 자리를 잡는다면 상상할 수 없는 어마어마한 조직이 아닐 수 없다.
그런 조직을 수중에 넣는다면 이무영 대통령은 퇴임 후에도 밤의 대통령이 되어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을 것이다.
‘재주는 곰이 넘고 돈은 왕 서방이 챙긴다는 말처럼 나는 곰처럼 재주만 부리라는 말이지? 웃겼어. 몰랐다면 모르지만 내가 안 이상 그렇게는 못하지. 나 바보 아니거든.’
강권의 생각은 자기가 힘들여서 만든 조직을 누구에게 줄 생각은 조금도 없었다.
이런 내막을 알게 된 강권은 그들에게 한마디 해 주고 싶었다.
“꿈 깨시지.”
뜬금없는 강권의 혼잣말에 강희복의 안색은 확 달라졌다.
‘혹시 이 녀석이 벌써 대통령의 사람들에 들어갔나? 그렇다면…….’
그렇다면 이 회동은 십중팔구 자신의 무덤을 파는 자리가 될 가능성이 컸다.
‘분명 이 녀석에게 접근해 온 사람들은 없었는데…….’
강희복 역시 강권을 예의 주시하고 있었고 이 문건을 입수하고 일주일간은 사찰의 강도를 몇 배 높였다. 그 결과 청와대 쪽에서 강권에 대해 사찰만 하고 있지 접근을 하지 않는다는 확신을 가질 수 있었다. 그러고 나서 이 자리를 마련한 것이었다.
그런데 이미 대통령의 사람들에 속해 있다니…….
강희복은 이걸로 자신의 공직 생활이 끝이라는 생각에 안색이 달라졌던 것이다.
강희복의 표정을 읽은 강권은 그의 내심이 어떻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강권의 입장에서 보면 이무영 대통령이나 강희복 경찰청장이나 다 그놈이 그놈이었다.
국민을 위해 봉사해야 할 놈들이 제 잇속 차리자고 탈법적으로 자신과 경옥을 사찰이나 하는 놈들이었다.
‘웃기고 자빠졌네. 내가 호구야?’
강희복 경찰청장이 흠칫하는 것을 보고 강권은 이런 자신의 속내를 시치미를 딱 떼며 말했다.
“하하, 강 청장님, 오해하시지 마십시오. 제가 방금 한 말은 이른바 대통령의 사람들이 나를 엄청 우습게 보는 것 같아 너무 화가 나서 그런 것입니다. 제가 미쳤다고 내 허락도 받지 않고 멋대로 나와 내 사람을 사찰한 그들에게 협조할 것 같습니까? 그리고 말이 나왔으니 말이지 지금이 어느 땐데 이무영 국왕 만들기 같은, 말도 되지 않은 일을 한다는 것입니까?”
“그, 그럼…….”
“그렇습니다. 문건을 전부 읽었습니다. 강 청장님도 나름 보고를 받으셨겠지만 제가 좀 빨리 읽는 편입니다. 그걸 미리 본 것은 절대 아닙니다.”
강희복 경찰청장이 긴가민가하자 경옥이 옆에서 거들었다.
“맞아요. 경찰청장님, 우리 강권 씨는 엄청 빨리 읽습니다. 또한 저도 이걸 보고 분노를 하고 있으니 강권 씨의 분노는 더할 것입니다. 자신의 사리사욕을 위해서 국민의 인권을 아무렇지도 않게 생각하는 발상은, 정말이지 국민의 한 사람으로 분노하지 않을 수 없군요.”
경옥의 말에 강희복은 한편으로 안도의 한숨을 내쉬면서도 또 한편으로는 뜨끔하지 않을 수 없었다.